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환타지] 세자르씨의 유쾌한 전원생활 17
17
“세자르씨, 내 말 들리세요? 정신 좀 차리세요.”
세자르는 귓가에서 쨍쨍 울리는 목소리와 자신의 몸이 흔들리는 느낌에 천천히 눈을 떴다. 한동안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던 세자르는 곧 자신이 어느 통로 바닥에 완전히 뻗은 채로 누워있는 것과 그 옆에서 장이 자신을 흔들면서 깨우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해라, 장. 가까이서 들으니 네 목소리 꽤나 시끄러운 편이구나.”
“다, 다행이다. 난 세자르씨가 안 일어나기에 죽은 줄 알았단 말이에요!”
“그 말은 우리 아직 살아있단 말이겠군.”
세자르는 장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일어서서 보니 왼쪽 머리와 어깨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장의 말에 의하면, 다이빙하듯이 멋지게 공중을 날았던 세자르는 그러나 착지동작을 살짝 잘못 잡은 듯 출구 안쪽 벽에 어깨와 머리를 부딪친 뒤 개구리 뻗듯이 깨끗하게 뻗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세자르는 왼쪽 머리에 난 혹을 살살 만져보고는 그래도 이정도로 끝난 게 다행이라면서, 장과 함께 앞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출구는 아까 ‘마법의 돌’이 있던 방처럼 새하얀 대리석으로 꾸며진 통로 형태였다. 하지만 그 통로 끝에서 들어오는 빛에 의해 통로 전체가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그 빛이 나오는 통로 끝까지 걸어가던 세자르와 장은 곧 그 끝에서 하얀 빛이 마치 커튼처럼 통로 전체를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잠시 그 빛의 장막을 살펴보던 세자르는 그곳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는 긴 심호흡과 함께 또다시 비명을 지르는 장을 옆구리에 매쳐들고는 빛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마법의 돌’ 때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눈을 뜨고 쳐다보기도 힘든 강한 빛 때문에 세자르는 처음엔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또다시 세한 느낌과 함께 공기의 흐름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차츰 빛이 약해지면서 주위의 사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서있는 곳은 이전까지의 복잡한 미로나 마법공간과는 전혀 다른 장소였다. 그곳은 거대한 지하 공동이었다. 하지만 그 광경은 보는 이들에게 묘한 위화감을 전해주고 있었다.
먼저 천장에는 언제부터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을, 아름드리나무들만 한 크기의 거대한 종유석들이 아래를 보며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거대한 지하호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반적인 지하호수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 호수의 외곽은 울퉁불퉁한 자연그대로의 암벽들 아래로 서로가 빈틈없이 꼭 맞도록 인공적으로 가공된 석재 바닥판들이 마치 부둣가 같은 형태로 호수를 삥 둘러싸여 있었다. 그 바닥판의 너비는 병사들 모두가 거기에 앉아 쉬어도 충분할 만큼의 폭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 있는 호수 아래 깊은 곳에선 신비스러운 에메랄드빛이 물속을 뚫고 올라와 지하 공동 전체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다.
세자르와 장은 바깥에선 보기 힘든 그 광경에 감탄을 하면서 일행이 모여 있는 호수가 근처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다가가면서 세자르는 문뜩 일행 내에서 뭔가 이상한 기류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평소 같으면 세 마녀를 중심으로 에워싸면서 진영을 짜고 있어야할 병사들이 세 마녀와 도미노를 비롯한 지휘관들을 호숫가에 세워둔 채로 그들을 마주보는 방향으로 바닥에 앉아있었다.
‘젠장, 파업이군. 하필 이럴 때에.......’
세자르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차면서도 재빠르게 부대 뒤쪽으로 돌아들어갔다. 거기에는 예상대로 용병들 중 병사들의 파업에 끼기엔 애매한 위치인 조장들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서성대고 있었다. 세자르는 그 중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냉소적인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암벽에 기댄 채,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노만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어찌 된 상황인가?”
“아, 아니, 자네 살아있었나?”
“살아있으니 지금 자네 눈앞에 있지 않나. 그 얘기는 일단 나중에 하기로 하고, 지금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가?”
“그게 말이지, 부대가 간신히 이곳에 도착하고 나서 모두들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네. 근데 저쪽 병사들 중 겁에 질린 일부가 지상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청을 하기 시작했지. 한데 부장들이 딱 잘라 거절하니까 삽시간에 병사들 전체가 파업하는 분위기로 돌변한 거야. 다들 마음속으론 이런 위험한 곳엔 잠시라도 더 있긴 싫다는 거지.”
“그래서 계속 이러고 있는 건가?”
“그럼 어쩌겠나? 병사들은 보수도 명성도 다 싫고 제발 여길 살아서 나가고 싶다하는데, 높으신 양반들이 여기까지 와서 그걸 넙죽 받아들여 주겠나? 원하는 걸 구할 때까진 어림도 없을 걸세.”
실제로 각 부장들이 철수를 애원하는 병사들을 상대로 일일이 설득작업을 벌이는 중이었다. 하지만 과연 노만의 예상대로 그건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유적 내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무서운 함정들과 공포상황들이 이미 그들이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긴 상황이었기에 그들은 무조건 회군을 원하고 있었다.
결국 부장들의 병사들을 상대로 한 설득이 실패하자, 이번엔 뒤쪽에서 그 사태를 조용히 관망하던 도미노가 나섰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던 병사들도 비록 명목상이지만 총대장인 도미노가 앞에 서자 다들 입을 다물고 도미노의 발언을 기다렸다.
“친애하는 전우여러분. 우선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을 사령관으로써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바이다. 무엇보다도 그동안 접해보지 못한 상황과 환경에 여러분 부하장병들의 고충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함에도 그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점은 미안하게 생각하는 바이다.”
저 강직하고 자긍심 높아 보이던 도미노의 입에서 사과성 발언이 나오자, 그 예상 밖의 전개에 병사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하지만 도미노는 거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여러분, 비록 지금은 혼란스럽고 힘든 상황이지만, 이건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건 바로 우리가 누군지 그리고 또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여기 놀러온 건가? 아님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그런 건 일개 농부라도 무기만 들면 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여러분은 과연 그저 그런 목적으로 여길 오겠다고 결심한 것인가? 그건 아니다. 우리는 왕국의 긍지 높은 군인들이다. 왕국을 보호하며 우리가 서약한 일은 설사 죽음이 가로막는다고 해도 끝까지 완수하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들 중에서도 최고라고 불리는 이자벨라 백작님의 친위대다.
다들 생각해 봐라. 우린 과거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전쟁에서도 언제나 승리를 거둬왔다. 남쪽의 야만족을 상대할 때에도, 혹은 서쪽의 해적들과 난전을 벌일 때에도 몇 배나 되는 적들을 상대로 끝까지 살아남아 이긴 것은 다음 아닌 우리들 아니던가?
한데 지금 여러분의 모습은 어떠한가? 단지 겁에 질려 어쩔 줄 모르는 어린애와 다름없지 않은가. 과연 누가 지금 그대들의 모습을 과거 수많은 전투에서 살아남은 왕국의 정예병이라 보겠는가?”
도미노의 연설은 시쳇말로 병사들에게 완벽하게 먹혀들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병사들은 다들 부끄럽고 죄지은 듯한 표정으로 도미노의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까까지 여기 많은 사람들이 돌아가고 싶다 했다. 한데 돌아가려면 좀 전까지 지나온 그 무시무시한 함정들을 또다시 거쳐 가야 한다는 걸 생각해 봤나? 차라리 이젠 거의 다 온 목적지에 얼른 도착해서 함정을 모두 해제시키고 편하게 나가는 게 더 낳지 않을까?
더 이상 길이 없는데 어떻게 하냐고?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여기 루이씨가 찾아낼 것이다. 이 사람의 능력은 오늘 내내 여러분 모두의 눈으로 충분히 확인했을 것으로 안다. 여기까지 우리 부대가 최소한의 피해로 오게 한 일등공신이니까.”
호숫가에서 뭔가 단서를 찾으러 어슬렁거리다가, 도미노의 소개에 갑자기 주위가 쏠린 루이는 당황한 표정으로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도미노는 그런 것은 상관없다는 듯이 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내 말을 잘 들은 자라면, 무엇이 옳은 일인지, 자신에게 득이 되는 일인지 충분히 알았을 거라 믿는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가 가야 할 곳은 그리 멀리 남지 않았다. 여기 여러분이 평소와 같은 전사로써의 명예와 투지를 회복하여 진군하기만 한다면, 남은 함정들을 돌파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으로 난 자신한다. 게다가 그 끝에서 여러분이 얻게 될 부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며, 이 모험을 성공했다는 명예는 평생에 걸쳐 따라다닐 것이다. 다들 힘을 내자. 용사들이여. 그리고 어어어엌.......”
다들 감동에 젖어 도미노의 연설을 듣고 있던 병사들은 돌연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을 끊은 그의 행동에 의아해 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도미노의 몸이 갑자기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긴 비명과 함께 휙 날아가 호수 속으로 떨어졌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벌어진 이 황당한 일에 일행은 모두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힘겹게 수면으로 올라와 허우적대던 도미노의 머리 위로 뭔가 반투명한 물체가 그를 다시 물속으로 끌어들이는 순간, 병사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괴, 괴물이닷!!! 괴물의 공격이닷!!!!”
“아악! 도망쳐!!!”
“우린 다 죽었어!!! 여긴 피할 때도 없다고!!!!”
도미노가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며, 겁에 질린 병사들은 각각 비명을 지르면서 마치 늑대 한 마리에 ㅤㅉㅗㅈ기는 양떼들 마냥 우왕좌왕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부장들은 그런 병사들을 통제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러댔지만,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 도미노가 끌려들어간 호수에서는 출렁이던 파도가 가라앉으면서 잠시 잠잠해지는 듯하더니, 곧 호수 중앙부 물속 깊은 곳에서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방울씩 올라오던 거품은 금세 마치 그 주변이 끓어오르는 것처럼 엄청나게 늘어났다. 그리고 뒤를 이어 물속 깊은 곳으로부터 검은 그림자가 떠오르더니 엄청난 양의 물이 위로 솟구치는 것과 동시에 도미노를 공격했던 괴물이 물 밖으로 본체를 드러냈다.
암벽에 기댄 채로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고 있던 세자르와 노만 또한 갑작스런 도미노의 호수 다이빙 이후 연달아 벌어지는 급작스런 상황변화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괴물의 정체에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바로 유적의 입구에서 한 번 맞부딪혔던 문지기 괴물이었다.
“이런 젠장! 어떻게 이런 일이....... 그게 이런 의미였나?”
노만은 유적 입구에서 문지기 괴물의 공격을 피해 정문으로 통하는 움직이는 방으로 들어갔을 때, 그 방 밖에서 두고 보자는 듯이 촉수를 휘둘러대던 괴물의 모습을 떠올렸다.
거대한 해파리 모양의 그 괴물은 여전히 반투명한 몸체가 여기저기 형광 빛으로 반짝반짝 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노만의 독화살에 찔린 상처는 여전한지 입 주변은 시커먼 흙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톱니바퀴 모양의 이빨 사이에는 도미노의 망토와 갑옷 일부만이 도미노의 행방을 가늠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문지기 괴물은 병사들이 도망칠 곳이 마땅치 않은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잠시 동안 자신의 모습에 겁에 질려 이리저리 도망 다니고 있는 병사들을 가소롭다는 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곧 수많은 촉수들을 전 방위로 휘두르며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휘몰아치는 촉수들의 위력은 대단했다. 사람 몸통만한 두께의 촉수들이 병사들의 머리 위에서 이 잡듯이 내려치는 것은 기본이요, 좌우로 한 번 휩쓸고 지나갈 때마다 그 범위 안에 서있던 병사들이 한꺼번에 휩쓸려 사방으로 나가떨어졌다. 요리조리 피하는 병사들은 아애 촉수로 감아올려 호수로 던져버렸다. 그런 소동 속에서 주변의 자그마한 바위들이나 구조물들이 부셔져 나가는 건 그저 애교였다.
그렇게 손쉬운 사냥을 즐기던 괴물은 저 멀리 암벽 근처에서 가만히 숨을 죽이고 서있던 노만과 세자르를 발견하자, 갑자기 눈을 빛내면서 괴성을 내질렀다.
쿠우어어어어엇!!!!!
잘됐다는 듯이 마음껏 괴성을 질러 된 괴물은 두 사람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해오기 시작했다.
“이런, 저 녀석이 노만 자네가 몹시 그리웠나 보구만 그래.”
“아니, 자네 지금 그런 농담이 나오나?”
“그럼 저게 왜 저렇게 기쁜 마음으로 쫓아오겠나? 어이쿠, 피해!”
생각보다 먼 거리에서 날아온 괴물의 공격에 깜짝 놀란 두 사람은 잽싸게 옆으로 몸을 피했다. 바로 다음순간 커다란 촉수 하나가 그들이 기대있던 암벽을 후려갈기자 암벽에 금이 가면서 파편들이 떨어져 내렸다.
“거봐, 내가 뭐랬나?”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이번엔 그저 자네 말이 씨가 된 경우라고!”
“누구 탓은 나중에 하고, 자 이쪽으로 가세나!”
자신들을 노리고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촉수들을 피해 열심히 도망 다니던 세자르는 순간 노만의 팔을 잡고 한 곳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암벽이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 있어서 그나마 괴물의 공격을 조금이나마 피할 수 있는 장소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세 마녀가 몇 명의 호위병들과 함께 서있었다.
“까~악! 이게 뭐하는 짓이야, 세자르!”
세자르와 노만이 클로에의 뒤쪽으로 돌아들어가는 동시에 문지기 괴물의 촉수가 그들을 향해 내려쳐졌다. 하지만 과연 클로에의 ‘드래곤의 축복’은 명불허전이었다. 커다란 촉수는 그들의 머리 위에서 ‘탕’ 소리와 함께 튕겨 나가버리고 말았다.
의아해 하던 괴물은 그 뒤로도 괴물은 몇 번이나 그 주변을 공격했지만 모두 ‘드래곤의 축복’에 막혀 효과가 없자, 금세 흥미를 잃었는지 다른 병사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세, 세자르, 이건 너무 하는 거 아냐?”
“제 무례함을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위기상항에선 이용할 건 모든 이용하자는 게 제 생각이여서.......”
“좋아.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번 일은 나중에 추궁하기로 하지. 각오해 두는 게 좋을 걸~.”
“나는 별 상관 안 해. 우선 저 망할 해산물이나 처리하고 보자.”
마녀들 중 아이린이 앞으로 나섰다. 그녀는 괴물이 여기저기 촉수들을 날리며 도망치는 사방의 병사들을 공격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눈썹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공격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주문이 끝나자마자 괴물을 향해 마법을 날렸다.
“울티메이트 라이트닝 해머 (Ultimate Lighting Hamme)!!"
갑자기 지하공동 천장에서 먹구름이 일어났다. 금세 천장 전체를 뒤덮은 구름에선 곧 엄청난 천둥소리와 함께 작은 번개들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충전이 끝났는지 곧바로 구름 전체에서 엄청난 섬광과 함께 강력한 번개가 문지기 괴물을 향해 떨어졌다.
하지만 문지기 괴물의 대응도 재빨랐다. 괴물이 엄청난 덩치에 맞지 않은 민첩한 움직임으로 호수 속으로 숨어드는 동시에 호수 표면 위로 빛이 나는 뭔가 복잡하게 생긴 마법진이 떠올랐다. 그리고 거기에 떨어진 번개는 그대로 마법진에 반사되더니 사방으로 흩어져 버렸다.
의외의 역공에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문지기 괴물이 아닌 병사들이었다. 사방으로 흩날린 강력한 번개 덕에 물에 젖은 병사들이 감전되어 픽픽 쓰러져 나갔고, 이곳저곳의 암벽이 부서지면서 떨어진 바위들에 부상을 입은 자들이 속출했다. 그런 광경 보면서 아이린은 어의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말도 안 돼! 저 호수 전체가 최상위 방어마법으로 뒤덮여 있단 말이야?”
“그래서? 다른 방법은 있어?”
“이게 말이 돼? 저 괴물은 지금 클로에의 ‘드래곤의 축복’과 맞먹는 마법방패를 들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야. 그런데 저런 걸 어떻게 상대해?”
“다른 마법은?”
“아까 전 마나의 움직임으로 봐선, 다른 계열의 마법들도 마찬가지야. 게다가 저 녀석이 호수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한, 아마 소형 마법들은 몸뚱이 자체로도 튕겨낼 수도 있을 걸.”
“그럼 마법공격은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군. 그럼 거기 세자르 씨는 어떻게 생각하지?”
이자벨라 백작의 갑작스런 호명에 세자르는 허를 찔린 눈빛으로 백작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백작은 아무런 표정변화 없는 냉정한 모습으로 세자르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용병단 대장께서도 별다른 답이 없는 건가?”
“그, 그게 방금 전에 문뜩 떠오른 게 하나 있기는 한데.......”
“좋아. 그럼 해봐. 내가 전권을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