德厚の野望 60
“아우, 머리야....”
폭음 끝에 늦은 해를 맞이한 양옥은 지끈거리는 골을 눌렀다. 목에 불덩이를 집어넣은 것 같고 위장에는 식초를 한 바가지 들이킨 것 같다.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아 희뿌연 시야로 물주전자를 찾으니 누군가 들어와 잔을 내민다. 양옥은 그것을 입에 댔다. 달콤한 감로수가 목을 적신다. 그냥 찻물이 아니라 적당히 따뜻한 꿀물이다.
“후아-!”
입가를 훔치며 쓰라린 속이 진정되자 양옥은 살 것 같았다. 여전히 숙취로 골이 띵하긴 하지만 운기조식을 하면 될 문제다. 양옥은 반사적으로 대작 상대를 살펴보았다. 자신과 다리가 엉킨 채 뻗어있다. 금발이 코 아래까지 덮어서인지 입에서 푸-. 푸-. 하고 입으로 술김에 찌든 호흡을 한다.
“자, 세수하시지.”
양옥은 찬 물에 세안을 하며 눈곱을 떼고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꿀물과 씻을 물을 대령한 자를 확인하니 간밤에 구석에서 오브제를 연기하던 덕후였다.
“어디 안 갔어?”
“나더러 장기 자랑하라고 하지 않았나. 구석에서 오브제를 연기하고 있었는데.”
덕후는 반말과 달리 과장된 공손함으로 허리를 굽혔다. 양옥은 턱을 긁적였다. 그러고 보니 그랬던 것 같다....라기 보다는 세휘와 대작을 하느라 신경 쓰지 않았다. 징징대고 있었으면 걷어 차주겠지만, 구석과 완전한 동화로 잊어버린 것이다.
“생각보다 쓸 만한 구석이 있는 걸? 다음부터는 이렇게 준비하도록 해.”
“.....다음이 있나, 세객 짓도 글러먹었는데.”
“뭘, 입 팔아서 자리 얻으려고 돌아다니는 거 아냐? 너 하나 주워 먹여 살릴 능력은 있단다. 그렇게 인상 쓰면 어쩔 건데? 사적인데서 반말까진 봐주지만 몸값 올리려고 틱틱 대면 한 대 맞는다.”
취중에 입만 산 인간, 그래도 쓸 만해요, 이라는 세휘의 악평을 용케도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양옥이 덕후를 보고 너 누구야? 하는 사태는 피할 수 있던 것이다. 하여튼, 주먹을 들어 보이는 양옥의 태도에 덕후는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뭐, 내가 데리고 온 놈들 중에서는 그나마 낫다. 하나같이 시커먼 남자라 꿀물이 아니라 해장술을 들고 오는 놈이 태반이거든. 주는 거니 마시긴 하지만 배려가 전혀 없어.”
“이름 높으신 여걸이니 남자와 동등하게 대하는 것이 아니면, 싫어하는 것 아니었어?”
덕후는 간밤에 내가 요새 주변에 결혼해보라고 권고를 받고 있는 데, 이 놈이나 저 놈이나 시원찮다, 그런 주제에 내가 여자라고 차별하는 놈들은 다 처 죽인다! 라는 양옥의 주사를 끄집어냈다. 양욱은 내가 그 말 했던가 하고 고개를 기웃하다가 씩 웃었다.
“암양 뒷구멍이나 쑤시는 데 어울리는 새끼들이 내 위에 올라타려는 게 싫은 거지. 정말로 강한 남자는 싫진 않아.”
양옥은 양 손에 젓가락을 들어 짝을 맞췄다.
“나와 어울리려면, 그만큼 능력을 보여야지. 안 그럼, 제대로 집어먹지 못할 테니까. 내 가업을 같이 일군다면 모를까, 기생해서 말아먹을 작정이면 남자든 여자든 멍석말이해서 조져버려야지. 그리고 남자랑 여자랑 달린 것부터 다른 데 완전히 같을 수는 없잖아? 차이는 인정해. 차이를 차별로 받아들이는 건 열등감에 시달리는 풋내기 년들이나 할 짓이고.”
실로 호쾌한 결론이다. 이렇게 되면 반박해주고 싶은 덕후였다.
“암만, 그래도 결합은 사랑하는 사람끼리...”
하고 나니 본인이 할 소리가 아닌지라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양옥이 덕후의 멱살을 잡았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인생 너 혼자 살래?”
무언가 단단히 맺힌 것 같다. 양옥은 자신의 행동이 과했다고 생각했는지 놓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덕후는 한 번 찌를 던져볼까 하고 음흉하게 웃어보였다.
“혹시 첫사랑에 채였다거나.....컥!”
훌륭한 연수 베기 한방으로 고꾸라진다. 양옥은 쓰디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언니 중에서 하나가 눈 바람맞아서 나갔는데 나중에는 좋게 안 끝났어. 근데 이 이야기를 너한테 하는 거지? 술이 덜 깼나?”
팔짱을 끼고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한다. 덕후는 찔끔해서 말을 돌렸다. 꿀물에 미혼약을 과하게 넣은 것 같다. 숙취에 시달리지 않게 나름 소량을 탔고, 첫 대면이 무시인지라 양옥의 경계심을 약화시키려는 목적이 있었다.
“그것은 이 몸의 매력....억!”
다시 복부에 한 방 맞았다.
“지랄까지 말고. 지금 시각이 어느 정도야?”
“중천쯤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내장을 뒤집는 충격에 엎어져 자벌레처럼 꿈틀거리면서 덕후가 신음하듯 알렸다.
“너도 참 알기 쉽다. 그거 한 방 맞았다고 바로 꼬리 내리냐.”
양옥이 혀를 차고 세휘를 깨우려했다. 무릎걸음으로 다가가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나, 좀 이따 출발할거야.”
“응....세피아를...좀 자게 해줘요...”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잠투정을 한다. 꿈이라도 꾸는지 목소리가 한 없이 가늘다. 양옥은 깨우기가 미안해졌다. 고통이 겨우 가라앉은 덕후가 입을 나불댔다.
“저기, 오늘 떠나는 건 무리일 것 같은뎁쇼.”
“뭐야? 이활특이 준비 덜 됐데?”
양옥이 한바탕 경을 칠 것 같이 눈썹을 치켜 올리자 덕후는 고개 대신 궁둥이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게 아니오라.....낙양의 지원군 측에서 모일 준비가 안 됬다는 의미요. 지금쯤 류 원종 장로님이 유력 문파들을 소집해서 지원군을 낼 방안을 토의하고 있을 거니까....회의 내용이 결정되는 데 이틀, 돌아가서 인원 차출하는데 이삼일, 다시 모여서 조별로 짜고 출정하는데 이틀.....대오를 갖춰 춘일장으로 가는데 이틀....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일주일은 넘게 걸려요.”
“중원 놈들이 느려터진 건 알겠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대신 삽질이든 좋은 일이든 한 번 하면 오래가죠.”
“그때 출정할 때쯤이면 적에게 방비할 시간을 다 주고 난 다음 일 것이다. 이런 건 선제공격이 중요해.”
“보기步騎가 연계해야 기습 후에 제압도 용이하죠. 광협 공자를 지원하려면 숫자는 최소 1천 이상은 되어야합니다.”
양옥은 자신의 의견을 넙죽넙죽 받아 반론을 하는 덕후를 새삼스럽게 보았다. 그냥 들러리인줄 알았더니 제법 식견이 있지 않는가. 덕후를 위아래 훑어보다가 양옥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박자를 맞춰야한다면 서두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너, 뭐하다 온 놈이냐. 세휘 깰 때까지 심심한데 소개해봐.”
“에헴! 이 몸으로 말할 것 같으면....”
덕후는 언제 꿈틀거렸냐는 듯 자리에 일어나 어깨를 으쓱 피며 대외적으로 가공한 자신의 신상내력을 소개했다. 신도 세가에 소개한 것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비리 문제를 안고 있어 조만간 끈 떨어지게 생겼다는 점이다. 화려한 언변으로 포장해도 핵심을 꿰뚫은 양옥은 반 각 동안 이어진 덕후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정리해주었다.
“한 마디로 사기꾼이네?”
덕후는 합죽이가 되었다. 그 모습을 두고 양옥은 재미있다는 듯 깔깔 웃었다.
“그럼 세휘가 일어나면, 둘이 남은 1주일 동안 뭐 할 건가 고민해 봐. 날 식언食言하게 만들었으니, 달래줄 만한 것을 찾지 못하면 너희들을 내 부하들의 장난감으로 던져 줄 줄 알아.”
웃으면서 무시무시한 소리를 하는 양옥이었다. 이야기를 끝가지 듣지 않는 댁의 잘못이잖수, 하고 항의를 하자 다시 한 대 맞은 덕후였다. 양옥 왈曰, 간언할 시기를 놓치는 것도 부하의 부덕不德이라는 것이란다.
일 주일 뒤, 덕후의 예상대로 류 원종이 1천의 지원군을 모아 출정했다.
춘일장에 있는 500명은 젊은 무재武才들로 구성되어 있어 통일화된 조직을 꾀하기 쉬웠지만, 류원종이 이끄는 지원군은 그렇지 못했다. 대게 형제이거나 친척이라 연령대부터 천차만별이었다. 이에 류원종이 고심한 진형은 남가락이 언질을 준대로 소속의 멀고 가까움에 따라 백 단위 원진으로 묶고, 일정 거리를 두며 전진하는 것이다. 만약 습격을 당하게 되면 고슴도치처럼 뭉쳐서 대항하는 것이다. 공포로 무너진다 해도 서로 거리가 있으니 전군에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공세가 빵점인데 그 부분은 혁련 세가의 기마무사들과 춘일장의 농성군에 의지해야할 부분이었다.
“무리해서 싸울 필요는 없소이다! 우리가 가는 건 무훈을 세우기보다 친지와 가족, 문도들이 위기에 빠졌기에 힘이 되어 주러가는 것! 위기가 닥치면 자신들부터 먼저 살아남는 것만 생각하시오!”
류 원종은 그렇게 구원군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낙양을 벗어나 관도로 접어들었을 때 세휘가 말을 타고 오며 류 원동에게 만남을 청했다. 한 차례 제지를 받았지만, 전령이란 것을 증명하고서야 류 원종을 대면할 수 있었다.
세휘는 류 원종과 따로 만나 교섭 경과와, 기마무사들이 선진에 서지 않고 후진에 있겠다고, 그것이 양옥의 입장인 냥 전했다. 만약 습격 받게 되면 후진에 있는 것이 구출에 쉽다는 의미였다. 류 원종은 머리속으로 분석해보고 궁금한 점을 물었다.
“전진에 미리 경계를 펴는 것이 좋지 않겠소?”
“장로님이라면 기습을 할 때, 선진을 치시겠습니까, 아니면 중군이나 후위를 치시겠습니까.”
“그 말이 옳소. 그러면 경계는 경공에 자신 있는 이들을 보내야겠구먼.”
덕 분에 구원군은 경계 문제로 한 시진을 잡아먹고 다시 이동했다. 이를 보던 류원종은 생각보다 구원군의 진군이 느리고 대오도 제각기라 불안감을 느꼈다.
류원종의 불안감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니었다. 낙양의 움직임은 곧바로 풀어둔 세작을 통해 신협 측으로 전해졌다. 신협이 즉시 공격을 중단하고 장로들을 소집하려고 했으나 모경진이 말렸다.
“계속 공격하게 내버려두십시오. 불시에 중단하면 반도들이 뭔가 이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터이고, 간악한 꾀를 낼지도 모릅니다. 지휘하는 장로들에게는 노부가 나중에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그도 그럴 법한지라 신협은 모 경진의 말에 따랐다. 관일창을 제외한 이들이 모두 모였다. 모 경진은 상황을 개략해주고는 자문을 구했다.
“이에 대해 좋은 대책들 있으시오?”
“우리가 수가 훨씬 많으니 나누면 격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군을 나누게 되면 저들은 원군이 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인원을 쪼개면 차륜전의 묘용이 사라지오.”
“하면, 이대로 퇴각하자는 말입니까? 거의 다 잡아가는 마당에?”
한창 공격에 열을 올리던 목숭유가 성이나 소리쳤다. 모 경진이 아이 달래듯이 어조를 부드럽게 하였다.
“허허, 목 장로는 성미가 급하시오. 노부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들어보겠소?”
솔깃해지는 신협과 장로들에게 모 경진은 자신이 고안한 바를 알려주었다. 들은 이들은 하나 같이 탄복했다. 신협은 검 끝으로 땅을 찍으며 승인했다.
“당장 수석장로가 말한 바를 이행토록 하시오.”
신협의 명과는 모순적으로 공성군은 당장 변화는 없었다. 계속 춘일장을 압박할 뿐이었다. 구원군이 느릿하지만 차근차근 하루거리 안쪽으로 진군해올 때, 후위의 2천이 어둠을 틈타 조용히 이탈하기 시작했다. 춘일장 쪽에서 고지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알아채지 못한 것은 어둠 외에 밥 짓는 화덕과 경계를 위한 관솔불이 수가 동일하다는 점, 전위 1천과 시간 별로 간격을 조금씩 넓힌 데 있었다. 즉, 한 부대가 차륜 전을 마치고 교대하면 복귀하는 자리를 몇 발짝씩 뒤로 이동하여 자리잡은 것이었다. 방어 측에서는 하루 종일 막아야했으므로, 공성 물자라도 들여놓지 않는 한, 후위에서 무슨 짓을 하는 가 알아챌 틈이 없었다.
그렇게 차출 된 2천은 관일창과 장야직의 지휘 하에, 미리 낙양 쪽 지형을 미리 탐지한 백삼동을 척후삼아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여 이동했다. 야음을 틈타 류 원종이 이끈 구원군이 숙식하고 있는 기슭 어귀까지 당도했다. 류 원종은 지리에 아주 무지하지는 않아 기슭에 진을 치진 않았고, 입구의 평탄한 쪽에 터를 잡았지만 시계가 협소해지는 것까지는 극복하지 못한 듯 했다. 실제로 정찰조를 보내긴 했지만 살문의 계보를 잇는 백삼동의 무사들한테 거려 소리 없이 죽임을 당했다. 잠시 멈추면서 동향을 살핀 세 장로들은 지금이 더할 나위 없는 호기임을 알았다. 기동보다는 정숙에 신경 썼기 때문에 행군 거리는 느렸으나 막 새벽이 되기 직전이라 기습 섬멸하기 좋은 타이밍이었다.
“공격하라!”
목숭유는 대감도를 높이 들며 기슭을 내달렸다. 그 뒤를 선두 무사 500명이 뒤따랐다.
“뭐야?”
“기, 기습이다!”
“아아아악!”
옹기종기 모여 잠들어 있던 구원군의 일각이 적의 사나운 기세에 분분히 손을 쓰지 못하고 으깨지고 말았다. 기습을 알아챈 구원군 다른 조들은 서둘러 무기를 잡거나 경호성을 울렸으나 야 차 같은 기세를 울리며 오는 목숭유의 부대에 변변히 저항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매복이 있었는가.”
중군에서 이를 보던 류 원종이 분한 듯 중얼거렸다. 중도에 매복이 없을까 고심했지만 하루 거리를 남겨놓고 당할 줄은 몰랐다. 급히 내공을 실어 외쳤다.
“뭉쳐라! 흩어지면 죽는다! 장병과 궁, 암기를 가진 이들이 앞장서라! 단병을 가진 이들은 뒤로 빠져 엄호하라!”
적의 기세를 견제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유효거리가 긴 이들을 앞세우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별로 효과는 없었다. 혼전 중에다가 무장이 제각기였기 때문이었다. 일부의 용전勇戰 외에는 기습에 의한 혼란이 전군에 퍼지고 있었고, 목숭유가 중군으로 깊이 파고들고 있었다. 뒤가 끊이지 않게 백삼동과 장야직이 남은 무리들을 이끌고 좌우에서 받쳐주었다.
“크윽! 직접 상대해야하는가.”
지휘 위치상 전군의 핵核 부분에 있는 류 원종은 암담해졌다. 여기서 돌파를 꺾지 못하면 각개격파로 사냥 당할 것이다. 이럴 때는 적의 기세를 감해줄 저지대가 있어야하는데 그만큼 조직력과 기동성을 확보한 부대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각 부대끼리 느슨하게 있어 와르르 무너지지 않았지만, 그것도 중핵이 깨지지 않고 난 다음이다.
“퇴각합니까?”
류 원종 곁에 있는 무사가 외쳤다. 어조에는 공포가 깃 들어 있었다. 류 원종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직접 친다! 저 멧돼지의 머리를 친다면 우리의 승리다! 그전에 효시를 쏘아라! 각 부대에 중군의 결사決死을 알려라!”
붕괴 일보직전인데 본능이 시키는 대로 퇴각했다가는 전군은 끝장이다. 모 경진의 수에 빠졌지만 류 원종에게는 아군에게도 말하지 않는 비장의 한 수가 있었다. 지시를 받은 궁사 하나가 결연한 표정으로 허공에다 직각으로 효시를 날렸다. 효시를 날렸으니 첫 번째로는 지휘부가 끝까지 항전한 다는 것을 각 부대들이 알게 될 것이니 항전 의지는 버리지 않을 것이다.
“가자!”
두 번째를 떠올렸으나 사태가 급박하여 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류원종은 그걸로 됐다는 듯이 원진 상태를 유지하며 그대로 돌진했다. 좌우에 무사들이 제각기 무기를 빼어들며 돌진했다. 돌파력은 없지만 인의 장벽으로 쉽게 쪼개기 어려운 진형이었다. 목숭유가 이끄는 화살 진 첨두는 순식간에 파이 조각을 떠내듯 원진의 한 부분을 점령해갔다.
피로 질척해진 대감도로 가로 막는 적을 닥치는 대로 베어가며 무인지경으로 나가던 목숭유는 류 원종을 보자 용기백배하여 쳐들어갔다. 류 원종도 강선을 휘두르며 목숭유를 상대해나갔다.
류 원종과 목 숭유가 격돌한 순간, 백삼동과 장야직은 양 부대가 충돌하는 사이 포위망을 완성해갔다. 원래 느슨했던 진형이라 파고들기는 어렵지 않았다. 이대로 고사枯死 시키면 남은 이들은 알아서 도주하리라.
“단단히 막아라!”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촘촘히 경계하라!”
이대로 승기가 굳었다고 확신하는 순간, 후미에서 흙먼지가 높이 피어오르며 먼동을 등지고 달려오는 기마대가 있었다. 천병天兵처럼, 일출에 쏟아져 나오듯이 홀연히 등장한 500 기마대는 순식간에 기슭 입구를 지나 혼전 속으로 뛰어들었다.
인마일체가 된 이들은 어렵지 않게 혼전의 덩어리로 뭉쳐진 인의 섬島에 지류支流처럼 소대별로 흩어지더니 스치듯이 지나치며 화살이나 창으로 툭툭 찌르고 갔다. 이 공격의 출혈은 미미했으나 자신들이 온 방면으로 기습받았다는 점은 한창 공격에 올린 신협군의 충격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리고 몰이사냥처럼 당하던 구원대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호기였다.
그리고 기마무사들을 지휘하는 양옥은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등 위에 서서 전황을 살피는 기예를 펼치고 있었다. 말에 탄 채 진홍의 갑주에 물결치는 듯한 머리칼은 경외심과 동시에 위압감을 주었다.
“집합!”
중군의 위치를 단번에 확인한 양옥은 가랑이를 벌려 미끄러지듯 말안장에 착지했다. 진기가 실린 양옥의 신호로 산개해 있던 기마병이 한 덩어리로 뭉쳤다. 애당초 구원군은 각 부대당 거리가 벌려있고, 백삼동과 장야직이 포위를 하면서 고립시키기 위해, 인근에 있는 구원대를 집중적으로 몰아내면서 오던 길이라 수백의 기마대가 활보할 공터가 생겼다.
“효시!”
한 마장 되는 거리에 양옥이 안장에 둔 활에서 효시를 재 날렸고, 수백 명의 기마대가 효시가 날아간 방향을 향해 일제히 화살을 날렸다. 거점 사격으로 안전한 신협군의 후미가 죽음의 비가 쏟아지는 최전선이 되었다.
“으아아악! 아아악!”
“커억!”
애당초 기습을 전재로 경장을 하고 있었고, 평원이라 엄폐물이 없었기에 속수무책으로 돌아갔다. 그나마 혁련 세가와 오래 전 싸워본 적 있는 장야직과 백삼동이 고함쳤다.
“반전! 반전! 앞은 목 장로에게 맡긴다!”
“위를 보지 말고, 말 다리를 집중적으로 노려라!”
혼란에 빠진 후군은 장야직의 외침에 그나마 제 정신을 차렸으나, 실질적으로 대응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창막이나 방패수가 없는데다가 한방에 보낼 수 있는 중도나 도끼를 가진 이들이 적었다. 있다면 목숭유의 부대인데 돌파력을 위해 선봉에 보낸 중이라 빼올 형편이 아니었다.
“창!”
양옥의 일갈과 함께 기마대가 일제히 장창을 잡아 올렸다. 말 이라는 높은 지점에서 창대가 수 백 개 솟으니 돌격을 저지할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숲이 솟은 듯한 착각이 일었다. 양옥은 호령했다.
“1대 쓸고! 2대가 후려치고! 3대가 찌른다!”
양옥의 명이 떨어지자 500기 중에 2백기가 사선으로 달리며 돌진했다. 후위대와 거리가 근접하자, 신협군 후위보다 압도적으로 긴 사정거리를 이용, 돌진력과 원심력을 더해 휘두르자 후위대의 진용은 갈퀴로 낙엽과 흙덩이를 긁어내 듯 부셔지고 말았다. 1대가 채찍을 감아 올리듯 매끄럽게 빠져가자 반대편에서 시간차를 두고 온 투입된 2대는 무너진 대오에 좀 더 깊숙이 파고들어 후려쳤다. 1대의 공격법과 달리 창을 높이 들었다가 일제히 내려치기를 한 것이다. 순식간에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머리를 맞고 뇌수가 터져나간 이들이 속출하였다. 이 2차 투입이 결정적이라 후위들은 더 이상 장로들의 지휘가 통하지 않았다.
-두두두두두.
마지막으로 쐐기를 가한 것은 3대였다. 이들은 양옥이 직접 선봉에 서 앞선 부대와 달리 나란히 창을 들고 돌진해오고 있었다. 창날을 정면으로 겨누며 돌진하는 기마대에 후위들은 더 이상 대오를 유지하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으, 으아아아아!”
“도망가자! 상대할 수 없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후위대를 두 장로는 악을 쓰며 잡으려고 애썼다.
“막아! 기마는 돌진이 죽으면 쉽다! 한 번 만 버티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
두 장로는 경험에 우러난 판단으로 외쳤지만, 창칼 한번 대보지 못하고 동료들이 수두룩하게 죽어가자 공황 상태에 빠져 견디지 못했다. 도저히 대적할 수 없다고 화살과 암기를 날리려했지만 마지막으로 돌진하는 3대는 마갑과 흉갑을 찬 중장이라 그 효과가 미미했다.
3대는 그대로 적을 찔렀으며 거치적거리는 것은 말발굽으로 짓밟으며 돌진했다. 그리고 3대의 돌진을 이활특의 지휘 하에 1,2대가 좌우로 각각 나눠져 협공했다.
“다 죽여!”
몽골의 기마군단이 어째서 무적이었는가를 증명하 듯, 양옥과 호위기마대들은 신기 그 자체인 마술로 진형이 헐거운 곳으로 집중적으로 돌파해갔다. 탈 것과 함께 일생을 보내는 혁련 가의 무사들의 무공도 그에 맞게 개발되어 마상무예에 최적화 되어 있었다. 보통 말 위에서 창이나 활을 쓰면 불안정한 지지대로 동작에 빈틈이 많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들에게 그런 점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그 단점을 이용, 허초처럼 유인계로 써먹거나 주변 기병들과 연계기로 발전시켜, 멋모르고 접근했다가는 순식간에 어육으로 다져지고 말았다. 병력은 열세라도 기동성과 사정거리로 커버하여 후위의 1천은 눈깜짝할 사이에 완파되고 말았다.
“이년!”
이대로는 당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장야직이 검을 빼어들고 나섰다. 겁에 질린 수하의 어깨를 밟아 비조처럼 도약하여 검을 휘둘렀다. 양옥은 고수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고 창을 던졌다. 장야직이 어렵지 않게 튕겨내자 양옥은 고삐를 쥐지 않는 허리춤에 찬 신월도를 뽑아 전력을 다해 후려쳤다.
부드러움 따위는 없는 강경 일변도의 참격이다. 장야직은 코웃음을 치며 검화만풍을 전개해 감아가듯 도의 옆면을 집중적으로 후려쳤다. 따다다당! 하는 소리와 함께 신월도가 부러져나갔다. 이대로 손목까지 잘나가는 찰나에 양옥이 씩 웃었다. 불안감을 느끼는 찰나 장야직의 옆쪽으로 창격이 X로 가로질러갔다.
“비겁하다!”
장야직은 순간적으로 외쳤다. 아군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적의 수장을 잡는데 혈안 된 터라 이들의 전법을 깜빡한 것이다. 검을 거두는 동시 창의 교차로에 미리 칼을 대 꿰이는 것을 간발의 차로 모면한다. 그러나 장야직의 최후는 금방 다가왔다. 양쪽에서 창격을 내질렀던 순간 양옥은 고삐를 잡았던 손을 놓고, 단창을 뽑아, 전신을 뒤로 틀었다가 시위를 놓듯 던졌다. 거기에 격공의 원리를 담아 진기를 추진제 삼아 날려버리니 절정고수가 날리는 일격 못지 않는 빠르기가 나왔다. 단창은 무방비하게 노출된 장야직의 가슴뼈를 부수고 심장까지 꿰뚫었다. 일세를 풍미했던 장야직이 허망하게 죽는 순간이었다. 좌편에 있던 기사 하나가 내려 단도로 순식간에 목을 잘랐다. 울컥 하고 선혈을 콸콸 쏟는 몸둥아리를 걷어차고 기사 가 창을 들자 우편에 있던 기사가 솜씨 좋게 창에 꾀어, 만인이 잘 볼 수 있게 높이 들었다.
“이 자식 한 재간하던 데 누구야?”
“장야직이에요! 신협의 장로입니다!”
멀리서 관전하고 있던 세휘가 외쳤다. 그 소리에 목을 창 끝에 꿴 기사가 외쳤다.
“장야직이 죽었다! 소가주님에게 목을 베였다!”
환호성과 절규가 전장을 울렸다.
“끝장이다! 퇴각하라!”
누군가 외치자 그것은 신협대에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갔다. 퇴각하기 위해 밀고 밀치는 바람에 목불인견으로 뒤엉켰다. 삼각점의 한 축을 담당하던 장야직이 전사하자 백삼동은 더 견딜 수 없었다. 근처에 있는 측근에게 알렸다.
“어서 목 장로에게 철수를 알려라! 내가 혈로를 뚫을 테니 뒤따르라고!”
백삼동은 필사의 탈출을 각오하며 전진했다. 기마대가 가로막았으나 수중에 둔 암전과 땅에 떨어진 단병들을 발끝으로 차올리며 날려 견제했다. 그 뒤를 혼란에 빠진 무사들이 한 덩이로 뭉쳐 빠져 나가로 했다. 기마대는 양옥의 지휘 하에 적당히 거리를 두며 도주로를 틔워주었지만, 그걸로 끝난게 아니었다. 첫 방을 호되게 먹었던 구원대들이 공격해온 것이다. 산발적이지만, 경황이 없는 이들에게는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악재로 적용했다.
이는 후군만 아니라 전군도 마찬가지였다. 장야직의 전사와 백삼동의 퇴각 조치에 한참 류원종을 궁지에 몰아가던 목숭유는 제기랄! 을 연발하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한창 독이 오른 류 원종과 본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기슭 밖으로 벗어날 때까지, 목 숭유의 어깨와 허벅지에 중상을 입히며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양옥의 휘파람으로 기마대가 의식으로 승리의 함성을 올렸다. 지켜보던 류 원종도 같이 따라할 것을 지시했다. 대지는 비록 처참한 피해를 입은 무참한 현장이었지만, 승리는 승리였기 때문이고, 중요한 전장이 코앞이기 때문에 사기를 간직할 필요가 있었다.
처음에는 마지못해 하던 이들도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승리를 실감하여 대기가 울릴 정도로 함성을 올렸다.
전사자와 부상자를 수습하는 동안, 지휘부인 류 원종과 양옥은 천천히 거리를 두고 만나갔다. 양쪽 사이는 미묘한 균형감이 돌았다. 혁련 가의 무사들 사이에는 승리했다는 의기양양함이 감돌았고, 마상 위에 있어 자연히 깔보는 듯한 인상을 주게 되었다. 반면 구원군 측은 난데없이 나타난 기마대에 미심쩍어했다. 혁련 가의 표식을 알아보고 퍼뜩 경계하는 이들까지 있었다.
류 원종과 양옥이 1장 거리에서 서로 말없이 주도권의 서전을 벌이고 있는 그 때, 누군가 한 발 앞섰다. 덕후였다. 덕후는 아수라장이 된 풍경이 되며 노골적으로 비아냥거렸다.
“휘유 ~. 참말로 무식하게들 싸우는 군. 대화로 명분을 따지고 난 다음에 하면 될 것 가지고 다짜고짜 죽이네 마네 짓을 하다니....이래서 선유先儒들께서 무사들과 사귈 도리는 없다고 하신 게군.”
무인들을 무시하는 폭언이 나오자 구원대 뿐만 아니라 기마 무사들 사이에 분노의 빛이 스쳤다. 양옥이 즉시 말을 덕후 쪽으로 몰아가 즉각 어깨를 걷어찼다. 덕후는 진흙탕에 나동그라졌다가 벌떡 일어났다.
“이게 무슨 짓이오!”
“훗, 말 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족속이라.”
낭패한 몰골을 비웃으며 양옥이 그렇게 말하자 덕후가 방방 뛰었다. 양옥이 세휘에게 눈짓으로 제압을 부탁했고, 세휘는 조용히 뒤로 가 혼혈을 짚었다. 훼방꾼이 사라지는 모습을 양옥은 기묘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럴 때 나서서 공동의 미움을 자처해준 덕분에, 잠복해 있던 갈등을 지워버리고 약하나마 무인들끼리 유대감을 형성시켜 놓은 결과가 되버렸다.
-재미있는 놈이군.
양옥은 덕후의 희생을 속으로 그렇게 평가해주고는, 수하들에게 큰 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뭘 멀뚱히 구경만하고 있는 거야! 말에 내려서 금창약이라도 나눠 주지 않고!”
혁련 가 무사들은 소가주의 일갈에 군소리 않고 내려 부상자들을 돕기 시작했다. 양옥은 말에 내려서 포권을 해보였다.
“미력이나마 보탰으니 주제넘다 거절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구원을 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오. 사해가 동도라니 함께 가십시다.”
양옥이 먼저 굽히고 들어가는 모양새를 취하자, 류 원종은 어렵지 않게 합류를 권할 수 있었다. 혁련 세가의 조력은 대외비였기 때문에 류 원종은 아군에게 간접 설명하기 위해 모르는 척 물었다. 그리고 합류할 명분을 줘야했다.
“그보다 어떻게 오신 것이오?”
“남 군사라는 분이 이런 일을 예측하여 저를 찾아온 적이 있습니다. 인척의 정리를 들어 응원을 부탁하시더군요. 허나, 저는 혁련 세가의 일문이고, 남의 터전에 돕겠다고 하면 자칫 양 가에 반목을 살 수 있는 터라 당시에는 거절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낙양에 들은 소문과 출정 건을 듣고 참을 수 없어 부랴부랴 쫓아왔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광협님은 저의 먼 친척 오라버니뻘 되시는 분이니까요. 그래서 가문이 아니라 제 뜻을 따르는 이들만 선별했고, 멀리서 지켜보다가 무사히 도착하시면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헌데 갑자기 싸우는 소리와 효시가 들려오더군요.”
어디까지나 우연히, 개인의 독단이라는 것을 강조하자 구원군 들 사이에 경계심이 엷어졌다. 그러나 자세히 짚어보면 속 사정을 모르더라도 양옥의 말에 언뜻 모순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적이 출몰하자 기다렸다는 듯 배후에서 나타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미리 지형을 조사하고 잠복 터를 선정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등장이요, 진격이었다. 이는 양옥이 추종에 능한 기마무사들을 미리 파견하여 루트를 지속적으로 파악해두고, 덕후와 세휘가 1주일간 머리를 맞대고 분석한 덕분이었다.
그래서 장로들의 기습대가 이동할 때 소재를 잘 파악해두고 몰래 미행하고 있다가 신나게 공격하는 순간, 뒤통수를 후려갈긴 것이다.
한 63화에 신도 세가편이 마무리 될 듯.
저번에 소재를 물어보셨는데....반반입니다. 여기저기 에피소드들을 따와서 각색하는 것도 있고, 스스로 생각해본 것도 있습니다. (일천해서 패턴 조합 수준이지만 말이죠..;;) 딴 이야기입니다만, 외래어라든가 패러디, 희화적 연출을 읽다보면 아시겠지만, 작중에서 우러나기 보단 외적 코드에 의존하는 감이 크죠. 작품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지양해야겠지만...어차피 습작이니 가능한 집어넣고 시도할 수 있는 건 시도해볼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