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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야설) 붉은 달(月)을 베다. 20 회


**  白雲俠(낭만백작)著/ 붉은 달(月)을 베다.  **



제 20 회  에도염정(江戶艶情) 1


명(明)을 위시한 모두가 하루(春)와 사다에가 가까워진 그 궁금증을 풀기위해 하루(春)의 설명
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지난날 히데요시님이 모든 토지의 신고를 명하였을 때 가신중의 한사람이 야마토(大和)에 있
는 야규유 마을에 토지를 숨겨놓은 인물이 있다고 거짓 참소를 한 사실이 있었습니다. 그 누명
을 뒤집어 쓴 인물이 있습니다. 야규우 마을의 장로였지요. 그 어른이 여기계신 사다에님의 아
버님 입니다. 그 어른이 히데요시의 모진 처벌 때문에 목숨을 잃을 지경에 달하였으나 그 당시
저의 아버님께서 그 누명을 백일하에 밝혀 목숨을 구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나이였던
사다에님은 그때부터 저와 가까워 졌으며, 운명까지도 비슷해 우리 둘 다 이 나이에 과부가 되
어 마치 여승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오호.. 고니시님이 목숨을 구해 주셨다? 또한 운명까지 비슷하다? 그래서 절친한 사이가 되었
군요. 그러나 지금은 그 입지가 서로 반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려..!」


그런 것이구나! 명(明)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라보자 하루(春)의 얼굴은 더욱 처연한 표정이 되
며 말을 이었다.


「예. 지금은 히데요시의 편에 섰던 아버님께서는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야규우 마을은 이제
위세가 당당해진 도쿠가와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었지요.」


앗차.. 말을 잘못 꺼냈는가 당황한 명(明)이 하루(春)를 위로하려 급히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오 하루(春)님,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에도는 하루(春)님에게 적지(敵地)나 다
름 없는 곳입니다. 하여 혹시나 신변에 위험이라도 따를까 염려하여 드린 말씀입니다.」


「그래요. 명(明)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마지막 까지 기개를 굽히지 않고 이에야스님에게 투항
하지 않고 돌아가신 고니시장군에 대한 적대감이 이곳에는 만연합니다. 이제는 제가 은혜를 갚
은 차례입니다. 이분들의 안전을 제가 책임을 질 테니 하루(春)님은 어서 이곳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몸을 피하세요.」


사다에 역시 하루(春)를 향해 명(明)의 말에 이어 진심어린 표정으로 고언(苦言)을 했다. 그러
나 하루(春)의 얼굴에는 서글픈 표정이 흐른다.


「후후후.. 오사카성에서도 도망나온 이 하루(春)가 안전한 곳이란 어딜까요? 어디에 있으나 마
찬가지입니다.」


하루(春)의 말에, 명(明)이 고로에게 손짓을 하여 가까이 불러 그의 귀에 무슨 말을 소곤거린
후 하루(春)를 향했다.


「당분간 오오스미(大隅)의 구리노죠오성으로 가 계십시오. 그곳이라면 시마쓰(島津)장군께서
안전하게 보호해 주실 겁니다.」


말을 한 후 고로에게 눈짓을 했다.


「예 마님..! 그리하십시오. 저 두 명의 부하들이 그곳까지 편히 모시고 갈 겁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도 마님의 신변을 평안(平安)하게 지킬 것입니다.」


「명(明)공자님..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내일아침 일찍 출발을 하세요. 두 분께 마님의 안녕을
당부 드립니다.」


하루에게 당부를 한 사다에가 곁을 지키고 있는 두 명의 닌자(忍者)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사다에의 얼굴에는 기대가 듬뿍 담긴 묘한 표정이 떠오르고 있었다.


 * * * * * * * * * *


모두 곤히 잠들어 있는 시각..!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하게 고로가 명(明)의 곁으로 다가왔다.


「주무십니까 공자님..?」


「어.. 고로님 아니오? 아직 잠들지 않았습니다만.. 무슨 일이오?」


「예.. 긴히 말씀드릴게 있어서..!」


고로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앉는 명(明)을 향해 자세를 바로 하고, 겨우 명(明)에게만 들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공자님.. 저는 내일 아침 에도성(江戶城)내로 잠입합니다. 그리고 암살(暗殺)의 징후(徵候)를
소문 낼 것입니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은밀히 자신의 계획을 알리러 아무도 모르게 명(明)을 찾아 온 고로
였다.


「어떻게 하실 작정이오?」


「공자께서는 여기에 머물다 모레 아침 일찍 사다에님의 안내를 받아 성(城)으로 들어가십시오.
그리고 오시(午時)에 맞추어 본전 뜰 앞에 필히 나와 계셔야만 합니다.」


「왜 하필이면 모레 오시외까?」


고로의 말에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 같아 되 물었다.


「예.. 공자, 그날 성내의 본전의 마당에는이에야스님이 임석(臨席)한 앞에서 어전시합(御前試
合)이 벌어집니다. 고가(甲賀)의 닌자(忍者)들은 그 기회를 틈타 잠입을 해 암살을 단행할 것입
니다.」


「아하.. 그때를 이용하라는 말이구려! 그런데 어전시합이란 무엇이오?」


「어전시합이란 이에야스님이 인재를 고르기 위해 직접 자신의 앞에서 겨루게 하는 무예의 경연
장입니다. 물론 성내의 모든 중진들이 그곳에 모여 있겠지요.」


그말을 들은 명(明)의 머리에는 조그만 의문이 생겼다.


「고로님..! 조금 전 그날 자객이 침투하리라는 사실은 미리 알려놓겠다고 하시지 않았소? 그렇
다면 주변에 철저한 경계가 이루어 질 것! 그 닌자들이 침투를 하기 전에 성내의 군사들에 의해
모두 체포되리라는 생각은 안해 보셨소?」


「하하하.. 명(明)공자님..! 그 닌자들은 성의 어떤 방비도 뚫고 침입을 할 능력이 있는 자객들
입니다. 분명 그들은 어떤 난관을 뚫고라도 시각에 맞추어 그 자리에 나타납니다. 때문에 공자
께서 그들을 물리친다면 공자님의 뛰어난 기량(技倆)을 어전에 모인 모든 중진들에게 과시를 하
게 되겠지요.」


「허허.. 그런가? 알겠소이다.」


명(明)이 고맙다는 눈빛을 띠며 끄덕이자 고로는 고개를 숙이며 작별을 고한 후 방을 벗어나 스
르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 * * * * * * * * *


다음날 오전..!
하루(春)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두 닌자의 호위를 받으며 오오스미(大隅)로 떠나고, 그곳에 남
아 있는 윤충과 설아조차도 난감한 앞일을 생각하느라 늦은 오후까지 방안에서 꿈쩍도 않고 긴
침묵 속에 빠져들어 사다에의 목당(木堂)은 한결 적막(寂寞)에 젖어 있었다.


그 적막을 깨고 사다에가 명(明)의 곁에 살며시 다가와 옷소매를 잡아 끌었다.


「명(明)공자님.. 저와 잠시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무.. 무슨 일입니까?」


막무가내 자신을 목당(木堂)의 뒤쪽 동산으로 끌고 가는 사다에의 행동에 명(明)의 눈속에는 당
황한 빛이 흘렀다.


「호호호.. 안심하고 저를 따르셔도 됩니다. 하루(春)님의 절실한 부탁말씀 때문이니까요.」


하루(春)의 핑계를 대고 생글생글 웃으며 뒷산의 언덕아래 인적이 없는 곳까지 명(明)을 이끌고
간에 사다에가 한 동안 물끄러미 명(明)의 얼굴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하루(春)님이 공자께 단단히 마음을 준 모양입니다.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공자께서 성안으로
들게 해야만 한다고 저에게 강요를 하더이다.」


사다에의 눈꼬리에 교태가 흐르고 있다.


「아.. 아니오 사다에님, 그건 제가 하루(春)님에게 억지를 부리며 부탁을 드린 일입니다.」


「호호호.. 그리 감싸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 사다에도 명(明)님의 부탁이라면 꼭 들어드려야
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납니다.」


「이것 참..! 그렇다면 소생이 사다에님께 정중히 부탁을 드리지요. 저를 성내에 계시는 야규우
(柳生)님과 만나게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순간 사다에의 눈에서 번쩍.. 광채가 일었다.


(오호.. 이 청년은 벌써 이에야스님의 주변을 모두 파악하고 있구나. 그래.. 마주해 병법을 논
하며 허심탄회하게 서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면 그 분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겠지!!)


무인은 인품이 뛰어난 무인을 먼저 알아보고 존경의 마음을 가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때문에 명
(明)이 자신의 상대로 이에야스가 가장 신임하는 측근이며 병법스승인 무네노리를 선택한 것이
리라 여긴 사다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오라버니를 소개해 달라 하셨습니까?」


「어엇.. 오라버니라 하셨소? 소생을 단지 야규우 마을 출신이라 들었기에 혹시나 하여 부탁을
드렸는데 사다에님의 오라버니가 되신다니 오히려 제가 사다에님게 매달려야 겠소이다.」 


「그 분은 제게 일가의 오라버니가 되지요. 다행히 혼자된 저를 불쌍히 여겨 잘 챙겨 주십니다.
호호호.. 그 오라버니에게 접근을 하여 마음껏 기량을 뽐내 오라버니의 마음을 사로잡겠다 그런
생각이십니까? 그러나 그 분은 좀처럼 검을 뽑아드는 어른이 아니십니다.」


「그러니 부탁을 드리는 거지요. 어떻게 하던 비무를 이루도록 말씀드려 주십시오. 꼭 그 분과
함께 어전에 자리를 해야 할 사정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호호.. 제가 공자께 한 가지 청이 있습니다.」


「청이라..? 말씀해 보시지요.」


「별 다른 청이 아닙니다. 저 스스로 공자님의 무예를 경험해 보고 싶습니다. 저의 눈을 뜨게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은근히 자신과 겨루어 보기를 원하는 사다에의 용심(用心;정성스런 마음)이었다.


「허허.. 그럽시다. 대신 소생의 부탁도 들어주시는 겁니다.」


「알았습니다. 그러나 공자님, 제가 만약 공자님을 이기게 된다면 제가 어떤 행동을 해도 공자
께서는 거절을 하면 안됩니다!!」


 * * * * * * * * * *


지나는 발걸음조차 없는 호젓한 언덕위에 명(明)과 사다에가 마주해 있다.
펄렁이는 옷소매를 팔뚝에 질끈 동여매고 두 손으로 대도(大刀)의 손잡이를 쥔 채 앞으로 내밀
고 있는 사다에의 눈빛은 빨아들일 듯 맑았다.


「허.. 좋은 자세..!」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명(明)은 죽장(竹杖)속의 검은 뽑지도 않고 지팡이를 머리위로 천천히 들어
올려 죽장(竹杖)의 끝을 하늘의 중앙을 가리키고 있었다.


「호호호.. 공자님..! 온몸에 빈틈이 보입니다. 저를 놀리려 하십니까?」


사다에의 말에 빙긋 웃음만 띌 뿐이다. 그러나 명(明)은 마음속으로 잔뜩 긴장을 하고 있었다.


(오호.. 이 여인은 무모(無謀)하게 그냥 달려들 작정을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속셈일까??)


상대의 의도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중천(中天)을 향해 수직으로 뻗어 올린 월영검(月影劍)의 자세..! 명(明)이 취한 팔방허무의 검
세(劍勢)는 보기에 따라 온 몸이 허점투성이다.
그러나 사다에의 기예(技藝) 정도라면 그 인유(引誘;유인하여 끌어들임)허세를 모를 리가 없다.
그 허(虛)를 틈타 달려든다면 한 순간에 사다에의 검을 날려버리고 비무를 끝내려 한 명(明)의
마음에 혼란이 찾아온 것이다.
지금 사다에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예기(銳氣)는 그 모든 검법을 무시하고 무작정 명(明)의 가
슴속으로 뛰어들 작정인 것이었다.


무모(無謀)한 사다에의 모습에 주춤.. 평정을 잃은 순간..! 사다에의 입에서 날카로운 기합소리
가 터져 나왔다.


「하핫.. 얏..!!」


대도(大刀)의 칼날이 날아드는 것이 아니라 사다에의 몸뚱이가 명(明)의 품속에 날아 들어왔다.


「헉.. 허헉..! 이.. 이런..!」


명(明)은 달려드는 사다에의 몸을 부등켜 안고 땅바닥에 뒹굴 수 밖에 없었다.


「호호호호.. 공자가 저에게 졌습니다.」


명(明)의 품에 안겨든 사다에가 놀리듯 웃으며 말한다.


「어허.. 사다에님..!」


꼼짝 못하게 안겨들어 등 뒤로 팔을 돌려 부등켜 안고 떨어지지 않는 사다에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하며 쩔쩔매며 더듬더듬 입을 여는 명(明)의 입을 사다에가 자신의 입술로 덮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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