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厚の野望 58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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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厚の野望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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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일행은 정주를 거쳐 낙양으로 향했다. 총 책임은 목승유와 백삼동이고, 덕후는 객客의 신분으로 신주삼협과 함께 동행 하였다. 출발 직전에 덕후는 노상 먼지를 마시기 싫다고, 마차가 필요하다고 고집을 피워 호위무사들의 빈축을 샀다. 귀하신 몸이라는 걸 주장하여 끝끝내 사두마차를 얻어 탄 덕후는 제 딴에는 인심 쓰겠다는 듯 마차에 신주삼협을 초빙하였다. 덕분에 신주삼협은 장로와 무사들의 눈치를 보느라 가시방석이었다.


양측은 모임 장소를 낙양의 동북으로 십여리 떨어져 있는 춘일장春日莊으로 삼았다. 나지막한 산중턱에 자리 잡은 장원은 기상이 좋으면 낙양 전망이 한 눈에 보였다. 류 씨가 보유한 별장중 하나로 가장 큰 규모로 천 명은 넉넉히 수용할만 했다.


낙양의 무림맹 내에서가 아니라 인근인 춘일장에서 만나기로 한 것은 무력 충돌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라는 사절에 200명이나 되는 무사들을 동반한다는 것은 여차하면 강제로 데려가겠다는 의향을 비친 것이니, 통보를 받았을 때 광협 측은 위력시위도 겸하여 500명의 무인들을 대동하고 춘일장을 무대로 지정한 것이었다.


사신보다 먼저 춘일장에 도착한 광협 측은 남 소락과 류 원종의 지휘 하에 분주하게 자리를 잡았다. 옷에 풀까지 먹여가며 깨끗하게 차려입고 병장기도 햇살에 번쩍일 정도로 닦아 광을 냈다. 이전을 각오하고 왔다지만 500명의 무인은 류 씨의 지류이거나 중소문파 출신으로 광협의 낙양 정착을 기회로 한 몫을 따기 위해 참가한 이들이었다.


급조한 이들이다 보니 규율이 채 잡히지 않았지만, 한 달 만에 이만한 전력을 모은 것은 낙양 토호인 류 원종의 지지와 남 소락의 선전, 그리고 형욱의 무명武名과 세휘의 실무가 빚어낸 성과였다. 산발적으로 모인 이들을 하나의 조직으로 단기간에 엮어낸 것은, 상관 세가의 합전 때 오합지졸의 낭인들을 숭무단과 군영대로 이끈 경험이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다. 그 당시와 규모와 목적이 틀렸으나 세가 불리하다고 도망치지 않도록 하는 것, 방해가 안되 게 뭉쳐서 싸우는 법은 동일했다. 중소문파 출신들이다보니 무공들이 고만고만했고, 간혹 자존심을 앞세우는 이들도 형욱이 검기를 아낌없이 뿌려가며 손수 지도했기 때문에 굴복했다.


사신이 다왔다는 소식이 듣자 류 원종이 조카를 데리고 문밖으로 직접 맞이하려 나섰다. 갈라섰다고 하나같은 장로에 대한 예우였다. 출분할 때 장야직과 관일창이 두 숙질 때문에 낭패를 당했다는 소식을 들어 안 백삼동은 경시할 수 없어 말에 내려 읍을 하였다.


“신수가 전과 다름없어 보입니다.”
“별 말씀을. 먼 거리에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온데 장이 어수선한 관계로 전부 들어가기는 어려울 듯 합니다.”
“시절이 하수상하여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데려온 것입니다. 풍진을 피할 천막이라도 내어주신다면 감읍할 따름입니다.”
“밖에다 재우다니 그런 결례를 저지를 수 있겠습니까? 잠깐 기다려주신다면 해 지기 전에 숙식은 안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지요.”


류 원종의 빈틈없는 대답에 백삼동은 눈을 가늘게 떴다. 200명의 무사들을 순순히 안에 들이겠다니 무슨 수작인지 궁금했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굴로 가야겠지.


목숭유에게 전음으로 이곳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달라 당부하고 백삼동은 홀몸이나 마찬가지인 상태로 덕후와 함께 대문을 넘었다. 정면 승부에는 자신 없어도 한 몸 빼는 데는 하남에서 자신을 따를 자가 없다고 자부하는 백삼동이다.


백삼동은 류원종의 안내를 받아 들어서며 힐끔 지세를 살폈다. 영벽이 있어 목하에는 시선을 차단하고 있지만, 고개를 들면 담장의 끄트머리와 누樓들이 들어오는 것들로 미루어 농성에 이상적인 공간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영벽을 돌아 전원前院에 당도하자 정방을 배경으로 광협이 상석에 앉아있고, 좌우로 무인들이 위풍당당하게 도열해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백삼동은 위축되기는커녕 이 정도는 예상했다는 듯이 냉소했다.


“맹주님을 대하는 예가 어찌 그리 불민하시오?”


꼿꼿한 허리를 보다 못해 광협 옆에 시립해있던 남소락이 나섰다.


“젖비린내 나는 것!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아직도 하급무사인 줄 아는데, 무림맹의 군사 자격으로 있는 것이외다.”


듣고난 백삼동은 기가 막혀 광협을 바라보았다.


“작당하는 꼴이 참 보기 민망하구려. 저승에서 가주님이 아신다면 혀를 차시겠소.”
“작당이라니 무슨 근거로 그리 말씀하시는 게요?”


광협은 대답이 없고 남소락이 자꾸만 나서자 백삼동은 짜증이 났다.


“유언도 없이 멋대로 맹주 직을 차지하는 건 작당이 아니고 무엇이냐?”
“그렇다면 신협 공자가 가주 직에 오르는 것은 유언에는 있었소?”


백삼동은 말문이 막혔다. 광협 옆에 말을 얄밉게 잘하는 놈이 있다는 주의가 퍼뜩 떠올랐다.


“그 분 말고 적임자가 누가 있느냐? 장로들도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느니...”
“그렇지요. 가주는 그 분이 적임자 이듯, 맹주직도 광협 공자님이 적임자입니다. 낙양의 무가들도 모두 동의한 사안이고요.  설마 가주직도 부족하여 맹주직 까지 노리는 것입니까?”
“놈! 이쪽은 동의하지 않았어! 하남 맹주 자리는 그런 독단으로 될게 아니야.”
“가주 선출도 만장일치는 아니지 않습니까?”


백삼동은 말로 남소락을 이겨낼 수 없자 속이 끓었다. 결국 무시가 최선이라는 답을 내리고 본 목적을 밝히기로 했다.


“광협 공자님! 가주께서 뵙기를 원하십니다. 가솔家率의 한 명으로 불복하실 셈은 아니겠지요?”
“나는 그를 가주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광협은 묵직하게 대꾸했다. 백삼동이 뭐라 하기 전에 남소락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맹주님에게 가주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다면, 역시 가주님께서 맹주로 인정하시면 될 일입니다.”


백삼동은 이들의 의도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서로 세력을 나눠 선을 긋자는 의미였다. 그것을 위한 시위인가 하고 백삼동은 내심 코웃음을 쳤다. 단순 세력 비로 놓고 봐도 한줌에 불과한 무리들이다. 이들의 발악을 위해 자신들이 차지할, 앞으로 영유할 이권을 양보할 마음은 털끝만치도 없었다.


-500명이나 모은 것은 의외다. 숫자만 같아도 한 번 해 볼만할 텐데 2배 이상이니 부담이 가는군. 게다가 상대는 수성 측! 으음....적당히 건드리고 나면 승패는 어찌되었든 토벌의 명분은 되겠지. 문제는 피해를 최소한도로 줄여야한다는 것....단혼도가 골치군!


화해 가능성이 보이지 않음을 알자 백삼동은 덕후를 손짓으로 불렀다. 사전에 들은 바가 있는 덕후는 앞으로 나섰다. 가슴과 배를 쑥 내밀고 방만하게 좌우를 훑어본다.
 
“여기 단혼도 있는가?”


무인들의 눈빛이 형형해졌다. 경외하는 단혼도를 동네 시정잡배 부르듯이 막말하는 태도에 아니꼬움을 느낀 탓이다.


“여기 있소.”


청의를 입고 챙이 좁은 죽립을 깊이 눌러 쓴 호리한 체구의 미소년이 나섰다. 덕후는 반색을 하며 성큼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대가 가고 마땅한 보표를 구할 수 없어서 몸소 왔다네. 비용은 경사로 돌아가면 얼마든지 내줄테니 이런데 있지 말고 같이 돌아가세.”


친한 척 대놓고 손을 덥석 잡는다. 그 무례에 주변인이 눈살을 찌푸릴 때 단혼도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전에 분명히 제 뜻을 밝혔습니다만.”


국어책 읽듯이 딱딱한 음성이다. 어색한 뉘앙스는 덕후의 연기 덕분에 억지로 분노를 참는 듯이 비춰졌다.


“내 입장에서는 너무 황망한 일이네? 사죄의 뜻으로 검을 주었다하나 이걸 내가 휘두를 일이라도 있는가? 다행히 저 백 장로분이 소재를 알려줘서 이렇게 왔다네.”
 
중인들중 몇몇은 백삼동이 단혼도를 떼어놓을 속셈임을 알고 노려보았으나 백삼동은 안중에 없다는 듯 콧등으로 흘려보냈다.


“사정이 있어 어쩔 수 없습니다. 신도 세가에는 저보다 뛰어난 고수가 많으니 초빙하십시오.”
“어허, 자꾸 이렇게 고집 피우면 재미없기야!”


덕후가 성난 듯 언성을 높였다. 지켜보던 백삼동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둘 사이에 갈등이 벌어져 척을 지게 된다면 광협 측에는 불리하게 되리라. 버리는 돌도 나름 쓸모 있구먼, 하는 데 형욱은 고민하는 듯 길게 한숨을 쉬었다.


“정 그렇다면 제가 이곳에 볼 일을 마치고 떠날 때까지 머물러주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공자가 머무실 동안 지루하지 않도록 낙양의 미녀들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낙양의 미녀, 라는 소리에 덕후가 솔깃한 표정이 뜨자 백삼동은 싸늘히 일갈했다.


“공자! 미혹되지 마시오. 공자를 잡아두려는 수작이오.”
“흠흠!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들었네. 그만큼 기다리긴 어렵네.”
“조속히 빨리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글쎄, 그 볼일이라는 것은 경사에 바래다주고 와서 해도 충분하지 않나?”
“그렇다면 할 수 없군요.”


형욱이 승낙하는 듯하여 덕후가 희색을 띄우려는 순간 푹 하고 앞으로 쓰러졌다. 수혈을 짚힌 것이다. 대경한 백삼동이 부르짖었다. 일반인도 아니고 관 줄이 있어 보이는 이한테 백주대낮에 손을 쓰다니.


“이게 무슨 짓이오?”
“여행길에 피곤하신 듯 합니다. 깨어나면 다시 차분히 이야기할 것이니 염려 놓으십시오.”


형욱이 뒤에 있는 시종에게 인도하는 것을 지켜보던 남소락이 빙긋이 웃으며 부연한다.


“염려 놓을 일이 따로 있지! 공자 분은 내가 도로 모셔가겠소!”


노한 백삼동이 발을 구르더니 형욱을 향해 몸을 날리며 소매를 뿌리쳤다. 소매 안에 면도날처럼 얇은 비표가 빛살을 뿌리며 쏘아져가려는 순간, 그와 동시에 형욱의 몸이 앞으로 슬쩍 기운다 싶었더니 섬뜩한 백광이 눈앞을 스쳐가는 듯 했다.


-헉!


백삼동은 호흡을 고를 틈도 없이 던지기를 단념하고 손목을 떨쳐 소매를 풍차처럼 돌렸다. 기를 주입한 소매는 순식간에 빳빳해져 어지간한 찌르기도 튕겨 낼만큼 단단해졌다. 펑! 형욱의 발검이 백삼동의 소매와 격돌하자 가죽북이 터지는 음성이 터져 나왔다. 형욱은 반탄력에 저항하지 않고 두어 발짝 물러나 기파를 해소하였다. 반면 디딜 곳이 없는 백삼동을 허공을 끈 떨어진 연처럼 떠오르다가 신법으로 가까스로 땅바닥에 뒹구는 추태는 면할 수 있었다. 백삼동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격중 부위를 보니 갈기갈기 찢겨져 있던 것이다.


“이 시간 이후부터 단혼도 광협 공자와 같은 편으로 간주하겠소!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하남 땅을 무사히 벗어날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오!”


새파란 젊은이한테 당한 참담함을 숨기지 않은 백삼동은 광협을 노려보았다. 가주 후보로서 예의가 아닌 명백히 적을 보는 듯 살기등등했다.


“최후통첩이오. 이런 어쭙잖은 연극은 그만두시고 신협 가주님의 명을 받드시오.”
“우리가 원하는 건 앞서 말했소.”
“흥, 기어코 전쟁을 하자는 것이지? 당장 내 목을 베어다가 정문 앞에 거시오. 좋은 선전포고가 될 테니!”


백삼동은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듯 버럭 고함쳤다. 만에 하나 억류를 저지하기 위해, 굴강한 기개를 내비친 것이다. 500명의 적을 두고 있음에도 홀로 소리치는 모습은 호걸다운 풍채가 넘치는 듯 했다. 백삼동의 예측대로 백삼동을 구금하여 밖의 인원도 무혈로 처리할 모략을 꾸미던 남소락으론 난처한 상황이었다.


“한 때는 같은 솥을 먹었던 장로에 대한 예우요. 문을 나서면 그 때부터는 적이오. 따로 배웅은 하지 않겠소.”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적에 대한 경외심만 올려놓게 될것이라 판단한 광협은 아무렇지 않은 듯 백삼동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백삼동은 좌중의 군웅들을 한 차례 쓸어보고 천천히 등을 돌리며 나섰다.


백삼동이 나가자 남 소락은 형욱에게 나직이 당부했다.


“적이 야음을 틈타 기습할지도 모르니 방비에 신경써주십시오.”


형욱은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능력만 되면 먼저 치고 나가고 싶지만, 그 정도로 진퇴에 대한 숙련도가 높지 않은 편이다. 형욱이 무사들 중에 백인대장 역을 맡은 조장들을 불러 시속히 지시를 내렸다. 숭무단을 이끌고 왕부의 군문軍門을 다년간 감독한지라 형욱의 지시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도 있게 명을 받게 하는 위엄이 있었다. 광협은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남소락이 다가오자 낮게 물었다.


“시간은 얼마나 벌 수 있을 거 같나?”
“오고, 인근 문파에 동원 령 돌리고 완전히 승리할만한 숫자를 꾸려가지고 오려면 보름 정도 걸리겠지요.”
“숫자는?”
“3천.”


삼천이라는 말에 광협의 얼굴빛이 가라앉았다. 가주 대행을 몇 번 해본 적이 있기 때문에 절반 이상 동원될 숫자에 암담해진 것이다. 자신이 낙양에 정착했을 때 고작 5백만 모았다는 것은 나머지는 팔짱끼고 관망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들은 승세가 어느 한 쪽으로 결정적으로 기울면 득달같이 달라가 붙으리라.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신협 쪽이겠지.


“그래도 유혈 충돌은 피했으니 다행 아닙니까? 보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남소락이 위로했다. 광협이 애써 희망을 찾으려는데 류 위범이 쿵쿵 소리를 내며 달려왔다.


“일 났소.”
“조용히. 맹주 앞이시다.”


숙부가 낮게 질책하자 류 위범은 머리를 북북 긁적였다. 민망과 짜증이 혼합된 반응이다. 류 위범은 숙부의 귓가에 입을 가져갔다. 제 딴에는 소리를 죽인다고 했으나 커서 남소락에게 들릴 정도였다.


“당장 맹주님이랑 같이 망루로 올라가서 확인해보시우.”


셋은 류 위범의 말에 따라 정방 옆에 설치한 망루로 올라갔다. 춘일장 밖을 응시하던 셋은 눈을 부릅떴다. 저 멀리서 먼지구름이 낮게 피어오르더니 새까만 개미 같은 것이 지평선을 덮을 듯 스멀스멀 접근해오고 있었다. 류 원종이 안력을 최대한 돋우자 선두에는 가주기를 든 신협과 모 경진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것이 들어왔다. 류 원종은 자신이 전한 바를 남소락과 광협에게 알려주었다.


“우리가 당했군요.”


남 소락은 어깨를 축 늘어뜨리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애당초 200 명의 무사들은 미끼였던 것이다. 장례 기간 동안 자신들이 5백을 모았다면, 상대는 3천을 준비해 즉시 출격할 태세를 마쳤다. 백삼동 일행이 온갖 주목을 받아가며 춘일장으로 향하는 동안, 신협과 모 경진은 3천의 무사들을 분산 이동 시켜 춘일장 근처로 집결토록 한 것이다. 또한 200 무사들과 충돌에 대비하겠답시고 외딴 곳으로 옮긴 것까지 내다본 셈이라면, 장계취계 당한 것이리라. 순식간에 주변에 원군 청할 일 없이 고립된 셈이었으니까.


광협이 물었다.


“탈출해야하는가?”
“사냥감이 될 뿐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나?”


남 소락은 적을 망연히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일단 사태가 불리하니 농성을 해서 시일을 끌어야겠습니다. 다행히 식량과 피복, 금창약등은 충분히 비축되어 있습니다. 500명이면 아끼면 두 달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여긴 회견 장소로 잠시 이용할 뿐인데 언제 그 정도나 비축했나?”
“하하, 노파심에 그냥 준비해둔 거였지요.”


류 원종의 의문에 남 소락은 적당히 둘러말했다.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물자를 비축해야한다고 주장한 것은 세휘였다. 그녀는 과하다고 할 만큼 주장했는데 남소락은 형욱의 낯을 보아 반쯤 들어주었다. 혹시 그녀는 이 사태를 예견했을지도 모른다. 찾아가보면 대책이 따로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점이 의기소침한 남소락에게 희망을 불어주었다.


“혹시 이 장원에 비밀통로가 있습니까?”
“....하나 파놓은 것은 있네만.”


뜸을 들이며 대답한 류원종에게 남소락은 비밀통로에 특정 장치 여부를 묻고는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리 안을 팽팽히 돌리는 듯 미간을 좁히다가 즉시 환한 미소를 짓자 물었다.


“혹시 금선탈각을 염두에 두고 있는 건가?”
“아 예, 금선탈각이라면 금선탈각이겠네요. 전령 몇 분만 보낼 테니까요. 남은 분은 여기서 원군이 올 때까지 적을 잡아둬야합니다. 이야~ 그러고보니 삼천을 여기서 철저히 박살내면 위기가 기회가 되는 셈입니다.”


남 소락의 낙관에 류 원종은 불안을 지우지 못했다.


“이해하기 어렵군. 어디서 지원군을 불러오겠다는 건가? 여기 500 명도 낙양에서 나름 정예로 추려온 것인데 다시 모아봐야 오합지졸뿐일 걸세.”
“그걸 지금부터 알아볼 참입니다.”


남 소락은 자신만만하게 미소를 지었다. 우롱한다고 버럭 소리를 지를만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남소락의 묘수를 지켜온지라 호기심 먼저 들었다.


“전령을 당장 서둘러 보내는 게 좋지 않겠나?”
“아뇨. 포위 된 다음에....날이 완전히 저물고 나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상대방이 수뇌가 비밀통로로 빠져나갈지도 모른다고 잔뜩 경계할 때가 적기죠. 우선 두 분은 아군이 동요하지 않도록 다독여 주십시오. 저는 잠깐 만나 볼 사람이 있습니다.”


남 소락의 요청에 광협과 원종은 이견 없이 받아주었다. 그가 당부한대로 해서 크게 실패한 적은 없었다. 루에서 내려오자 남소락은 재빨리 세휘를 찾아갔다. 세휘는 별실에 있었는데 덕후를 깨워놓고 무어라고 설득하는 듯 했다. 어지간히도 신경 쓴다 여기면서 남소락은 헛기침을 하였다. 세휘가 손을 움직이자 수혈을 짚었는지 덕후가 풀썩 쓰러졌다.


“소저의 혜안에 이 남 모는 그저 경탄할 뿐입니다.”
“과찬 이에요.”


입을 살짝 가리며 오호호, 웃는다. 평소라면 의뭉을 떨며 한 차례 농을 했겠지만 사태가 촌각을 다투는지라 남 가락은 깊은 한숨을 쉬고는 도움을 청했다. 


“곧 있으면 사방이 포위될 겁니다. 우리가 살아날 길은 밖에 지원군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어머, 숨겨준 비장의 수라도 있으신가요?”
“제 비장의 수는 소저이십니다.”


솔직하다고 해야 할지 뻔뻔하다 할지 세휘는 말문이 막혔다.


“...있기는 해요. 그대의 주군이 달가워할지 의문이지만.”
“백 번의 굴욕은 한 번의 죽음만도 못합니다.”
“좋아요. 낙양에 마시가 열린 다는 건 아시나요?”
“압니다...아, 설마?”
“낙양처럼 규모가 큰 곳이라면 가중에 매우 중요한 인물이 관리인으로 온답니다. 그리고 가주님의 혈통도 그쪽과 연이 닿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혁련 세가를 말함이군요.”


서안에서 천산북로까지 영역을 차지한 이들은 마왕馬王 혁련기록 이란 효웅을 중심으로 북원의 잔당들과 마적들을 통합하여 세가를 이루었다. 절정고수가 드물었으나 기병전술에는 당할 자가 없었다. 춘일장의 지형을 살펴보면 3천명이 장원 주변으로 다 오르지는 못했다. 태반이 밑의 구릉과 평지에 머물러 있어야한다. 이때 기병이 강습한다면 포위망은 순식간에 풀고 농성군과 협공할 수 있으리라.


“주군은 제가 어떤 대가를 치루든 설득토록 하겠습니다. 성사시킬 수 있습니까?”
“과거에 인연이 좀 있긴 해요. 솔직히 그대가 준비한 게 있으면 이 패는 꺼내진 않았어요.”


세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나 남 소락은 고개를 저었다.


“무리수이긴 합니다만, 혁련 세가와 동맹은 천하문 다음으로 고려하고 있던 사안입니다.”


원래 예상대로라면 개미가 밑둥을 갉아가듯 신협 공자 휘하 중소문파들에게 금품을 뿌려가며 이간을 준비하고 동맹 세력을 끌어들여 열세를 만회한다는 안이었다. 영호 세가는 개봉에 문상을 갔다하니, 손잡을 만한 동맹은 천하문과 혁련 세가 아니면 녹수맹인데, 천하문은 지리상 반대편에 있고하여 남 소락은 혈연이 있는 혁련 세가와도 무게를 두었다. 피의 유대에 낙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연독고는 보다는 나았다. 다른 웅주들과 달리 야심의 크기가 달랐고 천운이 외면하지만 않았으면 천하통일을 이루었을 뻔한 대간웅이었다. 그보단 혁련 세가가 공생의 가능성이 높았다. 대가로 내놓을 것이 많겠지만, 패배하여 역도로 목만 달랑 장대 위에 내걸리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것도 무사히 빠져나가고 난 다음의 이야기죠. 듣자하니 밖이 철통 같이 포위되었다던데.”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습니다. 오늘 밤 적도들에게 등하불명의 이치를 똑똑히 가르쳐주려고 합니다.”


남소락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소저는 행장을 간소히 하여 탈출할 준비를 해주십시오. 극비를 요하는 일이니 주변에는 알리지 마시고요.”
“물론이죠. 참, 한 사람 더 데려가도 되나요?”


세휘는 기절한 덕후를 가리켰다. 남 소락은 난처한 기색이었다.


“짐을 데려가면 제약이 심할 텐데요.”
“호호, 묶어서 데려가려는 건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자발적으로. 제가 설득할 자신이 있어요. 아까 차도살인 중이라고 홀리는 중이었거든요. 그리고 이 사람은 관줄이 있으니 여기 있는 것보다는 낙양에 있는게 여러모로 도움이 될거에요.”


세휘는 여우처럼 웃었다. 남소락은 떨떠름한 기분이었으나 웃는 얼굴로 고개를 끄떡였다. 세휘에게 용무를 마친 남 가락은 정방으로 돌아가 주군을 설득했다. 처음에는 질겁하던 광협도 측근의 끈질긴 언변에 넘어갔다. 결국 서신 한통을 불러주는 데러 써주고 맹주 인장과 함께 수결을 맺었다. 그것을 소중히 갈무리한 남 소락은 탈출할 전령 명단을 알렸다.


전령은 단 셋이었다. 세휘, 덕후, 그리고 원종.


“나는 왜 가야하나?”
“낙양의 군심을 다독여주십시오. 오합지졸이라 해도 아쉬운 판이니 하나로 이끌어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일부러 내게 살 길을 틔워주려는 건가?”


류원종이 찜찜해하자 남 소락은 씩 웃었다.


“낙양의 제문파諸門派 들 사이에 기둥 역할을 하시는 류 원종님이 아니면 누가 적임자입니까? 저요? 하급 무사인 제가 무슨 수로 지지를 이끌어냅니까? 광협님이요? 가시면 여기 남은 500 무사에게 사투死鬪를 이끌어낼 수 없습니다. 단혼도는 어디까지나 외인外人. 무용에 대한 믿음이 생사의 믿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카님은 문주들을 설득하느니 여기서 한바탕 싸우는 것을 마음에 들어 하실 겁니다.”


류 원종은 남 소락의 의견을 수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 신협 측은 춘일장 일대를 포위하는 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백삼동과 목숭유는 신협과 모 경진과 대면 중이었다.


“오신다는 기별은 받지 못했는데....”
“출기불의. 가주님도 출발하기 전까진  모르고 계셨소.”


모 경진은 넉넉한 웃음을 지었다. 


“반동분자들을 한 곳에 몰아놓을 수 있으니, 물 샐 틈도 없이 가둬두고 추이를 지켜봅시다. 일 주일도 못가 옥쇄를 하던가, 백기를 들 던가 할 것이오.”


사실은 한 달은 버틸만한 식량과 상비약이 있다는 점을 안다면 이렇게 여유로운 발언을 하지 못했지만 거기까지는 꿈에도 몰랐다. 기루에 손주들을 이끌고 노세노세~ 하고 있던 덕후가 내정을 얼마간 파악하고 세휘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준비를 하게끔 했을 줄은.


그러나 모 경진은 자만하지 않았다.


“적도들에게 비밀 통로가 한 둘은 있을 법하오. 500명이 동시에 이동하는 것은 무리지만 혹시라도 야음을 틈타 달아나는 것 정도는 가능하깄지. 백 장로 휘하에 추종에 능한 식솔들이 많으니 산길을 면밀히 감시해주시오.”


백삼동은 군말 없이 모 장로의 말에 따랐다. 그 뒤 모 경진은 장로들을 하나 둘 불러 척척 포위 지시를 내리고 상황을 점검했다. 신협은 문득 모 경진에게 인사하는 장로들과 중진들의 모습에서 문득 자신이 밀려나간 듯한 소외감을 느꼈다. 그 의문을 떨치기라도 하듯 모 경진에게 명했다.


“먼길을 급히 달려와 지쳤네. 적도들이 이 점을 노릴 수 있으니 야습에 대비해야지 않겠나?”
“가주님의 혜안이 거기까지 미쳤다니 노부는 송구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당장 주의토록 하겠습니다.”


모 경진은 감탄했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려 보이자 신협은 방금의 부의 감정을 착각이라고 생각했다. 모 경진이 속으로 재롱거리라고 비웃고 있음을 몰랐다.


한편, 땅에서 솟은 듯 나타난 3천에 춘일장의 무사들은 동요했다. 그러나 광협이 나서 만에 하나를 대비하여 식량과 물자를 한 달 이상 버틸 수 있게 준비했고, 원군도 그에 맞춰 오도록 손을 썼다는 말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들을 굴렸던 형욱이 춘일장에서 방어할 시 이점을 하나 둘 설명하며 맡은 배역을 주지시키고, 무사들 사이에 큰 형 노릇하던 류 위범이 어떻게든 한 달은 버틸 수 있다고 분발시키자 당장 사기 저하는 막았다.
 
서산 너머로 해가 지며 찾아오는 보랏빛 어둠 속에서 양편의 무사들은 개전開戰의 시기를 저마다 추측하며 긴장감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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