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厚の野望 61
참패를 당한 2천의 기습대는 별다른 추가 피해 없이 본진에 합류해올 수 있었다. 하루거리라는 점, 백삼동과 목숭유가 앞뒤로 필사적으로 지휘선을 지켰다는 점이 컸다. 그러나 그만한 패주敗走에는 낙오병이 생기기 마련이었고, 그들은 양옥의 수하들에게 유유히 낚여 저승사자와 같은 류 원종의 문초에 본진의 사정을 털어놓아야만 했다.
아침밥을 먹고 개선하는 모습을 고대하던 신협과 모 경진은 깜짝 놀랐다. 모 경진은 막 공격 준비를 하던 관일성에게 패군의 수습을 맡기고, 기습하러 갔던 장로를 본진으로 서둘러 불렀다. 붕대로 상처 부위를 칭칭 감은 목숭유와 낭패한 몰골인 백삼동이 엎드려 사죄를 청했다.
“무슨 일인지 말해보시오. 왜 장야직 장로는 오지 않는 게요. 적이 우리의 작전을 간파한 것이오?”
“그건 아닙니다...”
그나마 기력이 남아있고, 조리가 있는 편인 백삼동이 자신이 본 바를 털어놓았다. 신협과 모 경진은 장야직이 죽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다 듣고 난 신협이 땅을 굴렀다.
“혁련 세가에서 참전했을 줄이야!”
“이상하군요. 낙양의 세작들의 보고로는 혁련 세가에 움직임이 없다고 하던데....”
모 경진이 고개를 기우뚱했다. 신협이 와락 성질을 냈다.
“하면 그 놈들은 하늘에서 떨어졌습니까? 광협 놈의 핏줄을 생각하면 그 정도는 당연히 고려했어야죠!”
내심 경시하던 꼭두각시에게 질타를 당하자 모 경진은 불쾌감을 느끼면서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채 씁쓸한 표정으로 사죄했다.
“....그건 노부의 불찰입니다. 한데 인원은 몇이나 되던가?”
“...천은 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백삼동은 자신 없는 투로 말했다. 기습 받는 공포로 숫자를 부풀려 보기 마련이라 신중히 전할 필요가 있었다.
“천이나 넘는 숫자라면 세작이 간파하지 못할 리가 없을 것이오. 아마....3~5백 정도는 되겠지.”
“어떻게 그것을 자신하시오?”
“낙양 마시 규모를 생각해서 하는 말입니다. 본가에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으니 남은 답은 교외의 마시에서 급작스럽게 움직였을 터. 대대로 혁련 가의 직계 혈족이 감당한다하니....어느 정도 독단도 용인 될 터이고....그렇다면 숫자는 나오지요.”
통찰을 발휘한 모 경진은 피아의 전력을 냉철히 분석해서 신협에게 들려주었다. 무작정 낙관을 심어주기 보다는 객관적으로 확신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합류한다 해도 수적 우위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원정을 온데다가 장로 한 분이 전사하신 터라 자칫 사기가 떨어질 것 이 우려스럽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언제 꾸짖었느냐는 듯 매달리는 신협. 기복을 제어하지 못하는 젊음의 단면이지만, 모 경진은 이를 일깨우기보다는 주도권을 잡는데 만족했다.
“우선은....말로 시간을 끌어야지요. 기각지세를 이루었기 때문에 공성은 무리입니다. 다만 유인해내어 단번에 머리를 제압할 수 는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력을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임시 가주님께서 해주셨으면 합니다.”
“음, 외부 세력을 끌어들인 파렴치한 놈들에게 말로 해도 듣겠소?”
“그러니까 더욱 꾸짖을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왜 남의 집안일에 혁련 가가 끼어드느냐...참전의 조건으로 본가의 자산에 얼마를 떼어주기로 작정했느냐...하고 말이지요. 그러면 필시 동요할 것입니다.”
모 경진은 간하면서 별로 효과가 없을 거라는 짐작을 하였다. 신도 가문이 혁련 가와 대대로 싸워온 것은 맞지만 휴전 후, 낙양을 교역장으로 지정한 다음에는 칼날 같은 적의가 많이 수그러진 상태이다. 혁련 가도 중원으로 가는 중요한 교역에 야료를 부릴 수 없는 터라 로비 및 인맥 관리에 많은 환심성 투자를 하였고 인척으로 맺어진 곳도 있었다. 오히려 얼굴을 마주하지 않는 개봉 쪽에서 혁련 가에 적의를 강하게 가지고 있다. 적의 동요는 바라지 않아도 우군에게 적의를 고취 시킬 수는 있을 것이다. 모 경진이 신협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그것이었다. 꼭두각시는 제 본질을 알 필요도 없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
“알겠소. 내 그리 하리다. 공성을 할 수 없다면 어찌해야 광협을 잡을 수 있겠소?”
“우선 성동격서로 꾀어내 반격을 가하면 됩니다.”
“여기 근방은 허허벌판 일 텐데, 복병을 쓸 곳이 있소?”
“임시 가주님이 지적하신 대로, 우리의 목적은 토벌이 아니라 광협만 잡으면 되는 문제입니다. 여태 열흘 가까이 저 장원을 함락하지 못한 연유는, 고슴도치처럼 틀어박혀있기 때문이 아닙니까? 승세를 탄다는 것을 알면 필시 쫓아 나올 터, 고개를 내밀 때 콱! 잡아버리면 됩니다. 광협만 잡으면 대세는 우리에게 있으니 잔존세력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입니다.”
대가리를 누르는 듯 엄지와 검지를 딱 마주친다. 자신감 넘치는 행동과 달리 모 경진의 표정은 착 가라앉았다. 신협이 연유를 묻자 모 경진은 안쓰럽다는 듯 털어놓는 시늉을 한다.
“부득불 혈전을 각오하셔야 합니다. 최대한 피를 흘리지 않고 끝내려고 했는데...”
“대의멸친이라고 했소. 수석장로는 너무 근심하지 마시오.”
신협은 속내도 모르고 위로했다. 회의가 끝난 후, 신협 측은 다음과 같이 진용을 바꿨다. 관일성이 500 무사들의 지휘를 맡으며 서쪽에서 오는 원군을 가장 앞서 상대하기로 했다. 그의 문하들이 대부분 창법을 쓰는데다가 공성을 맡은 터라 방패수가 넉넉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 1천을 좌우로 나누어 백삼동과 모 경진이 뒤를 받치기로 했고, 춘일장으로 요격은 500을 두고 부상당한 목숭유와 신협이 맡기로 했다.
한편, 망루에서 진형 변화를 지켜본 광협 측의 얼굴은 환해졌다. 남 가락이 원군이 당도한 것 같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식수와 식량은 풍족하지만, 인원수에 슬슬 한계를 보이기 때문이었다. 요 열흘 남짓한 시간 동안 100명이 상했고, 빠진 만큼 교대로 싸워야했기 때문에 피로도가 가속되었던 것이다.
“원군이 오면 효시로 신호를 주고받기로 했으니 동시에 치도록 합시다. 물론, 머리는 우리가 열세입니다만, 기세를 탔을 때 몰아치지 않으면 타계하기 어려울 테니까요. 우선 최소 인원이 경계를 서는 동안 나머지는 운기조식을 하시고, 배를 든든히 채우십시오.”
후군 겸 경계로 남겨 둔 신협군의 기치를 보며 광협이 중얼거리듯 물었다. 그들은 춘일장으로부터 내려오는 길목을 틀어막고 있었다.
“신협을 사로 잡을 순 없는 건가?”
“사로잡으면 금상첨화겠습니다만, 그건 적들도 맹주님을 노리고 있을 터이니, 욕심을 낼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우리가 적은 수로 격파해냈다는 것만 하남에 알릴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대승입니다. 그 뒤 공작으로 세를 불린 다음, 적이 소수가 되었을 때 대병으로 격파하면 됩니다.”
“음....하지만 이 싸움을 어서 끝내고 싶구나. 네가 판을 잘 짠다면 선봉이라도 서겠다.”
광협의 어조에는 짙은 피곤함이 묻어있었다. 농성으로 지긋한 심정이었다. 신협처럼 후위에서 관망한 것이 아니라, 일선의 무사들을 독려하고 함께 구른 덕분에 먼지와 땀투성이다. 평소 과묵했지만 농성을 하면서 평생 해왔던 말보다 훨씬 많은 말을 했다. 독려하고, 꾸짖고, 위로하고, 격렬한 전장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그만큼 의사소통을 많이 해왔던 것이다. 남 가락의 웃는 얼굴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 솔선수범도 이럴 때는 독이 된 것이다. 이 때 단혼도가 쉰 듯 걸걸한 음성으로 나섰다.
“선봉은 제가 맡겠습니다.”
“단혼도께서 그리 해주신다면 감읍할 따름입니다. 류 위범님은 단혼도께서 뒤를 잡히지 않도록 지원해주십시오.”
“걱정 말아!”
팔뚝의 피딱지를 확 뜯어내던 류 위범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그러나 광협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최후의 일전인데 빈 집을 지키라는 것인가? 남 군사는 우리가 원군과 함께 돌아올 때 씻을 물과 성찬을 준비해두게. 나는 이 사람들과 함께 살고 같이 죽겠네.”
“맹주님! 상장이 선두를 다투는 법은 없습니다.”
“어차피 이 전투에 지면 내겐 미래란 없네. 내 비록 단혼도 만큼은 아니지만, 고수 소리는 들을만하지 않는가? 그리고 요새 잡힐 듯 말 듯한 심득이 있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러네.”
남 가락의 안색이 신중해졌다. 심득, 광협만한 고수가 그런 소리를 입에 담을 정도면, 절정고수가 될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만약 그가 하남의 맹주가 되었을 때 절정고수라면, 천협자리를 충분히 이어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단혼도를 힐끗 보자 단혼도는 승낙하라는 듯 미미하게 고개를 끄떡였다. 그 역시 실전에서 절정의 벽에 올랐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무리하란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어떻게든 목숨만은 붙여주십시오. 광협님의 목이 떨어지면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니까요.”
남가락은 우스꽝스럽게 자기 목을 치는 시늉을 했고, 광협은 화난 듯 미소 짓는 듯, 애매한 표정으로 호탕하게 웃었다. 결국 300의 특공조를 동원하되, 3조로 나눠 선두는 단혼도, 중진은 류위범, 마지막은 광협이 맡기로 했다.
해가 중천에서 서쪽으로 조금 기울 무렵에 원군이 당도했다. 원군이 당도하자 춘일장의 농성군 사이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반면 신협군은 약간 웅성임이 전부였다. 원군 당도를 가정에 두고 진을 짰기 때문이었다.
“사자를 보내라.”
신협은 반나절동안 고안한 편지를 사자에게 들려 보내주었다. 원군 쪽에 외세를 끌어들인 것에 대한 꾸짖음과 함께 항복을 내용이었다. 돌아온 답은 찢긴 종이 쪼가리였다. 답장 정도는 기대했던 신협은 읽지도 않고 찢었다는 사자의 말에 크게 성을 냈다. 장로들을 불러 공격을 명하는 순간, 3마장 정도 떨어져있던 원군 쪽에서 먼저 움직였다.
3백 기마가 3대로 나뉘어 달려온 것이다. 관 일성은 소리 질렀다.
“방패수 엄호하라! 창수 한 보 뒤로. 기마대진을 취한다!”
관 일성의 호령에 방패수들이 공성용으로 썼던 전신을 가릴 세치 두께의 목재 방패를 끙, 하는 기합과 함께 내밀었고, 창수들은 미리 파둔 홈으로 창을 비스듬히 세웠다. 첫 번째 공격은 기사騎射에 대비한 것이고 두 번째 공격은 돌진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우회 기동하기에는 백삼동과
-적이라고 화살을 무한정 챙겨오지는 않았을 것이오. 떨어지면 돌진 밖에 없는데, 방패와 창의 숲에 돌진하는 것은 무모한 짓. 그 틈을 노리면 승산이 있소.
관일성은 모 경진의 말을 떠올리며 결사의 각오를 다졌다. 관일성의 다짐을 실험하 듯 양옥이 기마를 3대로 나눠 투입했다. 기동력을 살린 치고 빠지기 전술이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화살은 날아오지 않았다.
-투투퉁! 퍼퍽!
우박처럼, 그보다 치명적인 위력을 담고 날아오는 것은 투석投石이었다. 오는 길에 채취한 것으로 1천 명이 넉넉잡아 모으니 수 만개를 모았고, 임시로 만든 행낭에 차니 따로 화살이 필요 없었다. 투구 같은 것을 쓰지 않았기에 재수 없게 머리에 맞은 이들은 즉사했다. 쓰러진 이들은 급히 후방으로 치우면서 무사들은 방패에 의지하여 투석을 견뎌냈다. 투석이란 변수는 미처 계산하지 못했지만 방패수를 내세운 것은 적중에서 양옥이 의도했던 혼란을 초래하지는 못했다.
우회 기동을 하려해도 백삼동과 모진성이 이끄는 군세가 언제든지 포위할 준비를 마치고 있을 것이다. 일반 병사라면 몰라도 이들은 집단전술을 체득한 무림인이었다. 순간적 선회라면 기병보다 우위였다.
열 번 치고 빠지기 끝에 양옥은 기동을 멈췄다. 돌에는 여유가 있지만 말이 지쳐서는 정작 중요할 때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양옥이 뒤를 보며 손을 들자, 효시가 박자를 맞추듯 세 번 하늘로 날아올랐다.
뒤에 지켜만 보고 있던 류 원종이 군을 전진시켰다. 7백의 군세가 쪼개졌다. 포자가 터지 듯 원진을 형성한 채 나아갔다. 자칫 가루가 되기 쉬운 진형이었지만, 이들의 역할은 송진처럼 적 진영을 견제하는 데 있었다. 그 예로 적의 진형에 섣불리 접근하지 않았고, 소규모로 얼씬거렸다.
대오를 지키고 있던 무사 하나가 적 편에서 도발하듯 날리는 암기에 참다못해 나섰다. 옆에 같이 수모를 겪던 동료 무사도 거들기 위해 나섰고, 순식간에 수 십 여명이 적의 원진 하나를 거의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 순간 양옥의 기마 1대가 득달같이 달려와 투석과 함께 창을 찔러갔다. 구슬픈 비명과 절규가 울리며 이탈하던 무사들은 순식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움직이지 마라! 진형을 흩트리지 마라!”
덕분에 관일청 이하 지휘 조장들은 적의 의도를 이해했다. 기습전에 의외로 재미를 본 것을 적극 살리고 있는 것이다. 아군이 군도群島처럼 분산되어 있는 동안, 기마대들은 비선飛船이 되어 적을 유린하는 것이다. 기마대를 무시하고 한 번에 몰이치자니 적군 원진이 너무 넓게 퍼져있고, 한 떼 씩 잡아가자니 기마대가 다른 곳을 쿡쿡 찌른다.
“차라리 산개해서 백병전을 유도하는 어떨까 싶습니다.”
“안 돼! 그렇게 되면 후위가 당할 때 지원할 방법이 없다!”
관일창의 전언에 모 경진은 반대했다. 전황이 이런 식으로 흐르자 공격하려는 무사들을 제어하느라 애 먹었다. 그렇게 양쪽이 발이 묶이는 순간, 춘일장의 정문이 열리면서 300 무사들이 뛰어 내려왔다. 춘일장에서 칼을 갈고 있던 특공조 들이었다. 내리막길을 달리던 기세로 임시로 설치한 장애물을 중병으로 파괴하거나 경신으로 뛰어넘었다. 원래 견제할 방패수와 창수들을 기병 견제용으로 돌렸기 때문에 일어난 파탄이었다.
후군 5백과 특공조 선두가 막 격돌하는 순간, 그쪽에서 포향이 터졌다. 이를 확인한 모진성이 외쳤다.
“물러나라!”
그와 함께 좌우에 있던 무사들의 후미가 차례대로 등을 돌리더니 급속도로 이탈하기 시작했다. 목표는 3백의 특공조, 정확히는 그 안에 있을 광협의 목이다. 관일청이 이끄는 선두 500은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전에 약조 되었는지 관일청은 원진으로 돌돌 말아 사방을 경계했다.
“이런, 쫓아라!”
양옥이 외쳤다. 그러나 모 경진이 기마대를 변수에 안 넣을 리가 없다. 반전한 좌우군의 끄트머리에 있던 일단의 무사들이 삼삼오오 조를 이루며 열을 넓게 펼치더니 몸에 감고 있던 밧줄을 상대편에게 던졌다. 원래 담 넘기 용으로 준비해온 밧줄들이었으나 이 때는 순식간에 인간 그물망이 세워진 것이다. 이들은 백삼동의 지휘 하에 기병들에게 달려갔다. 기동력이 좋아도 밧줄로 얽매이면 낭패이다. 가급적 정면을 피하며 옆으로 날리거나 말의 하체를 집중적으로 노리니 멋모르고 달려들던 기마의 발이 꼬여 무참하게 넘어지거나 기수가 밧줄에 휘감겨 말안장에서 휙 떠 낙마했다. 이렇게 무참하게 당한 선두를 밧줄을 들지 않는 무사들이 칼로 찍어내듯 학살했다.
혁련 세가의 기마전술에 신도 세가가 고안해낸 무림인만이 시현 가능한 구속법이었다. 류 원종이 관일청을 견제하고 양옥이 백삼동의 수법에 하마하여 뚫는 동안 모 경진이 이끄는 500백 무사들은 특공조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무시해라! 오로지 광협의 목만 노려라!”
평소의 온후함은 어딘가로 팽개치고 모 경진이 야차처럼 소리 높여 외쳤다. 그가 신주단지나 마찬가지인 신협을 굳이 후군에 둔 것도 광협을 꾀어내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대출혈을 감수하고 각 부대를 먹이로 주는 작전을 구사한 것이다.
한편, 선두에서 적 셋을 참격으로 상체와 하체를 분리해주던 형욱은 갑자기 고개를 옆으로 휙 돌렸다. 원해서가 아니라 고수의 기세가 잡아당긴 것이다. 형욱이 주의를 돌린 틈을 타 검수 하나가 전신을 던지다시피 찌르기를 한다.
“이야아아!”
형욱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예도로 반원을 그리듯히 휘둘렀다. 그리고 검수는 검을 든 손이 팔꿈치부터 깨끗하게 분리되고 말았다.
“아아아악! 컥!”
고통으로 비명을 지르던 검수는 형욱의 뒤를 따른 특공조가 도로 목을 썰어가자, 자신이 펼쳤던 필살의 결과를 억울한 눈빛으로 받아들였다. 상대가 수석장로임을 확인한 형욱은 막 따라 붙은 류 위범과 광협에게 진기를 실어 고했다.
“저 자는 내가 상대하겠소. 그 사이 반도의 목을 취하시오.”
한다면 하겠지만, 그래도 혈족인 신협을 직접 베기 싫었던 마음이 일말이라도 있던 형욱에게 모 경진은 좋은 핑계거리였다. 게다가 저 수석장로라는 자는 덕후의 복안에 방해가 된다고 하지 않았던가. 형욱이 대답을 듣지 않고 몸을 날리자 류위범이 급히 측근에게 지시를 내렸다.
“2조는 단혼도의 뒤를 받친다! 나는 1조로 갈테니 3조더러 1조의 뒤를 따르라 해!”
류위범은 성난 곰처럼 포효하며 형욱의 빈자리를 신속히 메웠다. 모처럼 기세를 죽이지 않으려면 전진이 답이다. 그리고 그에게 광협은 보호해야할 주군이 아니라 함께 싸울 수 있는 믿음직한 상관이었다.
“비켜라!”
반 마장까지 접근한 모 경진은 기습조에서 단혼도가 일각을 이끌고 나오는 걸 보자 자신을 상대하기 위함을 알았다. 촉각을 다투는 만큼 느긋하게 따돌리거나 차륜전을 펼칠 때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단혼도가 자기 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둘은 눈 깜짝할 사이에 서로 마주했다. 모경진이 휘두른 검풍이 노도와 같이 단혼도를 휩쓸어갔다. 형욱 역시 쾌검을 날려 검로를 꺾을 듯이 휘둘렀다. 직선적인 형욱의 도세에 모 경진은 비웃었다.
“유능제강이라고 했거늘...”
모경진의 검이 갑자기 느려졌다. 검풍이 보다 면면綿綿하게 조여져 오며 형욱의 직선적 도세를 차단해갔다. 형욱의 안색이 굳어지는 듯 하다가 갑자기 도세가 용틀임처럼 흉폭 해지더니 도강을 구현했다. 모 경진의 검폭이 끊어질 듯 했으나 의외의 결과를 맞이했다.
-카카카캉! 펑 퍼엉!
쇠와 화약이 동시다발적으로 부딪치면 이런 굉음이 날까? 놀랍게도 모 경진 역시 검강을 구사한 것이다. 벽력음이 가시기 전에 형욱은 입가에 가는 핏줄기를 흘리며 뒤로 물러났다. 모 경진은 조롱했다.
“강기는 그대만 쓸 줄 아는 게 아니라네. 강호에서 서 푼의 실력은 늘 감추라고 하지 않았던가?”
말을 마치기 전에 형욱이 튕겨나간 기세만큼 다시 쏘아져갔다. 도신합일, 극쾌의 찌르기다.
“소용없네. 그대의 검이 아무리 빠르고 강할지라도, 내 검식은 물과 같이 순환하여 태극을 이루나니.....시간이 나면 도덕경 정도는 읽어보게나.”
모 경진은 암송하듯 흥얼거리며 아까와 같은 검폭을 펼쳤다. 형욱은 면면한 검식을 좀처럼 뚫어가질 못했다. 입술을 짖물듯이 다물다가 형욱은 합! 하는 신음성 기합과 함께 도에 집중했다. 뚫지 못하면 예기를 키우면 된다.
형욱이 일으킨 도강이 보다 예리해지며 도신을 타고 회전하듯 둘러지기 시작했다. 평소에 씌우는 게 아니라 순환까지 하니 진기의 부담이 두 배, 세 배로 폭증했다. 기혈이 뚫으면서도 형욱은 멈추지 않았다.
그녀가 절기로 삼은 동영의 연혼쇄옥류는 극단을 추구하는 무공이었다. 중원의 무학처럼 다양한 기교는 없지만 그만큼 간결하고 빨랐다. 문자 그대로 혼을 불태우고, 옥을 부수는 것과 같은 혼신의 살검殺劍이다. 상대가 손을 쓰기 전에 먼저 치고, 상대가 손을 썼다하면 상대보다 먼저 공격 궤도와 빈틈을 파악, 최단거리로 친다. 이것이 요체였다.
-쾅! 쾅! 쾅!
모 경진의 수세와 형욱의 공세가 눈 깜짝할 사이에 수 차 격돌했다. 형욱은 입 외에도 코에도 피를 흘리고 있고, 눈은 혈안이 되어있다. 반면 모 경진은 약간 창백했을 뿐, 변함 없었다.
“시간이 없으니 이만 끝을 내주겠네. 자넨 잘 싸웠어.”
면면했던 검식이 눈발처럼 분분히 형욱을 향해 흩날리기 시작했다. 낙화비설落花飛雪. 겨울의 포근한 풍경과 같았으나 하나하나 날리는 눈발의 실체는 죽음이었다. 눈이 부셔 형욱은 눈을 감았다. 죄송합니.....이라고 누군지 모를 이에게 중얼거리다가 감전된 듯 움찔하며 반사적으로 떴다. 사과한다고 순순히 받아줄 인간이 아니다.
검강은 바닥을 보이고 검기만 가닥가닥 이어지고 있다. 억지로 이어가는 것을 버렸다. 눈 앞에 죽음이 당장 다가오고 있는데 억지로 막아낼 생각은 버렸다. 그저, 살아남고 싶었다. 삶의 환희를 느꼈던 성교의 순간....을 다시 느껴보고 싶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얼굴이라도 다시 한 번 보고 싶었다. 주마등처럼 묵인했던 감정이 뇌리를 관통했다. 그 신호는 뇌의 피질뿐만 아니라 척수를 타고, 신경계를 달려갔다. 혼과 신이 교감하는 순간 형욱은 기이한 파장을 느꼈다.
-어디...?
단전에는 콩알만한 진기만 남아있다. 그러나 형욱은 망설이지 않고 그것을 끌어올렸다. 이전이 퍼내듯이 의식적이라면, 지금은 흐름에 따라 물길이 나아가는 것처럼 돌렸다. 시작은 미미했으되, 끝은 창룡과 같이 진기가 순환할수록, 사지백해를 돌 때마다 범람했다. 억지로 형성한 검강 때문에 혈맥이 상할까 본능적으로 감싸던 진기들이 아낌없이 합류하기 시작했다. 유지를 위한 과도한 집중력으로 경직 되어있던 신경과 근육이 최적으로 완화되었다.
형욱의 본능은 이 범람이 육신과 사고라는 둑을 함께 무너뜨리기를 원했다. 전인미답이지만 이대로 나아간다면 초절정의 벽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천주인 우희선에 버금가는 존재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살아남는 것이 우선이다. 형욱은 아쉬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 물꼬를 도신 쪽으로 틀었다. 화려하진 않았다. 대신 비산하던 도강에 충돌하던 내력은 더 이상 막히거나 흩어지지 않고, 그대로 모 경진 쪽으로 전류처럼 흘러들었다. 모 경진은 폐부 깊숙이, 오장육부를 둔기로 때리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커헉?!”
최초로 여유를 담은 표정이 사라지고, 각혈을 하였다. 형욱의 몸은 유령처럼 미끄러지더니, 휘청거리는 모 경진에게 진흙 덩어리에 꽂듯이 검을 날렸다.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에 모 경진은 눈을 부릅뜰 수 밖에 없었다. 다급한 마음으로 검을 회수하여 막아야하건만 왜 이리 느리단 말인가. 생사의 혈전을 밥먹 듯이 거쳐 왔던 형욱과 달리 평화에 물들고 노쇠한 그의 몸은 생각만큼 쉽게 따라주지 않았다. 심장 언저리가 따끔하다고 느낀 순간, 생생한 파육성과 함께 날카로운 이질물이 등을 관통하고 나오는 것을 느꼈다.
“어...어떻게...”
“운, 그 외에는 그릇이 달랐을 뿐이죠.”
미몽에서 깨어나듯 형욱은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짙은 한숨을 쉬었다. 모 경진이 익힌 검식보다 형욱의 검식이 좀 더 깊은 경지에 이르렀을 뿐이었다. 물이니 바람이니 대자연의 힘에 빗댄다 해도 결국은 깨우치는 자의 무리武理에 달린 법이다. 전장이라는 형욱의 동이 평화의 시기에 젖어 있던 모 경진의 정을 근소한 차이로 누른 것이다.
“헛헛헛.....그래도 태극은 변함없는 법...”
형욱이 도를 뽑아들자 모 경진이 털썩 쓰러졌다. 수석장로가 죽자 뒤따라오던 무사들은 단혼도가 도를 치켜 올리자 혼비백산하였다.
“장로님이 단혼도에게 당했다!”
“노, 놈은 악마다!”
그저 선 채로 도를 들고 있음에도 감히 대항하지 못해, 인간 파도처럼 갈라졌다. 그 뒤를 사기충천한 2대가 무찔러가고 있었다. 속내를 보면 간신히 서 있는 것이 고작인 형욱의 존재는 승리를 음미하는 강자의 여유처럼 비추었다. 그리고 이전까지 팽팽했던 전장의 흐름을 광협 쪽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
사기가 고취된 광협과 류위범은 무시무시한 기백을 흘리며 후군을 괴멸 시켰다. 목숭유가 투혼을 발휘하며 도를 휘둘렀지만 류 원종에게 입은 중상이 낫지 않았고, 신협은 숙적을 맞이함에도 손발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고 있었다. 천협이 살아있을 당시에도 자질면에서도 별 차이 없음에도 죽음을 각오한 광협의 기세에 밀린 것이다.
“후일...후일을 기약한다!”
그가 아무리 갖은 재간을 다해 무공을 펼치려해도 광협의 부동명왕공은 흔들림이 없었다. 견디다 못한 신협은 위와 같은 나약한 외침을 끝으로 함께 등을 돌렸다. 억지로 주군과 함께 싸우던 친위무사들도 기회라는 듯 뒤꽁무니에 따라 붙었다.
“내 저런 자를 가주로 받들려 했단 말이냐!”
도망치는 신협을 목격한 목숭유는 노성을 지르며 대감도로 류위범과 광협을 상대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상처가 도진데다가 류위범의 강권과 광협의 장법을 이겨내지 못해 심맥이 터져 선 채로 산화하였다.
싸움은 해가 저물 무렵에 완전히 끝나갔다. 백삼동은 모 경진이 죽었다는 말에 기회를 봐 도망쳤고, 그 뒤를 양옥이 얼마간 쫓아가주었다가 도주하는 이들을 잡아들이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가장 선두에 싸우다 고립된 관 일청은 두 배 이상 많은 병력에 포위당한 채 항전하다가, 수석 장로가 죽고, 신협이 달아났다는 말에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였다.
양군의 피해는 광협 측이 5백 이상 꺾였고, 신협 측은 사로잡힌 이들을 제외하고는 1천명이 겨우 도주했다. 사상자보다는 중상자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전반은 대오를 갖춰 싸웠으나, 후반은 무림인의 방식으로 혼전을 거듭한 덕분에 접전이 광범위해진 탓이었다.
훗날, 참전한 이들이 낙양 서북의 유명한 북망산에 무더기로 이장되는 바람에 “북망北邙의 싸움”이라 불린 이 전투는 광협의 대승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광협의 입장에서는 천협의 뒤를 이어 명실상부하게 중원의 패자로 등극하는 날이었다.
연말에는 모임 때문에 시간이 안 될 것 같으므로, 이번 주 안에 이번 파트를 마무리 지을 작정입니다. 연초에는 시험하고 성수기 대비 준비를 해야 하니까, 생존신고로 어쩌다 업로드 하는 것 외에는 잠수 할 듯. 제한 때문에 지난 글 열람이 안 되는 빨간회원분들은 로컬로 보내신 주소로 감상하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