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을 마치고, 진석은 학교에서 돌아왔다. 그리고 습관처럼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두툼한 편지 한통과 수십 장의 광고지가 꽂혀 있었다. 광고지들은 전부 버린 후, 편지를 살펴보는 그의 눈이 점차 커졌다. 그 편지는 죽은 그의 외삼촌에게서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현관에서 그의 방까지 들어오는 시간은 그야말로 촌각이었다. 신발이나 가방을 모두 버리듯이 던지고 왔기에 집안에 누가 있었다면 분노의 겁화가 그를 태워버렸겠지만, 집에는 진석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진석은 가슴이 쿵쾅대는 것을 겨우 참으며 편지 봉투를 뜯었다. 그리고 슬쩍 보아도 열장이 넘어 보이는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전반부는 그냥 평범한 편지였다. 얼마나 그가 진석을 사랑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잘 지내라는 말을 거의 5장 가까이 써놓았다. 비록 죽기 직전의 사람이 쓴 글이긴 하지만, 문장 곳곳에 유머가 있고 진석에 대한 사랑이 가득 들어 있는 그런 글이었다. 편지를 읽고 있던 진석의 눈에는 어느새 습기가 꽉 있었다.
후반부로 넘어가자, 진석은 내용이 약간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앞부분에서 이미 말한 진석과 외삼촌의 추억을 중복되게 적은 것이다. 그리고 미묘하게 별장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왔다. 물론 진석에게나 그의 외삼촌에게나 별장은 없다. 그래서 친구의 별장에 갔는데...라던가, 그 사람의 별장은... 등의 말투로 가볍게 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런 글이 써져 있었다. 다시 예전처럼 그 곳에서 함께 있고 싶구나.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수정이도 민지도 없지. 아, 나의 뜨거운 가슴을 누가 식혀 주리오...
편지의 후반부가 비록 두서없이 적혀있고, 같은 내용을 반복하여 적은 것도 많지만 이는 죽기 직전의 사람이 쓴 글이라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석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외삼촌은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아무런 의미 없이 같은 내용을 반복할리 없다고 진석은 생각했다. 그렇다면....
‘이건 삼촌이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인가?’
그럴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아직 고등학생인 자신을 도와주기 위해 삼촌이 무언가를 남겨 놓은 것이다. 그럼 이제 그것을 찾으러 가자. 방학도 시작했으니 시간은 충분하다. 오늘 당장이라도 떠나자. 어차피 그가 없어져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그 년들은 오히려 좋아하겠지. 자신의 치부를 유일하게 아는 그가 없어졌으니 안심할 것이다.
‘우선... 준비부터 해야겠지...’
진석에겐 얼마 전에 비밀리에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이 있다. 그 돈을 챙긴 뒤, 행여 의심을 받을까봐 옷도 갈아입지 않고 교복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물론 편지함에 광고지를 도로 넣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제 그는 방학식을 마치고 충동적으로 가출한 학생이 되는 것이고, 실제로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아마 그 년은 옳다구나면서 실종신고를 하겠군. 아니 얼마동안은 신고도 안 할지 모르겠네. 앓던 이가 빠진 느낌일 테니.’
진석이 말하는 그 년은 그의 새어머니였다. 그의 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1년이 지난 뒤, 그의 아버지가 새로 들인 후처였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죽기 전부터 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것과 그런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일찍 죽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부 아버지의 재산을 노린 그 년의 음모일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었기 때문에 진석은 슬픔을 느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외삼촌의 손에 키워진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외삼촌이 가장 좋아했던 어머니를 죽인 거나 마찬가지인 그 년을 용서할 생각도 없었다. 비록 지금은 힘이 없어 숨죽이고 있지만 가장 먼저 그에게 당할 사람은 그 년과 외삼촌의 아내인 년이다.
‘그래... 삼촌의 유산만을 노린 그 년도 용서할 수 없어. 이제 삼촌의 유산을 내가 얻게 되면...’
복수할 다짐을 재차 한 진석은 삼촌이 가장 많이 말했던 별장에 가기로 했다. 아마 삼촌이 마지막에 쓴 그 곳에 별장이 있을 것이다.
서울에서 4시간가까이 넘게 버스를 타고 도착한 삼척. 물론 별장이 있는 곳은 이곳이 아니다. 여기서 또 시외버스를 타고 1시간 가까이 가야한다. 진석은 조금 지친 감이 들었지만 외삼촌의 유지를 잇기 위해 부지런히 별장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 곳은 산골짜기에 있었다. 어렸을 적에 외삼촌과 같이 온 적이 있는 진석은 자신이 별장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그 생각이 착각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버스에서 내린지 10분만의 일이었다.
분명 진석은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걷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지도까지 구해왔다. 하지만 그 지도대로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장소를 발견하지 못했다. 겨우 발견한 벤치는 새마을 운동이라는 마크가 선명하게 찍혀있는 오래된 물건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벤치를 본 기억이 없다.
점점 그는 그의 외삼촌에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 화의 제곱만큼 화가 났다. 나는 단지 외삼촌의 장난에 빠져서 그 년들에게 좋은 일만 시켜준 것인가. 애당초 왜 삼촌은 이 장소에 가라고 한 것일까. 편지 어느 부분에서도 이곳으로 오라는 말을 보지 못한 진석은 더욱 화가 났다. 이런 저런 생각에 더욱 화가 난 그는 바로 옆에 있는 잘살아 보세라고 쓰여 있는 쓰레기통을 걷어찼다. 그리고 다시 벤치에 앉았다.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7월 중순. 분명 오늘은 한여름인데 묘하게 바람은 차가웠다. 그래서 진석은 무심코 옷을 여몄다. 그리고 굳었다. 이 상황은....
‘마치 외삼촌이 죽기 직전같아...’
분명 외삼촌이 이 세상을 영원히 떠나기 전, 병원 주위에는 강력한 바람이 불었다. 마치 태풍과도 같은 바람. 농담 삼아 외삼촌은 아, 바람의 신이 나를 맞이하러 왔구나 라고 말했지만 진석은 무시했다. 공학자주제에 신화에 관심이 많았던 외삼촌이다. 분명 또 헛소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다. 그리고 그날 외삼촌은 죽었다.
지금 부는 바람의 느낌도 마치 그때와 같다.
‘아니야, 아니야. 난 단지 외삼촌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바람이 불어 이런 느낌을 받는 것일 거야. 그래. 분명 그런거야.’
그런 생각에 빠져 있던 진석은 벤치 뒤에 있던 나무가 없어지고 문이 드러나 있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생각에 잠겨있는 진석을 깨우려는 듯, 문에서 소리가 났다.
"따르르르르릉!!"
"!!!"
깜짝 놀란 진석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 있던 나무들은 보이지 않고 고딕 양식의 문이 드러나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그리고 문패에 적혀있는 글을 보고는 냉큼 문 안으로 들어갔다.
[종이 울린 뒤 문이 열리지 않으면 폭발하리]
그 글은 외삼촌의 글씨였고, 마지막 편지에도 남아있는 말이었다. 미자는 그녀의 아랫입에 있는 종이 울린 뒤 문이 열리지 않으면 폭발할 것처럼 나를 다그쳤지.. 아아 그리워라 그...
진석이 문 안으로 들어간 뒤, 밖에서는 폭발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이 인간이.....’
죽긴 했지만 장난기가 넘치는 사람이다.
비록 폭발음이 상당해서 문과 건물이 흔들릴 정도이긴 하지만.... 분명 장난기가 넘치는 외삼촌이 준비한 것이리라. 건물이 흔들리면서 가루가 약간 떨어지긴 했지만 분명 약간의 장난일 것이다.
[쿠우우~ 콰광!!]
나무 쓰러지는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분명 이는 외삼촌의 장난....
“으아~~ 그 인간은 왜 저딴 함정을 만들어 둔거야!!!”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한 진석은 소리를 질렀다. 어쨌든 건물에 들어왔으니 그는 왜 외삼촌이 이곳으로 오라고 했는지 알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니 방금까지는 소리와 진동에 신경 쓰느라 알지 못했던 점이 눈에 들어왔다.
벽장에는 묘하게 희한하게 생긴 물품들이 많았다. 분명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사용할 법한 플라스크나 비커가 보이고, 그 외에 다양한 실험 도구가 보였다. 진석은 그 중에서도 초록색 빛을 띠는 물약이 담긴 플라스크를 들었다. 마개로 단단히 봉해져 있어서 냄새를 맡진 못했지만 말이다.
거실에서 다시 살펴본 진석은 방문을 발견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문에는 검은 늑대가 그려져 있었다. 호기심이 생긴 진석은 그 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우와...”
방 안은 이상하게 생긴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사람처럼 생긴 인형이라던지, 흰색, 금색, 푸른색 빛을 띠는 돌들도 있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생긴 글자들로 써져 있어서 읽으면 이상한 기호를 다룰 수 있을 법한 책도 한권 있었다. 거기에 반지들이 20개 정도 있는 구형의 물체도 있었다.
진석은 호기심이 생겨 이곳저곳을 뒤져보기 시작했다. [비전! 염력 수련법]이라고 써져 있는 책도 있었고, 약간 신비한 분위기를 내서 먹으면 좋은 향기가 날 것 같은 사탕도 있었다. 목에 걸면 악마를 부릴 수 있을 것 같은 요상한 목걸이도 일기장처럼 보이는 책 위에 얹어져 있었다. 그 외에 요상하게 생긴 방울, 춘화도, 향수, 보석이 박힌 반지 등등.
이런 여러 가지 물건들을 보다가 다시 밖으로 나갔다. 옆에는 소라 그림이 그려져 있는 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책상 위에 있는 편지에 관심이 더 갔다. 진석은 편지를 들고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진석에게
이 편지를 네가 읽고 있다면 난 이미 죽은 것이겠지(이 말 한번 써보고 싶었다). 잘 찾아 왔구나. 대문에 상당한 함정들을 깔아 놓았는데 그게 오작동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만약 시스템이 너라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면, XY가 SDASG하고 SASDFA는 GAFGASR가 될 다양한 함정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순간 편지를 구길 뻔한 진석은 겨우 감정을 다스렸다. 이것도 외삼촌의 장난일거야. 죽은 사람 욕해서 뭐해...
[(중략)
어쨌든 이 건물은 너에게 주는 내 선물이다. 아마 내가 보낸 편지를 보고 왔겠구나. 이왕이면 전반부만 가지고 있고 후반부는 버리도록 해라. 미영이가 그 편지를 보면....]
진석이 알기로 외삼촌은 장가가기 전까지 동정이었다. 마치 플레이보이 같은 말에 진석은 피식 웃고 말았다.
[... 그리고 건물에 있는 물건들은 네 마음대로 쓰도록 해라. 어차피 내 재산 목록에는 없는 것들이니 별 의심도 받지 않을 거다. 단 조건이 있다. 가장 먼저 잡은 물건부터 쓰도록 해라. 그 다음에는 아무것이나 써도 상관없다. 만약 제일 먼저 잡은 물건이 아닌 다른 것을 이 건물 밖으로 가지고 나가면 대문이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늑대그림이 그려져 있는 방에 있는 것들을 추천한다. 거실에 있는 벽장에 있는 것들은 아직 미완성인 것도 있고 효과가 미약한 것도 있다. 특히 초록색을 띠는 물약은 완성은 되어 있지만 사용하기 귀찮을 거다...]
진석은 다시 벽장을 보았다. 초록색 물약은 건물에 들어오자마자 그가 집은 물약 외에는 없었다. 순간 멍해졌던 진석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편지를 읽었다.
[... 모든 물품들에 대한 설명은 벽장 옆에 있는 책자에 적혀 있다. 참고해라.
그리고 나의 진짜 부탁은 그런 물건들을 가지고 세상에 혼란을 퍼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나를 이렇게 만든 이들에게 약간 장난치는 정도라면 상관없겠지만 말이다. 명심해라.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뒤따른다... 가 아니라 네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 진실은 아니다. 그럼 이만... 총총]
외삼촌의 편지를 다 읽은 진석은 벽장 옆에서 책 한 권을 찾았다. [작렬! 무한 옛날 아이템 도감]이라는 전혀 의미 없는 제목이 적혀 있긴 했지만 진석은 자신이 원하는 설명을 찾았다. 바로 초록색 물약에 대한 설명을 말이다.
설명서에는 초록색 물약의 이름이 [인맥 조절 시약]이라고 적혀 있었다. ‘사람에게 이 약을 먹이면, 물약의 주인과의 관계를 조절할 수 있다’라는 간단한 설명이었다. 단 너무 급격한 변화는 통하지 않고 오히려 상대에게 더 이상 통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경고가 적혀 있었다.
물약의 주인이 되기 위해선 플라스크 안에 자신의 체액을 넣어야 한다는 설명에 따라, 진석은 플라스크의 뚜껑을 열었다. 무슨 체액을 넣느냐에 따라 성격이 약간 변화할 수도 있지만 땀이나 침을 넣으면 범용이 된다고 적혀 있어서 진석은 침을 조금 넣었다. 그러자 색이 순간 투명해지더니 다시 원래의 초록색으로 돌아왔다.
‘그럼 이제 이걸 가지고 뭐하지?’
이제 좋든 싫든 이 물약을 가지고 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걸 가지고 어떻게 그년들에게 복수할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한다. 만약 진석이 야로 시작하고 문으로 끝나는 사이트에서 활동을 했다면 다양한 상상을 했겠지만, 진석은 아직 고등학생이다. 성인이 아닌 것이다.
외삼촌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있는 이 ‘별장’에서 나가고 싶진 않았지만 진석은 세 시간이 지나자 밖으로 나가야만 했다. 이 별장에는 마실 것도, 먹을 것도, 화장실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산 밑에 있는 여관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럼, 외삼촌 난 이제 갈게.”
마지막으로 인사를 한 진석은 대문을 닫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할 말을 잃었다.
대문 밖에는 나무 수십 그루가 쓰러져 있고, 3미터 정도의 구덩이가 있었다. 누가 보아도 단순한 침입자 대처용이 아니었다. 자신이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점을 깨달은 진석은 하늘을 보며 외쳤다.
“이 망할 아저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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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창작의 과정이란 힘들군요.
시나리오는 머리에 막 떠오르는 데 글은 잘 안써지고...
이제 한가지 부업을 소개해드릴까...... 이게 아니고..ㅡㅡ
재미있게 읽으셨기를 빕니다. 매일 번역만 하다가(야설은 아닙니다) 창작을 하려니 힘드네요. 야설을 써 본적이 없어서 야한 부분을 쓰는 것은 자신이 없습니다만..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부업을 소개해... (퍼벅!!)
다음편예고
산을 내려오니 그곳은 달이 두개였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는 왠일인지 박카스가 한가득?
그리고 나타난 흰 가운의 사나이. 이 수술은 내가 집도 한다!
예고가 꼭 다음편을 반영한다는 편견은 버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