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그녀는 이중인격자...6편
우리는 외모가 어떤 이의 평가에 50% 이상을 결정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언젠가 EBS에서 재미있는 실험을 한 적이 있다. 어떤 평범하게 생긴 30대 중반 남성을 쇼원도에 세워놓고
한번은 그냥 청바지에 체크 남방 흰티셔츠를 입혀 놓고, 한번은 깔끔한 고급 정장을 입혀 놓은 다음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일 것인가 점수를 매겨보라고 했었다.
평범한 일상복의 경우 연봉 3천 만원 미만에 결혼도 못하고 식당에서 무나 썰고 차는 잘해봐야 봉고에 매우 게으르고 나태할 것 같다는 응답이 나왔고,
고급 정장을 입고 있을 때는 연봉 8천 만원 이상에 변호사 등의 전문직 종사자에 차는 외제차 그리고 성격은 매우 자상하고 따뜻할 것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뭐 그 시험이 정확하고 객관적이냐? 사람이란 오래 두고 봐야 하는거 아니냐?하는 질문은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현대인들은 그 사람을 객관적이고 상세하게 알려고 하기보다는
외모만을 보고 선입견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니까
-HANG OVER(숙취)-
충격에 휩싸여
마녀가 천사의 미소를 지으며
욕실로 들어갈 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욕실 문이 "딸깍"하고 닫혔을 때,
어둠이 다시 모텔 방안을 감싸왔을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정신이 나갔다.
허겁지겁 그야 말로 정신 없이 휘청휘청 거리며 모텔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엘레베이터를 탔을 때 엘레베이터 벽에 걸린 거울에 비취진
벌거벗은 몸을 보고 나서야 옷을 안 입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행히 그 경황 중에도 옷은 챙겼나 보다. 왼손에 바지 오른손에 윗옷이 구겨진 채 들려 있었다.
허겁지겁 옷을 입었다. 바지는 거꾸로 입은 듯 불편 했고 윗옷은 뒤집어 입혀졌다.
하지만 그런 것을 신경 쓸 경황 따위는 없었다.
"띵"
1층에 도착했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는 심정으로 뛰쳐 달려나갔다.
"어이! 이봐 당신 뭐$%#@@#@#!!"
모텔 입구 사무실에서 종업원이 뭐라 뭐라 떠드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달렸다.
아스팔트의 딱딱한 감촉이 느껴진다. 맨발이다. 신발은 안 챙겨왔나 보다. 무시하고 달렸다.
숨이 턱에 차오를 때쯤, 발바닥에서 무언가 뜨끔한 감촉과 함께 발에 힘이 턱 하니 풀렸다.
"우당탕탕" 나동그라 지면서 어느 가게 앞 간판에 부딪혔다.
엉망진창이다 엉망진창.
내 꼴이 정말 엉망진창이었다.
아팠다.
온몸이 아팠다.
간판에 부딪힌 어깨도 아프고
넘어지면서 바닥에 찧여 버린 무릎도 아프고
깨진 병 조각에 찔려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맨발바닥도 아프고
그리고 무언가 답답한 멍울 같은게 맺혀있는 듯한 가슴도 아프고
지랄 같다.
지랄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군대에서도 그렇게 큰 소리로는 해보지 못한 힘찬 함성이 5초간 발사되었다.
멍울이 조금 풀린 듯 하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절뚝거리며 일어서니 지나가던 사람들이 힐끗힐끗 쳐다보며 지나간다.
차가운 , 이질적인, 감정 없는 시선으로
마치 동물원 동물을 보는 듯 쳐다보며 지나가는 사람들.
이 빌어먹을 도시가 서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준다.
이 좃같은 도시는 사랑이 없다. 섹스만 있다.
이 젠장 맞을 도시는 정이 없다. 사정만 있다.
이 씹할 도시는 위로해줄 곳도 없다. 씹질 할 곳만 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지나가는 곳은 인정 없는, 개인주의의 극단을 달리는 가장 최첨단의 거리.
H대학교 앞이다.
클럽!
철저히 개인화된 외로운, 그 외로운 중생들이 외로움을 잊기 위해 쾌락의 몸부림을 치는 곳
쾌락의 몸부림의 최신의 최첨단의 최적화된 진화 형태.
클럽이 밀집된 이곳 환락의 길거리를
피투성이 맨발로 바지는 뒤집어 입고 윗옷은 앞뒤를 거꾸로 입고
그렇게 터덜터덜 걷고 잇다.
젠장..젓 같다. 기분이 더럽다.
절뚝거리며 그렇게 자취방을 향해 클럽이 밀집된 이곳을 가로 질러 걸었다.
거지같은 기분은 최대가 된다..
그제서야.... 거지같은 기분이 극대화 되어서야 이성이 돌아왔다.
정신이 제자리를 찾았다. 평소에 나로 돌아왔다.
이기적이고 철저히 계산적이고 이성적인 내가 되었다.
곰곰이 나를...그리고 상황을 돌아보았다.
속았다. 철저하게 속았다
바보 같다. 이런 머저리, 천치, 밥충이
그것도 한번도 아니고 두번 속은 것이다.
진짜 학습능력도 없는 아메바, 말미잘, 이구아나 같은 바보탱이
마녀가 핑크색 원피스를 입었을 때 이미 한번 속았었다.
그리고 그 실수의 결과는 "고자"라는 핍박, 조롱과 야유였다.
그렇게 당해 놓고도 또 속았다.
그리고 이번엔 진짜 철저하게 속았다. 정말 분노와 배신감이 뼈에 사무친다.
내가 사랑해 라고 속삭였을 때, 내가 목걸이를 목에 걸어주었을 때
마녀는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을까?
"이 고자 병신 새끼 아이고~ 목걸이 하나 공짜로 얻었네~ 키득키득" 했겠지.
억울하다. 아니 한심스럽다.
어떻게 그걸 눈치 못챘을까? 어떻게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한달 동안 내내 봐온 천사의 얼굴과 그 ‘고자’ 난리까지 겪은 마녀의 얼굴이 닮았다는 걸 왜 생각 못했을까?
그녀의 첫인상 때문에? 하긴 천사인 그녀의 첫인상과 마녀인 그녀의 첫인상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첫인상이 3초 만에 결정되고 그것이 바뀌는데 60일이 걸린다는 것은 진짜였다.
천사와 마녀의 첫인상은 도저히 두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의 말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를 만난 장소 때문에? 하긴 천사인 그녀를 만난 장소와 마녀인 그녀를 만난 장소에 의한 선입견도 크긴 크다.
매일 아침6시 그야말로 부지런하고 성실한 시간 그리고 바쁘게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편의점과
매주 주말 12시 환락과 쾌락이 절정이 되는 시간 게다가 그 환락과 쾌락의 정점에 서있는 요란하고 퇴폐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클럽,
두 장소의 차이는 너무나 컸다.
그녀의 옷차림 때문에? 하긴 천사인 그녀의 조신한 옷차림과 마녀인 그녀의 섹시한 옷차림은 보는 느낌 자체가 다르다.
그녀의 옷차림의 차이는 시골학교에 처음 부임 온 교생선생님의 옷차림과 단란주점 나가요 아가씨의 옷차림의 차이를 보는 듯 하다.
그녀의 머리스타일과 화장 때문에? 하긴 천사인 그녀의 단정하게 빗어 넘겨 머리끈으로 단단히 묶어서 이마가 훤히 드러나는 얌전하고 청순한 이미지의 머리스타일과 그야말로 기초적인 화장만을 한 천사스타일에 비해 마녀의 섹시하게 강조된 눈화장과 입술 볼터치된 화장과 자연스럽게 풀어 늘어뜨려 춤출 때마다 섹시하게 흩날리는 생머리는 분위기가 너무나 다르다.
젠장!!! 맨정신에는 도저히 집에도 못 들어 갈 것 같다.
주머니를 뒤져보려는데 헛손질 한다.
바지가 자꾸만 흘러 내리는 기분이다.
뒤집어 입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지 지퍼를 푸르고 바지 안으로 손을 넣어 뒤적거렸다.
지나가던 사람들의 경악스러운 시선. 내 주위 3미터에 울타리가 생긴 듯하다.
플레밍이 파란 곰팡이를 발견한 순간, 페니실린 주변에 얼씬도 못하던 하얀 곰팡이균을 보듯이
무심하게 그들을 바라 보았다.
"크크큿 페니실린은 주목 받았지만 하얀곰팡이 네놈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페니실린을 발견한 위대한 순간과 같은 희열 대신에
내가 주변에 차단되는 찝찝함이 가득하다.
거지같은 기분인데 더 거지같게도 주머니를 뒤적거렸는데 아무것도 없다.
젠장...핸드폰과 지갑을 놓고 온 듯 하다. 술이라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글러 먹은 것 같다.
미친듯이 뛰었다. 피투성이가 된 발이 아팠지만 제정신으로 걸어서 가기엔 너무 먼 거리다.
이럴 땐 미쳐야 하는 것이다. 맨 정신으로는 안된다.
맥주 겨우 3병 먹었지만 진짜 취한 것 마냥 미친놈처럼 팔을 허우적거리며 자취방으로 뛰어갔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힐끗힐끗 나를 쳐다보지만 그뿐이다.
저들의 기억 속에
나는 아마도 30초면 잊혀질 존재..
내가 먹은 골뱅이들도 30일이면 잊혀질 존재..
내가 사랑한다고 믿었던 천사는 아니 마녀는........30일 안에 잊혀질까?
자취방으로 향했다. 옥상에 올라오자 마자 보이는 야경. 멋지다...사랑스럽다. 야경이 사랑스럽다.
아니 지연이에게 목걸이 걸어 줄 때의 기억이 사랑스러웠던 것이겠지
쓸쓸한 자취방문을 열고 방안에 불을 켜고 들어가자
한쪽 구석에 예쁘게 정리된 락, 메탈 시디들이 눈에 보인다.
예쁘다. 아니 이것을 정리하던 지연이에 대한 기억이 예쁘다.
세상에..그녀를 만난지 겨우 한달이고 그녀와 키스한지 겨우 3일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난리인가?
별 그지 같은 경우를 다 본다. 3일의 시간을 지우는데는 그래..30일이면..아니 90일이면 충분하다.
아니 어쩌면 한 30일 연짱으로 골뱅이 주워다 먹다 보면 어느새 잊혀져 버릴지도 모른다.
예쁘게 정리된 씨디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제일 위에
nirvana-NEVERMIND 씨디가 보인다.
그 표지엔 자살해 버린 천재, 얼터네티브 락의 창시자 커트 코베인이 있다.
"하이 커트형~ 오랜만~"
말이 없다. 역시 저 형님은 내가 맨정신일 땐 말상대를 안해준다.
무언가를 잊어버리고 싶을 땐 그리고 커트형과 이야기 하고 싶을 땐 술이 최고다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냈다. 안주는 김치..
국그릇으로 쓰던 사발을 꺼내어 소주를 가득 붇고 원샷!
빈속의 위장에 알콜이 가득 차서 몸에 퍼지는 느낌이 확 난다.
투샷! 두병을 순식간에 비우고 너버나 씨디를 들었다.
그제서야 커트 코베인 형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김치 한 조각을 손가락으로 들어서 먹고는 손가락을 빨면서 커트 코베인 형과 대화를 시작했다.
술 때문에 혀가 살짝 돌아서 "형" 발음이 "횽"으로 꼬여버렸다.
절대 통신어체 아니다......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냥 술 취했으니 넘어가주자..
"이봐 커트횽 내 얘기 좀 들어봐. 내가 방금 모텔에서 뛰쳐나왔다."
"그래? 왜 뛰쳐 나왔는데?"
"씨발..충격적이어서 그랬어. 감당하기 힘든 문제를 맞부딪힐 때 가장 본능적인 행동이 회피자나"
"뭐가 충격적인데?"
"조까..횽아...생각해봐 마녀랑 천사가 같은 사람인데 충격적이지 충동적이겠어?"
"뭐 어때? 같은 사람이면 안되?"
한심한 커트형의 질문에 저절로 술이 땡겼다. 술 한병을 또 사발에 가득 부어서 입에 들이 부었다.
알콜의 쓴맛이 혀가 아닌 위장에서 느껴졌다. 쓴맛을 가시게 하기 위해 김치를 한 조각 입에 넣었다.
살짝 입안에 남아있던 알콜 기운의 끝에서 단맛이 났다.
"졸라....캬~ 쏘주 쓰구만....횽..커트횽..천사 상대할 때 내 감정 몰라? 알자나?"
"그래..확실히 클럽에서 골뱅이 주워먹는 거랑은 다르겠지.."
"그래 횽, 천사한테 반한게 좃박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었어. 솔직히 훨씬 더 박음직한 여자는 널렸다구"
"맞아 천사한테 반한건 그녀가 따뜻해서였겠지.."
"그래 시발 커트횽, 난 맨날 골뱅이한테 정액 싸지르는거 말고 따뜻한 감정 느껴볼려고 그런거 였는데"
"맞아...근데 골뱅이가...아니 마녀가 천사일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
"씨발..횽 생각해봐 졸라 웃기지 않아? 내가 따뜻한 감정, 그래 조까 사랑 그 좃같은 사랑해보겠답시고 꼬신게 골뱅이야. 그것도 클럽 죽순이표 원조 유동근 골뱅이.... 시발"
"진정해...그래서 어쩔거야?"
"어쩔거긴 시발..그년은..젠장..게다가 마녀는 날 속였어 가지고 논거야! 난 그냥 witch"s magic의 피해자야"
"그래서 뭐 복수라도 할려고?"
"하아 횽아...복수는 무슨...마주치기도 싫어...그냥 잊어버릴래..커트횽아 횽아 생각도 나랑 같을걸?
그래 씨발 내 주제에 무슨 연애냐. 좃질이나 하자. 하던대로 골뱅이나 주워먹고 다니자. 그게 내 생각이야"
혼자서 중얼중얼 거리며 커트형, 아니 커트횽아랑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결론...을 내리니 빈속에 먹은 술에 의해 속이 어질거리긴 해도 훨씬 더 마음은 가벼워졌다.
그래...연애는 무슨 얼어 죽을 연애냐, 좃질이나 충실히 하자. 골뱅이 요리나 실컷 먹자
그러면서 소주를 한병 더 까서 마시려는데....
"딴따다딴다 따다다단다U SUCK!!U SUCK!U SUCK!U SUCK!"
매우 익숙한 등장음악과 함께 돌아보니..방에 붙어있는 포스터가 한눈에 들어온다.
"헉! 너..넌 뭐야....넌...내방에 붙어있던 WWE포스터의 주인공 커트 앵글!(*) 딸꾹~"
(주: wwe프로레스링 선수. 레스링 국가대표로 금메달 까지 딴 실력파에 언변과 연기도 뛰어나서 wwe에 매우 인기 있는 슈퍼스타. 참고로 요새 ufc에서 논란의 중심인 브록레스너도 wwe출신인데 브록이 wwe뛰쳐 나가기 전, 이종격투기에서 성공할 수 있는 wwe는 커트앵글 뿐이라는 평가가 있었었다. 뭐 그랬었다..피니쉬는 앵글슬램과 앵글락 )
"시바라마...뒤에 존칭 안붙히냐? 앵글슬램 쳐맞고 안드로메다 고고씽? 콜?"
"헉스...커트형님 딸꾹~ 왜 그러싶니까?"
"야이 존만한 새끼야...넌, 아니 남자새끼들은 왜 다 그렇게 이기적이냐 이 씹새야"
"커트 형님 좀 욕설이 딸꾹~ 너무 많이 섞여서 듣기 좀 그렇습니다. 형님 딸꾹~"
"조까 이생키야 넌 시발 마녀를 욕할 처지도 않돼 조까튼 놈아"
"무슨 말입니까 형님? 딸꾹~ 아무리 커트 형님이라도 이러심 딸꾹~ 곤란하죠"
"개생키야 너는 맨날 골뱅이 주워먹으러 다니면서, 게다가 오늘도 지연이 놔두고 몰래 마녀 따먹다가 딱 마주친거 아냐"
"그..딸꾹~ 그래도.."
"닥쳐 십새야 시발 남자새끼들은 꼭 이래 지는 졸라 금요일 클럽 바닦 청소하는 대걸레처럼 돌아다니면서
여자들 보고는 졸라 조신한 기준으로 판단내려...개새들"
"형님, 커트형님 딸꾹~"
"왜 존만아"
"딸꾹~ 형님도 남자지 말입니다."
"하아...야 존만아...."
"네 딸꾹~ 커트형님"
"이리 와라 앵글 슬램 함 가자!"
"딸꾹~!"
혼자 놀기의 진수!!
혼자 빈속에 3병 까고서는 비틀비틀 마치 진짜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엄청 두드려 맞은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일어서려다가 마치 진짜로 커트앵글의 앵글슬램(*) 공격받은 자세처럼 대자로 뒤로 쓰러져 자빠져 버렸다.
(주: 커트앵글의 피니쉬 기술, 어깨로 상대방을 들어서 바닥에 매치는 기술, 200KG거인인 빅쇼를 앵글슬램으로 보내버린게 가장 명장면!)
"쿵!"
"시발 존만아 정신 좀 드냐?"
"쿠...쿨럭 으..으으으"
"시발라마 잘 들어. 지연이가 너를 진짜 장난으로 뜯어먹기나 하려고 대했는지, 아니면 진심이었는지 직접 물어봐 병신처럼 도망쳐 나오지 말고"
"으으..으으 허..허리...으..."
"존만이 너도 지연이한테 클럽얘기 한번도 안 했자나. 똑같은 거 아냐? 연애하려는 상대한테 좋은 모습, 멋진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는건 다 마찬가지 아냐? 오늘 마녀가 술 안 취했으면 너랑 모텔로 갔을까?"
"허..허리...으으...으으윽"
"그때도, 처음 너랑 마녀랑 같이 모텔 간 날도 마찬가지자나. 술이 안 취했다면 너희 둘이 그렇게 얽혔을까?"
"허...허리 으으 너..너무 아파.."
"이 씹새 존만이는 말을 하면 쳐들어야지 계속 딴 소리야 안 되겠구만 앵글락!!!"
(주: 커트앵글의 피니쉬기술, 발목을 꺽어 고통을 줘서 상대방의 경기포기를 유도하는 기술)
혼자 놀기의 궁극의 경지에 다다른 자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기술!!
혼자 놀다 잠들기!
술 취해서 비틀거리며 일어나다가 혼자서 뒤로 나자빠져서 그 아픔에 몸을 비비 꼬아대다가
진짜 앵글락에 걸린 놈 마냥 몸을 잔뜩 꼬은 채로
나는......잠에 빠져들었다.
.
.
.
.
.
.
으으으으..
어질어질
윗몸을 일으켜 세우며 머리를 쥐어 뜯었다.
"으으으" 숙취...속이 아픈 것은 차라리 낫다. 뭐든 위장을 달래줄 따뜻한 국물이면 괜찮아 지니..
머리가 아픈 것은 정말 답이 없다. 머리 속을 무언가가 쥐어뜯는 듯 아프다.
팔다리가 아픈 것이야 주물러 주던지 파스를 붙이던지 사우나에서 늘어지게 잠을 자면 괜찮아지지만
머리 아픈 것은 거참...뇌를 꺼내서 주물러 줄 수도 없는 일이고, 뇌에다 파스를 바를 수도 없고
정말 술 마시는 것은 좋지만 술 먹고 깨어날 때마다 후회스럽다.
머리를 쥐어 뜯으며 더듬거리면서 불을 켜고 주변을 돌아 보았다.
내 방
내 자취방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아니 그대로가 아니었다. 말끔히 치워진 상태.
깔끔하게 청소된 방...평소에 볼 수 없는 분위기.
어머님이 반찬 가져다 주러 오신다는 연락 받았을 때만 가능한 청결 상태
너무 깔끔해서 무언가 내방이 아닌 다른 공간 같은 분위기
마치 천사와 마녀가 같은 인물이라는 것과 같은 위화감.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숙취로 웅웅 울리는 머리를 쥐어 뜯으며 생각해 보았다.
술..소주 3병....
어? 술 먹지 않았었나? 분명 술 먹고 쓰러져 잔 것 같은데..
아무 것도 없다. 분명 소주3병을 빈속에 사발에 부어 마신 듯 한데...
소주병도, 신 김치가 있는 반찬통도, 사발로 쓴 국그릇도 없다.
마치 우렁각시라도 왔다간 듯한 느낌. 현실적이지 않은 분위기, 그냥 숙취로 인한 머리아픔인가?
머리를 쥐어 뜯으며 이불을 개어 정리했다.
이불!
뭘까? 이 이불은? 내가 이불을 덮고 잤었나? 침대에는 어떻게 올라간거지?
꿈?...꿈이었을까?
마녀와 클럽 앞 거리에서 만나 섹스를 하고 깜짝 놀라 뛰어온 것이
그리고 커트형님들과 대화한 것이 그냥 꿈이었나?
맞다 핸드폰! 지갑!
모텔에서 안 챙겨와서 바지를 뒤집어 입은 채로 주머니를 뒤적거리다 곰팡이 취급 받았었지!
두리번거리며 핸드폰과 지갑을 찾아 보았다. 분명 기억이 맞다면 절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기대와는 다르게 그 두 개는 그리 멀지 않은...바로 내 머리맡에 있었다.
아 도대체 뭐지? 그냥 꿈이었나?
핸드폰을 열어 시간을 보았다.
[일요일 오후11:20]
하루를 꼬박 잔 것인가? 토요일 오후도 아닌 일요일 오후 11시였다.
우음..월요일 새벽 알바를 하러 가야겠구나..
아 맞다! 사진! 동영상!
허둥지둥 사진 앨범과 동영상 앨범을 뒤져보았다..없었다.
골뱅이요리 먹을 때마다 꼬박꼬박 찍어놓고 컴퓨터로 옮겨놓는 필수 작업인데 없었다.
진짜 꿈이었을까? 너무나 생생한 기억들...
"커트형,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나 그냥 꿈 꾼거야?"
"..................."
음울한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바로 보는 NIRVANA씨디자켓 위의 커트형..
"이런 불쌍한 미친놈" 이라는 듯한 표정이다.
역시 커트형은 맨 정신에 말을 걸면 대답을 안 해준다.
고개를 돌려 포스터 속의 커트 앵글 형님을 돌아 보았다.
얼굴 만면에 가득 지은 미소는 "쯧쯧쯧 미친놈"이라는 듯한 비웃음.
젠장 저 형님은 맨날 앵글슬램만 할 줄 알지 영~ 별로다.
뭐 딱 봐도 무식하게 생기지 않았는가! 키득키득 크흘흘
"흠칫"
우음 포스터를 보는데 커트형님이 움직인듯한 착각이...뭔가 원인을 알 수 없는 오한이 든다.
"으슬으슬"
그건 그렇고 후음 뭐지? 진짜 꿈이었을까? 그렇다면 숙취는 뭐지? 이 머리아픔은?
"에라 모르겠다 일단 씻고 보자."하고 일어서려는데...
"으윽"
발이...쓰라렸다. 분명한 고통, 현실의 고통
진짜였다. 마녀와 천사의 문제는 현실이었다.
천사의 미소를 마녀의 얼굴에서 발견하고, 천사의 목걸이를 마녀의 목에서 발견하고
미친 듯이 거리를 뛰쳐나가 발이 피투성이가 된 것은 엄연한 현실이었다.
아 그냥 꿈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 그런데 도대체 우음?
이 발에 붕대는 뭐고 지갑과 핸드폰은 어찌 된 일이며 이불은 뭐지?? 진짜 우렁각시라도 다녀간 것일까?
아~ 더 생각하고 싶지만 시간이 없다. 빠르게 씻고 편의점으로 출발 하여야 한다.
발이 멀쩡하지 않으니 좀더 일찍 가야 될 듯 싶었다.
절뚝거리며 머리를 대충 감고 세수를 하였다.
시원한 샤워가 절실했지만 붕대 감고 있는 발은 아무래도 그것을 허용할 것 같지 않다.
머리를 감으니 시원하다. 머리 속에 바람이 슝슝 들어오는 느낌.
머리를 대충 말리고 시원한 밤바람을 맞으며 담배 한대를 물고 편의점을 향했다.
흐읍~~~휴~~~~~~~담배연기가 길게 이어진다. 생각도 길게 이어진다.
머리 속이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나와 마녀 그리고 천사. 3개의 점이 머리 속에서 정리가 된다.
분노와 격정에 휩싸여 술에 의존해 잊어버리려 했던 생각들이 속속들이 구체화 되어간다.
천사와 마녀는 같은 사람인가? 다른 사람이 아닐까?
6시 천사 지연이는 동생과 단 둘이서만 자취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동생은 남자다. 일단 비슷하게 생긴 여동생이나 언니 일리는 없다.
하지만 비슷하게 생긴 사람일 수도 있다. 왜 있지 않은가? 연예인 닮은꼴 같은...
하지만 목걸이, 그것은 분명히 같은 목걸이이다.
비취색 자수정 탄생석을 박은 목걸이는 분명 흔할 테지만
비슷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 같은 목걸이를 가지고 있을 확율은 분명
지구로 날라온 운석이 내 뒤통수에 떨어져 내가 운석의 힘을 얻어서
크립톤 행성에서 온 슈퍼맨과 맞짱을 뜰 확율보다는 살짝 높겠지만
절대적으로 희박한 확율이다.
미소...
그 초승달 같은 눈이 되는 예쁜 미소와 입꼬리 한쪽만 올라가는 썩소가
같은 얼굴의 다른 사람에게 구현될 확율도 내가 로또에 당첨되서 이순만을 sms에서 내쫓고 사장이 되어서
처녀시대와 빠구리 뜰 확율만큼 낮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렁각시..
누가 나를 이렇게 발에 붕대를 감아주고 이불을 덮어 주었을까?
누가 모텔에 놔두고 온 지갑과 핸드폰을 내 자취방에 가져다 주었을까?
한사람 뿐이다.
나와 모텔에서 섹스를 한 사람.
[마녀]
나는 마녀에게 이 자취방을 알려준 적이 없다.
내 자취방을 알고 있는 사람.
[천사]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이다.
천사와 마녀는 같은 사람이다.
후우....정말 미치겠다.
혼란스러운 머리 속을 정리하기도 전에 편의점에 도착했다.
여드름투성이 계집애가 뭐라고 종알거렸지만 대충 "응 알았어" 라고 대답하며 인수인계를 받고 쫓아내었다.
편의점의 밤이 시작된다. 조용한 나만의 사색을 위한 공간인 카운터에 섰다.
멍.....
새벽...특히 월요일 새벽은 그 어느 때보다 한가하다. 평일 새벽엔 그나마 사람이 좀 있지만 월요일 새벽은 주말을 쉰 사람들이 월요일이라는 새로운 주의 시작에 긴장해서 인지 몰라도 새벽에 사람이 거의 없다.
멍.....하니 서있는 것 말고 딱히 할 일이 없다. 평소라면 창고에 짱박혀 쪽잠을 취하고 있었을 시간.
하지만 잠이 올리가 없다. 숙취의 머리아픔이 남아 있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남아있다.
멍하니 서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머리 속은 복잡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천사와 마녀가 같은 사람이다. 확실하다.
왜 이런 사태까지 오게 되었나?
결정적으로 모든 문제는 나에게서 시작되었다.
관심, 대화, 사람들과의 대화, 관계에 대한 관심. 그런 것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
벽
벽을 두었다. 사람과 친해진다는 것이 귀찮았다.
사람과의 관계가 두터워 질수록 내가 짊어지어야 하는 부담
어떤 이의 기쁨과 사랑을 함께 나누는 즐거움보다
어떤 이의 슬픔과 아픔을 내가 함께 나눠야 한다는 압박감이 부담이었다.
그래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지하철을 타도 내 볼일을 보고, 내가 읽을 책을 읽고,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을 들으며
그 수많은 사람 속에 나만의 공간을 만들었고
모임의 술자리에 가도 내가 친한 사람과만 이야기하고, 내가 친한 사람과만 술을 나누며,
내가 친한 사람들하고만 기쁨과 슬픔을 나누었다. 그 수많은 후배들 중 내가 얼굴과 이름을 매치해서
기억하는 후배들은 10손가락 남짓이다. 선배와 동기들과의 관계만으로도 충분히 인간의 정을 나눌 수 있다.
더 늘려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강의를 들을 때도 150명 중에 내가 기억하는 얼굴은 강사선생님과 조교 여학생뿐,
날씬한 다리를 자랑하는 미니스커트 여학우들의 다리를 힐끗힐끗 쳐다본 기억은 있어도
그 여학우의 얼굴은 기억하지 않았다.
아니 기억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그 여학우를 꼬실 것도 아닌데 왜 관심을 가져야 하나?
지연이 조차 기억을 못하고 있었다면 할 말 다한거다.
편의점에서도 그 수많은 단골들, 솔직히 주택가 편의점 맨날 오는 사람만 온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손님은 달랑 천사, 지연이 딱 한 명이었다.
클럽, 1년 넘게 아니 2년 가까이 4곳만 다니는데도, 얼굴을 아는 사람은 마녀 한 명 뿐이다.
아니 솔직히 마녀도 자세히 몰랐다. 그녀가 핑크색 원피스를 입을 때 몰라봤으니...
그저 그 전체적인 이미지만 기억할 뿐이다. 그마저도 검은 옷 2인조라는 이미지마저 없었으면
그녀는 그저 수많은 죽순이들 중 한 명이었을 뿐이다.
타인에 대한 관심의 부재는..이런 결과를 가져온다.
타인에 대한 소통의 부재는..이렇게 커다란 혼란을 준다.
이래서 사람과의 관계를 꺼리는 거다.
어설픈 사람과의 관계는 커다란 상처만을 남긴다.
제대로 된 사람과의 관계는 이런 커다란 상처를 견뎌내야만 가능하다.
하아~ 그냥 속 편하게 원래 하던대로 골뱅이나 먹고 다닐까? 클럽이나 다닐까? flo-rida씨디 다시 찾아볼까?
쫙!! 아니야!! 진짜 찐따처럼 이러지 말자! 커트앵글 형님 말처럼 일단 지연이에게 물어보자.
그녀의 생각을 알고 이런 고민해도 늦지 않다!!
하아~~ 그런데 뭐라고 물어봐야 하지......
하아~~ 진짜 싫다. 이런 것 뭐라고 물어봐야 하는지...이렇게 물어볼까? 저렇게 물어볼까?
한숨만 푹푹 나온다....
고개를 흔들거리며 정면을 멍하니 쳐다보는데....
음료수 냉장고 옆에 붙어있는 "첫좃처럼" 포스터가 눈에 들어온다.
"이소리"
이소리가 눈을 깜빡하면서 윙크를 한다. 흠...술이 덜 깼나?
술이 확실히 덜 깬 것 같다. 귓가에 노래가 흘러나온다...이 리듬은...u go boy!!
오늘은 또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머리는 또 어떻게 만져야 좋을지
이건 어떠니 또 저건 어떠니
고민 고민하지마 boy
오늘은 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내 맘을 전해야 좋은지
이건 어떠니 또 저건 어떠니
고민 고민하지마 boy
(저작권 법을 철저히 지키는 정말 법 없이도 살 양심냉장고 도시남자 엄마소)
숙취가 아직 남아 있는게 확실하다.
얌전히 있는 "첫좃처럼" 포스터의 이소리가 춤을 추고 노래가 귓가에 들리는 것을 보면..
캬~그런데...역시 이소리. 난 이소리가 젤 좋더라~ 특히 저 눈밑 애교살로 눈웃음 치는 것 봐
어? 그러고보니 지연이의 천사버전 미소가 이소리 닮았네...
"하하하 진짜 그 아가씨가 그렇게 이뻐?"
"하~ 숙취가 남아 있음이 분명함이야...커트횽님들 처럼 소리 너도 술 취하면 나오는구나"
"하하 뭐래는거야"
"아 그런게 있어..아무튼 지연이도 소리 너만큼 이뻐 아니 너보다 이뻐"
"어쩌구리~ 엄마소만얼룩소가 쓴 "본격! 패밀리가 땄다" 안 읽어 봤나보지? 너도 고자 되고 싶어?"
(은근슬쩍 광고...ㅡ,.ㅡ 애교로 봐주세요..)
"허..헉스 아..아니..소리 니가 더 이뻐"
"그래 당연하지. 하하하! 거참 그런데 뭐가 그렇게 죽상이야 나보다 덜! 예쁜 여자친구 사귄다면서"
"하아...소리야 천사인 지연이랑 마녀인 지연이가 같은 사람이래.."
"하아 바보 아냐? 사귀는 사람 얼굴을 헷갈려? 못 알아봤어? 아무리 화장이나 분위기 다르다고 해도?"
"풋.."패밀리가 땄다" 첫방송때 소리 니가 잠에서 막깬 얼굴이랑 뮤직비디오에서 나오는 화장한 얼굴이랑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할 외국인이 몇 명이나 있을까? 솔직히 나 소리 니 팬이긴 하지만 그땐 정말 깨더라.."
"그..그건 그렇지..가 아니자나! 어쩌구리 죽을래? 고자되고 싶나보지?"
"허..헉..아...아니...아무튼 못알아 볼 수도 있다는 거지..뭐"
"아니 근데 아무리 그래도 사귀는 사람 얼굴을 몰라봐?"
"쳇...내가 이상한게 아냐. 소리 너도 마찬가지일걸?"
생각해봐 니 팬클럽 모입에 팬클럽 회장이 나왔어..넌 당연히 그 팬클럽회장 기억하겠지. 회장은 그 팬클럽회원들중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서 가장 앞에서 움직일테고 니가 보기 싫어도 계속 봐야하니까.
하지만 그 팬클럽 회장이 예진아씨 팬클럽 일반회원으로 있어서 예진아씨 팬클럽 모입에 참여했는데
니가 거기 객원가수로 참여하게 되었다고 생각해봐...예진아씨 팬클럽의 수많은 일반회원중에
아~ 이사람은 효리 니 팬클럽 회장 하고 바로 한눈에 딱 알아 볼 수 있을것 같아? 아닐걸?
물론 자세히 관심을 가지고 뜯어보면 알아 볼 수 있겠지...하지만 그 수많은 일반회원 한명한명을 다 뜯어보고 있을수는 없자나..."
"풉...그런 일은 없어. 왜냐면 난 예진이 팬클럽 모임에 객원으로 참여하는 일 따윈 없을 테니깐"
"아~ 말이 안 통하는 구만."
"뭐야 그래서 나랑 얘기 안 하겠다는 거야? 죽을래?"
[딸랑딸랑]
그때 아주 평범해 보이는 회사원인듯한 정장차림의 남자가 편의점에 들어오더니 바로 카운터를 향해서 온다.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담배손님이다.
"마쎄 1미리요"
"삑~ 2500원입니다."
바로 계산하고 나가겠지...아니 왠만하면 빨리 나가줬으면 했다. 소리와의 대화 흐름이 깨질까 봐 걱정되었다.
그런데 계산하려고 꺼내려는 지갑을 서류가방 안쪽에 두었나 보다. 서류와 명함집 pdp등 별의별 잡동사니를 다 꺼내더니 겨우 지갑을 찾은 듯 계산하고는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에 답도 하지 않고 나가버린다.
"봐......저기 지나가는 회사원 아저씨 내 얼굴을 기억할까?
나중에 내가 아저씨 편의점에서 막 서류랑 명함집이랑 다 꺼낸 다음에 지갑 꺼내서 담배 사셨자나요 그러면 저 아저씨가 날 알아볼까? 저 서류가방에 있는 두꺼운 명함집봐봐. 저 아저씨가 저 명함보고 얼굴을 매치해서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마 중요하고 관심 있는 거래처만 기억하고 나머지는 명함보고서야
"아~ 오랜만이네요" 이럴껄? 요새는 아예 명함을 스캔해서 사진까지 같이 붙여서 저장하는 명함스캐너도
나왔다지? 아무튼 세상은 너무 커지고 너무 빨라져 버렸어. 인간관계도 그렇게 되어 버렸어.
진짜 한 사람 한 사람 차분히 알아가기엔 너무 많은 사람을 짧은 시간 동안 만나야 해 그래야 더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깐 말이야. 마찬가지야 나도 그 클럽에 수많은 아가씨들 중에 한 명일 뿐인 마녀를 자세히 뜯어보고 있어야 할 이유도 시간도 없었어. 마녀는 내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으니깐. "
"하하하 지연이가 천사이던 마녀이던 그게 뭐 어때? 나도 노래할 땐 섹시가수 유후~♥지만 주말 버라이어티에선 그야말로 말괄량이야"
"하아~그런게 아냐..단지 지연이가 낮에는 청순한 척하면서 밤에는 클럽 쏘다니는 것 정도는 이해해줄 수도 있어.
솔직히 나도 지연이에게 클럽에서 원나잇 할 여자 꼬시고 다녔었다는 이야기 안 했었으니 그녀와 별반 다를 바 없지."
"그런데 뭐가 문제야?"
"그녀의 속마음을 모르겠어. 진짜 나를 진심으로 만나는 건지 장난으로 만나는 건지"
"천사인 그녀가 진짜 지연이인지, 마녀인 그녀가 진짜 지연이인지부터 모르겠고"
"천사인 그녀가 나와 왜 사귀는지, 마녀인 그녀가 왜 나랑 자꾸만 마주치고 섹스까지 하게 되었는지도 모르겠고..."
"그러니깐 한마디로 천사인 지연이의 마음이 진짜이고 마녀인 지연이는 그저 내가 지연이에게 클럽 다니는 것을 말하지 않았던 것처럼 지연이가 나에게 숨기고 싶은 그런 부분인건지"
"아니면 마녀인 지연이의 마음이 진짜여서 그저 나는 가볍게 만나 섹스하는 그런 사이인데, 천사인 모습에 반한 나를 가지고 논 것인지 그걸 모르겠어"
"흐음 그러니깐 나보다 덜! 예쁜 아가씨의 마음을 알고 싶다? 아가씨의 진심을?"
"응"
"간단하네 뭐.. 직접 물어보면 되지"
"하아..아놔 그걸 대답이라고...아오..."
"어쩌구리~ 지금 나한테 까부는 거야? 고자되기 고고씽?"
"아...아니.."
"쯔쯔 남자가 말야 기를 펴란말야! 자신감을 보여줘! 남자 답게! 여자는 말야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가게 되어 있어 니가 진심을 보여주면 당연히 어느 쪽의 지연이던지 간에 너를 사랑하게 될거야"
"그래...그렇겠지. 그런데 그게 힘들어. 내가 진심을 보여주려면 지연이를 이해해야 하는데,
지연이가 왜 천사와 마녀의 두가지 상반된 케릭터를 가지게 되었는지..
예전에 어떤 일이 있었기에 지연이가 그렇게 되었는지..이해하고 받아줘야 하는데...
그런데 당장 마녀인 지연이가 진짜 지연이라면 그것을 이해해 줄 수 있는지부터 자신이 없어..
그리고 가장 자신 없는 것은 내가 알고 있는 지연이 말고 더 많은 지연이를 만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야"
"복잡하게 생각하지마. 어떤 모습의 지연이던지 간에 지연이는 지연이야. 100날 너 혼자 생각한다고 해서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라구. 지연이와 대화를 해봐 맞장을 떠!"
"시밤 여자 입에서 "맞장 떠"가 뭐야 "맞장 떠"가..하아 그런데 만나면 당장 뭐라고 해야할까?
정말 싫어. 이런거....
다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전전긍긍해야 하고 안절부절해야 하고
이런 말을 해야 하나? 저런 말을 해야 하나 고민고민해야 하고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저런 말을 하면 어떻게 받아들일까?
이렇게 해도 될까? 저렇게 해도 될까? 오해하지는 않을까? 오버한 것은 아닐까?
이런저런 끝도 없고, 답도 없는 생각의 홍수에 쫄딱 비 맞은 생쥐같은 모습이 정말 싫어..."
"하아 이런 멍충이 그러니깐 내가 처음에 u go boy를 부른거 아냐 잘 듣고 새겨들어 밥팅아"
-중략-
오늘은 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어떻게 내맘을 전해야 좋은지
이건 어떠니 또 저건 어떠니
고민 고민 하지마 boy
고민 고민 하지마 boy 고민 고민 하지마 boy 고민 고민 하지마 boy 고민 고민 하지마 boy
왜인지 몰라도 그 부분만 자꾸만 반복 플레이가 되어서 머리 속에 웅웅거리며 복잡한 생각을 다 지워버렸다.
그래...나혼자 이렇게 끙끙 앓고 있어봐야 답도 없다! 고민하지 말고 지연이와 직접 이야기해보자!
무엇인가 개운한 느낌. 마치 친구들과 기분 좋은 술자리에서 "첫좃처럼" 첫 잔을 원샷하는 느낌
시원한 느낌..
"아~ 쌩유 소리~땡큐 베리 머취~ 아리가또~ 살라맛뽀"
어느새 "첫좃처럼" 포스터 속으로 들어가서 응원의 미소를 보내고 있는 소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딸랑딸랑-
새벽에 담배 사러 온 손님이 흠칫 소리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다시 나가 버렸다.
흠...나 정신병자 취급 받은 것일까?
소리와 대화를 나누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5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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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05:00]
나로호 발사를 기다리는 우주항공센타 연구원같은 기분이다.
카운트 다운. 피할수 없는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었다.
초조해진다. 아까의 그 시원함은 이미 날아가 버린지 오래다. 초조함만 남아있다. 째깍째깍
[오전05:30]
아악!! 막 편의점을 뛰쳐나가 버리고 싶다. 지연이의 입에서 나올 대답이 무서워지기 시작한다.
상상 아니 망상 속의 지연이는 어느새 머리에 뿔이 나고 꼬리가 생기고 등뒤에 검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만면에 비웃는 표정을 지으며 음산한 목소리로 조롱한다.
"크크크크 이런 애송이 고자새끼 크크크 목걸이 고마웠다~ 크크크흐흐하하하하우하하하하하하하하"
아악! 그럴리 없어! 지연인 분명 날 사랑했을 것이야!
째깍째깍
[오전05:59]
심장이 덜컹거린다. 이런 조바심 정말 오랜만에 느낀다. 시계가 멈췄으면 좋겠다.
번지점프대 위에 서있는데 바로 내 앞에 사람이 번지하는 것을 보는 기분,
유격 받는데 바로 내 앞에 올빼미가 비명을 지르며 뛰어내리는 것을 보는 기분.
시간을, 시계바늘을 붙잡고 싶은 기분.
띡띡띡띡띠~~~
[오전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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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6시가 되었지만 지연이는 오지 않았다.
6시 땡하는 순간 폭탄 터지는 것처럼 딸랑딸랑 종소리가 울릴 줄 알았는데 다행이다. 하고 한숨을 쉬는 순간!
[딸랑딸랑]
마음을 놓고 있던 [오전06:01:32]..시간차 공격
시간차 공격에 당했다. 경계가 살짝 풀린 상황의 기습공격 당한 것 마냥 넋을 잃어버렸다.
꽉 붙잡고 놓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 정신줄을 깜빡 놓쳐버렸다.
"오빠 굿모닝~~"
"어...어..구..굿모닝"
평소의 그녀 아니 천사인 그녀이다. 얼굴 가득 환한 웃음, 환한 초승달 웃음
편의점의 아침을 밝게 해주는 그 웃음, 어두운 근심걱정을 날려버리는 듯한 그런 웃음.
시간차 종소리와 천사의 웃음에 정신줄은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잔뜩 준비한 질문들이 머리 속이 하얗게 되는 것과 동시에 죄다 지워져 버렸다.
"치~ 뭐야 왜 이렇게 기운 없어? 주.말.에 무슨 일 있었어?"
주..주말에 무슨 일 있었냐구? 역..역시 맞다. 내 짐작이 맞다. 확신이 내려진다.
일부러 주말을 강조해서 언급하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 당연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지...너도 알고 있고
아니 그런데 아는데 왜 질문을 하는거지? 머리 회전이 늦어져서 얼버무리는 대답이 나가버렸다.
"어...어.....아....아니"
"후음...무슨 일....있었던 것 같은데?"
세상에나 너랑 섹스했자나! 어이가 없어서 지연이를 쳐다보는데 깜짝 놀랬다.
화장.
진한 화장. 처음 보는 진한 화장. 아니 이제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
아니 그게 아니지 천사인 지연이가 하는 진한 화장은 처음 보는거지..
화장을 보니 더 확신이 들었다. 그녀는 마녀임을 고백하러 온 것이다.
"오빠..."
"응?"
"나한테 할 말 없어?"
할 말이라..지연아 나 사랑하니? 마녀로 날 만난건 무엇을 의미하는거니?
아니 그전에 가장 근본적인 질문부터 지연아 니가 마녀 맞니? 6시 천사 지연이와 12시 마녀는 같은 사람인거니?
아! 아니다. 그건 이미 확실한 것이자나 나 사랑하는지부터 물어봐야 하는 걸까? 나 만난거 장난이었니?
머리 속이 뒤죽박죽이었다. 재촉하는 지연이에게 무슨 말이든 해야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물어봐야 하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으...음....지..지연아..."
"응 말해봐.."
"지연아..어..어제..핸드폰이랑 지갑 가져다 줘서 고마워"
쓸대 없는 의문부터 해결하고 싶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니었으면 하는 마음에...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에...마녀와 천사가 다른 사람이었으면 하는 마음에...
"..어...천만에.....그건 그렇고 오빠 나한테 할 말 없어?"
하지만 대답은 너무 간결했다. "천만에..." 천사와 마녀가 같은 인물이라는 확답은 너무 간단하였다.
너무 간단한 대답에 당황하고 그리고 다음 질문을 재촉하는 지연이의 행동에 당황했다.
지연이를 만나면 물어보리라 생각했던 질문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어제....어제......어제 잘 잤어?"
또 어물어물거리게 된다. 무서웠다. 대답이 무서웠다.
"지연아 나 만난거 장난이었니? 나 사랑하니?" 라는 질문의 대답이
진짜로 나를 조롱하는 대답이 나올까 봐 무서웠었다.
그런데...
"오빠.....정말 나쁜 사람이다."
"뭐?"
대답할 새도 없었다. 아니 무슨 이야기인지 생각할 새도 없었다.
"쫙!!"
얼얼한 아픔이 뺨에서 전해져 온다. 정신이 나갔다. 얼이 빠졌다. 아니 빡이 돌았다.
숙취로 인한 머리 아픔이 한방에 날아가 버렸다. 대신에 화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쫙!!!"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진짜 뭐랄까 무슨 이야기를 하던지 간에 변명이겠지만
진짜 나도 모르게 나갔다. 진짜 여자 몸에 손 대는거 정말 싫어하고 경멸하는데 나도 모르게 손이 갔다.
맞았는데 가만히 있는 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게다가 지연이가 나를 속이고 나를 장난으로 대한 것이 아닌가?
나를 농락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과 오해가 머리 속이 온통 가득 차 있는 상태여서
나도 모르게 손이 나갔다.
여자에게 손찌검을 했다.
분노와 함께 모멸감...남자로서의 자격 실격 자책감..미안함..걱정
그런 혼란의 감정에 휩싸였다..
이런 복잡한 감정에 시달려야 하는 나는
정말
미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