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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42 부


**  낭만백작著/ 서검연풍록 (書劍戀風錄) 제 42 부  **



제 13 장.  후손(後孫)과 후예(後裔) 2.


모두가 비연선원(秘緣仙院)의 경내를 공중에 뜬 채 한 바퀴 돌아 운향원(雲香院)으로 내려앉
는 모습을 본 상관명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 하하하.. 조그만 재주를 보여드렸습니다. 황보공자 이제 만족하시는지..? 」


「 소생.. 새롭게 무학에 눈을 뜬 듯합니다. 더는 자만하여, 오만하지 말라는 충고로 받아들
이겠습니다. 이제 돌아가서 제가 해야 할 일에 진력을 하겠습니다. 구(龜)공자.. 저와 함께
출발을 하도록 하지요. 그럼 이만..! 」


「 주군(主君).. 저도 함께 출발을 하겠습니다. 」


「오.. 그래, 구(龜)야 한시도 황보공자의 곁을 떠나서는 안된다. 황보공자.. 공자의 많은 도
움이 필요합니다. 부탁드립니다. 」


묵례를 하며 문을 나서는 두 사람을 배웅을 하는 상관명의 목소리에는 간곡함이 배어 있었다.


두 사람이 떠나고 난 운향원(雲香院)..
그곳에 남아 상기된 얼굴로 앉아있는 홍련채주의 얼굴은 상관명의 무공을 접한 격정(激情)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살펴보던 학련(鶴蓮)이 상관명을 향해 묻고 있었다.


「주군.. 한번도 남 앞에 나타내지 않던 주군의 무공을 어찌 황보공자에게 보이셨는지..?」


상관명이 빙긋 웃으며 대답을 했다.


「 황보공자의 부친인 문화평장사(門下平章事) 황보승(皇甫承)도 전 왕조를 버리고 말을 갈아
탄 위인입니다. 그 아들인 황보정(皇甫程)공자 역시 그의 아비보다 더욱 뛰어난 지모(智謀)를
가진 인물이지요. 때문에 언제든 자신과 자신의 가문을 위해 힘을 가진 쪽을 선택을 할 수있
는 사람입니다. 구(龜)아우를 따르게 한 것도 황보공자를 보호하기 위함도 있지만, 혹시 자신
의 욕심 때문에 조익균의 목숨을 방치할까 염려한 것이지요. 조익균이 살아있어야 나중에 그
들을 견제할 수단이 됩니다. 」


상관명의 설명을 들은 학련(鶴蓮)과 완(婉)아 그리고 홍련채주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 자.. 홍련채주, 그리고 학련(鶴蓮)누님.. 두 분의 역할도 어려운 일입니다. 비연선원을 일
은 완(婉)아에게 맡겨두고 움직이도록 하십시오. 」


 * * * * * * * * * *


모두들 맡겨진 임무를 서둘러 준비하기 위해 상관명의 곁을 떠나고 난 뒤 비연선원의 후원,
상관명의 집무실인 제궁(帝宮)의 서원(書院)으로 돌아와 생각에 잠겨있던 상관명은 어둠이
내리는 개봉거리를 향해 문을 나섰다.
천천히 우왕대의 뒷길을 오르던 상관명은 주위의 인적이 드물어지자 땅을 박차며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황궁이 위치한 개봉의 어가(御街)를 향해 신형(身形)을 날렸다.
 
이미 어둠은 짙게 내려앉아 주변의 사물은 희미한 그 모습만을 드러내고, 황궁은 높은 담으
로 둘러 싸여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과연 구중궁궐(九重宮闕)이었다. 문을 겹겹이 막아, 지나는 곳 마다 위사(衛士)와 군졸들이
지키고 그 문을 지나 발을 내딛으면 또 다시 펼쳐지는 넓게 펼쳐지는 장원.. 깊은 대궐을 구
중심처(九重深處)라 부르는 그 이유를 짐작할 만한 철통같은 호혈(虎穴)이었다.


상관명은 휙.. 몸을 날려 하늘로 향해 가장 높게 뻗은 나뭇가지위로 내려앉았다.


「으음.. 저곳이로구나..!」


내려다 본 저 먼 곳의 건물.. 위병이 겹겹이 에워싸 경비를 하고 있는 그 한 곳.. 등화(燈火)
의 불빛이 은은히 밝혀져 있는 황제의 침궁(寢宮)이었다.


- 휙.. 휘익..!


상관명의 신형이 그림자가 되어 그곳으로 날아들었다. 그러나 위사, 위병 어느 누구도 그 앞
을 지나 내전(內殿)으로 잠입한 인물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다.


스르르.. 상관명의 신형은 천정을 타고 침궁(寢宮)속으로 스며들듯 내려앉았다. 황제는 몸이
불편한 듯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고 등불 가까이서 손에든 서책을 읽고 있었다.  
 
「 누.. 누구냐..! 」


그러나 황제의 입에서는 뱉어낸 소리는 문밖으로 흘러나가지를 못했다. 상관명이 천정에서 날
아 내리는 순간 차음공(遮音功)을 펼쳐 방안의 소리가 단한마디도 새어 나가지 못하도록 음향
(音響)의 흐름까지도 차단을 시킨 것이었다.


그 순간.. 휙.. 휙.. 휙.. 휘익..!


네명의 인영이 상관명의 사방에 날아들어 검을 겨누고 있었다.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고
있는 황제가 침상 뒤쪽에 숨겨두어 그림자 경호를 하는, 황제가 가장 신임을 하는 청룡(靑龍)
, 백호(白虎), 현무(玄武), 주작(朱雀) 네 명의 어전시위(御前侍衛)였다.
상관명을 향해 앞 뒤 양옆을 겨누고 있는 네 개의 검(劍)..! 그 검(劍)의 끝에서 펼쳐져 오는
검강(劍剛)은 가히 일가를 이루고 있는 무공의 고수임이 분명했다.
그들의 입에서는 한마디의 말도 없었다. 다만 상관명을 향해 조여드는 검강만이 그 위력을 나
타내고 있는 것이었다.


황제가 천천히 침상에서 일어나 상관명을 노려보고 있었다.


「 대단하구나..! 겹겹이 진을 친 군사들을 뚫고 이 지밀(至密)까지 침입을 하나니..! 네놈은
누구냐..? 대답을 하면 시신만은 보존을 해 주마..! 」


느릿느릿 말하는 황제의 옥음(玉音)을 귓가로 흘려들으며 상관명은 얼굴에 피식.. 웃음이 스
쳐 지나며 손에 든 옥선(玉扇;옥부채)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 털썩.. 털썩.. 털썩.. 털썩..!


상관명을 사방에서 포위하고 검을 겨누며 조여들던 네 명의 시위가 신형을 바로 지탱하지 못
하고 바닥에 넘어지는 소리였다.
부채에서 펼쳐져 나간 무형의 잠력이 순식간에 어전시위(御前侍衛)들의 혼혈을 찍어버린 것이
었다. 그 순간 온몸의 기력(氣力)이 모두 빠져 나가는 듯, 그들은 신형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
하며 꼼짝없이 눈만 멀뚱히 뜨고 있는 것이었다.


「 이.. 이.. 이놈이..! 여봐라 밖에 아무도 없느냐..? 」


눈앞에서 믿고 있던 시위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광경을 바라본 황제는 다급히 환관(宦官)
을 찾는 고함을 질렀다.


「 하하하 황상폐하(皇上陛下).. 고정하십시오. 폐하께 은밀히 아뢸 말씀이 있어 찾아온 것일
뿐입니다. 다른 의도는 없으니 안심 하십시오..! 」


「 무.. 무슨 말을..? 무엄하구나, 황궁을 함부로 침범하다니..! 」


「 고정하십시오 폐하..! 공주마마께서 폐하께 전한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


(어어.. 공주가 전한말이 있다..? 이 청년이..?)


언뜻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 그.. 그럼..! 자혜공주가 일전에 전하고 간 그 이야기 속의 인물이 그대란 말인가..? 」


「 예. 상관명이라 하옵니다. 」


이제야 조금은 마음을 진정시키는 황제였다. 며칠 내로 어느 인물과 함께 찾아와 알현(謁見)
을 하겠다고 전하고 간 공주의 전언..! 그런데 그 사람이 무례하게도 혼자서 황궁의 지밀까지
내침(來侵)을 하였다. 이런 황망한 일이 어디에 다시 있겠는가..! 또한 그 무공이 높은 어전
시위(御前侍衛) 청,백,현,주(靑,白,玄,朱) 네 명까지 한순간에 꼼짝을 못하도록 만들어 버린
것이 아닌가..? 이 당황스러움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일순 위엄을 되찾으며 입을
열었다.


「 상관명이라..! 그래.. 공주와 함께 찾아올 것이라 들었다. 그런 그대가 어찌 이리도 불경
한 행동을 저지르는 것이냐..? 」


그래도 일국의 황제였다. 한 순간 흐트러졌던 황제의 위엄을 이미 되찾고 있었다.


「 송구하옵니다. 폐하의 용안을 저 혼자서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


「 허허.. 혼자서 짐을 보고 싶었다..? 그래 혼자서 짐을 바라본 느낌이 어떠하냐..? 」


물끄러미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상관명의 입은 꼭 다물어져 대답이 없이 잠깐 동안의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천하(天下)의 지존(至尊)이라는 황제..! 그러나 지금 마주보고 있는 이 황제라는 인물..! 전
왕조를 무너뜨리는 혁명의 명분을 쫒아 할아버지께서 마음속으로 동조를 했다고는 하나 그 할
아버지의 목에 칼을 댄 태조의 후예(後裔)가 아닌가..! 또한 상관명 자신은 그 할아버지의 후
손(後孫)인 손자가 아니던가..! 불공대천(不共戴天)의 원수가 서로 마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의를 중하게 여기라는 할아버지의 유훈(遺訓)..! 때문에 사심(私心)을 버린 자신이
었다. 하지만 천자(天子)라 칭하는 그의 모습을 찾아 당당히 마주하고 싶었기에 용담호혈보다
도 무서운 곳이라는 황궁의 담을 넘어 지밀까지 찾아든 상관명이었다.


「 폐하.. 십 여년 전 주선진의 한림학사원을 찾아 학사원의 유생들을 격려한 후 환궁을 하던
어가(御駕)의 행렬이 화영루 앞을 지날 때 그 어가의 앞을 막고 뛰어들었던 거렁뱅이 아이를
혹여 기억하십니까..? 」


상관명이 하는 뜻밖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겨드는 황제의 용안이었다.


「 네가 그때 공주의 마차 앞으로 달려든 그 아이 였더냐..? 허허 감히 황제의 어가에 뛰어든
사람은 어린 그 아이가 처음이었다. 그때 그 모습이 아직 뇌리에 남아있느니라..! 」


몸에 가해지는 위해를 당하면서도 끝까지 당당하게 할 말을 하고 있던 그 광경이 머릿속을 스
쳐 지나간 것이다.


「 예.. 맞습니다. 그 아이가 저 옳습니다. 」


「 허허.. 잘 자랐구나..! 그 때의 그 모습보다 더욱 든든히 성장했구나..! 그래 무슨 할말이
있어 짐을 찾았는가.. 어디.. 어디 이리 가까이 와서 앉으라..? 」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한결 친밀감이 들어 황제의 마음에는 이 청년에 대한 경계심이 점점 사
라져 가고 있었다.


「 예.. 폐하..! 」


침상의 곁에 놓여 진 의자에 다가가 앉는 상관명을 보며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 허허.. 이사람..! 저 시위들의 혈을 풀어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어라.. 저들은 짐의 목숨
을 책임지고 있는 근위무사 들이다..! 저놈들.. 짐의 목숨을 지키기보다 제 놈들의 목숨을 먼
저 보존해야 겠구먼..! 」


상관명의 손에서 울린 펄럭.. 소리와 동시에 점혈이 풀린 네 명의 시위들은 후다닥.. 황제의
앞을 막아서며 검을 상관명의 앞을 향해 겨누었다.


「 에이 이놈들.. 아서라..! 또 다시 어리석은 짓을 말고 뒤로 물러나가라..! 그래.. 얘야..!
어서 하고자 하는 말을 해보아라..! 」


이제는 황제의 그 어투나 행동이 자상한 어버이 같은 중년어른의 모습이었다.


「 폐하.. 송(宋)을 개국한 선대의 군주이신 태조(太祖)황제와 소인의 할아버지는 깊은 인연
이 있었습니다..! 」


「 헛.. 그게 무슨 말이냐..? 가만 가만.. 너의 성이 상관(上官)이라 했느냐..? 혹시 후주의
말엽에 재상을 지낸 상관후(上官侯)대인의 후손이더냐..? 」


「 예.. 폐하..! 그 어른이 저의 할아버지이십니다. 」


「 휴우.. 그랬었구나..? 기이한 인연이로다. 」


불과 삼대(三代)도 채 지나지 않은 사건이었다. 당금의 황제가 송(宋)나라를 개국(開國)할 당
시의 그 비사(秘史;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적 사실)를 모를 리 없었다.


「 으음.. 송(宋)을 개국(開國)하신 태조(太祖)황제께서는 짐에게 큰 아버지가 되시네..! 삼
대가 지난 지금 그 후손이 이렇게 마주 보고 있구나..! 」


일촉즉발(一觸卽發)의 그 순간.. 존경과 명망을 한 몸에 받고 있던 후주의 명재상 상관후(上
官侯)를 비밀을 지키기 위해 목을 벨 수밖에 없었던 그 당시의 상황을 들어 익히 알고 있는
황제는 그 아픔을 느끼고 있었다.


「 폐하.. 소인 당시의 일을 들추어 내고자 찾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폐하..! 소인의 조부
님께서는 그 궐기의 명분에 찬동(贊同)을 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았습니다. 」


「 그랬지.. 그러했다고 들었다. 」


「 소인의 할아버지는 태조황제를 위해 죽음을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백성을 위해 목숨을 내
어놓으신 것이지요. 그런데 황상폐하..! 소인의 조부께서 목숨으로 지킨 백성들의 안위(安慰)
를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이토록 방치를 하고 계신 것입니까..! 」


꿈틀.. 황제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킨다. 상관명의 말이 황제의 실정(失政)에 대한 질타(叱咤)
로 들려던 것이다. 힘이 사라진 황제라 하나 어느 누가 자신의 면전에서 이렇게 질책의 말을
하던 조정의 대신이 있었던가..! 그러나 황제의 표정은 금방 온화한 평시의 모습을 되찾고 있
었다.


「 그 말을 하려 왔느냐..? 」


「 아닙니다. 폐하의 용안(龍顔)을 보는 순간 폐하께서 너무나 가긍(可矜;딱하다)히 여겨져
저절로 나온 말입니다. 」


직접 눈앞에서 살펴본 황제..! 그러나 그 얼굴은 병색(病色)을 띤 혈색이 아니었다. 혹시 은
인자중(隱忍自重) 기회를 노리며 병중이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의중을 알아보기
위한 상관명의 도발이었다.
 
「 이.. 이놈이.. 그입 다물지 못할까..! 」


황제의 뒤에 시립(侍立)해 있던 시위들의 입에서 고함소리가 터져 나왔다.
황제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발언이 아닌가..? 겨우 진정시킨 황제 얼굴이 상관명의 말에 또 다
시 꿈틀거리는 것은 본 어전시위들이 나서며 지른 호통소리였다.


「 아니다.. 너희들은 나서지 마라. 예야.. 말을 계속해 보거라..! 」


「 예.. 폐하..! 목숨과 바꾼 이 나라를 이렇게 방치하신다면 황제로서의 자격이 없는 것입니
다. 옥좌(玉座; 황제의 자리)를 걸고서라도 백성을 위해 나서야 하는 것이 황제의 책무가 아
니신지요..? 」


황제의 용안에 잔잔한 미소가 흘러 지나갔다.


「 어찌 그리도 어릴 때의 모습과 꼭 같은가..? 어가를 세우고 당당하게 설파하고 있던 그때
그 너의 모습이 떠오르는 구나..! 잠깐만 기다려라. 」


황제가 뒤를 돌아보며 어전시위들에게 말했다.


「 얼른 자혜궁으로 달려가서 공주를 모셔 오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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