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14
주식인생 (4-4)
"이봐요. 어쩌죠? 그 다까히라 영감의 조건 나쁘지도 않아요.
월 30만 에이나 준대요"
"받아두는 게 어때. 내가 다른 사람도 소개할께. 이틀에 한 사람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그래요. 세 사람까지는 자신 있어요. 30만 엔씩 받으면 한 달에
90만 엔 나브지 않죠. 주식으로 손해본 것은 한 달이면 봉창되네요."
"부럽군. 아무리 주식 붐이라도 밑천 없이 그런 벌이가 있나.
여자는 편리하군."
"그러니까 당신에게는 무료로 한 주일에 한 번씩 봉사하잖아요."
즉 한 주일에 한 번만 그 침대 속에서 다음 준비를 의논하는 것이
었다.
"그야, 그 다까히라 영감 좋긴 하지만 그렇게 섹스가 강하면 30만
엔 받아도 괴롭지 않아?"
"그래요. 50만 엔으로 올릴까요?"
"뭣하면 더 늙은 사람을 소개할까? 그러는 편이 준꼬가 몸도 편
하지 않을까?"
"그렇군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다까히라를 아주 늙은이로 바꾸는 일에는 찬
성이 아닌 모양이었다. 다소의 질투를 느끼자 준꼬가 말했다.
"있잖아요. 언젠가는 몽땅 먹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요?"
"몽땅?"
"그래요. 30만의 보수보다는 결혼하면 전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
어요."
"헤, 그래서 누구에게 결혼 신청이라도 한다는 거야?"
"그야, 이쪽 나름이죠. 아무래도 다까히라 영감의 부인도 나이가
많은 것 같아요. 저 지칠 줄 모르는 영감을 상대하는 건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무슨 좋은 방법 없을까요?"
"다까히라 영감과 결혼하는 방법 말야?"
"그런 거......."
"글쎄?"
"글쎄라뇨, 흐리멍텅한 말 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 덕분으로 결혼
까지 포기했어요. 어떻게 멋지게 팔자 고치는 방법 없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의 부인이 지금 입원 중이라지 아마?"
"입원요? 그게 무슨 병이죠? 암인가요? 아니면 고혈압?
부인과?"
"그건 모르겟어. 하지만 잘 하면 기회가 없는 것도 아니지. 그러
나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도 신변을 정리해 놔야 해. 지금처럼 비밀
로 몇 사람이나 돈벌이로 만나는 건 신상에 안 좋아."
"생각해 볼께요. 이봐요. 그 부인의 병이 뭔지 조사해 줘요."
무섭도록 진지한 표정이었다. 여자의 몸이 발동하면 남자와 달라
서 수치심도 없어지는 법이다.
투자 상담을 하다가 무심코 물으니,
"아니, 그게 말입니다. 벌써 1년이 됐어요. 암으로 입원했다가 퇴
원했다가..."
하고 그는 처음으로 부인의 사정을 말했다.
"그럼 많이 나쁜가요?"
"그저 병이 병이니 만큼 금년이나 넘길까 모르겠어요."
"그거 참 걱정이 많으시겠습니다."
그런 전화를 끊자 곧 준고에게 전화했다.
"당신은 운이 좋아. 다까히라 영감의 부인이 암이래. 그리고 올
해도 넘기지 못할 거래."
"어머, 세상 일은 알 수 없군요. 그런 말이 있죠. 복과 해는 꼬는
새끼줄 같다. 그리고 새옹지마."
"흠, 꽤 오랜 격언을 알고 있군."
"그 정도의 지식은 있어요. 뜻밖에 좋은 길이 트일 지도 모르겠어
요. 그때 주식으로 손해 본 것이 내 인생의 득이 될 지도 모르겠어
요."
분명히 아니라고 할 수 도 없었다. 갑자기 료따는 자기가 이루게
한 일이나 만치 부러워졌다.
"여자는 좋구먼. 그에 비하면 남자는 별 수 없어."
"그렇게 한탄하지 마세요. 나와 그이는 나이 차이가 많아요.
몇 살 차든가요. 그는 62살, 나는 26, 36년 차이군요. 내게는 한
번 더 결혼의 기회가 있을 것 같아요."
"그때 나와 결혼해 줄 거야?"
"생각해 보죠."
"하지만 그때까지 내가 혼자 버틸 수 있을까?"
"그 정도는 미리 투자해 놔야죠."
준꼬는 벌써 다까히라와의 결혼이 이루워진 것 같으느 말투였다. 기
껏 100만엔 손해를 보고 결혼을 포기한 끝에 어쩌면 몇십억의 재산
을 얻을 지도 모르는 준고, 이미 료따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었다.
"좋아, 한번 믿고 버텨보지."
"이젠 다른 단골손님 따위는 안중에 없어요."
하고 기분좋게 전화를 끊었다.
남의 불행이 행복이 되는 기현상.
료따는 제기랄 하고 맥이 빠지며, 역시 여자에겐 못당해, 하며한
숨을 쉬었다. 그러나 증권사원은 남이 버는 것을 묵묵히 보고 있지
않으면 일을 할 수 없다.
그로부터 열흘 정도가 지나서 준꼬에게 전화가 있었다. 활기찬 음
성이었다.
"잘 될 것 같아요. 아니 잘 돼 가고 있어요. 그이는 내게 열중했
어요. 병원에 있는 부인의 일을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아요. 나도 힘
껏 서비스해 주고 있어요."
"핥아내고 빨아들이고 말이지......"
"그 정도가 아니죠. 그이도 처음 맛보는 여자라고 날 침이 마르도
록 칭찬해요."
"좋겠군."
공연히 준고의 육체를 알아버린 만큼 더욱 질투가 났다.
그후로는 마치 증권사원이 뻔질나게 주주에게 시세를 보고하는
것처럼 준꼬가 료따에게 전화를 했다.
"부인이 재수술했어요. 하지만 이젠 형체만 남아 있대요. 앞으로
한두 달이면 끝난대요. 그 부인의 뱃속에는 암투성이래요."
준꼬는 다까히라 부인의 병상을 일일히 보고했다.
"그거 잘 됐군."
하고 말할 수 밖에 없지만, 어쩐지 뒷맛이 썼다.
그후 약 한 달이 지나도록 준꼬에게서 전화가 없었다. 어떻게 됐
을까.
그러나 료따는 이젠 준꼬의 일에서 손을 떼고 싶었다. 그런 어느
날 준꼬에게서 전화가 왔다.
"큰일 났어요, 죽었어요. 죽었어요. 어떻게 해요."
준꼬는 당장 울음이 터질 듯한 음성이다.
"죽었다니, 부인 말인가? 그럼, 바라던 바가 아닌가."
무심코 료따가 속삭였다.
"그래, 그게 아녜요. 죽은 것은 그이에요. 다까히라 영감요."
"영감이라고? 그 다까히라 영감이?"
그것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료따에게는 큰 일이었다. 왜냐하면
다까히라는 료따의 최대의 고객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죽으면
그 거래가 중지되고 즉작 그의 자산을 봉쇄해야 했다.
"정말이야? 괜한 소리 아니고!"
료따는 당황한 목소리로 허둥됐다.
"나, 지금 호텔에 있어요. 그이와 데이트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이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구급차로 운반됐지만, 틀렸어요."
"뭐야! 그래서 병원에 있어?"
"할수 없이 함께 구급차를 타고 왔어요. 경찰의 조사를 받을 거
예요. 큰일 났어요. 어떻게 좀, 도와줘요."
"어떻게라니,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있어? 너, 그 영감한테
무슨짓을 했어?"
"부인이 이젠 글렀나 봐요. 그래서 매일 밤 무리를 했어요."
"그런 짓을 하니까 그렇지. 아무리 힘이 좋아도 나이가 있잖아.
그가 죽으면 모든일이 허사야. 바보!"
"아, 난 왜 이렇게 불행해. 30억,40억이 꿈으로 사라졌어요."
"이 바보야!"
하고 소리쳤지마, 료따는 말할 수 없이 통쾌하고 탄산수를 마신것
같은 기분이었다.
왜 그럴까, 질투 탓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추천88 비추천 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