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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슬프도록 아름다운 - 15부

법학과 홈페이지가 있다. 찬승도 가끔 들어가 무슨 글이 올라왔나 확인하는 정도인데, 월요일인 오늘 들어가 보니 반가운 소식이 하나 올라와 있었다.



[얘들아 나 귀국했다!!!!!!!!!!!!!!!]



글 작성자를 보니 98학번 민경준 선배다. 찬승이 그나마 가장 친하게 알고 지내던 선배. 아니 이 선배의 성격이 워낙 좋고 주위에 사람이 많으니 친하게 지내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가 집이 엄청난 부자였다. 전국적으로, 하지만 대도시에서도 부자 동네 위주로만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최고급 한정식당 ‘청송’ 대표의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학교 다니던 시절 별명이 재벌2세였다. 하지만 돈 많은 티를 내지 않고 사람들과 잘 어울려서 노니 주위에 사람이 아니 꼬일 리가 없었다. 찬승도 학교 다닐 때 자주 어울려 놀았었다. 그리고 선배가 찬승과 은설에게 특히 잘해준 것이 생각났다. 02학번 중에 가장 잘 어울리는 커플이라며 굉장히 귀여워해줬던 기억이 난다. 외국에 나갔다더니 이제 돌아온 모양이었다.

글의 말미에 보니 핸드폰 번호가 적혀 있다. 자기 아는 사람은 모두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나도 연락해볼까….’



찬승도 한 번쯤 다시 보고 싶은 선배이기에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핸드폰을 들어 통화를 시도하자 잠시간의 신호음이 울린 후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아. 혹시 민경준 선배 핸드폰인가요?”



[예. 그런데….]



“아. 안녕하세요. 선배. 저 찬승이에요. 02학번 김찬승.”



[오. 김찬승이…!]



경준선배는 역시 찬승을 잊어버리지 않고 있었다. 잠시 동안 서로의 안부를 묻고 나자 경준이 찬승에게 말했다.



[야. 다음 주 수요일에 우리 식당에서 법학과 애들 불러서 놀 거거든? 너도 와라. 02학번 남자애들 꽤 제대했으니까 너도 와. 아 은설이도 같이 와라.]



경준의 말에 찬승은 당황했다. 자신이 은설이랑 헤어진 것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아…. 선배 저 은설이랑 헤어졌어요. 하…하….”



[…아. 그랬구나. 야 미안하다. 하하. 내가 몰랐어. 괜찮냐 이제?]



“예….”



[그래 어쨌든 다음 주 수요일에 7시까지 평창동에 있는 청송으로 와. 어딘지 알지?]



1학년 때 선배의 초대로 은설과 함께 한 번 가본 적이 있던 곳이다. 굉장히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나는 한정식당 집이었다.

그렇게 찬승은 경준과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후우….”



전화를 끊고 난 찬승은 한숨을 쉬었다. 잊을 만하면 다시금 한 번씩 떠올라서 마음을 흔든다. 은설 이야기다.



‘CC로써 헤어진다는 건 둘만의 문제가 아닌 건가…. 쳇….’



침대에 누우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는 찬승이었다.



*



다음 주 수요일 날 찬승은 평창동에 있는 청송으로 경준을 찾아갔다. 은은한 조명으로 둘러싸인 전통 한옥집의 모양을 하고 있는 거대한 고급식당은 찬승에게 절로 위축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안내인에 의해 한 방으로 들어가자 길고 새하얀 식탁에 갖가지 종류의 진미가 차려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경준 선배와 먼저 도착해 있던 사람들도….



“어 찬승아 왔냐!”



“예. 안녕하세요.”



선배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자 아는 얼굴도 있고 모르는 얼굴도 있었다. 찬승은 그중 02학번 동기들에게 아는 체를 했다.

찬승이 아는 사람들에겐 인사를 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겐 자기소개를 하는 동안 식사가 시작되었다. 전에 한 번 와보긴 했지만 오늘 역시 어마어마한 고급요리들로 구성되어 있어 눈이 핑핑 돌아갈 지경이었다.

이것저것 집어먹으며 옆에 앉아 있는 동기들과 잡담을 나누던 중 경준이 다가왔다.



“야 찬승이 진짜 오랜만이다. 언제 제대 했다고?”



“2월 달이요.”



“응. 야 …근데. 은설이랑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거야?”



조심스레 묻는 경준의 말에 찬승은 슬쩍 웃었다.



“그렇게 안 물으셔도 되요. 이제 괜찮은데요 뭘. 그리고 군대에서 뭐 거의 헤어지잖아요.”



“그래. 이제 괜찮은 거 같아서 다행이다. 아 그리고 너 다음 주 쯤에 시간 어떠냐? 바다 한 번 가지 않을래?”



다음 주면 이제 8월이다.



“예? 바다요? 누구랑요?”



찬승은 갑자기 웬 바다인가 싶어 물었다. 그러나 경준은 이미 다 계획하고 있는 듯 했다.



“내가 애들한테 물어봤는데 나랑 너까지 해서 한 4명 정도 갈 거 같아. 안 간다는 애들이 의외로 많네. 쳇. 내가 몸만 오라고 말했는데 말이야.”



“몸만요?”



“그래. 인마. 그냥 몸만 오면 돼. 여름방학인데 바다 한 번 가야 되지 않겠냐. 어차피 애들 추려서 소수로 갔다 올 생각이었으니까 4명이면 딱 이다.”



“뭐가 딱 인데요?”



“그래. 가서 여자 꼬셔서 놀아야지.”



경준의 말에 찬승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하면 바다이고, 바다하면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 아닌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바닷가에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과 놀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흥분이 된다. 찬승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여 간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그러자 경준이 씨익 웃는다.



“그래. 그럼 다음 주에 가는 거다.”



“예.”



좀 갑작스럽긴 했지만 경준과 함께 가니 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저 비상금 일, 이만 원만 가져가면 다 해결 되는 것이다. 1학년 때도 식당이나 술집 같은데 선배를 따라가면 돈 하나 낼 필요가 없었다. 그 정도로 돈을 잘 쓰는 화끈한 선배였다. 그러나 돈 있는 티를 내지 않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니 그만큼 인기가 있는 것이었다.



‘재밌겠는데….’



찬승은 다음 주 바다에 갈 상상에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



“안녕하세요.”



“아 미경아 안녕. 일찍 왔네.”



찬승의 말에 미경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금요일 날 학원에 도착하니 미경이 먼저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찬승도 이제 자연스레 그녀의 옆에 앉는다. 둘은 웬만큼 친해졌다. 아니 꽤 친해졌다고 해야 했다. 화, 목, 금요일마다 꾸준히 학원에서 만나고, 자주 같이 밥도 먹고 이야기도 한다. 수업 끝나고 가끔 떡볶이도 먹으니 안 친해질 수가 없었다.

찬승은 그런 미경을 보며 웃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예쁘다는 표현보다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그녀에겐 잘 어울렸다. 왠지 지체 높은 귀족의 여식 같은 분위기가 풍겼으니까….

찬승이 그렇게 바라보는 동안 미경이 특유의 검은 뿔테 안경을 꺼내 착용한다. 그러자 더욱더 세련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그녀…. 그러고 보니 그녀에게 안경을 쓰는 것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았다.



“미경아. 그 안경 왜 수업 할 때만 쓰는 거야?”



“예? 아. 그냥 렌즈 끼기도 불편하고 평소에는 그렇게 안 보이는 거 아니니까…. 근데 칠판 글씨는 가끔 작으면 안 보이거든요. 그래서 수업할 때만 써요.”



“아…. 그래.”



찬승은 그렇게 말하며 웃는다. 다름 아니라 미경이 이제 예전과 달리 장문으로 대답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는 거의 짧게 대답했지…. 많이 친해졌네.’



혼자 좋아하는 찬승이었다.



수업을 하는 동안 미경이 맨 앞자리에서 꾸벅거리며 졸기 시작한다. 평소 꼿꼿이 허리를 세운 자세로 누구보다도 열심히 수업을 듣던 그녀가 웬일로 졸기 시작한 것이다. 찬승이 몇 번 툭툭 쳐줘서 깨우긴 했지만 전혀 정신을 못 차리는 그녀였다.

한 시간 수업이 끝난 후 미경이 작게 기지개를 편다. 찬승은 그녀가 기지개를 펴며 가슴을 내밀 때 드러나는 둥그런 윤곽을 훔쳐보다가 그녀의 말에 화들짝 놀란다.



“응, 응?”



“왜 그러세요? 저 한숨 잘 테니까 수업 시작하면 깨워 달라구요.”



“아 그래. 알았어. 잘 자.”



찬승의 말에 미경은 안경을 벗어 놓고는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기 시작한다. 평소 수업시간에도 졸지 않고 쉬는 시간에도 절대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여주는 그녀였는데 무언가 피곤한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미경이란 후배가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는 흔치 않은 모습을 보던 찬승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헉….’



미경이 책상에 엎드리자 그녀의 노란색 티셔츠가 한껏 올라간 것이다. 티셔츠가 올라간 것이 무엇이 대수냐 하겠지만 지금 그녀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짧고 얇은 티셔츠가 올라가자 그녀의 새하얀 등은 물론이고, 허리에 걸쳐져 있는 청바지 위로 하얀색의 팬티도 보이고 있는 것이었다.



‘으 어쩌지….’



찬승은 무언가 가려줄 것이 있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한참을 안절부절 못하는데 문득 미경의 허리가 눈에 들어온다. 굉장히 하얗고, 무척이나 가느다란 허리는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아영이보다 더 가늘잖아….’



아영이의 허리보다 훨씬 가늘고 예뻤다. 찬승은 문득 미경의 허리를 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잡고 뒤에서 꽉 안고 싶었다. 그러자 미경의 아름다운 모습이 오버랩 되며 갑자기 흥분이 되기 시작한다.



‘후우…. 안 돼. 진정하자. 진정해….’



그렇게 스스로 호흡을 고르고 있는데 문득 뒤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두 명의 남자가 미경의 팬티와 살을 보며 키득거리며 웃고 있는 것이었다.



‘제, 제길 가려줘야 되잖아.’



아무리 찬승 자신이 보기 좋은 광경이었지만 친한 후배의 이런 모습을 남들이 보며 키득거리는 꼴을 보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이든지로 가려줘야겠다는 생각에 찬승은 자신의 프린트로 슬쩍 미경의 허리 부근에 올려놔 본다. 그러나 다시 잽싸게 빼고는 스스로를 질책한다.



‘이, 이게 뭐야! 더 우스꽝스럽고 선정적이잖아!’



찬승은 책, 휴지 등 이것저것으로 시도해보다 그녀가 살짝 깨더라도 가방을 뒤에 대주기로 하고는 조심스레 올려놓으려 할 때 강사가 들어왔다. 쉬는 시간이 끝난 것이다.



“어머. 뭐하세요?”



들어오던 여자강사가 맨 앞에 앉아 있는 찬승에게 이상스레 묻는다. 강사의 목소리에 미경도 슬쩍 눈을 뜨며 일어난다.



“아…!”



찬승은 재빨리 가방을 제자리로 내려놓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기 시작한다. 그런 찬승을 이상하게 바라보는 미경과 강사였다.



*



“안녕히 가세요. 선배.”



“응. 잘 가.”



찬승은 미경과 헤어지며 잠시간 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티셔츠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아까 본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가 잊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는 상상과 함께 일어난 흥분도 가라앉지 않았다.



“후우….”



골치가 아팠다. 성욕이 일어나니 성욕을 풀 생각을 해야 했고, 성욕을 풀 생각을 하니 아영이 떠올랐던 것이다. 마땅히 할 수 있는 여자도 없었다. 그럼 당연히 아영 밖에 없는데 너무나도 미안한 것이 문제였다.



‘너무 자주 찾아가는 거 아닌가…. 에이. 몰라. 어쨌든 가보자.’



찬승은 핸드폰을 들어 아영에게 연락했다. 물론 미경 때문에 하고 싶다는 말은 빼고 말이다.



흔쾌히 와도 좋다는 반응을 보인 아영은 만나서도 찬승을 크게 반겼다.



“선배애!”



“응. 안녕….”



“히히. 어서 오세요.”



찬승이 들어가자 방 안에는 이불이 깔려 있다. 찬승이 이불을 바라보자 아영의 얼굴이 빨개지며 황급히 손을 휘젓는다.



“서, 선배 온다고 깐 거 아니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안 갠 거예요!”



“누가 뭐라 그랬니?”



“…칫.”



투덜거리는 아영은 찬승을 따라 앉으며 말했다.



“선배. 근데 그 때 엠티 때 안한 거 맞죠?”



“어? 으, 응…. 왜?”



찬승이 살짝 당황해 되묻자 아영이 볼을 긁적이며 말한다.



“아니 자고 일어나니까 거…기가 젖어 있더라구요. 팬티랑 같이…. 그래서 물어본 거예요.”



“아…. 몽정이라도 했나보지. 뭐.”



“몽정? 여자도 몽정해요?”



“음…. 나도 모르는데….”



찬승이 잘 모르겠다고 하자 아영이 입술을 삐죽인다.



“핏. 그게 뭐예요. 근데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날 꿈에 선배랑 하는 꿈을 꾼 거 같아요.”



“….”



아영의 말에 찬승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자 아영이 배시시 웃는다.



“어쨌든 오늘 하면 되죠.”



아영이 섹시한 미소를 지으며 찬승에게 안겨온다. 찬승도 아영을 살짝 안으며 생각했다.



‘미안 아영아…. 나 미경이 때문에 너무 흥분이 돼서 찾아왔어…. 그러니까 오늘 미경이 상상하면서 해도 되지….’



살짝 눈을 감는 찬승에게 아영이 키스를 하며 생각한다.



‘선배. 이렇게라도 선배 보고 싶었어요. 선배 마음이 어떻든 간에 이런 식으로라도 선배랑 이어질 수 있어서 좋아요…. 그래도 조금은 저 보고 싶었던 거겠죠?’



찬승의 생각을 희미하게나마 읽는 아영이었지만 중요한 부분에서 크게 엇갈리는 두 사람이었다.



*



8월로 들어서며 여름도 이제 절정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찬승은 경준이 운전하는 차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너무나도 뜨거운 날씨에 벌써부터 온 몸이 후끈거렸다. 날씨가 뜨거우면 그만큼 바닷가에 사람이 많고, 사람이 많으면 그만큼 예쁜 여자들이 많을 테니까….

8월의 첫째 주 수요일. 경준과 99학번 선배 두 명과 함께 동해 바닷가에 가기로 한 것이다. 99학번 선배 두 명도 1학년 때 경준과 어울리며 몇 번 같이 어울린 적이 있기 때문에 모르는 사이는 아니었다. 아니 찬승이 아는 선배 중 두 번째, 세 번째로 친하다는 것이 옳으리라. 그만큼 아는 선배가 없다는 소리였다. 찬승은 일행 중 자신이 막내여서 걱정했지만 짐을 드는 것 같은 일이 없어서 좋았다. 펜션을 예약해 두었고 수영복만 가지고 들어가면 된다는 것이다.



‘역시 이래서 돈 많은 선배랑은 친하게 지내야해…. 이게 진짜 여행이지.’



찬승은 너무나도 편안하다 못한 여유로움에 뿌듯함까지 느끼며 8월의 파란 여름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어제 학원에서 미경과의 대화가 떠올랐다.



[와-! 바닷가 가신다고요? 누구랑요?]



[…아 가족들이랑. 2박 3일 갈 거 같아. 그래서 목요일이랑 금요일 수업 못 들어와.]



[아 그렇구나. 어쨌든 좋겠어요.]



그렇게 말하며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던 미경이 떠오른 것이다.



‘푸훗. 미경아 거짓말해서 미안하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놓치면 언제 또 놀겠냐.’



그러다 찬승은 자신이 그녀에게 거짓말한 것에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내가 왜 거기서 걔한테 거짓말 했지?’



갑자기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냥 선배랑 간다고 하면 되는 것인데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하고만 것이다. 찬승은 곰곰이 생각해보았지만 딱히 마땅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에이 모르겠다. 그냥 거짓말 했나보지 뭐.’



편하게 자세를 고쳐 앉으며 신경을 끄는 찬승이었다.



*



아침 일찍 출발해 몇 시간을 달려 펜션에 도착하자 한창 해가 뜨거운 오후 시간이었다. 경준이 예약한 펜션은 너무나도 고급스러워서 펜션이라기보다는 별장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찬승이 놀란 것은 점심식사가 준비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역시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구나….’



새삼 돈의 위력에 놀라며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수영복을 챙겨 입은 뒤 바닷가로 향했다.



“우와-!”



역시 8월의 여름이었다. 동해의 해수욕장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찬승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역시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이었다. 아슬아슬하게 끈으로만 묶여진 원색의 섹시한 비키니부터 파스텔톤의 레이스로 중요부위를 가리는 청순한 스타일의 비키니까지 가지각색의 수영복을 입은 여자들이 뜨거운 8월의 태양을 느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찬승아 입 다물어라.”



경준이 웃으며 말하자 찬승도 멋쩍게 웃으며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남자 네 명은 바다에 들어가 놀기 시작했다. 물 반, 사람 반이라 제대로 놀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리를 잡고 놀기 시작했다. 그 때 경준이 어딘가를 쳐다보더니 그쪽으로 가기 시작했다. 한창 놀던 찬승이 바라보자 선배는 네 명의 여자가 놀고 있는 곳으로 다가간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여유롭게 얘기하더니 단 번에 여자들이 웃으며 경준을 따라왔다. 그런 선배의 모습에 찬승은 입을 쩌억 벌렸다.



‘마, 말도 안 돼. 저렇게 여유롭게 얘기하고 여유롭게 꼬시다니. 역시 선배는 무언가 다르다!’



찬승은 몸도 좋고 얼굴도 핸섬하고 재력까지 갖춘 경준에게 존경하는 마음이 일며, 선배를 따라온 여자들을 바라보았다.

뽀얗고 새하얀 피부들. 나름 섹시한 비키니를 차려 입었지만 어딘가 너무나도 앳되어 보이는….



‘고, 고등학생 아니야?’



“어이. 얘네 들이랑 같이 놀자.”



99학번 선배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지만 찬승은 얼떨떨해 있었다. 아무리 봐도 고등학생들인데 같이 놀아도 되는 건가…. 찬승이 멍해 있자 경준이 다가와 웃으며 속삭였다.



“야. 너 쟤네 고등학생처럼 보여서 그러지?”



“예? 예….”



“맞아. 쟤네 고등학생이야. 서울에서 왔데.”



“예? 그, 그럼…?”



찬승이 놀라 묻자 경준이 뭐 어떠냐는 듯 다시 한 번 웃는다.



“야 어리면 더 좋지. 어쨌든 오늘은 얘네랑 놀 거다. 기대해라.”



경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옆에 있던 여고생을 번쩍 들어 물에 빠뜨린다. 뒤에서 껴안아 경준의 팔에 여고생의 가슴이 닿았음에도 불구하고 여고생은 뭐가 좋은지 꺄아꺄아거리며 순순히 물에 빠진다. 00학번 선배 두 명도 여고생들을 물에 빠뜨리면서 접촉을 하고 튜브에 올려준다며 엉덩이의 맨살을 잡아 밀어대는 등 스킨십을 시도했다.

찬승은 그 놀라운 광경에 입을 벌리다 자기도 슬금슬금 다가가 튜브에 올라가는 여고생의 엉덩이를 밀었다. 뽀얀 엉덩이의 피부가 물에 젖어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느낌….



‘…좋긴 좋구나.’



이제 찬승도 적극적으로 여고생들과 놀기 시작했다. 입에 함박웃음을 지으며….



*



“진짜 온데요?”



저녁이 되고 펜션에서 술자리를 만들던 찬승이 경준에게 물었다.



“응. 놀러온다고 했어. 조금 있으면 올 거야.”



경준의 아무렇지도 않은 대답에 찬승은 그저 묵묵히 술자리를 만들 뿐이었다. 여고생 4명이 놀러온다는데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그러나 너무나도 쉽게 여자를 꼬시고 불러오는 선배의 능력에 감탄할 뿐이었다. 게다가 지금 선배가 꺼내는 술을 보니 녹색 병이 아니었다. 소주가 아니라 고급 양주들만 줄줄이 나오고 있었다. 양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찬승도 척보기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양주들이었다.

그때 조용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경준이 재빨리 뛰어가 문을 열자 4명의 여고생이 요란스럽게 인사를 하며 들어온다. 찬승도 슬쩍 웃으며 인사를 하고는 그녀들을 살피다 입을 쩍 벌렸다. 하나 같이 핫팬츠에 끈나시를 입고 있어 수영복을 입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여고생은 뭐가 그리 발육이 좋은지 하나 같이 큰 키에 가슴이 꽤 컸다.



‘요즘 여고생들은 원래 이런가….’



어쨌든 보기 싫은, 아니 매우 보기 좋은 광경이기에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술자리가 시작되었는데 여고생들은 양주를 홀짝홀짝 잘도 마신다. 찬승은 1학년 때 경준 선배를 따라 한 번 먹어보긴 했지만 그 뒤 먹어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소주의 갑절은 쓴 양주를 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남자와 여자가 섞어 앉았는데, 찬승의 옆엔 긴 머리를 가볍게 묶은 예쁘장한 여고생이 앉아 있었다. 흘깃흘깃 몰래 훔쳐보니 뽀얀 가슴골이 살짝 보이는 것이 낮에 바닷가에서 실컷 봤던 거와는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찬승은 자신의 옆에 앉은 여고생에게 무언가 물어보려다 아영과의 나이트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어차피 이런 자리에서 서로의 이름이나 나이를 물어보는 것은 실례이다. 그럼 무언가 대화를 이어나가려면 요즘 여고생들이 공감할 만한 것에 대해 물어보기로 했다.

잠시간을 고민하던 찬승이 옆에 여고생에게 물었다.



“너 혹시 싸이 하냐?”



그러자 여고생의 눈이 동그래지면서 크게 웃는다.



“푸하핫. 얘들아 이 오빠가 나한테 뭐라고 물었는지 알아?”



“왜? 왜? 뭐래?”



“나보고 싸이하냬.”



그러자 여고생들이 왁자지껄 웃음을 터트린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선배들이 찬승을 노려봤다. 그러나 찬승은 자신이 무얼 잘못했는지 모르기에 겸연쩍게 같이 웃을 뿐이었다.

한참을 웃던 여고생이 눈물까지 닦으며 찬승에게 입을 열었다.



“하하…. 아휴 배야. 근데 그건 왜 물어요?”



“아니 요즘 학생들은 싸이가 최고의 화제 아니야? 뉴스에도 나오던데….”



얼마 전 뉴스에서 본 기억을 되살려 말하자 여고생이 또다시 웃음을 터트린다.



“푸하핫. 아 오빠 너무 웃겨요. 하하. 자 술 마셔요 우리.”



다시 크게 웃고 난 여고생은 생긋 눈웃음을 지으며 찬승과 건배를 하고 술을 들이킨다. 찬승도 술을 마시고는 크게 웃으며 얘기했다. 무엇이 웃긴지 몰랐지만 여고생이 웃으니 자신도 같이 따라 웃어 분위기를 맞춰야 했다.



“하하하. 그렇지. 농담이야 농담. 하하하.



“아하하.”



또 다시 웃는 여고생. 그리고 또 다시 양주를 따라 마시는 둘. 어느 정도 술이 들어가자 대담해진 찬승은 슬쩍 여고생의 어깨를 감싼다. 그러나 전혀 거부하지 않은 여고생. 게다가 둘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화기애애했다.

연신 웃는 두 사람.



“하하하!”



“아하하!”







“헉…!”



갑자기 눈을 뜬 찬승은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에 살짝 눈을 찡그려야 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주위를 둘러보니 99학번 선배 두 명이 이리저리 뒹굴고 있었고, 양주병과 먹을거리가 이리저리 어질러져 있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여고생들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찬승은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고생을 옆에 끼고 크게 웃으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분위기가 너무나도 좋아 은근슬쩍 어깨에 손을 올려놓는데 까지 성공하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침이 되어버린 것이다.

찬승이 멍하니 앉아있을 때 화장실 문이 열리며 씻고 나온듯한 경준의 모습이 나타났다.



“어이 김찬승이 일어났냐.”



“어, 어떻게 된 거죠?”



“뭐가 어떻게 되긴…. 너 무슨 술을 그리 못 마시냐. 양주 조금 먹고 취해서 혼자 깔깔거리다 쓰러져 잠들고…. 옆에 앉아 있던 여자애가 황당해서 쳐다보더라.”



그러자 찬승은 모든 상황이 이해가 갔다. 어제 실컷 웃는 도중에 필름이 끊겨버린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이런 일이!’



찬승은 좌절감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큰 기대는 안했어도 조금은 여고생과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하고 내심 기대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데 이런 기회를 놓쳐버린 것이다. 그러다 문득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경준선배에게 생각이 미쳤다.



“서, 선배. 이런 질문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경준과 이런 얘기를 자연스럽게 해본 적이 없기에 조심스레 입을 여는 찬승에게 무슨 질문인지 알아챈 경준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그러자 찬승은 놀라움에 입을 벌렸다.



“세, 세 번….”



“아니 세 명.”



“헉…!”



찬승은 너무나도 놀랐다. 여고생 세 명과…. 찬승은 더 물어보려다 이런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해도 되나 생각해보았지만 어차피 바닷가에 그럴 목적으로 놀러온 것이고 남자들끼리의 얘기에 빼는 성격은 아니었기에 과감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그, 그럼 한꺼번에?”



“미쳤냐. 무슨 포르노 찍냐? 아무리 까진 여고생이라도 그런 짓은 안 해 인마. 저쪽 방에서 한 명씩 했지. 나머지 한 명은 완전 취해서 뻗어서 못했고…. 걔네 새벽까지 여기서 자다 갔어.”



“그럼 저기 용찬선배랑 진호선배도 못 했겠네요?”



“그렇지. 쟤네도 너 뻗고 얼마 안 있어서 뻗었다. 야 인마 그래도 난 너 좋은 경험 시켜주려고 한 건데 으이구…. 오늘 바닷가 나가서 내가 다른 애들 또 꼬셔올 테니까 오늘 밤은 성공해라. 마지막 밤이니까.”



실망하고 있던 찬승은 경준의 말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오늘은 기필코 성공하리라 마음먹고 씻으러 들어갔다.



*



어제와 마찬가지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8월의 바닷가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여자들만을 둘러보는 찬승은 오늘은 성공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서 있는 자세부터 달랐다.

바닷가에서 놀고 있던 도중 어디론가 사라진 경준이 또 다시 4명의 여자무리를 데리고 왔다. 찬승은 그런 선배의 기막힌 능력에 또 다시 감탄하며 여자들을 살폈다. 역시 자신들보다 어려보이긴 했지만 고등학생 같은 어설픔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수영복도 심한 노출의 비키니가 아닌 레이스가 달린 종류의 노출도가 적은 비키니들만 입고 있었다.

찬승이 정신없이 여자들을 바라보고 있자 경준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야 얘네 들은 수원에서 온 대학생들이니까 어제 여고생처럼 놀면 안 돼. 알았지? 함부로 스킨십하지 말고….”



“예, 예….”



상대 여자에 따라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코치까지 해준 경준을 다시 한 번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찬승이었다.



결국 찬승 일행과 여자들은 비치볼을 가지고 놀기로 했다. 여대생들도 찬승 일행이 싫지 않은지 연신 꺅꺅거리며 비치볼을 가지고 놀았다. 찬승도 입을 헤벌쭉 벌리고 그녀들과 놀던 도중 한 여자애에게 유독 눈길이 갔다. 하늘색의 레이스가 달린 비키니를 입었는데 질끈 묶은 긴 머리를 휘날리며 맑게 웃으며 노는 모습이 너무나도 청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눈길이 가는 것은 그녀의 가슴이었다. 비키니가 가슴 쪽에도 레이스가 달려 있어 정확한 윤곽은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전체적인 크기가 정말 컸다. 몸매는 말랐는데 가슴 크기는 여동생인 서희보다도 큰 거 같았다.

그녀가 폴짝 폴짝 뛰며 비치볼을 잡을 때마다 위아래로 크게 출렁이는 가슴을 훔쳐보던 찬승은 마음속으로 오늘밤 거사를 치른다면 그녀와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다.



*



저녁이 되어 오늘 역시 술자리를 만들던 찬승은 또 다시 줄줄이 나오는 양주에 경악해야 했다. 하지만 곧 들려온 경준의 말에 안심할 수 있었다.



“걱정마라. 오늘은 술 적당히 마시고 일을 치를 테니까.”



그 말을 들은 찬승은 문득 선배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생겼다.



“저, 저기요!”



찬승이 갑자기 크게 외치자 세 명의 선배가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잠시간을 우물쭈물하던 찬승은 천천히 입을 열렸다.



“부탁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습니까?”



“뭔데?”



“그 있잖아요…. 오늘 여자애들 중에 레이스달린 하늘색 수영복 입은 여자애…. 저 걔랑…. 아니!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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