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운전 - 4부 7장
[ 그렇게도 비가 내리지 않더니
어제 해갈의 단비가 내려 주었다. ]
햇살이 간간히 나뭇잎 사이로 스치듯 들어왔다.
숲이 뒤꿈치를 들어 먼발치로 내어다 보려는 듯
그 사이로 바람이 솔 솔 불어 왔다.
바람은
마치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에 반사된 햇빛을
방해라도 하는듯
마치 이파리를 마구 흔들어 대는것 같다.
햇빛이 강의 잔물결에 부닥치며
그 찬란한 빛을 반사되고 있었다.
숲은
이외에도 이름 모르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간혹 구석 구석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멀리서
사람들 웃는 소리
아이들이 물장난 치면서 떠드는 소리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마치 옆에서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재잘재잘...
강물은 천천히
아이들 옹알옹알 거리는 것처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갑자기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내 사랑하리...시월의 강물을 어쩌고 저쩌고.. 그랬던가?
그녀는 내 다리를 베고 누웠다.
- 어허... 배부르다..
내 목소리 흉내를 내며 낄낄대며 웃었다.
- 혹시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라는 영화 봤어요?
- 그거 왜?
- 오드리헵번 나오는 영화...
- 고등학생때 본것 같은데... 흑백영화...
무슨 명화극장이었나... 주말의 영화 그런거 있잖어.
- 맞어요... 나도 그때 본 기억이 나는데..
어? 근데 지금 몇살이예요?
- 왜 갑자기 나이는 물어?
- 아니 나보다 훨씬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데
내 나이또래 이야기를 하는것 같아서..
- 뭐 훨씬 더 들어 보인다고?
- 아닌가?
- 참나... 눈이 참 안좋으시네... 아줌마!
- 아닌가요?
- 근데 왜 그 영화가 생각났어?
- 아! 그거요?
티파니가 유명한 보석상인가 보석상이 몰려 있는 거리인가?
아무튼 그렇다 치고...
아침을 먹고 거기서 보석을 고르는 여자는 최고로 행복하다...
뭐 그런 느낌으로 영화가 시작했던것 같은데...
- 그건 허연사람들 이야기고...
- 난 이렇게 맛나게 밥을 먹고 숲에서 이렇게 낮잠 한숨 찐하게 때리는거!
- 그래서 오드리헵번보다 안부럽다고?
- 그럼요~~
- 아! 참이슬이 이렇게 맛있는줄 모올라~~쓰~~요!
- 허허.. 이 아줌마 취했네?
- 키키키..아뇨..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그녀는 여전히 내 다리를 베고 누워서 콧노래를 불렀다.
- 소풍을 오길 잘했네....
- 맞어요! 소풍 참 잘왔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밥을 먹으면서 급하게 마신 참이슬 팩소주 두어개에
얼큰하게 취한 모양이었다.
나도 깜박
그렇게 누워서 잠이 들었다.
어럼풋 눈을 떴을때
그녀는 다리를 끌어 안고 강물을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무릎으로 턱을 받친채
흐느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어깨를 조금씩 들썩이고....
간혹 손끝으로 눈 주변을 깨치면서...
그녀는 그렇게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참이나...
왜 그렇게 울고 있었나...
이렇게 즐거운 소풍이라고
어리아이처럼 마냥 즐거워 하더니...
그녀의 등은 활처럼 휘어져 있었다.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돗자리 저쪽 가장자리에 던져 놓았던 담배를 끄집어 당겼다.
- 어머! 일어 났어요?
- 한참 잤나봐..
- 코를 골고 아주 잘 자던데요?
- 코를 골아?
- 네... 새근새근 아주 귀엽게 콜를 골던데..
그녀는 금방 눈물을 지우고 베시시 웃는다.
담배 연기는
바람이 곤히 잠을 자는 듯한 수풀 속에서
가늘게 허리를 놀리면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마치..
어릴적
시골 할아버지댁에
제사지내는 날에...
새벽에 부시시한 얼굴로
깨워 밀어 대청마루로 날 보내시는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들어선 제사장 앞.
큰 아버지는
무어라 무어라...
가는 붓으로 한지에 무어라 적으신것 같았는데..
그 축문을 읽으시고
그리고 창호지 축문을 촛불로 불을 붙여서
땅에 떨어지지 않게 손바닥으로
살짝씩 들어 올리면서 태워 하늘로 올리던 그 모습...
담배 연기는
마치 그처럼 수풀 위로 하늘하늘 올라갔다....
- 담배 참 맛있게 피워요...
- 원래 담배가 맛있어.
- 당신은 참 답배를 맛있게 피우는것 같아요.
남자들 담배 피우는거 보면 마치 스트레스 푸는 것 같고
그냥 뻑뻑 피우는 모습들이 보기 별룬데..
당신은 참 담배피우는 모습이 멋져요...
- 푸후....
- 웃는게 뭐 그래요?
- 아... 아니... 컥!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다 담배연기가 거꾸로 들어갔나부다.
깊은 기침에 멍해졌다.
- 담배 피우다가 사리에 들리기도 해요?
그녀는 내 등뒤로 와서
그 자그마한 주먹을 쥐고 등을 두드린다.
- 아이고.. 아이고..큭!
- 다 죽어 가네....이 아저씨..
겨우 기침을 멈추었다.
그녀는 대 등 뒤에서
가만 날 껴안고 있었다.
- 이렇게 좀 있어봐요...
그녀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나는
내 등뒤의 그녀의 가슴이....조금씩 요동치는걸 느꼈다.
- 이렇게 소풍와 줘서 고마워요...
- 뭘 이런걸... 그럼 매일 올까?
- 아뇨... 자주 오면 재미 없어요... 나중에 겨울에 또 와요..
- 겨울에?
- 겨울에 오면 정말 멋있을것 같아요.
- 그러지... 그래도 다행이네... 철따라 오자고 한해서..
- 어머 그래요?
- 그럼 요번 가을에 한번 더 오죠 뭐~~ 호호호.
그녀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왜 그러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말이라는게 하고 싶을때가 있는 법이다.
수풀을 떠났다.
나이애가라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몇군데 유명한 관광지를 들르기도 하고
기념품 가게에 들러 몇가지 상품을 골라 사기도 하고..
와이너리에 들러 작년 겨울에 담근 와인 한병
그리고 바로 올 봄에 출고한 아이스와인도 한병.
그렇게 사들고 온더레이크에 갔다.
그녀는 계속 깔깔대며 웃었고..
즐겁고 아주 유쾌하게 재잘거렸다.
간혹 내가 빤히 쳐다 보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입술을 내어 주었다.
종종.... 그렇게 나는 그녀의 따듯한 입술과 혀의 느낌을 맛보았다.
그리고 가끔씩 짖궂게
가슴을 만지려 들면...
손등을 꼬집긴 했지만...
그래도 한동안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젖가슴을 만지는 동안
인내심을 갖고 내가 충분히 느끼도록 기다려 주었다.
때론 가는 신음마져 내 귀에 대고 흘려 주었고..
그러다가 내 엉덩이를 툭! 치곤 했었다.
우리는
잘 어울리는 애인처럼...
즐겁게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처럼
그렇게 둘이서
꼭 붙어서 다녔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떠들며 여기 저기 구경하면서 지나는새....
시간은 흘러... 어둑어둑해졌다.
저녁을 서둘러 먹었다.
금요일 밤에는 폭포에서 폭죽을 터트린다.
그걸 보러 가야 한다...
서둘러서 다시 폭포로 향해 차를 몰았다.
폭포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열시가 되자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한발!
방향을 잡으려는듯
아주 길다란 꼬리를 내는 불꽃으로 시작했다.
첫발은 폭포 가운데 있는 자그마한 섬 한 복판을 향해 날아갔다.
이어서 폭죽이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폭죽이 터질때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바람이 화약냄새를
언덕위에 앉은 우리쪽으로 날라다 주었다.
폭포에서 피어오르는 습기가
제법 축축한 봄비처럼 되어 우리쪽으로 날아 왔다.
옷이 조금씩 눅눅해졌다.
시간이 다 됬나부다..
폭죽을 터트리는 빈도가 점차 줄어 들더니
이내 한참 뜸을 들인다.
이제 마지막 한방을 터트리려나...
한참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수십발의 폭죽을 한꺼번에 터트린다.
모든 사람들이 환성과 박수를 터트린다.
이윽고 사람들이 일제히 빠져 나가기 시작한다.
- 왜 울었어?
나는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 그냥요...
- 취미로 우나?
- 누가 취미래요?
- 근데... 왜 울었나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해도 되...
우는게 이상해서 그냥 호기심에... 물어 본거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정말 어렵게 여길 왔어요.
한참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폭포 주변에 불꽃놀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 나가고
썰렁한 모습으로 바뀌어
가로등이
가끔씩 폭포에서 올라오는 물안개가
텅빈 도로위를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모습을 비추고 있을때....
그녀가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 힘들게 결정하고 왔어요.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이애가라 강 너머
불빛이 반짝이는 곳을 응시하며 이야기했다.
- 사실....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 여행?
- 그렇죠... 여행이죠..
- 애들 유학이 아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아이는 두달 코스 어학캠프에 연수차 왔어요.
그녀의 눈에는 금새 액체로 가득찼다.
우리들 뒤에
키 큰 가로등이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희뿌연 불빛을 우리에게 부어대고 있었다.
- 잠시 제가 따라 온거죠...
그녀는 눈물을 깨쳤다.
- 아....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다리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흐느꼈다.
무슨 말이 따로 할 필요가 없을것 같았다.
무슨 사연인지도 모르고...
그냥..
저렇게 서럽게 우는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만...
손을 뻗어 등을 매만져 주는 일..
그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한참을 그녀는 다리사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더니
마침내 얼굴을 들었다.
가로등 불빛에 그녀의 볼에는 온통 눈물로 가득했다.
주머니에 수건마저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셔츠를 둘 둘 말아 올려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 흠... 흠...
그녀는 콧기침을 하면서
내가 셔츠를 말아 올려 얼굴을 닦아주는 것을 받아주고 있었다.
- 참나... 콧물도 흘렸네?
- 흠..ㅋㅋㅋ
그녀는 이제 다 울었는지... 가볍게 코 웃음을 쳤다.
- 이걸 어떻게해?
- 그냥 벗어요...
보니까 그냥 웃통 벗고 다니는 사람들 많더구만..
당신 몸매 괜찮으니까.... 그냥 벗고 다녀요..
- 허허... 공짜로 몸매 감상시켜줄 일 있나...허허..
- 피...
그녀는 아예 내 셔츠를 반강제로 벗겨 올렸다.
그러더니
셔츠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거기에 얼굴을 파묻는다.
- 허허... 아예 코를 풀어라~~
진짜로 그녀는 소리나게 코를 팽~~ 풀었다.
- 허허... 이 아줌씨가 말을 못하게 허네...
- 코 풀라매요?
대드는 그녀가
미치도록 이쁘다.
저걸 어째....
정말로 이뿌다....
- 아무래도 그렇지 애인 셔트 벗겨서 코푸는 여자가 어딨어?
- 여기있지...
- 오잉?
- 애인이니까...
그녀는 혀를 쏙 내민다.
참나..
누가 보면 우릴 아주... 징그러운 바퀴벌레라고 하겠다..
우리가 무슨 이삼십대 청춘이냐?
무슨 연애질 하는 것도 아니고...참나..
그래도 그녀의 하는 모습이 귀엽고 이쁘다.
- 인제 다 울었지? 코 풀면 울음 그친거야..맞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를 다운타운에 주차해서
폭포쪽에서 언덕길을 한참이나 걸어 올라가야 했다.
서두를 일도 없고..
그냥 천천히...
반걸음씩 언덕을 올라갔다.
- 그럼 두달 있다가 돌아 갈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두달..... 그래...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두달만에 돌아 가는구나... 그냥 여행으로.... 참.. )
- 아니! 안갈수도 있어요...
그녀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 아니... 그럴수도 있다는 거지...
- 여기서 자고 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 한 철인데 빈 방이 있을려나...?
그래도 관광회사 가이드 하는 후배녀석이 귀뜸해준 말이 생각났다.
열두시 다되서 가면
아무리 예약 다 됬다고 해도
꼭 방 한두개는 남아 있다고....
아무튼 열두시 일분 전에만 들어가면 된다고...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차를 빼서 전망이 제일 좋아 보이는 호텔로 몰고 갔다.
오분전 열두시.
이쯤이면 제법 시간을 잘 맞추어 온 것 같다.
아예 예약 안하고 왔는데 혹시 빈 방이 있냐고 물었다.
프론트 있던 직원은 안절 부절 하더니
객실은 다 찼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나이애가라가 여름 한철인데...빈 방이 있겠냐?)
뒤돌아서서 나가려 하자 불러 세운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한참이나 돌아서서 이야기를 하더니
이야기를 한다.
일반 객실은 다 찼고 스위트룸이 비었다고 한다.
대뜸... 야.. 내가 애들도 없는데 무슨 스위트룸이냐? 했더니
다시 전화에 대고 뭐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더니
그냥 일반 객실 요금에 해 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내 옆에서 등을 콕 찌른다.
오케이 싸인이다.
스위트룸이랜다.
녀석은 폭포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꾸지가 있고
뭐 영화 채널이 몇개가 무료로 제공되고
냉장고에 있는 것 중에거 바코드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은
요금을 내야 하고..어쩌고 저쩌고 챙길것을 챙긴다.
그러더니 짐이 있냐고 묻는다.
( 이밤중에 무슨 짐이냐? 그냥 두 몸뚱이 뿐이다! )
녀석은 키를 내 준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그녀는 내게 뜨거운 키스를 퍼 부었다.
- 23층이라고 했지?
- 음... 음...
그녀는 내 입에 혀를 밀어 넣었다.
나는 그녀를 엘리베이터 벽에 밀어 부쳤다.
- 어? 폭포다...
갑자기 그녀가 소리쳤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면서
폭포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나부다.
엘리베이터 한쪽이 유리창으로 꾸며진 전망 엘리베이터였다.
- 어..정말 멋지다...
나는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딩동 하는 벨소리를 들렸다.
[ 오늘 하늘이 무척이나 드 맑았습니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마치 따스한 봄날의 하늘 같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하늘 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따듯해 보이는 하늘이어도
밖은 아직 영하 이십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그녀의 젖가슴이 유독... 그립습니다.]
어제 해갈의 단비가 내려 주었다. ]
햇살이 간간히 나뭇잎 사이로 스치듯 들어왔다.
숲이 뒤꿈치를 들어 먼발치로 내어다 보려는 듯
그 사이로 바람이 솔 솔 불어 왔다.
바람은
마치 천천히 흘러가는 강물에 반사된 햇빛을
방해라도 하는듯
마치 이파리를 마구 흔들어 대는것 같다.
햇빛이 강의 잔물결에 부닥치며
그 찬란한 빛을 반사되고 있었다.
숲은
이외에도 이름 모르는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간혹 구석 구석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멀리서
사람들 웃는 소리
아이들이 물장난 치면서 떠드는 소리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마치 옆에서 함께 자리하고 있는 것처럼
재잘재잘...
강물은 천천히
아이들 옹알옹알 거리는 것처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갑자기
어느 시인의 시가 생각났다.
내 사랑하리...시월의 강물을 어쩌고 저쩌고.. 그랬던가?
그녀는 내 다리를 베고 누웠다.
- 어허... 배부르다..
내 목소리 흉내를 내며 낄낄대며 웃었다.
- 혹시 티파니에서 아침을 이라는 영화 봤어요?
- 그거 왜?
- 오드리헵번 나오는 영화...
- 고등학생때 본것 같은데... 흑백영화...
무슨 명화극장이었나... 주말의 영화 그런거 있잖어.
- 맞어요... 나도 그때 본 기억이 나는데..
어? 근데 지금 몇살이예요?
- 왜 갑자기 나이는 물어?
- 아니 나보다 훨씬 나이가 더 들어 보이는데
내 나이또래 이야기를 하는것 같아서..
- 뭐 훨씬 더 들어 보인다고?
- 아닌가?
- 참나... 눈이 참 안좋으시네... 아줌마!
- 아닌가요?
- 근데 왜 그 영화가 생각났어?
- 아! 그거요?
티파니가 유명한 보석상인가 보석상이 몰려 있는 거리인가?
아무튼 그렇다 치고...
아침을 먹고 거기서 보석을 고르는 여자는 최고로 행복하다...
뭐 그런 느낌으로 영화가 시작했던것 같은데...
- 그건 허연사람들 이야기고...
- 난 이렇게 맛나게 밥을 먹고 숲에서 이렇게 낮잠 한숨 찐하게 때리는거!
- 그래서 오드리헵번보다 안부럽다고?
- 그럼요~~
- 아! 참이슬이 이렇게 맛있는줄 모올라~~쓰~~요!
- 허허.. 이 아줌마 취했네?
- 키키키..아뇨.. 기분이 좋아서 그래요...
그녀는 여전히 내 다리를 베고 누워서 콧노래를 불렀다.
- 소풍을 오길 잘했네....
- 맞어요! 소풍 참 잘왔어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밥을 먹으면서 급하게 마신 참이슬 팩소주 두어개에
얼큰하게 취한 모양이었다.
나도 깜박
그렇게 누워서 잠이 들었다.
어럼풋 눈을 떴을때
그녀는 다리를 끌어 안고 강물을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무릎으로 턱을 받친채
흐느껴 울고 있는 것 같았다.
어깨를 조금씩 들썩이고....
간혹 손끝으로 눈 주변을 깨치면서...
그녀는 그렇게 울고 있었던 모양이다.
한참이나...
왜 그렇게 울고 있었나...
이렇게 즐거운 소풍이라고
어리아이처럼 마냥 즐거워 하더니...
그녀의 등은 활처럼 휘어져 있었다.
갑자기 담배가 피우고 싶어졌다.
돗자리 저쪽 가장자리에 던져 놓았던 담배를 끄집어 당겼다.
- 어머! 일어 났어요?
- 한참 잤나봐..
- 코를 골고 아주 잘 자던데요?
- 코를 골아?
- 네... 새근새근 아주 귀엽게 콜를 골던데..
그녀는 금방 눈물을 지우고 베시시 웃는다.
담배 연기는
바람이 곤히 잠을 자는 듯한 수풀 속에서
가늘게 허리를 놀리면서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마치..
어릴적
시골 할아버지댁에
제사지내는 날에...
새벽에 부시시한 얼굴로
깨워 밀어 대청마루로 날 보내시는 어머니를 원망하면서
들어선 제사장 앞.
큰 아버지는
무어라 무어라...
가는 붓으로 한지에 무어라 적으신것 같았는데..
그 축문을 읽으시고
그리고 창호지 축문을 촛불로 불을 붙여서
땅에 떨어지지 않게 손바닥으로
살짝씩 들어 올리면서 태워 하늘로 올리던 그 모습...
담배 연기는
마치 그처럼 수풀 위로 하늘하늘 올라갔다....
- 담배 참 맛있게 피워요...
- 원래 담배가 맛있어.
- 당신은 참 답배를 맛있게 피우는것 같아요.
남자들 담배 피우는거 보면 마치 스트레스 푸는 것 같고
그냥 뻑뻑 피우는 모습들이 보기 별룬데..
당신은 참 담배피우는 모습이 멋져요...
- 푸후....
- 웃는게 뭐 그래요?
- 아... 아니... 컥!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오다 담배연기가 거꾸로 들어갔나부다.
깊은 기침에 멍해졌다.
- 담배 피우다가 사리에 들리기도 해요?
그녀는 내 등뒤로 와서
그 자그마한 주먹을 쥐고 등을 두드린다.
- 아이고.. 아이고..큭!
- 다 죽어 가네....이 아저씨..
겨우 기침을 멈추었다.
그녀는 대 등 뒤에서
가만 날 껴안고 있었다.
- 이렇게 좀 있어봐요...
그녀는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한동안 그렇게 있었다.
나는
내 등뒤의 그녀의 가슴이....조금씩 요동치는걸 느꼈다.
- 이렇게 소풍와 줘서 고마워요...
- 뭘 이런걸... 그럼 매일 올까?
- 아뇨... 자주 오면 재미 없어요... 나중에 겨울에 또 와요..
- 겨울에?
- 겨울에 오면 정말 멋있을것 같아요.
- 그러지... 그래도 다행이네... 철따라 오자고 한해서..
- 어머 그래요?
- 그럼 요번 가을에 한번 더 오죠 뭐~~ 호호호.
그녀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왜 그러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냥 참았다.
말이라는게 하고 싶을때가 있는 법이다.
수풀을 떠났다.
나이애가라 강을 따라 내려가면서
몇군데 유명한 관광지를 들르기도 하고
기념품 가게에 들러 몇가지 상품을 골라 사기도 하고..
와이너리에 들러 작년 겨울에 담근 와인 한병
그리고 바로 올 봄에 출고한 아이스와인도 한병.
그렇게 사들고 온더레이크에 갔다.
그녀는 계속 깔깔대며 웃었고..
즐겁고 아주 유쾌하게 재잘거렸다.
간혹 내가 빤히 쳐다 보면
그때마다 어김없이 입술을 내어 주었다.
종종.... 그렇게 나는 그녀의 따듯한 입술과 혀의 느낌을 맛보았다.
그리고 가끔씩 짖궂게
가슴을 만지려 들면...
손등을 꼬집긴 했지만...
그래도 한동안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그녀의 젖가슴을 만지는 동안
인내심을 갖고 내가 충분히 느끼도록 기다려 주었다.
때론 가는 신음마져 내 귀에 대고 흘려 주었고..
그러다가 내 엉덩이를 툭! 치곤 했었다.
우리는
잘 어울리는 애인처럼...
즐겁게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처럼
그렇게 둘이서
꼭 붙어서 다녔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다.
떠들며 여기 저기 구경하면서 지나는새....
시간은 흘러... 어둑어둑해졌다.
저녁을 서둘러 먹었다.
금요일 밤에는 폭포에서 폭죽을 터트린다.
그걸 보러 가야 한다...
서둘러서 다시 폭포로 향해 차를 몰았다.
폭포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언덕에
그녀와 나란히 앉았다.
열시가 되자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한발!
방향을 잡으려는듯
아주 길다란 꼬리를 내는 불꽃으로 시작했다.
첫발은 폭포 가운데 있는 자그마한 섬 한 복판을 향해 날아갔다.
이어서 폭죽이 연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폭죽이 터질때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러댔다.
바람이 화약냄새를
언덕위에 앉은 우리쪽으로 날라다 주었다.
폭포에서 피어오르는 습기가
제법 축축한 봄비처럼 되어 우리쪽으로 날아 왔다.
옷이 조금씩 눅눅해졌다.
시간이 다 됬나부다..
폭죽을 터트리는 빈도가 점차 줄어 들더니
이내 한참 뜸을 들인다.
이제 마지막 한방을 터트리려나...
한참 뜸을 들이더니
갑자기 수십발의 폭죽을 한꺼번에 터트린다.
모든 사람들이 환성과 박수를 터트린다.
이윽고 사람들이 일제히 빠져 나가기 시작한다.
- 왜 울었어?
나는 빠져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 그냥요...
- 취미로 우나?
- 누가 취미래요?
- 근데... 왜 울었나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내 어깨에 고개를 기대었다.
-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해도 되...
우는게 이상해서 그냥 호기심에... 물어 본거야...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정말 어렵게 여길 왔어요.
한참만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폭포 주변에 불꽃놀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거의 다 빠져 나가고
썰렁한 모습으로 바뀌어
가로등이
가끔씩 폭포에서 올라오는 물안개가
텅빈 도로위를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모습을 비추고 있을때....
그녀가 나지막한 소리로 입을 열었다.
- 힘들게 결정하고 왔어요.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이애가라 강 너머
불빛이 반짝이는 곳을 응시하며 이야기했다.
- 사실.... 이번이 마지막 여행이라고 생각했어요.
- 여행?
- 그렇죠... 여행이죠..
- 애들 유학이 아니고?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아이는 두달 코스 어학캠프에 연수차 왔어요.
그녀의 눈에는 금새 액체로 가득찼다.
우리들 뒤에
키 큰 가로등이 금방이라도 쓰러질듯
희뿌연 불빛을 우리에게 부어대고 있었다.
- 잠시 제가 따라 온거죠...
그녀는 눈물을 깨쳤다.
- 아....
그녀는 한숨을 쉬면서 다리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는
한동안 흐느꼈다.
무슨 말이 따로 할 필요가 없을것 같았다.
무슨 사연인지도 모르고...
그냥..
저렇게 서럽게 우는 그녀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만...
손을 뻗어 등을 매만져 주는 일..
그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한참을 그녀는 다리사이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더니
마침내 얼굴을 들었다.
가로등 불빛에 그녀의 볼에는 온통 눈물로 가득했다.
주머니에 수건마저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셔츠를 둘 둘 말아 올려 그녀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 흠... 흠...
그녀는 콧기침을 하면서
내가 셔츠를 말아 올려 얼굴을 닦아주는 것을 받아주고 있었다.
- 참나... 콧물도 흘렸네?
- 흠..ㅋㅋㅋ
그녀는 이제 다 울었는지... 가볍게 코 웃음을 쳤다.
- 이걸 어떻게해?
- 그냥 벗어요...
보니까 그냥 웃통 벗고 다니는 사람들 많더구만..
당신 몸매 괜찮으니까.... 그냥 벗고 다녀요..
- 허허... 공짜로 몸매 감상시켜줄 일 있나...허허..
- 피...
그녀는 아예 내 셔츠를 반강제로 벗겨 올렸다.
그러더니
셔츠를 두 손으로 받쳐들고 거기에 얼굴을 파묻는다.
- 허허... 아예 코를 풀어라~~
진짜로 그녀는 소리나게 코를 팽~~ 풀었다.
- 허허... 이 아줌씨가 말을 못하게 허네...
- 코 풀라매요?
대드는 그녀가
미치도록 이쁘다.
저걸 어째....
정말로 이뿌다....
- 아무래도 그렇지 애인 셔트 벗겨서 코푸는 여자가 어딨어?
- 여기있지...
- 오잉?
- 애인이니까...
그녀는 혀를 쏙 내민다.
참나..
누가 보면 우릴 아주... 징그러운 바퀴벌레라고 하겠다..
우리가 무슨 이삼십대 청춘이냐?
무슨 연애질 하는 것도 아니고...참나..
그래도 그녀의 하는 모습이 귀엽고 이쁘다.
- 인제 다 울었지? 코 풀면 울음 그친거야..맞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차를 다운타운에 주차해서
폭포쪽에서 언덕길을 한참이나 걸어 올라가야 했다.
서두를 일도 없고..
그냥 천천히...
반걸음씩 언덕을 올라갔다.
- 그럼 두달 있다가 돌아 갈거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두달..... 그래... 무슨 사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두달만에 돌아 가는구나... 그냥 여행으로.... 참.. )
- 아니! 안갈수도 있어요...
그녀는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 아니... 그럴수도 있다는 거지...
- 여기서 자고 가?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 지금 한 철인데 빈 방이 있을려나...?
그래도 관광회사 가이드 하는 후배녀석이 귀뜸해준 말이 생각났다.
열두시 다되서 가면
아무리 예약 다 됬다고 해도
꼭 방 한두개는 남아 있다고....
아무튼 열두시 일분 전에만 들어가면 된다고...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차를 빼서 전망이 제일 좋아 보이는 호텔로 몰고 갔다.
오분전 열두시.
이쯤이면 제법 시간을 잘 맞추어 온 것 같다.
아예 예약 안하고 왔는데 혹시 빈 방이 있냐고 물었다.
프론트 있던 직원은 안절 부절 하더니
객실은 다 찼다고 한다.
(그러면 그렇지... 나이애가라가 여름 한철인데...빈 방이 있겠냐?)
뒤돌아서서 나가려 하자 불러 세운다.
그러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했다.
한참이나 돌아서서 이야기를 하더니
이야기를 한다.
일반 객실은 다 찼고 스위트룸이 비었다고 한다.
대뜸... 야.. 내가 애들도 없는데 무슨 스위트룸이냐? 했더니
다시 전화에 대고 뭐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더니
그냥 일반 객실 요금에 해 주겠다고 한다.
그녀는 내 옆에서 등을 콕 찌른다.
오케이 싸인이다.
스위트룸이랜다.
녀석은 폭포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꾸지가 있고
뭐 영화 채널이 몇개가 무료로 제공되고
냉장고에 있는 것 중에거 바코드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은
요금을 내야 하고..어쩌고 저쩌고 챙길것을 챙긴다.
그러더니 짐이 있냐고 묻는다.
( 이밤중에 무슨 짐이냐? 그냥 두 몸뚱이 뿐이다! )
녀석은 키를 내 준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그녀는 내게 뜨거운 키스를 퍼 부었다.
- 23층이라고 했지?
- 음... 음...
그녀는 내 입에 혀를 밀어 넣었다.
나는 그녀를 엘리베이터 벽에 밀어 부쳤다.
- 어? 폭포다...
갑자기 그녀가 소리쳤다.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면서
폭포가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나부다.
엘리베이터 한쪽이 유리창으로 꾸며진 전망 엘리베이터였다.
- 어..정말 멋지다...
나는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며 딩동 하는 벨소리를 들렸다.
[ 오늘 하늘이 무척이나 드 맑았습니다.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은
마치 따스한 봄날의 하늘 같았습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하늘 인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렇게 따듯해 보이는 하늘이어도
밖은 아직 영하 이십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따라 그녀의 젖가슴이 유독...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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