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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인형의 꿈 그 후의 이야기. (1)

저자 : ‘신비디움 (Cymbidium)’ 1978년생, 여성.
공동 번역, 각색 : 야래향(夜來香), 천연자석.

 

- 이 글은 인형의 꿈의 후속작 입니다.

   원 작가분과의 협의에 따라 번역 게제하는 바 입니다.

   아마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원래 이 글은 야설로 분류되기는

 곤란한 데가 있습니다.

 

  이 작품을 굳이 번역함에 있어 야설, 혹은 성인소설은 쓰레기라는

인식을 조금 바꿔볼까 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후일담으로...이 작품을 번역을 입장에서 상당히 애를 먹었습니다.

 약 10페이지 정도의 내용을 변경하거나 삭제해야 했으며, 자료 조사 및

웹 검색을 통한 데이타 수집을 해서 작품에 반영했으나...무엇보다 일본 연예계에

대한 지식이 없는 저로서는 상당히 역부족이었습니다.

 

 다행히 야래향 선배의 도움과 원 작가분의 조언이 있어 그럭저럭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겠지만, 이 작품은 단순한 야설이 아니라는 것과 하나의 

작품을 대한다는 느낌으로 봐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천연자석 드림...

     

 1. 화려한 개막 그리고, 소외된 자들.


 

 [전국의 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일년에 단 한번 열리는 연예
등용문! ‘슈퍼 스테이지’가 열리는 야도루카 제1 스타디움 입니다.]
 [우아아!]
 [와아!]
 [뜨거운 열기! 팬들의 환호성...그 속에서 올해는 어떤 새로운 신인들이
주역으로 탄생할 수 있을까요...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엄청난 인파의 뜨거운 함성...사람들이 내뿜는 체온으로 흡사 용광로를
방불케 하는 열기였다.
 그러나 많은 인파들을 바라보며 왠지 차갑게 식어 있는 이들이 있었다.
 오히려 들뜬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냉막함과 우울함 등이 휘감고 있는
가운데 아무도 입을 열어 무어라 말도 꺼내지 않고 있는 이들...


 

 [젠장!...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삐죽삐죽 솟은 머리를 헤어밴드로 고정시키고 머리는 붉은 염색을 하고
있었다.
 선이 굵은 인상의 시원스런 용모...이른바 ‘헤비메탈 룩’ 이라고 하는 다소
파격적인 의상을 입고 있는 소녀...쾅! 소리가 나도록 앉아있던 간이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분통을 터뜨리는 소녀는 얼마나 화가 났는지 씩씩~!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아키! 참아...그래봤자 네 손해일 뿐이야...]
 [뭐라고!]
 띠리링~! 전자기타를 조율하며 차분한 인상의 소녀가 말했다.
 하지만 오히려 기름을 퍼부운 듯 했다.
 이 빨간머리 소녀 어지간한 다혈질인 듯...하지만 서늘한 목소리가 뒤를
잇는다.

 

 [아키! 이런 줄 모르고 왔던 것은 아니쟎아 안그래? 우리는 어차피 규모나
배경이나 모든 것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작은 프로덕션 소속이라는 것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그래도 무대에 나 갈 수 있는 기회라도 얻은 것이
다행인지도 몰라...실력이 있어도 무대에 설 수 조차 없는 팀들이 한둘이
아니라고...아까도 많은 팀들이 그냥 돌아가는 것 못 보진 않았을 텐데?]
 흡사 물이 흐르는 것 같은 차분한 어조였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붉은머리 소녀...그녀는 결국 자리에 도로 주저
앉으며 후욱 한숨을 내쉬었다.

 

  꽤 넓은 실내...대기실인 듯 보이는 곳이었다.
 사방에 벽에 큰 거울이 열 지어 있었고 작은 칸막이와 의자 등등이 놓여진...
그러나 장소의 넓이에 비해 사람들은 너무도 많았다.
 더구나, 한눈에도 급조된 티가 팍팍 엿보이는 곳이다.
 저마다 무대의상을 입은 소년 소녀들...그리고 간혹 분장사나 무대담당자
혹은 매니저 등으로 보이는 이들이 왔다갔다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아! 언니! 여기예요!]
 [다녀 오셨어요?]
 얌전히 의자에 앉아있던 아이들...치렁한 머릿결이 눈부시도록 빛나는
인형 같은 모습들 이었다.
 무표정하게 있을 때도 주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었는데 환하게 웃음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자 주변이 순간적으로 환해지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연한 푸른색과 분홍색...SF애니 에 나오는 제복 스타일과 흔히 말하는 
마법소녀의상을 입은 아이들...더구나 쨍! 하고 맑게 울리는 목소리가
인상적인 아이이다.
 와아! 웃으며 누군가에게 다가가 어리광을 부리는 둘...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비켜준 사람들도 놀란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힘들지는 앉았니? 좀 지루했을 텐데...]
 [아니요! 재미있었어요. 예쁜 언니랑 오빠들도 많고...]
 [그보다 우리는 언제 나가면 되나요?]
 [그래...그랬니...?]

 까르르 웃으며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나직이 숨을 내쉬는
여자...이지적으로 보이는 차가우면서도 아름다운 외모에 늘씬한 큰 키...
잘 차려입은 비즈니스 슈트가 잘 어울리는 폭발적인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유키노...두 아이들과의 이상한 인연을 맺고 난 후, 하루하루 정신없이
바쁘게 지내왔던 그녀...특히 거의 매일 아이들(?)에게 시달리며 밤에 잠조차
재대로 잘 수 없었다.

 그럼에도 오히려 건강은 더욱 좋아졌고 정신적이나 육체적인 모든 면에서
이전과는 판이할 정도로 강해졌으며 용모나 몸매 역시 훨씬 아름다워 졌다.
 특히 키와 몸매...가슴크기가 그러했다.
 

 이전에도 여자치고는 큰 키였지만 이미 성장기도 지난 때에 거의 1미터
80센치 이상으로 자란 키에 맞춤 속옷을 입어야 할  정도로 가슴까지 크게
되어버려...같은 여성들에게 조차 질시와 동경의 시선을 받는 일도 다반사가
되어버린 것이다.

 

 프리랜서 디자이너에서 전향해 두 아이들을 모델로 한 캐릭터 디자인
일을 주로 해오다가 우연한 기회에 나가게 된 지방 케이블 TV의 방송출연
덕에 현재 거의 광적이랄 정도의 지역 팬들을 확보했고 그 결과로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유키노의 안색은 그리 밝지 못하다.
 까르르...웃으며 자신의 품에서 얼굴을 부비적거리는 두 아이들...
 하지만, 어쩌면 이 아이들은 이번에 잘못하면 무대에 서지 못하고 돌아
가야 할지도 모른다.
 유키노의 뇌리에 아까의 일이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약속하지 않으셨나요, 난바라상!]
 [그게...그러니까...]
 진땀을 삐질거리며 난처한 표정을 짓는 남자와 그야말로 차가운 냉기를
풀풀 흘리는 늘씬한 키의 글래머 미인...
 복도를 지나는 사람들마다 한번씩 쳐다보고 갈 정도로 진기한 광경이었다.

 

 [후우...저도 일이 이렇게까지 꼬일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 지금까지 관례로 볼 때 유망한 지역 아이돌이나 신예들을 키워주기
위해 최소한의 길은 열어주는 것이 당연했습니다만...]
 [그런데요! 왜 이번에는...]
 유키노의 언성이 꽤나 높아졌다.
 더구나 전신에서 범접하기 힘든 기세까지 피어올라 사람을 기죽게 만들었다.
 당하는 입장 ‘난바라’ 라고 불린 남자는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이미 자신을 따라왔던 관계자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바라만 보고 있었다.
 하기야...자신이 아니면 누가 이 ‘마녀’를 상대할 것인가...필사적으로
난바라는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연 ‘염왕(閻王)’ 앞에서도 자기 할 말은 다 하는 남자‘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처세였다.
 
 [이번에...몇몇 대형 프로덕션 측에서 새로운  신예들을 대거 등용한 때문
입니다.
 해서 올해는 지방에서 올라온 군소 프로덕션 측에는 배려를 해 주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해서...아무래도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어떨지......]
 [난바라 상!]
 각오는 했지만 유키노의 눈에서 차가운 광채가 피어오르는 것 같다.
 과연 ‘얼음마녀’라고 사내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유키노가 주최측을 찾아가 항의하겠다고 펄펄뛰었지만 난바라 라고 불리는
남자가 필사적으로 말렸다.
 오히려 유키노나 아이들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분야도 그렇습니다만...연예계라는 것이 실력만 가지고 되는 것은
아닙니다...다른 중요한 것은 돈의 힘과 뒷 배경...특히 배경의 힘이 없다면
아무리 실력이 있다 해도 꽃도 피지도 못하고 져 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거대 프로덕션의 경우 자본력이나 업계의 영향력...그 밖에도 실제적인
압력을 행사하는 각계와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자칫 일을 크게 벌이시게 되면...업계에서 매장 당할 수도 있습니다...해서...]
 [......]
 

 난바라...이번에 ‘슈퍼 스테이지’를 추천했고 소개한 인물로 업계의 영향력이
작다고 할 수 없는 인사였다.
 그런 그가 이렇게 까지 말린다면...
 유키노는 길게 한숨을 쉬며 자신에게 파고들어 어리광을 부리는 아이들을
다독였다.

 

 콰앙!
 [야! 그만둬!]
 [아키! 진정하라고!]
 [놔! 놓으란 말이야!]
 역시 다혈질이라서 그럴까...
 그야말로 미친 들소처럼 날뛰는 소녀...아키 라고 했던가?
 어지간한 남자들 이상으로 체력이나 완력이 뛰어난 듯 보였다.

 간의의자가 날아가 벽에 부딛혀 박살이 났고,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꺄아악!]
 [으앙~!]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었다.
 같은 팀원인 듯 보이는 소년소녀들...주변에 있던 남자들...심지어 보안
요원들 까지 달라붙어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발단은 주최 측 관계자가 슈퍼 스테이지 참가불가를 선언한 그 다음에
일어났다.
 참가자가 너무 많은 관계로 인해 특정 배정표 이내가 아닌 팀들은 이번
스테이지에는 참가 불가능 하게 된 사실을 일방적으로 통보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어 거칠게 항의하는 사람들을 향해 관계자가 말한 한마디가
소란의 발단이 되었다.
 

 [연예계? 연예계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인가? 어짜피 연예계를 지망
하는 것들은 널리고 널렸지...너희들 정도는 모두 없어진다고 해도 어차피
하루 안에 다시 모을 수 있을 껄?
 이런 무대에 설수 있는 것은 선택받은 존재들뿐이야...너희 같은 쓰레기들이
올수 있는 데가 아니란 말이다!]
 
 쓰레기...다소 격해진 관계자의 말실수...
 그 순간, 아키가 던진 간이의자가 날라든 것이고 전면의 거울을 박살냈던
것이다.
 이어 벌어진 난동...그 여파로 몇몇 지망생들이 상처를 입는 일도 있었다.
 황급히 스테이지 관계자가 방을 빠져나가고 길길이 날뛰는 ‘아키’라는
소녀를 뜯어 말리기 위해 나섰던 사람들 거의 모두가 뻥뻥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붉은 머리 소녀..아키...그녀가 자신을 말리는 이들을 모두 젖혀두고 출입문
쪽으로 뛰어갔다.
 그때 키 큰 누군가가 그녀를 가로막았다.
 

 [뭐야!]
 콰악! 볼 것 없이 주먹을 날렸다.
 그러나, 탁! 하는 소리와 함께 가로막혀 버리고 말았다.
 [어?]
 [짜악!]
 의아해 하는 소녀...순간 한쪽 뺨에 화끈한 통증이 느껴지며 몸이 붕 나가
떨어지는 것을 느껴야 했다.
 쿠다당! 나뒹굴고 말았다.
 멍! 한 가운데서도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입 안에 살짝 피 맛이 느껴진다.
 
 [씨앙! 어떤...!]
 [......]
 빠르게 파이팅 자세를 잡았다.
 [정신 차리세요! 지금 뭐하는 짓이죠?]
 [......!]
 멈칫 아키의 얼굴이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우선 상대방이 같은 여자라는 것과 자신보다 키나 몸집이 크다는 것...
최소한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큰 키에 빼어난 몸매도 그렇거니와 자신을
바라보는 그 얼굴...그 차가운 눈빛에 등골이 시렸다.
 빈틈없이 차려입은 여성용 정장차림에 살짝 웨이브 진 날렵한 단발머리를
슥, 정리하며 또각, 또각 걸어와 자신을 가로 막고 선 그녀...
 같은 여자인 자신이 보기에도 흡사 얼음으로 빚은 조각상처럼 차가우면서도
아름답다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그..그게 아까 그자식이...]
 [그렇다고 그런 행동을 한다면 그 작자의 말에 동조 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요? 쓰. 레. 기. 라는!]
 [......]
 무어라 변명하려 했지만 절대 가차 없었다.
 싸늘하기 그지없는 느낌...
 아키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려야 했다.
[죄...죄송합니다...]
 [...알았으면 됐어요...다행히 심하게 다친 사람도 없는데다가 아까 그 사람
이나 주최측의 잘못도 있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지는 못할 거예요...]
 [네...]

 다혈질 소녀 아키가 뒤로 물러나자 유키노는 주위를 휘 둘러 보고는 입을
열었다.
 

 [자! 다친 아이들 먼저 밖으로 내보내도록 하죠...그리고, 어쨌든 여기 더
이상 있을 일은 없게 되었지만 최소한 항의라도 해 봐야할 듯하니까 의향이
있는 분들은 저와 같이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구요...]
 소란스러운 장내가 순식간에 정리되었다.
 유리 파편이나 우왕좌왕 하는 중에 다친 연예인 지망생과 관계자들이 먼저
밖으로 이동했고 나머지 사람들 중 상당수가 큰 키의 글래머 여자...유키노와
같이 밖으로 나섰다.
 
 난리 중에도 두 아이들...겉보기에는 예쁘기 그지없는 자매사이로 보이는
아카리, 마키 들은 평온한 안색으로 유키노를 졸졸 따라다녔다.
 [누구지?]
 [대단한 여잔데? 저 다혈질 ‘아키’를 저렇게 꼼짝 못하게 하다니...]
 [그건 그렇고 저기 저 아이들 좀 봐...]
 [귀엽다...]
 곳곳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2. 작은 소란.
 
 [자 그럼 ‘슈퍼 스테이지’ 그 꿈의 무대의 막을 열도록 하겠습니다!]
 [와아!]
 청명한 하늘...장마가 끝난 싱그럽고 푸른 하늘 위로 에드벌룬이 떠 다녔고
나부끼는 깃발을 매단 비행선이 날아다녔다.
 곳곳에 설치된 다중 스피커에서는 스타디움에서 진행되는 ‘스테이지’의
실황이 그대로 흘러나오고 있었으며,  5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다는
대형 스타디움이었지만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몇몇 군데의 야외무대
등에 대형 옥외 전광판을 이용한 실황 중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칫! 이럴 거면 뭐 하러 여기에 온 거지?]
 [아하! 진정해 아키! 아까처럼 혼나지 말고...]
 [쯧...다 좋은데 너는 그 발끈하는 성격이 문제라니까...]
 안절부절 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왔다 갔다 하는 빨간 머리 소녀에게 이곳
저곳에서 툭툭 말을 던졌다.
 

 [내가 뭘!]
 [아하! 미안, 미안 화내지 말라구...]
 [조용! 지금 안에서 매니저들이 회의 중이야! 그러다가 아까 그 무서운
언니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그래?]
 [...제길...]

 ‘무서운 언니’...아키의 안색이 홱 변하며 머뭇거리다 결국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그냥 주저앉고 만다.
 못마땅한 표정의 아키의 시선이 향한 곳...
 

 ‘옥외 특별 룸’
 산뜻한 단층 건물로 스포츠 행사 등의 관계자 회합용으로 만들어진 외부
건물...안에서는 지방에서 올라온 프로덕션 관계자들의 열띤 토론과 회의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상당수의 군소 연예 프로덕션 사람들이 돌아가기는 했지만 남겨진 인원도
꽤 되었고 이들은 상당히 분노한 상황이었다.
 
 [글쎄...? 회의를 한다고 뭐 뾰족한 수라도 나올 수 있을라나?
 힘들 껄? 어차피 출연한다 해도 실력이 아주 뛰어나거나 하지 않는 이상
거대 프로덕션의 들러리 역할밖에 못하는 것이 현실인데...워낙 힘에서
밀리는 이상 항의 같은 것이 재대로 먹힐 리는 없는 것이고...]
 ‘띠리링’...전자 기타를 퉁기며 아까 아키를 말렸던 차분한 인상의 소녀가
입을 열었다.
 
 [뭐야! 그럼 이대로 가만히 항의한번 못해보고 그냥 물러나야 한다는 거야!
그런 거냐고!]
 [그만!]
 쵀앵! 전자 기타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휙! 아키를 향해 분노의 눈빛을 던지는 소녀...흩날리는 머릿결 사이로
폭이 넓은 푸른색 머리띠를 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 말은 아니야! 항의는 해야겠지...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번에
우리들이 저 스테이지에 서기는 힘들어...이미 거대 프로덕션들이 모든 것을
나눠 먹기 식으로 결정을 다 해 놓은 상태일거야...젠장...여기까지 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데...죽도록 연습하고 또, 연습했는데...]
 오드득...소녀는 입술을 앙다물며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멀리 보이는 대형
전광판에 시선을 던졌다.

 [......]
 [......]
 순식간에 침울한 공기가 퍼졌다.
 질식할 정도로 우울한 기운이 전염되듯 퍼졌다.
 매니저나 각 군소 프로덕션의 팀장들을 제외한 이들...각자의 꿈을 안고
각 지역에서 올라온 연예 지망생들은 추욱 늘어진 채 어떤 경우는 소리죽여
흑흑 우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였다.
 
 일본의 연예계...그 것은 한마디로 거대한 규모...사람이 너무 많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인적 자원이 너무나 풍부한 때문에 저마다 치열한 경쟁을 뚫지 않으면 위로
올라올 수가 없는데, 더욱 큰 문제는 그 위로 올라오는 일이 단순히 실력뿐
아니라 프로덕션의 힘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거대 프로덕션...다중 엔터테이먼트 회사의 연습생들...그들만 해도 지방의
군소 프로덕션으로서는 벅찬 상대일 수밖에 없는데, 연습생이 아닌 실제로
써먹을 만큼 성장했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숨은 주역들...이들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선되어 혹독한 ‘하드 트레이닝’을 통해 키워지는 이들로 각 거대
프로덕션 마다 독특한 컨셉에 의해 키워져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지역에도 지역마다의 연예계가 있고, 방송국도 지역채널, 케이블 등의
여러 매체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런 지역채널은 어디까지나 지역채널일 뿐...‘인디’의 세계에서
활동하지 않는 이상 연예계 활동의 지역제약을 넘어서려면 결국 ‘거대한 산’
을 넘어서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것이 쉬울 리는 만무한 것...실력뿐 아니라 배경까지 등에 업은
선택된 이들과는 달리 오직 믿는 것은 실력 하나뿐인 이들에겐 멀리 화면
속에 보이는 ‘슈퍼 스테이지’의 무대에 서 있는 이들이 부럽고 또한
원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
 산뜻한 디자인의 변형된 기모노...‘후리소데’ 종류로 생각되는 것을 입고
있는 단정한 인상의...나이는 10대 후반 정도로 생각되는 소녀가 화단 앞의
나무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인상적인...슬픔을 안으로 삭이고 있는 듯한 서늘한 눈빛과 길고 풍부한
속눈썹이 인상적인 소녀...신기루인 양 존재하고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 소녀였다.
 
 [......?]
 소녀의 눈이 살짝 호기심 어린 빛으로 빛났다.
 빠꼼히 자신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귀여운 소녀...
 길고 찰랑거리는 머릿결은 거울 표면을 보는 듯 매끄럽게 빛나고 있었고
앙증맞으면서도 약간은 야성적이랄까...악마적이랄까 묘한 분위기를 뿜어
내는 미소녀...입고 있는 분홍빛 꽃잎을 방불케 하는 마법소녀 의상이 인상
적인 아이...10대 초반? 소학교 상급반에서 중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외모
였다.

 배시시...호기심어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소녀가 웃었다.
 폭발적인 유혹...아니 마력이 자연스레 피어오른다.
 기모노의 소녀 역시 마주 웃었다.
 잔잔한 물과 같은 미소...한 떨기 수선화 같은 깨끗한 느낌이 물씬 풍겨났다.
 
 [안녕? 언니...언니가 입고 있는 옷...너무 예쁘다...그리고, 언니도 예뻐...
빤히 쳐다봐서 미안해...]
 살짝 혀를 내밀며 뒷 머리를 긁적이는 소녀...
 과연 누가 이 소녀를 싫어할까...
 [괜찮아...미안하다니...너야말로 예쁜 걸?]
 [헤에...]
 폴짝! 기모노 소녀의 앞에 바싹 다가선 소녀...바로 그때였다.
 [마키! 여기 있었구나. 그 누나 귀찮게 하지 말고 이쪽으로 와! 빨리!]
 [흥! 싫어~! 아카리가 무슨 권리로? 메롱!]
 [너어~!]
 
 날씬한 몸매의 푸른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아이...다만 문제되는 것은 분명
남자아이 인 데도 어지간한 여자 이상으로 예쁘다는 점과 머리모양이나
입고 있는 옷 또한 여성스럽다는 것이 문제인 소년...
 마키보다 약간 연상으로 보여지는 중성적 외모에 팔랑거리는 옷자락에서
상큼한 허브향이 풍기는...바로 아카리 였던 것이다.


 약간 화난 표정으로 다가서자 마키는 꺄악! 소리를 지르며 얼른 기모노
소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기모노 소녀 역시 쿡 가볍게 웃으며 받아들여 주었고...
 

 [괜찮아요...귀찮거나 하지는 않는걸요? 오히려 기분전환이 되었어요...
그보다 아카리, 마키 라고 했나요? 어디서 들어본 듯 한데...실례가 안
된다면...소개를 부탁해도 될까요?]
 나직하면서도 잔잔한 목소리였다.
 그야말로 누나 혹은 자상한 언니라고 할만한...
 아카리 역시 미소로 답을 했다.

 [네! ‘신 에이전시 ’소속의 아카리, 마키...‘스위트 페어리’라고 불리고
있어요. 잘 부탁드립니다.]
 순간...기모노 소녀가 아! 하고 탄성을 질렀다.
 

 [그래! 이제 기억나요. 그랬었지...‘캣 티비(Cat TV)’의 요정들...지난달에
방송 출연 차 갔다가 먼발치에서 본 기억이 나네요...굉장한 인기던데...
반가워요...나는 아야세... 아야세 미오 라고 해요...‘곤 프로덕션’ 소속으로
있어요...나야말로 잘 부탁해요...]
 약간은 느릿느릿한 말투...하지만 나지막하고 적당한 울림이 실린 소녀의
목소리는 약간의 애수를 담은 함뿍 마음에 와 닿는 신선한 것 이었다.
 
 [아...아야세 미오! 오...오사카의 엔카의 왕녀! 혹은 여왕! 여...여기서 보게
되다니...!]
 헉! 하는 탄성과 함께 일어난 누군가가 부들부들 떨며 아야세 미오를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상당히 오버하는 분위기...바로 풀죽은 표정으로 축 늘어져 있던 ‘아키’ 라는
아까 소동을 일으킴 바 있는 그 소녀였다. 
 
 분위기는 급전직하...갑자기 떠들썩하게 변했다.
 그 시작은 ‘아키’...다혈직적인 성격만큼이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것에도
능했다.
 이곳, 저곳에서 풀죽어 있던 소년 소녀들이 모였다.
 각기 자신의 지역에서는 꽤나 이름난...혹은 현역 스타인 이들이 대부분
이었다.
 트러블 메이커 ‘아키’ 자신만 해도 그랬다.

 

 [난 이토 아키! 그룹 KAMA의 보컬...‘신디사이저’도 다뤄...이쪽은
우리 멤버들...]
 아키의 소개에 멤버들이 각자 인사를 하자 누군가 탄성을 내 질렀다.
 [KAMA! 그룹 KAMA! 라이브 무대만 뛴다는...그런데 무슨 바람이 불었지?
‘인디’ 쪽에선 상당히 유명 하쟎아!]
 약간 도발적인 외모의 야시시한 여자가 꺄악! 소리를 질렀다.

  19살의 섹시 아이돌...‘쿠스노키 시노부’ 라는 여자로 락음악 매니아 이기도
했다.
 특히 락 음악의 라이브 무대 관람을 좋아해 종종 방송마저 펑크 내기로
유명한 여자... 하지만 그 자신이 한 지역에서 인지도 높은 모델이면서 뮤직
비디오, CM 등의 각 분야에 폭 넓은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소개하면서 연쇄반응이 일어났다.
 뜻밖에도 지금까지 남아있는 팀, 혹은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나름대로
한가락 한다는 지역 아이돌 혹은 독자적 영역에선 어디에 내놔도 꿀릴 것
없는 실력과 명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체 하거나 사인을  교환하기도 하고 난리도 아니
었다.

 

 [흥! 이제 보니 나름대로 거물들만 모였쟎아? 이 정도면 저기 저 무대에
선다고 해도 잘난 저 아이들과 겨뤄 볼 만 할껄?]
 촤앙! 전자 기타를 울리며 그룹 KAMA의 멤버인 ‘칸나’라는 소녀가 툭 던진
말이다.
 그 말에 고무되었는지 눈동자를 빛내는 이들...무한한 가능성과 재능...
나름대로의 노력 역시 어디다 내놔도 꿀릴 것 없는 이들 이었다.
 다만 스스로를 표현할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

 

 [언니 오빠들...그럼 우리 한번 해 보는 게 어때요? 여기까지 와서 저 무대에
설수는 없어도 다른 무대에서 우리의 실력을 이곳의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은...사실 우리도 저기 저 화면에 나오는 애들 정도는 할 수 있다고 생각
하는데...]
 척! 일어서서 손을 들어올리며 마키가 한 말이었다.
 [이곳에서? 어떻게? 물론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어...하지만 어떻게?]
 [악기나 다른 것은 그렇다 쳐도 우리가 이곳에서 우리 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마이크 시설 같은 것도  없고...또 중요한 것은 무대인데...]
 그 말에 마키가 생긋 웃었다.
 
 [훗 훗 훗...무대는 있어요...저쪽 스타디움 입구 바깥쪽에 비어있는 무대가
...옥외 전광판이 없어서 사람도 상대적으로 적구요, 아까 분명히 봤다구요...]
 낼름 혀를 내미는 소녀의 말에 다른 이들이 눈을 빛냈다.
 [가보자...가서보고 결정하자고!]
 젊음의 열정은 일을 벌이는 것 이라고 했던가...한마디로 일은 벌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넓다...]
 [좀 낡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쓸만한데? 여느 쇼 무대 이상의 크기인 걸?]
 웅성웅성...모여든 아이들이 수군거렸다.
 갖출 것은 다 갖춘 무대였다.
 약간은 투박하고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돔형으로 되어있는 반달형 야외
스테이지...야외 오페라 무대처럼 펼쳐진 상당한 규모의 좌석이 달려있는
곳이었다.   
 

 한쪽은 공원...다른 쪽은 ‘슈퍼 스테이지’가 열리는 대형 스타디움의 입구
근처...모인 아이들은 무대를 둘러보며 그런대로 만족한 분위기다.

 이곳에 모여든 일반 관객은 상당히 적다.
 그도 그럴 것이 멀티형 스피커 같은 것도 없고 옥외 전광판이나 대형 화면
같은 것도 없는데다가 상당히 차분한(?) 분위기가 흐르는 곳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모여든 사람도 간간히 잠을 자거나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는 등 저마다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다.
 작은 미니TV를 놓고 몇몇이 ‘슈퍼 스테이지’공연을 보며 무어라무어라
의견을 나누고 있는 모습도 보엿다.
 

 [까르르...]
 [꺄아아!]
 어느 틈엔가 무대위에서는  비교적 나이어린 연예인들인 소년 소녀들이 통!
통!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문제는...음향시설인가? 흐음...이 정도 규모면 조명이나 무대 통제장치가
분명 설치되어 있을 듯 한데...]
 [글쎄...뒤쪽과 천정에 조명이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 봐선...아마도...]
 두리번, 두리번... 그룹 KAMA의 멤버들이 주변을 살폈다.
 [이런 식의 무대...어디선지 익숙해요...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오사카의 엔카의 왕녀...아야세 미오가 손 안의 쥘부채를 폈다가 딱 접었다.
 찬찬히 허리를 숙여 바닥을 자세히 살펴보고 손으로 티 없이 깨끗한 바닥을
쓰다듬어 본 그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닥이...돌과 나무...게다가 나무로 된 부분이 썩거나 하지 않도록 특이하게
가공이 되어 있네요...거기에, 이 바닥은 삼나무재질인 것 같은데...잘은
모르겠지만...]
 마치 추억 속에 잡기는 듯 우아한 모습으로 앉아 가늘게 눈을 뜨고 바닥을
살피고 있는 그녀에게서 물안개 멀리 신기루처럼 몽환적인 분위기가 피어
올랐다.
 
 [오사카의 오래된 무대들에서 많이 본 스타일 이예요...여기는...어머!]
 [헤에...언니 뭐 해?]
 [꺄르륵!]
 혼자 분위기를 잡는 그녀의 주위에 불쑥! 어린 아이들이 나타나 몸을
밀착시켜 왔다. 
 무대 위를 통통 뛰어다니던 아이들 중 나이어린 소년 소녀들...어느 새
친해졌는지 함께 우르르 몰려다니다 불쑥 아야세 미오 주위에 나타났던
것이다.
 물론 마키...분홍빛 마법소녀 복장의 그 아이가 제일먼저 그녀의 품에 파고
들어 부비적 거렸고...자상한 웃음을 지으며 아야세 미오는 아이들을 조용히
차례로 보듬어 주었다.       
 
 3. 반란의 시작_그들의 무대.
 
 작은 소란...아니,  오랜만에 활기찬 모습을 보이고 있는 낡은 무대 위...
 그런데, 갑자기 우렁우렁한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무엇들을 하고 있는 겐가!]
 [......!]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쪽으로 향했다.
 몇 명의...회색 작업복을 입고 있는 이들이었다.
 몇몇은 어떤 작업 중이었는지 몇 가지 작업 공구들을 들고 있었다.

 하얀 구렛나룻에 커다란 바위 같은 이목구비를 지닌 노인이었다.
 흡사 오랜 세월 꿋꿋히 풍화작용을 이겨낸 바위산...아니면 바닷가의 바람과
파도를 온몸으로 버티며 지내온 연륜과 세월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노인은 느릿하게 입에 문 파이프를 떼고 후우우~ 김처럼 하얀 연기를 내
뿜었다.


 

 [이곳은 오래 전, 처음으로 야외극장이 들어선 자리이네...예전,,,자네들의
어머니들이 나이 어렸을 정도만 해도 화려한 공연들이 많이 펼쳐졌었지...]
 [......]
 왠지 숙연해 지는 기분이 들었다.
 세월을 관조하는 듯한 어투...인생의 희노애락을 모두 경험한...아니 달관한
듯한 묘한 느낌이 노인에게서는 풍기고 있었다.
 노인은 여기 모인 어린 연예인들의 사정을 충분히 듣고 난 후였다.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자신들의 기예와 가능성을 이곳에서 펼쳐 보이고
싶다는 열망을 듣고는 무언지 깊은 고민을 하는 것이다.
 회색 작업복을 입은 다른 이들 역시 거의가 이 구렛나룻 노인과 비슷한 연배
인 듯 주름지고 나이든 이들이었다.
 이곳 무대의 관리인들...그 중 젊은 시절에는 이 곳에서 무대설치를 담당
했다는 한명의 나이든 여자의 모습도 보이고 있었다.
 
 잠시 말없이 파이프만 물고 있던 노인이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떳다.
 나직한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가 아스라이 뿜어졌다.
 나이든 관리인들끼리 무언가 나직한 소리로 한참 숙의한 뒤였다.
 [좋네...허락하지...다만, 자네들 중 몇은 우리를 도와줘야할 게고...바라건데
사람들에게 충분한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진정한 공연을 부탁하겠네...
이 야외무대는 자네들은 잘 모르겠지만 그 옛날 최고의 ‘예인’들만 설 수 있는
곳이었다네...어설픈 무대라면 내가 중지시킬 테니...각오가 되어 있는가?]
 [와아!]
 [빙고!]
 [고맙습니다! 정말...고맙습니다!]
 환호성...아이들 중 몇몇은 눈물을 글썽이기 까지 했다.
 예전 최고의 무대였던 이곳에서 조그마한, 하지만 큰 사건이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콰아앙!...콰아아아앙...!]
 [후두두두두...!]
 공연의 시작은 라이브 무대에 가장 강한 그룹 KAMA의 팀이 맡았다.
 [안녕하세요? 그룹 KAMA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경쾌한 목소리로 인사한 그룹 KAMA는 자신들이 가장 자랑하는 ‘바람을
맞서며‘ 라는 묵직한 곡을 선보였다.
 강렬한 사운드...파괴적이라고 까지 평해지는 거칠고 거센 폭풍 같은 울림이
허공을 갈랐다.
 활력 있는 무대매너와 기운이 솟는 기분을 느낀 사람들이 그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이 아이들에 의해 작은 반란은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뭐 뭐야! 스테이지의 관객들이 빠져나가고 있어!]
 [어떻게 된 일이지?]
 약간의 소란이 일었다.
 생방송으로 방영되는 거대한 라이브 무대...‘슈퍼 스테이지’...그 규모나
화려함 모든 면에서 최고의 무대라고 할 만한 이곳에서 이해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관객들이...빠져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하나 둘...그리고 셋, 넷...모래로 만들어진 성이 무너지는 듯도
보였고 돌로 쌓은 제방이 천천히 허물어지는 듯도 보였다.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스테이지를 기획한 이들...진행자들...심지어 무대 위에서 나름대로의 공연을
펼치던 예비 스타들 까지 뚜렷하게 당황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우아아!]
 [사람들이...사람들이 너무 많아!]
 [후후훗...하하하핫!]
 잠시, 한숨 돌릴 겸 스테이지 대기실에 모인 소년 소녀들...휙휙! 허공으로
혹은 손과 손으로 차가운 캔 음료수가 나누어졌다.
 츄악! 가스 빠지는 소리와 함께 차가운 거품이 넘실거렸다.
 [자아! 건배!]
 [후후후훗...]
 자신들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듯 터뜨린 KAMA의 멤버 들을 비롯해 
섹시 아이돌 ‘쿠스노키 시노부’ 팀과 NANANA 라고 소개한 5인조 그룹,
북해도에서 왔다는 깜찍한 세 쌍둥이 자매까지 이들의 공연은 성황리에
계속되었다.

 

 [지금 무대에는 누가 나가있지?]
 [으응~ ‘노리마타 하고 쥰’...그 웃기는 만담가들...여기까지 웃음소리가
터지는 걸로 봐선 잘 되고 있다고 봐야하나?]
 킥킥...아토 아키가 웃음을 터뜨렸다.
 겉으로는 전혀 아닌 것 같은 분위기의 차갑고 날카로운 이미지의 미소년
들인 노리마타 그리고, 쥰...자신들이 수고한 다른 팀들이 충분히 쉴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주겠다고 호언장담 하며 무대로 나간 지 대략 10여분...그동안
갈채와 환호 무엇보다 엄청난 웃음소리가 넘쳐 이곳 대기실 까지 들릴
정도였다.

 [후훗...이런 무대는 정말 오랜만이야...]
 [동감...그보다 너희들이 제일 수고했어...으응~! 시간이 있다면 이 언니가
귀여워해 주고 싶을 정도로...]
 [......]
 끈적끈적...요염하면서도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목소리...
 캔 음료를 살짝 쳐들어 보이며 야시시하게 웃는 섹시 아이돌 ‘쿠스노키
시노부’ 였다.
 후욱!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뿐만 아니라 팀 KAMA...여태까지 무대위에서 반주와 음악을 도맡다 시피
한 탓에 상당히 피곤할 법도 하건만 오히려 기운이 넘치던 이들의 안색이
파랗게 질릴 정도다.
 입술을 살짝 오므리며 윙크 까지 하는 육감적인 모습...얼굴은 물론 맨살이
 드러난 전신에 송글송글 땀까지 맺힌 모습은 사람들의 가슴을 진탕시키기
충분했다.
 하긴...이 문제‘녀(女)’ 쿠노스키 시노부‘는 종종 주간지의 표적이 될 정도로
사생활 문제...특히 마음에 드는 사람은 이성, 동성을 불문하고 먹어치운
(?)다는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것...
 
 하지만, 무엇보다 KAMA 멤버들의 안색이 파랗게 변했던 이유...그 것은
같은 여자인 쿠스노키의 추파를 받고 자신들도 모르게 덜컥! 가슴이 내려
앉을 정도로 두근거렸다는 데에 있었다.
 (으으...이런 내가 혹시 그런 쪽에 취미가...?)
 (말도 안돼...)
 (......)
 생글생글...그녀들이 좌절모드로 빠져드는 모습을 감상하며 쿠스노키는
손에 들린 음료수 캔을 쭈욱~! 들이켰다.


 

 [언니! 와아아! 유키노 언니다!]
 [누나, 오셨어요?]
 [...너희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거지?]
 출연준비를 하는 듯 몸단장과 메이크업을 받던 아카리, 마키 앞에 흥분한
얼굴의 유키노가 나타난 것은 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일부 방송 카메라마저 ‘슈퍼 스테이지’무대가 아닌 이곳으로 돌려진 가운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슈퍼 스테이지’가 벌어지고 있는 스타디움에는 드문드문 빈 자리가 보일
정도로 관객이 줄어든 반면, 이곳에는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어
통제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나마 나름대로 이곳 옛 스테이지가 상당수의 관객들을 흡수할 정도로
규모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았다면 엄청난 혼란을 야기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자 그쪽은 통로입니다! 통로엔 앉지 말아주세요!]
 [티비 카메라는 이쪽으로 들어오면 안 되요! 여긴 관계자 외엔 출입
금지라니까! 카메라는 저쪽에 마련된 배정석으로 가시오!]
 상당히 노련하게 관객들을 통제하는 나이든 관리인들...각 프로덕션에서
합류한 매니저나 인원들 중 남는 인원들과 힘을 합쳐 그야말로 고군분투를
하고 있었다.
 

 음향과 조명 등 무대연출 역시 나름대로 조화를 이루며 선전하고 있었다.
 [자! 그쪽 2번 조명! 3번 조명! 좀 더 왼쪽으로...나머진 오프! 스피커
모두 전면개방!]
 [네! 자 빨리 움직이자고!]
 [라져!]
 또륵! 드믄 드믄 희어진 머리칼을 질끈 묶어 내린 무대 담당자의 이마에
땀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젊었을 때는 상당한 미인이었을 법한 그녀는 상큼한 표정으로 슥 땀방울을
훔치며 만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언니.]
 [저, 우리 나가면 안 되나요? 네?]
 유키노는 후욱!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하지만 어쩌랴...이미 일은 벌어진 다음이다.
 또각또각...팔짱을 끼고 돌아다니며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가 슥 아이들
에게 시선을 던졌다.
 움찔...아카리와 마키...둘은 목을 움츠리며 상당히 주눅이 든 표정이다.
 
 [이리로...오렴...]
 후우우...유키노는 나직이 숨을 내쉬며 두 아이를 불렀다.
 멈칫멈칫...다가선 두 아이들을 살포시 끌어안고 쪽, 쪼옥 한명씩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해 주었다.  
 [잘 할 수 있겠지? 너희들...]
 [언니!]
 [......]
 [이왕 이렇게 된 것, 너희들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거야...최고의 모습을...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도록...]
 아이들의 표정이 환희로 물들었다.
 [네!]
 [그럴꺼예요!]
 다짐하듯...두 아이들의 얼굴에 결연함이 스쳐갔다.

 

  또각또각...유키노가 무언가 굳은 얼굴로 다가서자 팀 KAMA의 멤버들이
아연 긴장하는 표정이 되었다.
 척! 유키노의 시선이 리더 격인 ‘아키’를 향했다.
 [무...무슨...?]
 팔락! 자신의 코앞으로 내미는 서류봉투 하나...엉겁결에 받아든 아키의
얼굴에 의혹이 가득했다.
 [악보?...]
 팔락팔락 넘기는 손길...점차 부들부들 아키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건...말도 안돼...이런 말도 안 되는 곡이...!]
 
 또박또박 차가운 느낌이 들 정도로 분명한 유키노의 목소리가 대기실 안을
짜랑짜랑 울렸다.

 [팀 KAMA...리더 이토 아키...듣자니 촉망받는 ‘싱어송 라이터’라고
하더군요...그 외에 칸나, 료코, 묘오미...그리고, 아스카...다른 분들 역시
라이브로 다져진 최상급 실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전 세계 락 페스티벌 에 참여해 높은 평가를 얻었다구요?
 그 악보에는 이 아이들...최상급의 목소리와 재능을 지닌 이 아이들을
위한 두 곡의 댄스 음악이 수록되어 있지요...유럽에서 활동하는 두 명의
최고 작곡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들이...할 수 있겠나요?]
 
 [......]
 탁, 탁탁탁!...홀린 듯 악보를 바라보며 무언가 박자를 맞추듯 의자 손잡이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기는 소녀...너무도 신중하고 진지한 표정이라 어느
누구도 숨소리 하나 크게 낼 수조차 없었다.
 [잠시...멤버들과 의견을 나눠 봐야겠네요...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이토 아키가 눈을 빛냈다.
 유키노의 고개가 가볍게 끄덕였다.


 

 - 窓に西陽が あたる部屋は
   창문에 석양이 드는 방에는

 

   いつもあなたの 匂いがするわ
   언제나 당신의 냄새가 나요


 

   ひとり暮らせば 想い出すから
   혼자서 (그 방에서) 산다면 (추억이) 생각날 테니까

 

   壁の傷も残したまま おいてゆくわ
   벽의 흔적도 남겨둔 채로 가겠어요.

 

   愛をつぐなえば 別れになるけど
   사랑을 보상한다면 이별이 되겠지만

 

   こんな女でも 忘れないでね
   이런 여자라도 잊지 말아줘요

 

   やさしすぎたのあなた
   너무나도 상냥했던 당신

 

   子供みたいなあなた
   아이 같았던 당신

 

   あすは他人同志に なるけれど
   내일이면 서로 타인이 되어버리겠지만 -

 

 애절하게 심금을 울리는 가사와 거기에 어울리는 애틋한 목소리...
 무대는 조용했고 사람들 역시 그러했다.
 석양이 깔리기 시작한 무대...약간은 오래된 정취를 자아내는 듯한
오색 조명이 무대 위를 빠르게 훑고 지나갔다.
 ‘엔카의 왕녀’ 혹은 여왕으로 불리는 ‘아야세 미오’ 다운 그야말로
이름값을 하는 무대였다.

 

 사람들을 홀리듯 나직이 깔리는 묘한 목소리...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든 창부가 한잔 술에 취한 후 토해내는 애절함과
이른 바람에 흩날리듯 휘몰아치는 꽃잎의 화려함...
그리고, 촉촉하게 물이 오른 이른 봄의 버들잎을 보는듯한 싱그러움
까지...듣는 사람들을 마력에 취하게 하는 목소리였다.

 

 원래대로였다면 ‘아야세 미오’가 아니라 ‘스위트 페어리’...다시 말해
아카리와 마키의 무대가 되었을 터였지만 둘의 매니저 겸 프로덕션
책임자 격인 유키노가 준 악보...아카리와 마키를 위해 만들어진 최고의
곡을 살펴 본 팀 KAMA 멤버들이 연습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고, 아야세
미오가 자청하다시피 다음을 맡은 것이다.

 다행히 팀 KAMA 대신으로 음악을 맡아줄 이들이 존재했었다.
 섹시 아이돌 ‘쿠스노키 시노부’의 팀이 자원했던 것이었다.        
 아마 팀 KAMA 멤버들은 무대 안쪽의 방음설비가 된 연습실에서 구슬
땀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두 아이들...‘아카리, 마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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