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 2 (사랑님 컴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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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 되면서 완연히 따뜻해진 봄날씨가 찾아왔다. 그리고 6일인 환우의 생일도 다가왔다. 소은과 생일을 보내리라 생각하고 있던 환우에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지방에서 지내고 있는 고등학교 때 제일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 2명이 생일을 축하해주러 올라오겠다는 것이다.
여자친구가 생겼다는 걸 말하지 않아 그냥 날짜를 바꾸려고 했으나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인마! 너 보려고 나랑 철욱이랑 시간 빼놓은 건데 왜 날짜를 바꾸려고 그래. 우리가 특별히 올라가는 거니까 큰일 아니면 그날 보자.]
생각해보니 설날 이후에 처음 보는 친구들이다. 이렇게 자신을 위해 올라온다는 데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어 수락을 하고 만다.
이제 문제는 여자친구인 소은이었다.
그러나 환우의 걱정과 달리 소은은 흔쾌히 이해해준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인데다가 너 생일 때문에 특별히 올라오는 건데 뭐 어때. 괜찮아.”
그렇게 말하던 소은은 웃으며 환우를 안는다.
“여자친구인 나는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거니까. 안 그래?”
“이해해줘서 고마워.”
너무나도 착한 소은을 꼭 안아주는 환우였다.
*
환우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철욱이와 재영이는 고등학교 때 가장 친하게 지내던 두 명이었다. 그런 친구들을 오랜만에 보니 즐겁지 않을 리가 없었다.
술을 마시다보니 어느새 열두시가 넘었다. 환우는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을 꺼내본다. 하지만 여자친구인 소은에게선 아무런 연락도 없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소은과 사귀고 나서 과 친구들과 밤늦게까지 놀았었다. 그런데 소은에게선 문자 하나가 없었다. 아니 자신이 문자를 하면 답문을 보내긴 했다. 혹시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건가 싶어 약간 섭섭한 기분이 들기도 해서 소은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때 소은은 환우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너 친구들이랑 노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으니까….”
환우는 자신을 배려하는 소은의 착한 마음씨에 무척 감동해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오늘도 그런 경우였다.
친구들과 어울리다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피시방에서 첫차 뜰 때까지 기다리자는 식으로 형성되던 여론이 철욱이의 한마디로 뒤집어졌다.
“야 서울 올라왔는데 미아리 한 번 가봐야지.”
철욱이의 말에 재영이가 좋다고 난리를 쳐서 결국 미아리로 향하게 되었다. 환우는 돈이 없다고 하였지만 철욱이와 재영이는 둘이서 다 부담하겠다며 결국 환우까지 끌고 가게 되었다.
미아리에서 일을 치르고 친구들을 보낸 환우는 새벽의 찬 공기 속에서 서서히 밝아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반지하로 내려가기 위해 익숙한 계단을 내려가는데 자신의 자취방 앞에 평소와 다른 무언가가 놓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웅크리고 앉아 잠들어 있는 사람이다.
유소은…. 자신의 여자친구인 소은이었다.
옆에는 뭐가 들어있는지도 모를 커다란 가방과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상자를 놓아둔 채 소은은 얌전히 두 팔에 얼굴을 묻고 잠들어 있었다.
놀란 환우는 황급히 소은을 흔들어 깨웠다.
“응, 응?”
“야 너 여기서 뭐해.”
잠에서 막 깬 소은은 밤새 추웠는지 양팔을 한 번 비비고는 환우를 올려다보며 배시시 웃는다.
“응…? 헤헤. 이제 왔네.”
“너 여기서 뭐하냐고.”
“나? 나 움…. 너 기다렸지. 너 생일 축하해주려고….”
환우는 크게 놀랐다.
“뭐? 그것 때문에 날 이렇게 기다렸어?”
그러나 소은은 무슨 소리냐는 듯 단호한 표정으로 말한다.
“그것 때문이라니! 우리 사귀고 처음 맞는 너 생일인데…. 헤헤…. 그래도 생일 날 챙겨주고 싶었는데 하루가 지나버렸네. 미안해…. 그래도 자 생일 선물! 생일 축하해! 내 남자친구!”
소은은 옆에 놓여 있던 예쁘게 포장되어 있는 상자를 집어 환우에게 건네준다. 조심스레 포장을 뜯어 상자를 열자 티셔츠가 곱게 접혀 들어있다.
환우는 말문이 막혔다. 화가 나서도 놀라서도 아니었다. 무언가 가슴에서 턱 막히는 느낌 때문에 아무 말도,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조용히 티셔츠를 바라보는 것 이외에는….
“헤헤 마음에 들어?”
환우는 그렇게 묻는 소은을 바라보았다. 잠이 덜 깼는지 반쯤 풀려 있었지만, 행여나 선물이 남자친구의 마음에 들진 않을까 걱정이 가득 담긴 그녀의 눈빛….
“…당연히 마음에 들지. 어떻게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겠어 바보야….”
목이 메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말을 잇는다.
“뭐하러 날 이렇게 기다렸어. 연락이라도 하지!”
“헤헤. 내 성격 알면서. 일단 나 좀 들여보내주세요-. 추워요-.”
소은은 그렇게 말하고는 환우를 꼭 껴안는다.
집에 들어가 커다란 가방을 바닥에 내려놓고 있는 소은에게 환우가 물었다.
“너 그럼 밤새 기다린 거야?”
“응….”
소은의 조심스러운 대답에 놀란 환우.
“그럼 집에 안 들어간 거야? 어떻게?”
“그냥 고등학교네 친구네 집에서 잔다고 친구한테 부탁해서 엄마랑 통화까지 다 시켜줬지. 히힛. 나 잘했지?”
환우는 또 다시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신의 생일을 챙겨주기 위해서 싫다고 하던 거짓말까지 하고…. 자신은 소은 따윈 신경 쓰지 않고 친구랑 돈을 주고 여자와 관계를 가지고 왔는데…. 그녀에게 너무 미안하면서도 고맙다.
그러나 내색은 하지 않는다.
“잘하긴! 으이구…. 근데 그 가방은 뭐야?”
환우가 가방을 가리키며 묻자 소은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황급히 말한다.
“아! 맞다. 잠깐 눈 감아봐. 꼭 눈 감아. 눈 뜨지 말고!”
환우는 소은의 난리에 엉겁결에 눈을 감는다.
“눈 뜨기 없기다!”
혹시나 눈을 뜰까 계속해서 그렇게 외치던 소은은 잠시 후 다 됐다는 듯 환우에게 눈떠보라고 말을 한다.
“아….”
눈을 뜬 환우의 앞에는 예쁘게 교복을 차려입은 소은이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검정색의 치마에 대비되는 순백색의 셔츠. 그리고 길지 않은 검정 넥타이….
“어때…? 어울려?”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환우에게 조심스레 묻는 소은….
어찌 예쁘지 않을 수 있을까….
“예뻐. 너무 예쁘다….”
“히힛. 다행이다…. 나 이 거 엄마 몰래 가지고 나오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소은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환우가 그녀를 꼭 껴안았기 때문이다.
“앗…!”
소은은 자신을 갑자기 끌어안는 환우에게 살짝 놀란다. 그러나 이내 웃으며 환우의 품에 파고드는 소은….
그날 환우와 소은은 마치 서로 처음 관계를 가지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또 아름답게 사랑을 나누었다.
그 어느 때보다 천천히, 부드럽게….
서로의 하나하나를 놓치기 싫다는 듯 정성스럽게….
관계가 끝나고 누워있던 환우는 옆에 누워있는 소은을 바라보았다.
바알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그녀….
자신을 위해 뭐든 다 해주고 맞춰주는 착한 그녀….
너무 사랑스럽다….
“사랑해….”
환우는 소은을 꼭 껴안는다. 환우의 품에서 살짝 놀라는 소은….
놀란 듯 잠시 말이 없다….
허나 이내 천천히 그녀의 입이 열린다.
“…나한테 처음으로 사랑한다고 말해준거네.”
“응…. 정말 사랑해.”
“헤헤….”
환우의 목을 꼭 끌어안는 소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인다.
“나도 진짜진짜 사랑해….”
환우는 자신을 꼭 끌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 여자아이가 진심으로 좋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어떻게 하면 이 아이와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지만 이젠 그런 생각 따위는 들지도 않았다. 이젠 어떻게 하면 이 아이를 웃게 해줄 수 있을까,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행복하게 해줄 수 있을까…. 이런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지난 시간들이 너무 후회스러웠다. 그저 이 아이의 몸만을 탐닉하던 그때 그 자신이…. 자신을 진심으로 좋아해주는 이 아이의 마음을 모르고 욕구만을 풀었던 그 날들이….
앞으로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아껴주고 사랑해주리라….
그것만이 자신을 향한 소은의 마음에 대한 보답이니까.
*
그렇게 일주일이 흘렀다. 환우는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웠다. 사랑하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지 이제야 깨달은 자신이 한심스러울 정도였다.
“응, 응. 알았어. 이따 연락해.”
학생회 일이 있다는 소은의 전화를 끊고 혼자 집으로 향하던 환우에게 모르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누구지…? 여보세요?”
[저기…. 혹시 최환우 핸드폰 아닌가요?]
여자다. 그것도 자기 또래의….
처음 듣는 목소리 같은데 왠지 낯설지가 않다. 아니,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목소리다. 근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예. 맞는데 누…구시죠?”
[아, 맞구나. 저기 혹시 나 기억할지 모르겠는데…. 나 그때 영문과랑 과팅에서 이은빈이라고…. 혹시 기억해?]
두근…!
환우의 심장이 조금씩 뛰기 시작한다.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응, 응…. 기, 기억하지….”
당연히 기억한다고 호들갑을 떨 뻔한 걸 간신히 참는다.
[다행이다. 아직 학교니?]
“응….”
[그래? 그럼 저…기 이따 저녁에 잠깐 볼 수 있을…까?]
조금씩 뛰던 심장이 이젠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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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pgr님 반갑습니다. 끄적으로 글을 올릴 때 자주 댓글을 달아주시며 많은 응원을 보내주신 거 항상 기억하며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
입체적인 캐릭터... 사실적인 이야기... 다 좋죠 ㅠㅠ 하지만 jpgr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평면적 캐릭터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에 쉽잖아요. jpgr님께서야 제가 충분히 입체적인 캐릭터로도 글을 쓸 수 있다고 하시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합니다 ㅠㅠ 사실 정말 어렵죠 ㅠㅠ 입체적인 캐릭터.. 잘못쓰면 캐릭터의 일관성도 없어지고 오히려 그 성격을 맞추려고 억지스러운 플롯을 설정하기도 하고......
저는 아직 많은 나이는 아닙니다. 많다면 많은 나이지만... 소라에 글을 올리시는 분들 중에서는 물론이고, 좀 더 완숙한 글을 쓰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데 있어 천재들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양한 삶의 경험을 통한 지식습득이라고 생각하거든요 ㅠㅠ 근데 제가 정말 남들에게 흥미롭게 들려줄만한 다양한 경험들을 한 것도 아니고요 ㅠㅠㅠㅠ
아 너무 길어지네요 ㅠㅠ 아무튼 jpgr님께서라면 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충분히 아셨을 거라 믿숩니다 ㅠㅠ 역시 중요한 건 다양한 삶의 경험.. ㅠㅠ
어쨌든 항상 관심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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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술집에 나란히 앉아있는 환우와 은빈.
환우는 지금 이 상황이 믿어지질 않는다. 자신의 앞에 이은빈이 앉아 있다니….
윤기 나는 길고 검은 생머리, 새하얀 얼굴에 도도한 여우같은 눈매….
“왜 그렇게 얼어 있니?”
은빈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미소를 띠우며 입을 열었다. 환우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그녀가 예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다. 설마 이정도로 예쁠 줄이야….
“아, 아무 것도 아니야. 그, 근데 어떻게 날 알고 연락했네….”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저 눈 한 번 마주친 것뿐이었는데….
“응…. 그냥 애들한테 물어물어 알았어….”
“그래….”
대답을 하던 환우는 핸드폰에 소은의 문자가 온 것을 확인했지만 답장을 보내지 않는다.
환우가 술을 마시며 알게 된 은빈의 성격은 말을 많이 하며 분위기를 자신이 주도하는 타입의 여자라는 것이었다. 소은과는 대조적이었다. 활발하게 말하며 환우가 가끔씩 쳐주는 맞장구에 좋아하는 은빈.
그러다 술이 조금 들어간 은빈이 결국 과팅 때 일을 꺼낸다.
“너 과팅 때 나 찍었었지?”
눈을 가늘게 뜨며 장난스럽게 묻는 그녀의 질문에 당황하는 환우.
“응, 응…. 그, 그랬었지.”
당황하는 환우를 가만히 바라보던 은빈이 이윽고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혹시 여자친구 생겼니?”
“아니….”
환우는 대답을 하고도 스스로 놀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여자친구를 부정하는 대답. 아까 전까지 사랑하는 소은과 통화를 하지 않았나…. 순식간이었다. 소은의 존재를 부정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이제 와서 잘못 말했다고 할 수도 없다.
“그래…?”
환우는 소은에게서 들은 적이 있었다. 은빈은 과내에서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그래서일까? 자신이 소은과 사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은빈이 말을 잇는다.
“너 혹시 아직도 나 좋아해?”
“뭐, 뭐?”
당황하는 환우를 놀리는 듯한 은빈의 얼굴이 너무 매력적이다.
“뭘 그리 놀라. 나 아직도 좋아하냐고….”
“응….”
남자는 다 똑같은가 보다. 남자는 어쩔 수 없는 생물인가 보다.
역시나 남자인 환우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은빈의 질문에 긍정을 해버린다.
“…너 그럼 나랑 사귈래?”
“응…? 뭐, 뭐라고?”
잘못 들었나싶다.
“푸훗. 정말 순진하구나 너…. 나 좋아하는 마음 아직도 있으면 나랑 사귀지 않겠느냐고…. 나 쉽게쉽게 말하는 거 같지만 되게 용기내서 말하고 있는 중이야.”
환우는 미소를 띠운 채 그렇게 말하는 은빈의 유혹을 도저히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응, 좋, 좋아!”
이러면 안 되는데…. 미쳤나보다.
“그래? 너 나만 좋아해 줄 자신 있어? 나 이제 힘들기 싫으니까….”
사귀던 정혁과 무슨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환우는 그런 것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아니, 괜히 물어봤다 잘못되어 은빈의 마음이 변해버리면 그것이 더 큰일이다. 지금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응! 당연하지! 나한텐 너처럼 예쁜 여자는 정말 과분해. 그런 내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좋아할 수가 있겠어!”
환우는 소은의 웃는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도 무시해버린 채 감언이설을 늘어놓는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여자친구인 소은보다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예쁜 은빈이 먼저였다.
은빈의 얼굴에 크게 만족한 듯한 미소가 떠오른다.
“고마워…. 그럼 나 오늘부터 너의 여자친구가 될게….”
이게 꿈일까….
환우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버린다. 소은에 대한 걱정 따위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예쁜 여자애가 달콤한 목소리로 자신의 여자친구가 되어준단다.
세상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은빈은 헤어지는 환우의 입술에 살짝 입맞춤까지 한다.
이제 환우는 어떻게 해서든지 소은과 헤어져야만했다.
*
고민은 길지 않았다.
다음 날, 환우는 학교 근처 카페에서 소은과 만나기로 했다.
환우보다 늦게 도착한 소은이 자리에 앉으며 걱정스러운 말투로 입을 연다.
“어제 무슨 일 있었어? 계속 연락 안 되던데…. 집에 찾아가볼까 하다 말았는데…. 괜찮은 거지?”
환우는 자신을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는 소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다. 시선을 피한 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우리 그만 헤어지자….”
소은은 날벼락이라도 맞은 듯 깜짝 놀란다. 무슨 말인지 분명히 들었다. 다시 확인하고 싶지도 않은 끔찍한 말….
“응, 응…? 자, 장난하는 거지?”
억지 미소를 띤 얼굴로 환우에게 되묻는다. 장난이길 간절히 바라며….
“아니야. 그만 헤어지자….”
하지만 환우의 입에서 나온 말은 소은에게 장난이 아님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현실이다. 지독하리만치 잔인하고 진지한 현실….
소은은 갑자기 눈물이 펑하고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러나 울고 싶지 않아 억지로 참으며 이유를 들어보기로 한다.
“가, 갑자기 왜…?”
잠시 뜸을 들이던 환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나…. 너네 과 은빈이랑 어제 사귀기로 했어….”
“뭐, 뭐?”
소은은 남자친구인 환우가 미친 거 같았다. 뜬금없이 저게 무슨 소리인가…. 은빈이라면 과팅 때 환우가 찍었던 같은 과 동기가 아닌가. 그때 사귀었던 남자친구랑 최근에 헤어졌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 남자애가 엄청난 바람둥이라 은빈이가 견디지 못하고 헤어졌다고….
근데 갑자기 환우가 그런 은빈이랑 왜, 어떻게 사귄단 말인가?
소은은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었다.
“왜, 왜 갑자기 그 애랑….”
“그냥 그렇게 됐어….”
자세한 설명을 거부하는 환우.
소은은 그런 환우를 멍하니 바라본다.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남자친구…. 그 눈에는 첫 여자친구와의 첫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하다.
가여웠다….
환우의 성격이 어떤지 누구보다 잘 아는 자신이기에 지금 눈앞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남자친구가 너무나도 가엽다.
왜 그러냐고, 갑자기 왜 그러냐고 울며불며 다그치고 매달리고 싶었다. 하지만 환우의 두려움 가득한 눈을 보니 그럴 마음이 단 번에 사라져 버린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보내줄 줄도 알아야겠지….
애써 눈물을 참으며 빙그레 웃는 소은….
“원래 계속 은빈이 좋아하고 있었구나…. 난 그것도 모르고…. 혼자 좋아했었네….”
“그, 그런 건 아냐….”
환우는 황급히 부정해본다. 그것만은 정말 진실이 아니기에…. 하지만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말을 해도 소은에겐 가슴이 아픈 잔인한 말들일 테니….
“미, 미안해….”
결국 미안하다는 사과만을 반복한다.
하지만 소은은 여전히 웃는 얼굴을 잃지 않았다.
“괜찮아! 미안할 거 뭐있냐…. 나는 말야….”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말을 잇는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사귀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걸. 난 정말 괜찮아….”
여전히 환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나 먼저 가볼게. 학교에서 가끔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하자. 알았지…?”
소은은 그렇게 말하고는 조용히 일어나 밖으로 나간다.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멍하니 바라보던 환우는 무심결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소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앞에서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던 그녀가 사람들이 쳐다보는데도 불구하고 펑펑 울면서 걸어가는 모습이….
환우는 소은이 울며불며 매달릴 줄 알았다. 자신과 관계를 가진 것이 처음인데 어떡할 거냐고 책임지라고 울며불며 난리를 칠 줄 알았기에 이 자리에 나오기까지 많은 각오를 해야 했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들이 기우였다.
소은은 자신에게 부담주기 싫어서 그런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고 끝까지 웃으면서 자기는 괜찮다고 했다. 길거리에서 그렇게 펑펑 울 정도로 가슴 아팠으면서….
가슴이 아리다….
스스로가 세상에 둘도 없는 정말 나쁜 놈이란 생각이 든다.
그녀는 정말 마음씨 고운 천사인데….
*
환우는 스타가 된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 은빈과 함께 돌아다니면 사람들이 대단한 능력을 가진 남자인 것 마냥 동경의 눈길로 바라본다.
비록 학교에선 은빈이 아직 정혁이 때문에 좀 그렇다는 이유로 같이 다니지는 못하지만 전혀 상관없었다. 그런 것쯤은 예쁜 은빈과 사귀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감내 할 수 있었다.
스킨십 진도도 순식간에 키스까지 나가게 되었다. 은빈은 꽤나 적극적인 여자였다. 조금만 분위기가 생겨도 은빈이 먼저 키스를 해오곤 했다. 환우도 그런 그녀에게 적극적인 스킨십을 하고 싶었지만 혹시나 그녀의 기분을 언짢게 할까봐 참아내곤 했다.
그렇게 환우가 은빈과 사귄지 2주 정도가 흘렀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데이트를 하려는데 은빈이 말한다.
“환우야. 나 오늘 너 자취방에 놀러 가보고 싶어.”
“지, 지금?”
놀러 가고 싶다는 그 말뿐이었는데 환우는 야한 상상에 순식간에 흥분해버리고 만다.
“응. 지금.”
그렇게 환우는 은빈을 데리고 자신의 자취방에 오게 되었다.
“오-. 남자치고는 꽤 깔끔하게 사는데?”
왜 그랬을까….
환우는 자취방을 둘러보는 은빈에게서 갑자기 소은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우와! 의외로 깔끔하네?]
순진무구한 얼굴로 자취방을 둘러보던 소은….
환우는 재빨리 고개를 저어 그녀의 모습을 떨쳐버린다. 이제 떠올릴 이유 없잖아….
조그만 자취방에서 연인이 할 일이 뭐가 있을까.
가만히 앉아 텔레비전을 보나 싶던 둘은 어느새 뒤엉켜 뜨거운 키스를 나눈다. 먼저 키스를 해온 것은 역시나 은빈이었다. 적극적으로 환우에게 몸을 밀착시키며 키스를 하는 은빈.
그런 그녀에게 흥분을 하던 환우는 장소가 장소인지라 용기를 내기로 했다. 한 손을 은빈의 가슴으로 가져간다.
“아….”
흠칫 놀란 은빈의 몸이 살짝 떨렸지만 제지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이에 환우는 용기를 내어 적극적으로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하음….”
은빈의 가슴은 탱글탱글한 것이 소은의 가슴보다는 작았지만 탄력은 더 좋은 거 같았다. 한참을 그녀의 가슴을 탐하던 환우의 손은 이제 티셔츠 안으로 파고든다. 군살 하나 없이 매끈한 배를 지나 탄력 있는 은빈의 가슴에 도달하는 환우의 손…. 정신없이 브래지어 안으로 파고들어가 그녀의 젖꼭지를 만진다.
“하아, 하아. 환우야….”
환우에게서 입술을 뗀 은빈이 풀린 눈으로 입을 연다.
“오늘 해도 괜찮아….”
은빈의 결정적인 한마디에 환우의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만다. 그녀에게서 떨어져 빠른 속도로 옷을 벗는 환우. 그리고 그런 환우를 바라보는 은빈도 정신없이 옷을 벗어 재낀다. 환우가 미쳐 옷을 벗기도 전에 팬티까지 다 벗어버린 은빈은 스스로 다리를 벌려 누우며 남자친구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마침내 옷을 다 벗은 환우는 은빈의 다리 사이에 앉으며 자지를 넣을 준비를 했다. 은빈의 보지는 환우가 손도 대지도 않았는데 축축이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다.
“넣을게….”
“응…. 넣어줘 환우야….”
환우는 은빈의 위에서 자지를 손으로 잡고 그녀의 보지에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왜였을까….
갑작스레 소은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신의 자취방안에서 그녀와 함께 했던 나날들이….
놀란 환우는 고개를 저어 소은의 모습을 떨쳐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소은과의 기억들이 더욱더 떠오른다.
“뭐해? 안 넣고…?”
갑자기 멍하니 있는 환우가 이상했는지 그렇게 묻던 은빈은 고개를 들어 환우의 자지를 바라보았다.
아까의 위풍당당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힘없이 줄어들어 있는 환우의 자지….
“어, 어?”
은빈은 당황해 환우의 밑에서 빠져나오며 물었다.
“왜, 왜 그래?”
“어…? 응….”
환우는 은빈의 질문에 차마 대답할 수 없었다.
잠시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그리고 은빈이 그 침묵을 깨며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그럼 말이야…. 내가 그… 입으로 해줄까?”
아무 말이 없는 환우….
“나 해본적도 없어서 잘 못하지만 그래도 내가 한 번 해줄게….”
은빈은 우두커니 앉아 있는 환우에게 다가가 쪼그라든 자지를 입에 머금는다.
“읏….”
무릎을 꿇은 채 섹시한 자세로 허리를 숙여 어색하게 살짝살짝 환우의 자지를 빠는 은빈…. 그렇게 한참을 빨았지만 환우의 자지는 커질 생각을 안 한다.
그러자 점차 은빈의 솜씨가 달리지기 시작한다. 처음엔 자지 끝에만 살짝 살짝 빠는 듯했던 그녀는 입 안 가득 집어넣었다 빼거나 혀와 손을 사용해 열심히 환우의 자지를 빨아댔다.
그러나 여전히 커질 생각을 하지 않는 환우의 자지….
한참을 빨던 은빈이 갑자기 일어나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기 시작했다. 환우도 그런 그녀에게 할 말이 없어 멋쩍게 옷을 챙겨 입는다.
“나 이만 갈게.”
옷을 다 입은 은빈은 환우가 잡을 새도 없이 후다닥 나가버린다.
환우는 은빈이 나가고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녀를 잡고 싶은 마음도 연락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환우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것은 소은에 대한 추억들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뭐든지 들어주던 천사처럼 착하던 그녀….
남자친구 생일이라고 밤새 기다려 선물을 건네주고 교복을 입은 채 수줍은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흑…!”
환우는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온다. 소은과의 추억들을 생각하니 자신이 얼마나 나쁜 놈이었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듣는 사람도 없는데 눈물범벅이 되어 미친 듯이 그렇게 중얼거린다.
“너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난 정말 나쁜 놈이야….”
이젠 펑펑 울며 괴로워하는 환우….
너같이 착한 애한테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
그러나 이제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이다.
*
그 후로 며칠이 지났지만 은빈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환우도 연락을 하기 뭐해서 하지 않았지만 이대로 마냥 지낼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결말은 지어야 하니까….
그래도 환우가 연락을 하니 은빈은 순순히 받아준다. 그리고 저녁에 학교 앞 술집에서 보기로 했다.
둘은 별 말도 없이 마주 앉아 있었다. 환우는 혼자 술만 홀짝 거리고 있었고, 은빈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린다. 술집에 흐르는 음악과 주변 사람들의 시끄러운 대화소리마저 없었더라면 지금 둘 사이는 독서실만큼이나 조용한 상태였다.
“나 화장실 다녀올게.”
술집에 온 이후 은빈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응….”
은빈이 화장실에 가고 환우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최악의 분위기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역시 헤어지는 길밖에 없으려나….
그때 테이블에 놓인 은빈의 핸드폰 액정이 켜진다. 메시지가 온 것이다. 메시지 자체가 바로 화면에 뜬지라 환우는 별 생각 없이 액정을 바라보았다.
[ㅋㅋㅋㅋㅋ야 불능새끼 그만 만나고 빨리 와. 오늘 헤어지자고 말할 거라며 빨리 와서 밤새도록 박아보자.]
환우의 얼굴이 놀람과 부끄러움으로 벌겋게 달아오른다. 이게 무슨 내용이란 말인가…. 재빨리 핸드폰을 들어 메시지들을 확인한다. 예의가 아닌 것은 알지만 명목상이라도 여자친구의 핸드폰에서 저런 문자를 보았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가 있을까.
은빈의 핸드폰을 확인해보니 정말 가관이다. 경민오빠란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는 사람과 주고받은 온갖 추잡한 메시지들…. 그 메시지들을 따라 올라가다보니 자신과 하려다 실패한 날 이 남자와 만나서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날 은빈이 남자에게 보낸 메시지는 추잡함의 종지부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 짜증나 오빠 나 새로 생긴 남친 발기부전이얔ㅋㅋㅋㅋ 아 진짜 짜증나 얼굴 잘생긴 새끼들은 얼굴값해서 짜증나서 그냥 대충 데리고 다닐만한 애 만나려고 한 건데 아 난 걸려도 어떻게 이런 새끼가 걸리지? 내가 순진한척 살짝 빨다가 안되겠다 싶어서 그새끼 거 존나 열심히 빨았거든? 근데도 안 서는데 어떻게 해야됰ㅋㅋㅋ]
은빈의 메시지를 다 확인한 환우는 조용히 그녀의 핸드폰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화도 나지 않는다. 저렇게 예쁘게 생긴 여자가 남자와 이런 메시지들을 주고받다니….
잠시 후 은빈이 화장실에서 돌아와 자리에 앉자 조용히 일어나는 환우.
“우리 그만 헤어지자.”
“…뭐?”
화장실에서 돌아온 은빈은 갑작스런 말에 황당하다는 듯 환우를 올려다본다. 그러나 환우는 뒤도 안돌아보고 돌아서 술집을 나왔다.
*
무작정 밤거리를 걷는 환우.
기분이 울적하다고 해야 할까…. 화가 나는 것도 아니고 슬프지도 않다. 그렇다고 힘든 것도 아니다. 그냥 울적하다.
소은을 보고 싶었다. 이번 일로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소은이라고…. 은빈 대신 소은이라는 야비한 마음이 아니었다. 은빈과 관계를 가질 뻔한 날 떠올랐던 소은에 대한 기억들…. 확실했다. 자신은 소은을 사랑한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행동에 옮기기까지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소은에게 연락을 해보기로 했다. 그녀가 연락을 받지 않는 일은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녀의 착한 성격은 누구보다 잘 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의 연락을 받아줄 것이다.
몇 번의 통화음이 지난 후 소은의 음성이 들려왔다. 특유의 높은 음색으로 밝게 전화를 받아주는 그녀.
[여보세요?]
“응. 소은아…. 아, 안녕.”
[응. 환우야. 웬일이야?]
“…응. 뭐해?”
[그냥 컴퓨터하고 있었어.]
“그래…. 저기 혹시 술 한 잔 하지 않을래?”
잠시 소은의 말이 없다가 이어진다.
[지금…?]
“응….”
다시 말이 없는 소은. 하지만 이내 밝은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그래. 오랜만에 너 보는 건데 나가야지.]
역시 천사 같은 마음씨의 소은이었다.
*
소은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학교 근처까지 나와 주었다. 이렇게 되면 소은은 집에 택시를 타고 가지 않는 이상 갈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 문제에 대해선 환우도 소은도 특별히 입을 열지 않았다.
근처 술집에 들어가 마주 앉는 두 사람.
어색하다…. 2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둘 사이의 분위기가 너무나도 어색했다. 환우는 말없이 테이블만 바라보고 있었고, 소은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긴장된 기색은 숨길 수 없었다.
결국 소은이 밝은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연다.
“…벌써 어디서 한잔하고 왔구나?”
“어? 응….”
환우의 짧은 대답을 끝으로 다시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잠시 후 주문한 술과 안주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분위기는 계속되고 있었다. 말없이 술만 따라 마시는 두 사람….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소은이었다.
“…은빈이랑은 잘 사귀고 있어?”
“…방금 헤어지고 왔어….”
놀라는 소은.
“갑자기 왜?”
“그냥…. 그럴 일이 있었어.”
대답하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이는 환우인지라 소은은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응. 그렇구나….”
“미안해.”
갑자기 환우가 뜬금없이 사과를 한다.
“응?”
“너한테 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해.”
환우는 여전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그렇게 계속해서 소은에게 사과를 했다.
“에이. 아냐…. 예전 일인데….”
소은은 웃는 낯으로 환우의 사과를 받아준다. 분명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웃음이지만 환우 앞에서 슬픈 기색은 보이지 않으려 애를 쓰는 그녀였다.
소주 한 병을 비웠을 무렵 환우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나 돌아갈 수 있을까?”
“뭐?”
무언가 분명히 들었지만 자신의 귀를 의심케 하는 말에 다시 한 번 반문하는 소은. 환우는 그런 그녀를 위해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이번에는 조금 더 명확한 내용을 담아서….
“나 너한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소은도 이번엔 무슨 말인지 확실히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놀람으로 커다래진 소은의 두 눈에 촉촉이 물기를 만들었다.
놀란 것도 잠시, 이내 눈물이 가득 고인 소은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진다.
“짧은 시간 이었지만 난 항상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는걸. 아니…. 혹여 그 시간이 더 길어졌다 해도 난 여기서 너를 기다리고 있었을 거야.”
소은의 말에 환우는 놀라 고개를 들었다. 오늘 소은과 만나고 처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바라 본 것이다. 커다란 두 눈에 눈물 한 가득 고인 채 자신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있는 그녀…. 천사의 모습이 따로 있을까.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바로 천사였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본 환우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
놀란 소은은 환우의 옆자리로 와 다독였다.
“왜 울어 바보야….”
소은이 다독이자 환우의 감정이 더욱 북받쳐 오른다. 이내 소은의 품에 안겨 아이처럼 펑펑 울어버리는 환우….
“바보….”
소은도 자신의 얼굴에서 흐르는 눈물을 쉼 없이 닦아낸다. 환우가 돌아와 준 기쁨의 미소만은 잃지 않으며….
그날 소은은 환우의 집에서 자고 갔다. 예전처럼 밤새도록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며 뜨겁게 뜨겁게….
덕분에 다음 날 집에 들어간 소은은 부모님에게 엄청나게 혼났다며 환우에게 애교 섞인 투정을 부려야 했다.
그리고 환우는 소은이 무엇보다 고마운 것은 은빈에 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묻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치 그 잠깐 사이에 아무런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환우는 소은과 다시 사귀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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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다음편부터 시작이군요..
6
그 후로 환우는 변하기 시작했다. 소은을 진심이 담긴 마음으로 대하니 그녀를 아껴주기 시작한 것이다. 예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집으로 불러들여 관계를 가졌지만 이젠 그녀와 키스를 나누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했다.
기말고사 공부를 하려고 소은을 자신의 집에 불렀을 때도 그녀를 함부로 건드리지 않고 공부에 집중했다. 끝나면 그녀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까지 데려다주고…. 그것도 매번 데려다주려는 걸 소은의 만류로 가끔씩 그래야만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갈 무렵 함께 자취방에서 공부하던 소은이 웃는 낯으로 생글거리며 환우를 바라본다. 소은에게 신경 쓰지 않고 공부에 몰두하던 환우는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래?”
“아냐. 헤헤….”
아무것도 아니라지만 여전히 웃는 낯으로 바라보는 그녀.
“뭐야. 뭔데 그래….”
환우가 계속해서 묻자 소은이 밝게 웃으며 입을 연다.
“너 많이 변한 거 같아….”
“내가?”
“응. 정말 많이….”
소은의 얼굴에는 행복한 기색이 가득했다. 요새 정말 행복한 것이 사실이니까. 환우와 사귀고 나서 요즘처럼 행복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처음 환우와 사귄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 좋진 않았다. 그냥 좋아하는 사람과 사귀게 되어서 좋다 정도였다. 게다가 사귀고 나서 초반은 어떠했었나. 환우가 자신의 몸만 원하는 듯해서 많이 섭섭했던 적도 있지 않았었나. 하지만 그런 건 아닐 거라는 생각으로 버텨왔던 것인데 요새는 달랐다. 정말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이 환우에게서 느껴지니까….
환우는 행복해하는 소은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지 안다. 자신의 무엇이 변했는지도….
“응…. 너 많이 아껴주고 싶어.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정말 진심이 가득 담긴 환우의 말. 그걸 모를 리 없는 소은이 환우에게 와락 안긴다.
“나도 사랑해 환우야….”
그렇게 환우에게 잠시 동안 안겨있던 소은이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입을 열었다.
“우리 여름방학 때 바닷가 놀러가자!”
갑작스러운 소은의 제안에 환우는 놀랐다. 외박도 안 되는 그녀가 여행이라니….
“우리 둘이?”
“응. 그럼 우리 둘이 가지!”
“너 외박도 안 되는 애가 어떻게 남자친구랑 여행을 가.”
환우의 말에 소은이 귀여움이 가득 담긴 사악한 미소를 짓는다.
“에이. 여대생이 남자친구랑 여행 하나 못 갈 거 같아? 대한민국 여대생이 엠티 간다는 건 다 남자친구랑 둘이 여행 간다는 거야!”
“뭐? 하하.”
소은의 깜찍한 말에 환우는 웃음이 나왔다. 사랑하는 그녀와 바닷가로 여행을 가다니…. 생각만 해도 행복한 일이었다.
당연히 환우는 찬성이었다.
“그래. 8월 초쯤에 가기로 하고 음…. 돈이 없으니까 여름방학에는 아르바이트해서 돈 모아서 가기로 하자.”
“히힛. 그래!”
소은은 다시 한 번 환우의 품으로 뛰어든다.
너무 좋다. 사랑하는 사람과 이렇게 함께한다는 것이….
*
기말고사가 끝나고 동시에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환우와 소은은 약속대로 8월 초쯤에 여행을 가기 위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로 했다. 환우는 시급이 센 마트 물류창고 정리를 하기로 했고, 소은은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선택했다.
데이트는 토요일만 하기로 했다. 하지만 1주일에 한 번 만나는 거라 아침 일찍 만나 밤늦게까지 함께 있다가 헤어지곤 했다.
그렇게 7월 중순쯤이 되었다. 여느 토요일과 다름없이 데이트를 한 환우와 소은. 저녁을 먹고 근처를 돌며 구경이라도 하려하는데 소은의 태도가 평소와 다르다. 왠지 안절부절 거리며 무언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자꾸 쭈뼛쭈뼛 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걷질 못하고 있었다.
이상스레 여긴 환우가 물었다.
“소은아 왜 그래? 다리 아파?”
“아니 그게 아니라….”
“응? 그럼 왜 그래?”
굉장히 망설이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소은. 분명 무언가 할 말이 있는 거 같았다.
환우가 재차 물었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나한테 못할 말이 뭐가 있어.”
환우가 그렇게까지 얘기하자 소은이 조심스레 입을 연다.
“…저, 저기! 나 너네 집에 가고 싶어!”
소은의 표정은 무언가 결연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환우는 그런 소은의 표정을 보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런 말을 뭐 저렇게까지 긴장해가면서 어렵게 이야기 한단 말인가.
“하하. 그게 뭐 그리 어려워.”
“그게 다가 아냐!”
소은은 또 할 말이 남아 있단다.
“응? 또 뭐?”
이번엔 소은의 목소리가 굉장히 작아진다. 환우에게만 들릴 듯한 목소리로.
“있잖아…. 저기…. 앞으로 데이트하고 나면 너네 집에 들러서 꼭 하고 가면 안 될까?”
“응?”
소은의 의외의 말에 환우는 꽤 놀랐다. 소은이 먼저 저런 말을 하는 건 처음이었다. 놀라는 환우를 무시하고 그녀의 말이 이어진다.
“저기 그…. 예전엔 매일같이 하다가 요새는 거의 뜸하게 하잖아. 7월 달 들어서도 한 번도 안했고….”
여기까지 말하고 난 소은은 배시시 웃더니 다시 말을 잇는다.
“헤헤…. 이 말 진짜진짜 되게 용기내서 하고 있는 중이야. 환우랑 그거 하고 싶기도 하고, 또 혹시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진 건 아닌가 하는 걱정까지 들어서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살짝 고개를 숙이는 소은의 얼굴엔 약간의 근심이 서려있다. 정말 용기내서 한 말, 그리고 자신이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건가 하는 걱정까지…. 이 고민은 여자가 할 수 있는 고민 중 가장 크나큰 고민 중 하나가 아닌가.
환우는 그런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리고 그녀를 너무 아껴주기만 했던 자신의 경솔함이 원망스러웠다. 그녀의 좋은 남자친구가 되려면 이런 세심한 부분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야 했던 건데….
“너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다니. 그럴 리가 있어? 그럼 내가 처음에 그렇게 너와 하고 싶었던 건 어떻게 되는 거냐…. 단지 나는 널 아껴주고 싶어서 그래왔던 거니까. 전혀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환우는 소은을 살짝 안으며 말을 잇는다.
“나에게 있어 최고의 여자는 바로 너야.”
그 말에 소은은 환우의 품으로 한껏 파고들었다.
그 길로 둘은 환우의 자취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평소와 다르게 격정적으로 관계를 가지기 시작했다.
들어서자마자 선 채로 거칠게 키스를 하는 둘. 이리저리 비틀거리며 키스를 하던 둘은 결국 넘어지듯 누워서까지 길게 키스를 이어 간다.
환우는 밑에 깔린 소은의 몸 이곳저곳을 마구 만지다 그녀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곤 그녀의 커다란 가슴을 움켜잡고 거칠게 주무르기 시작한다.
“아…!”
소은은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환우의 손길을 느꼈다. 오랜만에 환우와 나누는 진한 스킨십….
한참을 소은의 가슴을 주무르던 환우는 그녀의 진분홍빛 티셔츠를 벗겨버렸다. 그리곤 브래지어를 풀자 소은의 커다랗고 새하얀 가슴이 출렁하며 나온다. 어김없이 그녀의 젖꼭지를 입에 머금는 환우.
“아흠!”
환우의 혀가 소은의 젖꼭지며 가슴, 온몸 곳곳을 핥는다. 그럴 때마다 소은의 몸은 이리저리 비틀리며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환우의 혀가 점차 아래로 내려온다. 소은의 새하얀 배와 앙증맞은 배꼽을 지나자 환우의 혀에 그녀의 청치마가 걸린다. 벗겨버릴까 하다가 그냥 치마를 위로 올리며 그녀의 허벅지를 잡아 활짝 벌렸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그녀의 하얀색 팬티. 그러나 이미 소은의 비밀스러운 부분이 젖어오기 시작했는지 그녀의 팬티 가랑이 부분은 색깔이 변해 있었다.
흥분할 대로 흥분한 환우는 거침없이 그녀의 팬티를 벗겨 내려버린다. 허리를 살짝 들어 도와주는 소은.
팬티를 벗기고 다시 허벅지를 세우듯 벌리자 소은의 흠뻑 젖어 있는 보지가 드러났다. 환우는 소은의 보지가 처음 봤을 때와는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는 정말 굳건히 닫혀있던 스무 살 꽃보지였는데 지금은 자신과의 잦은 관계로 소음순도 약간 밀려 나와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이 다 무슨 상관이랴.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친구이다. 게다가 자신과만 관계를 가져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닌가.
환우의 혀가 망설임 없이 소은의 보지에 닿는다.
“하음! 화, 환우야. 오늘 땀 많이 흘렸어! 씨, 씻고.”
그러나 환우는 괜찮다는 듯 연신 소은의 보지를 핥았다. 소은은 물이 많은 여자였다. 환우의 혀로 자극 받아 엉덩이까지 타고 흐를 정도로 끊임없이 물을 흘리고 있었다.
“하악, 하악….”
소은은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환우의 혀를 느낀다.
한참을 소은의 보지를 핥던 환우는 얼른 일어나 옷을 벗었다. 그리고 커다랗게 발기된 자지를 문지르며 소은의 다리 사이에 앉았다. 바닥에 이불을 깔지 않아 무릎이 엄청 아프겠지만 상관없었다. 지금 이 격정적인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다.
환우의 자지가 힘차게 소은의 보지 안으로 들어간다.
“하윽!”
소은이 환우를 힘껏 껴안는다. 오랜만에 들어오는 남자친구의 자지…. 정말 하고 싶었다. 환우와 자주 관계를 가지게 되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자신은 은근히 밝히는 여자라는 것이었다. 환우와 데이트를 하면 마지막엔 꼭 하고 싶었고, 키스만 해도 아래쪽이 축축이 젖어오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환우가 안에 싸주는 것이 정말 좋았다. 안에 뜨거운 액체가 가득 찰 때의 그 느낌…. 다른 어떤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환우와 자주 관계를 가질 수 없었다. 애가 탔다. 여자가 먼저 말하기도 좀 그렇고…. 결국 집에서 가끔 자위를 하게 되는 경우까지 이르렀다. 아침에 일어나 이불안으로 쏙 들어가 이미 축축이 젖어 있는 보지를 문지르며 터져 나오려는 신음소리를 참아야 했다.
그러다가 결국 먼저 환우에게 말한 것이다. 하고 싶다고….
환우의 자지를 받고나니 역시 말하길 잘한 것 같다. 역시 자신은 밝히는 여자였다.
“하윽, 하윽. 환우야. 하윽.”
열심히 소은의 보지에 박아대던 환우는 그녀의 변화에 꽤 놀랐다. 자신의 움직임에 맞춰 열심히 허리를 들썩거리는 소은…. 조금 더 자신의 자지를 깊숙이 받으려고 애를 쓰는 그녀의 모습에 적잖이 놀라야 했다.
“하앙! 환우야! 하음 하앙…. 아흥!”
그리고 무엇보다 변한 건 저 신음소리…. 그녀 특유의 높은 음색과 어우러져 묘하게 색기를 뿜어내는 저 신음소리는 분명히 예전과 달랐다. 예전에는 혹시라도 다른 방에 들릴까봐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이젠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허나 그녀의 변화된 모습이 싫을 리 없었다. 오히려 더 자극을 받는 환우였다.
이런 저런 체위로 바꿔가며 한참을 관계를 가지던 환우는 이윽고 사정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헉, 헉. 소은아 나 쌀게.”
“응. 응. 하윽. 환우야 안에다 싸줘. 하윽.”
“안전한 날이야?”
“응! 하윽! 하으음! 응 안에다가! 하앙!”
눈을 감은 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환우는 금방 사정하고 만다.
“하아아앙-!”
소은은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보지 안에 가득 차는 환우의 뜨거운 정액을 느낀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이 느낌….
잠시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여운을 즐기던 둘이 떨어진다. 소은의 보지에서 환우의 자지가 나오자 많은 양의 정액이 미끄덩하고 흘러내린다.
소은은 이 느낌도 좋았다. 엉덩이 쪽으로 타고 흐르는 이 뜨거운 액체의 간지러운 느낌이….
서로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 있는 두 사람. 소은은 환우의 머리를 만지며 묻는다.
“무릎 안 아파?”
“안 아파. 아픈 것보다 좋은 게 더 컸으니까.”
“히히. 그렇게 좋아?”
“응 너 오늘 묘하게 섹시해서.”
“히힛? 정말?”
좋아라하며 환우의 품으로 파고드는 소은. 환우가 참 좋았다. 예전에도 좋았지만 이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느껴져서 더 좋아졌다.
환우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 소은이었다.
*
7월 말이 되면서 여름의 무더위는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환우와 소은은 전처럼 토요일에만 만나 데이트를 했으나 변한 것이 있다면, 이젠 꼭 데이트가 끝나고 환우의 집에서 관계를 가진다는 것이었다. 환우는 소은과 관계를 가질 때마다 그녀가 점점 더 적극적으로 변해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왠지 야한 여자가 된 거 같은 느낌? 명확히 말로 설명할 순 없었지만 표정이나 몸짓, 신음소리 하나하나가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소은의 착하고 순수한 성격이 변한 것은 아니었다. 예전처럼 환우만 바라보며 헌신적으로 잘해주는 그녀 특유의 천사 같은 성격은 그대로였다.
7월 말쯤엔 소은의 과 학생회에서 LT를 가기로 한 날이 있었다. 처음에 소은이 환우에게 LT를 간다고 했을 때 환우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나 싶어 반문한 적이 있다.
“LT? 그게 뭔데?”
“리더십 트레이닝이래….”
그런 설명에 결국 환우는 웃음까지 터트렸었고…. 말이 리더십 트레이닝이지 그냥 가서 술 마시고 노는 거 아닌가?
결국 환우가 예상한 대로였다. 소은도 리더십 트레이닝이라는 거창한 말에 조금은 기대를 가지고 떠났지만 흔히들 가는 MT와 다를 바가 없었다. 처음에 가서 수첩 들고 몇 글자 끼적인 걸 빼면 완전한 MT였다.
소은이 LT에 가서 이번 토요일은 집에서 혼자 보내게 된 환우. 계속해서 소은의 생각만이 떠오른다. 과 학생회면 분명 그 학생회장이라는 정한태라는 놈도 갔을 텐데…. 예전에는 별로 신경 쓰이지도 않았었다. 소은이 과 학생회 사람들이랑 술을 마신다고 해도 걱정 한 번 안 해주고 집에서 쿨쿨 잠만 잤을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휴우…. 이거 괜히 신경 쓰이네.’
하루 종일 집에 누워 소은과 간간히 문자를 주고받던 환우는 설상가상으로 밤에 그녀의 문자가 끊기자 별별 생각이 다 든다.
그 정한태라는 놈이 소은을 유독 챙겨주는 거 같았는데….
“으악-!”
환우는 비명을 질렀다. 머릿속에 떠올리면 안 되는 상상까지 해버렸기 때문이다. 안되겠다. 전화라도 해봐야겠다.
소은에게 전화를 걸자 잠시간의 연결음이 지난 후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약간 취한 듯했다.
[여부세요?]
“응…. 잘 놀고 있어?”
[웅. 지금 학생회 사람들이랑 술 마시고 이썽.]
술에 취한 듯 소은의 혀가 약간 꼬인다.
“혹시 그 정한태라는 놈도 갔니?”
[응? 응…. 왜?]
“아냐. 그냥…. 조심해서 놀아.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고. 그 선배 옆에 있지 말고.”
환우가 그렇게 걱정을 하자 잠시 소은의 말이 없다. 환우는 갑작스런 그녀의 침묵에 덜컥 걱정이 났다. 자기가 너무 지나친 간섭을 한 것일까….
막 사과를 하려는 데 곧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헤헤. 나 환우 정말 진짜 너무 좋다….]
“응, 응?”
화가 났다고 생각했던 소은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환우 예전에는 말야…. 내가 과 사람들이랑 늦게까지 술 마시고 그래도 전화 한 번, 문자 한 번 없었어…. 그때는 많이 섭섭했었는데…. 근데 이제는 이렇게 나 걱정도 해주고…. 헤헤. 나 사랑받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정말 좋아.]
환우는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그녀 말이 맞았다. 예전에는 정말 그렇게나 무심했었다.
“응…. 난 너가 잠깐 말이 없기에 내가 너무 지나치게 간섭해서 화났나 싶었어.”
[에이. 아니야. 난 환우가 이렇게 참견해주는 것도 다 좋아. 그만큼 나 사랑하고 생각해준다는 건데.]
“그래. 그럼 다행이다. 사람들이랑 있는데 길게 통화 못하지? 재밌게 조심해서 놀아.”
[웅. 알았어!]
소은의 밝은 목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긴다. 그녀와의 통화를 마친 환우는 이제 안심이 되었다.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까지 생각하는데 무슨 일이 있으려야 있을 수가 없었다.
‘정말 소은이는 너무 착해. 최고다.’
기분이 좋은 환우였다.
*
8월 달이 되었고 환우와 소은은 드디어 둘만의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주말을 이용한 1박 2일의 짧은 스케줄이었지만 둘이 떠나는 첫 여행이기에 무척이나 설레는 두 사람이었다.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동해로 향했다. 동해역에서 내려 근처 마트에서 장을 보고 나오자 예약해둔 펜션의 주인아저씨가 나와 있었다. 주인아저씨의 차를 타고 펜션에 도착하자 아저씨가 한마디 하신다.
“성수기 주말인지라 오늘 손님은 다 젊은 커플이네요.”
환우와 소은은 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2층에 있는 방으로 올라갔다. 아저씨가 열어 주시는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옆방에서 젊은 남녀가 나온다. 젊은 남녀라지만 스무 살의 환우와 소은보다는 나이가 있어 보였다.
옆방의 커플이 스쳐지나가자 소은이 환우의 옆구리를 살짝 꼬집는다. 환우의 시선이 멍하니 여자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왜?”
“너 뭘 그렇게 보니? 흥!”
소은은 화가 난 듯 재빨리 방으로 들어갔다.
아저씨가 안내를 마치고 돌아간 후에도 소은은 무언가 화가 났는지 계속해서 뾰로통한 상태이다.
함께 짐정리를 하던 환우는 그녀가 왜 그런지 몰라 조심스레 물었다.
“너 왜 그래?”
“뭐!”
“아니 계속 화가 난 거 같아서….”
소은의 눈이 가늘어진다.
“너 몰라서 묻니?”
“응? 뭘?”
“너 아까 그 여자 계속 뚫어지게 바라봤잖아. 지나가고 난 다음에도 뒤돌아서까지 보더라?”
“내, 내가?”
소은의 말에 환우는 무척 당황했다. 여자를 보긴 봤었는데 자기가 뒤돌아서까지 봤다고? 무의식중에 그랬는지 기억에 없다.
소은의 화난 목소리가 이어진다.
“흥. 됐어. 앞으론 그러지마.”
“알았어. 미안해….”
환우는 그렇게 사과했지만 소은의 화는 아직 풀리지 않았다. 사실 소은이 화가 난 이유는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짐정리를 마치고 해수욕장으로 놀러가기 위해 수영복으로 갈아입기로 했다. 화장실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소은을 본 환우는 너무나 예쁘고 귀여운 그녀를 향해 달려가 꼭 안았다. 노출이 많은 비키니는 아니지만 그녀에게 너무나 잘 어울리는 파스텔 톤의 많은 레이스가 달린 귀여운 비키니였다. 게다가 소은의 가슴이 꽤 큰 편이라 귀여운 비키니임에도 불구하고 꽤나 섹시한 느낌을 풍겼다.
환우는 비키니를 입은 그녀를 보자 갑자기 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소은아 우리 하고 나갈까?”
“지금? 에이…. 이따 밤에 계속 할 건데. 지금 힘 빼지 말자.”
그녀의 콧소리 섞인 말에 환우는 조금 참기로 한다.
“그래? 아싸. 빨리 밤이 왔으면 좋겠다.”
둘은 위에 옷을 대충 걸치고 해수욕장으로 가기 위해 밖으로 나선다. 그러자 아까 나갔던 옆방 커플과 다시 마주친다. 어딜 나갔다 들어오는 모양이다.
소은은 환우가 또 그 여자를 쳐다보지 않을까 재빨리 지나가려다가 남자의 시선을 느꼈다. 자신의 가슴으로 향해 있는 남자의 시선을….
‘뭐야 저 사람. 짜증나….’
그러나 환우에게 말하기도 뭐해서 재빨리 환우의 손을 이끌고 자리를 뜨는 소은이었다.
8월초의 해수욕장은 사람들 천지였다.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그저 둘이 물에 들어가 간단히 물을 뿌리는 정도밖엔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첫 여행인지라 들뜬 마음에 제법 재밌게 논 두 사람. 하루 종일 뙤약볕에 노출되어 뜨거워진 몸을 이끌고 펜션으로 돌아왔다. 한숨 기분 좋게 자고 일어나 텔레비전을 보며 저녁을 먹고 술을 마시려 하는데 누군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갑작스레 두드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소은을 진정시키며 환우가 큰소리로 물었다.
“누구세요?”
“예. 저기 옆방에 온 커플인데요.”
제법 굵직한 목소리로 자신을 소개하는 남자. 환우는 아직 문을 열지 않고 한 번 더 물었다.
“예. 근데 무슨 일이시죠?”
“아뇨. 혹시 괜찮으시면 저희 커플이랑 같이 술 마셨으면 해서요.”
확실히 옆방에 온 커플 같았다. 환우는 더 이상 문을 안 열기도 뭐해서 소은을 한 번 바라보곤 문을 열었다. 그러자 짧게 수염을 길러 거친 인상을 풍기는 남자와 여우 같은 눈매의 여자가 나란히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아까 낮에 두 번이나 마주쳤던 옆방 커플이었다.
“안녕하세요.”
남자의 인사에 환우도 꾸벅 인사를 한다.
“예. 안녕하세요….”
“괜찮으시면 저희랑 같이 술 한 잔 하셨으면 해서요. 그냥 심심하게 둘이 마시는 것 보다 넷이 이야기하면서 마시면 더 좋을 거 같아서요.”
남자는 그렇게 이야기하며 안쪽의 소은을 한 번 바라본다. 남자와 눈이 마주쳐버리고만 소은. 재빨리 눈을 피했다.
환우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연다.
“아. 저기 그럼 잠깐 기다려 주시겠어요? 여자친구한테도 물어봐야 돼서요.”
“예. 그럼요.”
남자가 동의하자 환우는 문을 닫고 소은에게 와 물었다.
“어때?”
“뭐가?”
그러나 왠지 냉랭한 반응의 소은.
“저 커플이랑 같이 놀까? 나쁜 사람들 같진 않은데?”
“넌 어떤데?”
“난 뭐 괜찮은데. 여럿이서 놀면 왁자지껄한 게 더 재밌을 거 같고….”
환우의 대답에 소은의 표정이 다시 냉랭해진다.
“흥. 그렇겠지.”
그녀의 심기가 불편한 이유를 모르는 환우는 갑작스런 그녀의 반응에 어리둥절했다.
“어? 왜 그래…?”
소은은 한숨을 한 번 쉬고는 약간은 진정이 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냐. 너 놀고 싶으면 그렇게 하자.”
“응, 응….”
환우는 소은이 그렇게 말하자 다시 문 쪽으로 갔다. 소은은 그런 환우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 옆방 커플 여자…. 여우 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