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 18부
-바람소리-
제 18 부 : 퍼즐의 대화
슈 형제들의 대화에서 튀어 나온 상록수라는 단어에 민기는 긴장했다.
‘상록수는 뭐여?’
‘말허자면 길져….’
‘일슈야! 입조심 해라!’
‘알았수, 알았어…..어차피 여차직 하면, 다 알게 될 일인데, 형은 괜시리….’
또다시 입단속을 시키는 삼슈의 엄한 목소리….
‘강선생 잘 들으쇼. 상록수는 잘못 건드려서는 안되는 부류라는 걸 알아두어야 하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우리도 몇 번이나 정면으로 마주치는 걸 피해 왔고, 어쩔 수 없을 때는 서로가 점잖게 물러나는 불문율을 지켜온 사이라오.’
‘그럼 그들도 당신들 같은 프리랜서?’
‘그렇기야 하다믄야, 바로 쳐서 거꾸러 트리지, 이렇게 뜸을 들일 이유는 없져. 삼슈 형이 걱정하는 건, 그들은 언제나 여러모로 빠져나갈 구멍들을 마련해 놓고 있는 반면에, 우리 같은 쪽수는 몰리기 시작하면, 도망갈 틈이 없다는 거져. 갸들은 조직이 엄청 나거덩여.’
‘아니, 그럼 조폭? 그렇다면 검찰에서도 여차직하면, 그런 치들이야 쓸어버리거나, 두목만 잡아들이면 와르르 일텐데…..’
‘그러니, 보통 사람 소릴 듣지….쯧쯧….어디 검찰이 알고나 있대여? 내참 답답해서리….삼슈형, 이리 된 바에야 얘기나 해주어도 별 상관은 없잖수?’
‘그렇긴 하지. 강선생이 상대할 건 아니니….’
일슈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도 이 바닥에서 내노라 하는 강세로 이름을 날리고는 있었어도, 물 위에 떠오른 적은 없다고 했다.
‘조폭? 무신 양재기파, 곰돌이파…이런 거 이름 부르고, 위로 누굴 모시고 있네, 촌수니, 항렬이니 따지는 거, 다 아랫것들 이야기란 거 아세여? 상록수 애들은 그런 거 예전에 졸업한 애들이에여. 그러니, 잡혀 들어갈 일이 없져. 다만 잡혀들어가는 것들은 대가리도 없고, 밑도 끝도 없이, 몸으로만 벌어먹는, 이른바, 깜장 양복에 깍뚜기 대가리들 뿐이에여.’
‘근데 이름이 왜 상록수야? 난 맨 첨에 그 이름, 무슨 사회 봉사나, 자선 단체 이름인줄 알았네.’
‘자선 단체는 단체져. 나쁜 짓 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들 한테, 자선을 베푸는 게 탈이라서 그렇지……상록수는 꽤 역사가 있어여. 정치 깡패라고 아시져?’
‘응, 516 군사정치 시절에 이름 날렸던 거 아닌감?’
‘어느 바닥이나 권력에 야합하고, 그 단물을 빨아자신 것들은 그 향수에 톡톡히 젖어 사는 게 인지상정이져. 말이 사회악을 뿌리뽑았다 치지만, 그 자들이 권력의 맛을 한번 보고, 맘을 접었을리는 만무하고,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주기를 고대하는 건, 정부만의 작은 소망일 뿐이져. 그들이 모여서 만든 게 상록수 에여.
그들은 권력을 쥔 자들 가운데, 먼저 부패하는 쓰레기나 시체에 들러붙는 하이에나 혹은 똥파리 같은 조직으로 첨에는 출발했져. 대개 권력을 형성하는 와중에는, 그 주체세력들 중에 뒷 일을 책임지고, 그 댓가로 신분이 상승하는 인물이 꼭 하나씩 있게 마련이거덩여? 예를 들자면, 선거 시에 경쟁 후보의 유세장을 개판을 만든다든가, 있지도 않은 유권자들에 대한 선심 공세를 경쟁 당의 은밀한 뒷걸음질로 지어서 만드는 작태랄지…그렇게 뒤에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공작을 책임져 주는 일들을 했어여. 도청, 감청, 녹취, 게다가 대빵으로 부상할 여지가 있는 싹을 초장에 자른다는 일념으로, 수도없이 덫을 놓은 채, 들이대는 모종의 미인계……그건 내놓고 시중에 발설은 못해도, 스스로 무릎을 꿇고, 돌아서게 만드는 일격이 되기도 해여. 왜 저 사람이 스스로 대권을 포기 했을까 싶은 때 있져?
그 뿐인줄 아세여? 지만 잘 하면 뭐 하겠어여? 집에는 돈에 눈이 벌게 있는 마누라 하며, 거드름에다, 요리조리 빠질 궁리만 하는 토끼같은 자식 새끼들이 있는데…..한 두번이야, 우린 그런 사람 아니넹 허면서 사과상자 물리기야 허겠져. 수표도 아니고, 일련번호도 틀린 헌돈으로만 담긴 사과장사, 한번 받아본 여편네들……금새 맛이 간다구여……
게다가 기집년은 몰라도, 사지육신 멀쩡한 사내 새끼들, 그정도 살아재끼는 지경이면 젤루 피하고 싶은 똥덩어리, 뭔지 아시져? 군대에여. 맨 첨에야, 군의관 누구를 잘 아네, 신체검사 등급 조정해줄 끝발이 있네, 가라로 진단서 심각허게 끊어 줄 수 있네 하면서 접근하기도 해여. 의사 양반이니 잘 아실 거 같은뎅…..그리고 나서 그 발목을 붙들었다 싶으면, 결정적 순간에 팍 까발기는 거져. 멀쩡한 사지 육신을 빙신 만들어 죽 때리는 이유가 무언고 하면서 기자들에게 실실 이바구를 흘리는 거, 이거 다 갸들이 도맡아 하던 짓들이에여. 권력은 그들에게 은밀한 거래를 위해 썩은 돈과 함께, 면죄부를 쥐어 주고, 그들은 충실한 하인이 되어,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어하는 그런 부류들을 위해, 눈에 띄는 것들은 죄다 물어 대는 거져.’
일슈의 설명에 삼슈가 덧붙였다.
‘상록수는 아주 거대한 조직이면서, 권력의 과외교습을 아주 오랜동안 받은 착한 시녀이자, 학생이져. 정부가 겉으로 불법적이고, 더럽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도맡아 할 수 있도록, 정부는 일부러 빈틈을 허락하는 눈맞춤을 오랜동안 서로가 신호를 짜 맞추면서 해 왔고, 그에 대한 신뢰와 충성의 가교에 금이 가지 않도록,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방책을 짜내려고 갖은 방법을 구상했었고 말이져. 권력의 핵심이든, 상록수의 측근이건 간에, 그 주변 근처에는 얼씬 할 수 없도록, 시나리오에 충실한 희생양 만들기는 그들의 기본 메뉴였고, 그렇게 등짐을 지고, 만인의 시선속에 죽일 놈이라는 지탄을 진채, 사라져 가는, 본의 아닌 희생양들의 뒤까지 의리있게 보아주는 것 하며, 그 어떤 하부조직도 당장 두목의 모가지는 갖다 바칠 지언정, 상록수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있을 수도 없다는 종교적 맹신을 심기 까지, 그들은 너무도 차근차근 일들을 처리해 온거유. 그들의 또 한가지 위대한 힘은 재투자의 효과를 알고 있다는 것이외다. 망하는 장사치는 현재의 벌이에 안주하기에, 주판알을 튕길 쭐만 알았지, 컴터를 들여다 재무분석을 할 생각은 엄두도 못내는 반면에, 상록수는 미래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에 몸바쳐 살아대는 것처럼, 자신의 주변에 내노라 하는 브레인들을 촘촘하게 배치하고, 더욱 높은 고단위 처방에 만족하려고, 거부감 없이 수중으로 굴러 들어오는 돈들을 퍼 붓는다 이거외다. 아시겠수?’
‘그럼 상록수를 파헤친 건 아무도 없었나?’
민기의 질문에 일슈가 말을 다시 받았다.
‘없긴 왜 없어여? 번번히 누군가 깃발들고 파헤치려고 하면, 꼬질대 나가니라, 조심 허거라 하면서 어디선가 산신령이 좇나게 포다구 잡으면서 툭 튀어 나오거덩여? 그러다 보면, 방송에 곧잘 나오잖어여? 맨 첨에는 눈에 후까시 팍 주면서,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마지막 하나까지 발본색원해서 조사하고 밝혀 내겠다고 하다가니, 수사는 하지도 않고, 더 이상의 관련자는 없고, 소발에 쥐잡기 식으로 걸려든 엉뚱한 꼬리만 흔들면서, 이게 그 원흉이셈 하면서 드라마 조기종영 이라넹 하는 것들……이젠 너무 봐서 질려여, 질려…..
누구는 또 그러잖어여? 황성그룹 같은 거대 회사,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옆구리나 푹푹 찔러댔지, 절대 무너뜨리지 못한 다구여. 그 밑에 딸린 식구들이 한방에 회사가 무너지고 나면, 대한민국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이 되는지 알기나 하냐구여. 아니, 누가 그런 거 계산이나 해 봤대여? 그리고, 잘못한 쉐이들이 잡혀들어 가야지, 죄없이 몸팔아 머슴살이 하는, 직원들이 왜 피해를 보느냐 이거져.
권력의 주체는 그걸 교묘히, 철저히, 에부리띵 악용하고 있는 거에여. 너그들의 뒤를 우리가 봐주셈 하면서, 준조세 자금, 때마다 철마다 걷어 들이고, 그것도 모자라, 다음 권력의 핵심한테 선심포 한번 디지게 쏘아주렴 허면서, 때가 왔다 싶으면, 무늬만 부정한 관련자를 잡아 들이네, 누구를 불러다 족치네 하잖아여? 그러다 보니, 그들도 살아 남으려고, 번돈 족족 갖다 받치고, 그 구녕 메꿀라면, 장부 조작해서 탈세 헐 수 밖에 없고, 부실공사는 기본에, 부정 담합 입찰은 기본 식단이고, 그러다 보니, 그 부담은 결국 그 권력을 아무 생각 없이 뽑아준 민초들의 지갑으로 파고 들어가 쏙쏙 긁어 내오져. 그래서 돌고 돌아 돈이라 허는 지도 모르지만…..’
‘그럼, 상록수는 정부, 재계, 정치계 어디고 줄이 닿질 않는 곳이 없단 얘긴가?’
‘이를테면 그렇져. 다 같이 잘 살자고 허는 이 마당극에 왜 너만 가면 벗고 설치냐라고 하면, 지 스스로 깨갱하면서 찌그러 지는 거져. 한 두놈을 잡아들여 해결날 일이 아니라구여. 우리야 어디에 손 벌릴 곳이 마땅칠 않아서, 이 지경 이지만, 갸들은 달라여. 급할때 찾아들 전화도 필요 없어여. 우리가 신문, 방송, 인터넷으로 누가 사정의 칼날을 맞았네, 누가 결국 떼잡혀 들어갔네….다 개수작 이에여. 이미 각본대로 흘러가는 드라마 보면서, 울고 웃는 건 우리들만의 몫이란 거 아실랑가 모르겄네. 그 와중에 겉으로 이름 한자 드러나지도 않은 몸통은 유유히 깃털이나 흘리면서, 난 아직도 멀쩡허니 잘 살고 있넹 하며, 또다시 사과박스 돌리기 바쁜 거져. 그런 악순환, 아직까지도 멈추지 않고 굴러가는 수레바퀴 란거, 아실 나이쯤은 된 거 같은뎅…..’
’그걸 어떤 사람들은 역사라고들 허지…근데, 어째서 상록수가 이 일과 관련 됐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건….’
‘일슈야! 거기까지…..그 얘기는 내가 해 드리리다.’
묵묵히 얘기를 듣고 있던 삼슈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 날의 일 때문입져. 나이 37세, 성명 윤미혜, 직업 무직….누군지 아시겠수? 아마도 지금은 누구도 관심을 끊은지 오랠 거여. 강선생이 튀어 나오던 그 밤, 아파트에서 밖으로 내 던져진 그 여자 말이우?’
‘아니, 그 여자는 윤서 때문에 얼결에 죽은 거라고 알고 있는데….아닌가?’
‘겉으로야 그렇져. 우리는 그 여자의 뒷조사를 먼저 하기 시작했수. 상록수가 아닌 담에야, 그런 살수들이 사람을 몰라보고, 아무리 댁의 대문을 계획에도 없이, 색을 달리 칠했다기로서니, 몰라볼 또라이들을 보내진 않거던여. 그 날, 그 자들은 그 여자와 사모님을 같이 해치기로 하고서 달겨들어 간거, 모르시고 계셨져?’
‘엥? 그럴 리가…..’
‘혹시 임금님 수라상이라고 들어봤수?’
‘거 대장금이란 드라마에서 수태 봤지.’
‘그럼, 그 많은 음식들이 올라가는 수라상에서 임금이 껠짝대고 남은 음식들은 다 어디로 가는지, 드라마에 나옵디까?’
‘아니, 그건…..’
‘임금이 먹다 남긴 것은 이른바 궁궐의 아가리들을 타고 돌림빵이 되어, 하나도 남김없이 없어진다는 거 모르셨수?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던 음식은 개 한테도 안 준다는 거 모르셨져? 그 윤미혜가 바로 권력의 핵심에게 진상되었던 수라상의 반찬 이었다우. 지금에야. 나이가 들고,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치들의 돌림빵으로 전락되어, 떨구어지는 돈푼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었지만, 날렸던 봉지였습져. 대개 그렇게 진상되려면, 처녀막 유무에다, 성병 검사는 기본이구, 학벌, 가문, 용모까지 샅샅이 검사하게 되 있져. 그 여자가 그렇게 아무런 벌이도 없이, 그렇게 오래도록 부티까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명기의 품질로 인해 돌림빵으로 돌아가던 누군가가 꿰차고 있었다는 게요. 그녀의 입을 통해, 어떤 사실들이 옆집에서 아무런 사심없이 왕래하던 강선생의 와이프의 귀에 들어가고, 무언가를 캐내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눈치챈 그 자가 상록수를 통해 깃발을 올리고, 두 여자의 동시처형을 원했던 거라고 생각되는 거져. 그녀의 검시 보고서를 우리가 비밀리에 빼 보았는데, 묘하게도 추락에 의한 사망원인에다, 특이하게도 내장이 모두 산산히 파열되어 죽었다 하대여.’
‘배로 떨어졌다면, 그럴 수도 있질 않을까?.....아니, 가만…그게 아니쥐?’
민기는 그 날 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미 죽은 상태로 낙하하고 있었기에, 몸의 부위별 무게 중에서 가장 무겁다던 머리가, 자연낙하 상태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었고, 낙하의 충격으로 두개골이 쇄골을 부러뜨리면서 흉골을 밀어제끼며 흉부안으로 말려 들어간 형상 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횡경막이 찢어지면서 폐가 아래로 밀려 들면서 압박되어, 내장기관이 찌그러지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그렇듯 산산히 파열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의사 양반이라 대번에 가늠이 되실 거유. 그들은 이미 그녀의 복부를 멋진 가격으로 거꾸러 트려 실신하게 만든 상태에서, 아래로 떨구었단 말이 되져. 그렇게 되면, 나중에라도 사인이 추락에 의한 내장기관 손상, 혹은 파열 내지는 복합골절에 의한 쇼크사 정도로 마무리 되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자의 소행 이란 거져.’
‘그럼 어떻게 때려야, 외상이 없이 장이 파열됩니까?’
‘그건 고문치사가 유행하던 시절에 나돌던 비깁니다요. 전화 번호부책 아시져? 사람을 벽의코너에 옴짝달싹 하질 못하게 꾸겨넣은 상태에서, 복부에 그 전화 번호부 책을 대고, 엄청난 내공으로 펀치를 날리면, 그 충격이 뱃속을 뚫고, 양쪽에 맞닿아 있는 벽을 튕겨 나와, 다시금 내장을 아예 곯게 만들져. 예전에야, 고문의 성격이 짙었으니, 힘을 조절해서 조사가 끝나고 외부로 방면 되더라도, 겉으로 멍자죽 하나 들지 않게, 내장을 허벌나게 만드는 수준에서 멈추었지만, 이번 것은 다르져. 아주 맨 첨부터 죽이려고, 후려친 덕에 여자는 깩 소리 한번 못지르고, 내장이 그 살수의 일격에 터져, 즉사한 겁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외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럴때 사전에 있을 수 있는 임신의 가능성 때문 이기도 하져. 죽이는 마당에 한꺼번에 뒤져라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의 뒷처리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오, 이제 이해가 가쇼?’
‘그럼, 그 여자도, 윤서도 그 밤, 죽임을 당하게끔 되어 있었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져. 검찰에서 수사방향을 그렇듯 빠르게 강선생의 치정과 내연의 관계 어쩌구로 엮어내는 것에 우리는 의심의 화살을 둔거요. 이건 누군가 죽은 그녀에 대한 냄새를 맡기전에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기본 암송구절이기 때문이오. 그렇게 해야만, 도주한 사모님을 쫓는 것과 강선생을 잡아들여, 소문이 번져나가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수사의 명분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그들 특유의 양동작전 이었던 게지요. 그래서, 우리가 의문스러운 것은 과연 어떤 것이 그녀의 입을 통해, 사모님의 의구심을 자극했는지, 그로인해 무엇을 알아내어 손에 쥐었는지가 궁금한 거외다.
‘삼슈야,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
‘누님 뭐요? 말허쇼.’
‘여자들끼리는 예의상 첨에 묻진 못해도 가장 궁금한 게 나이거덩? 윤서씨가 가장 처음 그녀와 나눈 대화는 나이 일꺼야. 나이를 묻다가,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수순은 지금 어떻게 이렇게 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일거고, 그 다음은 보나마나, 사이가 돈독해 지면서 남자관계의 호구조사로 넘어갔을 꺼라구. 그 사이에 흘러나온 얘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힘들 이유가 없징!.’
일슈가 받아쳤다.
‘싸모님이 들은 정보는 남자와 얽혀 그녀에게 흘러드는 돈의 모냥새? 역쉬 돈이 문제야.’
‘그렇다면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지.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남자를 밝혀내면 간단 하잖아?’
‘강선생, 내가 누차 얘기 했지 않소? 우리만 그 아파트의 보안 서버에 들어가서 얼굴조작에다, 포멧까정 하고 나오는 거 아니란 말…..우리도 그런 줄 알고, 뒤져 보긴 했는데, 그녀를 만나러 온 사람은 있었으되, 카메라에 찍힌 건 엉뚱한 사람 이었다는 거 이해가 가우? 그 놈들도 허는 짓거리가 우리랑 비까비까 하단 말쌈이우. 아시겄수?’
삼슈의 지적에 의하면, 그녀를 만나기 위해 드나들던 자는, 일반인도 알아볼 수 있는 안면식을 소유한 자라는 결론이 앞서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보긴 했는데, 기억은 나질 않고, 감감하다가 9시 뉴스를 보고서야 그게 앵커였다는 후문처럼, 그 자도 찬찬히 살펴보면 누군지 알 수 있는 사람이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럼, 삼슈는 앞으로 어떡할 작정인데?’
‘우리는 지금부터, 강선생 사모님을 쫓기로 했수. 그게 상록수를 잠재울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외다. 우리가 운 좋게 사모님이 확보한 물건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한번 해볼만한 승부라고 보이고는 있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황성그룹과 상록수, 그리고, 그 죽은 여자를 드나들던 자와의 삼각관계를 밝히는 것에 촛점을 둔다랄까? 암튼 그렇수다….’
‘난 어떻게 하면 되지?’
‘잠자코 방콕이나 허쇼. 몸이나 단련허면서, 여차직하면, 혼자서라도 튈 수 있게시리, 내가 뭘 쫌 가르쳐 줄테니…’
삼슈가 말하는 것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격술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선상님, 저도 한 수 가르쳐 드릴라구 허는데, 머릿속에 의학 지식이 가뜩 차서 내 헛소리가 들어갈 구석이나 있능가 모르겄네…..’
일슈도 민기에게 무언가 가르쳐 줄 게 있다는 눈치였다.
‘난 뭐 허지?’
이슈가 일슈에게 물었다.
‘형은 운전이나 허쇼…내 참……’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희진의 팔이 스르륵 민기의 팔짱에 감겨 왔다.
‘왜?’
‘이렇게 얼마동안 이락두 같이 있을 수 있게 됐잖어? 난 더 바랄 게 없어. 내 생애 가장 기쁘고, 행복한 휴가랄까? 암튼 그래…아! 좋다!’
희진은 현재의 급박한 상황과는 아랑곳 없이 그저, 민기와 조금 이라도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사는 여자처럼, 민기의 눈에 비추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윤서를 무슨 수로 찾으려구? 회사를 쥐도새도 모르게 빠져나갔다구 하던데, 어느 구석부터 뒤져야 찾을런지…..’
‘강선생, 우리라고, 요 쪽수로 버팅겼다고 생각허시면 오산이우. 우리라고 도우미가 없었겠수? 벌써 풀어놓은 애들로부터 입질이 오고 있다는 야그 아뇨?’
‘아니, 그렇게나 빨리?’
‘우리는 항상 쫓는 쪽이 아니라, 토끼는 입장에서 촛점을 맞추는 게, 강점이우. 그 상황에서 걸어 나갔다? 혹은 택시나 버스를 탔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우.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차가 없어진 상황에서 가장 손쉽게 이용하는 교통기관은 다름아닌 전철이라는 얘기 들어보신 적 있을 거유. 괜시리 자기도 모르는 엉뚱한 곳으로 갔다가, 이방인 처럼 허둥대며, 내려서 사람들 이목이나 집중 시킬 바에야. 아는 전철 노선에 올라가 생각을 정리하고, 튀어 볼 수 있다는 판단…바보가 아닌 담에야 못하는 게 빙신이져.’
일슈가 자랑스럽게 지껄였다.
‘그럼, 만일에 윤서와 그 팀장이 우리를 몰라보고, 또 도망이락두 친다면?’
‘아마 그럴 수도 있을거유. 허나, 이미 우리 도우미들의 손에는 내가 핸폰으로 전송한 사진이 들어가 있으니, 그럴 리는 없을 거외다.’
‘사진이라니?’
‘모르셨우? 누님 집에 있을때부텀, 일슈가 우리들과 있는 거, 또 누님이랑 앉아서 얘기허는 거, 계속 찍어댄 거 말이우. 허긴 그 당시 정신이 없으셨겠지. 암튼 그 사진을 아무 소리 없이 보여 주기만 해도, 꼬뚜레 꿴 것마냥 곱게 이리로 오실 테니 걱정 마쇼. 누님에게는 쫌 안된 얘기지만……’
앉아 있던 일슈의 눈가에 고소하다는 듯한 미소가 번지고 있는 것을 민기도 알고 있었다.
‘그럼, 이런 상태로 네 사람이서?, 일이 정리될 때까지 그것도 한 집에서? 오, 마이 갓!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희진이 양손으로 머리를 쥐고 흔들었다. 천국과 지옥 사이를 순식간에 왕복하는 그녀의 심정을 말로 안해도 민기는 알 것도 같았다. 그러나, 어쩔 수는 없었다. 모두 양쪽으로 협공을 당하면서 추적을 당하는 판국에, 자신만이 그리워 하던 사람과 알콩달콩 안전을 보장 받았다고 즐거워 하기에는 너무 못된 구석이 있었기에 말이다.
‘그게 언제쯤인데?’
‘누님, 언제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가장 빠른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넹. 이슈 형에게 데리러오라는 전화만 왔다하면 그게 신호라고 보면 되거덩.’
일슈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럼 난, 난 어쩌라구? 아무리 일이 그렇다 손 쳐도, 내가 당신 남편이랑 그렇고 그런 년입네 하면서 얼굴 맞대고 지내라구? 너희들도 해도 너무헌다….참….’
‘누님, 윤서란 그 여자도 같은 처지 아니우? 지도 바람 피우고 동반 도주한 마당에, 서로 잘났네 허면서 예까지 와서 부부쌈질? 그건 쫌 곤란 허지. 뭐 묻은 게 뭐 묻은 거 탓한다고 설랑, 이쯤에서는 서로 휴전해야 옳은 도리 아니우?’
‘자, 자 그만들 허지? 일슈아, 꼬박꼬박 말대꾸는? 그만 못허니? 우리끼리라도 그러려니 허면서 떨떨 뭉쳐도 될똥, 말똥에 소똥이 한부지긴데, 너까지 나서서 왠 심통? 다들 현실을 직시 허자구. 우리가 어설픈 쌈질이나 하고 있을 때, 상록수 자슥들은 언제 우리 목에 칼을 들이대고, 그동안 잘 놀고 잇었쓰 허면서 느글댈지, 누가 알꺼야?, 안그래?’
그건 맞는 말이었다. 누가 누구 좇대가리에 붙었네, 누가 누구랑 씹빠빠네 하는 얘기는 소재거리도 될 수 없는 한마당 이었다. 서로가 보이질 않는다고 목숨이 열개라도 되는냥, 허우적 대고 있을 따름이지, 문 밖에는 이미 그들의 숨결이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는 삼슈의 경고는 의미가 있는 일침 이었다.
‘그럼, 만일에 윤서까지 이곳에 오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글쎄, 그게 나도…..다행히 사모님께서 그 물증을 소지하고 있다면야, 게임은 쉽게 끝나겠지만, 그걸 얻기 위해 우리가 다시 나서야 한다면, 이곳을 지킬 사람도 없을 뿐더러, 보나마나 상록수는 주변의 정황을 미루어 짐작하면서, 그 무자비한 칼날을 곧바로 뻗쳐 올텐데, 잘못하면, 우리는 객사에다, 댁들은 여기서 모조리 떼죽음을 할지도 모른다 이 말이외다. 그게 가장 큰 걱정이우. 설사 증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공론화 시켜, 서로간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다손 쳐도, 그게 전국방방 곡곡을 떠들썩 하게 만들기 전에 상록수가 막아버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널려 있기에 맘을 놓을 수도 없고….’
‘그들이 그렇게 대단한가?’
‘이제까지 밝혀내지 못했던, 정,재계의 의문사나, 실종, 타살로 주장되는 자살 사건들의 뒤에항상 버티고 있던 자들이 그들 이라면 믿으실 수 있겠수? 게다가 돈쭐 하면 놓치지 않고 챙겨대는 큰 손들의 뒤에도 짱 박혀 있었다면 할 말 다 한 거 아닌감? 어디가 택지로 선정되었다 라는 정부발표 있기전에 이미 그 지역 땅 사들여 꿰차고 앉아 있고, 무슨 조치다 하고 발표 하기전에 돈 다 빼돌려 놓고, 기름값 기습 인상입네 허면서 허풍 떨어 제낄때 도라무 깡으로 기름 사다 꿍쳐 놓고 나서, 배 뚜드리는 치들이 그들이우…….그러니, 우리가 긴장할 수 밖에…..’
‘그럼 우리 손에 그 중거가 잡혔을 때는 삼슈,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글쎄여. 뭐라고 얘기허기 그렇습져. 우리야 이제까지 일이 마무리되면 돈만 챙기고, 잠수타기 바빴으니, 그로 인해 파생될 후속효과에 대한 뒷감당은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리……’
‘형도 뭘 더 생각을 해? 우리야 커튼 콜로 참가한 시범 게임인데, 끝내 목숨 걸 일이 뭐 있데? 이렇게 구해주고, 부부끼리 쫑내기 전에, 상면식이라도 허게 세숫대야 마주보게 해주면 그걸로 다 된거 아닌감? 해도 너무 하는 과다 친절 아니우?’
‘그래도 그게 아니다……넌 누님 생각은 쫌만 치도 않 허냐?’
‘내가 왜? 내가 누님 걱정을 왜 해야 되는데? 나날이 형 시선이 누님이란 년 보지에 가서 쿡쿡 처 박히는 걸 보면서, 내가 왜 걱정을 해야 되는데?’
일슈의 떨리는 음성에 삼슈가 고개를 아예 돌려 버렸다. 방안에 감도는 잠시의 정적은 이제까지 우여곡절 끝에 흘러갔어도, 더 이상 나아갈 곳이 막막한 서로의 심정과도 같았다. 그건 희망을 잃은 채, 사르갓소의 소용돌이로 접어드는 폐선의 뒷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계속-
제 18 부 : 퍼즐의 대화
슈 형제들의 대화에서 튀어 나온 상록수라는 단어에 민기는 긴장했다.
‘상록수는 뭐여?’
‘말허자면 길져….’
‘일슈야! 입조심 해라!’
‘알았수, 알았어…..어차피 여차직 하면, 다 알게 될 일인데, 형은 괜시리….’
또다시 입단속을 시키는 삼슈의 엄한 목소리….
‘강선생 잘 들으쇼. 상록수는 잘못 건드려서는 안되는 부류라는 걸 알아두어야 하오. 선수는 선수를 알아본다고, 우리도 몇 번이나 정면으로 마주치는 걸 피해 왔고, 어쩔 수 없을 때는 서로가 점잖게 물러나는 불문율을 지켜온 사이라오.’
‘그럼 그들도 당신들 같은 프리랜서?’
‘그렇기야 하다믄야, 바로 쳐서 거꾸러 트리지, 이렇게 뜸을 들일 이유는 없져. 삼슈 형이 걱정하는 건, 그들은 언제나 여러모로 빠져나갈 구멍들을 마련해 놓고 있는 반면에, 우리 같은 쪽수는 몰리기 시작하면, 도망갈 틈이 없다는 거져. 갸들은 조직이 엄청 나거덩여.’
‘아니, 그럼 조폭? 그렇다면 검찰에서도 여차직하면, 그런 치들이야 쓸어버리거나, 두목만 잡아들이면 와르르 일텐데…..’
‘그러니, 보통 사람 소릴 듣지….쯧쯧….어디 검찰이 알고나 있대여? 내참 답답해서리….삼슈형, 이리 된 바에야 얘기나 해주어도 별 상관은 없잖수?’
‘그렇긴 하지. 강선생이 상대할 건 아니니….’
일슈의 설명에 의하면, 그들도 이 바닥에서 내노라 하는 강세로 이름을 날리고는 있었어도, 물 위에 떠오른 적은 없다고 했다.
‘조폭? 무신 양재기파, 곰돌이파…이런 거 이름 부르고, 위로 누굴 모시고 있네, 촌수니, 항렬이니 따지는 거, 다 아랫것들 이야기란 거 아세여? 상록수 애들은 그런 거 예전에 졸업한 애들이에여. 그러니, 잡혀 들어갈 일이 없져. 다만 잡혀들어가는 것들은 대가리도 없고, 밑도 끝도 없이, 몸으로만 벌어먹는, 이른바, 깜장 양복에 깍뚜기 대가리들 뿐이에여.’
‘근데 이름이 왜 상록수야? 난 맨 첨에 그 이름, 무슨 사회 봉사나, 자선 단체 이름인줄 알았네.’
‘자선 단체는 단체져. 나쁜 짓 하려고 발버둥 치는 것들 한테, 자선을 베푸는 게 탈이라서 그렇지……상록수는 꽤 역사가 있어여. 정치 깡패라고 아시져?’
‘응, 516 군사정치 시절에 이름 날렸던 거 아닌감?’
‘어느 바닥이나 권력에 야합하고, 그 단물을 빨아자신 것들은 그 향수에 톡톡히 젖어 사는 게 인지상정이져. 말이 사회악을 뿌리뽑았다 치지만, 그 자들이 권력의 맛을 한번 보고, 맘을 접었을리는 만무하고,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주기를 고대하는 건, 정부만의 작은 소망일 뿐이져. 그들이 모여서 만든 게 상록수 에여.
그들은 권력을 쥔 자들 가운데, 먼저 부패하는 쓰레기나 시체에 들러붙는 하이에나 혹은 똥파리 같은 조직으로 첨에는 출발했져. 대개 권력을 형성하는 와중에는, 그 주체세력들 중에 뒷 일을 책임지고, 그 댓가로 신분이 상승하는 인물이 꼭 하나씩 있게 마련이거덩여? 예를 들자면, 선거 시에 경쟁 후보의 유세장을 개판을 만든다든가, 있지도 않은 유권자들에 대한 선심 공세를 경쟁 당의 은밀한 뒷걸음질로 지어서 만드는 작태랄지…그렇게 뒤에서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공작을 책임져 주는 일들을 했어여. 도청, 감청, 녹취, 게다가 대빵으로 부상할 여지가 있는 싹을 초장에 자른다는 일념으로, 수도없이 덫을 놓은 채, 들이대는 모종의 미인계……그건 내놓고 시중에 발설은 못해도, 스스로 무릎을 꿇고, 돌아서게 만드는 일격이 되기도 해여. 왜 저 사람이 스스로 대권을 포기 했을까 싶은 때 있져?
그 뿐인줄 아세여? 지만 잘 하면 뭐 하겠어여? 집에는 돈에 눈이 벌게 있는 마누라 하며, 거드름에다, 요리조리 빠질 궁리만 하는 토끼같은 자식 새끼들이 있는데…..한 두번이야, 우린 그런 사람 아니넹 허면서 사과상자 물리기야 허겠져. 수표도 아니고, 일련번호도 틀린 헌돈으로만 담긴 사과장사, 한번 받아본 여편네들……금새 맛이 간다구여……
게다가 기집년은 몰라도, 사지육신 멀쩡한 사내 새끼들, 그정도 살아재끼는 지경이면 젤루 피하고 싶은 똥덩어리, 뭔지 아시져? 군대에여. 맨 첨에야, 군의관 누구를 잘 아네, 신체검사 등급 조정해줄 끝발이 있네, 가라로 진단서 심각허게 끊어 줄 수 있네 하면서 접근하기도 해여. 의사 양반이니 잘 아실 거 같은뎅…..그리고 나서 그 발목을 붙들었다 싶으면, 결정적 순간에 팍 까발기는 거져. 멀쩡한 사지 육신을 빙신 만들어 죽 때리는 이유가 무언고 하면서 기자들에게 실실 이바구를 흘리는 거, 이거 다 갸들이 도맡아 하던 짓들이에여. 권력은 그들에게 은밀한 거래를 위해 썩은 돈과 함께, 면죄부를 쥐어 주고, 그들은 충실한 하인이 되어, 자기 손에 피 묻히기 싫어하는 그런 부류들을 위해, 눈에 띄는 것들은 죄다 물어 대는 거져.’
일슈의 설명에 삼슈가 덧붙였다.
‘상록수는 아주 거대한 조직이면서, 권력의 과외교습을 아주 오랜동안 받은 착한 시녀이자, 학생이져. 정부가 겉으로 불법적이고, 더럽다고 생각되는 일들을 도맡아 할 수 있도록, 정부는 일부러 빈틈을 허락하는 눈맞춤을 오랜동안 서로가 신호를 짜 맞추면서 해 왔고, 그에 대한 신뢰와 충성의 가교에 금이 가지 않도록, 그들 나름대로 최선의 방책을 짜내려고 갖은 방법을 구상했었고 말이져. 권력의 핵심이든, 상록수의 측근이건 간에, 그 주변 근처에는 얼씬 할 수 없도록, 시나리오에 충실한 희생양 만들기는 그들의 기본 메뉴였고, 그렇게 등짐을 지고, 만인의 시선속에 죽일 놈이라는 지탄을 진채, 사라져 가는, 본의 아닌 희생양들의 뒤까지 의리있게 보아주는 것 하며, 그 어떤 하부조직도 당장 두목의 모가지는 갖다 바칠 지언정, 상록수에게 등을 돌리는 일은 있을 수도 없다는 종교적 맹신을 심기 까지, 그들은 너무도 차근차근 일들을 처리해 온거유. 그들의 또 한가지 위대한 힘은 재투자의 효과를 알고 있다는 것이외다. 망하는 장사치는 현재의 벌이에 안주하기에, 주판알을 튕길 쭐만 알았지, 컴터를 들여다 재무분석을 할 생각은 엄두도 못내는 반면에, 상록수는 미래를 위한 아낌없는 투자에 몸바쳐 살아대는 것처럼, 자신의 주변에 내노라 하는 브레인들을 촘촘하게 배치하고, 더욱 높은 고단위 처방에 만족하려고, 거부감 없이 수중으로 굴러 들어오는 돈들을 퍼 붓는다 이거외다. 아시겠수?’
‘그럼 상록수를 파헤친 건 아무도 없었나?’
민기의 질문에 일슈가 말을 다시 받았다.
‘없긴 왜 없어여? 번번히 누군가 깃발들고 파헤치려고 하면, 꼬질대 나가니라, 조심 허거라 하면서 어디선가 산신령이 좇나게 포다구 잡으면서 툭 튀어 나오거덩여? 그러다 보면, 방송에 곧잘 나오잖어여? 맨 첨에는 눈에 후까시 팍 주면서, 정의사회 구현을 위해, 마지막 하나까지 발본색원해서 조사하고 밝혀 내겠다고 하다가니, 수사는 하지도 않고, 더 이상의 관련자는 없고, 소발에 쥐잡기 식으로 걸려든 엉뚱한 꼬리만 흔들면서, 이게 그 원흉이셈 하면서 드라마 조기종영 이라넹 하는 것들……이젠 너무 봐서 질려여, 질려…..
누구는 또 그러잖어여? 황성그룹 같은 거대 회사, 어떤 잘못을 하더라도, 옆구리나 푹푹 찔러댔지, 절대 무너뜨리지 못한 다구여. 그 밑에 딸린 식구들이 한방에 회사가 무너지고 나면, 대한민국 경제에 얼마나 큰 타격이 되는지 알기나 하냐구여. 아니, 누가 그런 거 계산이나 해 봤대여? 그리고, 잘못한 쉐이들이 잡혀들어 가야지, 죄없이 몸팔아 머슴살이 하는, 직원들이 왜 피해를 보느냐 이거져.
권력의 주체는 그걸 교묘히, 철저히, 에부리띵 악용하고 있는 거에여. 너그들의 뒤를 우리가 봐주셈 하면서, 준조세 자금, 때마다 철마다 걷어 들이고, 그것도 모자라, 다음 권력의 핵심한테 선심포 한번 디지게 쏘아주렴 허면서, 때가 왔다 싶으면, 무늬만 부정한 관련자를 잡아 들이네, 누구를 불러다 족치네 하잖아여? 그러다 보니, 그들도 살아 남으려고, 번돈 족족 갖다 받치고, 그 구녕 메꿀라면, 장부 조작해서 탈세 헐 수 밖에 없고, 부실공사는 기본에, 부정 담합 입찰은 기본 식단이고, 그러다 보니, 그 부담은 결국 그 권력을 아무 생각 없이 뽑아준 민초들의 지갑으로 파고 들어가 쏙쏙 긁어 내오져. 그래서 돌고 돌아 돈이라 허는 지도 모르지만…..’
‘그럼, 상록수는 정부, 재계, 정치계 어디고 줄이 닿질 않는 곳이 없단 얘긴가?’
‘이를테면 그렇져. 다 같이 잘 살자고 허는 이 마당극에 왜 너만 가면 벗고 설치냐라고 하면, 지 스스로 깨갱하면서 찌그러 지는 거져. 한 두놈을 잡아들여 해결날 일이 아니라구여. 우리야 어디에 손 벌릴 곳이 마땅칠 않아서, 이 지경 이지만, 갸들은 달라여. 급할때 찾아들 전화도 필요 없어여. 우리가 신문, 방송, 인터넷으로 누가 사정의 칼날을 맞았네, 누가 결국 떼잡혀 들어갔네….다 개수작 이에여. 이미 각본대로 흘러가는 드라마 보면서, 울고 웃는 건 우리들만의 몫이란 거 아실랑가 모르겄네. 그 와중에 겉으로 이름 한자 드러나지도 않은 몸통은 유유히 깃털이나 흘리면서, 난 아직도 멀쩡허니 잘 살고 있넹 하며, 또다시 사과박스 돌리기 바쁜 거져. 그런 악순환, 아직까지도 멈추지 않고 굴러가는 수레바퀴 란거, 아실 나이쯤은 된 거 같은뎅…..’
’그걸 어떤 사람들은 역사라고들 허지…근데, 어째서 상록수가 이 일과 관련 됐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건….’
‘일슈야! 거기까지…..그 얘기는 내가 해 드리리다.’
묵묵히 얘기를 듣고 있던 삼슈가 입을 열었다.
‘그건 그 날의 일 때문입져. 나이 37세, 성명 윤미혜, 직업 무직….누군지 아시겠수? 아마도 지금은 누구도 관심을 끊은지 오랠 거여. 강선생이 튀어 나오던 그 밤, 아파트에서 밖으로 내 던져진 그 여자 말이우?’
‘아니, 그 여자는 윤서 때문에 얼결에 죽은 거라고 알고 있는데….아닌가?’
‘겉으로야 그렇져. 우리는 그 여자의 뒷조사를 먼저 하기 시작했수. 상록수가 아닌 담에야, 그런 살수들이 사람을 몰라보고, 아무리 댁의 대문을 계획에도 없이, 색을 달리 칠했다기로서니, 몰라볼 또라이들을 보내진 않거던여. 그 날, 그 자들은 그 여자와 사모님을 같이 해치기로 하고서 달겨들어 간거, 모르시고 계셨져?’
‘엥? 그럴 리가…..’
‘혹시 임금님 수라상이라고 들어봤수?’
‘거 대장금이란 드라마에서 수태 봤지.’
‘그럼, 그 많은 음식들이 올라가는 수라상에서 임금이 껠짝대고 남은 음식들은 다 어디로 가는지, 드라마에 나옵디까?’
‘아니, 그건…..’
‘임금이 먹다 남긴 것은 이른바 궁궐의 아가리들을 타고 돌림빵이 되어, 하나도 남김없이 없어진다는 거 모르셨수? 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던 음식은 개 한테도 안 준다는 거 모르셨져? 그 윤미혜가 바로 권력의 핵심에게 진상되었던 수라상의 반찬 이었다우. 지금에야. 나이가 들고, 그 존재를 알고 있는 치들의 돌림빵으로 전락되어, 떨구어지는 돈푼에 감사하면서 살고 있었지만, 날렸던 봉지였습져. 대개 그렇게 진상되려면, 처녀막 유무에다, 성병 검사는 기본이구, 학벌, 가문, 용모까지 샅샅이 검사하게 되 있져. 그 여자가 그렇게 아무런 벌이도 없이, 그렇게 오래도록 부티까면서 살아갈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명기의 품질로 인해 돌림빵으로 돌아가던 누군가가 꿰차고 있었다는 게요. 그녀의 입을 통해, 어떤 사실들이 옆집에서 아무런 사심없이 왕래하던 강선생의 와이프의 귀에 들어가고, 무언가를 캐내기 시작했고, 그 사실을 눈치챈 그 자가 상록수를 통해 깃발을 올리고, 두 여자의 동시처형을 원했던 거라고 생각되는 거져. 그녀의 검시 보고서를 우리가 비밀리에 빼 보았는데, 묘하게도 추락에 의한 사망원인에다, 특이하게도 내장이 모두 산산히 파열되어 죽었다 하대여.’
‘배로 떨어졌다면, 그럴 수도 있질 않을까?.....아니, 가만…그게 아니쥐?’
민기는 그 날 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는 이미 죽은 상태로 낙하하고 있었기에, 몸의 부위별 무게 중에서 가장 무겁다던 머리가, 자연낙하 상태에서 아래로 향하고 있었고, 낙하의 충격으로 두개골이 쇄골을 부러뜨리면서 흉골을 밀어제끼며 흉부안으로 말려 들어간 형상 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랬다면, 횡경막이 찢어지면서 폐가 아래로 밀려 들면서 압박되어, 내장기관이 찌그러지는 것은 있을 수 있어도, 그렇듯 산산히 파열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다.
‘의사 양반이라 대번에 가늠이 되실 거유. 그들은 이미 그녀의 복부를 멋진 가격으로 거꾸러 트려 실신하게 만든 상태에서, 아래로 떨구었단 말이 되져. 그렇게 되면, 나중에라도 사인이 추락에 의한 내장기관 손상, 혹은 파열 내지는 복합골절에 의한 쇼크사 정도로 마무리 되어진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자의 소행 이란 거져.’
‘그럼 어떻게 때려야, 외상이 없이 장이 파열됩니까?’
‘그건 고문치사가 유행하던 시절에 나돌던 비깁니다요. 전화 번호부책 아시져? 사람을 벽의코너에 옴짝달싹 하질 못하게 꾸겨넣은 상태에서, 복부에 그 전화 번호부 책을 대고, 엄청난 내공으로 펀치를 날리면, 그 충격이 뱃속을 뚫고, 양쪽에 맞닿아 있는 벽을 튕겨 나와, 다시금 내장을 아예 곯게 만들져. 예전에야, 고문의 성격이 짙었으니, 힘을 조절해서 조사가 끝나고 외부로 방면 되더라도, 겉으로 멍자죽 하나 들지 않게, 내장을 허벌나게 만드는 수준에서 멈추었지만, 이번 것은 다르져. 아주 맨 첨부터 죽이려고, 후려친 덕에 여자는 깩 소리 한번 못지르고, 내장이 그 살수의 일격에 터져, 즉사한 겁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외상을 없애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럴때 사전에 있을 수 있는 임신의 가능성 때문 이기도 하져. 죽이는 마당에 한꺼번에 뒤져라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놈들의 뒷처리 원칙을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오, 이제 이해가 가쇼?’
‘그럼, 그 여자도, 윤서도 그 밤, 죽임을 당하게끔 되어 있었다는 말 아닙니까?’
‘그렇져. 검찰에서 수사방향을 그렇듯 빠르게 강선생의 치정과 내연의 관계 어쩌구로 엮어내는 것에 우리는 의심의 화살을 둔거요. 이건 누군가 죽은 그녀에 대한 냄새를 맡기전에 희생양을 만들기 위한 그들의 기본 암송구절이기 때문이오. 그렇게 해야만, 도주한 사모님을 쫓는 것과 강선생을 잡아들여, 소문이 번져나가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면서, 수사의 명분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그들 특유의 양동작전 이었던 게지요. 그래서, 우리가 의문스러운 것은 과연 어떤 것이 그녀의 입을 통해, 사모님의 의구심을 자극했는지, 그로인해 무엇을 알아내어 손에 쥐었는지가 궁금한 거외다.
‘삼슈야, 내가 한마디 해도 될까?’
‘누님 뭐요? 말허쇼.’
‘여자들끼리는 예의상 첨에 묻진 못해도 가장 궁금한 게 나이거덩? 윤서씨가 가장 처음 그녀와 나눈 대화는 나이 일꺼야. 나이를 묻다가,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수순은 지금 어떻게 이렇게 살게 되었는가 하는 것일거고, 그 다음은 보나마나, 사이가 돈독해 지면서 남자관계의 호구조사로 넘어갔을 꺼라구. 그 사이에 흘러나온 얘기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우리가 힘들 이유가 없징!.’
일슈가 받아쳤다.
‘싸모님이 들은 정보는 남자와 얽혀 그녀에게 흘러드는 돈의 모냥새? 역쉬 돈이 문제야.’
‘그렇다면 문제는 오히려 간단하지.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남자를 밝혀내면 간단 하잖아?’
‘강선생, 내가 누차 얘기 했지 않소? 우리만 그 아파트의 보안 서버에 들어가서 얼굴조작에다, 포멧까정 하고 나오는 거 아니란 말…..우리도 그런 줄 알고, 뒤져 보긴 했는데, 그녀를 만나러 온 사람은 있었으되, 카메라에 찍힌 건 엉뚱한 사람 이었다는 거 이해가 가우? 그 놈들도 허는 짓거리가 우리랑 비까비까 하단 말쌈이우. 아시겄수?’
삼슈의 지적에 의하면, 그녀를 만나기 위해 드나들던 자는, 일반인도 알아볼 수 있는 안면식을 소유한 자라는 결론이 앞서고 있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보긴 했는데, 기억은 나질 않고, 감감하다가 9시 뉴스를 보고서야 그게 앵커였다는 후문처럼, 그 자도 찬찬히 살펴보면 누군지 알 수 있는 사람이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그럼, 삼슈는 앞으로 어떡할 작정인데?’
‘우리는 지금부터, 강선생 사모님을 쫓기로 했수. 그게 상록수를 잠재울 수 있는 길이란 생각이 들어서 말이외다. 우리가 운 좋게 사모님이 확보한 물건을 손에 쥘 수만 있다면, 한번 해볼만한 승부라고 보이고는 있소. 또 다른 한편으로는 황성그룹과 상록수, 그리고, 그 죽은 여자를 드나들던 자와의 삼각관계를 밝히는 것에 촛점을 둔다랄까? 암튼 그렇수다….’
‘난 어떻게 하면 되지?’
‘잠자코 방콕이나 허쇼. 몸이나 단련허면서, 여차직하면, 혼자서라도 튈 수 있게시리, 내가 뭘 쫌 가르쳐 줄테니…’
삼슈가 말하는 것은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격술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선상님, 저도 한 수 가르쳐 드릴라구 허는데, 머릿속에 의학 지식이 가뜩 차서 내 헛소리가 들어갈 구석이나 있능가 모르겄네…..’
일슈도 민기에게 무언가 가르쳐 줄 게 있다는 눈치였다.
‘난 뭐 허지?’
이슈가 일슈에게 물었다.
‘형은 운전이나 허쇼…내 참……’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희진의 팔이 스르륵 민기의 팔짱에 감겨 왔다.
‘왜?’
‘이렇게 얼마동안 이락두 같이 있을 수 있게 됐잖어? 난 더 바랄 게 없어. 내 생애 가장 기쁘고, 행복한 휴가랄까? 암튼 그래…아! 좋다!’
희진은 현재의 급박한 상황과는 아랑곳 없이 그저, 민기와 조금 이라도 같이 있을 수 있게 되었다는 생각에 매달려 사는 여자처럼, 민기의 눈에 비추고 있었다.
‘그럼, 지금부터 윤서를 무슨 수로 찾으려구? 회사를 쥐도새도 모르게 빠져나갔다구 하던데, 어느 구석부터 뒤져야 찾을런지…..’
‘강선생, 우리라고, 요 쪽수로 버팅겼다고 생각허시면 오산이우. 우리라고 도우미가 없었겠수? 벌써 풀어놓은 애들로부터 입질이 오고 있다는 야그 아뇨?’
‘아니, 그렇게나 빨리?’
‘우리는 항상 쫓는 쪽이 아니라, 토끼는 입장에서 촛점을 맞추는 게, 강점이우. 그 상황에서 걸어 나갔다? 혹은 택시나 버스를 탔다? 그건 아니라고 본다우.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차가 없어진 상황에서 가장 손쉽게 이용하는 교통기관은 다름아닌 전철이라는 얘기 들어보신 적 있을 거유. 괜시리 자기도 모르는 엉뚱한 곳으로 갔다가, 이방인 처럼 허둥대며, 내려서 사람들 이목이나 집중 시킬 바에야. 아는 전철 노선에 올라가 생각을 정리하고, 튀어 볼 수 있다는 판단…바보가 아닌 담에야 못하는 게 빙신이져.’
일슈가 자랑스럽게 지껄였다.
‘그럼, 만일에 윤서와 그 팀장이 우리를 몰라보고, 또 도망이락두 친다면?’
‘아마 그럴 수도 있을거유. 허나, 이미 우리 도우미들의 손에는 내가 핸폰으로 전송한 사진이 들어가 있으니, 그럴 리는 없을 거외다.’
‘사진이라니?’
‘모르셨우? 누님 집에 있을때부텀, 일슈가 우리들과 있는 거, 또 누님이랑 앉아서 얘기허는 거, 계속 찍어댄 거 말이우. 허긴 그 당시 정신이 없으셨겠지. 암튼 그 사진을 아무 소리 없이 보여 주기만 해도, 꼬뚜레 꿴 것마냥 곱게 이리로 오실 테니 걱정 마쇼. 누님에게는 쫌 안된 얘기지만……’
앉아 있던 일슈의 눈가에 고소하다는 듯한 미소가 번지고 있는 것을 민기도 알고 있었다.
‘그럼, 이런 상태로 네 사람이서?, 일이 정리될 때까지 그것도 한 집에서? 오, 마이 갓! 이건….. 아닌데, 이건 아닌데….’
희진이 양손으로 머리를 쥐고 흔들었다. 천국과 지옥 사이를 순식간에 왕복하는 그녀의 심정을 말로 안해도 민기는 알 것도 같았다. 그러나, 어쩔 수는 없었다. 모두 양쪽으로 협공을 당하면서 추적을 당하는 판국에, 자신만이 그리워 하던 사람과 알콩달콩 안전을 보장 받았다고 즐거워 하기에는 너무 못된 구석이 있었기에 말이다.
‘그게 언제쯤인데?’
‘누님, 언제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가장 빠른 시간이 되지 않을까 싶넹. 이슈 형에게 데리러오라는 전화만 왔다하면 그게 신호라고 보면 되거덩.’
일슈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그럼 난, 난 어쩌라구? 아무리 일이 그렇다 손 쳐도, 내가 당신 남편이랑 그렇고 그런 년입네 하면서 얼굴 맞대고 지내라구? 너희들도 해도 너무헌다….참….’
‘누님, 윤서란 그 여자도 같은 처지 아니우? 지도 바람 피우고 동반 도주한 마당에, 서로 잘났네 허면서 예까지 와서 부부쌈질? 그건 쫌 곤란 허지. 뭐 묻은 게 뭐 묻은 거 탓한다고 설랑, 이쯤에서는 서로 휴전해야 옳은 도리 아니우?’
‘자, 자 그만들 허지? 일슈아, 꼬박꼬박 말대꾸는? 그만 못허니? 우리끼리라도 그러려니 허면서 떨떨 뭉쳐도 될똥, 말똥에 소똥이 한부지긴데, 너까지 나서서 왠 심통? 다들 현실을 직시 허자구. 우리가 어설픈 쌈질이나 하고 있을 때, 상록수 자슥들은 언제 우리 목에 칼을 들이대고, 그동안 잘 놀고 잇었쓰 허면서 느글댈지, 누가 알꺼야?, 안그래?’
그건 맞는 말이었다. 누가 누구 좇대가리에 붙었네, 누가 누구랑 씹빠빠네 하는 얘기는 소재거리도 될 수 없는 한마당 이었다. 서로가 보이질 않는다고 목숨이 열개라도 되는냥, 허우적 대고 있을 따름이지, 문 밖에는 이미 그들의 숨결이 다가와 있는지도 모른다는 삼슈의 경고는 의미가 있는 일침 이었다.
‘그럼, 만일에 윤서까지 이곳에 오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글쎄, 그게 나도…..다행히 사모님께서 그 물증을 소지하고 있다면야, 게임은 쉽게 끝나겠지만, 그걸 얻기 위해 우리가 다시 나서야 한다면, 이곳을 지킬 사람도 없을 뿐더러, 보나마나 상록수는 주변의 정황을 미루어 짐작하면서, 그 무자비한 칼날을 곧바로 뻗쳐 올텐데, 잘못하면, 우리는 객사에다, 댁들은 여기서 모조리 떼죽음을 할지도 모른다 이 말이외다. 그게 가장 큰 걱정이우. 설사 증거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공론화 시켜, 서로간의 결백을 증명할 수 있다손 쳐도, 그게 전국방방 곡곡을 떠들썩 하게 만들기 전에 상록수가 막아버릴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널려 있기에 맘을 놓을 수도 없고….’
‘그들이 그렇게 대단한가?’
‘이제까지 밝혀내지 못했던, 정,재계의 의문사나, 실종, 타살로 주장되는 자살 사건들의 뒤에항상 버티고 있던 자들이 그들 이라면 믿으실 수 있겠수? 게다가 돈쭐 하면 놓치지 않고 챙겨대는 큰 손들의 뒤에도 짱 박혀 있었다면 할 말 다 한 거 아닌감? 어디가 택지로 선정되었다 라는 정부발표 있기전에 이미 그 지역 땅 사들여 꿰차고 앉아 있고, 무슨 조치다 하고 발표 하기전에 돈 다 빼돌려 놓고, 기름값 기습 인상입네 허면서 허풍 떨어 제낄때 도라무 깡으로 기름 사다 꿍쳐 놓고 나서, 배 뚜드리는 치들이 그들이우…….그러니, 우리가 긴장할 수 밖에…..’
‘그럼 우리 손에 그 중거가 잡혔을 때는 삼슈, 자네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글쎄여. 뭐라고 얘기허기 그렇습져. 우리야 이제까지 일이 마무리되면 돈만 챙기고, 잠수타기 바빴으니, 그로 인해 파생될 후속효과에 대한 뒷감당은 생각해 본적이 없어서리……’
‘형도 뭘 더 생각을 해? 우리야 커튼 콜로 참가한 시범 게임인데, 끝내 목숨 걸 일이 뭐 있데? 이렇게 구해주고, 부부끼리 쫑내기 전에, 상면식이라도 허게 세숫대야 마주보게 해주면 그걸로 다 된거 아닌감? 해도 너무 하는 과다 친절 아니우?’
‘그래도 그게 아니다……넌 누님 생각은 쫌만 치도 않 허냐?’
‘내가 왜? 내가 누님 걱정을 왜 해야 되는데? 나날이 형 시선이 누님이란 년 보지에 가서 쿡쿡 처 박히는 걸 보면서, 내가 왜 걱정을 해야 되는데?’
일슈의 떨리는 음성에 삼슈가 고개를 아예 돌려 버렸다. 방안에 감도는 잠시의 정적은 이제까지 우여곡절 끝에 흘러갔어도, 더 이상 나아갈 곳이 막막한 서로의 심정과도 같았다. 그건 희망을 잃은 채, 사르갓소의 소용돌이로 접어드는 폐선의 뒷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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