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정들의 오너 시즌 2 -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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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떨리는 눈망울로 바라보는 준과는 달리,제롬은 느긋하고도 여유있는 표정이었다.뮤즈가 마나에 공명하며 우웅하
는 파공음을 내었다.
"무슨...소리야..."
"궁금한가?"
"무슨소리냐고 물었다."
"허...거 녀석 참....어차피 죽을텐데 호기심은 많은 모양이군."
제롬은 순식간에 날아드는 음파공의 화살을 여유롭게 피하며 말을 이었다.
"질문하나 하지.너 왜 페어리가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나?"
"빙빙돌리지 마라.네녀석들이 프로센을 침공했기 때문이 아니냐?"
"오호.거기까지는 잘 줏어 들었나 보군.그래.그들은 프로센이란 공간을 잃을 위기에 처했지."
준은 제롬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차우는 인간이라고 하는 새로운 전투력의 양성을 위해 왔다고 추리 한 적이
있었다.허나,제롬의 말은 차우의 추리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리고...너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선택된 것이다.제 2의 프로센으로 말이지."
"뭐...라고?"
제롬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그의 주변으로 음산한 마기가 안개처럼 감돌았다.
"그래.원래 페어리들은 이곳을 초기화 하기 위해 조직된 집단이다.우매한 인간이여."
"초기화...?"
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럴리가 없다.항상 자신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유나와 세라가..그리고 노아와 리미가 원
래는 이곳을 파괴하기 위해 온 존재들이라니....
"물론,그건 아니다 싶었는지 인간과 공명을 하는것으로 목적을 바꾼거다.그런 쓰잘데기없는 동정심과 배려심이
프로센의 파멸을 가져온 것이겠지만..."
처음듣는 페어리에 대한 말에 황당한 표정이었던 준의 얼굴이 천천히 평온해 지기 시작했다.
"난또...뭐라고..."
준은 피식 웃어버렸다.의외의 반응에 제롬은 고개를 갸웃하기까지 했다.
상관없었다.본디 목적이 어떻든,지금 그것이 아니라면 크게 개의치 않을 일이다.그녀들과의 생활이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준에게는 그녀들이 가족이자 애인이나 다름없었다.그는 결과주의자였다.애초에 어쨌든 간에 그것은
그에게 별거 아닌 사실일 뿐이다.중요한것은 현재였고,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이종족들을 몰아내는 것만이 자신
에게 주어진 힘에대한 책임일뿐이다.
"어라?조금 반응이 시원찮네..."
제롬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곰곰히 생각해 보기까지 했다.그 말에 준이 불같은 분노에 휩쌓이길 기대했는
데,오히려 득의 양양하게 웃기까지 했으니까.
"그런건 이제 관심없어.니들 대장...어딨냐?"
제롬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곧 죽을 벌레가 발악을 하는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인간치고는 마나의
양이 방대하긴 했지만,그것이 제롬에게 있어서 준을 재평가하는 계기는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를 쓰러뜨리면 자연스럽게 알수 있겠지."
제롬의 주변으로 흑색의 구체가 뭉쳐져 올라왔다.준은 이를 악물고 은빛의 뮤즈를 고쳐쥐었다.
"저녀석....도대체 얼마나 저걸 써야 마나가 동날 셈인거야?"
속으로 조용히 투덜거리던 준은 긴장하지 않을수 없었다.허공에 떠있는 구체들이 마치 세포분열을 하듯이 그 수
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처음에 한덩어리의 큰 구체가 점점 여러개의 작은 구체들로 분열되며 음
산한 마기를 뿜어대었다.제롬이 서있는 주변의 풀이나 나무들은 급격하기 시들기 시작했다.구체들은 야구공만한
크기로 수십개가 만들어져 있었다.
준은 뮤즈에 입술을 대었다.6개월 간의 성과...이제는 보여줄때라고 생각하면서.
"자...이제 편하게 죽어라.네 녀석의 몸뚱이는 이제 관심이 없어졌으니까."
제롬은 마스터의 말대로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어차피 준의 몸을 빼앗을수 없을 만큼 난도질을 해서 죽여도,페어
리의 숫자는 네명이기 때문에 자신이 차지할 몸은 있을거란 계산이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서 괴이한 음성을 내며 떠있던 구체들이 일제히 준을 향해 돌진했다.마치 한명의 병사
를 향해 수백명이 화살을 쏘는 것과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부우우우우우.....
뮤즈에서 아름다운 은빛 몸체에 어울리지 않은 웅장한 음색이 흘러나오며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마치 노
아의 정령술 처럼 땅속에서 바위들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
그것은 하나의 대 장관이었다.무차별로 솟아 오른 바위덩어리가 구체에 부딪히며 박살이 나버렸지만,이내 준을
노리던 구체들은 모두 부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제롬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상처 하나 없이 뮤즈를 연주하
는 준을 바라보았다.
"저녀석...제법이....크억!"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롬은 다리가 풀리며 털썩 주저 앉았다.귀에서 뜨끈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서있을수 없을
만큼 현기증이 느껴졌다.자신의 귀에 손을대자,뜨끈한 피냄새가 진동을 했다.제롬은 이를 갈며 준을 바라보았
다.
"네..네놈...무슨짓을..."
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미 구체들은 모두 소멸해 버린뒤였다.하지만 뮤즈에서는 계속해서 파공음이
흘러나왔다.그 음색들이 제롬의 귀로 침투,신경계를 모두 망가뜨려 버린것이다.제롬은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귀를 틀어 막았다.
"크아아아아악!"
제롬역시 몇백년이상 산 마족이지만,이런식의 공격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물론 소리를 이용한 마법이 있긴 하
지만,그것은 기껏해야 힐링의 마법을 음색에 실어 피술사를 치료하는 정도의 마법이었고,이렇게 직접적인 데미지
를 받는 마법을 접하기는 처음인 것이다.
"저 빌어먹을 소리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귀를 틀어막으면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손역시 쓸수가 없었다.게다가 준은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인간에게 살해당한 생각은 단 1퍼센트도 하지 않았던 제롬인지라 지금의 상황이 화가 날 뿐이
었다.
우우우우우...
제롬의 귓가로 작은 흑색구체가 생겨났다.그리고 그것은 그의 귓속으로 들어가,마치 귀마개처럼 그의 고막을 감
쌌다.
"으응..?"
그에게 점점 다가가던 준은 발걸음을 멈췄다.뮤즈가 끊임없이 흘러나옴에도 불구하고,제롬이 귀에서 손을떼고는
분노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경계가 일시적으로 마비될텐데.......마족이라 그런것도 없는거야 뭐야?"
이윽고,다시금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는 크기의 구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그리고 제롬의 비릿한 음성이 준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편하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버러지 같은 자식."
준은 이를 악물고 다시금 뮤즈에 입을 가져갔다.이번공격은 평범한 것이 오지 않을거란 예상을 하면서...
"놀랍군....."
다스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마나의 양으로는 자신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세라가,자신의 공격을 원천적
으로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것은 세라가 들고 있는 검이 엄청난 명검이기 때문이 아니었다.세라 본인의
마나운용센스가 특출난 것이었다.
다스는 자신의 왼쪽팔을 힐끗 바라보았다.이미 세라의 검기에 의해 너덜너덜해 져 있었다.빌린 몸이지만 고통은
그대로 전달되어 왔다.허나 다스의 성격상 그것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를 인물은 아니었다.
"방금전 기술은 도대체...."
조금전 세라의 몸이 강하게 회전하며 뿌려진 검기.다스가 가지고 있는 기이한 검도 그것을 전부 막아내지 못했
었다.결국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왼쪽 어깨죽지에 바람구멍이 생겨버린 것이다.
다스는 흑마법도 뛰어났지만,체술이 뛰어난 마족이었다.때문에 마스터로부터 블랙나이트를 배정받은 것이기도
했다.하지만,왠지 예상보다 강한 세라의 모습에 다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통하지 않는건가..."
세라는 세라 나름대로 절망했다.제법 큰 기술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왼쪽팔에 상해를 입히는 것에 지나지 않았
다.게다가,계속해서 다스의 공격이 세라를 엄습해왔다.
"윽.."
검을 막아내던 세라는 한쪽 팔을 감싸쥐고 뒤로 물러섰다.다스의 검과 자신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다스의 검에
서 검신이 기이한 모양으로 자라나며 자신의 팔을 찔렀기 때문이었다.다행이 몸을 돌렸지만 세라의 왼쪽팔에는
길게 검흔이 그어졌다.
"그걸...써야 하는건가."
세라는 갈등했다.자신에게 허용된 마나의 양은 이제 그리 많지 않았다.차우의 비급에서 본 운기조식을 시행한다
면 모르지만, 전투중에 그것을 하는것은 나 죽여줍쇼나 마찬가지인 행위였다.그렇다고 이런식으로 자잘한 기술
로 허를 찌르자니,적의 방어가 너무나 완벽했다.게다가 장기전으로 가면 상대적으로 마냐량이 적은 세라에게 불
리한 전투가 될 것이 자명했다.
"리미....리미는.."
세라는 희미하게 나마 리미의 마나를 느껴보았다.리미가 만들어준 통신구가 귀걸이의 형태로 세라의 귀에 달려
있었지만,무선을 통해 지금의 안전여부를 파악하긴 힘들어 보였다.그래도 그녀의 마나가 느껴진다는 것은,리미가
어딘가에 잘 피신해 있다는 말이 되었기에 세라는 조금 안심했다.
"전투중에 잡생각은 금물이다."
다스의 검이 횡으로 그어지며 무시무시한 기운이 폭사되었다.세라는 검기를 머금은 소드로 그것들을 모두 튕겨
내어 버렸고,양옆에 있던 소나무가 픽픽 쓰러졌다.
"그거 밖에 없다....그걸로 끝내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세라는 검신을 정면으로 세우고 마나를 돌리기 시작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준이 주었던 책속에 적힌 난해한 구
절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마나를 다루는 방식도,공격방출의 형태도 생소한 구결이었지만,세라는 무인도
에서의 몇개월동안 그것을 이해하고 터득했다.또한 그것은 매우 강력한 무공들이었다.
"자세가 바뀌었다?"
다스는 심상치 않은 예감에 검을 거꾸로 쥐며 마나를 회전시켰다.섣불리 공격을 할수도 없었다.아니,그 보다는
세라의 자세에 빈틈이 보이지 않아 다스는 알게모르게 그녀를 경계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세라는 그동안의 수행대로,천천히 마나를 지정된 혈도에 돌리며 그것을 변환시켜 검에 맺히게 했다.앞에서 다스
역시 큰 기술을 쓰려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절대 동요해서는 안되었다.마나를 체내에서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의 집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콰..
바로그때 다스의 검이 더더욱 길어지는가 싶더니 세라를 향해 어두운 기운을 폭사시키기 시작했다.그와 동시에
감겨있던 세라의 눈이 떠지며 그녀의 검신이 다스를 향해 뻗어졌다.
"청랑파천하(靑狼破天下)"
세라의 검신에 깃든 푸른색 마나의 물결은 이내 흑갈색으로 바뀌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다스는 아차하는 당
혹스런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세라를 향해 폭사되던 기운은 세라의 검주변으로 둥그렇게 펼쳐진 마나의 파동
에 의해 모두 소멸되었고,허공으로 솟구친 검기는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 다스머리위로 무섭게 쏟아져 버렸다.
콰콰콰콰쾅!
세라가 차우의 비급에서 봤던 기술중 가장 고차원의 기술이었다.그것은 그만큼의 마나소모를 의미하기도 했다.
허공에 솟구친 검기는 갈색비가 되어,다스의 온몸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크으으..."
세라는 갑작스런 마나소모에 휘청거렸지만,여전히 검을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정말 다스는 무시무시한 마족
이었다.세라의 검기에 의해 온몸이 초토화되는 고통속에서도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일단 인간의 육체를 빌
리게 되면,그 육체가 소멸되는 동시에 그 육체를 빌린 마족역시 죽게 되어 있었다.물론,죽기 직전에 다른육체로
이동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지금 이 곳에 마나를 다룰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아...하아.."
세라는 다스의 최후를 끝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털썩 주저 앉았다.예전 윌리엄스가 보냈던 어쎄신을 상대할때도
이만큼은 힘에 부치지 않았었다.게다가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전을
했다는 사실에 세라는 알게 모르게 자존심이 상해왔다.
"주인님쪽으로 가봐야..."
하지만 말과 달리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세라는 준이 있을법한 곳을 바라보며,입술을 악물었다.
"오호..."
파렐은 사뭇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노아의 외침과 동시에 마치 지각변동 처럼 지면이 상승하더니 노아를
감싸 안았기 때문이었다.산 밑에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조산운동을 눈앞에서 보는것만큼 엄청난 광경일 것이다.
"상급....정령인가요?"
파렐은 희미하게 웃었다.그녀를 너무 과소평가 했다는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덕분에 수십명으로 증식한 파렐
이 쏘아낸 구체들은 노아의 근처에도 가지못하고 애꿎은 바위만 부수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다스의 기운이....사라졌다?"
파렐은 고개를 갸웃거릴수밖에 없었다.그가 알기론 다스는 우수한 전사였고,그때문에 이번 차원이동에 뽑히기도
했던 것이다.파렐은 저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그 나이트가 예상외로 강적이었던 모양이군요."
파렐은 살짝 표정이 굳어져서 두번째 공격을 준비했다.언젠가 노아를 둘러쌓고 있는 저 바위산은 언젠가 해제될
것이다.수십명의 파렐들은 저마다 동서남북 상하좌우를 점한채로 그녀를 감싼 바위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
었다.
"언젠간...나오겠죠?정령술사양..."
파렐은 피식 웃었다.속전속결로 노아를 제압하고,다스가 상대했던 세라에게 가볼 참이었기 때문이었다.바로 그
때 였다.
드드드드드...
지면이 무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파렐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뒤로 조금 물러섰고,그와 동시에 땅으로 부
터 뾰족한 원뿔모양으로 지면이 솟구쳐 올랐다.
파파파파팡!
파렐이 만들어낸 수십명의 "파렐"들은 하나둘 그 바위에 몸이 관통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위산 속에서 노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흥....그렇게 나오셨어야죠."
파렐의 양손이 허공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라드세르...붐!"
이번엔 노아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재빨리 몸을 피했다.그의 주문과 함께 수십명의 파렐들이 폭파되며 데미지를
전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저게...본체..."
노아는 수십개의 인영들중에 단 하나만이 수인을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것들이 시시한 분신술이 아니라
해도,분명 본체는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콰콰쾅!
노아가 소환해낸 땅의 상급정령 노에스가 지면을 솟구치게 하며 파렐을 공격했지만,본체가 아닌 것들이 폭발 해
대는 통에,정작 진짜 파렐에게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라이온!셀라임!"
노아가 무인도를 침입했던 그들에게 썼던 바로 그 기술이었다.바람과 불의 상급정령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그들
은 서로를 껴안아 불의 회오리를 만들어 파렐에게 달려들었다.
"칫....성가신 상대로군."
이미 본체밖에 남지 않은 파렐은 재빨리 이동하며 공격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노아의 공격이 휩쓸고 간 자리
에는 새까만 검댕이 만이 남아 연기를 내뿜었다.
"큰 공격으로는 안되는 건가..."
노아는 리미나 유나같은 전략파는 아니었지만,공격이 클수록 비행마법정도는 주문없이 사용하는 파렐에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수 있었다.더욱이 상급정령을 세개나 부리는 것은 아무리 노아라고는 하지만 체력적
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걸 써야 하나..."
노아는 어렴풋이 무인도에서 우연히 발견해낸 정령술의 또다른 사용법을 떠올렸다.그 와중에도 파렐은 공중으로
이리저리 떠다니며 상급정령들의 공세를 피해내거나 무마 시키고 있었다.노아는 양손을 마주잡고 정신을 집중
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파렐은 살짝 고개를 돌려 노아를 바라보았다.자신을 위협하던 엄청난 기세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정령술사양.지친 모양이죠?"
파렐은 피식웃으며 흑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그것은 강한 최면안개를 소환하는 술법이었다.그것으로 노아가
잠들면 그녀의 몸을 가볍게 빼앗을 생각이었다.
"자..편히 잠드시죠...엘 샤르디아......."
시동어를 발동하던 파렐의 말이 뚝 하고 멎었다.
"이...이건..."
그는 눈을 치켜떴다.몸이 움직이지 않았다.고개를 돌리려 해도 돌아가지 않았다.무언가가 허공에 떠있던 자신의
팔다리는 물론,목까지 휘감고 있었다.
"크윽!"
파렐의 동공이 삽시간에 커졌다.놀랍게도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는것은 굵은 나뭇가지였다.
"도대체....이게..."
땅에서부터 아까는 없던 나무가 솟아나며 자신의 몸을 순식간에 휘감고 있는 것이었다.아무리 주문없이 발동할
수있는 흑마법 이라지만,이렇게 온몸이 따로 봉쇄되니 마법을 시전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노아는 천천히 파렐의 모습을 보며 맞잡은 양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그와 동시에 나뭇가지 하나가 더 자라나
며 파렐의 목을 조여왔다.
"마...말도 안돼는...이런 정령술이 있을리가...큭!"
파렐의 지식으로는 나무를 정령력으로 다룬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었다.물론 나무의 정령이 있기야 하지
만,그것은 그저 나뭇가지를 조금 움직여 그늘의 위치를 바꾸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그만큼 4대 정령이외의 정
령들은 그 힘이 미약하기 그지 없기 때문이었다.
"으으으으윽..."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노아가 이를 악물자,그것 나름대로의 귀여움이 묻어났지만,파렐은 비명조차 지를수
없었다.온몸을 옥죄어 오기 시작한 나무가지들 때문에 살이 푹푹 패여 피가 베어나왔다.
노아는 조금씩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기존의 정령술은 그저 정령들을 부르기만 하면 되지만,이것은 땅의 정령과
물의 정령을 합작하여 만든 새로운 정령술이었다.대지에 존재하는 나무의 씨앗과 생명력을 물의 정령으로 자극
하여 일시적으로 급성장을 일으켜 조종하는 술수였다.따라서 노아에게도 상당한 정신적 데미지가 붙을수 밖에 없
는 것이었다.
"위..위험하다..빨리 세포분열을 하지 않으면..."
파렐은 여태까지의 여유를 까맣게 잊고,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나뭇가지가 자신의 몸으로 점점 침투하면서,자
신이 빌린 인간의 몸안에서도 나무가 자라나고 있었다.이대로라면,이 나무에게 생명력을 빨려 자신도 소멸해 버
릴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스스스스스..
정면에서 집중을 하고 있는 노아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파렐의 체세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그와 동
시에 노아의 양손이 굳게 교차해서 쥐어졌다.
파파파파....
파렐의 몸이 나뭇가지 사이에 묻혀가며,그의 몸이 점점 나무로 변하기 시작했다.파렐의 몸안에서도 나무를 자라
게 한것이었다.
"하아...하아.."
노아역시 파렐의 마지막을 확인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그녀답지 않게 식은땀이 마구 흘러 나왔다.그리고 세라와
마찬가지로,주인인 준이 있는 방향으로 눈길이 돌아갔다.
"노아!"
뒤에서 은신해 있던 리미가 품안에서 포션을 꺼내며 달려오는 것을 보며 노아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파렐에게서 떨어져나간 덩어리 하나가,빠른속도로 그들의 반대방향으로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콰콰콰...
"으윽.."
마법을 시전하던 유나는 지라스의 충격파에 의해 또한번 주르륵 밀려나 버렸다.리미가 연성해준 옷인지라 찢어지
진않았지만,유나의 볼에는 작은 상처가 하나 나 있었다.지라스가 일으키는 바람의 충격파가 유나의 피부를 베어
버린 것이었다.
"천천히....이 몸에게 즐거움을 주고나서 몸을 주면 편할것을..."
지라스는 비릿한 음성을 내며 유나를 향해 입맛을 다셨다.그의 동공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것은 유나를 향한
성적 욕구 때문이었다.유나를 벗겨내고 마구 유린하고 싶은 강한 충동에 지라스는 밑이 묵직해져 옴이 느껴졌다.
"충격파 하나로 기절시킨 다음 이 몸이 천국으로 보내주지..."
지라스는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수십개의 얼음 송곳을 손을 교차하는 것으로 가볍게 날려버렸지만 유나의 모습
은 보이지 않았다.
"흥...숨어서 기회를 노리겠다는 건가...."
지라스는 여유롭게 웃으며 양팔을 벌렸고,그와 동시에 노아의 상급정령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강풍이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콰콰콰....
일행들이 뿔뿔히 흩어져 전투를 하고 있었지만,누가봐도 지라스가 있는곳은 티가 날 정도로 나무들이 뿌리채 뽑
혀 날아가 버렸다.한참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유나는 살짝 아름다운 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저정도의 마법이 주문없이 발동되는 걸까..."
노아의 정령술과는 달랐다.무엇보다,마족인 지라스가 애초에 정령과 계약을 할수 있을리가 없다.유나는 나무뒤에
숨어 곰곰히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저 마나의 공명만으로 일으키는 충격파일까?"
아쉽게도 유나가 갖고 있는 크룬에 대한 지식은 매우 적었다.있다고 하더라도 프로센에 있던 대부분의 기억이 삭
제된 유나로써는 기초적인 지식 뿐이었다.
"설마...저게...마족의 혈계전통의 힘인가?"
아주 어렴풋이,크룬이라는 마족은 혈통에 따라 각각의 가문만의 독창적인 힘이 있다는것을 들은적이 있었다.그것
은 오로지 그 가문의 피를 받은 사람만이 쓸수 있는 주술을 의미하기도 했다.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지라스가
주문의 영창이나 수인없이 강한 충격파를 무한대로 쏘아보낼수 있는것도 설명이 가능했다.
"언제까지 숨어있기만 할 셈인가?빙계의 법사여.."
유나의 눈이 크게 흡떠졌다.지라스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이번엔 역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며 유나가 은신해 있
는 숲의 나무들도 뿌리채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점이 있을거야...약점이..."
유나는 지라스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충격파를 회피하면서 그를 감시하기 시작했다.지라스의 손의 움직임에 따
라 바람의 충격파가 방향을 바꿔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저 손동작...저게 없으면 발동되지 않는건가.."
그러고보니 최초의 대면에서도 지라스의 움직임은 오로지 팔 뿐이었고,그 팔의 움직임에 의해 충격파가 날아왔
다는 사실에 유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저 팔만 봉쇄하면 되는데.....하지만 어떤 식으로?"
콰직!
자신에게 날아오는 거대한 나무를 마법을 이용해서 반으로 잘라버린 유나는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지라스를
응시했다.
"거기 숨어있었구만..."
지라스의 양 팔이 다시금 위로 올라갔다.유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살짝 수인을 맺었다.
"이 방법 밖에는 없다...집중해야해..잘못하면 뇌가 녹아버린다.."
유나는 한번에 두개의 마법의 수인을 빠르게 맺었다.지라스의 주의를 끌면서 그의 손을 봉쇄하는 방법은 단 하나
뿐.그것은 바로 두개의 마법으로 양동작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즉,그 것은 마나위 구상공간에 모두 두개의 식을 배열하는 엄청나게 고도의 계산을 요하는 작업이었다.유나가 무
인도에서 했던 수련은 바로 두개의 구상식을 연동하는 술법이었기에,유나는 지금의 한수에 모든것을 걸기로 마
음먹었다.
"프로즌 스피어!"
먼저,유나가 즐겨쓰는 2써클의 단일 공격마법인 얼음의 창이 지라스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흥...또 이거냐?"
지라스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젓기까지 했다.
"이거 한방으로...네년의 몸뚱이까지 기절시켜 주지..."
지라스는 여유있게 양손을 올렸다.아니,올리려고 했다.
"뭐...뭣이..?"
지라스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성을 삼키고 말았다.자신의 양손은 무언가에 잡혀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얼음...분신이라고?말도 안되는!"
말 그대로 프로즌 스피어가 발동됨과 동시에 지라스의 뒷편으로 유나의 얼음분신이 나타난 것이었다.그리고 그것
은 지라스의 양팔을 붙잡은채로 고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
방어 공격을 시행하지 못한 지라스의 온몸에 얼음의 창이 순식간에 관통되었고,그와 동시에 관통된 몸안의 내장
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마...말도 안....내가......"
지라스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처참하게 얼음조각상으로 바뀌며 최후를 맞이했고,그것을 지켜보던 유나는 스
르르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하아....방심한게....니 약점이었다고....."
유나는 끊임없이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희미하게 웃었다.하지만 고도의 마법을 시행한 탓에,편두통처럼 머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그녀는 준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주인님...미안해요...지금 당장은 엄호하러 가지 못할거 같아요..."
콰직!
준은 이리저리 충격파를 피해내며 생각에 잠겼다.제롬은 마치 게임을 하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무지막지한 구체
들을 준에게 날려보내고 있었다.
"도대체...어떻게 되어 쳐먹은 놈이지 저놈은? 마나를 어디 창고에 저장이라도 하고 사는 놈인가?"
그가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것도 무리가 아니었다.발동시간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인데다가,마나의 양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듯 저렇게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대니,아무리 인간중에 다룰수 있는 마나의 양이 엄청난
준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뮤즈로 그것을 봉쇄하기엔 힘이 부쳤다.정말 무지막지한 마나량이 아닐수 없었다.
"가만...근데 왜 저것만 쓰는거지?"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저정도 마나량이라면 큰 기술로 한번에 올 생각도 할법한데,제롬은 계속
해서 검은구체 덩어리들을 쏘아대고 있었다.물론 맞는 순간 몸이 녹을 정도의 큰 데미지를 가졌겠지만,굳이 큰
기술을 쓰지 않고 물량공세를 하는것은 의문점일 수밖에 없었다.
"가설을 세워보자...저녀석...기술이 저거밖에 없는거 아닐까?"
어차피 음파에 의한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그가 고막을 작은 구체로 막았기 때문이었다.빠른 속도로 그것들을 피
하고 있던 준은,문득 세라와의 수련을 떠올렸다.
-주인님.전투의 타입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뭔지 아시나요?-
멀리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유나의 수영복차림을 입을 헤벌리고 보고 있던 준은 깜짝 놀라 세라를 바라보았다.
-으응?자..잘 모르겠는데?-
-바로 근거리전과 원거리전입니다-
-근거리와 원거리?-
세라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령 저같은 경우엔 블랙나이트이기 때문에,접근전,즉 근거리전에 강하지요.그리고 유나는 마법사니까 원거
리전에 능숙하구요.-
-응..응.-
준은 겨우겨우 유나의 매혹적인 몸매에서 눈을 떼고 세라를 바라보았다.세라는 그런 준에게 살짝 눈을 흘기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유나의 경우엔,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근거리전도 강합니다.기본적인 체술이 갖춰져있고,몸이 유연하기
때문이지요.때문에,자신보다 상위 레벨이었던 마유미를 상대로 이길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라?근데 세라 넌 마유미와 유나가 붙을때 없었잖아?-
-저도 어렴풋이 듣긴 했었습니다.-
-아아...-
-아시겠나요?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를.-
-미안...모르겠어.-
세라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준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주인님은 음파를 이용하는 공격을 합니다.즉,원거리 타입이라는 이야기지요.-
-아...그런가?-
-네.그리고 더 중요한 결론은,근거리 타입의 전투까지 몸에 익힌다면....주인님은 엄청나게 강해질 겁니다-
-유..유나처럼 말야?-
-네.꼭 명심하세요.원거리전에 강한 자는...틀림없이 근거리전에는 약합니다.어떤 적을 만나시더라도,이 점을
꼭 숙지하시길...그리고 주인님도 원거리와 근거리 타입 둘다 강해지셔야 합니다.-
"그래...저녀석은 원거리 타입의 전사로구나.."
제롬의 구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준은 확신을 세울수가 있었다.엄청나게 많은 마법덩어리로 물량공세를 펴
는것 역시,그만큼 근거리전을 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그리고 압도적으로 거대한 자신의 마나량을 이용하여 상
대가 지칠때까지 공세를 퍼붓는 것이었다.
"좋아...일단 시험을 해보자."
그동안 뒤로 빠지며 그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던 준은 뮤즈를 불어 공기의 저항막을 만들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
했다.몇십개의 구체가 저항막과 부딪히며 몇번이고 휘청 거렸지만,뮤즈를 불며 마나를 공명시킨 이상 그것이 쉽
사리 깨어질 리는 없었다.
부우웅!
제롬의 근처까지 다가가 그에게 뮤즈를 휘둘러 보인 준은 제롬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뮤즈를 피해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다루는 마나의 압도적인 양에 비해,그의 동작은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검도에 능한 자가 마치 죽도
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버리는 우스운 상황과도 비슷했다.
"그렇다면!"
준은 뮤즈를 불어 몇십개의 화살을 쏘아보냈고,뮤즈의 물리적 공격을 피하느라 미처 구체를 만들어 내지 못한 제
롬은 당황하며 몸을 숙여 화살을 피해내기 시작했다.그리고,준의 뮤즈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음색을 만들어 내
며 공명음을 토해냈다.
"크윽!"
역시나 준의 예상대로 였다.무리해서 마나를 사용해가며 근접한 보람이 있었다.준의 마나에 공명하여 뮤즈는 순
식간에 길이가 늘어났고,그것은 제롬의 복부에 박혀 버린것이다.
"이...버러지 같은 인간이..."
하지만 이윽고 더욱더 늘어나는 뮤즈 때문에 제롬은 더이상 서있지 못하고 풀썩 주저 앉았다.뮤즈의 은빛몸체에
제롬의 피가 튀었다.
"말해.민아는 어디있지?"
"크아아아!"
제롬은 손을뻗어 구체를 쏘려했지만,이내 뮤즈를 더욱 깊숙이 꽂아넣는 준의 행동 덕분에 비명만 지를 뿐이었다.
분노에 가득한 준의 표정을 보며 제롬은 피식 웃어버렸다.
"칭찬해..주마...인간 주제에 크룬을 쓰러뜨린것을 말이야.."
"닥치고 대답해!"
"크큭...그래...상을 주는 의미로 말해주지...그 인간계집의 몸을 빌린 마스터 께서는...40,59,100의 좌표....
그곳으로 가셨다.이제 어쩔텐가?"
준은 이를 악물었다.마법식에 사용되는 좌표를 들었으니 제롬에게는 이미 그 목적이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
었다.제롬은 고통속에서도 끝없이 마나를 공명시키며 공격시도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뮤즈의 앞부분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여전히 반대쪽 부분은 제롬의 몸을 관통한 채였다.
"미안해요....부디 제 행동을 용서하시길...."
준은 주먹을 꽉 쥐고 제롬이 기생해 있는 원래 몸의 주인에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그런 준의 볼에는 눈물이
한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준이 숨결을 불어넣은 그 순간,뮤즈에서일어난 마나의 파동덕분에 제롬의 몸은 산산히 부서졌고,그들이 있는 야
산 전체로,마족 제롬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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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눈망울로 바라보는 준과는 달리,제롬은 느긋하고도 여유있는 표정이었다.뮤즈가 마나에 공명하며 우웅하
는 파공음을 내었다.
"무슨...소리야..."
"궁금한가?"
"무슨소리냐고 물었다."
"허...거 녀석 참....어차피 죽을텐데 호기심은 많은 모양이군."
제롬은 순식간에 날아드는 음파공의 화살을 여유롭게 피하며 말을 이었다.
"질문하나 하지.너 왜 페어리가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나?"
"빙빙돌리지 마라.네녀석들이 프로센을 침공했기 때문이 아니냐?"
"오호.거기까지는 잘 줏어 들었나 보군.그래.그들은 프로센이란 공간을 잃을 위기에 처했지."
준은 제롬의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차우는 인간이라고 하는 새로운 전투력의 양성을 위해 왔다고 추리 한 적이
있었다.허나,제롬의 말은 차우의 추리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리고...너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선택된 것이다.제 2의 프로센으로 말이지."
"뭐...라고?"
제롬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그의 주변으로 음산한 마기가 안개처럼 감돌았다.
"그래.원래 페어리들은 이곳을 초기화 하기 위해 조직된 집단이다.우매한 인간이여."
"초기화...?"
준은 고개를 저었다.그럴리가 없다.항상 자신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는 유나와 세라가..그리고 노아와 리미가 원
래는 이곳을 파괴하기 위해 온 존재들이라니....
"물론,그건 아니다 싶었는지 인간과 공명을 하는것으로 목적을 바꾼거다.그런 쓰잘데기없는 동정심과 배려심이
프로센의 파멸을 가져온 것이겠지만..."
처음듣는 페어리에 대한 말에 황당한 표정이었던 준의 얼굴이 천천히 평온해 지기 시작했다.
"난또...뭐라고..."
준은 피식 웃어버렸다.의외의 반응에 제롬은 고개를 갸웃하기까지 했다.
상관없었다.본디 목적이 어떻든,지금 그것이 아니라면 크게 개의치 않을 일이다.그녀들과의 생활이 1년 가까이
지속되면서,준에게는 그녀들이 가족이자 애인이나 다름없었다.그는 결과주의자였다.애초에 어쨌든 간에 그것은
그에게 별거 아닌 사실일 뿐이다.중요한것은 현재였고,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이종족들을 몰아내는 것만이 자신
에게 주어진 힘에대한 책임일뿐이다.
"어라?조금 반응이 시원찮네..."
제롬은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곰곰히 생각해 보기까지 했다.그 말에 준이 불같은 분노에 휩쌓이길 기대했는
데,오히려 득의 양양하게 웃기까지 했으니까.
"그런건 이제 관심없어.니들 대장...어딨냐?"
제롬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곧 죽을 벌레가 발악을 하는것으로 밖엔 보이지 않았다.인간치고는 마나의
양이 방대하긴 했지만,그것이 제롬에게 있어서 준을 재평가하는 계기는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를 쓰러뜨리면 자연스럽게 알수 있겠지."
제롬의 주변으로 흑색의 구체가 뭉쳐져 올라왔다.준은 이를 악물고 은빛의 뮤즈를 고쳐쥐었다.
"저녀석....도대체 얼마나 저걸 써야 마나가 동날 셈인거야?"
속으로 조용히 투덜거리던 준은 긴장하지 않을수 없었다.허공에 떠있는 구체들이 마치 세포분열을 하듯이 그 수
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처음에 한덩어리의 큰 구체가 점점 여러개의 작은 구체들로 분열되며 음
산한 마기를 뿜어대었다.제롬이 서있는 주변의 풀이나 나무들은 급격하기 시들기 시작했다.구체들은 야구공만한
크기로 수십개가 만들어져 있었다.
준은 뮤즈에 입술을 대었다.6개월 간의 성과...이제는 보여줄때라고 생각하면서.
"자...이제 편하게 죽어라.네 녀석의 몸뚱이는 이제 관심이 없어졌으니까."
제롬은 마스터의 말대로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어차피 준의 몸을 빼앗을수 없을 만큼 난도질을 해서 죽여도,페어
리의 숫자는 네명이기 때문에 자신이 차지할 몸은 있을거란 계산이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허공에서 괴이한 음성을 내며 떠있던 구체들이 일제히 준을 향해 돌진했다.마치 한명의 병사
를 향해 수백명이 화살을 쏘는 것과 같은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부우우우우우.....
뮤즈에서 아름다운 은빛 몸체에 어울리지 않은 웅장한 음색이 흘러나오며 지면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마치 노
아의 정령술 처럼 땅속에서 바위들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콰....
그것은 하나의 대 장관이었다.무차별로 솟아 오른 바위덩어리가 구체에 부딪히며 박살이 나버렸지만,이내 준을
노리던 구체들은 모두 부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제롬은 살짝 놀란 표정으로 상처 하나 없이 뮤즈를 연주하
는 준을 바라보았다.
"저녀석...제법이....크억!"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제롬은 다리가 풀리며 털썩 주저 앉았다.귀에서 뜨끈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서있을수 없을
만큼 현기증이 느껴졌다.자신의 귀에 손을대자,뜨끈한 피냄새가 진동을 했다.제롬은 이를 갈며 준을 바라보았
다.
"네..네놈...무슨짓을..."
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이미 구체들은 모두 소멸해 버린뒤였다.하지만 뮤즈에서는 계속해서 파공음이
흘러나왔다.그 음색들이 제롬의 귀로 침투,신경계를 모두 망가뜨려 버린것이다.제롬은 분노에 가득찬 표정으로
귀를 틀어 막았다.
"크아아아아악!"
제롬역시 몇백년이상 산 마족이지만,이런식의 공격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물론 소리를 이용한 마법이 있긴 하
지만,그것은 기껏해야 힐링의 마법을 음색에 실어 피술사를 치료하는 정도의 마법이었고,이렇게 직접적인 데미지
를 받는 마법을 접하기는 처음인 것이다.
"저 빌어먹을 소리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귀를 틀어막으면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결과적으로는 자신의 손역시 쓸수가 없었다.게다가 준은 점점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인간에게 살해당한 생각은 단 1퍼센트도 하지 않았던 제롬인지라 지금의 상황이 화가 날 뿐이
었다.
우우우우우...
제롬의 귓가로 작은 흑색구체가 생겨났다.그리고 그것은 그의 귓속으로 들어가,마치 귀마개처럼 그의 고막을 감
쌌다.
"으응..?"
그에게 점점 다가가던 준은 발걸음을 멈췄다.뮤즈가 끊임없이 흘러나옴에도 불구하고,제롬이 귀에서 손을떼고는
분노어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경계가 일시적으로 마비될텐데.......마족이라 그런것도 없는거야 뭐야?"
이윽고,다시금 아까와는 비교도 안되는 크기의 구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그리고 제롬의 비릿한 음성이 준의
귓가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편하게 죽을 생각은 버려라....버러지 같은 자식."
준은 이를 악물고 다시금 뮤즈에 입을 가져갔다.이번공격은 평범한 것이 오지 않을거란 예상을 하면서...
"놀랍군....."
다스는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마나의 양으로는 자신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세라가,자신의 공격을 원천적
으로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그것은 세라가 들고 있는 검이 엄청난 명검이기 때문이 아니었다.세라 본인의
마나운용센스가 특출난 것이었다.
다스는 자신의 왼쪽팔을 힐끗 바라보았다.이미 세라의 검기에 의해 너덜너덜해 져 있었다.빌린 몸이지만 고통은
그대로 전달되어 왔다.허나 다스의 성격상 그것이 아프다고 비명을 지를 인물은 아니었다.
"방금전 기술은 도대체...."
조금전 세라의 몸이 강하게 회전하며 뿌려진 검기.다스가 가지고 있는 기이한 검도 그것을 전부 막아내지 못했
었다.결국 검을 들고 있지 않은 왼쪽 어깨죽지에 바람구멍이 생겨버린 것이다.
다스는 흑마법도 뛰어났지만,체술이 뛰어난 마족이었다.때문에 마스터로부터 블랙나이트를 배정받은 것이기도
했다.하지만,왠지 예상보다 강한 세라의 모습에 다스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통하지 않는건가..."
세라는 세라 나름대로 절망했다.제법 큰 기술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왼쪽팔에 상해를 입히는 것에 지나지 않았
다.게다가,계속해서 다스의 공격이 세라를 엄습해왔다.
"윽.."
검을 막아내던 세라는 한쪽 팔을 감싸쥐고 뒤로 물러섰다.다스의 검과 자신의 검이 부딪히는 순간,다스의 검에
서 검신이 기이한 모양으로 자라나며 자신의 팔을 찔렀기 때문이었다.다행이 몸을 돌렸지만 세라의 왼쪽팔에는
길게 검흔이 그어졌다.
"그걸...써야 하는건가."
세라는 갈등했다.자신에게 허용된 마나의 양은 이제 그리 많지 않았다.차우의 비급에서 본 운기조식을 시행한다
면 모르지만, 전투중에 그것을 하는것은 나 죽여줍쇼나 마찬가지인 행위였다.그렇다고 이런식으로 자잘한 기술
로 허를 찌르자니,적의 방어가 너무나 완벽했다.게다가 장기전으로 가면 상대적으로 마냐량이 적은 세라에게 불
리한 전투가 될 것이 자명했다.
"리미....리미는.."
세라는 희미하게 나마 리미의 마나를 느껴보았다.리미가 만들어준 통신구가 귀걸이의 형태로 세라의 귀에 달려
있었지만,무선을 통해 지금의 안전여부를 파악하긴 힘들어 보였다.그래도 그녀의 마나가 느껴진다는 것은,리미가
어딘가에 잘 피신해 있다는 말이 되었기에 세라는 조금 안심했다.
"전투중에 잡생각은 금물이다."
다스의 검이 횡으로 그어지며 무시무시한 기운이 폭사되었다.세라는 검기를 머금은 소드로 그것들을 모두 튕겨
내어 버렸고,양옆에 있던 소나무가 픽픽 쓰러졌다.
"그거 밖에 없다....그걸로 끝내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
세라는 검신을 정면으로 세우고 마나를 돌리기 시작했다.그녀의 머릿속에는 준이 주었던 책속에 적힌 난해한 구
절들이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마나를 다루는 방식도,공격방출의 형태도 생소한 구결이었지만,세라는 무인도
에서의 몇개월동안 그것을 이해하고 터득했다.또한 그것은 매우 강력한 무공들이었다.
"자세가 바뀌었다?"
다스는 심상치 않은 예감에 검을 거꾸로 쥐며 마나를 회전시켰다.섣불리 공격을 할수도 없었다.아니,그 보다는
세라의 자세에 빈틈이 보이지 않아 다스는 알게모르게 그녀를 경계하고 있다고 하는 편이 옳았다.
세라는 그동안의 수행대로,천천히 마나를 지정된 혈도에 돌리며 그것을 변환시켜 검에 맺히게 했다.앞에서 다스
역시 큰 기술을 쓰려는 모습이 보이긴 했지만,절대 동요해서는 안되었다.마나를 체내에서 다룬다는 것은 그만큼
의 집중력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콰콰콰콰..
바로그때 다스의 검이 더더욱 길어지는가 싶더니 세라를 향해 어두운 기운을 폭사시키기 시작했다.그와 동시에
감겨있던 세라의 눈이 떠지며 그녀의 검신이 다스를 향해 뻗어졌다.
"청랑파천하(靑狼破天下)"
세라의 검신에 깃든 푸른색 마나의 물결은 이내 흑갈색으로 바뀌며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다스는 아차하는 당
혹스런 얼굴로 허공을 응시했다.세라를 향해 폭사되던 기운은 세라의 검주변으로 둥그렇게 펼쳐진 마나의 파동
에 의해 모두 소멸되었고,허공으로 솟구친 검기는 마치 소나기가 내리듯 다스머리위로 무섭게 쏟아져 버렸다.
콰콰콰콰쾅!
세라가 차우의 비급에서 봤던 기술중 가장 고차원의 기술이었다.그것은 그만큼의 마나소모를 의미하기도 했다.
허공에 솟구친 검기는 갈색비가 되어,다스의 온몸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크으으..."
세라는 갑작스런 마나소모에 휘청거렸지만,여전히 검을들고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정말 다스는 무시무시한 마족
이었다.세라의 검기에 의해 온몸이 초토화되는 고통속에서도 그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일단 인간의 육체를 빌
리게 되면,그 육체가 소멸되는 동시에 그 육체를 빌린 마족역시 죽게 되어 있었다.물론,죽기 직전에 다른육체로
이동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지금 이 곳에 마나를 다룰수 없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하아...하아.."
세라는 다스의 최후를 끝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털썩 주저 앉았다.예전 윌리엄스가 보냈던 어쎄신을 상대할때도
이만큼은 힘에 부치지 않았었다.게다가 지금은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게 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고전을
했다는 사실에 세라는 알게 모르게 자존심이 상해왔다.
"주인님쪽으로 가봐야..."
하지만 말과 달리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세라는 준이 있을법한 곳을 바라보며,입술을 악물었다.
"오호..."
파렐은 사뭇 놀랍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노아의 외침과 동시에 마치 지각변동 처럼 지면이 상승하더니 노아를
감싸 안았기 때문이었다.산 밑에 있는 사람들이 본다면 조산운동을 눈앞에서 보는것만큼 엄청난 광경일 것이다.
"상급....정령인가요?"
파렐은 희미하게 웃었다.그녀를 너무 과소평가 했다는 생각이 들어오기 시작했다.덕분에 수십명으로 증식한 파렐
이 쏘아낸 구체들은 노아의 근처에도 가지못하고 애꿎은 바위만 부수는 결과가 되어버렸다.
"다스의 기운이....사라졌다?"
파렐은 고개를 갸웃거릴수밖에 없었다.그가 알기론 다스는 우수한 전사였고,그때문에 이번 차원이동에 뽑히기도
했던 것이다.파렐은 저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어버렸다.
"그 나이트가 예상외로 강적이었던 모양이군요."
파렐은 살짝 표정이 굳어져서 두번째 공격을 준비했다.언젠가 노아를 둘러쌓고 있는 저 바위산은 언젠가 해제될
것이다.수십명의 파렐들은 저마다 동서남북 상하좌우를 점한채로 그녀를 감싼 바위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
었다.
"언젠간...나오겠죠?정령술사양..."
파렐은 피식 웃었다.속전속결로 노아를 제압하고,다스가 상대했던 세라에게 가볼 참이었기 때문이었다.바로 그
때 였다.
드드드드드...
지면이 무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파렐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뒤로 조금 물러섰고,그와 동시에 땅으로 부
터 뾰족한 원뿔모양으로 지면이 솟구쳐 올랐다.
파파파파팡!
파렐이 만들어낸 수십명의 "파렐"들은 하나둘 그 바위에 몸이 관통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그리고 그와 동시에
바위산 속에서 노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흥....그렇게 나오셨어야죠."
파렐의 양손이 허공에서 빠르게 움직였다.
"라드세르...붐!"
이번엔 노아가 당혹스런 표정으로 재빨리 몸을 피했다.그의 주문과 함께 수십명의 파렐들이 폭파되며 데미지를
전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저게...본체..."
노아는 수십개의 인영들중에 단 하나만이 수인을 맺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이것들이 시시한 분신술이 아니라
해도,분명 본체는 존재하기 때문이었다.
콰콰쾅!
노아가 소환해낸 땅의 상급정령 노에스가 지면을 솟구치게 하며 파렐을 공격했지만,본체가 아닌 것들이 폭발 해
대는 통에,정작 진짜 파렐에게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실라이온!셀라임!"
노아가 무인도를 침입했던 그들에게 썼던 바로 그 기술이었다.바람과 불의 상급정령이 나타나는가 싶더니 그들
은 서로를 껴안아 불의 회오리를 만들어 파렐에게 달려들었다.
"칫....성가신 상대로군."
이미 본체밖에 남지 않은 파렐은 재빨리 이동하며 공격권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노아의 공격이 휩쓸고 간 자리
에는 새까만 검댕이 만이 남아 연기를 내뿜었다.
"큰 공격으로는 안되는 건가..."
노아는 리미나 유나같은 전략파는 아니었지만,공격이 클수록 비행마법정도는 주문없이 사용하는 파렐에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을수 있었다.더욱이 상급정령을 세개나 부리는 것은 아무리 노아라고는 하지만 체력적
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걸 써야 하나..."
노아는 어렴풋이 무인도에서 우연히 발견해낸 정령술의 또다른 사용법을 떠올렸다.그 와중에도 파렐은 공중으로
이리저리 떠다니며 상급정령들의 공세를 피해내거나 무마 시키고 있었다.노아는 양손을 마주잡고 정신을 집중
하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파렐은 살짝 고개를 돌려 노아를 바라보았다.자신을 위협하던 엄청난 기세들이 사라져버렸기 때문이었다.
"정령술사양.지친 모양이죠?"
파렐은 피식웃으며 흑마법을 준비하기 시작했다.그것은 강한 최면안개를 소환하는 술법이었다.그것으로 노아가
잠들면 그녀의 몸을 가볍게 빼앗을 생각이었다.
"자..편히 잠드시죠...엘 샤르디아......."
시동어를 발동하던 파렐의 말이 뚝 하고 멎었다.
"이...이건..."
그는 눈을 치켜떴다.몸이 움직이지 않았다.고개를 돌리려 해도 돌아가지 않았다.무언가가 허공에 떠있던 자신의
팔다리는 물론,목까지 휘감고 있었다.
"크윽!"
파렐의 동공이 삽시간에 커졌다.놀랍게도 자신의 몸을 휘감고 있는것은 굵은 나뭇가지였다.
"도대체....이게..."
땅에서부터 아까는 없던 나무가 솟아나며 자신의 몸을 순식간에 휘감고 있는 것이었다.아무리 주문없이 발동할
수있는 흑마법 이라지만,이렇게 온몸이 따로 봉쇄되니 마법을 시전할수 있을리가 없었다.
노아는 천천히 파렐의 모습을 보며 맞잡은 양손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그와 동시에 나뭇가지 하나가 더 자라나
며 파렐의 목을 조여왔다.
"마...말도 안돼는...이런 정령술이 있을리가...큭!"
파렐의 지식으로는 나무를 정령력으로 다룬다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한 것이었다.물론 나무의 정령이 있기야 하지
만,그것은 그저 나뭇가지를 조금 움직여 그늘의 위치를 바꾸는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그만큼 4대 정령이외의 정
령들은 그 힘이 미약하기 그지 없기 때문이었다.
"으으으으윽..."
너무나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노아가 이를 악물자,그것 나름대로의 귀여움이 묻어났지만,파렐은 비명조차 지를수
없었다.온몸을 옥죄어 오기 시작한 나무가지들 때문에 살이 푹푹 패여 피가 베어나왔다.
노아는 조금씩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기존의 정령술은 그저 정령들을 부르기만 하면 되지만,이것은 땅의 정령과
물의 정령을 합작하여 만든 새로운 정령술이었다.대지에 존재하는 나무의 씨앗과 생명력을 물의 정령으로 자극
하여 일시적으로 급성장을 일으켜 조종하는 술수였다.따라서 노아에게도 상당한 정신적 데미지가 붙을수 밖에 없
는 것이었다.
"위..위험하다..빨리 세포분열을 하지 않으면..."
파렐은 여태까지의 여유를 까맣게 잊고,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나뭇가지가 자신의 몸으로 점점 침투하면서,자
신이 빌린 인간의 몸안에서도 나무가 자라나고 있었다.이대로라면,이 나무에게 생명력을 빨려 자신도 소멸해 버
릴 위기에 처해 있었던 것이다.
스스스스스..
정면에서 집중을 하고 있는 노아에게서는 보이지 않는 방향으로,파렐의 체세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갔다.그와 동
시에 노아의 양손이 굳게 교차해서 쥐어졌다.
파파파파....
파렐의 몸이 나뭇가지 사이에 묻혀가며,그의 몸이 점점 나무로 변하기 시작했다.파렐의 몸안에서도 나무를 자라
게 한것이었다.
"하아...하아.."
노아역시 파렐의 마지막을 확인하고는 털썩 주저앉았다.그녀답지 않게 식은땀이 마구 흘러 나왔다.그리고 세라와
마찬가지로,주인인 준이 있는 방향으로 눈길이 돌아갔다.
"노아!"
뒤에서 은신해 있던 리미가 품안에서 포션을 꺼내며 달려오는 것을 보며 노아는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파렐에게서 떨어져나간 덩어리 하나가,빠른속도로 그들의 반대방향으로 도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콰콰콰...
"으윽.."
마법을 시전하던 유나는 지라스의 충격파에 의해 또한번 주르륵 밀려나 버렸다.리미가 연성해준 옷인지라 찢어지
진않았지만,유나의 볼에는 작은 상처가 하나 나 있었다.지라스가 일으키는 바람의 충격파가 유나의 피부를 베어
버린 것이었다.
"천천히....이 몸에게 즐거움을 주고나서 몸을 주면 편할것을..."
지라스는 비릿한 음성을 내며 유나를 향해 입맛을 다셨다.그의 동공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그것은 유나를 향한
성적 욕구 때문이었다.유나를 벗겨내고 마구 유린하고 싶은 강한 충동에 지라스는 밑이 묵직해져 옴이 느껴졌다.
"충격파 하나로 기절시킨 다음 이 몸이 천국으로 보내주지..."
지라스는 자신의 앞으로 날아오는 수십개의 얼음 송곳을 손을 교차하는 것으로 가볍게 날려버렸지만 유나의 모습
은 보이지 않았다.
"흥...숨어서 기회를 노리겠다는 건가...."
지라스는 여유롭게 웃으며 양팔을 벌렸고,그와 동시에 노아의 상급정령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강풍이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콰콰콰....
일행들이 뿔뿔히 흩어져 전투를 하고 있었지만,누가봐도 지라스가 있는곳은 티가 날 정도로 나무들이 뿌리채 뽑
혀 날아가 버렸다.한참뒤에서 그것을 지켜보던 유나는 살짝 아름다운 입술을 깨물었다.
"어째서....저정도의 마법이 주문없이 발동되는 걸까..."
노아의 정령술과는 달랐다.무엇보다,마족인 지라스가 애초에 정령과 계약을 할수 있을리가 없다.유나는 나무뒤에
숨어 곰곰히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저 마나의 공명만으로 일으키는 충격파일까?"
아쉽게도 유나가 갖고 있는 크룬에 대한 지식은 매우 적었다.있다고 하더라도 프로센에 있던 대부분의 기억이 삭
제된 유나로써는 기초적인 지식 뿐이었다.
"설마...저게...마족의 혈계전통의 힘인가?"
아주 어렴풋이,크룬이라는 마족은 혈통에 따라 각각의 가문만의 독창적인 힘이 있다는것을 들은적이 있었다.그것
은 오로지 그 가문의 피를 받은 사람만이 쓸수 있는 주술을 의미하기도 했다.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지라스가
주문의 영창이나 수인없이 강한 충격파를 무한대로 쏘아보낼수 있는것도 설명이 가능했다.
"언제까지 숨어있기만 할 셈인가?빙계의 법사여.."
유나의 눈이 크게 흡떠졌다.지라스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자,이번엔 역풍이 불어오기 시작하며 유나가 은신해 있
는 숲의 나무들도 뿌리채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점이 있을거야...약점이..."
유나는 지라스의 눈을 피해 이리저리 충격파를 회피하면서 그를 감시하기 시작했다.지라스의 손의 움직임에 따
라 바람의 충격파가 방향을 바꿔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기 시작했다.
"저 손동작...저게 없으면 발동되지 않는건가.."
그러고보니 최초의 대면에서도 지라스의 움직임은 오로지 팔 뿐이었고,그 팔의 움직임에 의해 충격파가 날아왔
다는 사실에 유나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저 팔만 봉쇄하면 되는데.....하지만 어떤 식으로?"
콰직!
자신에게 날아오는 거대한 나무를 마법을 이용해서 반으로 잘라버린 유나는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지라스를
응시했다.
"거기 숨어있었구만..."
지라스의 양 팔이 다시금 위로 올라갔다.유나는 생각을 정리하며 살짝 수인을 맺었다.
"이 방법 밖에는 없다...집중해야해..잘못하면 뇌가 녹아버린다.."
유나는 한번에 두개의 마법의 수인을 빠르게 맺었다.지라스의 주의를 끌면서 그의 손을 봉쇄하는 방법은 단 하나
뿐.그것은 바로 두개의 마법으로 양동작전을 펼치는 것이었다.
즉,그 것은 마나위 구상공간에 모두 두개의 식을 배열하는 엄청나게 고도의 계산을 요하는 작업이었다.유나가 무
인도에서 했던 수련은 바로 두개의 구상식을 연동하는 술법이었기에,유나는 지금의 한수에 모든것을 걸기로 마
음먹었다.
"프로즌 스피어!"
먼저,유나가 즐겨쓰는 2써클의 단일 공격마법인 얼음의 창이 지라스에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흥...또 이거냐?"
지라스는 귀찮다는 듯 고개를 젓기까지 했다.
"이거 한방으로...네년의 몸뚱이까지 기절시켜 주지..."
지라스는 여유있게 양손을 올렸다.아니,올리려고 했다.
"뭐...뭣이..?"
지라스는 자기도 모르게 신음성을 삼키고 말았다.자신의 양손은 무언가에 잡혀 꽁꽁 얼어붙은 것이다.
"얼음...분신이라고?말도 안되는!"
말 그대로 프로즌 스피어가 발동됨과 동시에 지라스의 뒷편으로 유나의 얼음분신이 나타난 것이었다.그리고 그것
은 지라스의 양팔을 붙잡은채로 고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크아아아아아아!"
방어 공격을 시행하지 못한 지라스의 온몸에 얼음의 창이 순식간에 관통되었고,그와 동시에 관통된 몸안의 내장
들이 순식간에 얼어붙어 버렸다.
"마...말도 안....내가......"
지라스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처참하게 얼음조각상으로 바뀌며 최후를 맞이했고,그것을 지켜보던 유나는 스
르르 자리에 주저 앉아 버렸다.
"하아....방심한게....니 약점이었다고....."
유나는 끊임없이 흐르는 식은땀을 닦으며 희미하게 웃었다.하지만 고도의 마법을 시행한 탓에,편두통처럼 머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그녀는 준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며 중얼거렸다.
"주인님...미안해요...지금 당장은 엄호하러 가지 못할거 같아요..."
콰직!
준은 이리저리 충격파를 피해내며 생각에 잠겼다.제롬은 마치 게임을 하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무지막지한 구체
들을 준에게 날려보내고 있었다.
"도대체...어떻게 되어 쳐먹은 놈이지 저놈은? 마나를 어디 창고에 저장이라도 하고 사는 놈인가?"
그가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것도 무리가 아니었다.발동시간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수준인데다가,마나의 양
따위는 개의치 않는다는듯 저렇게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해대니,아무리 인간중에 다룰수 있는 마나의 양이 엄청난
준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뮤즈로 그것을 봉쇄하기엔 힘이 부쳤다.정말 무지막지한 마나량이 아닐수 없었다.
"가만...근데 왜 저것만 쓰는거지?"
생각해보니 이상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저정도 마나량이라면 큰 기술로 한번에 올 생각도 할법한데,제롬은 계속
해서 검은구체 덩어리들을 쏘아대고 있었다.물론 맞는 순간 몸이 녹을 정도의 큰 데미지를 가졌겠지만,굳이 큰
기술을 쓰지 않고 물량공세를 하는것은 의문점일 수밖에 없었다.
"가설을 세워보자...저녀석...기술이 저거밖에 없는거 아닐까?"
어차피 음파에 의한 공격은 통하지 않았다.그가 고막을 작은 구체로 막았기 때문이었다.빠른 속도로 그것들을 피
하고 있던 준은,문득 세라와의 수련을 떠올렸다.
-주인님.전투의 타입은 크게 두가지로 나뉩니다.뭔지 아시나요?-
멀리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유나의 수영복차림을 입을 헤벌리고 보고 있던 준은 깜짝 놀라 세라를 바라보았다.
-으응?자..잘 모르겠는데?-
-바로 근거리전과 원거리전입니다-
-근거리와 원거리?-
세라는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령 저같은 경우엔 블랙나이트이기 때문에,접근전,즉 근거리전에 강하지요.그리고 유나는 마법사니까 원거
리전에 능숙하구요.-
-응..응.-
준은 겨우겨우 유나의 매혹적인 몸매에서 눈을 떼고 세라를 바라보았다.세라는 그런 준에게 살짝 눈을 흘기더니
말을 이었다.
-하지만 유나의 경우엔,다른 마법사들에 비해 근거리전도 강합니다.기본적인 체술이 갖춰져있고,몸이 유연하기
때문이지요.때문에,자신보다 상위 레벨이었던 마유미를 상대로 이길수 있었던 것입니다.-
-어라?근데 세라 넌 마유미와 유나가 붙을때 없었잖아?-
-저도 어렴풋이 듣긴 했었습니다.-
-아아...-
-아시겠나요?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를.-
-미안...모르겠어.-
세라는 살짝 웃음을 지으며 준에게 가까이 다가가 앉았다.
-주인님은 음파를 이용하는 공격을 합니다.즉,원거리 타입이라는 이야기지요.-
-아...그런가?-
-네.그리고 더 중요한 결론은,근거리 타입의 전투까지 몸에 익힌다면....주인님은 엄청나게 강해질 겁니다-
-유..유나처럼 말야?-
-네.꼭 명심하세요.원거리전에 강한 자는...틀림없이 근거리전에는 약합니다.어떤 적을 만나시더라도,이 점을
꼭 숙지하시길...그리고 주인님도 원거리와 근거리 타입 둘다 강해지셔야 합니다.-
"그래...저녀석은 원거리 타입의 전사로구나.."
제롬의 구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준은 확신을 세울수가 있었다.엄청나게 많은 마법덩어리로 물량공세를 펴
는것 역시,그만큼 근거리전을 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그리고 압도적으로 거대한 자신의 마나량을 이용하여 상
대가 지칠때까지 공세를 퍼붓는 것이었다.
"좋아...일단 시험을 해보자."
그동안 뒤로 빠지며 그의 공격을 피하기만 했던 준은 뮤즈를 불어 공기의 저항막을 만들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
했다.몇십개의 구체가 저항막과 부딪히며 몇번이고 휘청 거렸지만,뮤즈를 불며 마나를 공명시킨 이상 그것이 쉽
사리 깨어질 리는 없었다.
부우웅!
제롬의 근처까지 다가가 그에게 뮤즈를 휘둘러 보인 준은 제롬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뮤즈를 피해냈다는 사실을
알수 있었다.다루는 마나의 압도적인 양에 비해,그의 동작은 어설프기 그지 없었다. 검도에 능한 자가 마치 죽도
가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어버리는 우스운 상황과도 비슷했다.
"그렇다면!"
준은 뮤즈를 불어 몇십개의 화살을 쏘아보냈고,뮤즈의 물리적 공격을 피하느라 미처 구체를 만들어 내지 못한 제
롬은 당황하며 몸을 숙여 화살을 피해내기 시작했다.그리고,준의 뮤즈가 아까와는 전혀 다른 음색을 만들어 내
며 공명음을 토해냈다.
"크윽!"
역시나 준의 예상대로 였다.무리해서 마나를 사용해가며 근접한 보람이 있었다.준의 마나에 공명하여 뮤즈는 순
식간에 길이가 늘어났고,그것은 제롬의 복부에 박혀 버린것이다.
"이...버러지 같은 인간이..."
하지만 이윽고 더욱더 늘어나는 뮤즈 때문에 제롬은 더이상 서있지 못하고 풀썩 주저 앉았다.뮤즈의 은빛몸체에
제롬의 피가 튀었다.
"말해.민아는 어디있지?"
"크아아아!"
제롬은 손을뻗어 구체를 쏘려했지만,이내 뮤즈를 더욱 깊숙이 꽂아넣는 준의 행동 덕분에 비명만 지를 뿐이었다.
분노에 가득한 준의 표정을 보며 제롬은 피식 웃어버렸다.
"칭찬해..주마...인간 주제에 크룬을 쓰러뜨린것을 말이야.."
"닥치고 대답해!"
"크큭...그래...상을 주는 의미로 말해주지...그 인간계집의 몸을 빌린 마스터 께서는...40,59,100의 좌표....
그곳으로 가셨다.이제 어쩔텐가?"
준은 이를 악물었다.마법식에 사용되는 좌표를 들었으니 제롬에게는 이미 그 목적이 끝났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
었다.제롬은 고통속에서도 끝없이 마나를 공명시키며 공격시도를 하려고 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뮤즈의 앞부분에 입을 가져다 대었다.여전히 반대쪽 부분은 제롬의 몸을 관통한 채였다.
"미안해요....부디 제 행동을 용서하시길...."
준은 주먹을 꽉 쥐고 제롬이 기생해 있는 원래 몸의 주인에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그런 준의 볼에는 눈물이
한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준이 숨결을 불어넣은 그 순간,뮤즈에서일어난 마나의 파동덕분에 제롬의 몸은 산산히 부서졌고,그들이 있는 야
산 전체로,마족 제롬의 비명소리가 메아리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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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입니다. ^^
추천51 비추천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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