공황(恐皇) 4부 <신들의 황혼> Part 4_8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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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슈슈...
슈발츠가 창으로 나일즈의 눈을 관통해 뇌를 찔렀을 때, 그 드래곤의 전신은 검고 끈적한 느낌을 주는 영기로 변하여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이래서는 보통의 드래곤이 아니다. 시어릭의 창조물이라는 말이 거짓이 아니었던 것이다. 슈발츠는 자신도 누군가에 의해 살해당한다면 이렇게 될 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잠시 등골이 서늘해져 왔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던 검은 영기 중 일부는 슈발츠가 들이마시게 되었다. 정확히는 들이마신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흡수된 거라고 봐야겠지만, 어쨌든 그것은 시어릭이 나일즈에게 부여한 그림자의 기운이었다.
[드디어!... ]
머릿속에서 악의에 가득찬 외침이 들리는 것을 느끼며, 슈발츠는 약간 휘청거렸다. 그 그림자의 기운 자체도 사실 시어릭의 안배의 일부로, 기운을 들이마신 슈발츠가 보다 더 악과 혼돈 쪽으로 기울어지게 하기 위한 일종의 독이었던 것이다.
그 어두운 악의의 기운은 한동안 슈발츠의 내부에서 이리 쏠리고 저리 쏠리며 슈발츠를 내부에서 지배하려 했다. 원래 내부에서부터의 공격은 누구나 약하다. 그것도 육신이 아니라 정신적인 공격이면 더 그렇다. 게다가 시어릭이 직접 부여한 기운이라 슈발츠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그의 의지를 압도하려 하고 있었다.
파-앗!...
하지만 슈발츠가 어둠의 기운에 휩쓸리려는 순간, 품 안에서 찬란한 황금빛 섬광이 터져 나왔다. 그 섬광은 시어릭이 부여한 기운을 저지했다. 그제사 슈발츠는 자신이 무엇을 당할 뻔 한것인지 깨달았다. 그가 자신의 정신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 이건 대체...?]
머릿속에서 울리던 목소리가 사그라들어 가는 것을 느끼며, 슈발츠는 몸 안에 받아들인 그림자의 기운을 완전히 압도하고 소화시켜 버렸다.
" 주인님~ "
두르나와 알루데시아가 달려오는 것을 보며 슈발츠는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품 안에서 꺼낸 구체는 황금색 빛을 잃고 흙으로 바스라져 있었다. 일마터 신도가 건네준 이것이 아니었다면 하는 생각을 하며 슈발츠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그 다음 슈발츠의 시선은 나일즈가 남긴 거대한 금빚 언덕(나일즈의 보물 무더기)로 향해 있었다.
" 아무래도...짐꾼을 불러와야 겠죠? "/두르나
" 그래야겠지. "/슈발츠
평소라면 슈발츠와 두르나 둘이서 처리하겠지만, 이번엔 양이 좀 지나치게 많았다. 그나마도 줄어든 것이다. 슈발츠는 사방에 흩어진 돌더미와 부서진 금붙이를 보며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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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즈를 처리한 즉시 자신의 차원으로 돌아간 슈발츠는 기다리고 있던 젤로나의 인사를 받았다.
" 젤라노라는? "/슈발츠
" 여전히 제 실험실 안에 갇혀 있어요, 플로라가 감시중이죠. "/젤로나
젤라노라는 혼란 상태에 빠진 채로 임시 감금실이 된 젤로나의 연구실 바닥에 꿇어앉혀져 플로라의 감시 하에 있었다. 플로라의 인사를 받은 후 슈발츠는 젤라노라의 상태를 살폈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슈발츠를 배신할 리는 없다는 것을 잘 아는 젤로나는 그녀를 험하게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 그대로였다.
" 우우우... 웅... 아아아!... "
젤라노라는 슈발츠를 보자 괴성을 지르며 몸을 뒤틀어 왔다. 슈발츠는 한눈에 젤라노라가 무엇인가에 홀려 있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연결이 아니라 암시 같은 것을 주입받은 것이었다. 암시가 깨지면 그 주인에게로 경보가 울리게 되는 나름 빈틈없는 장치였다.
슈발츠는 자신의 초월적인 능력으로 그 암시를 당장에 해결하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젤라노라의 정신에 간섭해 들어온 상대를 역추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그녀의 정신에 비집고 들어온 그 [무언가]를 추적해 찾아내서 파괴하지 않는 한, 이런 일이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모든 문제는 당장의 해결보다는 발본색원이 중요하다.
젤라노라가 사용한 수정구는 평범한 것으로, 원래 젤로나가 사용하던 것을 물려준 것이다(대신 젤로나는 같은 기능을 가진 거울을 만들었다). 문제는 그 수정구와 한시적으로 연결되어 있던 감시용의 작은 수정구다. 이것은 고가의 마법물품을 다루는 암시장에서 산것이다. 슈발츠는 그것을 판 상인을 추적해 볼 생각이었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아마도 상인은 버리는 패일 것이다. 슈발츠가 나타나자 마자 죽여서 꼬리를 끊을.
슈발츠는 젤라노라의 정신에 직접 접속해 보기로 했다. 누가 그녀의 정신에 암시를 남겼다면, 그 [지문]이 여전히 그녀의 정신 안에 남아 있을 것이다. 슈발츠가 암시에 휘말릴 가능성도 없다고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좀 더 위험한 방법이었지만, 이경우는 확실함을 위해 모험을 하는 것이었다.
" 으읏... "
젤라노라의 머리에 손을 얹고 주문을 영창하며 정신을 집중한 슈발츠는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젤라노라로부터 정보의 소용돌이가 그의 정신으로 밀려들어오기 시작했다.
젤라노라의 단편적인 기억들 중에서, 슈발츠는 수정구를 들여다 보았을 때 본 것들을 우선적으로 취급했다. 대부분이 그녀의 기존 보고와 차이가 없었지만 마지막에 가서 슈발츠는 놀라운 것을 보았다. 익숙한 생김새의 황금의 해골이 이쪽을 향해 입을 벌리고 웃고 있는 모습. 보석으로 된 이빨이 부서진 채인 그 데미리치 해골은 젤라노라와 영혼이 바뀐 적이 있는 슌 7세 였다.
" 헛... "
정신의 접속을 끊은 후, 슈발츠는 등줄기를 달리는 서늘한 감각을 맛보았다. 그 데미리치가 태이만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이빨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직접 대결이 아니라 젤라노라를 통한 간접 공격이다. 그 자신은 몰라도 그의 노예들은 이 데미리치가 직접 나선다면 이기는건 둘째치고 생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또한 나일즈와 슌 7세가 손을 잡았다는 것은 시어릭과 슌 7세가 손을 잡았다는 말과 동의어였다. 그 신은 슈발츠에 대해서 많이 안다. 슌 7세가 어떤 방법으로 나올지 짐작하기는 힘든 일이었다. 슈발츠는 다시 한번 노예들과 자신의 텔레파시 연결을 확인한 후, 모든 노예들에게 슌 7세의 귀환 경계령을 내렸다.
한편, 나일즈가 사라진 후 멘조베란잔에선 또 한번 대형사고가 터졌다. 지금까지 나일즈가 지배해 오고 있던 르 페이르 가문의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났던 것이다. 당연하지만 그 가문은 롤스의 총애를 잃었다. 경쟁 가문들은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하이에나마냥 르 페이르 가문을 뜯어먹으러 달려들었다.
보통이라면 모두 잡혀서 죽거나 노예가 되는 것이 르 페이르 가문에 남은 수순이겠지만, 대모인 모르가나는 자신에게 주어질 운명을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그동안 비밀리에 저장해 두고 있던 화약을 사용해 자폭해 버렸다. 무게만 수 톤에 이르는 마법화약의 폭발력은 어마어마했다. 멘조베란잔의 다른 지역 뿐 아니라 도시 인근에까지 그 폭음이 전해질 정도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멘조베란잔의 나르본딜렌 지역의 암벽에는 거대한 함몰 구덩이가 파였고, 인근 지역은 초토화 되었다. 대참사가 벌어져 수천의 드로우들이 죽거나 다쳤다. 그 중에는 기세 좋게 르 페이르 가문을 공격하고 있던 다른 드로우 가문의 엘리트 전사나, 심지어 대모들까지 끼어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사건은 멘조베란잔의 정치적 안정을 가져 왔다. 베인레 가문은 이 사건으로부터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또한 새로운 지위를 노리던 많은 신흥 가문들이 멸족해버린 덕에 구 지도층의 지위가 강화되고, 하층 귀족 가문으로는 대량의 신선한 피가 유입되어 도시의 활력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그것은 훗날의 일이고, 슈발츠가 다시 도시를 찾았을 때는 참상이 아직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무너져 내린 도시의 한 귀퉁이가 흉물스럽게 방치된 그대로였고, 도시를 두텁게 덮어 보호하고 있던 페즈레즈 결계까지 크게 손상을 받아 위저드가 포함된 드로우 순찰대원들이 도시 신경질적으로 도시 경계의 내외를 오가며 순찰을 강화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그리고 도시를 출입하는 자들에 대한 검문은 극심한 상태였다.
슈발츠는 시장 구역의 안전가옥으로 대피한 알비제를 만났다, 어찌된 일인지 그도 폭발 사고에 휘말려 다리를 다친 상태였다. 슈발츠는 그동안의 경과를 설명하고 그에게 작별의 인사를 건네고 나왔다. 대소동이 벌어진 다음이니만큼 알비제도 붙잡을 여유는 없었다.
알비제를 만나고 멘조베란잔에서 귀환한 후, 슈발츠는 전열을 가다듬었다. 본래 수비는 그의 스타일이 아니다. 그는 슌 7세를 상대하기 위해 다시 한번 함정을 놓을 것이었다. 이번엔 절대 도망칠 수 없는 함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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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즈의 보물은 굉장한 양이었다. 금의 무게 만으로도 적어도 백만 두아트 정도가 되었고, 다 옮기는데 열흘이 넘게 걸렸다. 슈발츠는 칼라디나 성 아래의 [금고]에 새로 쌓인 금은보화들을 보며 흡족해 했다. 그도 드래곤은 드래곤이라, 보물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즐거워 하는 성격 자체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다만 무엇에 우선순위를 두느냐 하는 점이 여타의 드래곤과 다를 뿐.
아무튼 드래곤 퇴치 한번으로 테티르 왕실에 대출해준 액수의 몆배에 달하는 수익을 벌어들인 것이다. 그리고 나일즈가 수집한 물품 중에는 금은제품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가치를 가진 골동품들도 꽤 있었다. 그것들은 물론 슈발츠의 궁성을 장식하게 되었다(슈발츠는 예술품 애호가라는 측면에서는 여느 엘프에 못지 않은 안목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작고 괜찮은 보석 세공품들은(반지, 목걸이, 브로치 등) 노예들에게 인심 좋게 나누어 주었다. 젤로나는 그것들에 노예들이 필요로 하는 마법을 걸어 주느라 분주해졌다.
나일즈의 반지는 젤로나와 사피아에 의해 철저하게 분석되었고, 준차원에 대한 마법은 반지 자체가 아니라 거기 박힌 흑요석에 걸린 것을 알아내었다. 슈발츠는 흑요석만 떼내어 은을 마법적으로 세공한 반지 위에 그것을 달아서 인장 반지를 끼지 않은 오른손에 착용하기로 했다. 원래 붙어있던 금반지는 저주를 해제하고 나서 용광로에 던져넣어 금화로 마꾸었다.
반지와 연결된 준차원에 갇힌 미스트라의 딸들은 아직 무사했다. 나일즈가 여자들을 감금해 둔 방식과 그녀들의 목숨을 붙들어 두는 방식은 확실하고 은밀한 것이 맞았다. 보석에 손상을 주지 않고 그녀들을 꺼낼 수 있는 방법의 연구에 대해서는 젤로나에게 위임한 채로, 슈발츠는 당면한 급한 문제들(젤라노라와 슌 7세)을 해결할 때 까지 그녀들의 구출을 미루었다.
한편, 슌 7세는 원래 젤로나에게 보복하려고 했었지만, 그녀를 추적하는 동안 유니콘의 서를 파괴한 진정한 흑막이 슈발츠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고 그에게 젤라노라와 자신의 [연결]을 이용한 책략을 걸고, 한창 태이와 슈발츠에게로 향한 이중 전선을 펼치고 있었다. 슈발츠가 짐작한 대로 시어릭과 손을 잡은 그는 이미 절반 이상의 힘을 스스로 회복했고, 계속 회복되고 있었다.
슌 7세는 스자스 탐을 영원히 끝장내기 위해(그리고 부록으로 슈발츠도) 모종의 새로운 음모를 꾸미고 있었는데, 다름아닌 거상의 제작이었다.
살 거인(Flesh Colossus)는 전설적인 경지에 오른 마법사, 특히 강령술사만이 제작할 수 있는 파괴적인 병기였다. 수백의 시체의 뼈와 살을 조합해 만드는 이 거인은 모든 마법에 면역이고, 음 에너지에 기반한 공격은 흡수해 회복한다. 단순히 그 존재만으로도 일군을 말살시키에 족하며, 가장 용감한 기사와 병사마저 공포에 질려 물러서게 만든다.
슈발츠가 슌 7세와 새로이 맞설 결의를 한 시기엔 제작도 거의 끝마쳐져 있었다. 남은것은 살 거인에 들어갈 조종용 유령을 입수하는 일이었는데, 그것은 그의 또다른 동맹자가 제공했다. 창백한 인상에 잘 차려입은 젊은 청년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슌 7세가 속으로 코웃음을 치긴 했지만) 자신을 아스트랄 계의 진정한 지배자라 칭했다. 그리고 단순히 미친 자가 아니라 엄청난 마법의 힘을 부렸다. 슌 7세가 기스양키의 도움을 얻게 된 데는 그의 중재가 컸다.
" 오오... 이런 강력한 영혼이라니... "
제압된 유령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강력한 영기를 보며, 슌 7세는 보석 눈을 기쁨으로 빛내었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는 그의 동맹자의 눈 역시 사악한 기쁨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살 거인이 태이마운트 인근에 나타난 것은 DR 1382년 겨울의 일이었다. 그리고 나타난 순간 태이가 자랑하던 검은 유니콘 군단을 괴멸시켰다. 이 초월적인 괴물의 출현에 태이는 국가적인 능력을 총 동원해 맞섰지만, 스자스 탐이 도착하기 전까지 살 거인에게 입힌 타격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살 거인의 조종자는 스자스 탐이 나타나자 마자 영리하게도 그것을 본거지로 되돌렸다.
살 거인은 슌 7세의 본거지인 아스트랄 차원계로 되돌아 갈 때 까지 적어도 수천에 달하는 죽음을 초래했고, 태이의 수도인 엘타바(Eltabbar)는 시벽이 무너지고 시가지 일부가 폐허가 되었다. 도시는 실제로 입은 피해보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버리고 떠나 간 탓에 금새 유령도시가 되어버렸고, 피난민들이 전하는 살 거인의 공포스러운 소문은 태이 전역의 사기를 크게 약화시켰다.
당연하게도 그 소식은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고 슈발츠에게까지 도착했다. 이렇게까지 직접적이고 인상적인 무력시위를 한 데미리치의 위협은 농담이 아니었다. 언제 칼라디나 성벽 밖에서 이 살 거인이 출현할지 모른다. 스자스 탐은 이 살 거인을 파괴하기 위해 슈발츠의 조력이 필요했지만, 슈발츠에게도 이건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그럼에도 태연한 얼굴로 자신의 [참전]에 대한 스자스 탐의 댓가를 요구했으니 슈발츠의 전설적인 허세는 감탄의 수준을 넘어설 것이었다.
DR1383년의 새해가 밝자마자, 태이에서 급전으로 보낸 물건들이 칼라디나에 도착했다. 슈발츠가 요구한 [참전의 댓가]였다. 하나는 세가지 소원의 반지였고, 다른 하나는 고대 이마스카(Imaskar) 제국의 역사 기록을 담은 논문이었다. 스자스 탐의 제자 중 하나가 기록한 그것은 고대 이마스카 제국의 수도인 이누프라스(Inupras)의 위치를 라우린 사막(Raurin)의 모처로 특정짓고 있었다.
이마스카 제국의 역사는 딥 이마스카리인 헬베티아도 능통했지만, 그녀조차 옛 이마스카 제국의 수도의 정확한 위치에 대해선 몰랐다. 논문 자체는 스자스 탐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있었지만, 고대 이마스카 제국의 유물들의 탐사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피아에겐 보물과도 맞먹는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강령술의 줄키르의 도서관을 열람할 기회가 없었던 그녀는 슈발츠의 어께 너머로 그것을 구한 것이다.
슈발츠는 반지는 알루시아에게 주고, 논문은 사피아에게 주었다. 그리고 스자스 탐의 요청을 받아들여 아스트랄 차원에 있는 슌 7세의 본거지에 대한 강습 계획을 실행했다.
스자스 탐의 참전 요구를 받기 이전부터 슈발츠는 슌 7세의 아스트랄 차원 본거지에 대한 탐색을 시작하고 있었다. 거기에 스자스 탐 측이 제공한 정보까지 더한 결과, 마침내 이 데미리치의 본거지를 특정지을 수가 있었다.
어비스 차원으로의 원정에서부터 쭉 일관성 있게 실행해오던 것이지만, 슈발츠가 생각하는 강습이란 면밀한 계획을 바탕으로 적의 약점을 파악하고, 신속하게 행동해 확실한 전력으로 급소를 한방 쳐서 치명타를 먹이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어비스의 지장인 그라즈트의 뒤통수까지 때렸던 슈발츠다(비록 그 직후 자신이 뒤통수를 맞긴 했지만). 그보다 확실히 못한 상대인 슌 7세를 상대할 때도 기본적인 포멧은 그대로 유지했다.
슈발츠가 자신과 노예들의 주문으로 소환해 금덩어리로 구슬린 고용한 염탐꾼들이 아스트랄계의 지도를 작성할 수 있을 정도의 정보를(하지만 아스트랄계는 계속 변화하는 차원이기에 근본적으로 지도 작성은 불가능하다) 물어다 오는 동안, 슈발츠는 슌 7세와 맞설 준비를 차근 차근 했다. 무엇보다 상대는 거신을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전설적인 마법사이다. 이번에야 말로 끝장내지 못하면, 두고 두고 후환이 될것이었다.
강습 시기와 목표가 결정되었을 때, 스자스 탐이 파견한 것은 자신의 휘하에 있는 강력한 드레드 나이트(데스나이트 보다 한단계 더 격이 높은 언데드 기사. 단 데스나이트 만큼의 자주성은 없다) 한 분대와 살 거인의 조종하는 유령을 [성불]시켜버리기 위해 특별히 조율된 마법 롯드였다. 이 롯드가 사용되면 그 즉시 인근에 차원문이 열리기로 되어 있었는데, 바로 스자스 탐이 이날을 위해 이를 갈고 만들어 둔 갖가지 언데드 군단을 투입하기 위해 만든 장치였다.
살 거인은 조종하는 유령의 통제가 없이는 그저 거대한 좀비에 불과해진다는 것을 아는 스자스 탐은 살 거인 자체를 부수는데 쓸데없는 심력을 소모하기 보다는 그것을 조종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권유한 것이다. 물론 이 조언을 무시할 생각이 눈꼽만치도 없는 슈발츠는 롯드도 잘 챙겼다. 그리고 이번에는 슈발츠 측에서도 두르나와 알루데시아가 동행했다.
스스슷...
" ... 목적지는 대충 맞는 것 같군. "
수월하게 차원 문을 통과한 슈발츠의 눈에 들어온 것은 어슴프레한 아지랑이 같은 푸른 하늘 아래 떠있는 거대한 해골 요새였다. 슌 7세의 요새는 수천 수만의 해골을 조합해 만든 거대한 구조물이었던 것이다. 그 외곽으로 그와 동맹 관계인 기스양키 해적들이 비행선을 타고 순찰하는 것이 보였다. 차원문이 열린 곳은 어슴프레한 안개가 항상 끼여 있는 아스트랄계의 특성 상 들키지는 않을 만한 거리에 있었다. 슈발츠의 뒤를 이어 두르나들과 드레드 나이트들이 차례로 차원문을 건너왔고, 소리없이 조용히 닫겼다.
슈발츠는 슌 7세의 성구함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기를 원했지만, 불행히도 그러지는 못했다. 눈 아래 있는 거대한 요새 어딘가에 있는 것만은 확실했다. 되도록 빨리 찾아내야만 이 강습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두르나들과 드레드 나이트들에게 수신호로 지시를 내렸다.
슈발츠는, 아마 슌 7세가 전투에 호소할 자신이 있을 것이라 짐작했다. 어비스에서 얻은 그의 신성한 힘을 제외하면 여전히 데미리치 쪽이 반수 쯤 우세했고, 게다가 지금 쳐들어가는 곳은 이 리치의 본거지다. 성구함이 노려지고 있다는 것을 알면 전투에 호소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대로 헤딩하면 살 거인이 아니라도 저 수많은 기스양키와 언데드 개떼를 감당해낼수 없기 때문에 진다.
따라서 슈발츠는 성동격서를 활용해야 했다. 다행히 드레드나이트들의 무용은 전설적이다. 그리고 알루데시아와 두르나도 직접 전투에서만 이 드레드나이트들보다 약간 쳐지지 종합적으로 따지면 그만 못지 않은 실력들을 갖추고 있었다. 그녀들이 주의를 끄는 동안, 슈발츠가 잠입해서 성구함을 박살낼 수 있는가가 관건이 될것이다. 일단 성구함을 박살내고 데미리치를 제압하면, 슌7세의 마력으로 유지되고 있을 이 거대한 건조물은 붕괴할 것이고, 통제가 사라진 언데드들은 눈에 보이는 살아있는 것들은 무엇이든지 죽이려 들 것이다. 방금전까지 아군이던 기스양키나 용병인 슬라드, 그리고 미쓰 드레노어의 수복으로 피난민이 된 후 슌 7세의 식객이 된 잔여 페아림들까지 포함하여.
" 흠, 저 배로 해야겠군. "
다음 순간, 슈발츠는 까마득히 멀리 있던 기스양키의 차원 배 위로 텔레포트해 와 있었다.
" 무슨?... "
느닷없는 슈발츠의 출현에 기스양키들이 어리둥절해 있는 잠깐 동안, 그는 마법사들을 먼저 노려 행동을 개시했다. 저장의 장갑으로부터 진천과 용수를 소환한 후 칼을 날려 선미에 있던 두명의 기스양키 마법사의 목을 날려 버린 것이다.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기스양키의 모가지 두개가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그에 그치지 않고 날려진 환도들은 각각 드레드노트로 변했다.
" 우와앗!... "
갑작스러운 용(기스양키들에겐 용으로 보였다)의 출현에 놀란 기스양키들이 반격태세를 취하는 동안, 시간 차를 두고 두르나와 알루데시아, 그리고 드레드 나이트들이 차례로 갑판 위로 텔레포트해 왔다. 슈발츠 휘하 제일의 마법사라 자부하는 젤로나의 솜씨로, 주문이 시간차를 두고 작동하게 조작한 것이다. 물론 곧바로 그들은 주변의 기스양키들을 쳐죽이기 시작했다. 노예들과 두 드레드노트, 그리고 드레드 나이트들이 갑판 위에서 날뛰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슈발츠도 양 손으로부터 실버 소드를 뽑아내며 전투에 뛰어들었다.
" 크아악!... "
" 캐엑!... "
" 캑!... 이...이런... "
차 한모금 홀짝거릴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일행은 선장으로 보이는 기스양키 전사까지 처치하고 배의 제압을 마쳤다. 아직 다른 순찰선들은 배의 변고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슈발츠의 기회요 승기일 것이다. 피바다가 된 배의 고물로 가서 키를 잡은 두르나는 그것을 힘차게 돌렸다. 배의 방향은 해골 요새를 향해 돌기 시작했다.
" 저게 왜 저러지? "
주변의 순찰선들이 슈발츠가 탄 배의 변화를 알아차린 것은 그 배가 비번인 순찰선들이 일렬로 줄지어 정박하고 있는 도크에 꽤 근접했을 무렵이었다. 항구에 가까운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뱃머리도 돌리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긴것인지 몰라도 그대로 진행하면 도크의 배들은 몽땅 박살날 것이었다. 급히 뱃머리를 돌린 두대의 순찰선이 따라붙은 것을 보면서도, 슈발츠는 배를 그대로 직진시켰다.
쿠아앙!!!... 콰드드드득!... 끼이익... 우두둑...
이번 편은 뒤편과 같은 단원입니다만, 좀 내용이 길어서 중간을 잘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