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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천년 - 4장

第 四 章 孤獨崖의 潛龍


전모(電母) 냉약빙,
그녀는 고독헌의 문 앞을 나서며 싸늘한 음성으로 외쳤다.
「당신들에게 할 말이 있어요!」
그녀의 말에 유령대제 구양수가 음산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흐흐, 무슨 수작을 하려는 것이오. 냉부인?」
하나,
그 자는 섣불리 다가서지는 못했다.
냉약빙이 지닌 굉천벽력탄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그것을 보며 냉약빙은 싸늘한 비웃음을 흘렸다.
(비겁한 자들, 너희들은 평생가도 가가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어,
그녀는 차갑고 오연한 음성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연가가께서는 당신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셨어요. 받아들이던지 말던지는 전적으로 당신들 마음이에요!」
말과 함께,
그녀는 냉랭한 눈빛으로 군웅들을 쓸어보며 문득 한손을 쳐들었다.
그녀의 손,
세 권의 낡은 비급이 들려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오.......! 저........ 저것은.......!」
「혈....... 혈마대장경(血魔大藏經)이다!」
군웅들 사이에서 일제히 경악과 환호성이 뒤섞여 터져 나왔다.
하나,
유령대제 등은 단순히 기뻐할 수만은 없었다.
그 자들은 갑자기 냉약빙이 혈마대장경을 쳐들자 환호성 대신 안면을 찌푸렸다.
(저 계집, 무슨 꿍꿍이지?)
그 사이,
냉약빙의 싸늘한 음성이 이어지고 있었다.
「당신들이 이곳 고독애를 어지럽힌 이유는 바로 이 혈마대장경 때문이지요? 안그런가요?」
그녀의 말에 독천존이 물론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 맞는 말이오. 냉부인!」
그 자는 냉약빙의 손에 들린 혈마대장경을 주시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냉약빙은 냉오한 표정으로 군웅들을 대표하는 삼 인의 고수를 둘러보았다.
「연가가께서는 더 이상의 소란을 원치 않으세요! 이 세권의 비급의 처분을 당신들 세 사람에게 맡기기로 하셨어요. 이 제안을 받아들이던지 끝내 연가가께 대항할지는 전적으로 당신들의 자유예요!」
순간,
「그...... 그럴 수가!」
「혈...... 혈마대장경을 내놓다니......!」
갑자기 사방이 소란스러워졌다.
그도 그럴 것이,
냉약빙의 제안은 실로 천만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꿈에도 예측하지 못했었다.
도도하기 이를데 없는 고독마야 ──── !
그가 혈마대장경을 포기할 줄은,
삽시에,
군웅들 사이에는 분분한 파란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유성신검황 등 삼 인의 안색도 당혹함으로 물들었다.
그들은 고독마야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선뜻 짐작이 가지 않았다.
고독마야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는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형지독에 중독되었지만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자신들과 동귀어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때,
유성신검황 혁련휘가 군웅들의 소란을 저지하며 냉약빙을 향해 포권해 보였다.
「잠깐 의논할 시간을 주시오. 냉여협!」
이어,
그는 독천존과 유령대제를 자신의 옆으로 불렀다.
장내는 일순 조용해졌다.
「.......!」
「.......!」
군웅들은 숨을 죽인 채 삼 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한 자리에 모인 세 거두,
그들은 머리를 맞대고 진중하게 숙의하는 모습이었다.
팽팽하게 장내를 압박하는 긴장감,
잠시 후,
세 거두는 숙의를 끝마친 듯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이어,
유성신검황이 냉약빙을 향해 정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좋소! 우리 삼 인은 연대협의 제안을 받아들이겠다고 전해 주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숨죽이고 있던 군웅들 사이에는 흉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빌어먹을....... 혈마대장경을 자기들끼리 나눠먹겠다는 건가?)
(이렇게 되면 우리는 헛물만 들이킨 꼴이 아닌가?)
그들은 저마다 불만에 가득한 표정으로 입술을 씰룩거렸다.
하나,
그 누구도 드러내놓고 불만을 토로하지는 못했다.
독천존과 유령대제 등이 그만큼 무서웠기 때문이기도 했거니와 고독애 일대에는 그들 세 거두의 수하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냉약빙은 유성신검황의 말에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했어요! 혈마대장경은 분명히 당신들에게 양도했어요!」
말과 함께,
피핑 ──── !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세 권의 혈마대장경을 각기 한 권씩 삼 인에게 날려 보냈다.
파앗! 파았!
삼 인은 행여 빼앗길세라 급히 자시에게로 날아드는 비급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진품이다!)
혈마대장경을 받아든 즉시 뒤적여본 삼 인의 입이 동시에 찢어질 듯 벌어졌다.
그들이 받아든 비급은 틀림없이 혈마대장경임을 확인한 것이었다.
그 자들은 기쁨과 격동에 몸을 떨었다.
그때,
「경고해 두겠어요! 이 시간 이후 고독애 주위를 얼쩡꺼리는 자는 나 냉약빙과 연가가의 적으로 간주하고 무조건 참살할 테니 그리 아세요!」
냉약빙이 장내를 둘러보며 싸늘한 음성으로 외쳤다
그 말에 독천존은 혈마대장경을 품 속에 갈무리한 후 냉약빙을 향해 포권했다.

「흘흘, 알겠소이다. 냉부인! 그럼 이만 실례하오!」
그 자는 말과 함께 즉시 몸을 날렸다.
삽시에 독천존의 모습은 고독애 아래로 사라져 갔다.
그러자,
휙! 화라락!
군웅들 중 독천존의 수하들도 즉시 그 자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뒤이어,
유령대제 구양수도 수하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성신검황.
그는 침중한 얼굴로 탄식하며 그 자리를 떠났다.
(과연 이것이 잘하는 것인가?)
그는 회의와 갈등의 눈빛으로 무겁게 발길을 돌려야 했다.
유성신검황마저 떠나자 나머지 군웅들도 앞다투어 고독애 아래로 사라져갔다.
이내 장내는 적막에 휩싸였다.
여기저기 죽어 넘어진 시체들만이 역겨운 피비린내를 풍길 뿐이었다.
「흥! 어리석은 자들!」
냉약빙은 군웅들이 사라진 곳을 노려보며 싸늘한 냉소를 터뜨렸다.
(십 오 년만 기다려라! 네놈들에게 오늘의 빚을 받으러가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그녀는 싸늘한 눈을 번뜩이며 내심 중얼거렸다.
이어,
그녀는 몸을 돌려 다시 고독헌 안으로 들어섰다.
고독헌 안,
고독마야 연남천.
그가 감회에찬 눈길로 자신의 무릎에 누인 사내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래, 이 아이라면 원시천존(元始天尊)의 경지를 초월해 보려던 나 연남천의 숙원을 이루어 줄지도 모른다!)
그는 격동의 가슴을 누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만남!
그렇다.
장차 천년무림의 운명을 바꾸어놓을 천고기재(千古奇才)와 우내제일인(宇內第一人)의 운명적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곳은 고독애(孤獨崖) ──── !
운명의 씨앗이 배태(胚胎)되고 있는 역사적 현장이었다.

x x x

세월여류(歲月如流)라 했던가?
곤륜 고독애(孤獨崖)에서 군마영웅보의 영웅들이 절반 가까이 몰살당한 대겁난이 벌어진 것도 어언 십 이 년 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그 십 이 년의 세월 동안 무림은 공포와 근심으로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십 이 년 전에 벌어진 두 가지 대참사로 인해 무림에 머지 않아 대풍파가 일 것을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가지 겁난,
그 중 첫째는 물론 고독애의 혈겁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한 지방을 제패하던 수백 명의 패웅들이 한꺼번에 몰살 당했다.
결국,
혈마대장경이 사대천왕(四大天王)중 삼 인의 손에 넘겨지는 것으로 고독애의 겁난은 해소되었다.
그 후,
고독애의 사방 백 리는 금역(禁域)으로 화해 누구도 접근하지 못했다.
두 번째 겁난,
그것은 신주사패천(神州四覇天)에 들던 태양곡(太陽谷)이 의문의 궤멸을 단한 사건이었다.
태양곡(太陽谷) ──── !
누가 태양곡을 모르겠는가?
삼십대의 젊은 나이로 군마영웅보 서열 육 위에 올랐던 일대기협 태양황(太陽皇) 이청천(李靑天)의 거처가 아닌가?
바로 그 태양곡이 고독애의 겁난이 있기 며칠 전 놀랍게도 하룻밤 사이에 초토화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소문을 접한 무림인들이 경악하여 달려갔을 때는 이미 태양곡은 기왓장 하나 남김없이 무참하게 기멸된 후였다.
과연 그 엄청난 혈겁이 누구의 짓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어이없게도 혈겁의 단서조차 발견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태양곡의 괴멸은 풀리지 않는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
무림인들은 태양곡의 의문의 멸망을 무림대겁풍(武林大劫風)의 전조로 여기고 전전긍긍했다.
혹자는 미리 겁난을 피하기 위해 새외에 은신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림인들이 예상했던 겁풍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극도의 긴장 속에서 중원무림에는 유래없는 평화가 도래했다.
그런 평화가 십 이 년간 이어지자 무림인들은 차츰 안도하기 시작했다.
하나,
그런 가운데도 무림인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불안의 씨앗은 좀처럼 제거되지 않았다.
현자나 노강호들은 지금의 평화가 폭풍전야(暴風前夜)의 고요라고도 했다.
하나,
작금의 평화가 정말 폭퐁전야의 고요인지 진정한 평화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다만 시간이 모든 것을 밝혀 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곤륜 고독애(孤獨崖) ──── !
고독한 우내제일인(宇內第一人)의 거처가 있는 그곳에서 바야흐르 무림천년의 역사를 송두리째 뒤바꿔놓을 일대잠룡(一代潛龍)이 자라고 있음을.......!

x x x

우르르릉.......!
천지를 진동하는 은은한 뇌성.
곤륜산 고독애 일대는 온통 짙은 먹장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쏴 ──── 아!
후두둑!
이내 장대같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독애 아래에 자리한 아득한 계곡,
그 계곡의 끝에는 한 채의 아담한 모옥이 그림처럼 세워져 있었다.
문득,
「차 ──── 핫!」
콰다탕!
모옥 안으로부터 낭랑한 소년의 일갈이 터져나왔다.
이어,
한 명의 소년이 질풍같이 모옥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제 십 사오 세 가량 되었을까?
소년은 영기발랄한 모습에 보기 드물게 단아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조각같은 오관,
짙은 눈썹에 주사같이 붉은 입술은 강력한 조화와 함께 무척 인상적이었다.
허리까지 늘어뜨린 긴 머릿결,
검고 윤기 흐르는 그 머릿결은 마치 사자의 갈기처럼 탐스러웠다.
소년은 일신에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짧은 단삼을 걸치고 있었다.
쐐 ──── 액!
모옥을 뛰쳐나온 소년은 무서운 속도로 계곡 밖을 향해 달려갔다.
그 속도는 얼마나 빠른지 거의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쏴아.......
소년의 모습은 이내 폭우 속으로 사라졌다.
한데,
소년이 사라진 지 채 일다경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우우!」
계곡 밖에서 다시 낭랑한 장소성이 들려왔다.
바로 예의 피의(皮衣) 소년의 음성이 아닌가?
이어,
쐐 ──── 액!
장소성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소년의 모습은 계곡의 어귀에 나타났다.
그는 한 걸음에 계곡을 날아 건너 다시 모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모! 다녀왔어요!」
모옥 안으로 뛰어들며 소년은 큰 소리로 외쳤다.
모옥 안 ──── !
단아한 거실이 나타났다.
검박하고 단촐한 가구.
하나,
주위는 고아하고 운치있게 치장되어 있었다.
거실의 중앙,
나무로 만든 하나의 탁자가 놓여 있었다.
그 앞,
한 명의 백의여인이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린 듯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중년미부,

──── 전모(電母) 냉약빙(冷若氷)!

아!
바로 그녀가 아닌가?
십 이 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녀의 얼굴은 늙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귀밑머리의 백발이 조금 더 늘었을 뿐이었다.
모옥 안으로 들어선 피의소년,
그는 약간 숨이 거칠어진 채 하나의 연꽃잎을 전모(電母) 냉약빙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어요. 석련(石蓮)의 잎사귀!」
소년이 내미는 꽃잎.
그것은 석련(石蓮)리라는 바위에 피는 연꽃의 잎사귀였다.
석련(石蓮)은 곤륜의 특산으로 이곳 장춘곡(長春谷)에서 삼십여 리 떨어진 석룡벽(石龍壁)이라는 곳에서만 자생한다.
한데,
피의소년은 일다경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왕복 육십여 리나 되는 그 석룡벽(石龍壁)까지 가서 연꽃잎을 따온 것이었다.
실로 놀라운 경공이 아닐 수 없었다.
하나,
전모 냉약빙 ────!
그녀의 반응은 실로 뜻밖이었다.
「쯧쯧! 겨우 육십 여리를 왕복한 정도로 호흡이 거칠어지다니...... 제대로 전궁만리비(電弓萬里飛)의 경공을 시전하려면 아직도 멀었구나!」
그녀는 피의소년을 바라보며 준엄한 표정으로 꾸짖는 것이 아닌가?
「헤헤, 미안해요, 이모! 다음에는 잘할께요!」
피의 소년은 혀를 낼름 내밀며 멋쩍은 듯 뒤통수를 긁적긁적했다.
실로 티없이 맑고 순진무구한 모습.
「이리와 봐라! 빗물이 묻었는지 보자!」
냉약빙은 그런 소년을 손가락을 까딱거려 불렀다.
「만일 빗물이 한방울이라도 묻었으면 앞으로 삼일 간 면벽폐관해야만 한다!」
냉약빙의 준엄한 음서에 소년은 아첨의 웃음을 흘렸다.
「헤헤, 오늘은 그냥 넘어가면 안돼요?」
그는 자신없는 표정으로 비실거리며 뒷걸음질쳤다.
아!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닌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달려나갔다 왔거늘 빗방울이 몸에 묻었는지를 조사한다니......
사실,
경신술이 어느 경지에 이르면 그 빠른 속도 때문에 몸 주위에 진공이 생겨 빗물이 침투하지 못한다.
하나,
그 같은 경지에 이른 경신술의 대가는 전무림을 통틀어도 전모 냉약빙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한데,
냉약빙은 이 어린 소년에게서 자신과 같은 수준의 경신술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꾀를 부려도 소용없다!」
스윽,
냉약빙은 교갈하며 한차례 어깨를 으쓱했다.
순간,
「아이쿠!」
피의소년은 비명을 내지르며 맹렬히 모옥 밖으로 몸을 날리려 했다.
하나,
「어딜!」
이내 냉약빙의 교갈이 일며 피의 소년의 오른쪽 손목이 보드라운 섬섬옥수에 움켜쥐어졌다.
비록 소년의 몸놀림이 빠르긴 했지만 아직 냉약빙만큼 빠르지는 못한 것이었다.
「에이! 잡히고 말았네!」
피의 소년은 냉약빙의 섬섬옥수에 손목을 잡힌 채 입을 삐죽거렸다.
냉약빙은 그런 소년을 향해 곱게 눈을 흘겼다.
그녀의 섬섬옥수가 빠르게 소년의 몸을 훑고 지나갔다.
행여 소년의 몸에 빗물이 한방울이라도 튀었을까 조사하는 것이었다.
한데,
냉약빙의 손이 막 소년의 사타구니 부분을 쓰다듬고 지나갈 때였다.
(아이쿠......!)
소년의 얼굴이 화끈 붉어지며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냉약빙의 보드라운 교수가 자극을 가하자 자신의 하체 일부가 주책없이 불끈 곤두선 것이다.
「.......!」
한겹의 얇은 옷 사이로 느껴지는 큼직하고 단단한 불기둥,
그 느낌에 냉약빙도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움찔했다.
그 순간,
「헤헷!」
파 ──── 앗!
피의소년은 낭랑한 웃음소리와 함께 제압당한 손목을 미꾸라지처럼 냉약빙의 손에서 빼내며 문밖으로 날아갔다.
「검한(劍恨)아!」
냉약빙은 급히 달아나는 소년을 불러 세웠다.
하나,
소년의 모습은 순간적으로 빗줄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고독 할아버지께 다녀올께요. 이모!」
멀리서 소년의 낭랑한 음성만이 여운을 끌며 들려올 뿐,
「휴.......!」
냉약빙은 고개를 저으며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감돌았다
(검한이가 벌써 어른이 되다니.......!)
그녀는 소년의 늠름한 실체를 만졌던 자신의 손을 들여다 보았다.
그 튼튼하고 탄력있는 감촉,
그 감촉이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듯이 손바닥에 생생히 남아 있는 기분이었다.
(세월 한 번 빠르구나. 기련산 중에서 핏덩이였던 검한이를 거둔 것이 벌써 십이년 전의 일이니.......!)
그렇다.
모옥 밖으로 달아난 소년,
그는 바로 태양황(太陽皇) 이청천(李靑天)과 옥수상아 우담혜의 아들이었다.
전모 냉약빙은 그에게 이검한(李劍恨)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비록 자신의 출생을 모르나 이검한은 냉약빙과 고독마야(孤獨魔爺)의 따뜻한 보살핌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이검한은 철들 때부터 냉약빙과 고독마야에게서 무공을 배웠다.

냉약빙과 고독마야 ──── !
그들은 두말이 필요없이 최고의 무공선생이 되어 주었다.
명실상부한 우내제일인 고독마야 ──── !
그리고,
우내최고의 경신술의 달인인 전모 냉약빙!
그들의 지도하에 이검한은 이미 무서운 능력자로 변해 있었다.
그 자신은 단 한 번도 남과 싸워보지 않았으므로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
현재 이검한이 알고 있는 무공의 대부분은 전모 냉약빙이 전수한 것이었다.
고독마야는 그저 한 가지의 내공심법을 전수해 주었을 뿐이었다.
내공 외의 경신술등 잡다한 무공을 전수하는 것은 모두 냉약빙의 차지였다.
그녀는 이검한을 친아들처럼 사랑했다.
핏덩이였던 때부터 이검한을 길러온지라 냉약빙은 종종 자신이 이검한의 생모(生母)인 것으로 착각할 지경이었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결코 기뻐할 일만도 아니지!)
문득,
냉약빙은 우수에 찬 눈빛으로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어둡게 가라앉은 그녀의 두 둔에는 애틋한 모성애가 가득했다.
(검한이는 머지않아 저를 낳아준 생모와 가문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저 아이가 그때 받을 충격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구나!)
주르르.......!
그녀의 새하얀 두 뺨으로 뜨거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옥수상아 우담혜가 흉도들에게 윤간당해 죽은 장면을 떠올리면 그녀는 가슴을 칼로 저미는 듯한 슬픔을 느껴야만 했다.
그것은 모두 다 냉약빙이 이검한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언제까지나 지금의 그 밝은 성품을 잃지마라. 검한아!)
냉약빙은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며 이검한이 사라진 모옥 밖을 주시했다.
쏴아.......
장대같이 쏟아지던 폭우,
어느새 빗줄기는 가늘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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