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몰래 경험한 색다른 세계 (33)
* * * *
사랑...해? 나를..?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가.. 나, 은애를 사랑한다?
나와 서준 이 남자는 우연한 사고를 빌미로 인연이 만들어져 살을 섞었고,
지금은 조건이 전제된 상황에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성행위에 집중하였지만,
사랑은 순수해야 한다는 그 구절에 엄연히 배치되는 불륜일 뿐인데..
서로의 벗은 몸을 보여줘, 내면을 표현했다고 해서 쉽게 가까워지고,
상대를 신뢰하고 깊히 배려하는 마음만으로 사랑을 느낀다는 것일까..?
부끄럼마져 노출하고 바닥부터 시작된 우리의 관계가 욕구를 발현한 지금에사,
서로의 존재 가치를 조금이나마 인식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그런 회의속에서 조차 내가 변해버린 것인지,
아니면 나 자신의 일탈을 스스로 합리화하기 위해 위장막을 덧씌우는 건지,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본능적인 욕구를 배제하는 사랑도 순수할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오빠와 민주, 남편과 수연, 나와 동건씨, 이 남자와 은애..그리고..일탈속의 남녀들,
사랑은 구속이다, 성행위는 탐욕이다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순수라는 단어로 겉만 화려하게 포장해 상대방을 붙잡아 옭아매는 욕심은 아닐른지 모르겠다.
사랑, 구속, 순수, 욕심...!
탐욕으로 점철된 나 자신의 욕망이 순수한 남편의 사랑을 곡해하고, 여지껏 구속해 온 것이라면..
오빠가 나만의 남자라고 생각했듯이..나란 여자역시 과연 남편만을 위한 여자인걸까..?
얼마 동안이나 두 사람이 포개져 있었을까.
남자의 성기는 줄어들어 처음 만큼의 팽창감은 물론 단단함도 사라지고,
서로의 몸을 접착제처럼 눌러 붙이고 있는 사정액이 점점 식어가는 느낌이다.
갑자기 치솟는 의구심과 말할 수 없는 혼란스러움에 푸르르 몸을 떨며 일어난 나.
내 몸 여기저기에 잔뜩 뿌려졌던 사정액이, 찌지직! 종잇장 찢어지는 것같은 소리를 뱉어,
저만큼 던져 놓았던 나의 이성을 차갑게 일깨우며 남자와 갈라지게 만든다.
이 남자의 사랑이 아무리 강력한 순간접착제라도 헤어져야 할 시간이고,
서로 다른 극성을 띈 지남철처럼 착 달라붙어 한 몸이 되었던 우리가,
어쩌면 다시는 영영 맞닿을 수 없는, 끝없이 평행선을 그어가는 기찻길의 레일처럼,
서로와 서로에게 간극을 두고 자기 삶을 살아가야 할지 모른다.
모든 욕망이 한 순간에 타들어 간 불꽃처럼 시들어 가는 시간,
욕실로 들어가 대충 남자의 흔적을 지우고 나온 나는, 속옷을 챙겨입기 시작한다.
거울을 쳐다보니, 미친 년처럼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머리를 한 여자가,
본능의 음란함에 흠뻑 적셔졌던 그 속옷차림으로 서 있었다.
서둘러 헝클어진 머리를 뒤로 묶어 올린 나는, 치마바지를 위로 올려 본래의 모습을 갖춰간다.
[으,음! 갈려구..?]
언제 일어나 다가왔을까..남자는 풀기가 다 빠진 표정으로 멀뚱하니 내 앞을 가로막는다.
[시간이 너무..늦어서..말했쟎아! 남편 퇴근전에는..]
[음..그렇네..참, 내가 오늘 정신이 없어놔서...]
남자는 아쉽다는 얼굴로 블라우스 버튼을 채우고 있는 나를 말끄러미 바라보더니,
옷걸이에 걸려있던 바지 포켓에서 장지갑을 꺼내 하얀 봉투 하나를 집어내었다.
그리곤 아주 조심스럽게..내가 들고왔던 핸드백속으로 밀어넣었다.
[그 봉투..모야..?]
[..이건...]
[뭐냐니깐..?]
[그냥..봉투..흐음! 은애가..댓가성이니 선수금..뭐, 그런 생각하지 않도록 오해없이 전해 달랬어..]
[뭐..? 광고주..그 남자가...?]
대답대신..무언으로 긍정을 나타내며 고개를 외로 꼰 서준은 씻지도 않은 몸에 바지를 꿰입는다.
그러나 나는 왜 샤워도 하지않고 옷을 입느냐고..묻지않았고,
다만, 아직 구체적으로 스폰계약을 맺은 것도 아닌데..돈봉투를..? 하며 의아해 했을 뿐,
더 이상 길게 생각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던 나는 남자보다 한걸음 앞서 방문을 나서야했다.
호텔을 나온 우리는 아파트를 향해 오는 내내 어색한 침묵을 지킨다.
사랑하기 때문에 나를 떠나 보내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다시 볼 수 없음을..알기에,
그리고 우리가 나누었던 관계를 가슴언저리 어딘가에 묻어두고,
평생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은연중에 감지한 때문일까.
남자는 저만큼 우리 아파트단지가 보일 때쯤 큰길가 차를 멈추며 입을 열었다.
[남의 눈도 있고.. 아파트앞까지 데려다주지 못하니..여기서..]
[응, 오늘 정말..고마워!]
내가 남자의 뺨에 가볍게 볼키스를 해주고 몸을 돌리는데, 그가 내 팔을 살짝 잡는다.
[으응, 모레 갈때 전화해..우리 계약은 오늘로써 끝났는지 모르지만..그분 댁까지 데려다 줄게]
차분하려 했지만, 하지만 마음은 어수선하여 애써 굳은 표정을 숨긴 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않은 채 말없이 차문을 밀치고 땅바닥에 발을 내딛었다.
순간 내 머릿속에선, 헤어짐을 앞두고도 끝까지 배려를 아끼지 않는 남자를 보며,
어쩌면 서준 이 남자를 다시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한다.
그러나 내가 걸어 가야 할 길을 나 스스로 결정해 한 발을 내딛었 듯이..
남자 역시 더 이상의 미련은 갖지 않았으면 하고 마음으로 바래본다.
하지만 조수석 윈도우를 내리고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남자는,
오래도록 시선을 던진 채 나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 * *
신경안정제를 복용했지만 악몽을 꾸고 난 뒤라 그런지 쉬 잠을 청하지 못했던 나는,
엊그제 있었던 그 일들을 그렇게 몽조리 되더듬어 머릿속에서 리와인딩했고,
그러던 사이 나도 모르게 설핏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에효~ 도대체 얼마나 깊이 잠을 잤으면..오빠 혼자 일어나는 줄도 모르고.."
크게 기지개를 켜며 눈을 반짝 떤 나는 곁에 남편이 없음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평소 늘 하던대로 조반준비를 마칠 때쯤 안방으로 들어온 내가..
오빠의 머리를 부드럽게 긁어주거나, 새벽참에 힘이 불끈 실린 거시기를 살짝 어루만지면..
"으응, 이쁜아!" 하고 빙긋 웃으며 잠을 깨곤 했는데..
맙소사..더군다나 오늘은 내게 중요한 약속이 있어, 티 안나게 더 잘 해도 모자랄 판에..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햇살이 엉덩이를 한참이나 간지럽혀서야 눈을 뜨다니..
침대에서 내려온 나는 발가벗은 알몸에 네그리제도 걸치지 않고,
안방에서 거실로..주방으로 두 눈을 휘저으며 부랴부랴 뛰쳐나왔다.
"우리 이쁜이 곤히 자길래.. 나 그냥, 혼자 아침 챙겨먹고 출근한다..
무슨 고민이 있나..기가 약해졌나 하고 걱정했는데..병원에 안 가봐도 될려나..?"
식탁 한가운데 자리잡은 촛대에 눌러져, 내 눈에 화악 밟혀오는 하얀 메모지 한 장.
마치 갓 입학한 초딩처럼 게발 세발..유난히 글씨를 못쓰는 나완,
비교할 수 조차 없는 수려한 오빠의 필체..
한 자 한 단어 읽어나가던 나는 어느새 허둥대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음을 느낀다.
그리고 비록 짧은 메모였으나 구구절절 나만을 생각하는 오빠의 맘 씀씀이에,
메모지를 와락 움켜 입술에 대서는 쬭쬭 키스하듯 입맞춤을 해대었다.
"휴우~뭐라고 둘러대나..? "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나마도 잠시, 저녁에 있을 약속을 떠올리자 가슴이 두근두근 심하게 방망이질 친다.
힘없는 손길로 전화기를 찾아 든 나는 남편의 단축번호를 천천히 찍어 눌렀다.
[여..여보!]
[으,응! 이쁜아..여기 공장안이라.. 잘 안들려..]
[미안해요..제가 너무 깊이 잠들어서..]
[응, 괜챦아...메모봤구나..그래, 병원엔 가보지 않아도 되겠니..?]
[네, 그보다..저기...]
웅웅거리는 기계소음에 섞인 탓인지 중저음의 남편 목소리가 들렸다 끊어졌다..한다.
이것저것 쓸데없는 변명을 늘어놓든 나는, 전화기를 잠시 손으로 막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어..오빠! 오늘 저녁에..나, 여학교동창회 모임이..있는데...]
암만 잔머리를 굴려보아도 저녁 늦은 시간까지 짬을 낼 만한 핑게거리가 쉬 떠오르지 않아,
나는 그냥 순간적으로 동창회 모임이 있다고 둘러댄다.
[응..응, 알았어!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수다 많이 떨고 잘 놀다 와!]
[저녁식사는 차려놓고 나갈께요..좀 늦을지 모르구요]
[어? 아냐..나도 오늘저녁 어디 갈데가 있어서..밥은..]
[그래요..?]
[후~어쩌냐..? 그나마 우리 이쁜이 걱정 안시키고..공장을 꾸려 나갈려면..
사회적으로 약자인 내가..선물꾸러미..한 번 더 찾아가..사정이라도 해봐야지..]
아파트를 시세보다 싸게 급매물로 내 놓았지만 경기가 좋지않은 때문인지,
부동산에서 보러오는 일도 없고, 그나마 한두 사람 다녀가긴 했지만,
터무니없이 매매가를 낮춰 얘기를 해왔던터라 내가 나서서 상담을 거절하고,
여지껏 차일피일 미뤄왔던 것인데..
발등에 불이 떨어진 남편은 공장 운영문제로 본사 전무의 집에까지 찾아갈 모양이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났다고 하는 말이 있지만,
저번 때(광고주와의 약속을 동건이 집에 찾아오는 바람에 펑크낸 날)는
이렇게까지 마음이 심란하지 않았는데, 오늘은 종일 뜬구름 잡는 기분이다.
서준의 고백을 받아 수연의 음모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기 때문만은 아닌데,
왠일인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두근거림으로 집안을 서성거리기만 한다.
"후~스폰계약 선금쪼로 받은 그 돈봉투 때문인가..?"
서준이 내 핸드백에 넣어준 그 하얀 봉투..
거기에는 1 이란 숫자 다음에 동그라미가 7개나 그려진 푸릇푸릇한 종이 딱지가
무려 5 장이나 들어있었다.
일금 5천 만원..누구네 집 애들 이름도 아니고, 아무리 가진 게 많은 사업가지만,
내가 하룻 저녁 식사준비를 해주는 댓가치고는 너무나 큰 금액이 아닐수 없었다.
더군다나 신인들은 돈다발을 싸 짊어지고 와서 들이대어도 될까 말까 하다는,
대기업의 홍보모델 자리를 따 논 당상처럼 보장까지 받는다니..
"은애..너! 정말 순진한 건지..아님 진짜 세상 물정 모르는 숙맥인지.."
머릿속에서 언젠가 스폰 문제로 얘기하던 중에 나를 힐난하며 비웃는 듯한 말을 했던,
서준 그 남자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울려온다.
"이제 순수는 커녕.. 꼬리가 몇 개 달린 여우로 변신해 버린 난데.."
나는 그제서야 남자의 그 말뜻을 똑똑히 해석할 수 있었고,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이 낯선 떨림의 원인이 무엇인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렇고 그런 평범한 가정주부에게, 거금과 함께 미시모델이란 타이틀을 준다는 것은 곧,
나 역시 그 댓가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그 늙은남자에게 줄 수 있는 거라곤 몸뚱아리 하나밖에 없는데..
그만한 돈에 모델이란 명성, 그리고 앞으로의 구두 계약에 따라 받게 될,
플러스 알파의 금전적인 이해득실을 따진다면,
지명도 높은 현역 연예인뿐만 아니라 까리삼삼한 처녀들을 얼마던지 취할 수 있을텐데
왜 굳이 미혼의 처녀도 아닌 나같은 미시..그것도 30대의 아줌마를..하는
의구심이 한편으로 들지 않을 수 없다.
"하긴..뭐, 동건이나 서준 그 남자와의 관계를 떠나..그래..오빠 사업이 어렵지 않고..
조용히 살림만 하는 내게 누군가 내 몸을 필요로 해 조건을 제시해 온 상황이었다면..
그랬다면.. 5 억 아니라 50 억을 준다고 해도.."
순간, 공주병이 도진 나는, "한미모 하는 나 정도되니까 뭐..그럴 수도 있지" 라고
며칠전 같았으면 꿈에서 조차 상상 할 수 없었던 타협을 그렇게 현실적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별도로 내 가슴속 한귀퉁이를 비집고 자리잡은 막연한 불안감은,
생각을 점점 더해 갈 수록 두려움 정도로 커지고 있었는데..
"후우~ 내 몸은 기본일테고..옵션으로 뭔가 더 원하는 게 있지않을까..?"
수연의 음모를 몰랐으면 모를까..혹시 남편과 나를 갈라 놓으려는 수연이 뇬과,
연관성이 있는 요구를 내게 해 오는 것은 아닐까..라고, 나는 막연하게 추측만 할뿐..
그 늙은 남자가 나에게 가해 올 충격적인 뵨태행위를 이때 당시 나는 모르고 있었다.
집안 정리를 다 끝내고 마악 옷을 갈아입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조금은 현실에서 멀어지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서준 그 남자의 말을 외면했는데..
"으,음..어떻게..분명 서준일텐데..받아야 하나..?"
입고 있던 스타킹을 마저 올리고 핸폰을 집으러 갔지만 전화가 뚝 끊긴다.
"잘못 걸린 전환가...? 괜히.."
안 보면 보고싶고 마주 보면 시들하다더니..참으로 간사한 게 여자의 마음인가 보다.
전화해 달란 말을 외면하구선 남자가 먼저 전화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내가 입술을 삐죽이며 혀를 쏙 내미는데 나를 놀리기라도 하듯이 다시 울려대는 벨소리..
[서준입니다..지금 은애씨 아파트 입구에서..]
"치이~이틀 사이에 개과천선을 하셨나.."
늘 자신만만하게 둘리던 음성이 마치 목감기라도 걸린 듯한 쉰 목소리다.
그러나 또박또박 경어를 사용하여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누가 보기라도 하면 어쩔려구..아파트까지 찾아와요? 혼자 갈 수 있는데..]
[그 분 집이..시 외곽에 위치해..은애씨 혼자 가시기엔 불편할 겁니다..
얼른 준비해 내려오세요..누군가의 눈에 띄는 게 불안하시면..]
난 그냥 생각없이 말을 했는데..아차! 그러고 보니 앞동 아파트에 사는 동건씨..!
혹시 우연히.. 저 남자의 차에 오르는 나를 목격한다면..?
폰을 귀에 댄 채..나는 서둘러 투피스 정장 상의의 소매를 팔에 꿰었다.
그리고 아직은 바깥이 환했지만, 분명 나보다는 남편이 먼저 귀가할테고..
그렇다면 내가 마중도 하지 못하는데 집안에 깜깜하게 불까지 꺼져있으면..싶어,
거실과 주방 조명은 확 켜두고 현관을 나왔다.
[어? 서준씨! 당신 얼굴이..그게 뭐에요?]
[안전벨트 매세요, 곧장 출발합니다]
[네..? 얼굴이 왜 그러냐니까..?]
[사흘동안 줄창..주량도 약한 술을..약으로 알고 퍼질러서..그렇습니다]
[아..아무리..그래도 그렇지, 고작 만 이틀 사이에..]
남자의 얼굴은 한마디로 반쪽이었다.
가끔 우수에 젖긴 했지만 나를 만날 때마다 늘 서글서글하던 두 눈은,
마치 지하철 역사를 헤메도는 노숙자처럼 퀭했고,
눈두덩 애교살 아래에..다크서클까지 생겨 거뭇하게 매달려있다.
그리고 버터를 쳐 바른 것처럼 밴질밴질 느끼해 보이던 낯짝이,
수염을 깍지않아 덥수룩한 모습은 그렇다 치더라도,
아기같이 통통하던 볼 살이 얼마나 담배를 빨아댔는지 모르지만,
아주 그냥 볼따구에 내 주먹 하나가 쑥 들어갈 만큼 되버려 광대뼈까지 도드라져 보였다.
[신경쓰실 필요없습니다]
[누가 뭐..신경쓴대요..? 사춘기 소년도 아니구..나같은 여자가 뭐라고..
실연의 고통을 맛 본 사람처럼.. 울기까지 했나보네.. 차 세워보세요!]
[울긴.. 왜? 뭐 빠뜨린 거라도 있어요?]
전화를 통해 들었던 그 쉰목소리는 감기가 걸린 것이 아니라 오열해 목이 잠긴 때문같다.
다 보이고 들리는데..남자는 극구 부인하면서..차의 속력을 천천히 낮춘다.
[킁킁! 아직까지 술 냄새가 풀풀..사고라도 나면 어쩌려구..음주운전을 해요.
내가 운전할테니..길이나 가르쳐줘요]
[흥! 오피스텔에서 나오면서..그래요, 가슴이 하도 떨려대서 스트레이트 한 잔 마셧습니다.
그치만 브레이크 대신 엑셀 밟는 은애씨 보다는 안전할테니...]
[칫! 새삼 그 얘기는 왜 한데...]
내가 고개를 돌려 코를 킁킁거리는 순간, 키스라도 할 줄 알고 뭔가 오해를 했나? 흠칫하는 남자.
콧방귀를 흥! 뀌더니 가속페발을 꾸욱 밟는다.
차가 시내를 빠져나와 한적한 외곽 도로 초입에 이르자,
멀리 보이는 아파트 단지가 마지막 빛을 발하는 햇살에 휘감겨 주홍빛으로 아른거린다.
시원하게 흘러가는 강줄기를 왼쪽으로 끼고 커브길을 능숙한 솜씨로 코너링하는 남자.
꽤나 숲이 우거진 얕으막한 산 자락아래 듬성듬성 박혀있는 고급스런 주택들이,
마치 서구풍의 전원 마을을 보는 것 같다.
[아직..인가? 얼마나 더 가야해요..?]
[으,음! 다 왔습니다..바로 저기..]
남자는 내 물음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스르르 속력을 줄이며 턱짓으로 저만큼 앞을 가리킨다.
그 시선을 따라 바라본 나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정면을 응시했다.
[..조그마한 정원 딸린 이층집이..?]
[소유권은 아마 회장님께..별장을 전원주택식으로..개축했담니다..]
[자기 말보다는 딱 백 배는 뻥튀기된.. 저..저택이네..]
[저택은 무슨..그만 놀라고 내리세요]
낮으막한 언덕배기 아래로 거오하게 자리잡고 있는 커다란 이층집은,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주눅들게 만들어 나는 숨이 턱 막혀옴을 느낀다.
얼핏 정원만 해도 수 백여 평이 넘어 보이고,
건물은 숫제 유럽의 작은 성채 하나를 통째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남편과 나와 단 둘이 생활하는 30여평 우리 아파트 공간도 내게는 대궐같이 느껴졌는데..
도대체 얼마나 돈이 많으면 저런 호화로운 집에서 사는 것일까.
[고마워요..! 데려다주셔서..운전 조심하시구..그럼!]
[나..여기서 은애씨! 기다릴겁니다]
[예에..? 날 기다리다뇨..? 저녁식사가 언제 끝날지 알고..기다려요?
그리고..집안에서 누가 보기라도 한다면..]
[밤을 새서라도.. 이쪽은 뭐 후문근처라..그 분이 내다보실 일도 없구요..]
나를 따라 차에서 몸을 내린 남자는 우측으로 저만치 잔디가 깔린 정원너머를 바라본다.
그때 마침 우르르! 동굴의 울림소리로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오고,
30 여 미터쯤 떨어진 주차장에서 미끄러지 듯이 철문을 향해 굴러가는 승용차 뒷모습이 보인다.
"내방객이 있었나 보네..근데..저 차 꽁무니가.. 꼭 우리 차랑 비슷.."
엉뚱하게 밤을 새서라도 나를 기다린다는 남자.
나는 그 말에 대꾸할 생각도 잊고, 마악 저택을 빠져나가는 차를 고개를 갸웃하며 쳐다보았다.
[뭐하세요..? 들어가시지 않고..]
[그보다..방금..당신! 뭐라고 그랬어요? 사람 불편하게..]
[불편하게 하다뇨..? 그분 운전이 서툴러.. 은애씨를 모셔다 드릴 형편은 아닌데..
그럼, 밤늦은 시간에 콜 불러..택시타고 집에 갈겁니까?]
[왜 이래요? 내가 콜택시를 타고 가던..뚜벅이로 걸어서.. 후~바보 천치! 맘대로해요]
순간적으로 톡 쏘아붙인 나는 몸을 홱 돌리면서 힐끔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마치..호사한 부자 늙은이의 꼼수에 빠져, 크게 노름빚을 진 찌질이 남편이,
어쩔 수 없이 자기 마누라를 빚대신 넘기는..그런 참담한 얼굴이랄까.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남자는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꼼짝않고 서 있었으나,
퀭하니 쑥 들어간 두 눈에서는 쇠라도 녹일 것같은 시퍼런 불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나는 잠깐 옷매무시를 바로 잡고는 마중나온 여자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오후의 마지막 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정원잔디는 금가루를 뿌려내는 듯 눈이 부셨으나,
왠지 내 마음은..어두침침한 흐린 하늘가로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는 기분이다.
"이러지 말자..서준 저 남자는 머릿속에서 지우고..나는 내 할 일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애써 머리를 털어낸 나는 또 다른 경험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 * *
두 눈을 게슴츠레 뜬 채..나의 온 몸을 샅샅이 핥아내리 듯, 위 아래를 쭈욱 훑으며 살피는 남자.
돌 굴러가는 소리가 날만큼 잠시도 쉬지않고 요리조리 휘돌려지는 쥐눈알.
음험하게 반짝이는 그 눈화살에 쏘인 나는,
마치 잔발이 많은 벌레들이 스멀스멀 내 살갗위로 기어가는 듯한 혐오감을 느꼈음은 물론,
전신의 모공이란 모공에서 모두, 오싹! 소름이 돋아나는 전율 비슷한 두려움마저 느낀다.
"나쁜 넘, 변태..바퀴벌레, 쓰레기..신종플루 걸린 쥐새끼 같은 넘.."
내 입에서 온갖 욕지기란 욕은 다 튀어나왔지만, 그러나 입안에서만 뱅글뱅글 맴돌 뿐
한마디도 입밖으로 내뱉어지지 않는다.
왜냐..?
머릿속을 온통 휘젓고 다니는 바로 저 개보다 못한 시궁창의 쥐같은 넘 신분 때문이다.
< 그 얘기는 이미 짐작한 회원님들이 계실테니 천천히 하기로 하고,
우선 지금의 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부터 하나씩 정리해 나가기로 합니다.>
드러나면 결코 좋을 리 없는 나만의 비밀을 알고있는 또 한사람의 남자.
나는 이 남자가 서준을 수족처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나머지,
헤어 나올 수 없는 깊은 수렁에 이미 두 발을 다 내딛은 것을 그제서야 눈치채고는,
두렵고 꺼림칙해 온 몸의 피가 일시에 다 마르는 기분이었다.
[흐흐, 차 태워준 사람이 누구? 여기올 때..]
[아, 녜! 서..서준씨요 ]
[그래..? 내리는 모습은 봤어..성일 유사장이 마침 그때, 집에서 나갔거든..
한 걸음 더 앞으로..와! 주리는 카메라 촬영 시작하고..]
[녜, 전무님..]
나를 처음 안내해 준, 우아하면서도 젊고 교양있어 보이는 저 여자는,
자신을 가사도우미라고 나에게 소개해 왔고,
우리 두 사람이 식사하는 내내 공손하게 시중까지 들어주기도 했는데,
그런 그녀의 손에 지금 들려있는 것이 가정용 캠코드도 아닌 큼지막한 ENG카메라?
도대체 어디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인지 되짚어 볼 심리적 여유도 없었던 나는,
그저 남자가 시키는대로 한 걸음 더 다가서며,
내 일거수 일투족을 촬영하기 시작하는 주리란 이름의 여자를 힐끔 쳐다보았을 뿐이다.
집에서 올 때 입고왔던 정장 투피스 대신, 내게 갈아 입혀진 옷..
속옷이라곤 음부둔덕만 겨우 가려주는 끈으로 된 T백 팬티,
그리고 젖가슴 주위를 얼기설기 실가닥으로 엮어댄 듯한 쬐그만 천조각 브래지어에 슬립 한장!
[은애, 오늘 운이 좋은거야..남편이 누구라고..?]
[유..유일 정밀, 유 철 주 사장! ]
[거봐..금방 드러날 거짓말을..뭐? 먼 친척오빠가 운영하는 유일의 숨통을 트이게 해달라고..흐흐]
[그..그건, 차마 바른대로 말씀 드릴 수가 없어서..]
[그 얘긴 천천히 더 하기로 하지..우선 정식으로 인사를 받아볼까..?]
[이..인사는 이미...]
[아까 내 집에 들어와서 식사전에 서로 통성명한 건..
그래, 유철주 사장 부인이.. 남편 몰래.. 나와 스폰을 맺기위해 나눈 일종의..절차..
말했지? 난, 두 번씩 주워대게 하는 사람은 딱 질색이라구.. 이후부터는 어떻게..?]
[..예, 돌아가신 사모님..대신으로. 역할하라는..]
[당신은 유사장 부인이 아냐..내 마누라라고 알어..?]
[............?!]
[대답 안하지..좋아! 이리..더 가까이..오세요!]
"미친넘..또라이 쥐새끼! 변태..무슨..역할극을...
그냥 한 번 내 몸 따 먹고, 오빠 회사를 도와주겠다 그럼 끝이지.."
다시 한 번 온갖 욕지기를 속으로 해대며 나는 천천히 한 걸음 내딛었다.
연회장으로 사용해도 충분한 넓은 공간의 응접실,
온 몸이 푹 파묻히는 쿠션좋은 소퍼에 등을 기댄 남자는, 나를 놀리 듯 정중하게 말했으나,
명령쪼로 끝부분이 올라가는 억양은 거부할 수 없는 외경심마저 가지게 한다.
내 몸 어딘가를 향해 끊임없이 따라붙는 네 개의 눈동자와 카메라 렌즈..
남자와 일대 일이 아닌.. 같은 여자의 시선앞에까지 노출된 나는,
수치심과 창피함이 극에 달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로 낯이 뜨거워진다.
[더럽고..천박한 년! 그래, 젊은 놈이랑 붙어먹으니 좋았어..?]
[..무..무슨...?]
[사 모 님! ]
손찌검은 하지 않았지만 금방이라도 발길질을 해댈 것처럼 흥분해,
얼굴을 울그락불그락 붉히는 남자의 질책이 이해되지 않아 의아해하는데..
속살이 다 비칠만큼 얇은 슬립아래를 연신 클로즈업해 대던 주리가 콜을 보내왔다.
"아~그렇지..나는 지금..이 넘 마누라.."
아까 식사할 때까지만 하더라도 남자는 중후한 품격이 느껴지던 중년 신사였다.
하지만 둘(주리와 셋)이, 마주한 응접실안에서는 너무나 달라진 언행으로,
나에 대한 호기심도 호기심이지만, 어떻게 나를 능욕해 새로운 즐거움을 만끽할까 하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생각들로 마음을 꽉 채운 듯한 표정이다.
[시발년아! 얼릉..난짝 탁자위로 못 올라와..?]
[네..? 아~ 녜! ]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를 몰아붙이는 호색한 변태넘의 행태..
남자가 차려 낸 이 괴상한 밥상이 과연 언제쯤 물려질 것인지...
순간 나는 지금쯤 아파트에 도착했을지도 모르는 남편의 모습, 그리고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을,
서준 그 남자의 초췌한 얼굴 표정이 순식간에 주마등처럼 내 눈앞을 스쳐지나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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