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 애정비사 71-75화
CAMPUS 애정비사 71-80 화 까지
<제71화> 뻗어오는 미세스 최의 손길
내 옥탑 자취방에 들어설 때쯤엔 숨이 턱 밑에 닿고 있었다. 우선, 나는 대
문을 들어서기 이전에 자취집 골목안부터 살폈다. 다행이다. 희창이의 차는
일단 보이지 않는다.
사실 녀석이 자기 집에서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는 편이었다. 만약 차
를 몰지 않는다면 그나마도 더 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행여 녀석이 어제 밤사이 내가
외박한 사실을 안다면, 당장에 곤란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일 - 보영이와 그녀의 방에서 벌인 일, 그녀와의 동침 -
은 그 여자애와 나만이 아는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러나... 내가 희창
이의 핸드폰으로 그녀의 전화를 받은 일, 단란주점에서 박사장이란 작자와
벌인 격투, 이런 것들을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목격자도 있었고, 그렇게 대판 사고를 치루었으니 모를 사람도 알 일이었
다. 어쩌면 그 가게에서 빠져나와 단 둘이서 그 기집애가 사라지는 광경을
누군가 목격했을 수도 있는 일이고, 벌써 그 술집 안에는 어제의 내 무용담
이 파삭하게 소문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야 아니라도, 보영이를 만나는 동안 그곳에 뻔질나게 출입할 희창
이기에, 어차피 다른 사람을 통해 알 것이다.
내가 숨겨야하는 사건은 바로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녀의 자취방
에 함께 있으며 정사를 나누고, 그리고 아침에 돌아온 이 순간까지의 상황
- 나중에 어찌될지 모른다하여도 일단 지금으로서는 그에게 이 사실을 숨겨
야만 한다.
희창이의 도착을 기다리며, 나는 머리 속에서 녀석에게 둘러댈 말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었다.
으음... 먼저 그 단란주점 앞에서 벌인 싸움은 자초지종을 설명해야겠지...
그리고 나와서는... 어휴, 뭐라고 얘기하지? 모르겠다. 그냥 보영이는 자기
집으로 가고, 나도 내 방으로 돌아왔다고 해야할텐데.
후회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랑 앞뒤 말을 맞춰보고 올 것을 - 하
지만 아니, 그보다는 더 근원적인 문제, 친구가 눈독들이는 여자애와 함께
잤다는, 그 크나 큰 죄책감의 회한이 곧 몰려왔다.
아아, 끝끝내 물리치고 나와야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아무리 섹시하
고 또 먼저 유혹했대도 그렇지, 본능적 욕구에 무너지고 말다니. 머리를 쥐
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할까... 양심에 따르면 그래야 옳겠지만, 정말 양심적이었
다면 어제 그런 정사도 벌이지 말아야했었다. 나는 그 정도의 강심장은 아
니다. 물론 희창이가 보영이를 쫓아다니는 게 녀석 말대로 현지처 - 그렇고
그런 섹스 파트너 - 를 만드려는, 그저 응큼한 야욕의 발로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나 역시도 보영이를 섹스 파트너정
도로서 대할 수 있다는 정당함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남자를 밝히는 여자애라고 해도, 또 애정 없는 육체적 관계만을 목
적으로 그녀를 원한다 하여도... 그 당사자가 내 친구, 그것도 죽마고우인
이상 절대로 합리화를 시킬 수는 없었다.
답답했다. 정반대의 경우 희창이는 어쨌던가. 내가 선영이 누나와 같이 잔
다음 날도, 그는 내 의견을 존중해 더이상 누나에게 시선주는 일까지도 자
제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그런데 나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
러놓다니 -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내 자신이 죄스러웠다. 녀석 앞에서 고개를 들 수나
있을런지 걱정되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는 나인데, 예상보다 늦게 내 방문이 두드려지고 있었
다.
"야, 짱이, 아직 자냐?"
희창이였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야, 창희야!"
"으... 응, 드, 들어와...!"
엉거주춤, 방구석에 구겨져 생각을 거듭하느라 쪼그렸던 몸을 폈다.
"뭐야, 이불도 안 개놓고... 지금이 몇신데"
멀끔하게, 녀석이 개운한 얼굴로 들어서고 있었다.
"맞아, 여기 있었지..."
들어오자마자 주저앉으며 방바닥에 뒹굴고 있는 자기 핸드폰부터 챙기는
그. 이미 녀석의 전화기는 밧데리가 떨어져 꺼진 상태였다.
"야 근데 너 어제 나 가고난 뒤에, 어디 나갔었냐? 내가 집에 가서 전화했
는데 안받더라...?"
아마도 보영이네 술집으로 달려간 시간에 이곳으로 전화를 건 모양이다. 그
러고보니 아직 내가 박사장과 맞딱드린 사건을 모르는 희창이 녀석이다.
"응, 그, 그게 말야...!"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일단 보영이의 셋방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핸드폰으로 보영이 전화를 받은 일, 단란주점으로 달려간
일, 그리고 그 앞에서 박사장이란 중년사내와 주먹다짐을 벌이기까지.
그러나 의외로 피식거리는 희창이 놈.
"으이그, 그래서, 그래서 겨우 한방 먹었다구 반창고까지 붙인 거냐?"
반창고 - 맞다. 어제 보영이가 붙여준 반창고가 아직 한쪽 뺨 가장자리에
너덜거리며 붙어있었다.
"참, 보영인 괜찮은 거냐? 그 새끼가 보영이까지 때렸단 말야?"
이럴 때면 순진한 건지, 희창이는 보영이가 따귀 맞는 장면에 흥분하고 있
었다.
"잘했어, 짱이야! 나같아도 여자를 때리는 놈은 가만 안두지... 어쨌든 고
맙다, 고마워!"
그는 자기대신 내가 그 박사장을 응징했다는 말에 감격한 듯 고마워하고 있
었다. 제길... 나는 그럴수록 점점 가슴 속이 찔리고 있었다. 나한테 고맙
다니 - 그 이후의 일을 안다면 고맙기는 커녕 당장 죽일 놈 취급을 받아야
하는 놈인데.
"짜식, 역시 넌 내 불알친구다. 친구의 여자까지 지켜주려 목숨을 걸다니,
킥킥"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마음 같아서는 엎드려 사과해도 모자를 판국에 이
녀석에게 칭찬을 듣다니...
"그래서?"
으잉, 그래서?
"그래서 어쨌냐구. 그게 끝이야?"
뜨끔, 엉덩이가 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박사장을 두들겨놓고 난 뒤에 무
슨 일이 이어졌냐는 희창이의 비수같은 질문이었다. 꿀꺽, 이 대목부터 내
거짓말이 시작되어야했다. 어쩔 것인가 - 사실과 비밀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 마음이었다.
"끄, 끝은 뭘... 그, 그냥 그래놓고 나왔지... 보영이가 나오길래, 나, 나
도 그냥 같이 나왔어...!"
그러나, 결국 비밀을 택하는 내 세치 혀. 정말 미안하다, 희창아. 원래는
그 이후에 더 많은 사건들이 엄청났지만... 지금 너에게는 숨길 수 밖에 도
리가 없어 -
"그래? 에이, 나같으면 아예 찍소리 못하게 쫓아가서 콱 밟아놓는 건데"
다행히도 더 캐묻지 않아주는 그였다. 내 말을 그대로 믿는지, 침이나 바르
고 거짓말하란 속담이 있지만 아니라도 입안이 바짝 마르는 나였다. 꿀꺽,
마른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어쩐지... 그런 일이 있었구만...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나야 이 핸드폰
으로도 전화가 안되길래, 놓고 간 게 아니라 길바닥에 흘렸는 줄 알고 너한
테 부랴부랴 달려왔지... 어쨌든 이모저모 신세진 셈이구나. 좋아, 나가자.
너 아침 안먹었지? 내가 사줄께"
어휴... 오늘따라 아침 챙겨주는 사람도 많군... 그러고보니 배도 쪼르륵거
린다. 어제 그렇게 격렬한 정사를 치루고, 밤부터 아무 것도 못먹었으니 당
연한 결과다.
"보영이랑 같이 먹자. 아마 걔 자기 이모네 소주방에 있을 거야"
뭐라고? 나는 펄쩍 뛰었다.
"아, 안돼! 아, 아니 나, 난 됐어!"
"왜 임마, 배 안고파? 너 맨날 아침 사먹잖아?"
아이고, 배가 고프거나 말거나 보영이랑 같이 먹는 것은 안된다. 그 기집애
랑 헤어진지 불과 한시간도 안지났는데 - 다시 얼굴을 마주친다면 민망하고
어색해서 자살이라도 할 것이다.
"야, 어제 보영이도 얻어맞았다며, 가서 위로도 할겸, 불러내서 비싼 것 먹
자. 내가 산다니까!"
"아, 아냐...! 너, 너희 둘이 먹어...!"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희창이. 지금 이 놈과 있는 것도 껄끄러운 마당에 보
영이라니, 그런 낯뜨거운 삼자대면은 죽기보다도 못할 일이었다.
"왜 그래, 짜샤. 그럼 우리 둘만 밥 먹으라구?"
"그, 그게... 나, 나 지금 별로 몸이 안좋거든... 감기, 그래, 감기 기운이
있어, 그래서..."
결국 아프다는 핑계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녀석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의심이라도 하면 안되는데, 젠장.
"뭐야... 어제 몇대 맞았다고 몸살이라도 난 거냐? 너 어제까지는 멀쩡했잖
아?"
오늘따라 꼬치꼬치 따지는 희창이였지만, 나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소, 속도 안좋구... 어, 어쨌든 밥은 나중에 사라. 오, 오늘은 말고..."
이래서 거짓말은 자꾸 커진다는 것일까.
"정말이야...? 어디... 짜식, 그렇게 보니까 좀 얼굴이 안돼 보이는데...
눈이 퀭하니 시뻘건 게..."
윽, 아직도 어제 보영이랑 그짓을 한 여운이 얼굴에 씌여있단 말인가 - 다
시 한번 가슴 속이 뜨끔했다.
"새끼, 그러니까 밤에 잠좀 자라, 잠좀. 맨날 딸잡지 말고... 크핫!"
흐휴, 어쨌든 녀석은 넘어가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농담까지 섞으며.
"창희 너 그럼, 오늘 학교도 안나올 거냐?"
"으, 응... 그, 그냥 집에서 쉴래..."
이렇게 된 이상 학교도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고
보니 정말로 정사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온몸이 노곤했다.
"왠 일이냐, 범생이께서... 알았다. 그럼 쉬어. 참, 약이라도 사다주랴?"
"아, 아냐... 됐어. 대충 한숨 자면 낫겠지 뭐"
진짜로 아픈 척, 나는 인상을 찌푸려 보였다.
"어, 얼른 가봐"
엉거주춤, 그제서야 엉덩이를 일으키는 희창이였다.
"쉬어라. 내가 이따가... 수업 끝나고 들리든가, 아니면 전화할께"
정말로 걱정해주는지, 녀석은 돌아가면서도 짐짓 불안한 표정이었다.
휴우... 그가 나가자 나는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우며 한숨을 쉬었다. 아슬
아슬한 기분이었다.
어쩌지 - 틀림없이 희창이는 보영이를 찾으러 갔을 것이다. 그 기집애가...
잘 둘러대야할 텐데. 말 실수라도 하는 날엔 큰 일이었다. 나중에 내 입으
로 직접 녀석에게 밝힌다면 몰라도, 그녀의 입을 통해 들통이 나는 날에는
정말 내 양심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제발, 부디 무사하기를. 아무 일 없기를. 어휴, 애꿎은 한숨만이 연달아 터
져나왔다.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을까. 가장 친한 친구놈에게도 거짓
말에, 비밀에...
에라, 모르겠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불안할 따름인 머리 속이 너무 복잡
했다. 그렇다고 지금 걱정해서 어쩔 것인가. 차라리 그 녀석을 따라나설 걸
그랬나 - 그럼 대충 보영이랑 둘이서 합작으로 얼버무릴 수도 있는 건데.
자포자기하는 심정이다. 아우성치는 뱃속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잠이 몰려
왔다. 그래, 잠이나 자자. 어차피 어제 보영이랑 생난리를 치루느라, 아직
까지 찌뿌드드하니까.
온몸에 나른함이 몰려왔다.
삐리리릭...
삐리리릭...
얼추, 막 선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내방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다. 이건 내 방의 내 전화기다.
잠결에도 확인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여... 여보세요"
"어, 짱이야. 나다, 이짱"
어... 왠 일이지? 아직 수업 끝나려면 멀었는데... 시계는 채 오후 한두시
도 안되고 있었다.
"어, 미안... 잠깼냐?"
"어, 응... 왜?"
무슨 일이지? 돌아간지 얼마되지도 않고서.
"응, 별 게 아니고... 너 미세스 최 알지? 있잖아, 보영이네 가게 마담"
뭐라구? 최마담? 그 순간 낮잠이 확 깨고 있었다.
"지금, 보영이 이모네에 있는데... 그 여자가 보영이를 찾아왔거든, 그래
서..."
순간적으로 경악하는 나였다.
아차차! 내가 놓친 계산이 하나 있었다. 미세스 최 - 그 누님. 그녀는 이미
희창이와도 익숙한 사이다. 그리고, 아까 아침에 보영이 방에서 엉겁결에
받은 내 전화 한통으로... 최마담은 내가 보영이와 잤다는 사실을 알고 있
다.
그럼 혹시 - 그녀가 희창이에게 내가 보영이와 어제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설? 뜨악하니 내 입이 벌어졌다. 머리 속이 아찔해졌다. 지, 지금 이 녀
석이 뭐라고 했지?
"그 언니라는 사람이 말야, 지금 여기 같이 있는데..."
으악, 같이 있어? 보영이랑, 너랑?
그런데 의외로 건너편 희창이의 목소리는 지극히 평범했다.
"뭐라드라... 어저께 가게에서 그런 일, 미안하게 됐다구... 너좀 바꿔 달
라는데?"
미안하다? 어제 일이라면 박사장 사건? 재빨리 머리를 굴렸지만, 그 때문만
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이것은 - 핑계였다. 그렇다. 나를 찾으려는.
"야, 아, 안돼...! 나 없다고 해. 아니 나 아파서 전화 못받겠다고 그래...
!"
즉시,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지르려는데...
"어, 뭐? 잠깐만..."
희창이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일순 바뀌었다.
"호호, 안녕하세요, 창희 도련님...!"
누님, 미세스 최였다 -
<제72화> 꼬여만 가는 누님과의 관계
미세스 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발끝부터 온몸이 바짝 긴장하는
것만 같았다.
"몸이 안좋다면서요... 어머 이를 어째, 어제 우리 가게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에요?"
한껏 가장한 목소리.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마치 마녀같은 이 목소
리의 진위... 그것은 일부러 옆에 있는 희창이와 보영이에게 들리도록 거
짓된 것이라는 걸.
"아유, 미안해요. 괜히 다미 그 기집애가 말썽 피우는 바람에, 창희씨가
괜히 뒤집어썼네요... 어제 그런 봉변을 다 당하고..."
으아... 이건 완벽한 위장전술이다. 어차피 그녀도 다 알고 있었던 일 아
닌가. 보영이 셋방까지 따라와서, 내가 그 기집애와 단 둘이 방안에 있는
것까지 보고 가놓고는 -
그렇다면 이 목소리는 분명 나보다 지금 최마담의 곁에 있을 두 사람, 보
영이와 희창이를 속이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아니 좀더 정확히는 희창이
에게 감추려는 의도다.
당연한 일이다. 이 누님은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나와 보영이가 방에 함
께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냥 술만 마시라고, 그 여
자애랑 자지 말라고... 그러나 지금, 그 여자애랑 내가 아침까지 있었다
는 사실은 우리 둘에 더해 미세스 최, 이 여자까지 도합 세사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을 아는 것은 - 내가 보영이 방에서 자고 나온 것을 총
세명이 안다는 것은 - 나와 이 마담누님뿐이었다. 즉 보영이는, 그녀가
아침에 전화를 했으며, 얼결에 내가 그 전화를 받았음을 전혀 모르고 있
다. 나는 그저 그녀에게 잘못 걸린 전화라고 얘기해두었으므로...
그러니 보영이는, 내가 그녀 방에서 자고 나왔다는 사실을, 바로 곁에 있
을 최마담에게 들켰다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 기집애로
서는 그냥 적당히 나 창희가 술을 마시다가 돌아갔다고 말했을 것이 분명
하고, 아니 어쩌면 희창이 앞에서는 - 어제 자기 방에서 나와 그녀, 그리
고 미세스 최가 맞딱드렸었다는 사실마저 쉬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었다.
"괜찮으세요, 몸은? 어디 아프거나 덧나지는 않았수?"
그녀는 뭐라 대꾸할 말을 잃은 내게 계속해서 짐짓 가식적인 걱정을 보내
주고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걸로 보니... 방금 생각처럼 일단은 이 누님이 희창이에
게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확실하다. 그녀는 내가 다쳤다는 사실도 어
제 보영이네 방에서부터 알고 있으면서, 우선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숨
겨주려는 의도이다.
그래, 당연히 - 보영이는 마담언니에게 신호를 해두었겠지. 그녀 방에서
나와 단 둘이 술마셨다는 걸 말하지 말아달라고...
아아, 정말로 복잡한 상황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추면서도, 서로가 서
로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지금 보영이네 소주방이란 곳에서 벌어지고 있
을 광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희창이, 녀석은 단지 어제 내가 치룬 사고에 대해 최마담이 미안해하는
줄만 알고 있을 것이다.
보영이, 갑작스런 미세스 최의 등장에 그녀가 가장 놀랐을 것이며, 당장
언니가 희창이 앞에서 어제 나와 있었다는 사실을 발설할까 겁냈을 것이
다. 그리고 당연히 아침까지 같이 잤다는 사실을 최마담에게는 속였을 것
이다.
그리고 최마담... 그녀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속아넘어가 주는 꼴이었다.
모른 척하고 있을 게다. 자기가 그 모든 정황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
리고 태연히 희창이 앞에서 감추고 거짓행동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기가 막힐 정도로 꼬였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꿀꺽, 긴장된 마른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정말 아슬아슬한 내 입장
이다.
"저, 저는 괘, 괜찮아요... 어, 어제 일 때문에 그러는 것 아녀요...!"
어떻든 벌어지는 상황이다. 달리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색
한 침묵.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 난 혹시 우리 창희 도련님이 심하게 다친 것
아닌가해서 걱정했어요, 호호..."
미세스 최 누님의 웃음소리 - 이것은 어쩌면 어금니를 악문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럼... 집에서 푹 쉬도록 해요. 혹시 뭐 어디 더 아픈 곳 있으면, 당장
연락해주고요. 어쨌든 다미년 하나 땜에... 창희씨에게 미안하기만 하네
요"
"예, 거,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잠시 후, 바뀌는 목소리.
"응, 짱이야, 난데, 괜찮냐?"
희창이. 아무 것도 모르는 녀석.
"으, 응..."
"마담언니께서 상당히 걱정해주시네... 야, 너 어제 일 장난이 아녔나본
데?"
"아, 아냐... 그, 그냥... 나, 잠... 그래 잠이나 더 잘께"
"그럴래? 알았어. 혹시 많이 아프면 전화해라. 감기약 사다줄께"
응, 그래, 끊는다 - 딸카닥.
어휴, 전화기를 내려놓고도 나는 한동안 멍청해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복잡하게 얽힌 사건과 사람들... 머리 속으로 정리가 안된다.
그나저나... 미세스 최 누님은 왜 그곳까지 나타난 것일까. 내가 어떻다
는 것은 다 알면서 -
그 의문은 곧이어 걸려온 전화 한통으로 터져나오고 있었다.
삐리리릭...
얼떨떨한 기분으로 수화기를 드는데...
"여보세요, 창희?"
으악! 또 한번 미세스 최였다. 갑작스런 그녀의 목소리에 입이 떡 벌어졌
다.
"나 누님이야... 지금 집에 있을 거지?"
왜, 왜 다시 전화를 한 거지?
"걱정 마. 지금 내 차안이야. 옆에 아무도 없어. 보영이랑은 아직 거기
있구... 나만 나왔어. 어디, 집에 있을거야 동생?"
으화화 - 식은땀이 흐른다. 뭐라고 대답하란 말인가?
"그럼 집에 있어. 내가 갈테니까. 그 때 옥탑방이라고 했었지? 곧 갈께..
.!"
뭐, 뭐라고요? 자, 잠깐만요 - 그러나 대꾸할 새도 없이 전화는 끊어지고
있었다.
후다닥, 나는 펄쩍 뛰며 일어나 앉았다. 무, 무슨 얘기야! 지금 이리로
온다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녀가 왜 내 자취방에 온단 말인가?
나는 너무나 황당한 그녀의 통고에 넋이 나가고 말았다. 이곳으로 찾아온
다니, 왜?
아니야, 어, 어쩌란 말인가 - 도망갈까, 말도 안되지, 어디로 튄단 말인
가. 보영이네 소주방에서 여기까지는 느린 걸음으로도 5분 거리인데...
아니지, 왜 도망쳐야 해? 내가 왜... 그래도 아니다. 그렇다고 맞딱드려
서 또 뭘 어쩐다?
갈팡질팡, 우왕좌왕, 안절부절 못하는 나...
정신차리자, 정신! 어찌 돌아가는 판국인지 몰라도.
지금, 지금 곧 미세스 최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내가 어
디로 달아날 수도 없다. 빨랑 상황정리를 해야했다.
그녀가 오면 뭐라고 말한담? 이것이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틀림
없이 그녀는 어제 밤사이 내가 보영이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추궁할 것이
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그녀가 이리로 오겠다는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뭐라고 대답한다... 일단 내가 아침까지 보영이 방에서 자고 나왔다는 것
은 그 누님도 알고 있는 꼼짝 못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강력
히 요구했었다 - 보영이 기집애와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자지 말라고.
내가 왜 그런 얘기를 들었어야하는지, 지금으로선 그런 이유를 따질 계제
가 아니었다. 어쨌든 신신당부를 한 미세스 최와의 약속을 깬 것은 내 쪽
이니까...
제길, 무조건 잡아떼자. 난 아무 일 없었던 것이다. 그냥 보영이 방에서
잠만 잤다고 하자. 아무 짓 안하고, 그냥 술 취해서 걔나 나나 쓰러져 잤
다고 해버리자.
그래도 꼬치꼬치 따진다면, 나로서도 할 말은 있다. 결단코 잘한 일은 아
니지만, 그도 그럴 수는 있는 일 아닌가, 내가 누구네 집에서 누구와 잤
건, 그건 내 자유다 - 표면상으로 그 누님이 내게 간섭할 일은 절대 아니
다. 더더군다나 내가 보영이와 정사를 가졌건 아니건, 무슨 증거가 남는
것도 아니고... 최마담이 알아야할 문제는 전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불안한 결심을 하는 나인데... 골목길에서 자가용이 멈추는 소리
가 났다.
왔다. 미세스 최가 나타난 것이다.
또각또각, 계단을 올라오는 여자 구두굽 소리.
"창희동생, 안에 있어?"
올 것이 왔다. 당당해지려 한껏 긴장하는 내 목소리.
"어, 예... 드, 들어오세요..!"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데... 방문이 슬며시 열리며 미세스 최가 들어서
고 있었다.
어...? 긴장된 대면이지만, 그녀를 보고 나는 저으기 놀라고 있었다.
차분히 맵시낸 정장... 진하지 않은 화장... 처음에 나는 그녀가 다른 사
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저 평범한 오피스걸이나, 아직 처녀티를 벗지 못
한 새댁의 외출 - 뭐 그런 것을 떠올리게 하는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치마가 다소 아슬아슬하게 짧다는 것만 빼놓으면, 그녀는 단란주점에서
본 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누가 보아도 이제 겨우 이십대 후반
정도의 아가씨같은 늘씬한 모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야함이라든가, 색기
와는 거리가 멀고 - 그저 그런, 흔히 시내에서 마주칠 수 있는 보통 여자
처럼 보이지 않나.
그리고, 그녀는 내 예상 - 독기가 서렸다던가, 화가 났을 거라는 - 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아휴, 이게 뭐야 창희... 그래도 이 누난 손님인데..."
아차차, 그녀에게 대답할 말만 궁리하느라고 전혀 방안에 신경을 쓰지 못
했었던 것이다. 아이고 참, 희창이나 친구가 아니지, 미세스 최는...!
"혼자사는 남자들 별 수 없다니까... 옷도 어제 입은 그대로고..."
당장, 왠지 모르게 귀밑이 달아올랐다. 마치 지저분한 홀아비 방을 들킨
기분이다.
얼렐레 - 그리고 그녀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저리 비켜봐...!"
민망한 나를 제끼고, 들고 온 봉투 따위를 내려놓은 그녀는, 아무 말 없
이 내 방안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 어... 내, 내버려 두세요! 제, 제가 할께요!"
"됐어, 동생은 가만 있어. 이런 건 원래 여자가 하는 거야"
방구석으로 나를 몰아놓고, 그녀는 이불이며 내 옷가지들을 개키고 있었
다.
"어, 누, 누님 그건...!"
우수수, 방안에 쌓아놓은 옷더미에서 내 속옷 - 팬티따위가 방바닥으로
쏟아졌다.
<제73화> 엎드려진 누님의 엉덩이
아이고, 민망해라 - 아무리 빨아놓은 옷가지라고 해도 그렇지, 내 런닝이
나 팬티들이 누나뻘 되는 여자의 발밑에 널린 것은 절대로 보기 좋은 꼴
이 아니었다.
허겁지겁 옷더미를 챙기는 나. 하지만 미세스 최는 남자속옷을 보고도 그
닥 놀라거나 멎쩍어하는 눈치가 아니다.
"어휴, 하, 하필이면 이게 왜..."
어이없어하는 나를 놔두고도 그녀는 피식거리는 웃음을 지을 뿐이다.
"푸훗, 됐어. 뭐 어때... 다 입는 옷인데. 내버려두고 동생은 가만 있어.
누나가 다 알아서 치울께"
엉거주춤, 방바닥에 쏟아진 속옷가지를 챙기는 나를 밀치며 누님은 손수
그것들을 개키기 시작했다.
"창문이나 열고... 걸레같은 것 있어? 아냐, 내가 할테니까, 창희는 잠깐
나가있어...!"
옷장대신 구석에 놓인 상자를 끌어다놓고, 그녀는 내 팬티까지 한장 한장
곱게 접어 집어넣고 있었다. 갈수록 얼떨떨해지는 분위기의 나... 나는
최마담이 들이닥치면 몰려오리라 예상했던 폭풍우는 커녕 - 이렇게 당혹
스런 모습을 보이는 그녀인지라 완전히 얼이 빠질 뿐이었다.
"제, 제가 할께요, 누, 누님...!"
"괜찮아. 누나가 동생 방 치워주는 건데 뭘... 그냥 조금만 있어. 어머..
. 창희 너 게을러서 청소도 잘 안하는구나?"
아아 참... 내가 돕겠다고 한사코 나서도, 그녀는 되려 그런 나를 말리며
척척 마치 자기 집처럼 내 방안을 능숙하게 정돈해가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어디..."
자꾸 낯뜨거울 따름인데, 이제 숫제 블라우스 소매까지 걷어부친 미세스
최는 걸레를 찾아와 방바닥 구석구석을 훔치기까지 하고 있다.
"아유... 구석에 이 먼지좀 봐. 안되겠네, 우리 창희 방 자주 와서 청소
좀 해줘야겠다..."
으잉? 자주 와서 청소를 해준다고요? - 아닌게 아니라, 사실 일주일에 채
한번도 청소를 해본 일이 없는 내 방에는 구석구석 먼지가 한웅큼씩은 날
리고 있었다.
"어머머, 이 책상밑은 장난이 아니네...!"
방 한켠의 책상밑. 그녀는 의자를 밀어내고 그 아래까지 엎드린 자세로
허리를 숙이고는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 이, 이런...!
글쎄다. 청소하는 여자가 특히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나, 집안일하는 여자
를 어머니 외에 제대로 구경해본 적도 없는 나여서, 이런 광경을 처음보
는 것이기는 하지만 - 지금 이 미세스 최 누님의 청소하는 포즈는 상당히
야릇한 체위였다.
가뜩이나 짧은 정장치마를 입고, 자기 옷매무새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구
석에 고개를 들이미는 것까지는 좋은데... 바로 그 짧은 스커트가 문제였
다. 그것이 상당히 꼭 끼이는 스타일인데다가... 저렇게 엎드려 마치 후
배위같은 자세를 연출하고 있으니, 으아 - 그녀의 치마단은 절반이상 끌
어올려져 수그린 뒤쪽으로 아슬아슬하게, 엉덩이에 간신히 걸린 상황이었
다.
게다가 스타킹은 밴드를 신었는지... 그 허벅지 위로 올려진 스커트자락
아래로 끝선부분까지 언뜻언뜻 드러내고 있었다.
참으로 민망한 광경이다. 그리고 내 책상 밑은 왠 먼지가 그리 많은지,
누님은 구석구석을 닦기 위해 이리저리 허리까지 틀어대고 있었다. 그럴
수록 그녀의 터질듯한 엉덩이는 치마속에서 씰룩거리고... 그러니 당연히
그 안의 속옷 - 팬티선이 그대로 도드라져 보이는데...
상상해 보시라. 무르익은 풍만한 몸매의 여체가 발아래 엎드려, 내 쪽으
로 엉덩이 뒤를 쳐들고서는... 이쪽저쪽 기어다니는 그런 모습을. 그녀가
아무리 겹겹이 옷을 입었다하여도 상당히 적나라한 경치 아닌가. 하물며
꼭끼는 미니스커트에 다 비쳐보이는 팬티, 밴드까지 내보이는 스타킹...
눈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은근히 그녀의 엉덩이 한가운데에
못박힐 수 밖에 없는 내 시선이었다.
"휴우... 이제 좀 됐네...!"
꿀꺽, 침을 삼키면서 그녀의 등 뒤만 멍청히 바라보며 섰는데, 문득 청소
를 끝마쳤는지 미세스 최가 드디어 허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화들짝 놀
라, 딴 곳으로 눈길을 피했다.
채 일이십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완전히 내 방 분위기는 일신하고
있었다. 잘 개어진 이불더미. 가지런히 걸린 옷걸이, 반짝이는 방바닥...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뒤통수만 긁고 선 나.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안중에 없다는 듯, 더러워진 걸레 따위를 들고 나가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쏴아, 수도꼭지가 틀어지고 곧이어 빨래하는 소
리.
"창희 동생, 옷 빨 거 있어?"
으잉? 뭐라고요?
"옷 빨 것 있으면 줘. 얼른...!"
으아... 지금 빨래까지 해주겠다고?
"아, 아녀요, 어, 없어요...!"
즉각 튀어나오는 다급한 내 목소리. 이게 무슨... 마치 이것은 정말 친누
나나... 아니 꼭 내 마누라같은 행동 아닌가.
"어디 봐..."
하지만 최마담은 못미덥다는 듯 방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어 몸 둘 바를 모르는 나를 세워놓고 - 갑자기 그녀는 아래
위로 나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 옷... 어제 입고 있던 것 아냐? 양말도 안벗고..."
아차, 맞다. 돌아오자마자 푹 쓰러져 골아떨어졌기에, 나는 어제 보영이
방에서 그녀가 본 옷차림 그대로였다. 순간, 미심쩍은 듯 그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 옷들 벗어줘...!"
"어, 아, 아뇨, 이 옷은 아직 빨 때가...!"
황당한 그녀의 요구에 아연실색하는데... 야릇한 표정을 짓는 미세스 최
였다.
"아냐. 그래도 벗어봐. 얼른"
무슨 얘긴가. 내가 싫다는데 -
"아, 아니, 이 옷들은 제, 제가..."
"왜, 내가 빨아준다니까. 지금 줘, 얼른"
왜, 왜 그러지? 누님은 강압적으로 내가 입은 옷을 벗으라 하고 있었다.
"빨랑 벗어봐. 내가 빨아줄 테니까"
"저, 정말로 이, 이 옷들은 빨 옷이 아니라니까요...!"
정말이다. 지금껏 청소하고 방정돈까지만도 황공할 따름인데 빨래라니 -
그 때였다. 묘한 미소를 띄우는 그녀가, 팔짱을 끼며 나를 노려보는 것
아닌가.
"그래? 그럼, 속옷은 갈아입어야 하겠지? 그럼 속옷이라도 줘"
앗, 찰라 번개처럼 내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속옷!
"팬티는 갈아입어야할 것 아냐? 그렇지? 얼른 팬티 벗어줘봐"
그제서야, 나는 지금껏 그녀가 아무런 내색을 않던 이유를 불현듯 알 수
있었다. 팬티, 내 팬티 - 그곳엔 당연히 어젯밤 보영이 정사와의 흔적이
남아있을텐데!
맙소사, 미세스 최의 의도는 그것이었다. 속옷검사.
"그, 그래도 왜, 왜 제 속옷을...!"
왜 누님이 내 속옷까지 빨아줍니까. 이렇게 항의를 하려는데 그녀가 내
말을 가로채고 있었다.
"우린 누나동생 사이잖아, 안그래? 누나가 속옷 빨래해주는 게 어때서?"
이럴 수가, 하지만 그녀의 속셈이 남동생 빨래하는 누나의 심정이 아니라
는 것은 누가 보아도 뻔한 노릇... 꿀꺽, 궁지에 몰린 내 목젖으로 마른
침이 삼켜졌다.
"이, 이건 제, 제가 빨아도..."
하지만 추호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최마담.
"내가 빨아준다니까. 왜, 나한테 벗어주지 못할 이유라도 있어?"
"아, 아뇨, 그, 그런 게 아니고..."
"그럼 지금 달라구. 뭘 그래? 누나가 빨래해주는 건데"
갈수록 그녀의 눈썹은 야릇하게 치켜올려지고 있었다.
"빨랑 줘. 창희, 팬티 안입었어? 벗으면 안되게...?"
"아, 아니 저, 저..."
대답할 말이 없다.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 내가 안벗는다고 하면 더욱 이
상한 의심을 받을 것이다. 미치겠다. 진짜 의남매지간으로 생각한다면야
내가 그녀의 의사를 거부할 필요가 없지만... 지금 그녀의 속셈은 결단코
그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 지금 말에요...?"
어휴... 나도 내 팬티 안에 뭐가 묻어있는지 모르는 판국에 -
"그래, 지금. 여기서 벗어줘"
"여, 여기서요?"
황당하다. 지금 자기가 보는 앞에서?
"왜그래, 자꾸... 우린 누나동생 사이야. 누나 앞에서 옷벗는 게 창피해
?"
말도 안된다. 진짜 친누나도 아니고, 농익은 여자 앞에서 다리털 시커먼
놈더러 바지 내리고 팬티를 벗어달라니 -
"그, 그래도요, 화, 화장실에서 갈아입든가..."
슬쩌기, 화장실로 빠져나가려는데, 무슨 생각이 드는지 나를 붙드는 미세
스 최.
"아냐, 여기서 벗어줘. 정 그러면 돌아서 있을께"
완강한 고집을 부리는 그녀였다. 완벽히 덫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스
스로 팔짱을 끼고는 돌아섰다.
"안볼테니까. 양말하고 팬티만 건네줘...!"
아이고, 환장할 노릇이다. 제발... 부디 내 팬티야, 아무 이상 없어다오.
머뭇거리며 망설이던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도리가 없다. 엉거주춤, 바지를 벗고, 팬티를 새것으로 갈아입을 수 밖
에.
"뭐 그렇게 오래 걸리지? 속옷 하나 벗는데..."
"여, 여기요...!"
미세스 최의 등 뒤로 내밀어진 내 팬티.
얼른 빨아나 버리기를 - 이런 마음이 굴뚝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그
녀는 내 속옷을 받아들고 물끄러미 뭔가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곧이어
포옥, 내쉬는 누님의 한숨소리.
"창희동생...!"
뜨끔, 찔리는 나.
"예..."
미세스 최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다른 쪽을 바라보며 묻고 있었다.
"어제... 보영이랑 무슨 일 있었어...?"
아아, 드디어 그녀의 날카로운 공세가 시작되고 있었다. 젠장...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대답하지? 애초에 맘먹은 대로 딱 잡아떼야
하나?
"그 기집애랑 아무 일 없던 거지...? 나랑 약속, 어기지 않았지?"
죄송해요. 시, 실은... 이런 이실직고가 나와야 하는데, 내 혀는 멋모르
고 또 한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 아무 일 없었어요...! 그, 그냥 두, 둘이 취해서... 그, 그래서 그
만 깜빡 잠이..."
후 - 고개 너머로 이어지는 그녀의 한숨소리.
"정말이야? 맹세할 수 있어...?"
에라 모르겠다. 무조건 아무 일 없다고 하는 수외엔 -
"예, 저, 정말 우, 우린 그냥 잤어요...!"
순간, 나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뜨악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그녀, 누님이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눈초리로 흘겨본 것이다.
<제74화> 누님의 코 앞에서 덜렁이는 내 물건
"거짓말하지 마. 창희...!"
으악, 무, 무슨 소리야.
"속옷만 봐도 알 수 있어. 진짜 어제 둘이 아무 일 없었다고?"
아, 아니 어떻게 속옷만 보고서 알 수 있단 말인가 - 물론 정액같은 것이
묻었을지 모르지만, 어제 보영이는 내 허리띠만 끄르고... 꺼낸 다음에,
다시 잠들 때에도 내 팬티를 벗긴 적은 결코 없는데.
아니야 설마...
"거, 거짓말 아녜요! 누, 누님 전화는 그게 제 방인 줄 알고 잠결에...!"
무조건 잡아떼야한다. 미세스 최가 무슨 탐정이나 형사도 아니고, 내가
어젯밤 입은 팬티만 들여다보고서 뭘 알 수 있으랴?
그런데, 돌아선 그녀는 정말 당혹스런 요구를 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바지 내려봐!"
뭐, 뭐라고 - 바지를? 순간적으로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바지 내리고 보여봐. 정말인지 아닌지...!"
이, 이 누님 어떻게 된 거 아냐 - 나더러 바지를 벗으라니?
"아, 아니 바, 바지는 왜요?"
"잠깐 벗어봐, 어디 보여줘보라구. 거짓말인지 아닌지"
미치겠네... 바지에 묻은 것까지 검사하려고? 아니 시커먼 청바지에 뭐가
묻으면 보이기라도 하나?
"어, 왜, 왜 이러세요!"
갑자기 그녀는 얼결에 팬티만 갈아입느라 허리띠를 푼 채 서있던 내 바지
춤을 붙잡고 있었다.
"글쎄 가만 있어봐, 동생! 자...!"
어, 얼레 - 순식간에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최마담은, 달려들어 허리춤을
끌어내리려 하는 게 아닌가! 펄쩍 뛰며 그 손목을 붙드는 나.
"뭐, 뭐 하시는 거에요!"
끌어당기는 그녀, 간신히 막으며 끌어올리는 나, 그 사이의 실랑이가 벌
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난 거짓말하는 건 용서 못해. 창희 니가 그렇지 않다면, 이 손 놓아...
!"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이 여자는 자기가 뭔데 나더러 이러는 것인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노기까지 띠려는 내 목소리인데, 그녀는 내 엉거주춤 붙든 바지춤을 코
앞에 두고 가늘게 뜬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창희동생, 우리가 무슨 사이지?"
그야 아무 사이도 아니죠, 당연히 - 라는 대꾸가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차마 입밖에 낼 수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섣불리 대답했다가는 본전도
못찾을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대답해. 나랑 무슨 사이지? 누나동생 사이 아니야?"
"그, 그건 그, 그래도...!"
그러나 내 시인에 추상 같아지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은근한 그 목소리는
차라리 협박조에 가까왔다.
"그럼 뭐가 문제야? 누나가 동생더러 옷좀 벗어달라는 건데...!"
환장할 노릇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 누님을 만난 것은 겨우 사흘째 아
닌가. 우연찮은 기회에 매일 얼굴을 맞딱드리기는 했지만, 우리가 뭐 의
기투합으로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 사실상 그녀 멋대로 정하고, 그녀
맘대로 나를 호칭하는 것 아니었나...
"창피해서 그래? 누나가 겨우 바지좀 내려보라고 해서...?"
"그, 그게 아니라요...!"
이,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하지?
"저, 저는 아, 아직... 누, 누님이랑 이제 겨우..."
친해지지도 않았구요, 아무리 그래도 우린 겨우 의남매 사이... 이렇게
말하려는데, 미세스 최가 내 말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도 다 알아, 무슨 얘기하려는지. 하지만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이 손 힘좀 빼"
아차차, 내가 너무 그녀의 손목을 세게 쥐고 있었나 보다. 슬그머니, 손
의 힘을 뺀 나는 대신 바지자락과 허리띠를 단단히 쥐었다. 혹시라도 그
녀가 갑자기 잡아내릴까봐였다.
"도,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에요. 제가 왜 누, 누님에게..."
"이것 봐, 동생. 내가 얘기했었지? 친누나처럼 돌봐주고 싶다고. 그리고
우리 약속했었지? 절대 보영이네 방에서 자고 나오지 않기로... 근데 왜
창희는 이 누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거지?"
아이고, 내 항의는 씨알도 먹히지 않고 있었다. 아니다. 지금 이 누님은
유도심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거짓말 - 사실 거짓말이지만
- 을 인정하도록 말이다.
"거, 거짓말 아니라니깐요. 저, 전 보영이랑 정말 아무 일 없었어요...!"
그러나 희미하게, 조소까지 띄우는 최마담.
"흐흥, 그럼 왜 안보여줘? 동생 말이 사실이라면, 잠깐 바지 내려보라는
걸 이렇게 막을 필요 없잖아?"
그녀의 코웃음에, 추궁당하기만 하는 나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었
다.
"그, 그건요... 저, 저도 남잔데...!"
창피하게 어찌 처음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여자 앞에서...
"참 답답하네... 우린 의남매 사이라니까. 이게 무슨 남녀관계야? 그리
고, 남자가 뭐 그렇게 쫀쫀해? 살짝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데...!"
이제 그녀는 숫제 내가 남자라는 자존심마저 부추기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아랫입술을 깨무는 나. 더이상 물러설 방도가 없었다. 후우 - 갑갑
한 한숨이 터져나왔다.
"얼른 이렇게 해봐. 금방이면 돼"
"그, 그럼... 보, 보기만 할 거죠...?"
결국 백기를 드는 것은 내 쪽이었다. 마치 그녀 앞에서 꼬추를 덜렁덜렁
내놓는 두어살배기 어린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두려움 섞인 내 다짐에, 그제서야 피식, 헛웃음을 웃는 그녀.
"어유, 그러면 내가 뭐 잡아먹기라도 하겠니?"
하, 하기야... 어쨌든 창희야, 너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냐 - 차라리 이
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보영이랑 정사를 가졌다고 고백하는 건데. 생각
해 봐, 내가 그 기집애랑 살좀 섞었다고 이 누님이 뭐라고 할 것인가.
어휴휴... 생각할수록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내가 왜 낯선 여자 앞에서
이런 지경까지 이른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깨어문
입술 새로 한숨만이 비어져 나왔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마지막 각오
를 했다.
"조, 좋아요, 아, 알았어요. 하지만 저, 정말 보기만 하는 거에요. 알았
죠? 손대지 않기에요...!"
여전히 내 허리 앞에 무릎을 꿇은 미세스 최, 이번에는 왠지 야릇한 미소
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가 바지춤을 쥔 손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
다. 생각 같아서는 내 손으로 끌어내려주고 싶었지만, 왠지 여자 앞에서
내 손으로 바지 속을 꺼내보인다는 게 창피했기에 - 그녀 손에 맡기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녀는 양 손으로 내 바지자락을 움켜쥐고, 그리고, 내릴...
"왓!"
그 때였다. 감긴 내 두 눈이 휘둥그레 떠지고 있었다.
으악 - 나는 너무나 엄청난 그녀의 행동을 내려다보고는 까무러칠 비명을
질렀다.
누님이, 미세스 최가, 황당한 짓을 한 것이다 - 그녀의 재빠른 손동작은,
갈아입은 내 팬티까지 한번에 쥐고서 전혀 말릴 틈도 없이 한꺼번에 끄집
어 내린 것이다!
"뭐, 뭐에요!"
하지만 이미 나의 반사동작은 한 수 늦고 있었다. 순식간에 끌어내려진
내 팬티는 벌써 무릎아래께까지 내려서는 찰라였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나는 그저 필사적으로 내 팬티와
허리띠를 끌어올리려 다급하게 허리를 굽히고 버둥댈 뿐이었다. 그녀의
코 앞에 덜렁이는 내 물건이 완전히 드러났다는 생각마저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우왕좌왕, 허리를 비틀고, 내 거시기를 감추고, 팬티를 끌어당기고 - 그
러나 그 와중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가만 있어, 창희. 어차피 볼 것 다 봤어!"
이, 이 여자가 돌았어 - 이런 욕까지 머리 속에 떠오르는데, 험악한 인상
으로 내려다본 그녀의 얼굴에는 조금의 민망함도, 조금의 낯부끄러움도
섞여있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구 했지, 너!"
어? 거꾸로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녀였다.
"저리 비켜, 손 치워! 이 나쁜 녀석!"
화, 화는 내가 내야... 그런데 이 누님이 소리를 치며 욕을 하고 있었다.
"나쁜 녀석, 나쁜 새끼! 얼른 이거 못놔!"
어, 어... 이, 이거 뭔가가 잘못 된 것 같은데...
얼결에 바지춤을 쥔 손을 놓는 나였다. 그만큼 최마담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어나올 듯 살기마저 감지되고 있었다.
"창희 이 바보같은 자식아, 들통 날 거짓말은 왜 해?"
무, 무슨 얘기인가. 당황스러움에 얼이 빠진 나였다.
"이게 뭐야, 이게...!"
미세스 최는 손가락으로 내 하복부를 찔러대고 있었다. 멍청한 시선으로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본 나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그곳에는 -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 기둥 주변 위 터럭들 - 내가 차마 알
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이럴 수가... 내 물건 위 시커먼 음모 부위가... 조그맣게, 그러나
뚜렷이, 허옇게 말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정액인지, 아니면 보영이의 애
액인지 모를 액체, 그 분비물을 묻히고서 엉겨붙어 있었던 것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어제 보영이의 요분질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은 내 하체 군데군데에 남아있었다. 터럭주변, 하복부, 허벅지 근처.
.. 내 허리띠만을 끌러놓고도 보영이는 사방에 그 윤활유 - 그렇다. 그
윤활유, 로션을 엉덩이로 문질러대 튀어놓은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스킨로션이나, 정상적인 사람, 남녀의 정사 분비
물이었으면 모르되, 무슨 로션 - 아니 그녀가 알아서 한 일에, 게다가 어
두운 방안이었으니 지금으로서는 그게 로션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 인지
몰라도 덕지덕지, 내 피부에 굳어져 있는 상황... 한 눈으로도, 아니 내
눈으로도 충분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정말, 피할 수 없는 증거였던 셈이다.
"걔가 발라준 거지? 그렇지?"
이럴 수가. 그럼 이 누님은 보영이 그곳이 건조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
구나!
그걸 어떻게 - 는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미세스 최의 한쪽으로
돌린 고개는 반짝, 눈가에 이슬을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난, 난... 창희 니가 이럴 정도로 거짓말까지 할 줄은 몰랐어. 설마 했
는데... 이럴 줄 알았어...!"
으아 - 난 쥐구멍이라도 찾아들어가고 싶었다. 어쨌든 그녀 앞에서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한 꼴 아닌가.
"난 그게 더 싫어, 차라리 그 기집애랑 잤다고는 생각해 봤어. 하지만 동
생이 이러리라고는 생각 안했었어. 아니, 보영이 그 년이랑 잤다고 해도,
난 화내지 않았을 거야!"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창피하여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못된 가시내... 아냐, 동생이 더 나빠!"
세상에 이런 일이...
"죄, 죄송해요...!"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그녀 앞에서 내 물건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정도는 오히려 부끄러울 일도 아니었다. 내가 한 거짓말, 그것
이 정녕 몸 둘 바를 모르게 하고 있었다.
"아니, 죄송할 것 없어.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까... 흥, 내가 뭔데, 안그
래? 내가 창희한테 무슨 존재라고... 내가 왜 동생한테 죄송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지?"
마담은 멍한 시선을 피하며 조소 섞인 자조를 하고 있었다.
"아, 아녜요... 누, 누님...!"
그녀는 가까스로 눈물을 참는지, 그제서야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됐어. 나한테 그런 말하지 마. 아까 건네준 팬티 보고서 알아차렸었어..
. 거기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다면... 이미 그녀는 짐작하면서도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그녀는
아랫입술을 아프게 깨물고 있었다.
"얼른... 얼른 가서 몸이나 씻어. 빨래는 나중에 할테니까"
그러나 너무나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꼼짝할 수 없는 나였다. 어떻게든
사죄하고플 뿐이었다.
"자, 잘못했어요... 전 누님이 화낼까봐... 이젠 안그럴께요. 누님 말만
들을께요...!"
그러나 그녀는 내 사과를 듣고도 묵묵부답이었다.
"제, 제발 화내지 마세요. 이, 이젠 착한 동생이 될께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나도 모를 뿐이었다.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모
든 말을 동원해서라도 그녀를 달래줘야 할 것 같았다.
후우...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말이에요. 죄송합니다..."
모르겠다. 그저 혼자 삭이라고 내버려둘까... 그 때였다. 문득 그녀가 고
개를 돌리며 또 한번 한숨을 폭 내쉬고 있었다.
"이리... 이리 와...!"
갑자기 그녀가 벌거벗은 내 하체를 자기 얼굴 앞으로 끌며 다가왔다.
<제75화> 커져버린 기둥 끝에 맺힌...
어어, 무, 무슨...!
누, 누님 - 얼떨떨하게 그녀의 코 앞에 들이밀어진 내 물건.
엉거주춤, 부끄러워하는 내 하체를 끌어당긴 그녀는, 덜렁이는 나의 그곳
과 주변을 세심한 눈초리로 관찰하고 있었다.
"후우... 이런 바보...!"
그녀의 화에 눌려, 엉겁결에 민망함도 잊은 나는 조금이라도 가리고 감추
려 버둥댔던 손길에 힘을 뺐던 것인데... 그녀는 지금 그런 내 하복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 보지 말아요 - 이런 말이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이 얼마나 창피스런
광경
<제71화> 뻗어오는 미세스 최의 손길
내 옥탑 자취방에 들어설 때쯤엔 숨이 턱 밑에 닿고 있었다. 우선, 나는 대
문을 들어서기 이전에 자취집 골목안부터 살폈다. 다행이다. 희창이의 차는
일단 보이지 않는다.
사실 녀석이 자기 집에서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는 편이었다. 만약 차
를 몰지 않는다면 그나마도 더 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행여 녀석이 어제 밤사이 내가
외박한 사실을 안다면, 당장에 곤란한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어쨌든 지금까지의 일 - 보영이와 그녀의 방에서 벌인 일, 그녀와의 동침 -
은 그 여자애와 나만이 아는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그러나... 내가 희창
이의 핸드폰으로 그녀의 전화를 받은 일, 단란주점에서 박사장이란 작자와
벌인 격투, 이런 것들을 숨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목격자도 있었고, 그렇게 대판 사고를 치루었으니 모를 사람도 알 일이었
다. 어쩌면 그 가게에서 빠져나와 단 둘이서 그 기집애가 사라지는 광경을
누군가 목격했을 수도 있는 일이고, 벌써 그 술집 안에는 어제의 내 무용담
이 파삭하게 소문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야 아니라도, 보영이를 만나는 동안 그곳에 뻔질나게 출입할 희창
이기에, 어차피 다른 사람을 통해 알 것이다.
내가 숨겨야하는 사건은 바로 그 이후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그녀의 자취방
에 함께 있으며 정사를 나누고, 그리고 아침에 돌아온 이 순간까지의 상황
- 나중에 어찌될지 모른다하여도 일단 지금으로서는 그에게 이 사실을 숨겨
야만 한다.
희창이의 도착을 기다리며, 나는 머리 속에서 녀석에게 둘러댈 말을 찾느라
골몰하고 있었다.
으음... 먼저 그 단란주점 앞에서 벌인 싸움은 자초지종을 설명해야겠지...
그리고 나와서는... 어휴, 뭐라고 얘기하지? 모르겠다. 그냥 보영이는 자기
집으로 가고, 나도 내 방으로 돌아왔다고 해야할텐데.
후회가 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녀랑 앞뒤 말을 맞춰보고 올 것을 - 하
지만 아니, 그보다는 더 근원적인 문제, 친구가 눈독들이는 여자애와 함께
잤다는, 그 크나 큰 죄책감의 회한이 곧 몰려왔다.
아아, 끝끝내 물리치고 나와야했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아무리 섹시하
고 또 먼저 유혹했대도 그렇지, 본능적 욕구에 무너지고 말다니. 머리를 쥐
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사실대로 이야기할까... 양심에 따르면 그래야 옳겠지만, 정말 양심적이었
다면 어제 그런 정사도 벌이지 말아야했었다. 나는 그 정도의 강심장은 아
니다. 물론 희창이가 보영이를 쫓아다니는 게 녀석 말대로 현지처 - 그렇고
그런 섹스 파트너 - 를 만드려는, 그저 응큼한 야욕의 발로라는 것은 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그렇다고 나 역시도 보영이를 섹스 파트너정
도로서 대할 수 있다는 정당함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남자를 밝히는 여자애라고 해도, 또 애정 없는 육체적 관계만을 목
적으로 그녀를 원한다 하여도... 그 당사자가 내 친구, 그것도 죽마고우인
이상 절대로 합리화를 시킬 수는 없었다.
답답했다. 정반대의 경우 희창이는 어쨌던가. 내가 선영이 누나와 같이 잔
다음 날도, 그는 내 의견을 존중해 더이상 누나에게 시선주는 일까지도 자
제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나... 그런데 나는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
러놓다니 -
생각하면 생각할 수록 내 자신이 죄스러웠다. 녀석 앞에서 고개를 들 수나
있을런지 걱정되었다.
그렇게 고민을 거듭하는 나인데, 예상보다 늦게 내 방문이 두드려지고 있었
다.
"야, 짱이, 아직 자냐?"
희창이였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야, 창희야!"
"으... 응, 드, 들어와...!"
엉거주춤, 방구석에 구겨져 생각을 거듭하느라 쪼그렸던 몸을 폈다.
"뭐야, 이불도 안 개놓고... 지금이 몇신데"
멀끔하게, 녀석이 개운한 얼굴로 들어서고 있었다.
"맞아, 여기 있었지..."
들어오자마자 주저앉으며 방바닥에 뒹굴고 있는 자기 핸드폰부터 챙기는
그. 이미 녀석의 전화기는 밧데리가 떨어져 꺼진 상태였다.
"야 근데 너 어제 나 가고난 뒤에, 어디 나갔었냐? 내가 집에 가서 전화했
는데 안받더라...?"
아마도 보영이네 술집으로 달려간 시간에 이곳으로 전화를 건 모양이다. 그
러고보니 아직 내가 박사장과 맞딱드린 사건을 모르는 희창이 녀석이다.
"응, 그, 그게 말야...!"
나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일단 보영이의 셋방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핸드폰으로 보영이 전화를 받은 일, 단란주점으로 달려간
일, 그리고 그 앞에서 박사장이란 중년사내와 주먹다짐을 벌이기까지.
그러나 의외로 피식거리는 희창이 놈.
"으이그, 그래서, 그래서 겨우 한방 먹었다구 반창고까지 붙인 거냐?"
반창고 - 맞다. 어제 보영이가 붙여준 반창고가 아직 한쪽 뺨 가장자리에
너덜거리며 붙어있었다.
"참, 보영인 괜찮은 거냐? 그 새끼가 보영이까지 때렸단 말야?"
이럴 때면 순진한 건지, 희창이는 보영이가 따귀 맞는 장면에 흥분하고 있
었다.
"잘했어, 짱이야! 나같아도 여자를 때리는 놈은 가만 안두지... 어쨌든 고
맙다, 고마워!"
그는 자기대신 내가 그 박사장을 응징했다는 말에 감격한 듯 고마워하고 있
었다. 제길... 나는 그럴수록 점점 가슴 속이 찔리고 있었다. 나한테 고맙
다니 - 그 이후의 일을 안다면 고맙기는 커녕 당장 죽일 놈 취급을 받아야
하는 놈인데.
"짜식, 역시 넌 내 불알친구다. 친구의 여자까지 지켜주려 목숨을 걸다니,
킥킥"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마음 같아서는 엎드려 사과해도 모자를 판국에 이
녀석에게 칭찬을 듣다니...
"그래서?"
으잉, 그래서?
"그래서 어쨌냐구. 그게 끝이야?"
뜨끔, 엉덩이가 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박사장을 두들겨놓고 난 뒤에 무
슨 일이 이어졌냐는 희창이의 비수같은 질문이었다. 꿀꺽, 이 대목부터 내
거짓말이 시작되어야했다. 어쩔 것인가 - 사실과 비밀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 마음이었다.
"끄, 끝은 뭘... 그, 그냥 그래놓고 나왔지... 보영이가 나오길래, 나, 나
도 그냥 같이 나왔어...!"
그러나, 결국 비밀을 택하는 내 세치 혀. 정말 미안하다, 희창아. 원래는
그 이후에 더 많은 사건들이 엄청났지만... 지금 너에게는 숨길 수 밖에 도
리가 없어 -
"그래? 에이, 나같으면 아예 찍소리 못하게 쫓아가서 콱 밟아놓는 건데"
다행히도 더 캐묻지 않아주는 그였다. 내 말을 그대로 믿는지, 침이나 바르
고 거짓말하란 속담이 있지만 아니라도 입안이 바짝 마르는 나였다. 꿀꺽,
마른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어쩐지... 그런 일이 있었구만... 나는 그것도 모르고... 나야 이 핸드폰
으로도 전화가 안되길래, 놓고 간 게 아니라 길바닥에 흘렸는 줄 알고 너한
테 부랴부랴 달려왔지... 어쨌든 이모저모 신세진 셈이구나. 좋아, 나가자.
너 아침 안먹었지? 내가 사줄께"
어휴... 오늘따라 아침 챙겨주는 사람도 많군... 그러고보니 배도 쪼르륵거
린다. 어제 그렇게 격렬한 정사를 치루고, 밤부터 아무 것도 못먹었으니 당
연한 결과다.
"보영이랑 같이 먹자. 아마 걔 자기 이모네 소주방에 있을 거야"
뭐라고? 나는 펄쩍 뛰었다.
"아, 안돼! 아, 아니 나, 난 됐어!"
"왜 임마, 배 안고파? 너 맨날 아침 사먹잖아?"
아이고, 배가 고프거나 말거나 보영이랑 같이 먹는 것은 안된다. 그 기집애
랑 헤어진지 불과 한시간도 안지났는데 - 다시 얼굴을 마주친다면 민망하고
어색해서 자살이라도 할 것이다.
"야, 어제 보영이도 얻어맞았다며, 가서 위로도 할겸, 불러내서 비싼 것 먹
자. 내가 산다니까!"
"아, 아냐...! 너, 너희 둘이 먹어...!"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희창이. 지금 이 놈과 있는 것도 껄끄러운 마당에 보
영이라니, 그런 낯뜨거운 삼자대면은 죽기보다도 못할 일이었다.
"왜 그래, 짜샤. 그럼 우리 둘만 밥 먹으라구?"
"그, 그게... 나, 나 지금 별로 몸이 안좋거든... 감기, 그래, 감기 기운이
있어, 그래서..."
결국 아프다는 핑계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녀석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의심이라도 하면 안되는데, 젠장.
"뭐야... 어제 몇대 맞았다고 몸살이라도 난 거냐? 너 어제까지는 멀쩡했잖
아?"
오늘따라 꼬치꼬치 따지는 희창이였지만, 나로서도 방법이 없었다.
"소, 속도 안좋구... 어, 어쨌든 밥은 나중에 사라. 오, 오늘은 말고..."
이래서 거짓말은 자꾸 커진다는 것일까.
"정말이야...? 어디... 짜식, 그렇게 보니까 좀 얼굴이 안돼 보이는데...
눈이 퀭하니 시뻘건 게..."
윽, 아직도 어제 보영이랑 그짓을 한 여운이 얼굴에 씌여있단 말인가 - 다
시 한번 가슴 속이 뜨끔했다.
"새끼, 그러니까 밤에 잠좀 자라, 잠좀. 맨날 딸잡지 말고... 크핫!"
흐휴, 어쨌든 녀석은 넘어가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농담까지 섞으며.
"창희 너 그럼, 오늘 학교도 안나올 거냐?"
"으, 응... 그, 그냥 집에서 쉴래..."
이렇게 된 이상 학교도 빠질 수밖에 없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렇게 말하고
보니 정말로 정사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은 듯 온몸이 노곤했다.
"왠 일이냐, 범생이께서... 알았다. 그럼 쉬어. 참, 약이라도 사다주랴?"
"아, 아냐... 됐어. 대충 한숨 자면 낫겠지 뭐"
진짜로 아픈 척, 나는 인상을 찌푸려 보였다.
"어, 얼른 가봐"
엉거주춤, 그제서야 엉덩이를 일으키는 희창이였다.
"쉬어라. 내가 이따가... 수업 끝나고 들리든가, 아니면 전화할께"
정말로 걱정해주는지, 녀석은 돌아가면서도 짐짓 불안한 표정이었다.
휴우... 그가 나가자 나는 방바닥에 벌렁 드러누우며 한숨을 쉬었다. 아슬
아슬한 기분이었다.
어쩌지 - 틀림없이 희창이는 보영이를 찾으러 갔을 것이다. 그 기집애가...
잘 둘러대야할 텐데. 말 실수라도 하는 날엔 큰 일이었다. 나중에 내 입으
로 직접 녀석에게 밝힌다면 몰라도, 그녀의 입을 통해 들통이 나는 날에는
정말 내 양심이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제발, 부디 무사하기를. 아무 일 없기를. 어휴, 애꿎은 한숨만이 연달아 터
져나왔다. 내가 어쩌다 이런 꼴이 되었을까. 가장 친한 친구놈에게도 거짓
말에, 비밀에...
에라, 모르겠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불안할 따름인 머리 속이 너무 복잡
했다. 그렇다고 지금 걱정해서 어쩔 것인가. 차라리 그 녀석을 따라나설 걸
그랬나 - 그럼 대충 보영이랑 둘이서 합작으로 얼버무릴 수도 있는 건데.
자포자기하는 심정이다. 아우성치는 뱃속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잠이 몰려
왔다. 그래, 잠이나 자자. 어차피 어제 보영이랑 생난리를 치루느라, 아직
까지 찌뿌드드하니까.
온몸에 나른함이 몰려왔다.
삐리리릭...
삐리리릭...
얼추, 막 선잠이 드는가 싶었는데, 내방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다. 이건 내 방의 내 전화기다.
잠결에도 확인하고 전화기를 들었다.
"여... 여보세요"
"어, 짱이야. 나다, 이짱"
어... 왠 일이지? 아직 수업 끝나려면 멀었는데... 시계는 채 오후 한두시
도 안되고 있었다.
"어, 미안... 잠깼냐?"
"어, 응... 왜?"
무슨 일이지? 돌아간지 얼마되지도 않고서.
"응, 별 게 아니고... 너 미세스 최 알지? 있잖아, 보영이네 가게 마담"
뭐라구? 최마담? 그 순간 낮잠이 확 깨고 있었다.
"지금, 보영이 이모네에 있는데... 그 여자가 보영이를 찾아왔거든, 그래
서..."
순간적으로 경악하는 나였다.
아차차! 내가 놓친 계산이 하나 있었다. 미세스 최 - 그 누님. 그녀는 이미
희창이와도 익숙한 사이다. 그리고, 아까 아침에 보영이 방에서 엉겁결에
받은 내 전화 한통으로... 최마담은 내가 보영이와 잤다는 사실을 알고 있
다.
그럼 혹시 - 그녀가 희창이에게 내가 보영이와 어제 같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설? 뜨악하니 내 입이 벌어졌다. 머리 속이 아찔해졌다. 지, 지금 이 녀
석이 뭐라고 했지?
"그 언니라는 사람이 말야, 지금 여기 같이 있는데..."
으악, 같이 있어? 보영이랑, 너랑?
그런데 의외로 건너편 희창이의 목소리는 지극히 평범했다.
"뭐라드라... 어저께 가게에서 그런 일, 미안하게 됐다구... 너좀 바꿔 달
라는데?"
미안하다? 어제 일이라면 박사장 사건? 재빨리 머리를 굴렸지만, 그 때문만
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이것은 - 핑계였다. 그렇다. 나를 찾으려는.
"야, 아, 안돼...! 나 없다고 해. 아니 나 아파서 전화 못받겠다고 그래...
!"
즉시, 무의식적으로 소리를 지르려는데...
"어, 뭐? 잠깐만..."
희창이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여보세요...?"
수화기 건너편의 목소리가 일순 바뀌었다.
"호호, 안녕하세요, 창희 도련님...!"
누님, 미세스 최였다 -
<제72화> 꼬여만 가는 누님과의 관계
미세스 최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발끝부터 온몸이 바짝 긴장하는
것만 같았다.
"몸이 안좋다면서요... 어머 이를 어째, 어제 우리 가게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에요?"
한껏 가장한 목소리. 보지 않고도 알 수 있었다. 마치 마녀같은 이 목소
리의 진위... 그것은 일부러 옆에 있는 희창이와 보영이에게 들리도록 거
짓된 것이라는 걸.
"아유, 미안해요. 괜히 다미 그 기집애가 말썽 피우는 바람에, 창희씨가
괜히 뒤집어썼네요... 어제 그런 봉변을 다 당하고..."
으아... 이건 완벽한 위장전술이다. 어차피 그녀도 다 알고 있었던 일 아
닌가. 보영이 셋방까지 따라와서, 내가 그 기집애와 단 둘이 방안에 있는
것까지 보고 가놓고는 -
그렇다면 이 목소리는 분명 나보다 지금 최마담의 곁에 있을 두 사람, 보
영이와 희창이를 속이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아니 좀더 정확히는 희창이
에게 감추려는 의도다.
당연한 일이다. 이 누님은 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나와 보영이가 방에 함
께 있었다는 것을 알고서 신신당부를 했었다. 그냥 술만 마시라고, 그 여
자애랑 자지 말라고... 그러나 지금, 그 여자애랑 내가 아침까지 있었다
는 사실은 우리 둘에 더해 미세스 최, 이 여자까지 도합 세사람이 아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또한 그것을 아는 것은 - 내가 보영이 방에서 자고 나온 것을 총
세명이 안다는 것은 - 나와 이 마담누님뿐이었다. 즉 보영이는, 그녀가
아침에 전화를 했으며, 얼결에 내가 그 전화를 받았음을 전혀 모르고 있
다. 나는 그저 그녀에게 잘못 걸린 전화라고 얘기해두었으므로...
그러니 보영이는, 내가 그녀 방에서 자고 나왔다는 사실을, 바로 곁에 있
을 최마담에게 들켰다고는 상상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마 그 기집애로
서는 그냥 적당히 나 창희가 술을 마시다가 돌아갔다고 말했을 것이 분명
하고, 아니 어쩌면 희창이 앞에서는 - 어제 자기 방에서 나와 그녀, 그리
고 미세스 최가 맞딱드렸었다는 사실마저 쉬쉬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었다.
"괜찮으세요, 몸은? 어디 아프거나 덧나지는 않았수?"
그녀는 뭐라 대꾸할 말을 잃은 내게 계속해서 짐짓 가식적인 걱정을 보내
주고 있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걸로 보니... 방금 생각처럼 일단은 이 누님이 희창이에
게 촛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확실하다. 그녀는 내가 다쳤다는 사실도 어
제 보영이네 방에서부터 알고 있으면서, 우선 녀석이 눈치채지 못하게 숨
겨주려는 의도이다.
그래, 당연히 - 보영이는 마담언니에게 신호를 해두었겠지. 그녀 방에서
나와 단 둘이 술마셨다는 걸 말하지 말아달라고...
아아, 정말로 복잡한 상황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추면서도, 서로가 서
로를 모른 척하고 있었다. 지금 보영이네 소주방이란 곳에서 벌어지고 있
을 광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희창이, 녀석은 단지 어제 내가 치룬 사고에 대해 최마담이 미안해하는
줄만 알고 있을 것이다.
보영이, 갑작스런 미세스 최의 등장에 그녀가 가장 놀랐을 것이며, 당장
언니가 희창이 앞에서 어제 나와 있었다는 사실을 발설할까 겁냈을 것이
다. 그리고 당연히 아침까지 같이 잤다는 사실을 최마담에게는 속였을 것
이다.
그리고 최마담... 그녀는 모든 것을 알면서도 속아넘어가 주는 꼴이었다.
모른 척하고 있을 게다. 자기가 그 모든 정황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
리고 태연히 희창이 앞에서 감추고 거짓행동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기가 막힐 정도로 꼬였다. 도대체 무엇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꿀꺽, 긴장된 마른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정말 아슬아슬한 내 입장
이다.
"저, 저는 괘, 괜찮아요... 어, 어제 일 때문에 그러는 것 아녀요...!"
어떻든 벌어지는 상황이다. 달리 뭐라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색
한 침묵.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 난 혹시 우리 창희 도련님이 심하게 다친 것
아닌가해서 걱정했어요, 호호..."
미세스 최 누님의 웃음소리 - 이것은 어쩌면 어금니를 악문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그럼... 집에서 푹 쉬도록 해요. 혹시 뭐 어디 더 아픈 곳 있으면, 당장
연락해주고요. 어쨌든 다미년 하나 땜에... 창희씨에게 미안하기만 하네
요"
"예, 거,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잠시 후, 바뀌는 목소리.
"응, 짱이야, 난데, 괜찮냐?"
희창이. 아무 것도 모르는 녀석.
"으, 응..."
"마담언니께서 상당히 걱정해주시네... 야, 너 어제 일 장난이 아녔나본
데?"
"아, 아냐... 그, 그냥... 나, 잠... 그래 잠이나 더 잘께"
"그럴래? 알았어. 혹시 많이 아프면 전화해라. 감기약 사다줄께"
응, 그래, 끊는다 - 딸카닥.
어휴, 전화기를 내려놓고도 나는 한동안 멍청해질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복잡하게 얽힌 사건과 사람들... 머리 속으로 정리가 안된다.
그나저나... 미세스 최 누님은 왜 그곳까지 나타난 것일까. 내가 어떻다
는 것은 다 알면서 -
그 의문은 곧이어 걸려온 전화 한통으로 터져나오고 있었다.
삐리리릭...
얼떨떨한 기분으로 수화기를 드는데...
"여보세요, 창희?"
으악! 또 한번 미세스 최였다. 갑작스런 그녀의 목소리에 입이 떡 벌어졌
다.
"나 누님이야... 지금 집에 있을 거지?"
왜, 왜 다시 전화를 한 거지?
"걱정 마. 지금 내 차안이야. 옆에 아무도 없어. 보영이랑은 아직 거기
있구... 나만 나왔어. 어디, 집에 있을거야 동생?"
으화화 - 식은땀이 흐른다. 뭐라고 대답하란 말인가?
"그럼 집에 있어. 내가 갈테니까. 그 때 옥탑방이라고 했었지? 곧 갈께..
.!"
뭐, 뭐라고요? 자, 잠깐만요 - 그러나 대꾸할 새도 없이 전화는 끊어지고
있었다.
후다닥, 나는 펄쩍 뛰며 일어나 앉았다. 무, 무슨 얘기야! 지금 이리로
온다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녀가 왜 내 자취방에 온단 말인가?
나는 너무나 황당한 그녀의 통고에 넋이 나가고 말았다. 이곳으로 찾아온
다니, 왜?
아니야, 어, 어쩌란 말인가 - 도망갈까, 말도 안되지, 어디로 튄단 말인
가. 보영이네 소주방에서 여기까지는 느린 걸음으로도 5분 거리인데...
아니지, 왜 도망쳐야 해? 내가 왜... 그래도 아니다. 그렇다고 맞딱드려
서 또 뭘 어쩐다?
갈팡질팡, 우왕좌왕, 안절부절 못하는 나...
정신차리자, 정신! 어찌 돌아가는 판국인지 몰라도.
지금, 지금 곧 미세스 최가 나타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서 내가 어
디로 달아날 수도 없다. 빨랑 상황정리를 해야했다.
그녀가 오면 뭐라고 말한담? 이것이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 틀림
없이 그녀는 어제 밤사이 내가 보영이와 무슨 일을 벌였는지 추궁할 것이
다. 어쩌면 그것이 지금 그녀가 이리로 오겠다는 가장 큰 목적일 것이다.
뭐라고 대답한다... 일단 내가 아침까지 보영이 방에서 자고 나왔다는 것
은 그 누님도 알고 있는 꼼짝 못하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녀는 내게 강력
히 요구했었다 - 보영이 기집애와 무슨 일이 있어도 같이 자지 말라고.
내가 왜 그런 얘기를 들었어야하는지, 지금으로선 그런 이유를 따질 계제
가 아니었다. 어쨌든 신신당부를 한 미세스 최와의 약속을 깬 것은 내 쪽
이니까...
제길, 무조건 잡아떼자. 난 아무 일 없었던 것이다. 그냥 보영이 방에서
잠만 잤다고 하자. 아무 짓 안하고, 그냥 술 취해서 걔나 나나 쓰러져 잤
다고 해버리자.
그래도 꼬치꼬치 따진다면, 나로서도 할 말은 있다. 결단코 잘한 일은 아
니지만, 그도 그럴 수는 있는 일 아닌가, 내가 누구네 집에서 누구와 잤
건, 그건 내 자유다 - 표면상으로 그 누님이 내게 간섭할 일은 절대 아니
다. 더더군다나 내가 보영이와 정사를 가졌건 아니건, 무슨 증거가 남는
것도 아니고... 최마담이 알아야할 문제는 전혀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불안한 결심을 하는 나인데... 골목길에서 자가용이 멈추는 소리
가 났다.
왔다. 미세스 최가 나타난 것이다.
또각또각, 계단을 올라오는 여자 구두굽 소리.
"창희동생, 안에 있어?"
올 것이 왔다. 당당해지려 한껏 긴장하는 내 목소리.
"어, 예... 드, 들어오세요..!"
엉거주춤, 몸을 일으키는데... 방문이 슬며시 열리며 미세스 최가 들어서
고 있었다.
어...? 긴장된 대면이지만, 그녀를 보고 나는 저으기 놀라고 있었다.
차분히 맵시낸 정장... 진하지 않은 화장... 처음에 나는 그녀가 다른 사
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저 평범한 오피스걸이나, 아직 처녀티를 벗지 못
한 새댁의 외출 - 뭐 그런 것을 떠올리게 하는 수수한 옷차림이었다.
치마가 다소 아슬아슬하게 짧다는 것만 빼놓으면, 그녀는 단란주점에서
본 인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누가 보아도 이제 겨우 이십대 후반
정도의 아가씨같은 늘씬한 모매를 자랑하고 있었다. 야함이라든가, 색기
와는 거리가 멀고 - 그저 그런, 흔히 시내에서 마주칠 수 있는 보통 여자
처럼 보이지 않나.
그리고, 그녀는 내 예상 - 독기가 서렸다던가, 화가 났을 거라는 - 과는
정반대의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아휴, 이게 뭐야 창희... 그래도 이 누난 손님인데..."
아차차, 그녀에게 대답할 말만 궁리하느라고 전혀 방안에 신경을 쓰지 못
했었던 것이다. 아이고 참, 희창이나 친구가 아니지, 미세스 최는...!
"혼자사는 남자들 별 수 없다니까... 옷도 어제 입은 그대로고..."
당장, 왠지 모르게 귀밑이 달아올랐다. 마치 지저분한 홀아비 방을 들킨
기분이다.
얼렐레 - 그리고 그녀는 내가 전혀 생각지 못한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
"저리 비켜봐...!"
민망한 나를 제끼고, 들고 온 봉투 따위를 내려놓은 그녀는, 아무 말 없
이 내 방안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 어... 내, 내버려 두세요! 제, 제가 할께요!"
"됐어, 동생은 가만 있어. 이런 건 원래 여자가 하는 거야"
방구석으로 나를 몰아놓고, 그녀는 이불이며 내 옷가지들을 개키고 있었
다.
"어, 누, 누님 그건...!"
우수수, 방안에 쌓아놓은 옷더미에서 내 속옷 - 팬티따위가 방바닥으로
쏟아졌다.
<제73화> 엎드려진 누님의 엉덩이
아이고, 민망해라 - 아무리 빨아놓은 옷가지라고 해도 그렇지, 내 런닝이
나 팬티들이 누나뻘 되는 여자의 발밑에 널린 것은 절대로 보기 좋은 꼴
이 아니었다.
허겁지겁 옷더미를 챙기는 나. 하지만 미세스 최는 남자속옷을 보고도 그
닥 놀라거나 멎쩍어하는 눈치가 아니다.
"어휴, 하, 하필이면 이게 왜..."
어이없어하는 나를 놔두고도 그녀는 피식거리는 웃음을 지을 뿐이다.
"푸훗, 됐어. 뭐 어때... 다 입는 옷인데. 내버려두고 동생은 가만 있어.
누나가 다 알아서 치울께"
엉거주춤, 방바닥에 쏟아진 속옷가지를 챙기는 나를 밀치며 누님은 손수
그것들을 개키기 시작했다.
"창문이나 열고... 걸레같은 것 있어? 아냐, 내가 할테니까, 창희는 잠깐
나가있어...!"
옷장대신 구석에 놓인 상자를 끌어다놓고, 그녀는 내 팬티까지 한장 한장
곱게 접어 집어넣고 있었다. 갈수록 얼떨떨해지는 분위기의 나... 나는
최마담이 들이닥치면 몰려오리라 예상했던 폭풍우는 커녕 - 이렇게 당혹
스런 모습을 보이는 그녀인지라 완전히 얼이 빠질 뿐이었다.
"제, 제가 할께요, 누, 누님...!"
"괜찮아. 누나가 동생 방 치워주는 건데 뭘... 그냥 조금만 있어. 어머..
. 창희 너 게을러서 청소도 잘 안하는구나?"
아아 참... 내가 돕겠다고 한사코 나서도, 그녀는 되려 그런 나를 말리며
척척 마치 자기 집처럼 내 방안을 능숙하게 정돈해가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 어디..."
자꾸 낯뜨거울 따름인데, 이제 숫제 블라우스 소매까지 걷어부친 미세스
최는 걸레를 찾아와 방바닥 구석구석을 훔치기까지 하고 있다.
"아유... 구석에 이 먼지좀 봐. 안되겠네, 우리 창희 방 자주 와서 청소
좀 해줘야겠다..."
으잉? 자주 와서 청소를 해준다고요? - 아닌게 아니라, 사실 일주일에 채
한번도 청소를 해본 일이 없는 내 방에는 구석구석 먼지가 한웅큼씩은 날
리고 있었다.
"어머머, 이 책상밑은 장난이 아니네...!"
방 한켠의 책상밑. 그녀는 의자를 밀어내고 그 아래까지 엎드린 자세로
허리를 숙이고는 걸레질을 하기 시작했는데... 어, 이, 이런...!
글쎄다. 청소하는 여자가 특히 아름답다고 생각하거나, 집안일하는 여자
를 어머니 외에 제대로 구경해본 적도 없는 나여서, 이런 광경을 처음보
는 것이기는 하지만 - 지금 이 미세스 최 누님의 청소하는 포즈는 상당히
야릇한 체위였다.
가뜩이나 짧은 정장치마를 입고, 자기 옷매무새는 신경도 쓰지 않으며 구
석에 고개를 들이미는 것까지는 좋은데... 바로 그 짧은 스커트가 문제였
다. 그것이 상당히 꼭 끼이는 스타일인데다가... 저렇게 엎드려 마치 후
배위같은 자세를 연출하고 있으니, 으아 - 그녀의 치마단은 절반이상 끌
어올려져 수그린 뒤쪽으로 아슬아슬하게, 엉덩이에 간신히 걸린 상황이었
다.
게다가 스타킹은 밴드를 신었는지... 그 허벅지 위로 올려진 스커트자락
아래로 끝선부분까지 언뜻언뜻 드러내고 있었다.
참으로 민망한 광경이다. 그리고 내 책상 밑은 왠 먼지가 그리 많은지,
누님은 구석구석을 닦기 위해 이리저리 허리까지 틀어대고 있었다. 그럴
수록 그녀의 터질듯한 엉덩이는 치마속에서 씰룩거리고... 그러니 당연히
그 안의 속옷 - 팬티선이 그대로 도드라져 보이는데...
상상해 보시라. 무르익은 풍만한 몸매의 여체가 발아래 엎드려, 내 쪽으
로 엉덩이 뒤를 쳐들고서는... 이쪽저쪽 기어다니는 그런 모습을. 그녀가
아무리 겹겹이 옷을 입었다하여도 상당히 적나라한 경치 아닌가. 하물며
꼭끼는 미니스커트에 다 비쳐보이는 팬티, 밴드까지 내보이는 스타킹...
눈을 돌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은근히 그녀의 엉덩이 한가운데에
못박힐 수 밖에 없는 내 시선이었다.
"휴우... 이제 좀 됐네...!"
꿀꺽, 침을 삼키면서 그녀의 등 뒤만 멍청히 바라보며 섰는데, 문득 청소
를 끝마쳤는지 미세스 최가 드디어 허리를 일으키고 있었다. 화들짝 놀
라, 딴 곳으로 눈길을 피했다.
채 일이십분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완전히 내 방 분위기는 일신하고
있었다. 잘 개어진 이불더미. 가지런히 걸린 옷걸이, 반짝이는 방바닥...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뒤통수만 긁고 선 나.
그러나 그녀는 내가 안중에 없다는 듯, 더러워진 걸레 따위를 들고 나가
화장실로 향하고 있었다. 쏴아, 수도꼭지가 틀어지고 곧이어 빨래하는 소
리.
"창희 동생, 옷 빨 거 있어?"
으잉? 뭐라고요?
"옷 빨 것 있으면 줘. 얼른...!"
으아... 지금 빨래까지 해주겠다고?
"아, 아녀요, 어, 없어요...!"
즉각 튀어나오는 다급한 내 목소리. 이게 무슨... 마치 이것은 정말 친누
나나... 아니 꼭 내 마누라같은 행동 아닌가.
"어디 봐..."
하지만 최마담은 못미덥다는 듯 방안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어처구니 없어 몸 둘 바를 모르는 나를 세워놓고 - 갑자기 그녀는 아래
위로 나를 훑어보고 있었다.
"그 옷... 어제 입고 있던 것 아냐? 양말도 안벗고..."
아차, 맞다. 돌아오자마자 푹 쓰러져 골아떨어졌기에, 나는 어제 보영이
방에서 그녀가 본 옷차림 그대로였다. 순간, 미심쩍은 듯 그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그 옷들 벗어줘...!"
"어, 아, 아뇨, 이 옷은 아직 빨 때가...!"
황당한 그녀의 요구에 아연실색하는데... 야릇한 표정을 짓는 미세스 최
였다.
"아냐. 그래도 벗어봐. 얼른"
무슨 얘긴가. 내가 싫다는데 -
"아, 아니, 이 옷들은 제, 제가..."
"왜, 내가 빨아준다니까. 지금 줘, 얼른"
왜, 왜 그러지? 누님은 강압적으로 내가 입은 옷을 벗으라 하고 있었다.
"빨랑 벗어봐. 내가 빨아줄 테니까"
"저, 정말로 이, 이 옷들은 빨 옷이 아니라니까요...!"
정말이다. 지금껏 청소하고 방정돈까지만도 황공할 따름인데 빨래라니 -
그 때였다. 묘한 미소를 띄우는 그녀가, 팔짱을 끼며 나를 노려보는 것
아닌가.
"그래? 그럼, 속옷은 갈아입어야 하겠지? 그럼 속옷이라도 줘"
앗, 찰라 번개처럼 내 머리 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속옷!
"팬티는 갈아입어야할 것 아냐? 그렇지? 얼른 팬티 벗어줘봐"
그제서야, 나는 지금껏 그녀가 아무런 내색을 않던 이유를 불현듯 알 수
있었다. 팬티, 내 팬티 - 그곳엔 당연히 어젯밤 보영이 정사와의 흔적이
남아있을텐데!
맙소사, 미세스 최의 의도는 그것이었다. 속옷검사.
"그, 그래도 왜, 왜 제 속옷을...!"
왜 누님이 내 속옷까지 빨아줍니까. 이렇게 항의를 하려는데 그녀가 내
말을 가로채고 있었다.
"우린 누나동생 사이잖아, 안그래? 누나가 속옷 빨래해주는 게 어때서?"
이럴 수가, 하지만 그녀의 속셈이 남동생 빨래하는 누나의 심정이 아니라
는 것은 누가 보아도 뻔한 노릇... 꿀꺽, 궁지에 몰린 내 목젖으로 마른
침이 삼켜졌다.
"이, 이건 제, 제가 빨아도..."
하지만 추호도 물러서지 않으려는 최마담.
"내가 빨아준다니까. 왜, 나한테 벗어주지 못할 이유라도 있어?"
"아, 아뇨, 그, 그런 게 아니고..."
"그럼 지금 달라구. 뭘 그래? 누나가 빨래해주는 건데"
갈수록 그녀의 눈썹은 야릇하게 치켜올려지고 있었다.
"빨랑 줘. 창희, 팬티 안입었어? 벗으면 안되게...?"
"아, 아니 저, 저..."
대답할 말이 없다.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 내가 안벗는다고 하면 더욱 이
상한 의심을 받을 것이다. 미치겠다. 진짜 의남매지간으로 생각한다면야
내가 그녀의 의사를 거부할 필요가 없지만... 지금 그녀의 속셈은 결단코
그런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지, 지금 말에요...?"
어휴... 나도 내 팬티 안에 뭐가 묻어있는지 모르는 판국에 -
"그래, 지금. 여기서 벗어줘"
"여, 여기서요?"
황당하다. 지금 자기가 보는 앞에서?
"왜그래, 자꾸... 우린 누나동생 사이야. 누나 앞에서 옷벗는 게 창피해
?"
말도 안된다. 진짜 친누나도 아니고, 농익은 여자 앞에서 다리털 시커먼
놈더러 바지 내리고 팬티를 벗어달라니 -
"그, 그래도요, 화, 화장실에서 갈아입든가..."
슬쩌기, 화장실로 빠져나가려는데, 무슨 생각이 드는지 나를 붙드는 미세
스 최.
"아냐, 여기서 벗어줘. 정 그러면 돌아서 있을께"
완강한 고집을 부리는 그녀였다. 완벽히 덫에 걸리고 말았다. 그녀는 스
스로 팔짱을 끼고는 돌아섰다.
"안볼테니까. 양말하고 팬티만 건네줘...!"
아이고, 환장할 노릇이다. 제발... 부디 내 팬티야, 아무 이상 없어다오.
머뭇거리며 망설이던 나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도리가 없다. 엉거주춤, 바지를 벗고, 팬티를 새것으로 갈아입을 수 밖
에.
"뭐 그렇게 오래 걸리지? 속옷 하나 벗는데..."
"여, 여기요...!"
미세스 최의 등 뒤로 내밀어진 내 팬티.
얼른 빨아나 버리기를 - 이런 마음이 굴뚝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그
녀는 내 속옷을 받아들고 물끄러미 뭔가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곧이어
포옥, 내쉬는 누님의 한숨소리.
"창희동생...!"
뜨끔, 찔리는 나.
"예..."
미세스 최는 여전히 등을 돌린 채 다른 쪽을 바라보며 묻고 있었다.
"어제... 보영이랑 무슨 일 있었어...?"
아아, 드디어 그녀의 날카로운 공세가 시작되고 있었다. 젠장... 하늘이
노래지는 기분이었다. 뭐라고 대답하지? 애초에 맘먹은 대로 딱 잡아떼야
하나?
"그 기집애랑 아무 일 없던 거지...? 나랑 약속, 어기지 않았지?"
죄송해요. 시, 실은... 이런 이실직고가 나와야 하는데, 내 혀는 멋모르
고 또 한번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아, 아무 일 없었어요...! 그, 그냥 두, 둘이 취해서... 그, 그래서 그
만 깜빡 잠이..."
후 - 고개 너머로 이어지는 그녀의 한숨소리.
"정말이야? 맹세할 수 있어...?"
에라 모르겠다. 무조건 아무 일 없다고 하는 수외엔 -
"예, 저, 정말 우, 우린 그냥 잤어요...!"
순간, 나는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뜨악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그녀, 누님이 고개를 돌려 날카로운 눈초리로 흘겨본 것이다.
<제74화> 누님의 코 앞에서 덜렁이는 내 물건
"거짓말하지 마. 창희...!"
으악, 무, 무슨 소리야.
"속옷만 봐도 알 수 있어. 진짜 어제 둘이 아무 일 없었다고?"
아, 아니 어떻게 속옷만 보고서 알 수 있단 말인가 - 물론 정액같은 것이
묻었을지 모르지만, 어제 보영이는 내 허리띠만 끄르고... 꺼낸 다음에,
다시 잠들 때에도 내 팬티를 벗긴 적은 결코 없는데.
아니야 설마...
"거, 거짓말 아녜요! 누, 누님 전화는 그게 제 방인 줄 알고 잠결에...!"
무조건 잡아떼야한다. 미세스 최가 무슨 탐정이나 형사도 아니고, 내가
어젯밤 입은 팬티만 들여다보고서 뭘 알 수 있으랴?
그런데, 돌아선 그녀는 정말 당혹스런 요구를 하고 있었다.
"좋아, 그럼 바지 내려봐!"
뭐, 뭐라고 - 바지를? 순간적으로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바지 내리고 보여봐. 정말인지 아닌지...!"
이, 이 누님 어떻게 된 거 아냐 - 나더러 바지를 벗으라니?
"아, 아니 바, 바지는 왜요?"
"잠깐 벗어봐, 어디 보여줘보라구. 거짓말인지 아닌지"
미치겠네... 바지에 묻은 것까지 검사하려고? 아니 시커먼 청바지에 뭐가
묻으면 보이기라도 하나?
"어, 왜, 왜 이러세요!"
갑자기 그녀는 얼결에 팬티만 갈아입느라 허리띠를 푼 채 서있던 내 바지
춤을 붙잡고 있었다.
"글쎄 가만 있어봐, 동생! 자...!"
어, 얼레 - 순식간에 내 앞에 무릎을 꿇은 최마담은, 달려들어 허리춤을
끌어내리려 하는 게 아닌가! 펄쩍 뛰며 그 손목을 붙드는 나.
"뭐, 뭐 하시는 거에요!"
끌어당기는 그녀, 간신히 막으며 끌어올리는 나, 그 사이의 실랑이가 벌
어지려는 순간이었다.
"난 거짓말하는 건 용서 못해. 창희 니가 그렇지 않다면, 이 손 놓아...
!"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 이 여자는 자기가 뭔데 나더러 이러는 것인가.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노기까지 띠려는 내 목소리인데, 그녀는 내 엉거주춤 붙든 바지춤을 코
앞에 두고 가늘게 뜬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창희동생, 우리가 무슨 사이지?"
그야 아무 사이도 아니죠, 당연히 - 라는 대꾸가 목구멍까지 치밀었지만,
차마 입밖에 낼 수가 없었다. 이 상황에서 섣불리 대답했다가는 본전도
못찾을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대답해. 나랑 무슨 사이지? 누나동생 사이 아니야?"
"그, 그건 그, 그래도...!"
그러나 내 시인에 추상 같아지는 그녀의 목소리였다. 은근한 그 목소리는
차라리 협박조에 가까왔다.
"그럼 뭐가 문제야? 누나가 동생더러 옷좀 벗어달라는 건데...!"
환장할 노릇이다. 따지고 보면 내가 이 누님을 만난 것은 겨우 사흘째 아
닌가. 우연찮은 기회에 매일 얼굴을 맞딱드리기는 했지만, 우리가 뭐 의
기투합으로 이렇게 된 것도 아니고 - 사실상 그녀 멋대로 정하고, 그녀
맘대로 나를 호칭하는 것 아니었나...
"창피해서 그래? 누나가 겨우 바지좀 내려보라고 해서...?"
"그, 그게 아니라요...!"
이, 이럴 땐 뭐라고 대답하지?
"저, 저는 아, 아직... 누, 누님이랑 이제 겨우..."
친해지지도 않았구요, 아무리 그래도 우린 겨우 의남매 사이... 이렇게
말하려는데, 미세스 최가 내 말을 가로막고 있었다.
"나도 다 알아, 무슨 얘기하려는지. 하지만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일단
이 손 힘좀 빼"
아차차, 내가 너무 그녀의 손목을 세게 쥐고 있었나 보다. 슬그머니, 손
의 힘을 뺀 나는 대신 바지자락과 허리띠를 단단히 쥐었다. 혹시라도 그
녀가 갑자기 잡아내릴까봐였다.
"도,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에요. 제가 왜 누, 누님에게..."
"이것 봐, 동생. 내가 얘기했었지? 친누나처럼 돌봐주고 싶다고. 그리고
우리 약속했었지? 절대 보영이네 방에서 자고 나오지 않기로... 근데 왜
창희는 이 누님한테 거짓말을 하는 거지?"
아이고, 내 항의는 씨알도 먹히지 않고 있었다. 아니다. 지금 이 누님은
유도심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거짓말 - 사실 거짓말이지만
- 을 인정하도록 말이다.
"거, 거짓말 아니라니깐요. 저, 전 보영이랑 정말 아무 일 없었어요...!"
그러나 희미하게, 조소까지 띄우는 최마담.
"흐흥, 그럼 왜 안보여줘? 동생 말이 사실이라면, 잠깐 바지 내려보라는
걸 이렇게 막을 필요 없잖아?"
그녀의 코웃음에, 추궁당하기만 하는 나는 점점 더 궁지에 몰리고 있었
다.
"그, 그건요... 저, 저도 남잔데...!"
창피하게 어찌 처음보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여자 앞에서...
"참 답답하네... 우린 의남매 사이라니까. 이게 무슨 남녀관계야? 그리
고, 남자가 뭐 그렇게 쫀쫀해? 살짝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데...!"
이제 그녀는 숫제 내가 남자라는 자존심마저 부추기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아랫입술을 깨무는 나. 더이상 물러설 방도가 없었다. 후우 - 갑갑
한 한숨이 터져나왔다.
"얼른 이렇게 해봐. 금방이면 돼"
"그, 그럼... 보, 보기만 할 거죠...?"
결국 백기를 드는 것은 내 쪽이었다. 마치 그녀 앞에서 꼬추를 덜렁덜렁
내놓는 두어살배기 어린 아기가 된 기분이었다.
그런 두려움 섞인 내 다짐에, 그제서야 피식, 헛웃음을 웃는 그녀.
"어유, 그러면 내가 뭐 잡아먹기라도 하겠니?"
하, 하기야... 어쨌든 창희야, 너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냐 - 차라리 이
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보영이랑 정사를 가졌다고 고백하는 건데. 생각
해 봐, 내가 그 기집애랑 살좀 섞었다고 이 누님이 뭐라고 할 것인가.
어휴휴... 생각할수록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내가 왜 낯선 여자 앞에서
이런 지경까지 이른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다시 한번 깨어문
입술 새로 한숨만이 비어져 나왔다. 꿀꺽, 마른 침을 삼키며 마지막 각오
를 했다.
"조, 좋아요, 아, 알았어요. 하지만 저, 정말 보기만 하는 거에요. 알았
죠? 손대지 않기에요...!"
여전히 내 허리 앞에 무릎을 꿇은 미세스 최, 이번에는 왠지 야릇한 미소
를 지으며 가만히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녀가 바지춤을 쥔 손에 힘을 주는 것이 느껴졌
다. 생각 같아서는 내 손으로 끌어내려주고 싶었지만, 왠지 여자 앞에서
내 손으로 바지 속을 꺼내보인다는 게 창피했기에 - 그녀 손에 맡기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그녀는 양 손으로 내 바지자락을 움켜쥐고, 그리고, 내릴...
"왓!"
그 때였다. 감긴 내 두 눈이 휘둥그레 떠지고 있었다.
으악 - 나는 너무나 엄청난 그녀의 행동을 내려다보고는 까무러칠 비명을
질렀다.
누님이, 미세스 최가, 황당한 짓을 한 것이다 - 그녀의 재빠른 손동작은,
갈아입은 내 팬티까지 한번에 쥐고서 전혀 말릴 틈도 없이 한꺼번에 끄집
어 내린 것이다!
"뭐, 뭐에요!"
하지만 이미 나의 반사동작은 한 수 늦고 있었다. 순식간에 끌어내려진
내 팬티는 벌써 무릎아래께까지 내려서는 찰라였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나는 그저 필사적으로 내 팬티와
허리띠를 끌어올리려 다급하게 허리를 굽히고 버둥댈 뿐이었다. 그녀의
코 앞에 덜렁이는 내 물건이 완전히 드러났다는 생각마저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우왕좌왕, 허리를 비틀고, 내 거시기를 감추고, 팬티를 끌어당기고 - 그
러나 그 와중에 전혀 어울리지 않게 침착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가만 있어, 창희. 어차피 볼 것 다 봤어!"
이, 이 여자가 돌았어 - 이런 욕까지 머리 속에 떠오르는데, 험악한 인상
으로 내려다본 그녀의 얼굴에는 조금의 민망함도, 조금의 낯부끄러움도
섞여있지 않았다.
"가만히 있으라구 했지, 너!"
어? 거꾸로 소리를 지르는 것은 그녀였다.
"저리 비켜, 손 치워! 이 나쁜 녀석!"
화, 화는 내가 내야... 그런데 이 누님이 소리를 치며 욕을 하고 있었다.
"나쁜 녀석, 나쁜 새끼! 얼른 이거 못놔!"
어, 어... 이, 이거 뭔가가 잘못 된 것 같은데...
얼결에 바지춤을 쥔 손을 놓는 나였다. 그만큼 최마담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어나올 듯 살기마저 감지되고 있었다.
"창희 이 바보같은 자식아, 들통 날 거짓말은 왜 해?"
무, 무슨 얘기인가. 당황스러움에 얼이 빠진 나였다.
"이게 뭐야, 이게...!"
미세스 최는 손가락으로 내 하복부를 찔러대고 있었다. 멍청한 시선으로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본 나는,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그곳에는 - 부끄러운 얘기지만, 내 기둥 주변 위 터럭들 - 내가 차마 알
지 못했던 사실이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아아, 이럴 수가... 내 물건 위 시커먼 음모 부위가... 조그맣게, 그러나
뚜렷이, 허옇게 말라붙어 있었던 것이다. 정액인지, 아니면 보영이의 애
액인지 모를 액체, 그 분비물을 묻히고서 엉겨붙어 있었던 것이다.
뿐만이 아니었다. 어제 보영이의 요분질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은 내 하체 군데군데에 남아있었다. 터럭주변, 하복부, 허벅지 근처.
.. 내 허리띠만을 끌러놓고도 보영이는 사방에 그 윤활유 - 그렇다. 그
윤활유, 로션을 엉덩이로 문질러대 튀어놓은 것이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스킨로션이나, 정상적인 사람, 남녀의 정사 분비
물이었으면 모르되, 무슨 로션 - 아니 그녀가 알아서 한 일에, 게다가 어
두운 방안이었으니 지금으로서는 그게 로션인지도 정확하지 않다 - 인지
몰라도 덕지덕지, 내 피부에 굳어져 있는 상황... 한 눈으로도, 아니 내
눈으로도 충분히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정말, 피할 수 없는 증거였던 셈이다.
"걔가 발라준 거지? 그렇지?"
이럴 수가. 그럼 이 누님은 보영이 그곳이 건조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
구나!
그걸 어떻게 - 는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미세스 최의 한쪽으로
돌린 고개는 반짝, 눈가에 이슬을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난, 난... 창희 니가 이럴 정도로 거짓말까지 할 줄은 몰랐어. 설마 했
는데... 이럴 줄 알았어...!"
으아 - 난 쥐구멍이라도 찾아들어가고 싶었다. 어쨌든 그녀 앞에서 뻔히
드러날 거짓말을 한 꼴 아닌가.
"난 그게 더 싫어, 차라리 그 기집애랑 잤다고는 생각해 봤어. 하지만 동
생이 이러리라고는 생각 안했었어. 아니, 보영이 그 년이랑 잤다고 해도,
난 화내지 않았을 거야!"
죽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나 창피하여 숨조차 쉴 수 없었다.
"못된 가시내... 아냐, 동생이 더 나빠!"
세상에 이런 일이...
"죄, 죄송해요...!"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그녀 앞에서 내 물건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 정도는 오히려 부끄러울 일도 아니었다. 내가 한 거짓말, 그것
이 정녕 몸 둘 바를 모르게 하고 있었다.
"아니, 죄송할 것 없어. 어차피 벌어진 일이니까... 흥, 내가 뭔데, 안그
래? 내가 창희한테 무슨 존재라고... 내가 왜 동생한테 죄송하다는 말을
들어야 하지?"
마담은 멍한 시선을 피하며 조소 섞인 자조를 하고 있었다.
"아, 아녜요... 누, 누님...!"
그녀는 가까스로 눈물을 참는지, 그제서야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됐어. 나한테 그런 말하지 마. 아까 건네준 팬티 보고서 알아차렸었어..
. 거기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렇다면... 이미 그녀는 짐작하면서도 혹시나하는 심정으로... 그녀는
아랫입술을 아프게 깨물고 있었다.
"얼른... 얼른 가서 몸이나 씻어. 빨래는 나중에 할테니까"
그러나 너무나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꼼짝할 수 없는 나였다. 어떻게든
사죄하고플 뿐이었다.
"자, 잘못했어요... 전 누님이 화낼까봐... 이젠 안그럴께요. 누님 말만
들을께요...!"
그러나 그녀는 내 사과를 듣고도 묵묵부답이었다.
"제, 제발 화내지 마세요. 이, 이젠 착한 동생이 될께요..."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나도 모를 뿐이었다.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르는 모
든 말을 동원해서라도 그녀를 달래줘야 할 것 같았다.
후우... 그녀는 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말이에요. 죄송합니다..."
모르겠다. 그저 혼자 삭이라고 내버려둘까... 그 때였다. 문득 그녀가 고
개를 돌리며 또 한번 한숨을 폭 내쉬고 있었다.
"이리... 이리 와...!"
갑자기 그녀가 벌거벗은 내 하체를 자기 얼굴 앞으로 끌며 다가왔다.
<제75화> 커져버린 기둥 끝에 맺힌...
어어, 무, 무슨...!
누, 누님 - 얼떨떨하게 그녀의 코 앞에 들이밀어진 내 물건.
엉거주춤, 부끄러워하는 내 하체를 끌어당긴 그녀는, 덜렁이는 나의 그곳
과 주변을 세심한 눈초리로 관찰하고 있었다.
"후우... 이런 바보...!"
그녀의 화에 눌려, 엉겁결에 민망함도 잊은 나는 조금이라도 가리고 감추
려 버둥댔던 손길에 힘을 뺐던 것인데... 그녀는 지금 그런 내 하복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 보지 말아요 - 이런 말이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이 얼마나 창피스런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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