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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의 머나먼 여정 ( 1-15 )



6장. 사랑아, 내 사랑아!!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 서로가 다른 사람에게 반하지 않고, 서로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고, 그 사랑을 두 사람만이 지켜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환경의 변화를 거스르지 못하고, 동요하는 자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타인의 개입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여지게 된다면? 그것을 뒤늦게나마 반추해 본다고 과연 결과가 달라질까?

몸은 비록 내곁을 떠나도 마음만이라도 두려하는 이기심일까?아니면 마음은 떠나도 몸만은 곁에 두려하는 소유욕일까?


서로에게 목숨 걸고 진실되게 눈물 흘리며 기뻐하는 사랑은 사라지고, 오로지 순간적인 감정에 충실해서 상대방에게 거짓을 말하는데 익숙한 사랑.

진정 사랑하는데도 자신의 모든 면을 드러내지 못하고, 언제나 비밀의 반쪽을 숨기는 사랑.

사랑을 마음으로 포용하지 못하고 머리로만 계산하려는 모습.

부드럽고 말랑말랑한 면은 일체 배제하고, 냉정하고 이기적인, 추한 면만을 반추해 해석하려는 사랑.

사랑을 하고있는 "사랑하는 자" 들이 잊지않고 경계해야 할 논리들.


어찌보면 이러한 사랑을 비판하며, 보다 진실하고 깊이있는 사랑을 강조하기 위해 내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건지도 몰랐다.


진정한 사랑은 정신적, 육체적으로 모두 가까워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혼자 머릿속을 뒤적이며 중얼거려 보았지만, 내가 생각해도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같다.


*     *     *     *



저만치, 이미 깊어지는 어둠속에서도 흐릿하게 보인다.잡초가 군데군데 듬성듬성 자라나있는 자미정의 주차장엔 고작 2 대의 승용차만 세워져있다.

차 한대에 4 명씩 타고 왔다고 가정해도 기껏해봐야 8 명. 술안주로 준비될 음식 재료값도 못 건지는 밑지는 영업임에는 틀림없다. 은혜 이모와 이화 누님이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자미정의 운영 형편이 어려워짐을 실감케 한다.

얼마전에 왔을 때는 그럭저럭 두어 개의 연회방에서 노랫가락 소리가 흘러나왔는데, 요즈음 들어서 더 사정이 나빠진 것같았다.


한 때는 검은색 고급 승용차들이 줄줄이 드나들면서, 한다 하는 지역구의 *의원, 모모한 관청의 *국장, 실장은 물론, 이름만 들먹여도 알 정도의 인지도가 높은 무슨무슨 기업의 누구네가 연예인 모 양을 초빙해 자미정에서 놀았다더라, 밀실에서 미팅을 했다더라 등,  벼의별 뒷담화가 소문에 소문의 꼬리를 물고 입소문이 퍼져 세인들의 입에도 오르내렸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시골 잔칫집처럼 항상 흥청거리던 연회청이 적막에 휩싸여 먼지만 쌓여가는 듯 했고, 두 손 손가락으로는 헤아릴 수도 없었던  중노미는 달랑 한명 남았고, 주방의 찬모 아줌마도 겨우 둘만 남겨두고 모두 내보냈다. 사양길의 요정운영이 얼마나 어려운지 피부에 와 닿을 만큼 말이다.


힘없는 발걸음으로 터벅터벅 마악 주차장을 지나치는데,헤드라이트가 비치며 승용차 한대가 덜컹거리며 다가와서 멈춘다.


"다행이다, 또 한 대 들어오는 모양이네..."


자미정을 찾아오는 그들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런데....


“일영아!”


차가 정지하자마자 도어를 부서져라 열어젖히며 몸을 내린 사람은 다름아닌 설향 누나였다.


“어? 뭐야? 이 시간에...누구 차야?”


“으응, 행사 다녀왔어, 여기서 누나 기다린 거야? 언제 왔어? 저녁은 먹었어?”


설향 누나의 입에서 따발총을 쏘는 듯한 연속 질문이 퍼부어진다. 뒤이어 그 차에서 내린 사람은 이화 누님이었다.

자미정을 찾아오는 내방객들이 뜸하다보니, 누구네 돈 많은 집안의 회갑연이나 고희연 잔치에 불려갔었던 모양이다. 정말이지 돈이 원수다.

자존심이 좆도섬 공알 바위처럼 높은 이화 누님이 행사에 다 참석하다니... 나는 내심으로만 나즈막히 한숨을 불어내었다.


“힘들었겠다. 피로해 보이네? 누나.”


“응, 조금 그랬는데...야, 근데 너 얼굴보니 피로가 싹 풀린다. 일영아.”


“웬일이니? 왔으면 들어가지 않고...”


“으응, 아니야. 나두 좀 전에 막 왔어.”


차안에서 장고와 가야금을 내리던 누님이 퉁명스럽게 한마디했다.


그 고운 목청이 끝이 갈라져 쇳소리가 나는 것 같았고, 그리고 귀밑 머리도 헝클어지고 한복 치마도 구김살이 많아보인다.

보지않아도 짐작이 간다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얼마나 시달렸는지.


“이리 줘. 무거울텐데....내가 옮길게..


”“그럴래? 휴우, 그럼...”


볼 때마다, 뭐가 그렇게 못마땅한지 입술을 삐죽이며 쌀쌀맞게 나를 대했는데, 오늘은 기운이 없는 탓인지 이화 누님은 묵묵히 걸음만 옮겨놓았다.

순간, 누님의 얼굴 한구퉁이에 그늘이 보인 건, 주변이 어두워서 내 눈에 그렇게 보인 것만은 아닌 듯했다.


“걸어 올라오느라 땀나서, 나 좀 씻을까봐...들어가 쉬어. 누나...”


“힛! 알았어, 나두... 크크~ 기다릴께.”


이화 누님은 두어 걸음 뒤처져 따라오고, 가야금을 들고 가는 내 옆으로 설향 누나가 나란히 걸으며 소근거린다.



사실은 갈매기 여관에서 씻지도 못하고 그냥 나왔기 때문에 목욕을 할까 했는데, 설향 누나는 뭔가 오해를 해도 단단히 한 것 같았다.


자신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인간의 본능인가보다.

그날, 그 일이 있었던 설향 누나는 내가 올 때마다 슬그머니 히네루를 주곤 했다.

나는 못들은 척 시침을 뚝 따며 후원 내 방으로 향했다


내 방에서 은혜 이모 내실로 가려면 청마루쪽은 출입문이 달려있지 않기 때문에뜰을 가로질러 가야한다.

하지만 내 방에서 바로 연결되는 목욕간, 그러니까 욕실로 들어가면 이모 내실로 들어갈 수 있는 또 다른 작은 출입문이 있다.

물론 목욕간은 이모와 나만 사용하는 공간이었고, 출입문에는 만약을 대비한 걸쇠가 걸려있다.

누군가가 욕실을 사용할 때는 상대방쪽의 문은 걸쇠로 잠궈두고 사용한다.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땀이 끈끈하게 밴 셔츠를 벗어던지고 ,8폭 병풍이 세워진 뒤쪽의 욕실문을 열려는데 안으로 잠겼는지 열리지가 않는다.

이모가 욕실을 사용한 후, 내 방으로 통하는 문의 걸쇠를 풀어놓지 않았던지, 아니면 지금 누군가가 목욕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증거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이 시간에 누구? 이모? 아니면 순애?


찰박거리는 물소리는 분명 누군가가 목욕을 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리였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잊고 있었던 하나의 기억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이모가 내 몸을 씻겨주었던 그 아련한 추억.지금은 사용하지도 않을테고, 골동품 취급을 받겠지만 나무로 만들어진 목간통.


추운 겨울날에는 가마솥에서 끓인 물을 한 가득 옮겨담아서 내 손가락과 발가락이 하얗게 퉁퉁 부풀어 오를 때까지 마냥 몸을 담그고 있었는데...

거추장스런 치마자락을 둥둥 말아올려 허리끈에 꿴 이모는 내 등은 물론, 팔뚝을 쓱쓱 문질러주곤 나를 일어서게 한다. 앞가슴 부분과 다리를 씻어주기 위해서다.


“아~ 간지러, 아파...살살 ! 이모...”


“가만 있어, 녀석아. 봐 바...땟국물...까마귀가 지나가다가 친구하자고 하겠다.”


민망!솔직히 내가 봐도 때는 좀 많이 나왔다. 국수가락 정도는 아니지만. 어린 소년의 부드러운 허벅지 안쪽은 솔직히 때를 잘못 밀면 아프다. 간지럽기도 하구.


“누굴..닮았는지, 고추는....”


저고리를 벗어 둔 채 겨울내복 차림으로 나를 목욕시켜주는 이모는,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연신 두 손을 움직인다.

브래지어를 입지않은 탓에 풍선같은 젖가슴이 위 아래로 털렁거리는 그 모습, 나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침을 꼴깍 삼킨다.


"한번만, 딱 한번만....만져 보았으면..."


근데, 깨끗이 씻어야 한다면서 조물딱조물딱 꽤나 정성껏 내 자지를 씻겨주는 이모와 달리, 나는 단 한번도 그 젖가슴을 만질 수가 없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가끔씩 생각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어머니나 다름없는 이모가 왜 자신의 젖가슴은 절대 만지지 못하게 했을까? 내 고추는 씻겨주면서 만지고선...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었다.


친어머니가 아니기 때문일까? 하지만 아무리 자신의 아들이 아니고 이종조카라지만 한 번쯤은 내 소원을 들어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어린 시절을 보낸 탓에, 내가 도착적으로 여자의 가슴에 집착하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모를 성적인 대상에 두고 야릇하고 추한 상상을 해본 적은 없었다.

물론 어머니의 얼굴도 모르고 자란 내가 이모의 젖가슴은 동경했지만, 이모가 나를 목욕시켜주는 그 손길은 내가 상상하는 엄마의 손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누굴까?"


짐작은 갔지만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가만가만 욕실 문앞으로 다가갔다.

여름 날씨라 겨울날 목간을 할 때처럼 안개같은 수증기는 피어오르지 않는다.


심호흡을 크게 한 번하고 문 틈새로 눈을 가져가던 나는 하마트면 뒤로 발라당~ 넘어질 뻔했다.


지, 짐작대로 수...순애 였다.


김장배추를 절일 때 사용하는 큼지막한 프라스틱 다라가 따로 있는데도, 내가 어릴적 사용했던 그 목간통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태어날 때의 자연모습 그대로 순애가 몸을 담그고 있었다.


예전에는 목욕간 출입문에 창호지가 발라져있었다.

왜 있쟎은가? 시골에서 전통혼례를 올리면 신랑신부 첫날밤을 훔쳐보려고 문살에 바른 창호지를 침칠 한 손가락으로 구멍을 내는, 요즘은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그 풍습속의 창호지 바른 문.


남자는 어머니를 통해 여자를 알게된다고 누군가가 말했던가? 어머니가 없었던 나는 이모의 목욕 장면을 몇 번인가 훔쳐본 것 같다.

(같다가 아니라 훔쳐봤음)


근데, 어느 날인가 창호지 문이 바뀌어져 있었다. 반투명 유리가 달린 목재문으로 말이다.


아마 그때가 나의 사춘기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모도 바보가 아닌 담에야 뭔가를 깨달았을테고, 그 이후로 이모는 내 몸을 손수 씻겨주지는 않았다. 가끔 등은 밀어주었지만.


눈만 뜨면 지천으로 보는 게 자미정의 여자들이었으니까, 이모는 그런 이유로 자신의 젖가슴을 내가 만질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았는지도 몰랐다.


사실 아파트의 규격화 된 샤시문과 다르게, 한옥의 출입문들은 구조상 아주 조금 틈새는 나있는 법이다.


이모를 훔쳐볼 때와는 또 다른 그림.


솔직히 두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전설에나 나올 법한 하늘나라 선녀들의 목욕장면이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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