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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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이 글은 양판소(……야)이므로 개념이 없고 명랑소설이므로 어이없는 일도 일어날 수 있는 막장입니다^^;;; 양판소의 깽판이 싫으신 분은 조용히 백스페이스로 넘어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작중에 언급되는 인물, 사건, 지명 등은 실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묘한 것이 보여도 신경쓰지 마세요. 깊게 생각하면 지는 겁니다. 이 글은 양판소이니까요.
*이 글에 대한 저작권은 저에게 있을지도 모르나 행사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양판소니까요.
*이 글은 명랑소설을 지향하고 있으나……양판소이므로 깽판입니다.
[양판소]아버지처럼 되기 싫었어요
13話 사흘 동안의 여행3, 1년간의 유예
33-1.
“아무리 ‘나’라지만 귀찮답시고 저렇게 사고를 내버리는 녀석은 싫어.”
여전히 여자 교복, 그것도 치마가 무지 짧은……녀석을 입고 있던 나는 절망감에 몸부림치는 가운데 어디를 향할 것도 없는 분노를 나 자신에게 쏟고 있었다.
“저러면 숨기려고 해도 다 들키잖아.”
바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바보다. 아무리 소드마스터라고 해도 5갈래로 나뉘어서 다가오는 적을 한꺼번에 일망타진할 방법은 없다. 알 수 없는 조직이 끼어들었다고 하더라도 각각 2천명이나 되는 병력을 별 피해도 입히지 않고 제압하는 방법이라고는 점혈밖에 없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점혈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우리 가족들뿐이다. 거기에 대책도 없이 진법을 써버렸다. 이 세상에 진법을 쓸 줄 아는 것은 나와 이운혜님과 넷째 누나 경憬뿐이다. 소문이 퍼질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뒤는 생각하지 않고 냅다 써버렸다. 남은 것은 잔뜩 화가 난 누이들의 갈굼뿐이다.
"진, 제대로 포즈 잡지 않으면 혼. 낼. 거. 야.“
“네에.”
뭐, 이것도 갈굼이라면 갈굼이니까……대체 저 녀석이 돌아오면 얼마나 더 심한 갈굼이 있을지. 걱정된다.
‘설마 저 녀석 불량품은 아니겠지.’
어딘지 모르게 ‘나’답지 않게 엉뚱한 짓만 반복하고 있는 녀석의 행동을 ‘전송’받으면서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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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한다. 불량품일 거야.”
“꺄르륵!”
즐거워하는 아이, 내 일곱 번째 딸, 미渼아와 놀아주면서 진분신126호의 생각에 동의한다. 뒤뚱거리면서 걷기 시작한 미아가 넘어지지라도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도 무사히 걷는다. 걷는 정도가 아니라 달리려고 하니 문제이긴 하지만.
“빠아! 아우!”
“그래, 그래. 아빠는 잘 따라가고 있어.”
“꺄하핫!”
뒤뚱거리면서 내가 잘 따라오고 있나 뒤돌아보기까지 하는 미아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면서 밖에 나가 있는 녀석에게 이빨을 간다. 그런데 왜 이렇게 오한이…….
“빠아! 꺄르륵!”
흐음. 기분 탓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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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악, 핫, 낭군님, 하악. 너무 좋았어요.”
“……확실히 불량품이군. 동의한다.”
“에엑! 저, 저로는 만족하실 수 없으셨던가요! 부, 불량품이라니. 어떻게 그런 차가운 말씀을!”
“너 말하는게 아냐.”
“버, 버리지 말아주세요. 전 낭군님이 없으면…….”
“하아……너, 제발 내 말 좀 들어주라.”
어디선가 바보같은 대화가 오고갔지만 별로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34.
“아아, 나도 반성하고 있다고.”
꿈속에서까지 앵앵 울리는 ‘나’의 목소리에 잠이 깨어버렸다. 대략 두 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있었던가. 하늘을 바라보니 햇살이 따갑게 내리쬐이고 있었다.
‘사, 살았어. 오늘도.’
밤의 여신과 새벽의 여신의 품에서 도주하여 오늘도 부지런히 서쪽으로 도망가는 태양의 신의 모습이 안쓰럽다. 그래봐야 무한히 붙잡히고 붙들려서는 쥐어짜일 운명인 것이다. 태양의 신은.
“약한 남자로구나. 당신은.”
‘당신이 비정상이야!’
태양의 신은 그렇게 절규하면서 눈물을 흩뿌리고는 계속해서 발길을 재촉한다. 다시 말하자면 때 아닌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요 몇 달, 비가 내리지 않았다고 하니까 나름대로 반가운 비가 될 것 같다. 뭐, 이런 감상은 그만두고.
“뭐야. 제법 하잖아?”
기감을 퍼트려 왕궁 내를 보았더니 제법 많은 사람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여왕의 지시에 따라서. 그 중에는 감옥에 갇혀있었던 사람들인지 꽤나 허약한 사람들도 종종 끼어있었지만.
“게다가…….”
왕궁 밖, 도시의 분위기를 보니 두 시간 전과는 달리 꽤나 활발해져 있었다. 내가 이 도시에 처음 들렀을 때의 음울한 분위기 대신 사람들 사이에 무언가 희망찬 빛을 발견한 것 같은 기운찬 발걸음들이었다.
“역시, 내가 하는 것보다는 당사자가 확신에 차서 움직이는 것이 제일이라니까.”
고개를 끄덕이며 기지개를 켠다. 품속에 넣어두었던 ‘포섭해야 할’ 영주들의 명단을 보았다면 일처리는 제대로 해두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 내가 할 일은 발닦고 자는 것 뿐. 제한 시간은 단 하루이지만 제대로 일처리를 했다면 내일 내가 움직이는 것으로 대강의 일은 끝날 것이다. 대강이라고 함은 영주들이 힘을 합쳐서 여왕을 다시 왕위에서 끌어내리는 일을 막기는 하지만 민란이 일어날 가능성까지는 막아주지는 못한다는 이야기다.
“저녁밥은 맛이 있으려나.”
폐위된 왕이 데려왔다는 요리사가 독을 넣지 않는 한에는 맛이 있을 것 같다. 꽤나 미식가였다고 하니까 말이지. 그 사람도 제대로 돈만 준다면 제대로 된 요리를 해낼 사람이니까 독을 넣을리는 없을테고.
“……하아.”
너무 빨리 해치워버렸나? 나라를 하나를 뒤집는데 이렇게 재미없는 일이 되어버리다니. 한숨을 쉬면서 조금은 무책임하고 많이 무개념한 생각을 하다가 반성하기를 반복한다. 머리를 긁적이며 고민에 빠진다.
“뭐 하나요?”
할 일을 찾지 못해 몸부림치던 나를 구해준 건 소녀……아니 여왕이었다. 여왕이 되었다는 자각에 조금은 위축된 것 같은 소녀. 어딘지 모르게 우물쭈물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할 일을 결정한다. 그것은,
교육이 필요하겠어!
제왕학 교육이다.
한 나라의 군주가 된다고 함은 속마음이야 어떠하건 굳건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 포인트다. 물론 자신의 진심을 보이면서 솔직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아래에 있는 사람들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일에 전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고로……강의를 시작합니다.”
“저녁 시간이 되었습니다만?”
아니, 그 말을 하려고 온 건가.
지금까지의 장광설에 어딘지 모르게 감탄하던 순수한 소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어딘가 세속의 때가 잔뜩 묻은 여왕의 모습이 드러난다. 과연 여관 종업원 출신 여왕. 2년의 세월을 그냥 보내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렇게 자유로운 표정의 변화라니.
“뭐, 대충 제가 할 말은 알아들으신 것 같으니 밥이나 먹죠.”
“네.”
내가 가르치지 않아도 자신의 위치를 자각한 것 같은 소녀에게 손을 내밀면서 예의바르게 에스코트한다. 그 모습을 아침의 혼란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지 못 본 척 고개를 푹 수그리고 걷는데에만 전념하는 모양이다.
저녁은 맛있었다. 달콤한 케이크에 독을 넣은 요리보조에게는 머리를 식히라고 ‘별빛부수기(비살상버전)’을 쏘아주고는 지하감옥에 가두어버렸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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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상황을 살펴보자. 갑작스런 기인의 난입으로 왕위를 되찾은 여왕의 곁에는 총 60명에 이르는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쓸만하지만 아직은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 조금, 그리고 갑작스런 변화에 얼떨떨한 환성을 지르고 있는 도성의 시민 30만과 충성을 맹세한 1만의 병력이 있다. 적어도 암살이라거나 독살에 대한 위협을 제외하고서는 이곳에서 그녀를 위협할 세력은 없다.
하지만 전 국토를 배경으로 해보면 또 다른 문제가 된다. 도성에 머무르고 있던 자녀들이라거나 부인, 혹은 그 자신이 억류된 상황에 처하지 않은 폐위된 왕이 임명한 영주들은 위협이 된다. 그들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병력을 모두 합산하면 20만이다. 이 중에서 지금까지 억눌려 살고 있던 ‘충정파’ 영주들에 대한 압박을 가할 병력을 제외하고 나면 10만이라는 병력이 남게 된다. 10만 대 1만. 엄청난 전력차다.
“아무런 피해도 없이 1만이라는 병력을 제압하신 진님도 이런 전력차이를 뒤집어주시기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밤. 저녁식사를 마치고 회의실에 모인 여왕과 나, 그리고 30명의 기사들은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참고로 회의에 ‘쓸만한’ 사람들을 부르지 않은 이유는 아직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뭐, 그렇긴 합니다만…….”
10만이 아니라 1억이 와도 막아낼 수 있다고 말하려다가 참는다. 그까짓 것 손짓 두세 번만 해주면 싹 쓸려나갈 정도이긴 하지만 ‘평범한’ 소드마스터는 그 정도 병력까지는 막아내지 못한다. 하지만 적은 분산되어 있고 아군은 뭉쳐있다. 그걸 이용하면 되지 않을까.
“도성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2만의 군대가 필요합니다. 그 병력이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모르겠지만 병력을 빼낼 틈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고작 시민들 중에서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연령대의 장정들을 소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 녀석이.
꼬박꼬박 말대꾸에 여념이 없는 20대 초반의 남자를 보면서 마음속과는 달리 빙긋 미소를 짓는다. 배신자 주제에 말이 많구만. 지금은 사태의 추이를 바라보는 중인 것 같지만.
“그럼 그렇게 하세요. 당신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죠. 어떻습니까?”
“……알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내 눈은 못 속여. 여왕에게 붙었을 경우 생기는 이익과 이 ‘반정’을 송두리째 무너뜨렸을 경우에 생기는 이익을 저울질하고 있는 걸. 내 표정을 보고 얼굴을 굳힌 녀석에게 삐딱한 웃음을 지어주고서는 자리를 뜬다. 저 녀석이 여왕을 공격하려고 해도 내가 준 아티팩트가 있으니 안심. 자기 전에 다른 아이템들도 줄까.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아서 그런가, 왜 이렇게 속이 배배 꼬이는 건지.”
뒤틀린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잠시 서성이다가 하늘을 바라본다. 내가 왜 이러는지 잘 알 것 같은 신이 저 너머에 있지만 지금 나는 찾아갈 수 없는 상태.
‘네 마음대로 안되니까 그냥 화를 내는 것 뿐이잖아?’
‘나’들이 일제히 외쳐주었지만 그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는 것만 같았다.
35.
생각해보면 이곳에서 환생하기 전의 내 인생은 꽤나 ‘꼬였다’라고 할 만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편이었다. 딱히 남에게 하소연을 할 정도로 힘든 건 별로 없었지만 그러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았던 것뿐이니까. 그리고 환생한 이곳에서도 제법 높은 지위로 태어나기는 했지만 내 마음이 가는 쪽으로 일이 진행되기는커녕 상황에 휩쓸려 다녔으니 이런 일을 벌이고 있는 이유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즉, 말하자면 지금 나는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중인 거다. 주변을 둘러볼 생각도 하지 않고 일직선으로 결과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중. 그런데 지금 결과를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하려고 했더니 여기저기에 함정이 있다. 그리고 그 함정에 빠지지는 않고 있지만 이 함정 자체가 또 다른 거대한 함정이라는 것과, 나는 이미 거기에 빠져있다는 상황 자체에 짜증이 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구만.‘
‘그렇다고 누이들에게 들킬 정도로 날뛰지는 말라고.’
‘조금은 돌아가는 것이 어때? 그냥 들켜서 조금 꾸중을 듣더라도 진심으로 이야기를 해준다면 누님들도 이해해줄 것 같고.’
‘나’들이 내 생각을 이해했다는 듯 ‘그냥 거기에서 일이 끝날 때까지 머무르는 건 어떻겠느냐.’라는 생각을 전해왔다. 따지고보면 시간제한이 없다면 느긋하게 함정을 하나하나 부수고 이 거대한 함정 자체도 느긋하게 즐기면서 일을 마무리 짓고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뭐, 그렇게만 되면 좋은데 말야.”
누님들에게 설득을 실패할 경우의 후환이 두렵다는 거다. 나는.
‘말했어.’
“뭣!”
‘누님들에게 말했다고. 지금 ’내‘가 속이 엉켜버려서 앞뒤 분간도 못하고 날뛰고 있다고 말야. 처음에는 즐거워하는 것 같아서 내버려두고 있었는데 초조해하는 것이 일을 망칠 것 같다고 말이지. 그러니까 누님들은 일단 1년 정도 시간을 주겠다고 하더라고. 그 이상은 전력전개로 이야기를 듣겠다고 했지만.’
아아, 1년. 1년이면 시간은 충분한 건가. 최소한 이 나라 안에서 일어날 커다란 위협 요소는 어떻게든 해치울 수 있게 된 건가.
‘그러니까 잘 해보라고. 나중에 ’내‘가 그 사건에 끼어들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들키게 되더라도 그 사람이 참 대단하구나 할 정도로 하라고 말야. 참, 참고로 그 애랑 바람은 피우지 마라.’
아니, 나는 로리콘이 아니라.
‘그 애가 후대를 잇기 위해서 ’내‘가 필요하다고 하면 거절할 수 있나?’
끄응.
‘그러니까 조심해.’
알겠다.
‘뭐, 상관없어 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뭐?
‘만약의 경우 ’내‘가 그 아이를 안는다고 하더라도 셋째 누나가 유전자를 완전히 바꾸어버릴 거라는 이야기야. 아예 부인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이야기지. 생과부를 만들겠다는 이야기야. 차갑긴 하지만 해치지는 않을 것 같아.’
그런가. 완전히 1년 간의 유희로 끝내라고 말한 거구나. 아니, 그보다 이미 내가 로리콘이라는 건 확정입니까! 그런 겁니까!
‘그런 셈이지.’
알겠어. ‘나’ 자신이 ‘나’를 그렇게 생각한다면 가능성은 있는 일이겠지.
‘1년을 준 이유는 간단해. 제국을 위협할 세력을 만들 생각이 없다는 거지. 1년 정도 일해준다고 해도 그 나라가 정상으로 돌아올 정도지 새로 힘을 갖출 수 있을 정도까지는 아니잖아?’
1년간의 유예를 얻었다. 그것이 내 ‘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취급하겠다는 누이들의 마음씀씀이에는 조금 감동받았지만 조금은 씁쓸하다. 이것이 내 ‘꿈’이라고 하더라도 이 나라의 사람들에게는 현실일텐데.
그래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을 얻었으니 좋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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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프리그 왕국의 전 영지에 분신들을 보내 영주의 머리맡에 편지를 두었다. 정중하게 ‘새로운 국왕전하의 즉위식에 참가해주십시오.’라고 적어두기는 했지만 어디까지나 도발이다. 아마 내일 아침이 되면 도성의 상황을 파악하고는 며칠 간 긴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새로운 국왕이 얼마나 보장해줄 수 있을까. 자신들을 해치려고 들지는 않을까? 앞으로 자신들은 어떻게 될까. 아마도 적대적일 것이라고 예상되는 영주들은 잠시 몸을 낮추고 상황을 지켜보려고 할 것이고 우호적일 것이라고 예상한 영주들은 즉시 수행원들을 데리고 왕궁을 향해 달려올 것이다. 어디까지나 약식으로 하는 즉위식이니까 모든 사람이 참가할 필요는 없다.
“그럼 이번에는…….”
지하 감옥에 갇힌 주제에 다시 권력을 쥘 생각에 편안한 잠을 자고 있는 녀석들에게 가보도록 할까.
“할 일은 배신자를 함정에 빠뜨리고, 영 못쓰게 된 나라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그리고 여왕이 제대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 정도인가.”
민심은 여왕이 제대로 국정을 운영하기 시작하면 돌아올테니까. 살기 팍팍해서 산적이 된 사람들도 관용과 이해로 포용한다면 어느 정도는 순박한 농민으로 돌아오겠지. 그게 안되는 인간들은 상황에 따라 병사로 차출하거나 토벌하는 것이 옳겠지만.
“할 일이 많네.”
아주 엉망으로 나라 살림을 꼬아놓은 폐위된 왕에게 이빨을 갈면서 지하감옥에 들어선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폐위된 왕이 꾸는 꿈이 어떤 내용인지를.
‘아사, 서큐버스를 안고 나서 생긴 능력인가.’
집중하지 않았는데도 남의 꿈을 파악할 수 있다니.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있는데 ‘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사의 친구들을 이용해서 ’나‘에게 의식을 링크시키고 있는 거니까……크윽. 핥지마! 일단 누님들도 같이 보고 있어. 괘씸한 녀석인데? 아사 이 녀석!’
아니, 그게 아니라 서큐버스를 이용한 것 같다. 어쩐지 좀 이상한게 다른 ‘나’들과 링크가 잘 안맞는지 하는 행동을 읽을 수가 없게 된 것 같다.
‘1년 동안 조금 링크를 제한하기로 했다. 누님들도 네가 바람피우는 걸 알면 욱할 거고……. 그래서 네가 돌아오면 전력전개로 때려눕혀서 기억을 날려버릴 생각 만만이야. 누님들은.’
다른 말로 하면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못 본 척하겠다는 이야기인 것 같다. 일단 멋대로 밖으로 나돈 벌은 그 정도로 그치겠다는 것 같고……이 녀석이! 마를렌 누나의 몸매는 그렇지 않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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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가 막힌 일이지만 프리그 왕국의 폐왕은 군침까지 흘려대면서 주변의 왕국을 제압하고 대륙 최강이라는 미시어스 제국을 점령한 후 누이들을 범할 생각이었던 것 같다. 꿈속에서 그는 마왕을 소환해서는 이 모든 일을 이루고는 다섯째 마를렌 누나와 내 어머니 아라니엔을 눕혀두고 마구 허리를 놀려대고 있었다. 물론 진짜 마를렌 누나라거나 진짜 내 어머니인 아라니엔이 아니라 서큐버스들인 것 같았지만.
어떻게 아냐고? 마를렌과 내 어머니는 저렇게 무식하게 가슴이 크지는 않다. 아무리 봐도 이 폐왕. 가슴이 큰 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크크큭. 처녀가 아닌 것이 아쉽군.’
아무래도 이 꿈이 현실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진심으로 즐거워하고 있었다.
“어떻게 죽일까. 이 녀석.”
진심으로, 나는 생명체에 대한 경의 같은 것은 버려두고 저 짜가 누나와 어머니까지 한꺼번에 베어버릴 결심을 한다. 감히 내 부인과 어머니의 형상으로 있었겠다?
‘누, 누구냐. 넌!’
‘나? 네 꿈 속에서 마왕에게 일격에 날아가버린 녀석이지. 누나의 남편이자 어머니의 아들이지. 일단 좀 맞고 보자.’
그리고 꿈속으로 발을 내딛어 순식간에 들어간 후, 때려버렸다.
‘쿠억!’
제 꿈속에서는 자신이 최강이라고 하더라도 꿈과 현실의 경계를 - 부인의 도움이긴 하지만 - 건널 수 있게 된 나에게는 안되겠지. 신도 때려눕힐 힘을 가졌다고 설정해놓긴 했지만 돈까스 썰던 나이프로 신들을 도륙할 수 있는 나에게는 안되지. 그렇게 허무하게 날아가버린 폐왕의 정신을 잘근잘근 밟아서 기절시키고는 괘씸하기 그지 없는 서큐버스들을 노려본다. 내 흉흉……할 것으로 짐작되는 눈빛에 움찔 떠는 서큐버스들.
‘자, 잠깐만요!’
‘너희들과도 일단은 이야기를 해야겠지?’
그리고 잠시, 이야기를 했다.
“아, 아파.”
“잘못했어요. 으아앙!”
지하감옥에 때 아닌 여자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나는 내 것에 손 대는 것을 싫어하는 욕심쟁이. 때문에 나는 서큐버스들의 여왕을 부른다.
“부, 부르셨어요?”
내 부름에 즉각 달려온 서큐버스 퀸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어 부하 단속 잘못한 죄를 추궁하고는 용서해주기로 했다. 물론 조건을 달고.
“우리 가족의 형상을 빌어서 ‘식사’를 하는 건 금지다.”
“넵!”
“돌아가.”
“넵.
내 분노를 1/10000만큼 담아 살짝 어루만져준 얼굴을 비비고 있던 서큐버스 퀸은 돌아가라는 말에 즉각 도망갔다. 그런 짓, 다시는 하지 않겠지.
“…….”
그나저나 이 녀석은 살려두고서는 오만가지 형벌을 가해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일단 잠부터 깨워볼까? 일단 기절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이.”
“으으윽.”
“일어나.”
내 분노를 1/1000000만 담은 킥으로 녀석을 벽 중간으로 붕 띄워버린다. 그것만으로도 녀석은 빈사상태. 손수 힐을 해주어 다시 몸을 복구시켜주고서는 일어나기를 기다린다.
“너, 너는!”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녀석은 나를 향해 마구 적대감을 표출해왔다. 이 녀석 봐라?
“크흐흐. 꿈이었군. 상관없어. 원래 이 공간은 마왕을 부르기 위해 마련했던 곳인데 딱 좋은 곳에 데려와 주었어. 좋아. 계획과는 다르지만 내 피를 떨어뜨리면……아니, 이미 떨어졌군. 크흐흐, 늦었어.”
그리고 실성한 듯 마구 말을 쏟아내는 녀석을 기가막힌 듯 바라보려다 들려온 말에 기겁한다.
“그 년도, 반역자들도, 천민들도 모두 제물이 되는 거다! 이렇게 된 이상 감출 이유는 하나도 없다! 와라! 최후의 마왕이여! 나와 계약해서 이 세계를 지배하는 거다!”
제에기랄! 이 녀석이 미쳤나!
하지만 이미 소환진은 발동해버렸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지하감옥에 있던 녀석들만 소환진의 제물이 되게 하는 것 뿐. 꿈 속에서 마왕을 소환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쿠구구궁.
그리고 황급히 짠 내 결계의 힘을 소환진이 꾸역꾸역 먹어치우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지하감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 살려줘!”
“데려가지마! 날 데려가지마! 끄아악!”
영 좋지 않은 녀석들이었지만……소환진에서 나온 촉수들이 벽을 부수며 남자들이고 여자들이고 짜부라뜨리는 것을 보면서 입술을 깨문다. 대체 얼마나 되는 욕망이기에 이정도의 위력이…….
“세계를 정복하고 최고의 여자들을 모두 얻을테다! 크하하하!”
마기가 넘실대는 지하감옥에서 녀석의 목소리만이 유일하게 비명이 아니었다. 그 목소리에서 음습한 욕구를 보고는 다시 욱했다. 녀석의 머리에는 세계 최고의 미녀라는 우리 가족에 대한 욕구가 가득했던 것이다.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해주리라! 황급히 쳐서 소환진을 제어할 수 없는 내 결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힘을 쏟으며 녀석에게 다가가 내 분노를 1/100만 담아 후려쳐준다.
“크하……크억!”
하지만 녀석을 때려눕혀도 이미 늦었다. 소환진은 이미 충분한 힘을 받은 듯 활성화되었고 이미 ‘문’은 열렸다. 누가 나오든지간에 때려눕히면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문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를 부르다니, 좋은 선택이었다. 쓰레기. 자, 원하는 것이 무엇……커억!
내 눈에 보인 것은 사래가 들린 마왕이었다.
이 녀석 의외로 바보인 것 아냐? 그것이 이 마왕을 처음 본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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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소환. 마왕의 정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