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35)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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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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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35話 어느 도시에서3



  78-1.
  신경 쓸 일이 아니기는 개뿔.


  “이들을 체포해라.”
  “……엥?”


  거리를 걷다보니 어느 틈에 그랬는지 우리를 포위한 기사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뿔뿔이 그 자리를 떠났고 그 사람들을 따라 자리를 피하려던 우리는 기사들이 겨눈 창에 뒷걸음질을 쳐야 했다. 혹시 반역자라도 도망쳤나, 무기를 가지고 있어서 오해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고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포위당한 건 우리들뿐이었다. 얼마 전에 이 도시에 들어왔고 별다른 일은 벌이지 않은 우리라 딱히 걸리는 것도 없어서 이 기묘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서 아버지와 나를 따라다니는 다섯 명의 아가씨들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반역죄를 지었어?”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래?”


  아닌 모양이다.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언제라도 자신의 무기를 뽑아들 수 있게 자세를 잡은 그녀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 생각해보면 이 아가씨들은 숨겨진 황실가족도 아니다. 황도에서 투덜거리면서 국정업무를 처리하는 ‘나’에게서 전해진 소식이니 잘못된 정보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왜?


  “혹시나 해서 말인데 너희들을 탐내는 귀족들은 있었어?”
  “있긴 하지만 대로변에서 사람을 납치할 정도로 강심장인 사람들은 없습니다. 그것도 중앙군을 움직여서 이런 소란을 일으킬 사람은 없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법령에 어긋나는 짓을 하면 신분도 영지도 재산도 모두 박탈당하니까요.”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 저들의 무구를 살펴보면 어느 귀족의 사병이나 다름없는 허접한 기사가 아니라 타클란 제국 중앙군에 소속된 제대로 된 기사다. 얼굴에는 살짝 짜증이 어려 있기는 하지만 군인으로서의 자세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대체 우리를 왜 체포하려는 걸까. 생각하고 있는데 아버지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손을 번쩍.


  ‘아버지…….’


  이 부당한 상황에서 너무나도 평범한 대처로 나를 놀래킨 아버지는 나에게 눈짓을 했다. 그 눈빛은 ‘재미있을 것 같으니 너도 항복해.’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 세 명의 아가씨도 손을 들고 나갔다.
  뭐가 재미있냐고!


  “순순히 따라오겠다니 다행이다. 뒤의 너희들도 항복해라.”


  아마도 이 기사들 중에서 가장 짬밥을 먹은 것 같은, 다시 말하자면 가장 지위가 높은 것 같은 멋진 콧수염의 남자가 다시 우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병사들에게 무장해제 후 결박당해 무릎을 꿇고 있는 아버지. 그리고 성희롱을 당하면서 마찬가지로 결박을 당하는 세 명의 아가씨가 있었다. 왠지 열받을 것 같았지만 아버지에게 무슨 생각이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손을 들었다. 한숨이 나온다. 그런 나에게 다가오는 병사들의 손에는 창과 밧줄이 쥐어져 있었다.


  “이 녀석, 여자 아니었어?”
  “키가 크잖아. 남자야.”


  아버지와는 달리 성희롱을 당하면서 결박을 당해야 했던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그런 병사들의 말을 감내했다. 어딘지 모르게 위험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리고 가만히 손바닥으로 샅을 쓸고 있는 것으로 보아 진성 호모인 것 같았다 ― 병사에게 가만히 저주를 건 것은 중요치는 않다. 앞으로 3년 동안은 고자 신세다. 네놈. 그리고 지금 아가씨들에게 성희롱하는 놈들도 3년 동안은 고자다.


  ――적당히 해놓아라.


  화를 삭이지 못하고 저주를 퍼붓고 있으려니 아버지의 말이 들려왔다. 전음이었다.


  ――열받잖습니까.


  어쩐지 히죽 웃으면서 별로 상관없어하는 것 같은 아버지를 보며 화나지 않느냐는 어투로 말을 하자 아버지의 웃음은 더욱 짙어졌다. 대체 당신이 바라는 건 뭐야?


  ――하룻밤 같이 보냈다고 벌써 정 들었냐?
  ――적어도 다른 사람에게 몸 굴리기 싫다고 같이 있자는 아가씨들을 다른 사람 손타게 할 수는 없잖습니까.
  ――반했냐? 역으로 대쉬해오는 여자에게 약하구나, 너.
  ――지금이 농담할 때입니까? 정말이지…….


  내 말을 듣고서는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흘릴 것 같은 표정으로 놀려대려는 아버지를 보고 화가 나려고 했다. 대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아버지에게 화를 내려고 하자 이번에는 진지한 표정으로 변하더니 이런 말을 전해왔다.


  ――지금 저 아가씨들이 걱정하는 건 우리가 죽는 것과 저 놈들이 떼로 몰려들어 성폭행하지 않을까 하는 거다. 그러니까 잘 달래둬. 다른 사람에게 억지로 당해도 네가 괜찮다고 하면 그 아가씨들도 반항하지는 않을 거다. 뭐, 지금 인간 이하인 녀석들은 네 놈이 모두 발기부전으로 만들어버린 모양이라 그런 위기는 오지 않겠지만 말야. 최소한 그런 언급은 해두도록. 뭐, 그런 일을 안 당하게 사전에 차단하는 것도 좋겠지만 네 누이들이나 다른 애들처럼 무예가 출중하다거나 쓸 수 없는 마법이 없다거나 가진 힘이 세다거나 한 아이들은 아니잖냐. 게다가 이곳에서 사고를 치면 여러 가지로 골치 아파지니까 우리는 함부로 개입해줄 수 없어. 그러니까 그 아가씨들은 며느리들처럼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마음이 바뀌지 않는다면 버리지 않을 것이고 그런 일을 당한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아가씨들 자신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라고 확신시켜줘라. 알겠냐? 바보 아들놈아.


  뭐야 이 차이는……정말로 진지한 얼굴이잖아. 멍한 얼굴로 아버지를 바라보다가 내 등을 떠미는 병사들의 거친 손길에 정신을 차린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바라보았더니 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르는 듯이 세 명의 아가씨가 당당하게 걷고 있었다. 그리고 내 뒤에서 불안한 듯 걸어오는 두 사람. 반항을 하다가 다쳤던 것인지 긁힌 상처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아가씨들에게는 상처가 하나도 없다.


  “빨리 안가고 뭐하나!”
  “쳇.”


  바보 아들놈이라고 한 건 이것 때문인가. 하긴 진심으로 보호하려고 한다면 감옥 안에서 꼼짝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대상을 보호할 수 있으니까 저렇게 해두는 것이 편할지도 모른다. 나에게 향한 미안함과 자괴감으로 표정들이 어두운 아가씨들, 사샤와 올가를 보면서 조금 미안해졌다. 미리 말해두었으면 이렇게 다치지는 않았을텐데.


  ――이걸 말한 겁니까?
  ――알았으면 되었다. 바보 녀석.


  고개도 까딱하지 않고 대답하는 아버지의 말에 조금 울컥하긴 했지만 생각해보면 아버지가 나에게 조언을 해준 것이니 아니꼽다고 생각할 일은 아니다.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포박된 채 터덜터덜 걸으면서 다리에 상처라도 입은 듯 절룩대기 시작한 올가가 안쓰러워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들 몰래 치유 마법을 써주었다. 겉에 난 상처는 낫지 않을테니 내가 마법을 썼다는 건 알지 못하겠지. 동시에 팔이 아픈 듯 병사가 팔을 당길 때마다 인상을 찡그리는 사샤에게도 치유 마법을 써준다. 아픈 것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말은 너희들에게만 들리니까 놀라지마. 그리고 대답하지 않아도 될 거야.


  갑자기 아픈 것이 사라져서 놀라는 것 같은 아가씨들에게 전음으로 말을 걸었다. 잠깐 놀라는 것 같은 표정을 하던 그녀들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면서 약간 편해진 표정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들의 옆에서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들은 그녀들의 표정에서 불편함이 사라지자 아예 음흉한 표정을 얼굴 표면에 드러내었다. 엉덩이를 만지려고 한다거나 가슴을 희롱하려고 한다거나……. 꽤나 욕망에 충실한 녀석들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아직 제 놈들에게 닥친 불행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잘 들어. 지금 이건 내 마법으로 너희들에게 내 말을 전하는 거야. 나, 마법 사용할 줄 아니까. 저 놈들 중에서 너희들을 음흉하게 바라보고 있는 녀석들에게 저주를 걸어두었어. 아마도 옷을 벗기고 폭행하려고 할 것 같기는 하지만 저주는 확실하니까 제대로 폭행할 수는 없을 거야. 그러니 안심하고 반항하다가 다치는 일이 없도록 해. 알겠지? 다치면 슬플 거야. ……고향에 있는 아가씨가 아프거나 다쳤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이나. 알겠지?


  내 말을 듣고 우쭐할까봐 뒤에 쓸데없는 말을 덧붙이기는 했지만 갈색머리 자매는 그런 내 말에 적지 않게 안심이 되는지 조금 환해진 얼굴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반항하다가 크게 다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녀들의 몸에 상처를 주려고 한다거나 죽이려 한다거나 하는 녀석이 있다면 반항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뭐야. 이 여자들 살짝 살짝 자극하는데도 기분 좋아보이잖아? 살아남으려면 이 몸들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야. 으흐흐흐.”
  “에헤헤. 감옥에 집어넣으면 한 번 몸이나 풀어봐야겠어.”
  “누가 먼저 할까?”
  “일단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가면 한 번 주물러 봐야겠어.”


  이 자식들이.
  밝아진 그녀들의 표정을 보고 자신들이 추근대는 것을 받아주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것 같은 판타지 특유의 무뇌아들의 대화를 듣고 이를 간다. 감옥에 갇히자마자 이 놈들을 반신불수로 만들어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길을 걸었다. 이 녀석들에게 반신불수보다 더한 형벌이 없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본다.


  첫 번째, 미각을 봉인해버린다. 입맛이 없으면 살맛이 안나지.
  두 번째, 통각만 강화한다. 참고로 다른 사람보다 천배는 더 민감하게.
  세 번째, 소화기관을 망가뜨린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죽어버릴지도 모르니 패스.
  네 번째, 무한 미트스핀(다른 말로 하면 계간, 하드코어한 남자들의 동성애)을 할 수 있도록 이놈들만 남아있을 때에 매혹의 마법을 건다. 참고로 아가씨들을 보고 음흉한 생각을 하지 않은 기사들에게 걸어 이들이 강제로 당하게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사의 명예를 생각하면 해서는 안될 짓이다. 이곳에서 명예는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것이니까. 다른 나라의 기사들이기는 하지만 지켜줄 것은 지켜주어야겠지. 고로 이것도 패스.
  다섯 번째, 음흉한 생각을 하면 음낭, 불알, 딸랑이, 쌍방울 등 수많은 애칭을 가지고 있는 부위를 오거가 걷어찬 것마냥 아프게 해준다. 참고로 두 번째와는 달리 이곳만 아프므로 평상시의 생활에는 지장이 없을 것이다.
  여섯 번째, 꿈속에 악몽을 꾸게 하는 요마들을 투입시킨다.
  일곱 번째, 당뇨병에 걸리게 한다.
  여덟 번째, 손가락 끝에 동상이 걸리게 한다…….


  ――참아.


  그렇게 이를 갈고 있는데 피식 웃는 것 같은 아버지의 말이 들려왔다. 아무래도 살기가 짙었던 모양이다. 차단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알아차린 모양. 히죽 웃는 아버지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며 나는 싱긋 웃어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소레, 무리데스それ, 無理です.
  ――하반신 친일파 아니랄까봐……적당히 해라. 나도 좀 열받기는 하니까.
  ――네. 하지만 하반신 친일파라지만 암흑의 통로만 이용하고 있습니다.
  ――뭐, 상관없겠지. P2P사이트는 중국 쪽만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라기보다는 그쪽에 신경이 쓰이는 거냐.


  잠깐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묵묵히 걸었다. 거리에는 상황이 끝난 것을 안 사람들이 몰려들어 우리가 끌려가는 모습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아침에 뛰어나갔던 용병들도 제법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통쾌함과 안타까움이 뒤섞여 있었는데……통쾌함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안타까움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다들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어딜보는 거냐!”


  그 모습을 보면서 쓰게 웃다가 잠시 발이 멈추었다는 이유 하나로 등에 매질을 당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쪽을 보고 있던 용병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나를 따라오던 자매의 얼굴에는 살기가 맴돌았지만 별로 신경쓰이지는 않는다. 아프지는 않고.
  그나저나 우리, 어디로 끌려가는 거지?


  78-2.
  우리가 끌려간 곳은 제국의 수도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감옥도 아니었고 군부대에 비치된 구치소도 아니었다. 이곳, 타클란 제국의 황궁이었다.


  “즉결인가?”


  아버지도 이런 상황은 생각지도 못했던지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아주 예전이었다면 황궁에도 지하감옥이 있었겠지만 마법의 발달으로 황궁 같은 곳에 지하감옥을 두는 것은 위험해진 지금에 와서는 그저 물품보관소로 쓰일 뿐인 곳이었다. 어쩌다 한 번씩 제대로 일하지 않는 황궁의 고용인들을 가두고 벌을 주는 일은 있겠지만 자주 쓰일 곳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황궁으로 가서 그런 감옥에 가두는 대신에 즉결처형을 하려는 의지로 보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다. 대체 우리를 언제 봤다고 즉결처형을 하려는 것일까. 잠깐 고민하면서도 황궁 내부로는 들어올 수 없는 병사들을 대신해 말에서 내린 기사들이 목에 감긴 밧줄을 당겨 우리를 끌고 가는 것에는 저항하지 않았다. 표정이 어두워진 아가씨들은 잠깐 저항하기는 했지만 숨이 막힐 것 같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수밖에 없었다.


  “거 참, 대답도 안해주는구만.”


  조금 언짢은 표정으로 투덜대던 아버지는 저항하지 않고 기사들이 걷는 방향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일단 당장 죽지는 않을 것이고 만약의 경우에는 도망쳐버리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이 어떻게 꼬였는지를 살펴보고 싶은 이유도 있었고,


  ――재미있을 것 같은데?


  라는 아버지의 말도 있었기 때문이다. 대체 긴장한다는 것이 없어. 아버지는.


  ――이 아버지는 이보다 더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사람이야. 믿어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슬쩍 투덜거리자 아버지는 ‘나를 따르라’고 말하는 장수처럼 등짝을 보이고 걷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하나도 멋지지 않아 아버지.


  ――따라올 수 있겠나?
  ――거절합니다.


  히죽 웃으면서 그렇게 전음으로 답해주고는 주변을 둘러본다. 어째 구석진 자리로만 이동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건물보다는 숲이 많이 보이는 구조였다. 활엽수라 싸늘한 기온에도 푸른 빛을 잃지 않은 아치형의 문을 지나 통로를 따라 걷고 다시 아치형의 문을 지나기를 몇차례, 황궁에서도 구석진 자리로 보이는 검은 건물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어라?”


  그리고 겉보기에는 작아보였지만 계단을 밟고 아래로 내려가자 꽤 큰 공간이라 느껴지는 곳으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당장은 죽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들어가라.”


  그렇게 잠깐만, 잠깐만하면서 탈출을 유보하고 있으려니 기사들은 점점 구석진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미로 같은 복도를 몇 번이고 빙글빙글 돌아서는 과거 감옥으로 썼던 것 같은 창고에 우리를 밀어 넣었다. 일단 탈출할 수 없도록 가두어두고 싶었던 것은 알겠지만 조금만 신경쓰면 여기가 출구 바로 근처, 그것도 계단의 바로 뒤라는 것 정도는 알 것인데 왜 그리 빙글빙글 도는 것인지. 남자 여자 구분 없이 밀어 넣은 것에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지만 문은 닫혔다. 정말로 가두어둘 모양. 어둑해서 보통 사람이라면 시야를 확보할 수 없는 곳에 덩그러니 남아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해야 했다. 도대체 뭐하자는 걸까.


  “세린님…….”
  “아, 마트료나 씨인가요? 아……아니, 형은 저 편에 있습니다.”


  어두운 곳에 갇힌 두려움 때문인지 아가씨들은 각각 자신들이 마음을 두고 있는 사람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샤와 올가 자매는 우왕좌왕하다가 내 말을 듣고서는 방향을 잡고 나에게 다가와 찰싹 달라붙었고 숨소리를 듣고 다가온 것 같은 마트료나라는 회색머리에 장발의 아가씨는 내 말에 깜짝 놀라서는 아버지 쪽을 향해 등을 떠미는 내 행동에 타타탁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버지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아버지의 벌린 손……아버지, 결박 언제 푼 거야, 어쨌든 아버지의 품으로 쏙, 안겨 들어갔다.


  “세린님……무서웠어요.”
  “응, 괜찮아?”
  “네.”


  마트료나씨의 발걸음 소리와 아버지의 말소리에 잠시 자리를 지키고 서 있던 단벌머리에 밝은 금발을 한 옐렌씨와 땋아 늘어뜨린 붉은 머리를 한 에리카씨가 걸음을 옮겨 아버지에게로 다가갔다. 살짝 울먹이는 그녀들을 아버지는 모두 품에 안고 토닥이면서 달래기 시작했다. 그런 것치고는 엉덩이를 쓰다듬는다든지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서 가슴을 비빈다든지 하여 ‘이런 바람둥이 아버지.’라는 내 감상을 확고하게 굳혀버리긴 했지만.


  “간지러워요. 푸훗.”
  “저두요. 세린님.”


  그리고 난봉질 시작. 꼴사납다.


  “세진님…….”
  “응. 다쳤네. 저쪽은 신경쓰지 말고 이리와.”


  마법을 이용해서 사샤와 올가의 얼굴에 자리 잡은 상처와 멍이 든 자국을 치료해준다. 생각해보면 지금 내 행동은 아버지와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어제 처음 만난 여자들과 노닥거린다는 것이니까 크게 차이는 없을 것이다. 오십보 백보랄까. 아버지가 저러는 것은 저 아가씨들이 ― 어머니라고 불러야 할지 고민되지만 아버지가 딱히 뭐라 말한 것이 없으니 곤란하다 ― 내심 상처 입었을 마음을 달래려는 것일테니까. 나도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는 것이니…….


  ‘남 말은 못하겠구만.’


  당하다시피 한 일이지만 어쩔 수 있나. 사내 놈이 아랫도리 잘못 놀렸으면 책임을 져야지. 한숨을 쉬면서 울먹이기 시작한 그녀들을 품에 안고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키스는 해줄 수 없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세진아, 거기에 있냐?”
  “네.”


  그녀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껴안은 채로 등을 토닥여주는데 아버지가 저 편에서 씨익 웃는 것이 보였다. 왜 부르나 생각하면서 바라보았더니 어떻게 아가씨들을 구워삶았는지, 필시 어둠을 핑계 삼았겠지만, 그녀들의 어깨를 드러낼 정도로 옷을 풀어헤친 아버지가 있었다. 우웃, 가, 가슴을 꺼내어서 주무를 생각이야, 저 사람.


  ――노출증입니까! 그보다 지금 여기에 갇혀있는 상황에서 땡기기나 합니까!


  급히 고개를 돌리고는 전음을 날렸다. 대체 아들에게 뭘 보여주려고 하는 거야. 하긴 저번에 경아 누나의 절진에 걸려서 성별이 역전되어 버린 사람에게 바람을 피울 때도 보여줄 건 다 보여주긴 했지. 설마하니 첩으로 삼을 여자는 보여줘도 상관없다는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런 약간은 불안한 생각을 하면서 아버지에게 다시 전음을 날렸다.


  ――아버지 저번에도…(중략)…그런 거야?
  ――아, 그때라면. 그 녀석이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말야. 원래 남자였던 녀석이라 별로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어. 오히려 보이는 편이 흥분된다고 해서 말야. 변태였지, 그 녀석.


  그런가. 아버지만큼 변태는 아니겠지만 변태는 변태인 모양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슬쩍 눈을 돌려 아버지 쪽을 바라보자 이번에는 확실히 앞섶만 풀고 이쪽에는 보이지 않게 여자들을 달래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마치 아이처럼 아버지가 아가씨들의 가슴을 빨고 그녀들은 아버지를 안고 편안함을 얻으려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이편에서는 드러난 어깨와 등까지만 보이고 더 이상은 보이지 않았다. 조금은 안심했다.
  조용한데다가 창고라서 그런지 어느 특정한 소리가 크게 울려서 여러 가지로 사람 마음 싱숭생숭하게 만들었지만.


  “세린님…….”
  “아앙! 장난꾸러기 같으셔!”


  이쪽은 마음이 싱숭생숭한데 저 편은 아무렇지도 않은지 허벅다리에 언뜻 비치는 속옷까지 노출하고서는 신나게 삽입 없는 관계를 가지는 중. 바로 근처에 우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탓인지 입을 앙다물고 신음을 삼키는 아가씨 트로이카들의 분전이 눈물겹기는 하지만……아버지이이이!


  ――그 아가씨들, 불안할텐데 알아서 달래주도록 해라.


  저걸 때릴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데 아버지의 전음이 들려왔다. 그 전음에 잠깐 고개를 돌려 내 옆에 고개를 숙이고 앉은 사샤, 올가 자매를 바라보자 역시나 한창 불안해하는 중이었다. 하긴 벽을 뚫는다거나 한 칼에 열 사람씩 베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런 식으로는 죽어도 안합니다.
  ――그건 네 마음이고.


  하지만 그녀들이 무력하다고 내가 무력한 것은 아니라 저 편의 소리가 들리지 않게 방음결계를 쳐버렸다. 찰싹대는 물소리가 사라지고 입술 사이로 간간히 새어나오던 신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아서인지 갈색머리 자매들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났던 방향을 보지만……조금의 빛도 없는데 보일 리가 있나. 눈에 적외선 기능도 없는데. 어쨌든 언짢은 마음에 아버지에게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건 아버지 마음대로 하는 겁니까?
  ――좋잖냐. 어차피 나는 긴장도 안되는 거, 이 아가씨들이 현실을 잠시 잊게 하려면 이런 것이 최고지. 우후후훗.


  ……대체 이걸 어쩌려고 그러나 생각했지만 결론은 아버지가 날린 전음대로였다. 그 말대로 이 아가씨들을 껴안아주는 것으로는 불안감을 풀어줄 수 없다는 생각에 잠시 고민했다. 그렇다고 아버지처럼 할 수는 없으니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가만히 고민을 하다가 한 가지를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아, 아앗!”
  “……어라?”


  내 옷자락을 손에 살짝 쥐고는 주변을 둘러보던 그녀들의 얼굴을 붙들어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꽉 눌러 붙이는 입맞춤이 아니라 살짝 닿았다가 떨어지는 입맞춤을 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당황했는지 두 사람 모두 어리둥절해하다가 입술을 만지더니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제대로 남자 사귀어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으면서 다시 안아준다. 내 웃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몰라도 불안하다기보다는 부끄럽다는 듯한 느낌으로 내 품으로 파고드는 자매들의 모습에 조금은 안도한다. 불안한대로 두어도 상관없지만 왠지 모르게 오지랖이 넓은 것 같은 성격 때문인가? 이 아가씨들이 불안에 떠는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일을 치고는 조금 후회한다.


  ――훗훗훗, 남자로구나. 아들아.
  ――시끄러.


  나중에 아내들에게는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흔들어 고민하던 것을 털어낸다. 어둠이 눈에 익었는지 반짝이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갈색머리 자매들은 약간 서운한 표정이다. 질투인가? 질투야?


  “……조금은.”


  보통 사람들이라면 이 상황에 가슴에 큐피트의 화살이 꽂혀야겠지만 그저 살짝 불쌍할 뿐, 하지만 상냥한 청년이라는 이미지에 맞게 그녀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고요하게 앉아있었다. 앞으로 어찌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


  그렇게 얼마나 앉아 있었을까. 한동안 볼을 부비적대기도 하고 옷자락을 만지작대기도 하던 그녀들이 내 체온을 느낄 수 있게 가슴을 빌려주고 있던 중에 인기척을 느꼈다. 아마도 이곳, 지하 감옥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창고에 누군가가 볼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도 기척을 느낀 것인지 아가씨 트로이카(라고 굳이 명칭을 붙여보았다)의 옷깃을 여미어주고는 가만히 앉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
  “…….”


  어째서 저 사람들이 여기에 나타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들을 따라온 시녀들이 결박당한 아가씨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썰물처럼 철수. 물론 옆창고로 이동한 것 뿐이지만. 남은 것은 결박이 풀려 언제든지 탈출할 수 있는 우리 두 사람과 그녀들뿐이었다. 암살자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것이 보이긴 했지만 이들이 쉽사리 나서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가만히 서 있는 그녀들의 태도에 잠깐 고개를 갸웃하려니 옆 창고에 아가씨들을 데려다 놓은 시녀들이 먹을 것을 가져왔다. 이건 또 뭐냐.


  “최후의 만찬입니까?”
  “때에 따라서는요.”


  이 이해하기 힘든 상황에도 아버지의 능청은 유지되고 있었는지 그녀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이 능청스러움이 마음에 들었던 것인지 웃음으로 대답하는 그녀를 보고는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곳 황궁에 더 오래 있기는 했지만 힘은 없을 28황녀가 어째서 나이는 어려도 자신의 어머니라고 할 수 있는 47황비를 저렇게 데리고 다니고 있는 것일까.


  “때에 따라서라……궁금하네요.”
  “제가 청하는 일만 잘 처리해주신다면야 최후의 만찬이 아니라 최초의 만찬으로 만들어드릴 수도 있어요. 두 사람, 형제인가요?”
  “조금 솔깃하긴 하지만 독소조항이 있는지를 들어봐야 하니 일단 그 이야기는 뒤로 물리고 형제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대답하겠습니다.”


  능글능글하게 웃는 아버지의 얼굴은 오래간만에 의욕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의욕이 가득한 겁니까, 아버지……라는 마음속의 태클은 잠시, 그녀를 다시 한 번 바라본다. 그리고 그 뒤에 서 있는 여자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협박당하는 것 같지는 않다. 분명히 자신의 의지로 따라온 것 같고, 28황녀도 그녀에 대한 살기라거나 무엇인가를 강요할 꿍꿍이는 없어보였다. 대체 무엇을 요구하려는 것일까.


  “일단 식사부터 하시죠. 그리고 나중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기에 댁들의 애인들을 함께 두기는 뭣하니 옆방으로 옮겼습니다만 옆에 쪽문이 있으니 언제든지 보려면 볼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너무 즐기지는 말아주세요. 언제 저희들이 찾아올지 모르니까요.”
  “그거, 자주 찾아오시겠다는 이야기인가요? 조금 부담되는군요.”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지는 않으신데요?”


  우후후 웃으면서 돌아서는 28황녀, 은발의 글래머 로리를 따라 47황비 역시 말없이 인사를 하고는 돌아섰다. 그녀들이 자리를 떠나자 시녀들이 들어와 이런저런 물건들을 챙겨주고서는 돌 굴리는 소리를 내는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떠들썩했던 순간이 지나가자, 왠지 모를 적막감이 주변을 맴돌았다. 아버지 역시 그 적막감을 느낀 것인지 한숨을 내쉬었다.


  “잘생긴 나를 정부情夫로 두겠다는 건 아닌 것 같……쿠억!”
  “지금이 헛소리 할 때입니까.”


  아니, 한숨을 내쉰 것은 아까 보았던 두 사람이 단숨에 안겨들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이었던 것 같았다. 대체 이 사람은 진지해질 생각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진지함만 장착해준다면 무슨 떼를 써서라도 황제자리에서 50년은 더 버티게 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에 든 쥘부채를 갈무리.


  “그 쥘부채……강력하구나.”
  “+20강이니까요.”
  “온라인 게임 아이템?”


  그리고 다시 얼빠진 대화 시작. 평소와 같은 대화였다. 왠지 모르게 이 사람과는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가끔 보이는 진지함은 일방적인 조언뿐이니까 말이다. 조금은 부족한 아버지라고 투덜대면서도 빙긋 웃었다.


  “농담이었습니다.”
  “쩝. 아쉽네.”
  “진심으로 아쉬워하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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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이전의 글은 볼 수 없다고 되어 있던 것이 30일 이전의 글을 볼 수 없다는 식으로 제한이 약간 풀렸군요. 운영진분들의 자애로운 모습에 그저 감사하다고 굽신거릴 뿐입니다. 이제 목표는 400점을 채우고 계속해서 파란색까지 나가는 것 뿐……이지만 역시 파란색까지는 무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신 캐릭터 소개는 다음 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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