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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더블 데이트 - 3부


나의 더블 데이트 - 3부 

 

한 달이 지났다. "낙원"의 모양새가 점점 갖춰지고 있었다. 막바지 전기 배선 작업을 하느라 몹시 바빴다.

 

 

 전기기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도면을 들여다볼 눈을 가지고 있는 나는, 낙원 공사에서 전기 배선에 대한 일을 총괄적으로 담당하고 있다. 덕분에 사역 활동에 참여하지 않아도 되었다. 나름대로 성경공부를 한다고는 하는데, 말빨이 그리 좋지 않아 사역에는 영 소질이 없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다만 이 일을 하느라 이명희의 소식을 탐지하지 못하고 시골에 박혀 있는 것이 영 마음에 들지 않다만... 이 역시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생각했다. 원 목사의 약속은 아직도 유효했다.

한 여름의 찌는 더위는 이 깊은 산 속까지 미치고 있었다. 인부들의 손이 점점 느려지는 걸 보고 점심시간이 되었단 걸 알았다. 작업반장을 불러 식사를 주문하도록 했다.

"밥 먹고 하시죠."

"그럽시다. 어구구구우."

인부들이 허리를 펴며 몸을 푼다. 공구와 자재를 내려놓고 마당에 옆에 있는 간이 건물로 발걸음을 향한다. 

"식사 다 하시거든 한숨 쉬고 하시죠. 날이 너무 더워서 작업 능률이 안 오르겠네요."

"그럴깝쇼? 좀 한풀 꺾이거든 허든가 해야지, 허허. 이것 참."

작업반장인 고 씨는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연신 훔쳐내었다. 잠시 후, 식사가 배달되었고 인부들과 함께 먹은 후 자리를 떴다. 인부들은 이곳저곳에 벌러덩 드러누웠지만 난 좀 걷고 싶었다. 해가 드리우지 않은 곳을 골라 천천히 걷는다. 원래 이곳은 나무가 많았지만 개간을 하면서 죄다 밀어버렸다. 군데군데 남아있는 나무들은 도저히 베어서 넘기기 곤란한 정도로 큰 것들이었다. 조금 걷다보니 온실 근처에 도착하게 되었다. 날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한석!"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바텐더가 날 부르고 있었다. 그는 밤나무 한 그루 아래에 자리를 깔아놓고 거기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못 보던 아가씨가 앉아있었다.

"어디 가는겐가?"

"그냥 좀 걷고 있습니다."

"그래? 한잔 할텐가?"

그가 들어보이는 술잔을 보고 피식 웃고 만다. 내가 그걸 거절할 리가 없는데 권하다니. 와서 마시라는 소리나 진배없다. 걸음을 돌려 바텐더에게 향한다. 그의 곁에 앉으면서 아가씨를 향해 눈인사를 보낸다. 이제 갓 스물 정도 되었을까. 매끈한 얼굴에 도톰한 입술을 가진 매력적인 아가씨였다. 마치 안데르센 동화를 기념하는 인어공주의 동상처럼 다리를 접고 앉아있었는데, 검은색 H라인 스커트 밑으로 쭉 뻗은 그녀의 무릎 아래의 모습이 눈부실 지경이다.

"인사하게. 여긴 요번에 날 찾아온 고객, 멀리서 부산에서까지 오신 분이야. 이름은...."

"송은아라고 합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나 역시 엉겁결에 일어나서 명함을 받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준 명함에는 "경남산업개발"이라는 상호가 찍혀 있었고 그 아래에 "송은아 대리"라고 적혀있었다.

"이건 이분이 사오신 아주 맛있는 술일세. 경주 법주라고, 자네 마셔봤나?"

"아뇨. 아직은...."

바텐더는 자신이 들고 있던 잔을 쭉 들이켜 비워내고 내게 내밀었다. 잔을 받아들자 은아가 옆에 있는 커다란 술병을 두 손으로 들고 따르기 시작했다. 꿀렁꿀렁 술잔이 차오르는 동안 그녀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보고 있었다.

"잔 채웠네, 이 사람아. 안 마시고 뭐해?"

 

 

그녀의 손가락을 보느라 잠시 멍해있었다. 바텐더의 재촉을 받고 서둘러 잔을 비웠다. 향긋하면서도 부드러운 술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술 자체가 독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 무더운 한여름의 열기에, 그리고 여색이 전하는 은은한 기색에 나도 모르게 취할 것만 같다. 그러고보니 너무 오래 굶었다. 여기 있는 여자라고 해보아야 김은혜 아니면 식당 아줌마들인데, 하나같이 여인의 향기를 맡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은혜의 경우는 향기는 고사하고 독기가 뿜어나오는 사람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어때, 맛 좋지?"

바텐더의 말투에는 은근한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그가 묻는 맛은... 과연 술맛일까.

"그렇네요."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은아는 바텐더를 향해 더 바싹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

"박사님이 원하신다면 매주 사들고 올라올 수도 있어요. 원하신다면 말이죠."

그녀의 목소리는 꽤나 은근했다. 아까 느꼈던 색기가 괜한 것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바텐더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그저 얼굴 가득한 주름을 찡그리며 껄껄 웃을 따름이었다.

"내 다른 사람한테라면 몰라도 부산 사람에게는 팔기 좀 그렇단 말야.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아이, 참.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된다니까요? 물건을 주겠다는 약조만 하신다면 저희가 신경 쓰이는 일 없도록 철저하게 해드릴게요."

이런 비유를 해도 좋을지 모르겠는데... 은아의 말투는 흡사 술집 여자가 더 비싼 안주를 시키라고 조르고 있는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날 신경쓰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표현은 여러 방향으로 달랐지만 내용은 한결 같았다. 은아는 자신의 회사에 바텐더의 물건을 들이고 싶어했고 바텐더는 공급을 거부했다. 바텐더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은아는 요청을 거듭했다. 그녀의 부탁은 점점 더 간곡해지고 애절해졌다.

"원 목사님도 흔쾌히 허락하셨다니까요. 가격은 어차피 저희가 알아서 맞춰드리는데.."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니깐 그러네. 허허."

나는 술잔을 혼자 채워가며 가만히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마시는 술은 정취가 있었고 맛도 있었다.

"박사니~임. 저 이번에 진짜 약속 못 받아가면 회사 못 돌아가요. 진짜라니까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말야. 그쪽에서는 내 작품도 못 믿겠다는 눈치잖아."

"그건 박사님이 워낙 여지를 안 주니까 그러신 거죠. 언제 샘플이라도 주셨던가요? 네? 네에?"

처음에는 그저 바짝 다가앉은 정도였지만 이제는 숫제 그녀의 몸을 바텐더의 팔뚝에 밀착시키고 있었다. 조금 타이트한 정도로 입고 있던 블라우스가 바텐더의 팔을 꾸욱 누른다. 그녀의 두 가슴 사이로 바텐더의 팔이 자리한다. 난 그 장면을 쳐다보고 있다가 바텐더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가 웃는 걸 보며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바텐더에게 내 음심을 들켜버린 것 같아 조금 부끄러웠다.

"좋아. 그러면 말이지. 이렇게 하자구."

바텐더는 은아의 허벅지 부분을 살짝 두드렸다. 저런 손짓에 기분 나빠할 법도 한데 은아는 전혀 그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바텐더에게 점점 더 다가간다. 저러다가 품안에 안길 판이다.

"어떻게요?"

"이번에 새로 개발한 게 있네. 그걸 자네에게 주지."

"정말이세요, 박사님?!"

은아는 두 팔을 번쩍 들고 바텐더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그러나 바텐더는 몸을 빼내어 피했고 은아는 조금 뻘쭘해졌다.

"그럼 따라오게."

바텐더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은아가 그를 따라나섰다. 돗자리에서 벗어나 조금 걸어가던 바텐더는 고개를 돌려 아직 앉아있는 날 바라보았다.

"자네는 안 오는가?"

"예? 저도... 가야 하나요?"

"바쁜 일 없으면 오라구. 좋은 구경을 시켜줄테니."

바텐더의 제안에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바텐더와 나란히 걷는 은아의 뒷태를 감상하며 따라걸었다. 그러다 뒤에 두고 온 경주 법주가 생각났다. 아직 반 병 가량 남아있었다.

"남은 술은 어떻게 할까요? 박사님. 들고 갈까요?"

바텐더에게 묻자 그는 손을 내저으며 대답했다.

"대충 둬. 뭐.. 다시 마실 생각도 없네. 연구실에서 마시는 건 이제 그만 하라고 하더군."

남은 술이 좀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달 전, 원 목사의 소개로 만난 바텐더와 난 죽이 잘 맞았다. 그와 난 종종 어울려 술을 마시곤 했다. 다른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나를 마음에 들어했다. 어쩐지 위험한 눈빛을 갖고 있다나 뭐라나. 거기에 원 목사나 은혜를 제외하고 내가 가장 긴 가방끈을 가지고 있어 바텐더의 좋은 말상대가 되었다. 나 역시 술을 마다하지 않는 성격이기에 그의 권주가 딱히 싫지 않았다. 게다가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얻게되는 묘한 지식들이 종종 있었다. 지금 같은 경우만 해도....

"거기 앉게."

 

 

연구실에 들어서자 바텐더는 나와 은아에게 의자를 권했다. 등받이가 없는 둥근 의자에 각각 앉아 대기한다. 바텐더는 벽 쪽에 붙은 선반 앞에 서서 뭔가를 열심히 제조하고 있었다. 그는 잠깐 고개를 돌려 은아 쪽을 보고 물었다.

"송은아 양? 실례지만 몸무게가...?"

"네?"

"자네의 몸뚱아리가 가진 질량을 물어보는 거네만."

바텐더의 표정은 진지했다. 반쯤 웃고 있던 은아도 엉겁결에 자신의 몸무게를 불고만다. 헤에... 보기보단 많이 나가는군... 이렇게 생각하고 있으려니 그녀가 날 쳐다보는 걸 깨달았다. 황급히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았다. 연구실 한쪽에 놓인 간이침대를 보면서 딴청을 피웠다.

"오케이. 좋아. 다 되었군. 이거면 충분하겠어. 팔을 내주겠어, 은아 씨?"

한참 뭔가 뒤섞던 바텐더가 작은 주사기를 들고 돌아왔다. 길고 뾰족한 바늘이 달린 그 주사기에는 푸른 색의 액체가 담겨있었다. 실실 웃고 있던 은아의 표정이 점차 굳어진다.

"저...저한테 놓으시게요?"

그러자 바텐더가 씨익 웃는다.

"하다못해 샘플이라도 받아가는게 자네의 소명아니었나? 아까 내가 말했잖아. 자네에게 주겠다고."

"주겠다는 게...?"

"내가 직접 핸드메이드한 최고의 샘플을 자네에게 직접 주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싫은가? 응?"

은아는 뻣뻣한 표정으로 이도저도 아닌 표정을 지으며 주저했다.

"저, 그게... 그러니까...."

그녀가 머뭇거리자 바텐더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그는 주사기를 갈무리하며 말했다.

"뭐야, 칵테일만 받으면 뭐라도 할 것처럼 굴더니, 겨우 샘플 받아가는 것도 못 하겠다는 사람이었나? 이 거래는 없었던 일로 하지."

"박사님!!"

은아는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하지 못했다. 바텐더의 물건을 받아가기 위해 노력하던 그녀였다. 물건을 내주지 않으려는 바텐더를 여기까지 꾀는데만 꽤 오랜 시일과 많은 수고가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바텐더가 자신의 약을 직접 내밀며 그녀에게 맞으라고 권하고 있다.... 바텐더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던 나로서는 저 푸른색의 칵테일이 대체 무슨 작용을 하는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직접 보게 되는 건 처음이었다. 어쩐지 나까지 묘한 기대감에 사로잡힌다. 바텐더는 은아를 보며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

"싫다면 돌아가게. 나도 두 번 권하는 취미는 없으니 말야."

그러자 은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밖으로 나가버리는가 싶었는데 그녀는 바텐더에게 다가간다. 자켓을 벗자 반팔 블라우스로 채 가리지 못한 뽀얀 팔뚝이 그대로 드러난다. 바텐더의 주사바늘이 팔뚝에 닿자 은아는 몸을 살짝 움츠렸다. 그러면서 묻는다.

"약속하시는 거죠? 저희와 계약하는 걸로?"

"후후. 자네가 이 샘플을 마음에 들어한다면 말이지. 내 얼마든지 줌세."

 

 

길고 가느다란 바늘이 은아의 팔뚝을 찌른다. 그녀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바텐더가 피스톤을 밀어 주사액을 그녀의 몸 안으로 모두 밀어넣었다. 알콜솜을 하나 집어 주사 위치에 대고 누른 채 바늘을 뽑는다.

"기분이 어때?"

"아직은 잘...."

바텐더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갸웃하려고 했다. 바로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이 확 꺾였다. 놀란 내가 그녀를 받쳤다. 그녀의 거친 숨결이 내 팔에 와닿는다.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사람의 체온이 이토록 급작스럽게 변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하악....하악....학.... 박사님...이건...정말....."

그녀는 무언가 말을 하려고 했지만 그게 여의치 않아보였다. 숨쉬는 것조차 괴로워보였다. 내 팔을 붙잡은 그녀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간다. 그녀가 내뱉는 가뿐 숨이 내 피부에 와닿는다.

"침대는 저쪽이라네, 한석."

"눕힐까요?"

"아니, 따먹으라는 소리야."

바텐더의 말에 깜짝 놀라 고개를 들고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어느새 캠코더를 꺼내들고 이쪽을 찍고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눈을 찡긋한다.

"공짜 술 마신 보답은 해야하지 않겠어? 응?"

"바텐더... 이건...."

"내가 자네에게 말했지 않나. 나에겐 아주 훌륭한 술이 있다고 말야. 모든 이를 즐겁게 만드는 묘약."

바텐더의 설명이 채 나오기도 전에, 바지와 팬티 안에 숨어있던 내 물건이 먼저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거칠게 내 바지를 벗긴 은아는 그대로 내 물건에 달려들었다. 굶주린 사람처럼, 그녀는 그것을 사납게 입에 물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질척한 입안의 감촉에, 당장 온몸의 피가 한군데로 쏠리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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