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야설) 붉은 달(月)을 베다. 7 회
** 白雲俠(낭만백작)著/ 붉은 달(月)을 베다. **
제 7 회 호방(豪放)한 대좌(對坐) 1
.........................................................................................
일본글을 한글로 번역시 [님] 으로 번역이 되는 존칭어의 구분.
사마(さま;樣) : 사람을 나타내는 말이나 신분, 거처 등의 말에 붙여서 존경하는 뜻을 나타
내는 존칭. (예: 요시도시 사마(さま;樣) --> 요시도시님.)
도노(どの;殿) : 신분이 높은 사람의 이름이나 관직명에 붙여서 경의를 더해 나타내는 존칭.
(예: 간바쿠 도노(どの;殿) --> 간바쿠님. 간바쿠(關伯;일본 최고관직 중 하나.)
.........................................................................................
「헉.. 부.. 부인..!」
당황한 명(明)이 눈길을 가눌 여유도 없이 여인은 허물어지듯 명(明)의 품속 쓰러져 왔다.
「공자님..! 살아 남기위한 방편이라 하셨습니까? 조선의 여인들은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목숨을
잃었다 했습니까? 어쩌면 죽음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의 품으로 창부(娼婦)
처럼 전전하며 그 사람의 아낙이 되어 목숨을 연명하는 것보다 오히려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서
모든 걸 잊고 내세(來世)를 기약하는 것이 오히려 육신(肉身)을 깨끗이 지켜주는 현명한 방편일
지도 모르지요!!」
여인은 스르르 품속에 안겨들며 한 맺힌 일생을 토해내고 있었다. 명(明)은 그런 여인의 어깨를
살며시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공자님.. 보셔요. 저의 이 몸뚱이가 아직은 쓸만한가요? 그래서 저를 이곳에서 빼돌려 아버님
께 도움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진 또 다른 무장(武將)에게 저를 인질로 넘기려는 복심(腹心)이었
을까요.?」
그렇게 말하며 연못옆 편평한 바위위에 몸을 누인다.
펄렁.. 기모노 자락이 불어오는 바람에 날려 그속에 숨어있던 발가벗은 나신이 우유빛 살결을
드러내며 명(明)의 눈동자속에 어른거렸다.
「그.. 그럴리가..?」
여인의 눈속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몸을 움직여 명(明)의 눈앞에 살며시 두다리를 벌린다. 조금은 살이오른 하복부 아래의 허벅지
사이에는 까만 음모가 하늘거리며 수줍은듯 음부가 숨어있었다. 부인은 손가락을 들어 그곳을
가리키며 애끓는 절규를 뱉어낸다.
「공자님.. 이곳.. 이 부끄러운 치부를 차지하기 위해 힘 있는 자들끼리 혼인이라는 허울로 거
래가 되어 인척을 맺고 목숨을 부지하는 하릴없는 세상이지요.」
명(明)은 그런 부인의 시선을 외면하며 당부를 했다.
「부인.. 고정하십시오. 아직 연회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어서 들어가 보셔야지요.」
「호호호.. 그렇지..! 그 지옥 같은 곳에 들어가 석고처럼 굳어있는 나의 웃음이라도 보여주어
야하겠지. 그런데 공자님.. 전 공자님의 존함(尊啣)도 모른답니다?」
「나는 명(明)이라 하오. 어서 옷매무시를 고치고 들어가 보십시오. 나도 이제 시마쓰님께 가보
아야 합니다.」
「명(明)님..! 저는 하루(春)입니다. 길게 뻗은 마루를 지나 안쪽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세 번
째문 앞에 두 명의 시녀가 지키고 있을 것입니다. 그 곳이 하루(春)의 거처입니다.」
* * * * * * * * * *
후츄성(府中城)안 연회장에는 먹고 마시고 이제 얼큰하게 술이 오른 장수들이 조선에서의 전공
을 자랑스럽게 이야기 나누다가 한사람 한사람씩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 자.. 이제 실컷 먹고 마셨으니 각자 잠자리로 듭시다. 도주.. 이렇게 융숭한 대접을 해
주셔서 무한히 감사드리오..!」
상석(上席)의 마에다가 종회(終會)를 선언하며 자리에서 일어서자 웅성웅성 모두 그의 뒤를 따
라 각자의 숙소로 향했다.
때를 맞추어 실내로 들어서는 있는 명(明)을 본 시마쓰(島津)가 명(明)에게 다가서며 안타까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너와는 어쩔 수 없이 여기에서 이별을 해야겠구나..! 시간이 지나 본토로 오게 되면 꼭 내가
있는 오오스미의 성(城)으로 찾아오도록 하거라..!」
「예.. 장군..! 저는 어떤일이 있더라도 바다를 건널겁니다. 그때는 필히 장군을 찾아뵙도록 하
겠습니다.」
명(明)의 대답에 시마쓰(島津)의 얼굴에 미소가 흐른다.
「허허허.. 방법을 찾았구나. 그래.. 기다리고 있으마.」
아쉬운 말을 남기고 숙소로 향하는 시마쓰(島津)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명(明)은 어둠이 깃든 밤
하늘로 스윽.. 몸을 날려 후츄성(府中城) 삼층 난간위로 뛰어올랐다.
(분명 이 안쪽이 고니시(小西)의 숙소이렸다??)
삼층 지붕의 한쪽 난간에 몸을 숨긴 명(明)이 한줄기 불빛이 새어 나오는 계단 안쪽의 넓은 방
을 바라보던 명(明)의 모습이 흐르는 안개처럼 스르르 그 방의 천정위로 스며들었다.
그 방 상석에 심각한 표정으로 좌정하고 있는 고니시의 앞에 온몸에 검은 옷을 걸친 세 명의 닌
자(忍者)들이 부복을 하고 있었다.
「그래.. 그 아이는 어찌되었느냐..?」
고시시(小西)의 입에서 추궁하듯 날카로운 말이 그들을 향해 울려나왔다.
「예.. 해안에 조그만 목선을 준비해 두고 마님을 모시려 했으나 아씨마님께서는 결코 가지 않
겠다고 버티셨습니다.」
「어허.. 고로(吾郞) 이놈..! 강제로 라도 모셔라 하지 않았느냐? 그래서..!」
고니시의 얼굴에 노기가 피어오른다.
그 모습을 바라본 `고로(吾郞)라 불리운 닌자(忍者)가 급히 고개를 다다미(疊;일본식 방에 까
는 돗자리.첩) 바닥에 숙이며 대답을 했다.
「옛..! 주군의 명(命)에 따라 강제로라도 모시려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방해꾼이
나타나는 바람에..!」
「방해꾼이라니 무슨 말이냐? 어서 소상히 말하라.」
눈을 둥그렇게 뜨고 노려보고 있는 고시시(小西)를 향해 고로(吾郞)가 그때의 일을 자세히 설명
한다.
「그 순간 불현듯 시마쓰님을 따라온 조선의 청년이 그 자리에 쓰러져 있는 마님을 구하기 위해
나타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오.. 연회를 할 때 잠깐 본 그 청년을 말하느냐? 자신의 경호를 맡긴 청년이라 자랑하는 시마
쓰(島津)님의 말을 들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왜 너희들을 방해 했느냐?」
「예.. 주군..! 우리들의 행동을 마님을 해(害)하려 하는 것으로 오인을 한 듯 싶습니다.」
「으음..! 네놈들의 행위가 너무 과격하게 보인 것이로구나. 그래도 임무는 철저히 완수를 했어
야지.」
목소리는 낮았으나 엄히 책임을 묻고 있는 고니시(小西)의 무거운 질책이었다.
「소인들의 짧은 생각으로.. 만약 그 청년과 시비가 붙을 경우 그 소란이 연회장까지 알려지지
않을까 염려하여 부득이 철수를 했습니다.」
「으음.. 어쩔 수 없었다? 알겠다. 다음 기회를 보아라. 또 한번 그런 실수를 한다면 너희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 그래.. 그 청년은 어떠하더냐..?」
자신이 자랑스럽게 부리는 이 세 명의 닌자(忍者)들을 물러나게 한 청년에 대한 호기심이 슬며
시 생겨난 것이었다.
「조선의 도공들을 인솔하고 시마쓰(島津)장군의 함선에 올라 함께 이곳까지 온 청년이라 했습
니다. 절영도앞 해안을 빠져나올 당시 조선의 추격선에서 날린 수많은 화살이 시마쓰(島津)님을
관통하려는 순간 그 청년이 눈앞까지 날아든 화살을 막아내어 목숨을 구했다 합니다.」
「오호.. 출중한 무예를 지닌 청년이로구나..! 혹시 네놈들이 그 청년을 당하지 못해 마님을 놓
아두고 도망친 것은 아니냐..?」
「그.. 그건..! 그보다 주군..! 그 청년이 시마쓰(島津)님의 함선에 오를 때 주군께서 도공을
인솔하라고 명(命)한 목패(木牌)를 지니고 있었다 들었습니다. 철군 준비에 여념이 없던 시마쓰
(島津)님의 함선에 그 조선의 청년을 의심 없이 승선시킨 것은 주군께서 건네준 그 목패 때문이
었는데 어찌 주군께서는 그 청년을 기억하지 못하시는지..?」
「뭐.. 뭐라 했느냐? 내가 내린 목패(木牌)의 영(令)이라 했느냐?? 아뿔싸..! 이 고니시는 목패
를 가지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어느 누구에게도 그런 영(令)을 내린 적이 없다!!」
「예.. 예..? 주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그 청년은..?」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순간이었다.
어쩌면 이 한 순간에 겨우 일본 땅을 밟은 명(明)의 노력이 모두 허사가 될 위기가 아니던가!
그림자처럼 숨어 고니시의 신변을 보호하는 세 명의 닌자(忍者)들..! 그들은 고니시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정황(情況)은 자신들이 모르는 그 어떤 정보도 없다고 자부를 하던 인물들이다. 그런
그들이 고니시의 말에 반쯤은 정신이 나갈 정도로 놀라고 있었다.
「주군.. 그렇다면 저놈이 주군의 이름을 도용하여 본토에 잠입을 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당
장 달려가서 저놈을 잡아 대령하겠습니다.」
고로(吾郞)가 좌우에 꿇어있는 두 사람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내며 방을 벗어나려는 그 순간..!
그 방의 천정에서 조그만 물건이 휘이익 소리를 내며 날아와 고니시의 무릎 앞에 툭 떨어졌다.
「헛.. 누구냐.. 주군 피하십시오!」
고로(吾郞)가 몸을 날려 고니시의 앞을 막아서고 양옆으로 두 명의 닌자(忍者)가 안개가 흐르듯
스르르 기어가 왼손은 아래로 뻗어 다다미를 짚고 다리는 쪼그려 반은 엎드린 자세를 취해 금방
이라도 튀어오를 자세로 고니시를 호위(護衛)한다.
누군가 고니시를 해(害)하기 위해 암기를 던진 것으로 여긴 그들이었다. 그러나 고니시의 입에
서는 태연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담한 청년이구먼.. 어서 이리로 내려오시게..!」
고니시는 자신의 눈앞에 떨어진 물체가 조금 전에 말이 오가던 그 목패(木牌)임을 이미 알아본
것이다.
고니시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호통한 웃음소리와 함께 흰 그림자 하나가 천정에서 방으로 날
아 내렸다.
「하하하하.. 명(明)이라 하외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느니 주변을 물려주시겠습니까?」
그 백영(白影)을 향해 세 명의 검은 그림자가 등에 맨 두자 예도(銳刀)를 빼어들고 소리도 없이
움직여 에워싸며 낮으나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또 네놈 이로구나. 어서 주군의 앞에 무릎을 꿇지 못할까?」
명(明)은 그 세 사람을 일별(一瞥;한번 흘낏 돌아봄)하고는 그들의 말은 들은 척도 않은 채 고
니시의 앞으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이.. 이놈이.. 그 자리에서 한발도 움직이지 마라!!」
고로(吾郞)가 명(明)을 향해 스르륵.. 한발 나서 두자 예도(銳刀)를 빼들고 명(明)의 정안을 겨
누며 소리를 쳤다.
그 순간.. 휘익..!
명(明)의 손에 들려있던 대나무 지팡이가 어느새 허공을 가르며 입에서는 호통이 터져 나왔다.
고로(吾郞)의 손에 들려있던 예도(銳刀)는 명(明)의 지팡이에 맞아 천정으로 날아 올랐다가 거
꾸로 떨어져 내려 다다미 바닥에 푹.. 꽂혔다.
「이 어리석은 놈..! 네놈들이 하루(春)님의 복부를 치고 지나는 그 순간을 틈타 아씨께서는 자
진(自盡;스스로 목숨을 끊음)을 하려 결심하고 있었던 사실을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느냐?」
명(明)의 말에 오히려 놀란 사람은 그 닌자(忍者)들이 아닌 고니시였다. 자신의 목숨까지 담보
를 할 정도로 신뢰하며 정체를 나타내지 않고 그림자 호위를 하도록 맡긴 이 세 명의 인물이 아
닌가? 그 만큼 고니시에게 믿음을 주는 뛰어난 무예와 지혜를 함께 지니고 있는 이 닌자(忍者)
들이었다. 그중 대장노릇을 하는 고로(吾郞)의 칼을 단 일합이라도 받아내는 무장을 아직은 고
니시 자신의 눈으로 본적이 없었다. 그런 고로(吾郞)의 예도(銳刀)가 명(明)의 번개같은 손놀림
에 의해 일순(一瞬) 공중으로 날아올라 방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나 그 뛰어난 무예의 실
력보다 그가 더욱 놀란 이유는 사랑하는 딸이 자진(自盡)을 결심했다는 말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