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 & 유부남 ( 3 부 )
* * * * *
신호음이 간다. 혹시라도 남편이 있으면 어쩌나 싶어서 불안했다.
이 시간이면 분명히 혼자 있을 시간이지만 그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아침 식사를 끝내면서였다. 하지만 버튼을 누르는 데는 주저함이 없었다.
[잘 잤어요? 나는 밤에 잠을 설쳤는데...]
" 네..! 아침식사는..?"
[방금 전에 했어요... 이제 속초로 갈 겁니다]
그녀도 주저함이 없다. 막상 신호가 가는 짧은 시간 동안
"이제는 전화하지 마세요"라고 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을 갖고 있었는데 기우였다.
"바다는 어때요..? 나는 바다 본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밝은 목소리다. 그리고 잠시 대화가 끊겼다.
[지금 뭐 하세요..?]
순간적으로 할 말이 없어서 던진 말이다.
근데 그 한마디가 나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 말이 될 줄이야?
정말 사람의 운명은 모르는 것이다.
병원에 가기 위해서 집안 청소를 서두르고 있다고 했다.
방금 전과는 달리 풀 죽은 목소리였다.
[왜요? 누가 아파요..? 병 문안요..?]
대답이 없다. 직감적으로 안아주 그녀가 아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그럼..? 어디가 아파요? 많이 아파요..? 말해 봐요? 내가 도울 수 있으면 돕게..]
나는 숨 쉴 틈도 없이 의문부호를 마구 던졌다.
"......그곳에 혹이 생겼대요. 만약 양성이면 어떡해요? "
마지막 말에 눈물이 묻어 있는 듯해서 내 가슴이 뭉클하다.
자그마한 체구, 눈이 유난히 큰 여자. 그리고 젖가슴이 큰 여자(아내에게 들었다)
옆에 있었다면 내가 가슴을 벌리고, 그녀가 내가 벌린 가슴에 얼굴을 묻을 것만 같았다.
[침착해요.. 혹이라고 해도 전부 나쁜 것은 아니니까. 대부분 근종인 경우가 많아요.
우리 어머니도 그랬어요...그러니 걱정 말아요. 네..?]
안타까웠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다독거리는 말을 해주는 것뿐이다.
[꼭..전화해요. 그리고 본사에서 온 사람을 찾아요. 꼭이요.. 걱정이 되서 그래요]
다음 행선지인 속초쪽 대리점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속초에 도착할 때까지 출장의 목적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운전석 창을 내리고 그곳에 팔을 괴고 한 손으로 운전하면서 내내 그녀 생각이다.
대리점 사장이 부실 거래처를 설명할 때도 나는 건성이었고,
본사의 방침을 전달할 때도 설명을 서류로만 대신하고 있었다.
내 마음은 그녀가 있는 병원에 가있고, 허울껍데기만 대리점에 있었다.
혼자 있고 싶었다.
대리점 사장에게 양해를 구하고 근처 찻집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또 전화번호를 남겼다.
그리고 커피 두 잔을 마셨을까.
"많이...기다렸죠? 당신 말대로 물혹이래요"
[천만 다행이네요...아침에 말은 그렇게 했어도 정말 걱정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서 찻집에 혼자 있는겁니다]
"미안해요. 걱정끼쳐..드려서..."
[그런 말이 어디있어요...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런 대화가 끝날 즈음, 아니 대화꺼리가 궁해졌을 때다.
[아까 처음에...나를 뭐라 불렀는지 알아요?]
그녀는 대답하지 못하고 어떻게 불렀는지를 오히려 궁금해 한다.
[저에게..당신, 이라고 했습니다. 당신!]
"어머..! 정말요?"
당황하는 빛이 역력하다.
그녀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이 눈에 선하게 떠 올려지면서 나는 흐뭇한 웃음을 흘렸다.
[아침에..또 이런 말도 했거든요. 그곳!! 낯선 남자에게 그런 말해도 창피하지 않아요?]
"몰라요..자꾸 그런 말하면 전화 끊을 거예요...다시는 전화도 안 받을 거구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전혀 그럴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통화가 계속되면서 계속 웃는다. 맑은 웃음을...
* * * * *
나는 마법에 걸려 있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는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없다.
물혹이라는 판정을 받는 순간부터 "남자에게 전화를 해야지" 하는 생각뿐이었을까?
더구나 병원에 동행해 주지못해 미안해하던 언니가,
검사결과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뻔한 데도 나는 남자에게 먼저 주저함없이 전화를 했다.
나를 알고 있는 세상 사람들은 나를 냉정하고 똑 부러지는 여자라고 한다.
허튼 소리 하지않고, 해야 할 말이 아니면 절대 하지않는 여자라고 한다.
그런데 오늘, 너무 많은 말을 했다.
남자가 묻지도 않는 말을 먼저 했고, 깔깔대고 웃었다.
언제 이렇게 웃어 보았나? 기억에 없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상장을 받아 왔을 때, 그냥 흐뭇한 마음으로 미소만 지었던 것 같은데..
갑자기 그 남자가 궁금해진다.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면 날 어떻게 생각할까?
분명 결혼한 사람인데 그 부인은 어떤 사람일까? 그 부인은 정말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자상하고, 말도 잘하고, 특히 출장을 갈 때 가끔 동행해서
저녁에는 나이트 같은 곳도 같이 간다고 했는데....
나이트? 나는 가본적이 없다.
더구나 부부 동반으로 바다를 보러간적은 더더구나 없다.
사는 것이 바쁘기도 하지만 남편은 정말 그런 면에서 절대적이다.
얼마나 구두쇠인가?
승용차를 구입해서 타고다닐만 한데도 기름 한 방울 나지않는 나라에서 낭비라고 하며
아직도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오히려 자전거가 운동에 좋다고 자랑스러워하는 남편이 TV를 보면서 하는 말은 뻔하다.
모두 욕이다.
저런 놈들에게 나라를 맡겼으니, 망할 놈들. 저런 년들 때문에 나라가 망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저 지랄이니, 나라가 망하지.
배때기가 부르니까 저러지,
배고프면 사랑이고 나발이고 어디 있어? 정말 세상 망조야!
세상 정말 많이 좋아졌다.
예전 같았으면 저런 연놈들은 잡아다가 주리를 틀고 멍석말이 했을텐데.
(그럼 당신은 예전에 멍석말이 당했어도 열두 번도 더 했어!)
아이들도 말한다.
"아빠 말대로라면 우리 나라는 망해도 벌써 열두 번은 망했겠다."
그럼 남편은 서슴없이 "저 년이...."하면서 눈을 부라린다.
남편은 어젯밤에도 병원갔다가 온 것에 대해 전혀 궁금해 하지않았다.
내가 물혹이라고 했을 때 단 한마디 뿐이었다.
[남들은 안 그러는데 당신은 탈도 많아...병원에서 알아서 할 거 아냐.
당신이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
TV에서 눈도 떼지 않고 한 말이었다.
"당신이 내 남편 맞아요? 요즘은 강아지 새끼가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는 세상인데, 어쩜"
그런 남편은 어젯밤에도 내 아랫도리로 손을 가져왔다.
저절로 몸이 움츠려들고 소름이 돋았다.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전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탁!소리가 날 정도로 손을 치우면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당신...지금 제 정신이에요? 내가..병원에 왜 갔다 왔어요? ]
나도 모르게 온 집안에 다 들리도록 앙칼지게 대들었다. 눈물이 흘렀다.
남편은 머쓱해 한 마디했다.
[누가 한다고 그랬어..? 당신이 걱정되서 그냥 만져 보기만 한 건데..]
(거짓말!)
어쩜 그럴 수가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왜 살았을까?
아이들 때문에..? 그랬다.
아이들만 아니면 벌써 이혼했을 것이다.
결혼하고 나서 아직까지 사랑해..! 라는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했다.
간혹 잠자리에서 "나를 사랑해요?" 라고 물으면 대답은 뻔하다.
[알면서 뭘 물어... 새삼스럽게.. ]
[그렇지 않으면, 당신하고 결혼했겠어? 나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렇게 말할 때 남편 입가에 번지는 미소는,
"지금이라도 나는 밖에 나가면 얼마든지 여자들 있어" 하는 속내를
보여주는 것같아 내 입에서는 한숨이 저절로 나오곤했다.
전화기로 시선이 간다. 남자가 다시 전화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 * * * *
빗줄기가 제법 굵은,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출장을 다녀온 후, 연 나흘 동안 나는 무시로 전화를 했고 이제 통화내용도 진일보 했다.
아내를 통해서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나이가 서른 네살인 나보다 5살 연상이라는 것,
그리고 어제, 한 시간 가까운 통화에서 남편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남편이 대단한 정력가라고 했다.
그러나 몸을 너무 아껴서 섹스를 하고도 사정을 잘하지 않는다고,
또 술에 취하면 짐승처럼 돌변해서 강제로 섹스를 한다는 내용까지 서슴없이 말했다.
나는 은근히 화가 치밀어..
아무리 부부사이지만 그런 행위는 강간이고, 성폭행이라고 했다.
그 이후 남편이 원할 때는 그녀 자신이 완강히 거부했고,
집에 찾아왔던 그 젊은여자 생각이 문득 문득 날 때,
남편의 배위에 걸터앉아 자신의 뜻대로 섹스를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런 남편이 어느 날부터, 술만 마시면 느닷없이...시비를 걸듯..
[그렇게 하고 싶은걸..낮에는 어떻게 참냐? 너처럼 밝히는 년이..남자가 없을라구..]
의처증에 가까운 포악을 떨면서 강제로 섹스를 하고는,
그래놓고 술이 깨 맨정신이 되면 잘못했다고 빈다고...그녀는 자초지종을 다 말해왔다.
지금은 점심 식사를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이다.
[지금 뭐해요..? 비가 오는데..]
"커피 마시고, 방금 전까지 피아노 쳤어요"
[피아노..? 피아노도 칠 줄 알아요? 대단하네요..!]
"가끔..마음이 울적할 때..."
갑자기 수화기 너머에서 이상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나는 조금 시차를 두고 입을 열어 물었다.
[울고...있어요?]
"미안해요." 라는 대답에는 분명 흐느낌이 묻어있었다.
그녀의 흐느낌에 당황스러워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었어요? 말해 봐요? 어서요?
이 네 마디만 되풀이 하던 끝에 ‘우리 만날래요?’라는 말이 무심코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만나자는 그 단어는 결코 사전에 염두에 두고 계획했던 말은 아니다.
잠시 후, 아니 한참 후.... "네!" 모기소리같은 작은 음성이 내 귓가에 들려왔고,
가늘게 떨리는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 역시 가슴이 떨리면서 좀 혼란스러웠다.
그 혼란함의 원인은 나를 알아보면 어쩌나 싶어서였다.
나야 먼발치에서 두어 번 그녀를 보았지만 안아주가 나를 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잠깐 만요...사무실에 전화하고..오 분 후에 다시 할게요...]
"만날래요? ..예.." 그럼 과연 어디서 만날 것인가? 머리가 복잡해진다.
갑자기 두려워지면서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혹시 나를 알아볼 지도 모르니까 너무 밝은 장소는 좋지 않다.
조명이 어두침침한 카페?
술집? 술집은 말도 안된다.
그녀 남편의 술버릇을 알고있는데..술을 얼마나 지긋지긋하게 생각할까.
"정말 만나도..될까..? 이건..일탈인데..."
장소를 생각하는 와중에도 일탈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떠오르자 마음이 착잡했다.
어눌하고 거북스러워 마치 비가 내리는 잿빛 하늘처럼 가슴이 짓눌리는 기분이다.
더구나 안아주 그녀는 아내가 언니라고 부르는 여자가 아닌가?
하지만 나는 애초에 이미 그녀와의 섹스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남편 배위에서 서너 번씩 절정에 도달하는 여자에 대한 호기심..그리고..
아내와의 잠자리에서 늘 불만스러워했던 그 일련의 일들 때문에 말이다.
[우리..모텔에서 만나요...내가 방을 얻어놓고 기다릴게요]
한참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서 내린 결론이다.
두 가지 목적을 염두에 두고 만남 장소를 모텔로 택한 것이다.
미리 모텔에 가서 구석진 방을 얻은 다음 커튼은 치고, 실내를 어둡게 한다면,
내 얼굴을 얼핏 보았더라고 기억해 내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과,
모텔에서 만나자도 제의해서 그녀가 싫다고 한다면 끝낼 생각이었다.
일탈이란 겁겁한 단어와 그녀와 아내의 관계가 마음에 걸려서 였다.
"꼭..모텔에서.. 만나야 해요?"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고 싶습니다. 정말 입에 담기도 싫지만.. 카페에서 만나 이야기해도
다른 사람들 눈에는 이상하게 보일 것이 뻔한데...
그리고 불륜이 꼭 성관계만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이미 서로가 보고싶어 하는 그 자체만으로도 배우자에 대해 불륜이 아닐까요?]
한참 동안 그녀는 아무런 말이 없다.
[그럼..방을 얻어 놓고 기다리면서 전화할게요... 그 동안 좀 더 생각해 보세요.
물론 안 나오셔도 섭섭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겁니다.
저는 그냥 샤워나 하고.. 한숨 자고 나오면 되니까요...]
"....나갈게요 "
또렷한 목소리..그렇지만 나는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혀 뜻밖의 대답에 당황스러웠지만,
가슴이 벌렁벌렁 두 방망이질 치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지고 있었다.
[저..정말요?]
* * * * *
내가 미쳤나? 그 남자가 강제한 것도 아닌데...
"그의 말이 사술이었나? 아니면 그의 말에 말려든 건가..?"
전화기를 내려놓고 한 동안 소파에 기대앉아 망설였다.
그러나 "그가 곧 전화를 할텐데..!’ 라는 생각이 새롭게 머릿속에 자리하는 순간
망설임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대신 귓가엔 가슴이 뛰는 소리만 들린다.
만나고 싶은 마음...마음이 생각을 앞서고 있다.
어느새 내 가슴속에 설렘만 가득차면서 방금 전의 망설임을 따돌리고 있었다.
내 마음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욕실로 걸어가고 있다.
샤워를 서두른다.
성급한 마음에 비누가 손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비누 거품을 먹은 가슴과 배가 매끄럽다.
다리 사이 깊은 곳..음부를 닦을 땐 여느 때와 달랐다.
어느 새 질척한 분비물과 비누 거품이 섞여서 부걱거린다.
이미 내 몸은 불덩어리...얼굴이 화끈거린다.
누군가가 이런 내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아 불안했다.
비누 거품을 샤워기로 씻어내고...
수건으로 몸에 물기를 닦는 동안 내내.. 가벼운 떨림으로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아..! 이거... 젖가슴에 시퍼런 멍 자국이 선명하다. 허벅지 한쪽도..
그랬다.
간 밤에 남편이 술에 취해 나를 강제로 범한 자국이다.
다시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진다.
"남자가 이런 멍 자국을 보면 기분 나빠 하지 않을까?
왜 이제야 눈에 띈 거지? 무엇에 씌웠나?
눈에 콩 꺼풀이 씌워진 게 분명해... 아냐. 나는 강제로 당하고 싶지 않은 거야.
나는 사랑을 받고 싶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남자에게 응답한 것이 분명해..."
욕실에서 나와 안방에서 마악 얼굴화장을 시작할 무렵이다.
"터미널 뒤쪽에 있는 은하수 모텔.. 306호 실입니다"
내 귀에는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나도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습니다. 왜 이러는지.. 저 자신에게도 설명을 할 수 없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하십시오...나도 내가 갑자기 두려워지기 시작하니까요"
[..네..!]
대답을 했지만 내 스스로도.. 그 대답이 나가겠다고 긍정적으로 말한 것인지,
아니면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뜻으로 말했는지 분간할 수 없다.
설렘과 두려움, 긴장과 쫓기는 듯한 불안감..
그런데도 나의 행동은 신통하게도 일사불란했다.
립스틱을 바르고, 포장도 뜯지 않았던 하얀색 팬티와 브라,
그리고 검정색 슬립을 차례로 입고,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었다.
거울에 뒷모습까지 비춰보면서..
그때서야 발가벗은 알몸둥이로 화장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