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한대협(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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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一 章 南海의 새벽
----- 해복진(海復眞).
절강성 남단에 위치한 한적한 어촌
그곳은 남해(南海)로 나가는 입구가 되는 곳이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림같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하나......
이 한적한 어촌에서 장차 구주팔황(九洲八荒)을 뒤흔들 대풍운(大風雲)이 발원되리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새벽.
스으...... 스으......
이슬에 젖은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박한 한폭의 풍경화를 옮겨 놓은 듯한 이른 새벽의 해복진
그 남쪽 끝에는 울창한 송림(松林)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송림 속에는 한 채의 아담한 모옥이 그림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담하고 운치있는 모옥.
아직 모옥의 주위에는 어슴푸레한 어둠이 남아 서성이고 있었다.
부엌 하나, 방 하나 뿐인 단촐한 살림,
문득,
삐걱 -------!
어둠에 잠긴 모옥의 문이 살며시 열렸다.
이어
[야! 오늘도 날씨는 괞찮겠군!]
열린 방문 안에서 한소리 맑은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와 함께,
한 명의 소년이 조심스레 방문을 나섰다.
육척의 훤칠한 키.
구리빛 건강한 피부에 당당한 체격을 지닌 소년이었다.
하나,
아직 치기가 가시지 않은 귀여운 용모의 동안으로 소년의 나이는 별로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검고 긴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그 머리는 빛바랜 천조각으로 질끈 묶은 모습이었다.
일견하기에도 호방하고 친근감이 있는 인상.
누구라도 소년의 모습을 보면 절로 호감을 가질만한 그런 모습이었다.
소년이 조심스레 방문을 나서는 순간,
[벌써 바다에 나가려는 거냐? 운(雲)아?]
소년이 나온 방안에서 한줄기 연약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열려진 방문.
그 안쪽으로 검박하고 단촐한 가재도구가 드러나 보였다.
방 안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탁자 하나와 두 개의 침상이 고작이었다.
하나,
깨끗하게 도배한 벽면에는 몇 폭의 고서화가 걸려있어 은은한 기품과 단아한 운치를 느끼게 했다.
방안의 한쪽 침상.
한 명의 여인이 힘겹게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불면 꺼질 듯 연약한 체구,
일견하기에도 병색이 완연한 창백한 얼굴이었다.
나이는 삼십대 후반 정도,
하나,
비록 창백하고 병색 짙은 모습이었으나 여인은 실로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조각으로 빚은듯 단아한 용모.
그윽하고 기품있는 고아한 자태는 보는 이를 절로 감탄하게 했다.
그녀는 삼단같은 머릿결을 길게 허리 아래까지 드리우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여인의 모습은 더 한층 핼쑥하고 창백해 보였다.
미부인은 연역하나 자애로운 음성으로 소년을 향해 말했다.
[아직 해가 뜨려면 일각은 더 기다려야 한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알겠어요. 어머니!]
소년은 미부인에게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출항하기 전에 그물을 좀 손봐야 할 것 같아서요. 어머니는 좀 더 주무세요!]
그는 방문을 손에 쥔 채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부인은 그런 소년을 향해 자애롭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소년은 싱긋 웃으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
[.........!]
문이 닫히자 미부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가엾은 것.....!)
그녀의 입가로는 대신 소리없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짙은 연민과 죄책감이 서린 한숨.
(에미를 용서하거라!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이 에미와 오라버니를......!)
주루르......!
그녀의 창백한 두 뺨으로 뜨거운 회한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는 무너지듯 침상위로 쓰러지며 소리없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흐느낄 때마다 물결같이 일렁거리는 삼단같은 머리결.
그리고, 연약하고 애처로운 두 어깨는 더할 수 없는 슬픔으로 떨리고 있었다.
과연,
그녀는 무슨 말못할 사연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쏴아......
철 --- 썩!
무수한 포말을 일으키며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다.
바다(海).
끝도 없이 드넓게 펼쳐진 망망대해가 거대한 짐승처럼 눈 앞에 누워있었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바다는 짙푸른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쉴새 없이 파도가 부서졌다 밀려가는 바닷가의 높직한 하나의 바위 위,
[......!]
한 명의 소년이 우뚝 선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바다를 주시하고 있었다.
운(雲)이라고 불리운 바로 그 소년이었다.
지혜롭게 빛나는 형형한 눈빛.
굳게 다물린 붉은 입술,
그 한일자의 입술에서는 소년의 굳고 강인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하나,
훤칠하고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소년의 나이는 이제 십오세에 불과했다.
------ 능풍운(陵風雲)!
이것이 소년의 이름이었다.
그는 본래 이 해복진(海復眞) 출신이 아니었다.
십사년(十四年) 전 -----!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한 척의 난파선이 이곳 해복진에 표류했다.
그 난파선에는 이십대 초반의 미녀와 이제 갓 태어난 듯한 한 명의 핏덩이 어린아이가 타고 있었다.
바로 그들이 지금의 능풍운(陵風雲) 모자(母子)였다.
능풍운의 어머니는 그냥 능부인(陵婦人)이라고 불릴뿐 이름은 물론 출신내력등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표류해올 당시 능부인은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하나,
그것은 난파로 인해 입은 부상이 아니었다.
누군가와 격렬하게 싸워 입은 부상이었다.
해복진의 어민들은 한눈에 그녀가 자신들이 사는 세상 사람이 아님을 알아 차렸다.
하나,
순박한 어민들은 죽어가는 모자를 그대로 방치해두지 않았다.
그들은 정성을 다해 능풍운 모자를 간호해 주었다.
덕분에 두 모자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부상이 완쾌된 후에도 능부인은 이곳 해복진을 떠나지 않았다.
갈곳이 없는 능부인 모자를 해복진의 어민들은 흔쾌히 이웃으로 받아 주었다.
능부인은 아주 박식했다.
그녀는 해복진의 어린이들에게 글과 학문을 가로쳐 주었다.
그 결과,
십년 내 해복진의 젊은이 중 몇은 과거에 합격하여 지방관리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그같은 공로로 해복진의 어민들에게 극진한 존경을 받았다.
그사이,
핏덩이였던 어린 능풍운도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났다.
그러나,
그 반면 능부인은 알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쇠약해져갔다.
그녀가 눈에 띄게 병약해져 가는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물론 능부인 자신은 자신의 병명을 아는 듯했다.
하나,
이웃이 아무리 물어도 그녀는 쓸쓸히 웃기만 할뿐 병명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 가운데도 세월은 흘러 어느덧 능풍운은 마을 어른을 따라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이년 전 부터였다.
능풍운의 나이는 아직 어리나 체격은 어른이나 다를바 없었다.
그는 비단힘이 장사일뿐아니라 고기잡이에도 금방 익숙해졌다.
그리하여,
이제 그는 해복진의 어민들중 그 누구보다도 더 숙련된 어부가 되어 있었다.
능풍운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바다를 주시하며 한차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때였다.
[허어! 역시 네가 우리 해복진에서 가장 부지런하구나, 풍운!]
문득 능풍운의 등 뒤에서 한가닥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능풍운은 뒤를 돌아보았다.
바위 아래.
한 명의 늙은 어부가 담뱃대를 문 채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할아버지?]
능풍운은 노인을 발견하자 정중한 태도로 깍듯이 인사를 했다.
노인은 해복진의 늙은 어부중 한 명이었다.
[오냐! 그래 오늘도 바다에 나갈 작정이냐?]
노인은 주름진 얼굴로 능풍운을 바라보며 인자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 말에 능풍운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뎍였다.
[예! 어머님께 보약이라도 한제 더 지어드리려면 오늘도 잔뜩 잡아야지요!]
[허어, 역시 너는 효자로구나!]
노인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풍운은 노인의 칭찬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윽고,
노인은 바위아래에 걸터앉으며 곰방대를 탁탁 털었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오늘은 그만 두는 것이 좋겠구나!]
노인의 뜻밖의 말에 능풍운은 의하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날씨가 나빠질것 같지도 않은데요?]
[날씨 때문은 아니다!]
노인의 안색은 진지하게 변했다.
능풍운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궁금한듯 물었다.
[날씨 때문이 아니라면 왜지요?]
노인은 침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어제 강씨 늙은이가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여러척의 깨진 배와 수십구의 시체들을 발견했다더구나!]
그 말에 능풍운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해적......입니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근래들어 남해로부터 가끔 해적선이 출몰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글쎄......!]
능풍운의 물음에 노인은 곰방대를 빨며 모호하게 대답했다.
[해적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죽은 시체들이 하나같이 무림이들이었다는구나!]
[무림(武林)?]
능풍운의 두 눈이 갑자기 번뜩 빛났다.
무림(武林)----!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그는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림을 느낀 것이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이 무림이란 그 한 마디로 인해 어떤 강렬한 흡인력에 이끌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로 그것은 알 수 없는 예감이었다.
노인은 한차례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순전히 소문이기는 하지만 남해의 어딘가에 무림(武林)의 보물이 곧 출토된다더구나. 그 때문에 무림인들이 몰려드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의 말에 능풍운은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무림지보(武林之寶)라고요? 우리같은 어부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로군요!]
하나,
노인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능풍운을 바라보았다.
[무림인들은 사람 죽이는 것을 여반장으로 아는 자들이다!]
[......!]
[하여간 바다에 나갔다가 그 자들과 마주치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무리하지 마라. 며칠 동안 바다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나,
능풍운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의 그러 태도에 노인은 내심 소리없이 혀를 찼다.
(쯧쯧......!)
그는 능풍운이 끝내 바다에 나갈 작정이라는 것을 안 것이었다.
[잘 생각해 보거라! 병약하신 자당을 걱정하게 만들지 말고!]
그 말과 함께 노인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잠시 노인의 뒷모습을 주시하던 능풍운은 시선을 바다로 돌렸다.
쏴......아......
새벽 미명을 가르며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조금씩 어둠이 걷혀가는 바다는 힘찬 요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능풍운.
그의 가슴속에서도 알 수 없는 벅찬 격랑이 번지는 느낌이었다.
第 二 章 千毒老祖와의 因緣
포구(浦口) -----!
열 몇척의 어선들이 포구의 모래사장 위에 끌어 올려져 있었다.
그 중 한 척의 작은 목선(木船) 위
[어제 그 다랑어 녀석이 크기는 컸군!]
능풍운(陵風雲)!
그는 목선 위에 주저앉아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무척 크고 튼튼해 보이는 그물.
하나,
그 그물은 여기저기 끊어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제 그 그물에 무려 백관이 넘는 대형 다랑어가 잡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을 잡은 것은 능풍운이었다.
그는 악전고투 끝에 다랑어를 잡아 올리기는 했으나 그 대신 그물이 많이 손상된 것이었다.
어느덧,
동쪽 수평선은 불그레한 광휘로 물들고 있었다.
하나,
여느 때와는 달리 백사장에 묶여 있는 다른 배의 주인들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를 해상에서 무림인들이 죽고 죽이는 난투를 벌인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물을 손질하는 능풍운의 손길은 빠르고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윽고,
[휴. 겨우 끝났군!]
그는 씩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씻었다.
그물의 수리가 대충 끝난 것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네가 이 배의 주인이냐?]
돌연 능풍운의 옆에서 한가닥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순간,
능풍운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언제였을까?
소선 옆의 일장 밖,
한 명의 인물이 우뚝 서있지 않은가?
삼십 전후 정도로 보이는 장한.
그 자는 일신에 날렵한 검은색 경장을 걸치고 있었으며 등에는 한 자루 보검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 자의 얼굴은 지나치리만치 하얗게 보였다.
너무 하얗게 보여 그 인상은 음침하기 이를 데 없었다.
또한,
눈매는 비정하고 싸늘해 보였으며 입술마저 얄팍하여 일견하기에도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 자의 인상에서 그 심성이 지극히 음독함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흑의인을 일견한 능풍운.
그의 안색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인상이 지극히 안좋은 사람이로군!)
그는 한눈에 이 작자가 선한 성품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자연히,
그의 응대는 무뚝뚝하게 흘러나왔다.
[이것이 내 배임에는 맞습니다만, 왜 그러시오?]
그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흑의인의 눈꼬리가 일순 꿈틀했다.
하나,
그 자는 간신히 화를 억눌러 참았다.
[흐흐...... 네 소유라니 잘 되었다!]
대신 그 자는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함께,
쩔렁......!
문득 그 자는 쇳소리가 나는 하나의 작은 주머니를 능풍운이 탄 배 안으로 던졌다.
금속성으로 미루어 그 주머니 안에는 많은 동전이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흑의인의 그 태도에 능풍운은 검미를 찡그리며 물었다.
[이게 뭐요?]
흑의인은 그 물음에 음산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배삯이다. 오늘 하루 네 배를 좀 빌려야겠다!]
실로 안하무인격인 어투였다.
능풍운은 어이가 없었다.
[이보시오. 나는 ......!]
그는 황급히 무엇이라 대꾸하려 했다.
하나,
그가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흑의인은 손을 쳐들어 능풍운을 저지시켰다.
[군소리 말고 좋게 말할때 본좌를 지옥도(地獄島)까지 태우고 가라!]
[지옥도(地獄島)!]
능풍운은 흠칫 놀라며 눈을 치떴다.
----- 지옥도(地獄島)!
해복진의 남동쪽 오십여 리의 해상에 자리한 섬.
하나,
그곳은 해복진의 어부들 뿐 아니라 모든 뱃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절대금지(絶對禁地)로 알려져 있었다.
그 누구도 지옥도 근처로 접근하려는 자가 없었다.
그 이유는 지옥도(地獄島) 일대해역의 물길이 아주 험악하기 때문이었다.
지옥도란 하나의 바위섬이었다.
그 일대 바닷 속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뒤엉켜 있었다.
멋모르고 지옥도로 접근했다가는 암초에 좌초당하기 십상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바닷 속에는 수많은 수중동굴이 뚫려 있었다.
바로 그 수중동굴들 때문에 지옥도 일대 해역에 수많은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이었다.
일단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배고 사람이고 할것 없이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지옥도는 그처럼 끔찍했다.
오죽했으면 뱃사람들이 지옥도 일대 해역을 불귀마해(不歸魔海)라 할 것인가?
한데......
음독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상을 지닌 흑의인.
이 작자는 능풍운에게 다짜고짜 지옥도로 가자는 것이 아닌가?
[ 미안하오만 딴데 가서 알아보시오! ]
능풍운.
그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돈주머니를 집어 도로 흑의인의 발치로 던져냈다.
그것을 본 흑의인의 눈썹이 무섭게 꿈틀했다.
(이놈이......!)
다음 순간,
스왁!
한가닥 푸르스름한 섬광이 능풍운의 눈앞을 번뜩 스쳤다.
[......!]
능풍운은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몸을 움찔했다.
그와 동시에,
펄렁......
능풍운의 이마를 질끈 동여매고 있던 머리띠가 흩날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럴 수가......!)
능풍운은 아연하며 숨을 죽였다.
하나,
흑의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 자의 보검은 여전히 검집에 들어가 있었다.
능풍운은 그 자가 대체 언제 검을 뽑아 자신의 머리띠를 잘랐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흑의인은 정확히 머리띠만을 잘라냈을 뿐 능풍운의 이마에는 상처 하나 내지 않았다.
실로 기쾌하고도 날카로운 검법이 아닐 수 없었다.
[흐흐흐......!]
흑의인은 내심 아연함을 금치 못하는 능풍운을 주시하며 문득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나 천랑마검(天狼魔劍)이 지금껏 참고 있는 것은 네놈이 아직 어리고 무공을 모르는 무지렁이임을 감안해서다!]
그 자는 잔혹하고 오만한 어투로 말하며 능풍운을 노려 보았다.
[......!]
능풍운은 그 자의 냉혹무비한 시선을 받자 마치 한 마리의 늑대 앞에 벌거벗고 선 느낌을 받으며 절로 소름이 오싹 끼쳤다.
천랑마검(天狼魔劍)이라 자칭한 흑의인.
그 자는 거침없이 씹어뱉듯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본좌를 모시고 지옥도까지 가는 것이다. 이유는 필요없다!]
------ 천랑마검(天狼魔劍)
그 이름은 사실 대단한 것이었다.
그 자는 특이한 좌수검(左手劍)의 달인으로 십여 년간 한 번 도 패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신랄하고도 기쾌무비한 그의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은 무림십대검법(武林十大劍法)의 하나였다.
어지간한 무림의 명숙들도 이 자 천랑마검(天狼魔劍)과는 시비를 피할 정도였다.
하나,
무림에 문외한인 능풍운.
그가 이같은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하물며,
그의 성격이 남의 위협 따위에 결코 굴함이 없었으니......
능풍운은 조금도 위축됨이 없는 눈빛으로 흑의인 천랑마검(天狼魔劍)를 주시하며 무뚝뚝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고 두말하지 않는 성격이오. 무어라해도 귀하를 내 배에 태워줄 수는 없소!]
순간,
[뭐라고!]
천랑마검은 능풍운의 단정적인 어투에 눈을 치뜨며 불끈했다.
[흐흐...... 정말 관(棺)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군! 감히 본좌의 명을 거역하다니......!]
그 자의 안색은 잔인하고 냉혹하게 변했다.
[오냐! 네놈 스스로 판 무덤이니 나를 원망치 마라!]
그 자는 싸늘한 어조로 말하며 왼손를 천천히 어깨 너머로 가져갔다.
한데,
[......!]
부르르......!
막 등 뒤의 보검을 뽑아들려던 천랑마검.
갑자기 그 자는 눈을 부릅뜨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자의 두 눈은 한껏 치떠진 채 능풍운의 뒤를 주시하고 있었다.
돌연한 그 자의 태도에 능풍운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이 작자가 갑자기 왜 그러지?)
그때,
[후...... 후배가 불민하여 노사(老師)께서 왕림하심을 미처......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천랑마검이 갑자기 두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자의 안색은 삽시에 백지장같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으며 전신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또한 억지로 웃고 있는 그 자의 얼굴을 실로 보기에도 딱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 자는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능풍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나타났기에 그토록 사납던 이자가 고양이 앞의 쥐가 되었지?)
그는 의아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였을까?
능풍운의 뒤,
한 명의 노인이 말없이 서 있었다.
왜소한 체구에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노인,
그는 일신에 소탈한 마의를 걸치고 있었는데 주름이 가득진 얼굴에는 사람좋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마의노인,
그는 자기 키 만큼이나 긴 곰방대 하나를 입에 물고 있었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을 주시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
아무리 봐도 눈 앞의 노인에게서는 전혀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촌노의 모습,
능풍운의 눈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을 주시하며 문득 무뚝뚝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설마 할아버지께서도 내 배를 빌리러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글쎄......!]
그의 말에 마의노인은 담뱃대를 입에서 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의 모호한 대꾸에 난색을 지었다.
(이거 곤란하군. 연로한 노친네가 지옥도(地獄島)까지 태워다 달라고 하시면 차마 거절할 수도 없고......!)
마의노인은 그런 그의 내심을 읽었는지 문득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걱정마라. 이 늙은이가 네게 신세를 지지 않을 테니까!]
이어,
그는 시선을 천랑마검에게로 돌렸다.
[네 녀석은 혹시 낭왕(狼王) 혁련사(赫煉史)의 전인이냐?]
마의노인의 물음에 천랑마검은 즉시 허리를 굽신거리며 공손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그 분은 후배의 스승님 되십니다!]
------ 낭왕(狼王) 혁련사(赫煉史) !
그것은 실로 대단한 이름이었다.
음산(陰山)과 관외(關外) 일대의 공포적인 존재,
그 자는 수천 마리의 늑대를 자싱의 수족처럼 부리는 인물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근 백여 년 간 늑대의 무리와 섞여 살며 독특한 무공을 연마한 낭왕(狼王).
그 자는 그 무공으로 일문(一門)을 이루었다.
천랑마검(天狼魔劍)을 바로 그 관외기인인 낭왕(狼王) 혁련사(赫煉史)의 제자였다.
하나,
마의노인은 한심하다는 듯
천랑마검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 혁련사라는 덜 떨어진 놈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애송이를 무림에 내보냈군!]
그는 관외패왕 낭왕(狼王) 혁련사(赫煉史)를 아무렇지도 않게 욕했다.
하나,
자신의 스승을 욕함에도 천랑마검은 찍소리 하지 못했다.
그 자는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 일언반구 대꾸할 생각조차 못하는 눈치였다.
그 자의 그런 모습이 능풍운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 노인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기에 저 작자는 제 스승이 욕을 먹어도 억지웃음만 짓고 있단 말인가?)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새삼 마의노인을 주시했다.
하나,
역시 마의노인의 모습은 평범, 그 이상은 아니었다.
다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마의노인의 눈동자가 다소 은은한 초록색을 띠고 있다는 정도였다.
그때,
[하..... 하교가 없으시다면 후배는 이만......!]
천랑마검은 마의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급한 일이 있다면 굳이 더 잡지는 않으마!]
마의노인은 쥐고있던 곰방대를 능풍운의 뱃전에 대고 탁탁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천랑마검은 희색을 띄었다.
[감......감사합니다!]
그 자는 급히 마의노인을 향해 포권한 후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하나 그떼,
마의노인이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너를 그냥 보내면 섭섭하지 않겠느냐?]
순간,
안도의 표정을 짓던 천랑마검은 다시 사색이 되었다.
[무......무슨 말씀이신지?]
그 자는 진땀을 흘리며 마의노인을 주시했다.
마의노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노부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너희 어린놈들의 잡기를 재롱삼아 구경하는 것이다!]
말과 함께,
그는 한옆의 뱃전에 걸터앉았다.
(휴...... 난 또 뭐라고!)
천랑마검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 앞의 이 무서운 노독물은 자기보고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의 검법을 한 번 펼쳐보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천랑마검의 입장에서는 비로소 지옥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본 느낌이었다.
이윽고,
천랑마검은 마의노인을 향해 정중히 포권해 보였다.
[그...... 그럼 미거하나마 노야의 높으신 안목에 폐를 끼치겠습니다.]
이어,
그 자는 천천히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두 팔을 내려뜨렸다.
그 자세는 굶주린 늑대가 먹이를 덮치려는 듯한 자세 그것이었다.
그 자세야말로 천랑마검의 자랑인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의 기수식이었다.
그때,
[......!]
능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천랑마검의 모습을 주시했다.
다음 순간,
[카---- 앗!]
천랑마검의 입에서 마치 늑대가 울부짓는 듯한 한소리 괴성이 터져나왔다.
뒤를 이어,
쉬학----!
파츠츠......
사위를 휘감는 시퍼런 검광(劍光)!
섬뜩한 섬광과 날카로운 예기가 빗발치듯 새벽하늘을 그어갔다.
천랑마검의 발검(拔劍)은 너무나 빨라 그 자가 언제 검을 뽑아 검법을 시전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윽고,
[감사합니다! 노야!]
스------윽!
한순간 검기가 싹 가시며 천랑마검의 신형이 삽시에 북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 자는 눈깜짝할 사이에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을 모두 펼쳐 보인 후 장내를 떠난 것이었다.
괜히 우물쭈물 하다가는 마의노인이 또 어떤 명령을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능풍운.
그는 멍한 눈으로 천랑마검이 검법을 펼쳐보이던 곳을 주시했다.
(저것이 무공이란 것이구나!)
그는 망연한 표정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그때,
[모두 몇가지 변화를 보았느냐?]
문득 마의노인이 능풍운을 향해 불쑥 물었다.
그 물음에 능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얼른 대답했다.
[열 두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아홉 개까지밖에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
마의노인은 움찔하는 기색을 지었다.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그의 노안에는 은은한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이놈봐라? 기껏해야 천랑십이식중 삼사식 정도밖에 못볼줄 알았는데......)
그는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내 눈이 정확했다. 이놈은 백 년 내 다시 없을 재목이다!)
그는 희열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잘만 다듬으면 철혈대제(鐵血大帝) 능무벽(陵無壁)에 못지 않은 거목이 되리라!)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린 마의노인.
이윽고 그는 내심의 흥분을 숨기며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능풍운은 처음과는 달리 공손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풍운(風雲)! 성은 능(陵)가 입니다!]
[능......풍운(陵風雲)!]
마의노인은 능풍운의 이름을 되뇌이며 왠지 흠칫하는 기색을 지었다.
이어,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능풍운의 아래 위를 훝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놈은 능무벽(陵無壁)이란 괴물과 어딘가 흡사한 용모를 지니지 않았는가?)
그는 두 눈을 번뜩 빛내며 기대의 빛을 지었다.
[네 아비의 이름은 무엇이냐?]
[능초(陵超)라는 분이신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괴질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이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하나,
그는 내색치 않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내가 잘못 보았는가?)
능풍운의 대답에 마의노인은 눈가에 일순 실망의 빛이 스쳤다.
(하긴 능가 괴물이 살아 있다면 이미 팔순을 넘었을 테니 이렇게 어린 아들놈을 두었을 리가 없겠지!)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꽤 귀찮게 굴었지?]
[아닙니다!]
능풍운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허허, 마음에 없는 소리할 것 없다. 예쁜 계집이라면 모르지만 나같은 늙은이와 노닥거려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마의노인의 말에 능풍운은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마의노인은 그런 능풍운을 인자한 모습으로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노부는 갈황이라는 늙은이다. 어린 것들은 노부를 노독물(老毒物), 또는 천독노조(千毒老祖)라 부르며 상종치도 않으려 하지!]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나,
그 노인의 이름을 무림인들이 들었다면 그 즉시 아랫도리를 적시며 백리 밖으로 달아날 것이다
즐감하세요...
第 一 章 南海의 새벽
----- 해복진(海復眞).
절강성 남단에 위치한 한적한 어촌
그곳은 남해(南海)로 나가는 입구가 되는 곳이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그림같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하나......
이 한적한 어촌에서 장차 구주팔황(九洲八荒)을 뒤흔들 대풍운(大風雲)이 발원되리라는 것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새벽.
스으...... 스으......
이슬에 젖은 새벽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박한 한폭의 풍경화를 옮겨 놓은 듯한 이른 새벽의 해복진
그 남쪽 끝에는 울창한 송림(松林)이 빽빽이 늘어서 있었다.
그리고,
송림 속에는 한 채의 아담한 모옥이 그림같이 자리하고 있었다.
아담하고 운치있는 모옥.
아직 모옥의 주위에는 어슴푸레한 어둠이 남아 서성이고 있었다.
부엌 하나, 방 하나 뿐인 단촐한 살림,
문득,
삐걱 -------!
어둠에 잠긴 모옥의 문이 살며시 열렸다.
이어
[야! 오늘도 날씨는 괞찮겠군!]
열린 방문 안에서 한소리 맑은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와 함께,
한 명의 소년이 조심스레 방문을 나섰다.
육척의 훤칠한 키.
구리빛 건강한 피부에 당당한 체격을 지닌 소년이었다.
하나,
아직 치기가 가시지 않은 귀여운 용모의 동안으로 소년의 나이는 별로 많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검고 긴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는데 그 머리는 빛바랜 천조각으로 질끈 묶은 모습이었다.
일견하기에도 호방하고 친근감이 있는 인상.
누구라도 소년의 모습을 보면 절로 호감을 가질만한 그런 모습이었다.
소년이 조심스레 방문을 나서는 순간,
[벌써 바다에 나가려는 거냐? 운(雲)아?]
소년이 나온 방안에서 한줄기 연약한 여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열려진 방문.
그 안쪽으로 검박하고 단촐한 가재도구가 드러나 보였다.
방 안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탁자 하나와 두 개의 침상이 고작이었다.
하나,
깨끗하게 도배한 벽면에는 몇 폭의 고서화가 걸려있어 은은한 기품과 단아한 운치를 느끼게 했다.
방안의 한쪽 침상.
한 명의 여인이 힘겹게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불면 꺼질 듯 연약한 체구,
일견하기에도 병색이 완연한 창백한 얼굴이었다.
나이는 삼십대 후반 정도,
하나,
비록 창백하고 병색 짙은 모습이었으나 여인은 실로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
조각으로 빚은듯 단아한 용모.
그윽하고 기품있는 고아한 자태는 보는 이를 절로 감탄하게 했다.
그녀는 삼단같은 머릿결을 길게 허리 아래까지 드리우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여인의 모습은 더 한층 핼쑥하고 창백해 보였다.
미부인은 연역하나 자애로운 음성으로 소년을 향해 말했다.
[아직 해가 뜨려면 일각은 더 기다려야 한다. 너무 서두르지 마라!]
[알겠어요. 어머니!]
소년은 미부인에게 밝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대답했다.
[출항하기 전에 그물을 좀 손봐야 할 것 같아서요. 어머니는 좀 더 주무세요!]
그는 방문을 손에 쥔 채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
미부인은 그런 소년을 향해 자애롭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소년은 싱긋 웃으며 방문을 닫고 나갔다.
[.........!]
문이 닫히자 미부인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가엾은 것.....!)
그녀의 입가로는 대신 소리없는 한숨이 새어나왔다.
짙은 연민과 죄책감이 서린 한숨.
(에미를 용서하거라! 천벌을 받아 마땅한 이 에미와 오라버니를......!)
주루르......!
그녀의 창백한 두 뺨으로 뜨거운 회한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러다,
마침내 그녀는 무너지듯 침상위로 쓰러지며 소리없이 오열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흐느낄 때마다 물결같이 일렁거리는 삼단같은 머리결.
그리고, 연약하고 애처로운 두 어깨는 더할 수 없는 슬픔으로 떨리고 있었다.
과연,
그녀는 무슨 말못할 사연을 지니고 있는 것일까?
쏴아......
철 --- 썩!
무수한 포말을 일으키며 하얗게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다.
바다(海).
끝도 없이 드넓게 펼쳐진 망망대해가 거대한 짐승처럼 눈 앞에 누워있었다.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바다는 짙푸른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쉴새 없이 파도가 부서졌다 밀려가는 바닷가의 높직한 하나의 바위 위,
[......!]
한 명의 소년이 우뚝 선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바다를 주시하고 있었다.
운(雲)이라고 불리운 바로 그 소년이었다.
지혜롭게 빛나는 형형한 눈빛.
굳게 다물린 붉은 입술,
그 한일자의 입술에서는 소년의 굳고 강인한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하나,
훤칠하고 당당한 모습과는 달리 소년의 나이는 이제 십오세에 불과했다.
------ 능풍운(陵風雲)!
이것이 소년의 이름이었다.
그는 본래 이 해복진(海復眞) 출신이 아니었다.
십사년(十四年) 전 -----!
어느 폭풍우가 몰아치던 날 한 척의 난파선이 이곳 해복진에 표류했다.
그 난파선에는 이십대 초반의 미녀와 이제 갓 태어난 듯한 한 명의 핏덩이 어린아이가 타고 있었다.
바로 그들이 지금의 능풍운(陵風雲) 모자(母子)였다.
능풍운의 어머니는 그냥 능부인(陵婦人)이라고 불릴뿐 이름은 물론 출신내력등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었다.
표류해올 당시 능부인은 심한 부상을 입고 있었다.
하나,
그것은 난파로 인해 입은 부상이 아니었다.
누군가와 격렬하게 싸워 입은 부상이었다.
해복진의 어민들은 한눈에 그녀가 자신들이 사는 세상 사람이 아님을 알아 차렸다.
하나,
순박한 어민들은 죽어가는 모자를 그대로 방치해두지 않았다.
그들은 정성을 다해 능풍운 모자를 간호해 주었다.
덕분에 두 모자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부상이 완쾌된 후에도 능부인은 이곳 해복진을 떠나지 않았다.
갈곳이 없는 능부인 모자를 해복진의 어민들은 흔쾌히 이웃으로 받아 주었다.
능부인은 아주 박식했다.
그녀는 해복진의 어린이들에게 글과 학문을 가로쳐 주었다.
그 결과,
십년 내 해복진의 젊은이 중 몇은 과거에 합격하여 지방관리가 되기도 했다.
그녀는 그같은 공로로 해복진의 어민들에게 극진한 존경을 받았다.
그사이,
핏덩이였던 어린 능풍운도 무럭무럭 건강하게 자라났다.
그러나,
그 반면 능부인은 알 수 없을 정도로 급격히 쇠약해져갔다.
그녀가 눈에 띄게 병약해져 가는 이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물론 능부인 자신은 자신의 병명을 아는 듯했다.
하나,
이웃이 아무리 물어도 그녀는 쓸쓸히 웃기만 할뿐 병명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 가운데도 세월은 흘러 어느덧 능풍운은 마을 어른을 따라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것은 이년 전 부터였다.
능풍운의 나이는 아직 어리나 체격은 어른이나 다를바 없었다.
그는 비단힘이 장사일뿐아니라 고기잡이에도 금방 익숙해졌다.
그리하여,
이제 그는 해복진의 어민들중 그 누구보다도 더 숙련된 어부가 되어 있었다.
능풍운은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어두운 바다를 주시하며 한차례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때였다.
[허어! 역시 네가 우리 해복진에서 가장 부지런하구나, 풍운!]
문득 능풍운의 등 뒤에서 한가닥 노인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능풍운은 뒤를 돌아보았다.
바위 아래.
한 명의 늙은 어부가 담뱃대를 문 채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할아버지?]
능풍운은 노인을 발견하자 정중한 태도로 깍듯이 인사를 했다.
노인은 해복진의 늙은 어부중 한 명이었다.
[오냐! 그래 오늘도 바다에 나갈 작정이냐?]
노인은 주름진 얼굴로 능풍운을 바라보며 인자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 말에 능풍운은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뎍였다.
[예! 어머님께 보약이라도 한제 더 지어드리려면 오늘도 잔뜩 잡아야지요!]
[허어, 역시 너는 효자로구나!]
노인은 너털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능풍운은 노인의 칭찬에 얼굴이 붉어졌다.
이윽고,
노인은 바위아래에 걸터앉으며 곰방대를 탁탁 털었다.
[네 마음은 알겠지만 오늘은 그만 두는 것이 좋겠구나!]
노인의 뜻밖의 말에 능풍운은 의하한 표정을 지었다.
[왜요? 날씨가 나빠질것 같지도 않은데요?]
[날씨 때문은 아니다!]
노인의 안색은 진지하게 변했다.
능풍운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궁금한듯 물었다.
[날씨 때문이 아니라면 왜지요?]
노인은 침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어제 강씨 늙은이가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여러척의 깨진 배와 수십구의 시체들을 발견했다더구나!]
그 말에 능풍운은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해적......입니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근래들어 남해로부터 가끔 해적선이 출몰한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나,
[글쎄......!]
능풍운의 물음에 노인은 곰방대를 빨며 모호하게 대답했다.
[해적들인지 아닌지는 모르지만 죽은 시체들이 하나같이 무림이들이었다는구나!]
[무림(武林)?]
능풍운의 두 눈이 갑자기 번뜩 빛났다.
무림(武林)----!
그 말을 듣는 순간 왠지 그는 가슴이 세차게 두근거림을 느낀 것이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이 무림이란 그 한 마디로 인해 어떤 강렬한 흡인력에 이끌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실로 그것은 알 수 없는 예감이었다.
노인은 한차례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순전히 소문이기는 하지만 남해의 어딘가에 무림(武林)의 보물이 곧 출토된다더구나. 그 때문에 무림인들이 몰려드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의 말에 능풍운은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웃어 보였다,
[무림지보(武林之寶)라고요? 우리같은 어부들과는 관계없는 일이로군요!]
하나,
노인은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웃어 넘길 일이 아니다!]
그는 엄숙한 표정으로 능풍운을 바라보았다.
[무림인들은 사람 죽이는 것을 여반장으로 아는 자들이다!]
[......!]
[하여간 바다에 나갔다가 그 자들과 마주치면 좋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무리하지 마라. 며칠 동안 바다에 나가지 않는 것이 좋겠다!]
하나,
능풍운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의 그러 태도에 노인은 내심 소리없이 혀를 찼다.
(쯧쯧......!)
그는 능풍운이 끝내 바다에 나갈 작정이라는 것을 안 것이었다.
[잘 생각해 보거라! 병약하신 자당을 걱정하게 만들지 말고!]
그 말과 함께 노인은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이어,
그는 휘적휘적 걸음을 옮겨 시야에서 멀어져 갔다.
잠시 노인의 뒷모습을 주시하던 능풍운은 시선을 바다로 돌렸다.
쏴......아......
새벽 미명을 가르며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
조금씩 어둠이 걷혀가는 바다는 힘찬 요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는 능풍운.
그의 가슴속에서도 알 수 없는 벅찬 격랑이 번지는 느낌이었다.
第 二 章 千毒老祖와의 因緣
포구(浦口) -----!
열 몇척의 어선들이 포구의 모래사장 위에 끌어 올려져 있었다.
그 중 한 척의 작은 목선(木船) 위
[어제 그 다랑어 녀석이 크기는 컸군!]
능풍운(陵風雲)!
그는 목선 위에 주저앉아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무척 크고 튼튼해 보이는 그물.
하나,
그 그물은 여기저기 끊어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제 그 그물에 무려 백관이 넘는 대형 다랑어가 잡혔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것을 잡은 것은 능풍운이었다.
그는 악전고투 끝에 다랑어를 잡아 올리기는 했으나 그 대신 그물이 많이 손상된 것이었다.
어느덧,
동쪽 수평선은 불그레한 광휘로 물들고 있었다.
하나,
여느 때와는 달리 백사장에 묶여 있는 다른 배의 주인들이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모두를 해상에서 무림인들이 죽고 죽이는 난투를 벌인 소문을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물을 손질하는 능풍운의 손길은 빠르고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윽고,
[휴. 겨우 끝났군!]
그는 씩 미소를 지으며 이마에 맺힌 땀을 씻었다.
그물의 수리가 대충 끝난 것이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네가 이 배의 주인이냐?]
돌연 능풍운의 옆에서 한가닥 음산한 음성이 들려왔다.
순간,
능풍운은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렸다.
언제였을까?
소선 옆의 일장 밖,
한 명의 인물이 우뚝 서있지 않은가?
삼십 전후 정도로 보이는 장한.
그 자는 일신에 날렵한 검은색 경장을 걸치고 있었으며 등에는 한 자루 보검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 자의 얼굴은 지나치리만치 하얗게 보였다.
너무 하얗게 보여 그 인상은 음침하기 이를 데 없었다.
또한,
눈매는 비정하고 싸늘해 보였으며 입술마저 얄팍하여 일견하기에도 섬뜩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 자의 인상에서 그 심성이 지극히 음독함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흑의인을 일견한 능풍운.
그의 안색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인상이 지극히 안좋은 사람이로군!)
그는 한눈에 이 작자가 선한 성품이 아님을 알아보았다,
자연히,
그의 응대는 무뚝뚝하게 흘러나왔다.
[이것이 내 배임에는 맞습니다만, 왜 그러시오?]
그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흑의인의 눈꼬리가 일순 꿈틀했다.
하나,
그 자는 간신히 화를 억눌러 참았다.
[흐흐...... 네 소유라니 잘 되었다!]
대신 그 자는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함께,
쩔렁......!
문득 그 자는 쇳소리가 나는 하나의 작은 주머니를 능풍운이 탄 배 안으로 던졌다.
금속성으로 미루어 그 주머니 안에는 많은 동전이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흑의인의 그 태도에 능풍운은 검미를 찡그리며 물었다.
[이게 뭐요?]
흑의인은 그 물음에 음산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배삯이다. 오늘 하루 네 배를 좀 빌려야겠다!]
실로 안하무인격인 어투였다.
능풍운은 어이가 없었다.
[이보시오. 나는 ......!]
그는 황급히 무엇이라 대꾸하려 했다.
하나,
그가 무어라 입을 떼기도 전에 흑의인은 손을 쳐들어 능풍운을 저지시켰다.
[군소리 말고 좋게 말할때 본좌를 지옥도(地獄島)까지 태우고 가라!]
[지옥도(地獄島)!]
능풍운은 흠칫 놀라며 눈을 치떴다.
----- 지옥도(地獄島)!
해복진의 남동쪽 오십여 리의 해상에 자리한 섬.
하나,
그곳은 해복진의 어부들 뿐 아니라 모든 뱃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절대금지(絶對禁地)로 알려져 있었다.
그 누구도 지옥도 근처로 접근하려는 자가 없었다.
그 이유는 지옥도(地獄島) 일대해역의 물길이 아주 험악하기 때문이었다.
지옥도란 하나의 바위섬이었다.
그 일대 바닷 속에는 수많은 암초들이 뒤엉켜 있었다.
멋모르고 지옥도로 접근했다가는 암초에 좌초당하기 십상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바닷 속에는 수많은 수중동굴이 뚫려 있었다.
바로 그 수중동굴들 때문에 지옥도 일대 해역에 수많은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이었다.
일단 소용돌이에 휘말리면 배고 사람이고 할것 없이 그것으로 끝장이었다.
지옥도는 그처럼 끔찍했다.
오죽했으면 뱃사람들이 지옥도 일대 해역을 불귀마해(不歸魔海)라 할 것인가?
한데......
음독하기 이를 데 없는 인상을 지닌 흑의인.
이 작자는 능풍운에게 다짜고짜 지옥도로 가자는 것이 아닌가?
[ 미안하오만 딴데 가서 알아보시오! ]
능풍운.
그는 퉁명스럽게 말하며 돈주머니를 집어 도로 흑의인의 발치로 던져냈다.
그것을 본 흑의인의 눈썹이 무섭게 꿈틀했다.
(이놈이......!)
다음 순간,
스왁!
한가닥 푸르스름한 섬광이 능풍운의 눈앞을 번뜩 스쳤다.
[......!]
능풍운은 오싹한 한기를 느끼며 몸을 움찔했다.
그와 동시에,
펄렁......
능풍운의 이마를 질끈 동여매고 있던 머리띠가 흩날리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이럴 수가......!)
능풍운은 아연하며 숨을 죽였다.
하나,
흑의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 자의 보검은 여전히 검집에 들어가 있었다.
능풍운은 그 자가 대체 언제 검을 뽑아 자신의 머리띠를 잘랐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흑의인은 정확히 머리띠만을 잘라냈을 뿐 능풍운의 이마에는 상처 하나 내지 않았다.
실로 기쾌하고도 날카로운 검법이 아닐 수 없었다.
[흐흐흐......!]
흑의인은 내심 아연함을 금치 못하는 능풍운을 주시하며 문득 음산한 웃음을 흘렸다.
[나 천랑마검(天狼魔劍)이 지금껏 참고 있는 것은 네놈이 아직 어리고 무공을 모르는 무지렁이임을 감안해서다!]
그 자는 잔혹하고 오만한 어투로 말하며 능풍운을 노려 보았다.
[......!]
능풍운은 그 자의 냉혹무비한 시선을 받자 마치 한 마리의 늑대 앞에 벌거벗고 선 느낌을 받으며 절로 소름이 오싹 끼쳤다.
천랑마검(天狼魔劍)이라 자칭한 흑의인.
그 자는 거침없이 씹어뱉듯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본좌를 모시고 지옥도까지 가는 것이다. 이유는 필요없다!]
------ 천랑마검(天狼魔劍)
그 이름은 사실 대단한 것이었다.
그 자는 특이한 좌수검(左手劍)의 달인으로 십여 년간 한 번 도 패해 본 적이 없는 인물이었다.
신랄하고도 기쾌무비한 그의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은 무림십대검법(武林十大劍法)의 하나였다.
어지간한 무림의 명숙들도 이 자 천랑마검(天狼魔劍)과는 시비를 피할 정도였다.
하나,
무림에 문외한인 능풍운.
그가 이같은 사실을 알 리 만무했다.
하물며,
그의 성격이 남의 위협 따위에 결코 굴함이 없었으니......
능풍운은 조금도 위축됨이 없는 눈빛으로 흑의인 천랑마검(天狼魔劍)를 주시하며 무뚝뚝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나고 두말하지 않는 성격이오. 무어라해도 귀하를 내 배에 태워줄 수는 없소!]
순간,
[뭐라고!]
천랑마검은 능풍운의 단정적인 어투에 눈을 치뜨며 불끈했다.
[흐흐...... 정말 관(棺)을 봐야 눈물을 흘릴 놈이로군! 감히 본좌의 명을 거역하다니......!]
그 자의 안색은 잔인하고 냉혹하게 변했다.
[오냐! 네놈 스스로 판 무덤이니 나를 원망치 마라!]
그 자는 싸늘한 어조로 말하며 왼손를 천천히 어깨 너머로 가져갔다.
한데,
[......!]
부르르......!
막 등 뒤의 보검을 뽑아들려던 천랑마검.
갑자기 그 자는 눈을 부릅뜨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자의 두 눈은 한껏 치떠진 채 능풍운의 뒤를 주시하고 있었다.
돌연한 그 자의 태도에 능풍운은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이 작자가 갑자기 왜 그러지?)
그때,
[후...... 후배가 불민하여 노사(老師)께서 왕림하심을 미처...... 알아뵙지 못했습니다. 부디 용서를......!]
천랑마검이 갑자기 두손을 모으며 허리를 굽신거렸다.
그 기세등등함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자의 안색은 삽시에 백지장같이 창백하게 변해 있었으며 전신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또한 억지로 웃고 있는 그 자의 얼굴을 실로 보기에도 딱할 정도였다.
그만큼 그 자는 극심한 공포를 느끼고 있었던 것이었다.
능풍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나타났기에 그토록 사납던 이자가 고양이 앞의 쥐가 되었지?)
그는 의아한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였을까?
능풍운의 뒤,
한 명의 노인이 말없이 서 있었다.
왜소한 체구에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노인,
그는 일신에 소탈한 마의를 걸치고 있었는데 주름이 가득진 얼굴에는 사람좋은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마의노인,
그는 자기 키 만큼이나 긴 곰방대 하나를 입에 물고 있었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을 주시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상하군!)
아무리 봐도 눈 앞의 노인에게서는 전혀 특별한 점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촌노의 모습,
능풍운의 눈에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을 주시하며 문득 무뚝뚝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설마 할아버지께서도 내 배를 빌리러 오신 것은 아니겠지요?]
[글쎄......!]
그의 말에 마의노인은 담뱃대를 입에서 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의 모호한 대꾸에 난색을 지었다.
(이거 곤란하군. 연로한 노친네가 지옥도(地獄島)까지 태워다 달라고 하시면 차마 거절할 수도 없고......!)
마의노인은 그런 그의 내심을 읽었는지 문득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 걱정마라. 이 늙은이가 네게 신세를 지지 않을 테니까!]
이어,
그는 시선을 천랑마검에게로 돌렸다.
[네 녀석은 혹시 낭왕(狼王) 혁련사(赫煉史)의 전인이냐?]
마의노인의 물음에 천랑마검은 즉시 허리를 굽신거리며 공손한 어조로 대답했다.
[예, 그 분은 후배의 스승님 되십니다!]
------ 낭왕(狼王) 혁련사(赫煉史) !
그것은 실로 대단한 이름이었다.
음산(陰山)과 관외(關外) 일대의 공포적인 존재,
그 자는 수천 마리의 늑대를 자싱의 수족처럼 부리는 인물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근 백여 년 간 늑대의 무리와 섞여 살며 독특한 무공을 연마한 낭왕(狼王).
그 자는 그 무공으로 일문(一門)을 이루었다.
천랑마검(天狼魔劍)을 바로 그 관외기인인 낭왕(狼王) 혁련사(赫煉史)의 제자였다.
하나,
마의노인은 한심하다는 듯
천랑마검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 혁련사라는 덜 떨어진 놈이 제 앞가림도 못하는 애송이를 무림에 내보냈군!]
그는 관외패왕 낭왕(狼王) 혁련사(赫煉史)를 아무렇지도 않게 욕했다.
하나,
자신의 스승을 욕함에도 천랑마검은 찍소리 하지 못했다.
그 자는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 일언반구 대꾸할 생각조차 못하는 눈치였다.
그 자의 그런 모습이 능풍운을 더욱 궁금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이 노인이 얼마나 무서운 분이기에 저 작자는 제 스승이 욕을 먹어도 억지웃음만 짓고 있단 말인가?)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새삼 마의노인을 주시했다.
하나,
역시 마의노인의 모습은 평범, 그 이상은 아니었다.
다소 특이한 점이 있다면 마의노인의 눈동자가 다소 은은한 초록색을 띠고 있다는 정도였다.
그때,
[하..... 하교가 없으시다면 후배는 이만......!]
천랑마검은 마의노인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급한 일이 있다면 굳이 더 잡지는 않으마!]
마의노인은 쥐고있던 곰방대를 능풍운의 뱃전에 대고 탁탁 털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에 천랑마검은 희색을 띄었다.
[감......감사합니다!]
그 자는 급히 마의노인을 향해 포권한 후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하나 그떼,
마의노인이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너를 그냥 보내면 섭섭하지 않겠느냐?]
순간,
안도의 표정을 짓던 천랑마검은 다시 사색이 되었다.
[무......무슨 말씀이신지?]
그 자는 진땀을 흘리며 마의노인을 주시했다.
마의노인은 태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노부는 요즘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너희 어린놈들의 잡기를 재롱삼아 구경하는 것이다!]
말과 함께,
그는 한옆의 뱃전에 걸터앉았다.
(휴...... 난 또 뭐라고!)
천랑마검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 앞의 이 무서운 노독물은 자기보고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의 검법을 한 번 펼쳐보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영문은 알 수 없었지만 천랑마검의 입장에서는 비로소 지옥에서 빠져나갈 출구를 본 느낌이었다.
이윽고,
천랑마검은 마의노인을 향해 정중히 포권해 보였다.
[그...... 그럼 미거하나마 노야의 높으신 안목에 폐를 끼치겠습니다.]
이어,
그 자는 천천히 한 발을 앞으로 내밀며 두 팔을 내려뜨렸다.
그 자세는 굶주린 늑대가 먹이를 덮치려는 듯한 자세 그것이었다.
그 자세야말로 천랑마검의 자랑인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의 기수식이었다.
그때,
[......!]
능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뜨고 천랑마검의 모습을 주시했다.
다음 순간,
[카---- 앗!]
천랑마검의 입에서 마치 늑대가 울부짓는 듯한 한소리 괴성이 터져나왔다.
뒤를 이어,
쉬학----!
파츠츠......
사위를 휘감는 시퍼런 검광(劍光)!
섬뜩한 섬광과 날카로운 예기가 빗발치듯 새벽하늘을 그어갔다.
천랑마검의 발검(拔劍)은 너무나 빨라 그 자가 언제 검을 뽑아 검법을 시전했는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이윽고,
[감사합니다! 노야!]
스------윽!
한순간 검기가 싹 가시며 천랑마검의 신형이 삽시에 북쪽으로 멀어져 갔다.
그 자는 눈깜짝할 사이에 천랑십이식(天狼十二式)을 모두 펼쳐 보인 후 장내를 떠난 것이었다.
괜히 우물쭈물 하다가는 마의노인이 또 어떤 명령을 내릴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능풍운.
그는 멍한 눈으로 천랑마검이 검법을 펼쳐보이던 곳을 주시했다.
(저것이 무공이란 것이구나!)
그는 망연한 표정으로 내심 중얼거렸다.
그때,
[모두 몇가지 변화를 보았느냐?]
문득 마의노인이 능풍운을 향해 불쑥 물었다.
그 물음에 능풍운은 자신도 모르게 얼른 대답했다.
[열 두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그 중 아홉 개까지밖에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
마의노인은 움찔하는 기색을 지었다.
능풍운의 대답을 들은 그의 노안에는 은은한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이놈봐라? 기껏해야 천랑십이식중 삼사식 정도밖에 못볼줄 알았는데......)
그는 놀라움과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내 눈이 정확했다. 이놈은 백 년 내 다시 없을 재목이다!)
그는 희열과 흥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꼈다.
(잘만 다듬으면 철혈대제(鐵血大帝) 능무벽(陵無壁)에 못지 않은 거목이 되리라!)
내심 빠르게 염두를 굴린 마의노인.
이윽고 그는 내심의 흥분을 숨기며 담담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 이름은 무엇이냐?]
능풍운은 처음과는 달리 공손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풍운(風雲)! 성은 능(陵)가 입니다!]
[능......풍운(陵風雲)!]
마의노인은 능풍운의 이름을 되뇌이며 왠지 흠칫하는 기색을 지었다.
이어,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능풍운의 아래 위를 훝어 보았다.
(그러고 보니 이놈은 능무벽(陵無壁)이란 괴물과 어딘가 흡사한 용모를 지니지 않았는가?)
그는 두 눈을 번뜩 빛내며 기대의 빛을 지었다.
[네 아비의 이름은 무엇이냐?]
[능초(陵超)라는 분이신데 제가 아주 어렸을 때 괴질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능풍운은 마의노인이 꼬치꼬치 캐묻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하나,
그는 내색치 않고 공손하게 대답했다.
(내가 잘못 보았는가?)
능풍운의 대답에 마의노인은 눈가에 일순 실망의 빛이 스쳤다.
(하긴 능가 괴물이 살아 있다면 이미 팔순을 넘었을 테니 이렇게 어린 아들놈을 두었을 리가 없겠지!)
그는 내심 염두를 굴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늙은이가 꽤 귀찮게 굴었지?]
[아닙니다!]
능풍운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허허, 마음에 없는 소리할 것 없다. 예쁜 계집이라면 모르지만 나같은 늙은이와 노닥거려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마의노인의 말에 능풍운은 멋쩍은 표정으로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마의노인은 그런 능풍운을 인자한 모습으로 바라보며 껄껄 웃었다.
[노부는 갈황이라는 늙은이다. 어린 것들은 노부를 노독물(老毒物), 또는 천독노조(千毒老祖)라 부르며 상종치도 않으려 하지!]
그는 너털웃음을 지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하나,
그 노인의 이름을 무림인들이 들었다면 그 즉시 아랫도리를 적시며 백리 밖으로 달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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