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의무(조 변호사&의뢰인 호랑 시리즈2)-2
아침부터 울어대는 전화기소리, 많이 힘들어하는 나의 뼈다귀, 대충대충 받아 넘기려 해보지만.
"사모님, 장안에 오피스텔 싸게 나온거 있는데 어떠세요?"
후 이런 전화는 사람의 신경줄을 잡아내어 고압선에 칭칭 묶은 다음 십억볼트로 인간을 지저 대는듯 하다, 피카피카 피카추인가. 대답도 하지 않고 끊으려는데 혹시 집 내놓을 생각 있느냐는 말이 들려왔다. 으레 그렇듯 됐습니다 하고 끊으려다 말고 어제 생각이 났다.
오피스텔 하나 구해서 너 집은 전세주고, 이 집은 팔고... 부동산을 한번 알아보려곤 했는데바로 다음날 전화가 오는군, 우리가 직접 알아봐서 접고 들어갈 필요도 없었구만. 개똥은 약에 쓰려곤 없어도 부동산은 집을 내놓을 정도론 충분히 있다.
"집... 전세 줄거 하나하고 팔 집 하나 있긴 한데..."
"아유 그러시면, 언제 한번 찾아뵐게요 집은 몇채?"
"뭐... 집 주소도 아시는거 같은데 언제 한번 찾아오세요, 원래 한챈데 하나 떠맡게 돼서"
"아 얘 그럼 지금 곧 가겠습니다"
"에? 아니 여보세요"
전화기는 뚜 뚜 거리며 교성을 낼 뿐이었다. 이 여자 분명 전국강매협회 출신이다. 빌어먹을 소리가 절로 나왔다.
제대로 청소할 틈도 없이 초인종이 울렸다.
"부동산에서 왔습니다"
언제부터 부동산이라는 법률용어가 집과 땅을 매매 대리해주는 공인중개사를 뜻하는 것으로 바뀐걸까?
부동산에서 왔다는 중개사는 쇼트 컷을 친 삼십대의 여자였다. 아줌마라기엔 좀 나이가 적고, 아가씨라기엔 결혼을 한것 같아 보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 이 길로 들어왔어요 라고 써 있는듯 했다. 들어오라는 말도 안했는데 벌써부터 대가리를 들이밀고 여기 저기를 기웃댄다.
"어머 집 공사는 괜찮게 했네요, 근데 바깥분은?"
"결혼했는지부터 묻는게 예의 아닐까요?"
방안에 팽귄 한 마리가 지나갔다.
"집 괜찮네요, 싱크대도 수리할 필요 없겠고, 붙박이장도 있네요, 뭐 따로 수리할 필요 없어서 집값 올려받을수 있을거 같은데요"
여자는 말 하는 와중에 계속 손가락을 배배 꼬고 있었다. 당황스러웠나 보다. 말만 잘하면 복비는 싸게 칠수도 있을거 같다.
일단 식탁에 중개업자를 앉히고 나도 반대편에 앉았다, 뭐부터 물어볼까? 팔 집? 전셋집? 아니면 나의 드림 오피스텔? 상상의 가지는 머리를 넘어 쑥쑥 자라느라 문이 열리는 끼익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엄마???"
중개업자의 눈이 뚱그레졌고 나는 등 뒤를 돌아봤다.
"야!, 너!"
호랑이가 팬티에다 윗도리만 입은채로 눈을 비비며, 어웅 한 표정으로 비척비척 걸어나오고 있었다. 여자의 눈은 그의 가랑이 사이로 향해 있었다. 크지는 않아도 속옷 안에서 온몸으로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그것으로 말이다.
"히익, 누구?"
나는 애를 덥썩 안아들고는 방 안으로 밀어넣고 옷입으라고 소리를 지른 뒤 문을 닫았다. 중개업자는 입만 헤 벌리고 있었고, 나는 목덜미의 경동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들?"
"아니... 아니에요 이 나이에 무슨..."
나도 모르게 나는 호랑이를 다른 사람 앞에서는 아들로서는 부정하고 있었다.
"어머 그럼... 혹시 연하의 섹스 파트너?"
"이봐요!"
"큿큿... 장난이에요, 조카라든가... 근데 왜 엄마 라고 하는거죠?"
이 여자, 그런 민감한건 물으면 안된다고 하는 기본적 상식도 갖추지 않고 있는걸까?
"제가 사실, 개업은 아직 안했는데, 변호사거든요"
여자가 힉 하면서 뒤로 살짝 물러섰다, 엡솔루트 파워, 후훗.
"그런데 쟤가 부모님이 없는데 안좋은 일에 연루되서, 제가 변론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보니 부모님도 일가친척도 하나 없는 애라서 제가 돌보게 되었거든요, 입양시킬 만한 데도 없고, 불쌍하잖아요"
"아아 그러니까 후견인?"
"어? 어떻게 아세요?"
"아 저도 부동산학과 졸업했는데, 기본적으로 민법 수업에서 총칙이랑 물권이랑 친족상속편은 필수라서요"
이 여자, 의외로 나보다 좋은 곳을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평생 따라다닐 열등감의 족쇄 때문에 오늘도 기가 죽는다.
이번엔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바로 뒤를 돌아봤다. 바지를 대충 챙겨 입은 호랑이 녀석이 머뭇대며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엄마... 나 버릴거?"
마시던 물이 코로 넘어가버렸고, 맞은편 사람은 어머 젊은나이에 사고쳤구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사고친것도 맞고 내가 낙태시켜버린 애가 환생해서 얘인것도 믿는데, 그걸 다른 사람 앞에선 밝히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그냥 끝을 내야 된다, 더 이상 갔다간 막장가족으로 긴급출동 119가 올지도 모른다. 나는 거의 울고 싶었다.
"알았어 알았어, 이리와봐, 안버려 안버려, 이리 와서 인사하고 들어가"
"안냐세요"
엉덩이에 손을 뻗어 꽉 집자 그제서야 "안녕하세요" 라고 말했고 총총거리며 들어갔다.
"저기, 너 몇 살이니?"
"아... 중 2에요"
"중2... 에에 너 되게 귀엽다, 잠깐 이리 와볼레?"
심실의 피가 부글부글 끓었다.
"잠깐만 뒤 돌아볼레, 아니 나쁜짓 하려는건 아니고, 잠깐만"
그녀는 애를 뒤로 돌려세우더니 티셔츠의 목 깃 뒤와 바지 뒤쪽 허리를 살짝 뒤집어 보고는 엉덩이를 통통 두드려 주고는 애를 한번 쓰다듬어 주더니 이제 가보라며 살짝 밀었다.
꾸벅 인사하고 가는 호랑이의 가랑이 사이가 살짝 부풀어 있었다.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다.
꽉 쥔 내 손을 맞은편의 그녀가 톡톡 두드렸다.
"저기... 변호사?"
"네 그런데... 아직 개업을 안해서, 사건 수임은 못해요, 다음에 소개나 해주세요"
"아..."
"뭐 간단한거면, 무료변론은 할 수 있어요, 개업은 안해도 무료변론은 할 수 있으니까요"
"아 그럼...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뭔데요?""저... 실은... 제가 이혼을 했는데, 얼마전에 전 남편이 죽어서, 남편이 원래 아들을 키웠거든요, 그래서 제가 좀 아들을 찾아오고 싶어요".
이 여자도 세상에서 아픔을 좀 겪었나 보다.
"보통 여자쪽에서 키우지 않나요?"
"그렇긴 한데... 제가 한동안 좀... 일단 잘못이 제게 있어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바람이거나 도박 둘중 하나겠지.
"뭐 어렵진 않네요, 가정법원에 간단한 청구만 하면, 남편분이 돌아가셨다면 금방 되찾아 오실수 있을겁니다"
"하지만, 남편이 재혼을 해서... 그게 좀 그렇네요"
"뭐 어려운 얘기는 다음에 하도록 해요, 대신... 복비는 싸게 해주실수 있죠?"
"애만 찾아올 수 있다면 한푼도 필요 없어요"
"그럼 다음에 옮길만한 매물 가져 오시면 그때 제대로 얘기해 봐요"
문을 나서는 그녀의 표정에는 들어올때와는 다르게 살짝 애틋한 느낌이 있는 듯 했다. 방 안 특히 호랑이가 사라진 쪽의 방 안을 좀더 오래 처다보더니 내게 다시 연락하겠다며 문을 나섰다. 그리고 그녀가 사라진 뒤, 나는 할 일이 있었다.
"나와"
뽈뽈 기어나와서는 슈렉의 고양이같은 천진난만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고양 아니 호랑, 호랑이가 아니라 호랑나비처럼 납작해질때까지 좀 두들겨 줘야겠다.
"아아... 난 다른사람 온줄 몰랐어요"
"그건 중요한게 아니야"
"그럼?"
"내가 다른사람 앞에서는 엄마라고 하지 말랬잖아"
"... 내가 싫어요?"
"아니 무지무지 좋아, 친아들이란 생각도 들어, 하지만 내 나이에 너만한 애가 있다는 이상한 소문 나거나, 너랑 나랑 배게 나눠 벤다는 말이 떠돌면 어떻게 되겠어? 당장 너도 나도 끝이야"
"...주제에"
"뭐?"
뭔가 내가 들어서는 안되는 것을 꿍얼거린것 같았다.
"다시 말해봐"
"..."
"말해봐!"
"책임못질 짓이나 해서, 낙태나 했던 주제에!!!"
눈앞이 하애졌고 눈에서 불꽃이 튀었고,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갔고 짝 하는 소리와 함께 기우뚱 하며 호랑이가 쓰러졌다. 앗차 싶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나에겐 휘돌려진 팔을 다시 거둬 들일만한 힘이 없었다.
오뚝이마냥 다시 일어서서 잠새간 나를 화악 째려보던 녀석은 시들시들 소파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여전히 흥흥대는 거친 숨은 그대로였다.. 미안하다는 말을 해줘야 할것 같지만 어른의 위엄을 가르쳐 주는것이 먼져다.
"잡아"
턱을 한번 씰룩이며 눈썹을 찡긋 하더니 랑이는 바지를 주섬주섬 내리고는 소파를 잡아 빗장자세로 뻗데어 섰다. 벗을 필요까진 없었는데, 저 보름달같이 하이얀 궁둥짝에 생채기를 내야 한다는것이 가슴이 아팠다.
"회초리로 때릴거야"
"..."
"뭘 잘못했는지는 알지?"
"절대로 사과 안해"
공기를 가르며 회초리가 호랑이의 엉덩이에 떨어졌다. 찰싹 하는 파도소리를 내며 엉덩이에 회초리 자국이 지렁이처럼 남았다. 가랑이 사이가 시큰해졌다.
"아픈가?"
".."
"네 나이 만큼 때릴거야"
순간 호랑이의 눈가에 좌절이 스쳐지나가는것 같았다.
회초리를 어께 높이 치켜들어 이번엔 엉덩이 아래 허벅지를 때렸다.
"악"
"12대 남았어"
"11대에요!"
"13세 7개월, 반올림 모르니?"
"의심의 여지... 아악!"
정확히 첫 번째 때린 곳과 십자가 모양으로 되게 때렸다. 이버엔 끄응 소리를 내며 아이는 발을 비틀었다.
"흐윽...아파..."
"친권자는 아이를 계도해야해, 나머지는 빨리 맞고 끝내자, 넷!"
내리치려는 순간 호랑이가 푹 쓰러지더니 내 정강이를 꽉 끌어안았다.
"뻗쳐"
"그만해요"
"뻗쳐"
"잘못했어요"
"어서"
"흑 흑..."
아이는 소파를 다시 잡더니 푹 주저앉아 나를 보면서 눈물을 뚝 뚝 떨어뜨렸다. 많이 맞고 자라거나 싸움을 한 체질은 아닌것 같다. 부모 없어진 아이를 이렇게 다뤄도 될까.
"미안해"
"흑...흑"
"어른답지 못했어"
"..."
"회초리로 때린거 말고 뺨 때린거"
스리슬쩍 일어나 제 방으로 가려는 아이의 손을 꼭 잡아서 품안에 끌어안았다. 가슴께가 시큰해졌다. 곧이어 끄윽 끄윽 하며 어께를 푸들푸들 떨며 애가 울기 시작했다. 연인과 엄마 사이에서 엄마 쪽으로 추가 살짝 기울어진 느낌이었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하는거야?"
"네 흑흑"
"아파서 그냥 그러는건 아니고"
"다시는 안그럴게요"
"이렇게 때리는건 전혀 즐겁지 않네, 가슴아파, 오히려 별것 아닌걸로 무릎 위에 엎어놓고 때려야지 좋은것 같아"
"지난번처럼?"
"그래 지난번처럼"
"그땐 아프다기 보단 부끄러웠어요"
"지금은"
"아파"
"벌써 그럼 어떡해? 아직 10대 남았어"
"힉...살려주세요"
"어떡할까... 솔직히 지금 마음이 많이 풀어진 상태라 그만 하고 싶긴 한데, 좋아 이렇게 해, 다음에 네가 뭔가 실수한다면 그때 적립해둔 이걸로 때릴거야, 알았지?"
아이는 티셔츠를 끌어올려 눈물을 식 닦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대신에 선이자를 받아야겠어"
"선이자?"
"흠... 선이자를 내면 나중에 이자를 안내도 되는거야"
"왜?"
물론 이건 돈 갚는것과는 달라서 나중에 내가 꼭 때려야 한다거나 호랑이가 맞아야 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언젠가 분명 때릴 일이 생기니 선이자가 꼭 불이익한 것은 아니라고 자기합리화했다.
"그럼 선이자는 때리는거?"
"아니 이렇게 할거야"
소파에 아이를 늬이고는 양 발목을 번쩍 들어 항문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자세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