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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厚の野望 01

01.

 

사회 초년생의 자화상에 점차 세파의 색깔을 입혀도 어색하지 않을 시간이 흘렀다. 일을 하면 휴식은 필요한 게 사람이듯, 덕후의 경우에는 양판소와 미연시를 하면서 시간을 떼우는 게 전부였다. 간신히 B급에 턱걸이하는 무협지를 다 읽은 덕후는 기지개를 폈다. 책을 읽으면서 맥주와 땅콩을 깠더니 은근히 취기가 돌았다.

"참, 안구에 쓰나미가 밀려오는 내용이었다."


안구 건조증으로 쓰라린 눈을 비비면서 덕후는 중얼거렸다.


"으음, 하지만 노루표에 비하면 부족하지. 좀 더 정진하라구."


창 밖을 본 덕후는 날이 저무는 것을 보고 기지개를 폈다. 이태백 시절에는 주참야활의 계명에 따라 기상 시간이겠지만, 취직한 이후에는 바른나라의 애늙은이가 되었다. 삼류대를 나와서 남들처럼 철밥통 공무원이 되겠다고 고시원에 짱박힐 배짱이 없는터러 일찌감치 취업전선에 뛰어들었고 1년간의 쓴물 끝에 어렵사리 얻은 직장이다.


노동법에 태클걸릴 여지가 있는, 쥐꼬리만한 봉급과 근무시간에도 개의치 않고 악착같이 달려든 결과였다. 덕분에 개인 시간이 엄청나게 줄어들었지만, 일감이 많은 하청업체에 취직하여 입에 풀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간혹 치미는 공허감과 적적감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무협지였다.


양서를 바라는 것이 아닌, 스트레스를 풀만한 킬링타임을 원했고, 장르소설 계의 현 시장은 덕후의 마음에 딱 들었다. 먼닭 하렘물이 줄줄이 나오는 것이었다. 휘발성 기억을 가진 덕후로서는 이름과 배경만 살짝 바뀌고 나오는 패턴물이 거기서 거기였으므로 기꺼운 마음으로 빌려 읽었다. 어차피 이런 소설들은 두 번 읽으면 많이 본 것이기 때문에 살 가치가 없어서 좋았기 때문이었다.


-띵동, 문자왔습니다.


메세지 음이 울리자 덕후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메일이 도착했으니 확인바라는 것이었다. 수신인을 확인한 덕후는 트림을 하면서 컴퓨터에 전원을 넣었다. 익숙한 WIN XP 영상이 떠오르고 받은메일함을 열었다.


제목에 [RE : 투고하신 작품을 접수했습니다.] 라는 메세지가 뜨고, 본문을 확인하던 덕후의 얼굴이 처음에는 일그러지다가 나중에는 피식 웃음으로 변했다.


"바보 짓도 적당히 하라는 소린가?"


병신이 육갑해서 승천하시겠네, 라고 독설을 내뱉은 덕후는 자신이 투고한 파일을 열람했다. 파일은 투고 양식에 따라 주요 등장 인물 및 설정들이 들어 있었다.


"대체 뭐가 불만인거야. 주인공 졸라 짱 쎄 잖아. 십갑자 내공에 무극지경! 에딧 써봐야 100밖에 안되오는 천하제일인에 비하면, 갬핵 써야지나 나올 255 능력치! 성씨도 주 씨, 빽으로 황족에 딱 어울리지! 꾸냥들도 주인공에게 목 매달잖아. 난공불락의 매난국죽에 비견될만하거늘!"


입으로 투덜투덜 중얼거리다가 스스로 이마를 쳤다.


"아하! 동방에서 왔다, 를 뺐구나. 하긴 그 소스가 있어야지. 출신은 당근 장백산으로 해두고....더불어 무공 배경은 환빠 설정으로 넣으면 대박이겠지? -최종오의 대자연의 힘!- 남자 중고딩들의 동방신기가 환단고기니까 말이지."


환단고기 그 자체에는 아무리 가치를 높이 쳐봐야 일본서기쯤 취급하며 대한 호오는 없는 덕후지만, 세상의 빠순이들을 좋게 볼리가 없듯,알량한 주장을 가지고 키보드 워리어 하는 놈들이 곱게 보일 리가 없었다. 친척들이 사학계에 몸을 담고 있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무료 강의(?)를 받은 덕분에 일반인보다는 체계적으로, 소상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허구를 밑바탕으로 하는 소설에다가, 환빠들 주머니를 털어먹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감수할 용의가 있었다. 희희낙락하면서 파일을 수정하던 덕후는 자판을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아냐. 이계진입할  때 자주 출장가는 인물이 건문제잖아? 그렇게 보면 짱개 황족의 메리트를 아주 포기하긴 어려운데...."


잠시 갈등을 하던 덕후는 철저하게 독자의 입장에서 대리만족을 추구하면 어떨까 상정해본 뒤 첨삭에 들어갔다. 전연령층의 독자들은 아니고 편중된 남성들을 주 타켓으로 잡았다. 그 안에는 물론 덕후도 포함되었다. 그러자 답은 금방 나왔다. 30분만에 뚝딱 고친 덕후는 파일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으흠? 수정하니 주인공 신세는 훨씬 나아보이는데 재미는 훨씬 없어진 거 같군."


그도 그럴 것이 갈등과 위기 요소가 이야기의 흐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먼닭 주인공의 능력치 테스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했으니 당연했다.


"이럴 땐....야한 게 최고지!"


답을 찾은 표정의 덕후는 꾸냥들에게 분류 별로 성적 기호까지 덧붙이고는 낄낄웃었다. 알콜이 좀 들어갔기 때문에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헬렐레~ 한 상태에서 메일을 다시 보냈다. 제 정신이라면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컴퓨터를 끄고 침대 안으로 기어가는 것이 덕후가 가장 바라마지 않는 것이었다.


 


*       *        *



명나라.


무협의 단골배경으로 등장하는 이 시대는 태조 주원장의 창업 이래로 1세기가 지나 9대 성화제의 시기로 접어들고 있었다. 재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유명한 성화제는 만귀비의 치맛폭에 휩싸여 골동품 수집과 라마교에 몰두했다. 그 자신이 말더듬이라 신하들과 접견을 꺼린 채 환관 왕직에게 정사를 맡겼다.


북방은 만리장성을 쌓고 9변진을 설치하여 대외적으로는 안정되었으나, 국내에는 잦은 민란이 끊이지 않았다. 18만리라고 표현되는 드넓은 중원의 구석구석까지 지배력이 미치는 것은 무리였다. 이  때문에 황실에서는 나름대로 꾀를 내었다. 관군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무림 세력을 동원하여 조건부로 당근을 던지고 확실히 단속 시킨 것이었다. 원래 관부와 무림은 기름과 물처럼 섞이지 않는 사이였으나, 제국의 구성원이라는 데는 일치를 보았고, 공포정치의 근원이자 첩보기관인 동창의 위세를 아는 터라 명문거파일수록 협조가 순조로웠다.


천하의 주인인 자금성의 동궁의 거처. 15살 정도 되어보이는 황자가 늙은 환관을 두고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흐리멍텅한 주씨의 혈족 답지 않게 아니, 무협지의 설정대로라면 영준한 외모에 남자다운 선이 돋보이는 미남이었다. 키도 성인에 육박하여 조숙해보였다.


"왕직, 듣자하니 내게 이복동생이 있었다며?"
"어찌 그런 소문이! 전하의 귀를 어지럽히다니 소인의 잘못이나이다."


왕직은 무릎을 꿇고 부인했다. 천하에 왕직이 있을 뿐 황제가 있는지는 모른다, 라고 일컬어질 만큼 대단한 권세를 부렸던 왕직이지만, 눈 앞의 황자 앞에서는 일개 고자없는 놈에 불과했다. 그 만큼 자금성 내 가진황자의 자질과 인망은 대단했다. 희대의 요녀 만귀비의 소생 답지 않게 공평무사한 시야 외 시세에 맞출 줄 아는 관인후덕을 한 몸에 지닐 뿐만 아니라, 권모술수에도 무척 민감해 한 치의 중상모략도 허용하지 않고, 발본색원하여 보복할 줄 아는 냉혹함도 겸비하고 있었다. (고작 15세 주제에, 라는 말은 반사. 태어나자마자 지 에미 얼굴 똑똑히 확인하고 자체 벌모세수에 내공 쌓는 이계출신들도 있는 데 뭘.)아무튼 태어난 이래 제왕의 권위를 충분히 인지하고 활용할 줄 아는 것이다. 만 귀비와 왕직이 그토록 전횡을 저지르고 무사했던 이유가 황자에 대해 거는 미래라는 말이 나도는 판이었다.

"화를 내는 게 아닐세. 안 그래도 황자가 나 하나 밖에 없지 않나. 만약 내가 태어난지 1년 안 됐을 당시에 죽었더라면 그 아이가 후계자가 되지 않았을게 아닌가."


황자, 인공은 태평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왕직은 목청에 힘을 주며 부인했다.


"그래봐야 천한 오량캐 출신이옵니다! 광서 요족의 출신과 만 귀비 전하를 비교하다니요! 태자의 자리는 전하의 것이옵니다!"
"그건 부황의 의사에 딸린 일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황실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점이지."


인공의 저의를 알 수 없는 왕직은 고개를 조아렸다. 그런 왕직에게 다가가 상체를 기울인 인공은 나직히 말했다.


"내 말은, 그 아이를 보호해달라는 것이야. 귀비마마 라면 필시 가만히 두지 않겠지."
"하, 하오나...."
"사람은 분수를 알아야 돼. 그래도 생모인데 추하게 저주나하면서 죽는 꼴을 볼 수 없네."


왕직은 몸을 떨었다. 인공의 말에는 한 치도 온정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멍청한 성화제나 교활한 만귀비와는 다른, 만인으로부터 자연스럽게 경배를 받도록 하는 기도가 황자에게는 있었다. 처음에는 보험용으로 손아귀에 넣고 주무를 까 생각했던 왕직이었지만, 지금은 마소처럼 부림을 받는게 당연하다고 여겨질 입장으로 역전하고 말았다.


만 귀비는 어렵사리 얻은 아들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컸지만, 정작 황자는 만 귀비에 대해 냉담했다. 오히려 양어머니라 할 수 있는 황후에 대해 지극정성이었다. 세간에서는 황자의 불효를 탓하기 보다는 만귀비가 악업을 받는 것이라고 고소해했다. 전 황후 오씨를 쫓아낸 것이나 다른 귀비들이 황자를 가지지 못하도록 낙태약을 먹이는 등 갖은 악행을 일삼았기 때문이었다.


"화무십일홍이라고 하지."


인공이 넌시지 운을 띄웠다. 왕직은 그 말에 동감하고 말았다. 성애로 당금 황제를 구워삶았던 만귀비도  미색이 시들고 있었다. 여전히 황제를 손아귀에 쥐고 있었지만, 권력의 추는 만귀비에서 눈 앞의 황자로 옮아가고 있던 것이다. 황자가 받는 동궁이라는 것도 일종의 호칭이지, 아직 태자의 자리가 정식으로 선포된 것은 아니었다. 이럴 때 등장한 배다른 황자는 정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만큼 중대한 사안이었다.


"동생이라....동생이라...."


나직히 중얼거린 인공은 왕직더러 물러나라고 말했다. 왕직은 등골이 땀이 축축히 젖었다는 것을 동궁전을 나오고 나서야 인지했다. 별 다른 사안이 없는데도 만남 그 자체만으로 이 만한 압박을 느낀다. 새로운 황자가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이만한 기도를 나타낼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왕직의 다음 줄은 누가뭐래도 동궁이었다.


그런 왕직의 내심과 달리 인공은 홀로 남겨진 방에서 식은 차를 음미하며 히죽 웃고 있었다. 15년간 기다린 세월이 슬슬 막바지에 이름을 느낀 것이다. 눈뜨자 마자 얼마나 황당했던가? 그것도 역사상으로는 간난아이 때 죽었어야할 황자랜다. 자신이 소위 이계진입을 했다는 것을 알고 경악했지만, 시일이 흘러 자신이 투고한 세계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원래 역사로 회귀했다기 보다는 비슷한 평행세계에 빠진 것이라 단정짓고, 강호무림의 세력과 동향을 살피면서 확신을 얻었다. 명초나 명말 같은 혼란기가 아니니 국제적인 지각변동은 없을 것이고, 강호무림의 역사도 대체적인 흐름을 미리 알고 있는 만큼 문제 없었다.


거기다가 고생이 필수인 성장물이나 영지물이었더라면 모르되, 초장부터 먼닭 스팩을 차고 들어온 몸이었다. 원판과 비교하면 주판과 팬타곤급 슈퍼컴퓨터의 차이가 날 정도로 다방면에 초천재의 두각을 드러냈다. 덕후의 꿈은 난세의 영웅보다는 조용한 하렘이었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설계와 준비를 착착 진행하면서 적당히 연막을 치고 세월을 보냈다. 이제 남은 것은 금선탈각의 계로 황궁을 합법적으로 벗어나 하렘왕부를 차리는 대망이 남은 것이다. 단 한가지 유일한 불만을 제외하고.


"젠장, 그래도 전생이나 현생이나 작명센스가 뭐 이따위야. 내 앞으로 성이랑 나란히 같이 부르는 연놈이 있으면 평생 초 쳐주마."


 

 

 

 

* 이전에 올린 것들은 싹 지웠습니다. 셋 다 벨런스 실패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흑역사로 남기려고 합니다. 대신 전작들을 타산지석(?)하여 이번 작에 녹여내렵니다. 월간 연재 및 장기간 연중은 하는 한이 있더라도 급전개나 마무리는 없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전작들을 개인적으로 갈무리하신 분들은 외부에 유출이 안되게 봉인지정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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