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렉스 20
어둠.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빛이라고는 한줄기조차도 비치지 않는 어둠.
오로지 검은 것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닌가 싶은 곳에, 그녀가 있었다.
최강희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마음 속, 심층계의 끝자락, 가장 절망적인 나락에, 그녀는 그렇게 누워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았다. 태어났을때의 모습, 순수의 모습으로, 그녀 자신, 본연의 모습 그 자체로, 그녀는 그렇게 그곳에 있었다.
강희는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얼굴에 표정을 띄운다는 것조차, 아무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진달까. 아니, 그런 행동 자체를 하는것이 힘든 상황이라고 봐야 할것이다.
강희는 생각한다.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다고. 이 어둠이, 자신을 끝없이 추락시키고 있다고. 자신은 결코 거기서 벗어날수 없다고...
그렇게, 어둠에 사로잡힌, 검은 공동(空洞) 위에 몸이 내맡겨져 있는 그녀의 심층계에, 한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쿠아아
물. 물소리. 힘찬 물소리가, 그녀의 눈을 슬며시 떠지게 하고, 그녀의 귓전이 울릴 정도로 짓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콰콰콰-
세차다는 표현이 가볍게 들릴 만큼, 그 물은, 엄청난 기세를 담고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거대함, 장중함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욱일승천하는듯한 기세로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 있었다.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불어난 그것은, 순식간에 그녀의 나신을 받치고, 물 위에 둥둥 떠있게 하였다. 그리고, 위에는 오로지 검은 것만이, 아래에는 단지 시리도록 푸르러 보이는, 바다를 연상하게 할만큼 넓은 물만이 존재하게끔 하였다.
바르르....
".....하아악........"
몸이 바들거릴정도로 차갑디 차가운 물이 자신의 몸을 띄워 올리자, 그녀는 입에서 한기를 내뿜었다.
후우...
입에서 냉기가 나오는게 아닌가 싶은 숨을 힘들게 내뿜으면서 그녀는 고통스러워했다.
"..아윽...."
강희는 추위때문에 몸부림이 쳐질것 같은 심정이었지만, 자신의 몸은 꼼짝도 하지 못한다. 어찌된 일인지, 이 차가운 물이 얼음이라도 된 양, 그녀의 팔을, 다리를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는 듯하다. 제지하는 듯하다. 구속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계속 추위에 몸을 떨어대면서 고통에 찬 신음성을 흘렸다. 그때....
"생각보다 금방 만나게 되었구나. 바보 괴력녀"
강희는 눈을 감고 속으로 생각했다.
"자아의 이성...."
그녀는 입을 열었다.
"..자아의 이성...그렇지?....너지?"
목소리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말을 걸어왔다.
"맞아. 나야. 이런 곳에서 바보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길래, 놀리려고 찾아왔지"
강희는 다시 몸을 부르르 떨면서 힘겹게 말했다.
"..어떻게...여길 알고....."
자아의 이성은 흥 하고 강희를 비웃어줬다.
"멍청하긴...난 너의 심층에 있는 존재. 니가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 어디에 있다고 해도 난 바로 널 만날수 있어. 이런 상태일 때의 너를 찾는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지. 설령 경계식에 들었다 해도, 난 얼마든지 너와 대면할수 있어. 이 머저리같은 여자야~"
"....그....그렇다면 과거엔 왜...."
과거의 경계식때를 회상하면서 강희는 질문을 던졌다. 당시 그녀는 경계식에 있을때 오로지 그녀 혼자만이 존재했던 것이다.
자아의 이성은 얼른 대답해줬다.
"아 그건 이야기가 틀리지. 그때만 해도 너에게는 M 성향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난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을 시기이니까. 그러니 당연히 그때는 너 혼자였었을 수밖에"
자아의 이성은 강희에게 Bondage와 Tickling이라는 성향이 내재될 당시에 생성되었던 M속성의 집결체 였으니 과거의 경계식때는 존재치 않았던 것이다.
강희는 금새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다시 힘겹게 말을 이었다.
"...돌아가줘...지금은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너라고 해도...."
자아의 이성은 그녀의 말을 듣더니 킥킥 하고 웃은 후 그녀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흥! 멍청한! 역시 내 생각대로 넌 바보야. 겁쟁이일 뿐이야. 잘 들어 최강희. 난 너와 헤어진 후에, 니가 어떻게 하나 쭈욱 지켜보았어. 니가 경계식에 드는 그 순간까지 말이야.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넌 정말 한심하고 형편없는 여자애라는 거야. 그게 내 감상이야"
"..무..무슨 소리야...."
강희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때 갑자기...
콰드득!!
"!! 아하악!"
강희는 거친 숨소리를 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서울정도로 심한 고통이 자신을 엄습했기에..
뚜드득 뚜득
"아학!! 하으윽...!!"
강희는 괴로운 신음성을 흘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그 고통에서 벗어난다는건 불가한 일이었다.
강희는 너무나 강한 고통에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여서 상황을 잘 인지할수는 없었지만.....그녀는 결박되어 있었다. 묶여 있었다.
그녀의 몸을 받치고 있던, 깊이를 짐작하기가 힘들정도로 새파란 물이, 갑자기 결빙되더니 새하얀 얼음으로 화한 것이다.
그 얼음들이, 원형의 모양을 이루고 창처럼 길쭉해져, 기둥식의 모양을 취하더니 다섯개가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다섯개의 얼음기둥은 각각, 강희의 등허리와, 팔다리에 해당하는 사지를 띄워 올렸다. 그렇게 그녀를 수면에서 몇미터정도 띄워 올리더니 어느 한 점에 안착했다.
강희의 사지를 띄워올린 얼음기둥들은, 그녀의 손목과 발목을 감싸더니 그 모습인 상태에서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희의 등허리를 짓쳐올렸던 얼음기둥은, 사지를 결박한 기둥들보다 좀더 길게 자라나서, 그녀의 등허리를 무섭게 압박해 들어갔던 것이다.
마치 그녀의 허리가 활대인양, 역으로 꺾어들어가게 할 셈인지, 거칠게 그녀의 배후를 눌러대고 있었따.
강희의 무서운 고통은 거기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몸을 감싸고 있는 얼음들에서 발산되는 한기때문에도 그러했고.
쿠드득 쿠득
"아악!! 꺄아악!! 하으윽!!"
등허리를 밀어대는 기둥의 힘에 의해 강희는 괴로운 소리를 계속 내질렀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아의 이성이었다.
"킥킥. 어때? 고통스럽지? 기분 좋지 않니? 너의 성향은 M이잖아? 이 피학증녀!!"
"꺄아아!! 아학!!"
강희의 고통에 찬 목소리가 듣기 좋은지 자아의 이성은 룰루랄라 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강희가 비명을 지르건 말건.
"여왕하고 박사한테 그리 말했던가? 너의 몸은 몰라도 의지는 꺾을수 없다고? 쿡쿡...멍청하구나 너 정말. 넌 니가 되게 잘난 여자앤줄 아나본데...글쎄다? 내가 보기엔 넌 어중간한 애야. 정말. 니가 뭐가 그리 잘났니? 응? 이 바보같은 여자야. 한심한 계집애. 긍지? 자존심 ? 웃기지 마...넌 아무것도 아냐.
넌 그들에게서 너의 자존심을 지킨 게 아냐. 너의 의지를 각인시킨게 아냐. 넌 다만, 도망쳤을 뿐이야. 맞서기 싫어서. 무서워서 말이야. 나한테 그랬지? 쾌락이 아무리 좋아도, 지키고 싶은 친구가 있다고. 같이 숨쉬고 싶은 이들이 있다고. 그러면서 나를 설득하려 했지. 하지만...결과는 어떻지? 넌 또 도망친거야. 또 변명한거야.
지금도 봐. 한유정을 구해내겠다고 한 그 결심, 그 의지. 다 어디로 갔니? 내 눈엔 그런게 전혀 보이지 않는걸? 니 스스로 말했잖아. 여왕한테. 기억 안난다곤 못하겠지? 그 애를 구할 상황도 못되고, 다 힘들고 때려치고 싶댔잖아? 쉬고 싶다고 그랬잖아? 기피했잖아? 너의 의무를 말이야. 안 그래?!!!"
자아의 이성은 말을 마치면서 확 목소리를 높였고 강희의 등허리를 무섭게 압박했다.
콰드득 카드득!!
"!! 아!! 아아아악~~!!"
강희의 눈에, 무서운 고통으로 인해 ,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강희는 계속 꺅꺅대었다.
자아의 이성은 그런 그녀를, 몸서리치는 강희의 육체를 바라보는듯하다가 말했다.
"책임감도 없으면서, 그런 말을 나한테 왜 했지? 넌.....넌 아무것도 아냐....한심한 여자애일 뿐이야.. 뭐 좋아...어쨌건....나는 M 성향. 니가 만들어낸 쾌락의 집결체야. 이제부터 내가...너의 소원대로 해주지. 지금부턴 내가...최강희, 너를 구속해주겠어. 마음껏 괴롭혀주지. 킥킥...."
자아의 이성은 말을 마친 후에 일단 강희의 등을 압박하던 얼음기둥의 움직임을 멈췄다.
"케헥!! 콜록!! 아...하악!!"
강희는 부르르 떨면서 거친 숨을 연신 몰아쉬었다. 숨을 돌리기에도 급한 듯했다. 그런 상태의 그녀에게, 들으라는 듯이 자아의 이성이 말했다.
"경계식에 든 이상...너와 만날수 있는건 어차피 이제 나뿐이야.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턴, 내가 너를...고문해주겠어. 유린해주겠어. 이렇게....."
수면의 모양이 다시 바뀐다. 물줄기가 생성되어 떠오르고, 얼음의 결정들이 솟아오른다.
"!!"
강희는 당황해서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송곳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얼음들을, 일직선으로 찔러들어오는 물줄기들을.
촤아아~~
쉬시식!!
강희의 온 몸에, 순식간에 얼음 송곳이 달라붙었다. 그것들은 강희의 목을, 턱 아래를, 겨드랑이를, 유두와 그 주변을,옆구리를, 팔꿈치를...상반신을 무섭게 긁어대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로지 일직선으로 강하게 쏘아지는 물줄기들은, 그녀의 종아리에, 허벅지에, 발등에, 발가락 사이에, 발바닥의 온 표면에 자기 몸통을 부딪치듯이 쏘아져 들어왔다.
강희는 그것들에 의해 몸이 강타당하는 순간,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아!! 아아아악!! 꺄하하하하하하하하~~~~~~~!!! 아아아하하하하하~~~~!! 으꺄아아아아악!!!!! 아흐흐흐흐흐흐하하하하~~~~!!!!"
부르르..
강희는 온 몸을 주체할수 없는 듯이 바들바들 움직여댔으나, 소용없었다.
자아의 이성은 키득댔다.
"이곳은 심층계. 너의 완력은 통하지 않아. 여기야 말로, 진정 내가 여왕이라 할만한 장소에 적합하지. 축하해. 이제부턴 내가 너를 즐겁게 해줄께~ 강희야. 후후~"
촤자자작~!!
바각 바가가
간질 간질 간질
"아하하하~~!! 꺄아아악~~!!! 시!! 싫어어하하하하하~~~~~~~~~!!아하하하하하하하하~~!!!!으꺄아아아아하~~~"
강희의 웃음소리를 즐겁게 들으면서 자아의 이성은 즐거운 듯이 말했다.
"난 너 자신이야. 난 니가 어디를 가장 간지러워하는지, 가장 예민한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간지럽혀주면 더 효과적인지를 모두 다 알지. 나야말로 널 즐겁게 해주는 데에 있어선 가장 적합할 거야. 완벽한 구속도 안겨 줄수 있고 말야. 킥킥....
그거 아니? 사우전드...넌 사우전드에 누워 있으면서, 너 자신은 부정하는지 몰라도, 그것에 매료되어 있었다는 걸. 넌 그녀석의 차가움에 반해 있었어. 매료되어 있었지. 후후.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똑같은 상황을 다시 만들어주려 하는거야. 어때? 기분좋지? 시원하지? 응? 킥킥"
"아!! 아냐아하하하하~~!!! 거짓말이야아하하하하하하하하~~~~~꺄아아아악~~!!"
강희는 부정하려 했지만 도저히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부들부들
꼼지락 꼼지락
부드러운 발바닥의 표면 전체에 세차게 뿌려지는 가는 실선같은 물줄기들, 그것들은 강희의 발바닥 표면에 점이 찍힌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강한 수력(물의 힘)으로 그녀의 압점을 자극해대고 있었다.
그때문에 강희는 미친듯이 발가락을 꼼지락댔다.
"아학!! 꺄흐흐흐~!! 아아아아하하하하~~!!"
강희가 발가락을 놀리는 속도와 움직임의 빈도가 강해지자 자아의 이성은 흠..하더니 배시시 웃는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넌 손가락이랑 발가락까지 묶여야 완벽한 구속으로 인정하지? 미안해. 대접이 소홀했네. 명색이 너의 성향인데 취향 하나도 못 맞춰주고 말야. 잠시만 기다려. 헤헤~"
자아의 이성은 장난스런 웃음을 짓더니 다시 수면에서 실뱀같이 가는 물줄기들을 만들어 순식간에 강희의 손가락이랑 발가락을 죄다 묶어버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발가락을 좌우로 팽팽하게 당겨서 가락들의 사이틈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생긴 틈들의 공간을, 얼음송곳으로 긁게 하고 물줄기가 뿌려지게 했다.
바가각 바각
촤자자자!!
움찔
"아!! 꺄아악!! 꺄하하하하하하~~!! 아으으윽!! 으꺄아하하하하하하하~~~~~~~~!!"
강희는 다시 미친듯이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강희의 몸부림을 어딘가에서 보고 있는듯이, 낭랑한 웃음소리를 까르르 내는 자아의 이성.
그때, 강희의 몸이 구속되어 떠올라 있는 곳을 중점으로, 지름이 수십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얼음창살들이 생겨났다.
촤자작
콰드드
그것들은 순식간에 결빙되고 퍼지면서, 수직으로, 수평으로 뻗쳐 비죽비죽 솟았다. 그리고....순식간에 하나의 거대한 Cage(우리) 를 만들어냈다.
강희는 그 거대한 얼음 감옥 안에서 몸서리치도록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괴로움에 떨어대고 있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 꺄하하하하하하하하악~~!!"
강희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괴로움의 눈물이. 고통의 눈물이.
그때 자아의 이성이 황홀한 기분인듯이 말했다.
"그래...이런 맛이야....더 괴로워 해. 더 간지러워 해. 더 고통스러워 해. 더욱더!! 마음껏!! 미치도록!! .....그리고...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즐거움의 쾌락을....맛봐....후후~"
"아흐흐흑!! 아흐흐흐~~~!! 싫어어하하하하하하~~~~"
자아의 이성은 반항하려는 듯한 강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비웃었다.
"소용없어. 앞으로 너는...이 심층계 마저 닫히는, 너의 의식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오로지 나하고만, 오로지 이곳에서만 지내야 할테니까. 후후. 걱정마. 너의 숨이 멎기 전까지는 기분좋게 해줄테니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라 그런지, 전신이 급소이군. 좀만 더 있다가 그곳도 자극해줄께 킥킥~"
"아으흑!!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강희는 찢어지듯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를 다시 한번 조소하듯이, 아하하~ 하면서 자아의 이성의 웃음소리가 퍼져올랐다.
그 거대한, 어둡고 차가운 공간에서, 강희의 비명을 들어줄 이는,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비명소리만이....웃음소리만이....아스라히 사방을 메우듯이 연신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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