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 - 14.5
『넌... 누구냐? 』
어투.. 행동.. 그 모든것이 치우가 알고있던 현지와는 너무도 달랐다. 현지가 말을 꺼내기전까지는 어떻게든 무의식에서 현지 자신도 모르게 한 행동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 말을하고 있는 현지는 의식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고 그 의식은 분명 현지의 의식은 아니었다. 지금껏 현지의 행동을 숨죽여 지켜만보고 있던 치우가 질문을 던졌다.
하늘거리듯 긴 머리를 휘날리며 남자의 몸위에 있던 현지의 눈썹이 잠깐 꿈틀거리고 조금 의아한듯한 표정이 지어졌다.
『네 정체가 뭐냐고 물었다... 』
『네가 알고있는 현지는 내가 잠들어있는동안 만들어진 인격체일 뿐이야.. 내가 잠들어있는 동안 태어난 아이이기에 나와 하나로 합쳐져 있지 않을 뿐... 현지도 나의 한 부분일 뿐이야... 뭐 결국은.. 나에게 합쳐지겠지만 말이야.. 』
이 녀석의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지만 분명 현지의 몸에 귀나 어떤 다른 존재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고 그런점에서보면 이 녀석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그렇다면 현지는 이중인격같은 것이란 말인가?
『이 아이의 몸이 필요해서 들어온 것은 아닌것 같고... 넌 무엇때문에 여기 있는거지? 』
『하하하하핫... 』
치우의 말에 현지가 돌연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웃어대는 현지의 웃음소리를 멍하니 듣고있던 치우에게 현지의 말이 이어져들려왔다.
『도와주려 했다고?? 이용하려고 한건 아니고?? 』
『 .... 』
치우는 할 말을 잃었다. 조금전 보았던 것처럼 귀도를 부린것이 이녀석이었다면 이 녀석이 아니었으면 현지는 이미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비록 현지가 봉인을 해제하는 주문을 잊어버린 탓에 일이 크게 꼬여버렸다고는해도 치우가 이곳에서 현지에게 도움이 될만한 일을 한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치우가 봉인이라는 방법을 꺼내지 않았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이 아이를 좋아하는 모양이로구나..? 』
치우는 또다시 아무런 대꾸를 할 수 없었다. 분명 치우는 현지가 좋았지만 지아를 좋아할때와는 다른... 그런 느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느낌은 묘하게 변해갔다. 그리고 그렇게 묘하게 변해가는 느낌은 지아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어오도록 하고 있었음을 치우는 부정할 수 없었다.
『재밌는 녀석이군.. 이름도없는 잡귀주제에 인간을 좋아하다니.. 』
『치우.. 내 이름은 치.. 』
치우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치우는 현지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피가 들끓어오르는듯한 느낌..
그렇게 끓어오르는 피가 커다란 불덩어리가 되서 전신을 감싸는듯한 느낌...
느낌뿐만이 아니었다.
불타오를것같은 내부와는 달리 현지의 주위에서는 싸늘한 한기가 현지의 몸을 감싸고 그 한기의 흐름에따라 머리카락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상당히 분노하고 있는듯한 얼굴... 그 분노를 현지의 앞에 있는 남자에게 쏟아부을듯이 남자의 목을 강하게 조르고 있는 현지의 손... 왜그런지 지금껏 특별한 감정의 동요가 없어보이던 녀석이 급격히 분노하기 시작했다.
『치우..라고...?? 네 녀석이 치우라고?? 』
현지의 내부에서 끓어오르듯 붍타오르는 기운이 치우의 존재를 찿으려는듯이 현지의 몸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기운이 치우가 있는 왼팔에 도달했을때....
『너!!!! 네가 감히......!! 』
마치 치우를 알고있는듯한 느낌...
아니.. 알고있는 정도를 넘어 상당한 원한을 가지고 있는 듯한 느낌...
하지만.. 치우의 기억에 이만한 원한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
더군다나 이 정도의 힘을 가진 녀석이라면 분명 치우의 기억에 남아있을텐데도 치우의 기억속에 이 녀석의 존재는 없었다. 치우가 혼란스러워하는 사이에 또다시 녀석의 말이 들려왔다.
『아냐.. 달라... 비슷하긴 하지만... 넌... 』
『흥..!! 넌 치우가 아니야..!! 하지만 상관없겠지..... 』
잠시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는듯 하던 녀석이 치우에게 물었다.
『너.. 이 아이를 사랑하고 있는거지? 』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
화를내고 분노하는듯 보이던 녀석치고는 상당히 뜬금없는 질문이었는데다 고민스러울정도로 커져가고 있는 현지에 대한 존재감에 갈등하고있던 치우로서는 조금 난감한 질문이었다.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면 아니라고 직접 말해봐... 』
녀석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현지안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특히나 녀석이 말한대로 다중인격과도 같은 것이라면 현지에 대한 주도권은 녀석에게 있었다. 그런 녀석이 지금 치우에게 두가지의 선택지중 하나를 고르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쪽을 선택하는 경우에도 현지에게 피해가 갈 수밖에없는 상황이었다. 무슨 오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런 관계가 없는 현지까지 이 상황에 말려들어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현지만은 말려들게 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한 말에 녀석이 갑자기 크게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핫... 』
『 ....... 』
치우는 더이상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의도치않던 방향으로 흐르던 일들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곳에서 나가기만 한다면 어떻게든 일단락 될 줄 알았는데 이젠 이곳을 벗어나는 것으로 해결되지 못할 문제까지 발생해버렸다. 앞으로 이 일이 어떻게 번져나갈지 모르는데다 자신때문에 일이 이렇게 되어버린것만 같아 치우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 알아들은 걸로 알고 오늘은 이만 물러가도록 하지... 』
녀석의 말이 들리고 현지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현지의 아래에 누워있던 남자는 조금 전 녀석이 분노한 모습을 보일때 목을 조르던 것 때문인지 정신을 잃고 있었다. 어떻게든 치우가 생각했던 최악의 상황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 상황을 어떻게 현지에게 설명을 해야할지도...
현지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그리고 앞으로 현지가 어떻게 될지도....
너무도 복잡하고 답답해져버린 상황에 치우는 쉽게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었다. 아무것도 모른채 쓰러져있는 현지의 모습이 너무도 안스럽게 느껴지고 있는 치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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