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나의 머나먼 여정 ( 1-5 )
2 장, 그대를 만나기 전...
삼라만상이 쉴 곳을 찾을 시간에 어디선가 짝을 찾는 부엉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푸웃! 무슨 좋은 일이 있으려나....? "
비몽사몽하는 가운데, 술망나니, 건달, 놈팽이, 바람둥이, 등 온갖 잡다한 미사려구가
혼잡스럽게 머릿속을 휘젓고,
아직도 여흥이 파하지 않은 듯, 노랫가락 소리와 웃음소리가 희미하게 섞여 들려오고 있었다.
뒷머리를 조여오는 지끈한 통증,
타는 듯한 목마름에 부시시 눈을 떠는 순간,
귓결에 희미하게 와 닿는 부엉이 울음소리에 피식 웃음을 베어물었다.
[으응, 깼어? ]
[목 말라, 머리도 아프구...물 줘!]
[그러게....무슨 원수가 졌다구...술을 그렇게나 많이 마셔? ]
[어? 근데, 설향 누나가 왜....내 방에 있어? 철주 형님은? ]
[하여튼, 못 말려....기억 안나? ]
이부자리를 가슴께로 끌어안으며 자리끼를 건네준 설향 누나가 퉁을 준다.
기억? 글쎄다.
벌컥벌컥, 단숨에 물병을 반이나 비우자 그제서야 제법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공(철주)사장님은... 월선 언니가 모시고 나갔겠지...뭐 ]
[그건 그렇고, 오야지.. 아니지, 마담 누님은...설향 누나가 여기 있는거 알어? 몰라? ]
[정말 하나도 기억 안나?
지가 괜챦다고 괜챦다고 큰소리 탕탕 친걸...
아니, 불과 두 시간 전에 있었던 일도 기억 못한단 말야?]
[내가 그랬어? 아고, 죽었네...]
[이화 언니 그러더라,
"설향이 너 오늘밤 이 애랑 같이 자면 낼 부터 당장, 가게 나올 생각 접어라구"]
[이시...고, 고 이쁜 이마에...갈매기 몇마리 날았겠는데...]
[책임져, 이거 모두 너 때문이야 ]
[책임은 개뿔...술 취해 주접 떠는 넘...그냥 발로 콱! 차버리지 않구선...]
[조,조, 말하는 모양새 하구는...아니, 술도 취한 사람이 웬 힘이 또 그렇게나 세...
나를 난짝 안아들고 이 방으로 들어와선, 휙 던져버리는데 발로 걷어찰 사이가 어딨어?]
[그, 그래....내가 거시기...했어? 누나랑...아니지? 그치? 그냥, 잠만 잤지? ]
[.....그, 그건...몰라, 자, 잠만 잤는지...확인해 봄 알쟎아 ]
[어디....봐 바 ]
설향 누나가 가슴께로 끌어안고 있는 이불을 내가 확 잡아채자
"어머" 하며 놀라는 누나의 아랫도리는 여전히 얇은 속치마가 둘러져 있었다.
[뭐야? 치마 저고리는 벗고...속치마...함 보자..]
[얘, 얘가 미쳤어...어딜 들추고 그래, 이 손 안놔? ]
[히힛! 그럼, 가슴이 다 보이는데...]
뽀오얗게 갓 쪄낸 찐빵같은 유방,
누나는 가슴이 훤하게 드러났지만 자신의 속치마 근처엔 얼씬도 못하게
내 손을 막무가내로 제지했다.
나는 내심 킥킥거리면서 못 이기는 척 한 걸음 물러났다.
[아함~ 누난, 더 자...나가서 세수라도 좀 하고 올테니...]
[그, 그냥. 안채 들어갔다 와, 이모님 아직 안주무시는지도 몰라]
몸을 일으켜 나가려는 내 등에다 대고 설향 누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이화 누님이 나 왔다고 또 일렀구나...그렇지?]
[당근이지, 제발 철 좀 들어라 철 좀 들어....
허구헌 날 쌈질에 여자들 꽁무니나 쫓아다니구...
말은 안하시지만 이모님 속이 얼마나 상하시는지 몰라서 그래?]
[아쭈, 점점...누나도 닮아가네...어쩜 그렇게 이화 누님이랑 똑 같은 잔소리?]
[하여튼 난 몰라, 니 일 니가 알아서 할테지만...]
[훗! 좋아....그럼, 누나 혼자 잘자...난, 안채 들렀다가 바로 갈테니까....]
[아휴~ 저 능글능글 바람둥이, 구렝이 같은 자식...]
화난 듯이 이불을 확 끌어당겨 머리끝까지 뒤집어 써 버리는 누나,
나는 미다지 문으로 슬그머니 걸음을 옮기다말고는 휙!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설향이 누난 빼꼼이, 이불자락 사이로 고개를 내밀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 * *
달은 이미 저만치로 기울었고, 후원 안뜰에는 소슬한 바람만 스쳐 지나간다
자잘한 돌이 깔린 바닥을 자박자박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린다.
"으음...정말이네, 이 시간에 여직 잠들지 못하고 있었나 봐 "
이모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불빛, 이상하게 가슴 한 귀퉁이에서 찡 하는 울림이 전해져왔다.
"이.....모!!! "
[이모....자? ]
[들어와...이모, 아직 안 자]
[...........!!? ]
내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장지문을 스르르 열고 한 발을 내 딛던 나는 움찔했다.
내실은 주인의 취향을 말해주 듯 고풍스런 가구들이 소박하고 단아하게 배치되어 있고,
묵향이 물씬 풍길 듯한 난(蘭) 그림이 걸려있는 벽채 아래로 싱그러운 화분들이 놓여져있다.
올 때마다 언제나 느끼지만, 헝클어진 내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지는 그런 분위기,
근데...
이모는 보료위에 앉아 탁자위의 책을 들추고 있는데,
아랫목 이부자리에 누군가가 잠들어 있는게 아닌가?
학처럼 고고하게 홀로 살아 온 이모가 내게 알리지도 않고 결혼을 했을리는 없을텐데...
나는 움찔 놀랄 수밖에...없었다.
[누, 누구야? 마담 누나는 아닐테고...]
[문이나 닫어, 바깥 바람이 아직은 쌀쌀해...]
[흠 흠, 그...그래, 무, 문. 닫아야지...자는 사람 추울텐데...밤바람이...]
내가 그때, 왜 그렇게 더듬거렸는지는 지금 생각해도 아직 의문이다.
운명같은 것은 믿지않았는데,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그 무언가를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잠자고 있는 그녀에게서 느낀 탓인지...
[아직 잠자리가 마땅챦아....우선 내 방에 재웠어 ]
[빈 방이 한 두개도 아니구...오라, 이제 보니...새로온 여자애구나...]
그제서야 이모는 보고있던 책장을 덮으며 내게로 시선을 던져왔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호수같은 눈길이라고 할까?
나는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눈을 이모 얼굴에서 찾고있었다.
[아냐, 처지가 딱한 애라....내가 수양딸 삼으려고, 얼마전에 데려왔어]
[그게 그거지 뭐, 수양딸이 기생되는 거쟎아...]
[녀석하구는, 앉기나 해...천장 무너지지 않으니까]
[그래, 들어왔으니 앉아야지...흠, 흠, 근데...동남아에서 살다온 여자야?
왜...얼굴색이 저 모양이야?]
[동남아라니...바닷가에서 생활했으니 피부가 그을려서 그런거지...]
[바닷가...? ]
[....후~ 술 냄새...]
내가 다가가 앉자 이모는, 그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리며 코를 찡긋했다.
[어? 미안, 이모...근데 몇 살이나 먹었어? 아직 어린애 같구만....]
[허, 차암, 뭐가 그리 궁금한게 많으니...?
그래, 무슨 바람이 불어서 집엔 온거야? 다신 안 온다고 그 난리를 치고선...]
[쯥, 뭐, 먹고 살려니까...
사실은, 모시는 형님 덕분에 목에 때 좀 벗기러 온겨...술도 고팠고...]
[녀석아, 이모 앞에서는 좀 고운 말 쓰면 안되니...말투가 그게 뭐니?]
[칫! 우리 고결하신 이모랑은 취향이 반대니까...
이모는 그 고운 손으로 책장이나 들추고 난이나 치지만,
난 걸핏하면 쌈박질에....여자나 후리고...]
[자랑이다, 그래서 이젠...방에 있는 누나들까지 찝적댄거야?]
[찝적대긴 누가...그, 그냥, 술이 취해서....]
[핑게하구는...쯧쯧! ]
분명 이화 누님이 다 꼬아 바친 모양이었다.
이모는 알게 모르게 가볍게 한숨까지 포옥 내쉬었다.
애초에는 이모 얼굴이나 보고 곧장 설향 누나가 있는 내 방으로 돌아오려고 했었다.
새롭게 이 차전을 치루어야 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쯧쯧, 가볍게 혀를 차면서도,
내 폐부를 들여다 보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다보는 이모를,
선뜻 외면하고, 나올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기에는 뭔가 미련이 남아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바로 그때,
깊이 잠들어 있던 그 여자애가 상체를 약간 옆으로 기울이면서,
나와 정면으로 얼굴을 마주했는데,
목언저리까지 씌워져 있던 이불자락이 조금 아래로 걷혀졌다.
[며...몇살이나 먹었냐니깐? 것도 못알려줘? ]
[으응, 21 살....]
[이름은? ]
[....박 순...애 ]
이모는 나의 채근에 마지못한 듯 대답을 해 주면서 몸을 약간 옮겨 앉았다.
그녀의 작은 몸부림으로 걷혀져 내린 이불, 이모가 자연스런 동작으로 이불자락을
끌어당겨 덮어주는 그 짧은 순간,
나의 시선은 이모의 손길을 따라 빙그르 가자미 눈알을 만들어 움직였고,
그리고,
갑자기 머리뒷골이 찌잉 하는 전율을 느껴야만 했다.
나의 두 눈을 가득 헤집고 찔러 들어온 그 그림.
그랬다.
하얀 속적삼에 가려져, 붕긋하니 솟아오른 수밀도
(껍질이 얇고 살과 물이 많으며 맛이 단 복숭아: 여성의 가슴 중 최최상급 )의 아찔한 그림.
그것은 도저히 21 살 정상적인 여자의 가슴 형태가 아니었다.
가슴골을 본 것도 아니고 그냥 수밀도 그림자의 실루엣만 눈에 담았는데도,
숨이 턱 막혀왔다.
가슴이 두근거려 호흡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일어나려던 나는 나 자신도 모르게 "와우~" 하는 짧은 탄성을 내뱉으며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3 장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