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5
5.
내가 유일하게 자유로이 쓸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에 세 번, 체력관리를 명목으로 헬스장에 갈 때 뿐이다. 물론 독서실에 왔다고 카드만 찍고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있지만 그러면 보는 눈이 어쩔수 없이 생긴다는게 문제다. 내 엄마는 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해 독서실 cctv까지 본 전적이 있다. 지금이야 경계심이 많이 떨어졌다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헬스장에서 세 시간 운동을 한다. 체육선생에게 애원해가며 엄마에게 조언을 하게 만든 결과였다. 오며 가며 쓰는 시간까지 총 네 시간이다. 여자 하나를 암노예로 타락시키는 시간으로는 넘치고도 충분했다. 역사를 쓸수 있을 만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 시간을 철저하게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지난 몇 주간 뒷조사를 진행한것도 그것 때문이다.
오지은, 그녀는 연예인을 꿈꾼다. 얼굴이야 선천적인 거지만 몸매는 다르다. 보형물 삽입, 지방제거같은 방법으로 몸매를 가꾸기도 한다지만 아무래도 운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그 때문에 다른건 다 개차반으로 하는 그녀가 유일하게 꾸준히 하는게 헬스였다. 일주일에 서너번은 헬스장에 와서 땀을 흘렸다. 나는 그녀의 기억을 읽어보다가 그녀가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 이미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쾌재를 불렀다.
그래도 혹시 그녀가 갑자기 맘을 바꿔서 헬스장을 때려친다던가 하는 일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녀의 패러미터를 미세하게 조작했다. 체중을 살짝 줄이고, 가슴과 엉덩이를 키우고 허리를 잘록하게 만들었다. 미세하게. 또한 그녀의 만족감과 즐거움을 올렸다. 그녀가 헬스의 효과에 만족하고 더 열심히 하게 만들기 위한 장치였다. 효과는 예상대로였다. 그녀의 기억에 헬스에 대한 예찬이 잔뜩 적혀있었다. 와서 운동할때도 더욱 열심히 하는것이 눈에 보일정도였다.
그 다음엔, 공간을 물색했다. 사람들 널려있는 헬스장 안에서 범해줄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도 기능으로 학교와 헬스장 사이의 빈곳을 샅샅이 뒤졌다. 마침내 찾아낸 곳이 예전에 망한 나이트클럽이었다. 골목길에 나있는 뒷문의 자물쇠를 부수고 들어가자 주방이 나왔다. 그래도 나갈때 청소는 하고 갔는지 음식물 쓰레기가 널려있지는 않았다. 먼지만 좀 쌓여있을 뿐이었다. 게다가 아직도 전기가 끊기지 않았다. 수도는 끊겼지만 딱히 쓸데도 없으니 아쉽진 않았다. 섹스할 곳도 찾았다. 직원들이 잠깐 선잠을 자려고 뒀는지 침대를 둔 방이 있었다.
남은 것은 그녀를 그 곳으로 몰고가는 것이었다. 이 것을 위해 나는 그녀의 기억을 읽는 수고를 해야했다. 켜켜이 쌓인 기억 속에서 그녀를 협박할 기억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했다. 그 결과 그녀의 파란만장한 성장기를 알수 있게 되었다. 야구방망이로 주차된 차들의 유리창을 깨고 도망친다던가, 모델하우스에서 불장난을 치다가 홀랑 태워버린다던가 하는 일들은 그녀가 잡히기만 했으면 엄청난 처벌을 받았을 일이었다.
협박의 재료를 마련했으니, 이제 그녀를 공격할 때였다. 나는 그녀의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냈다. [나는 네가 예전에 저지른 모든 일을 알고있다.] 물론 그녀는 문자를 가볍게 무시했다. 하지만 그 다음 문자는 무시하지 못했다. [넌 초등학교 4학년때 야구방망이를 들고 XX빌라 앞에 주차된 차들의 유리창을 깨고 도망친 적이 있다.] 수업시간에 몰래 보낸 문자였다.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는게 그대로 보였다. 나는 차근차근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섹스를 했는지 열 다섯번의 문자를 보냈다. 그녀의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옆에 앉아있던 엑스트라1을 노려보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반응을 보며 즐길 뿐이었다. 사유지 무단 침입, 절도, 상해, 그녀가 저지른 각종 범죄들을 하나하나 문자로 보냈다. 마지막 문자를 보낼때 쯤에는 그녀는 완전히 지친 얼굴로 자신의 핸드폰을 노려보고만 있었다. 슬슬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문자로 그녀를 불러냈다.
그녀는 공원 벤치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에겐 보이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기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스마트폰으로 거는 전화는, 소리가 바로 뇌에 전달된다. 받은 대상은 입을 열지 않고 생각만 해도 통화를 할 수 있다. 뇌로 직접 전달되는 소리는 꽤 무섭다. 놀려주기에 최적의 기능인것이다. 이 외에 효용이 없다는게 문제지만 말이다.
[오지은. 내 말을 들어라.]
"뭐, 뭐야?!"
갑자기 소리가 들려오자 벌떡 일어서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주변을 살피는 그녀였다. 나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겁내지 마라. 네 뇌로 소리가 직접 전달되고 있을 뿐이다.]
"다,닥쳐!! 당신 누구야?!"
공원에서 혼자 소리치고 있는 그녀를 주변 사람들이 의아하게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일단 앉히기로 했다.
[진정하고 앉아라.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아도 들리니 조용히 해라.]
"아, 알았어."
그녀는 다시 벤치에 앉았다. 여전히 주위를 신경질적으로 경계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난 며칠간 내가 보낸 문자는 잘 받았겠지. 네가 저지른 과오와 치부를 말이야.]
"...당신 누구야. 말해."
[그것밖에 말할줄 모르는 건가? 뭐, 말해주지. 나는 신이다.]
"...신? 뭔 헛소리야?"
[난 네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혹시 날 인정하지 않는다면, 아직 말하지 않은 걸 말해주도록 하지. 넌 중학교 2학년때 빈 모델하우스에 들어가서 놀다가 불을 질러 전소시킨 적이 있다. 부정하진 않겠지?]
"...무, 무슨 헛소리야. 그런 적 없어."
[신경식, 오준오, 조춘화, 배중경. 너와 함께 사건을 저지른 놈들이다. 춥다고 신문지에 불을 붙이다가 쇼파에 불이 옮겨붙고, 너희는 불을 끌 생각은 안하고 도망치기 바빴지. 모델하우스가 전소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다섯 명이 사건에 대해 함구하기로 했고. 이런데도 발뺌할 텐가?]
"...나, 난 아무것도 안했어. 난 그냥 따라갔을 뿐이야..."
발뺌하려는 그녀였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 때 신문지에 불을 붙인건 너다. 너 혼자 라이터를 가지고 있었지. 게다가 모델하우스에 들어가 놀 생각을 한것도 네가 처음이었지. 너희 아버지와 건설사 사장이 친분이 있어서 모델하우스가 비어있다는것을 알게되었고, 어쩌다가 그 사실을 들은 네가 다른 아이들을 끌어들였는데도 발뺌할 생각인가?]
그녀의 기억만으로는 불확실한 부분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을 찍어서 파워업한 사전으로도 보이지 않는 부분이었다. 나는 그 부분을 다른 사람의 기억으로 보충했다. 그녀와 같이 모델하우스에 들어간 세 명의 기억을 읽고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것이다.
"...그, 그래서 어쩌라고, 나더러 어떡하라는 건데...?"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부정할 수 없는 증거를 들이댄 결과다. 아무리 멍청한 년이라고 해도 뉴스에까지 난 화재사건의 범인이 어떤 꼴을 당하는지는 잘 알겠지.
[거래다. 나는 네 죄를 입증할 증거를 가지고 있다. 단 100만원에 이걸 너한테 넘겨주겠다.]
"그, 그런 돈을 어떻게 구해."
[네가 감옥에서 몇 년간 썩을 것을 구제해주는 대가가 100만원이다. 정말로 푼돈이지. 뭐 네가 바라지 않는다면 난 이걸 언론에 공표할수밖에 없다. 그럼 결과가 재밌어지겠지?]
"기, 기다려. 구할게. 돈 구할테니까 그건 참아줘."
[좋아, 그럼 2주 주겠다. 2주 후에 OO백화점 앞으로 나와라. 돈은 전부 현찰로 준비해라.]
그 것으로 첫 통화는 끝났다. 그 후 2주동안 오지은은 바쁘게 보냈다. 자신을 협박한 범인을 찾으려는 듯 했다. 자신과 같이 모델하우스에 들어간 애들이 의심의 대상이었다. 같은 지역에 있는 신경식이나 조춘화, 배중경의 집에 들어가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그녀의 기억에 적혔다. 여기서 나는 수를 한 번 썼다. 오준오는 내가 유일하게 기억을 읽지 못한 사람인데, 왜냐면 그가 꽤 멀리 살았기 때문이다. 같은 서울이라곤 하지만 한쪽 끝에서 반대쪽 끝이다. 굳이 그런 노력을 들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범인을 찾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그녀가 오준오와 연락을 취하기 전에(다행히도 오준오와 그녀들의 연락은 끊긴지 오래였다) 오준오를 찍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의 기억을 수정했다.
기억은 촘촘한 그물처럼 하나를 건들면 하나가 없어지고, 하나를 써넣으면 이상한게 생겨나 참으로 수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람, 과감하게 그가 가지고 있는 오지은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렸다. 모델하우스에 대한 기억도 다 지웠다. 일상생활에서 주변 사람들이 그를 약간 이상하게 볼지도 모르지만 어차피 나랑 상관없다. 이렇게 오준오의 기억을 수정하자 재밌는 일이 벌어졌다. 오지은이 사람들을 하나 하나 걸쳐가며 마침내 오준오와 연락을 했을 때에는, 오준오는 오지은을 처음보는 사람 취급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오지은이 생각할수 있는 건 하나였다. 오준오가 범인이라는 것. 그렇게 되자 그녀는 굳이 돈을 모으려는 생각을 치우고 주변에서 힘 좀 쓴다는 양아치를 모았다. 마침내 2주 후 약속의 날. OO백화점 앞으로 온 그녀의 양 옆에는 근육덩어리 두 명이 서있었다. 물론 그 것은 나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멍청한 짓을 하는군. 힘으로 협박하면 될줄 알았나?]
"다,닥쳐. 너 오준오지. 당장 나와. 니가 살고 있는 동네 잘 알거든? 니가 증거 터트리기 전에 오빠들이랑 가서 밟아줄거야."
[머리가 거기까지밖에 안돌아가나? 지금 오준오에게 전화해봐라. 그럼 내가 오준오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겠지?]
"자, 잠깐만."
그녀가 여태 통화하는 척 하던 핸드폰으로 오준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물론 오준오는 전화를 받았다.
[씨발 너 누구야? 좆같은 년이 왜 자꾸 전화하고 지랄이야?!]
[이제 알겠지? 네가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아, 아니야. 이게 아닌데..."
그녀는 이미 끊어져버린 전화를 여전히 붙잡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를 스쳤다. 하지만 다시 되돌릴수는 없는 일이었다.
[자, 그러면 멍청한 짓을 했으니까 패널티를 줘야겠지? 이번엔 200만원이야. 2주뒤에 보자구. 다음에도 옆에 근육 달고나오면 그날 9시 뉴스에 니 얼굴이 나오는걸 보게될거야.]
내가 힘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는 것을 깨달은 오지은은 2주동안 돈을 마련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뭐 돈을 마련한다고 해봤자, 2주를 일해서 200만원을 모을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다고 모아뒀던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그녀가 할 수 있는건 빌리는 방법밖엔 없었다.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면 찾아가서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애초에 돈을 그렇게 쉽게 빌려줄 사람이 있을까. 일주일이 지나도 돈은 반도 모이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다급해진 그녀는 그동안 사들인 명품들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명품을 사봤자 얼마나 사겠으며, 또 급하게 판 중고품들이 제값을 받을 리도 없다. 어느새 2주는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장점에 기댈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의 보지에 좆질 한번 해보자고 안달인 양아치들이 널려있다. 오지은은 그들에게 접근했다. 즉, 매춘을 하려는 것이다. 화대는 10만원. 그녀의 몸에 비하면 엄청난 염가판매였으나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제대로된 수입이 없는 양아치들에게 받는 돈은 그정도가 최대였다. 원조교제를 하면 훨씬 많이 받을수 있지만 시간이 없었다. 결국 그녀는 2주의 마지막 이틀동안 여덟명에게 범해졌다.
그리고 약속한 날이 왔다. 선글라스와 모자로 적당히 얼굴을 가린 나는 OO백화점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돈은 마련해왔나?]
"...가져왔어. 당신이 말하는 대로 전부 현찰이야."
[좋아. 그럼 접선장소로 간다. 이런 곳에서 거래를 할 수는 없겠지? 내가 말하는 대로 가라. 일단 직진이다.]
"...알았어."
무리한 매춘으로 골반이 아픈지 그녀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나는 그녀를 천천히 유도했다. 내가 그녀를 계속 눈으로 봐야했으므로 횡단보도를 건너는건 미행하고 있는 지금으로선 무리였다. 그녀는 돌고 돌아서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이트클럽의 뒷문이 있는 곳이었다.
[비밀번호는 7531이다.]
"......"
부숴버린 자물쇠 대신 내가 새로 단 자물쇠를 풀고 그녀는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일단, 따라들어가지는 않고 미리 준비한 나이트클럽 안의 지도를 이용해서 그녀를 내가 준비한 방으로 유도했다.
"이, 이 곳이야?"
[그렇다. 그 곳에서 기다려라. 곧 가겠다.]
나는 통화를 끊었다. 이제 그녀와의 첫 대면이 기다리고 있었다. 흥분이 손끝부터 발끝까지 저릿저릿하게 올라왔다. 원대한 하렘 창건의 계획이 드디어 첫걸음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뚜벅, 뚜벅. 딱딱한 신발 밑창이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무도 없는 나이트클럽 안을 울렸다. 이윽고 유일하게 불이 켜진 방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문을 열었다.
"...다, 당신이야...?"
"그렇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침대도, 의자에도 앉지 않고 그녀는 방의 한구석에 등을 기대고 서있었다. 침대 옆엔 내가 미리 준비해놓은 것들을 담아둔 자루가 보였다. 낡은 나무문이 저절로 닫혔다. 나는 뒤로 손을 돌려 잠금쇠를 몰래 잠갔다.
"도, 돈은 준비했어. 즈, 증거를 보여줘."
"일단 눈으로 한 번 보지. 한번 약속을 어겼으니 말야."
그 말에 군말없이 그녀는 들고있던 작은 핸드백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냈다. 나는 의자에 앉아 그녀에게 침대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녀는 주저하다가 침대에 살짝 걸터앉았다.
"절반으로 나눠서 세어보는거다. 물론 다 세고 나면 서로의 것을 바꿔서 또 한번 센다. 시작하지."
그녀는 봉투에서 돈뭉치를 꺼냈다. 대부분이 만원권이었다. 적당히 절반을 가늠해 돈을 세기 시작했다. 어느 하나 빳빳한 지폐가 없었다. 모두 다 구겨지고 더러워진, 땀내나는 지폐였다. 마치 그녀의 비참한 처지를 보여주는 듯 했다. 오만원권까지 합쳐서 내가 센 금액은 93만원. 그녀가 센 금액은 107만원이었다. 바꿔서 세어봐도 정확히 200만원이었다. 나는 돈뭉치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다시 봉투안에 돈을 넣었다.
"약속은 잘 지킨것 같군. 이 돈을 모으려면 고생 좀 했겠는데? 몸이라도 팔았나?"
"...알 바 없잖아. 증거나 보여줘. 빨리."
내 말이 정곡을 찔렀는지 그녀가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날 노려봤다. 나는 손가락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무슨 짓이야?"
"네가 바라는 증거다. 내가 증거다."
"무, 무슨 헛소리를 하는거야? 지금 장난쳐?!"
"장난이라니 그런 유감스러운 말을 하나. 내가 증거다. 내가 기억하고 있다. 모델하우스 방화사건의 전모를 말야."
나는 지긋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가 안되는 눈치였다.
"다, 닥쳐. 헛소리 하지마.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잖아! 나, 나는..."
"증거라면 여기에 있잖아. 내 머릿속에 기억으로 남아있지."
"...기, 기억? 너 누구야. 오준오는 아니라고 했잖아!"
아마 그녀는 나를 모델하우스에 같이 들어간 네 명중 한명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예상을 단번에 부숴버리기 위해 선글라스와 모자를 벗었다. 내 얼굴을 본 그녀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멍해졌다.
"너, 넌... 전교 1등...?"
"이름은 기억 못하는 거냐? 섭섭한데. 반 년동안 같은 반이었잖아?"
"허, 헛소리 하지마. 왜 니가...?"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돈봉투를 들고 일어났다. 하지만 지나친 충격에 후들거리는 다리를 가지고 일어서는 건 그리 좋은선택이 아니었다. 몇 걸음 떼지도 못하고, 침대 근처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그녀는 침대에 다시 앉을 수밖에 없었다.
"자, 설명을 잘 들어봐. 충격 고백 하나 할게. 난 사실 기억을 읽을 수 있어."
"...그런 말이...!"
나는 그녀가 뭐라고 말하려는 것을 끊고 말을 이었다.
"난 네 기억을 읽었어. 그 동안 네가 언제 누구랑 섹스했는지 어디서 했는지 전부 알수 있었어. 네가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도. 심지어 네가 억지로 잊어버리려고 했던 방화사건의 전모도 전부 알수 있었지."
"그, 그딴게 세상에 있을리가 없잖아."
공허하기만 한 그녀의 반론이었다. 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면 왜 오준오는 널 잊어버렸을까?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이름이 기억안난다거나 하는 건 있을 수 있지만, 걔는 네가 있는 줄도 몰랐지. 왜 그랬을까?"
"...설마..."
"난 기억을 읽는 것 뿐만 아니라 지울 수도 있거든. 오준오의 기억중에서 너에 관한 기억은 모조리 지워버렸어. 넌 오준오가 너를 모른체하니까 그녀석이 난줄 알았겠지. 그러니까 만만하게 봤을테고."
"그, 그러면 난, 대체 뭘 위해 돈을 번거야...?"
그녀의 어깨가 부들부들 떨렸다. 매춘을 해서까지 모은 200만원짜리 증거는 내 기억이었으니 그녀로서는 허무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할 것이다.
"아무 의미 없어. 넌 그냥 여덟 명한테 다리를 벌린 것 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냐."
"그, 그걸 어떻게 알고있어? 아무한테도..."
"잊었어? 난 기억을 읽을 수 있다고. 네가 2주동안 돈을 빌리러 다니고 옷들을 팔고 마침내 매춘을 한것도 전부 알고 있어. "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자신이 어떻게든 가리고 싶었던 치부를 전부 알고 있으니 발가벗겨진 기분일것이다. 나는 어느새 침대 밑으로 떨어진 돈봉투를 주워 그녀의 손에 쥐어줬다.
"난 딱히 비싼 옷도 사입지 않고 가방도 매지 않거든? 용돈만 받아도 넘치도록 충분하니까 이 돈은 네가 가져. 네가 피땀흘려 번 돈이잖아?"
정확히는 피와 땀과 애액이지만 말이다. 내 말이 너무 잔인했는지 그녀는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어째서...?"
그녀가 끊어질듯한 가녀린 목소리로 읇조렸다.
"응?"
"...대체 왜, 나한테 왜 그런거야...?"
그녀의 양 볼에 눈물이 흘렀다. 나는 이제 때가 무르익었음을 깨달았다.
"그야 간단하지. 널 범하기 위해서야."
나는 그녀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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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단마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