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다면 긴 막장 이야기~ 4부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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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긴 막장 이야기~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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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다면 긴 막장 이야기~~ part 1


미니앨범 타이틀곡인 "그대 떠나도"보다 두 번째 곡인 "아침노을"이 방송을 타는 횟수가 더 많아지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정훈이 해돋이를 보며 느낀 감상을 담담하게 읊은 이 노래는, 아이돌 투성이의 가요계에 커다란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방송사에서는 "아침노을"을 부른 가수를 섭외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고,
언론사에서는 노래가 뜨고 있는데 가수는 방송에 출연을 안 하는 이유를 캐고 있었다.

묵은해가 지나고 새해가 왔어도 그 바람은 잦아들 줄 모르고 더 큰 바람을 일으켰다.
"아침노을"의 광풍이 식어 갈만하니 앨범의 세 번째 노래가 부상을 하고 있었다.

정훈의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에 와 닿는 노래였다.
처음에 들을 때는 멜로디와 노래를 듣게 되지만, 여러 번 듣게 되면 노랫말이 정훈의 목소리와 어우러져 그 노래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 들을 때보다는 두 번째 들을 때가, 두 번째 들을 때보다도 노랫말을 알고 들을 때가 더욱더 듣는 이의 가슴에 새겨졌다.


정훈이 회사에 나오자 김 실장이 정훈을 붙잡고 사정을 하고 있었다. 여러 번 거절을 했지만 볼 때마다 매달리니 정훈도 슬슬 지쳐가고 있었다.

"얼굴이 안 나오게 찍는다니까, 실루엣만 몇 커트 찍을 거야."

"테스트 삼아 낸 거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뮤비는 왜 찍어요."

정훈이 계속 거부를 하자 김 실장은 어떻게든 설득하기 위해 정훈과 친하다고 알려진 주리를 이용하기로 했다.

"주리 알지?"

"네? 그런데요?"

"주리가 뮤비의 여주로 발탁됐는데, 기대가 큰 것 같더라."

김 실장의 얘기를 들은 정훈의 얼굴이 소태를 씹은 것처럼 찡그려졌다.
주리를 이용해 뮤비를 찍게 하려는 것 같은데, 그건 정훈을 잘못 봐도 무척 잘못 본 거였다.
자기와 친한 사람들에게는 잘 대해주기는 했지만 그건 어느 정도의 선을 지킬 때까지였다.
동생 연주가 뮤비의 주연으로 발탁됐더라도, 이런 식으로 엮으면 거부를 했을 텐데 주리는 정훈에게서 몇 걸음은 떨어져 있는 애였다.
정훈이 나중에 말하자며 사무실을 나서자 희연이 사무실 앞에 서 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땀에 흠뻑 젖어 있는 게 연습을 하다 온 모양이었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오빠랑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정훈은 할 말이 있다는 희연을 휴게실로 데리고 와서 음료수를 하나 사 주고는 물었다.

"목마를 테니 마시면서 천천히 얘기해."

"오빠!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줘."

"일단, 들어보고 생각해볼게."

들어보고 결정한다는 정훈의 말에 희연은 무조건 들어달라며 떼를 썼다.
정훈은 몹시 난처했다. 회사에서 친한 아이들이 몇 명 안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떼를 쓰고 있으니 매정하게 끊을 수도 없고,
한참을 생각하던 정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다 한숨을 내 쉬었다.

"그래, 들어줄게. 이제 말해봐."

막상 들어준다고 하자, 머뭇거리며 말을 쉽게 못 꺼내는 게 하기 어려운 부탁 같았다.

"내가 할 수 있으면 들어줄 테니 시원하게 말해봐."

정훈이 희연의 땀을 닦아주며 어린애 다루듯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 물었다.

"오빠!"

"그래."

"뮤직비디오 찍어라."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하는 말이 뮤비를 찍으라는 말이었다.
정훈이 생각하기에는 희연과 전혀 상관없는 일일 텐데 이렇게 나서는 걸 보니 누군가 시킨 것 같았다. 정훈은 강한 분노를 느끼고 의자에서 일어났다.

"누구야!! 누가 너에게 그런 걸 시켰어?"

자리에서 일어나며 화를 내는 정훈을 희연이 결사적으로 말렸다.

"아니야 오빠, 시킨 사람 아무도 없어."

"그런데, 네가 왜 신경을 써. 너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을 텐데."

"주리가 주연을 맡기로 되어 있다며. 주리가 인지도를 얻으면 우리 데뷔할 때 좀 편하잖아."

정훈은 희연의 말을 생각해봤다. 같은 팀으로 데뷔를 한다지만 자존심이 강한 희연이 부탁을 하는 게,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화를 좀 식히고 자리에 앉으며 희연에게 말했다.

"솔직하게 말해주면 뮤비 찍을게, 하지만 거짓말을 한다 싶으면 앞으로 너랑 볼일이 없을 거다."

정훈이 단호하게 말하자 그렇지 않아도 하얀 희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사실은... 이건 오빠만 알고 있겠다고 약속하면 말할 게."

"약속할 게."

"사실 주리는 노래 실력은 좀 떨어져 비쥬얼이 좋아서 우리 팀에 합류는 했는데, 이번에 많이 찍혔어."

"누구에게 찍혀?"

"노래 실력이 안 늘어서 선생님들에게 찍혔지, 그래서 이번에 주리는 뺀다는 말도 나왔어.
주리는 우리보다 어리잖아, 동생이고 같이 고생했는데 주리 혼자 빠지는 게 싫었어.
근데 오빠랑 뮤비를 찍으면 인지도가 확 늘어나잖아. 그러면 같이 데뷰 할 수 있을 것같아서..."

희연이 말을 하다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정훈이 눈물을 닦아주며 희연에게 말했다.

"울지마, 울면 뮤비 안 찍을 거야."

이 조그만 게 마음쓰는 것은, 자기보다는 몇십 배, 몇백 배 크다는 걸 느꼈다.
정훈에게 처음에 말을 걸어온 것도 이놈이고 친한 척 다가온 것도 이 쪼그만 놈이었다.
정훈은 누군가가 희연을 이용했다고 하더라도, 희연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 아이는 정말 주리를 위해 자기에게 부탁했을 테니까, 적어도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아닐 테니까...

"가자."

정훈은 울음을 그친 희연을 데리고 사무실로 가면서 누군가에게 이용을 당했다는 더러운 기분보다는,
이 아이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어서 기쁘다는 생각을 했다.



정훈의 뮤직비디오 "4계절"은 서버가 다운 될 정도로 미친 듯한 접속률을 보였다.
미니앨범도 상승세가 조금 꺾이는가 싶더니 뮤비가 나오자마자 상승곡선을 그렸고 앨범의 전곡이 차트의 상위에 랭크 될 정도로 인기몰이를 했다.

ST의 HOON에 대한 입장은 단 하나, 4월에 정규앨범을 발매 하고 활동을 시작한다는 짧은 인터뷰뿐.


ST에서 정훈에 관한 모든 사항은 회장의 전결로 이루어졌다.
그만큼 회사차원에서 큰 관심을 갖고 있었고 국내를 목표로 한 것이 아니고, 가장 큰 시장을 목표로 정훈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국내 팬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는 그런 단세포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정훈은 모르겠지만, 미니앨범은 이미 미국으로 보내졌고 ST의 인맥을 총동원해서 정훈의 인지도를 올리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는 감정이 조금은 살아나기는 했지만, 아직도 많이 부족한 것 같은 정훈의 감정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자유를 주고 있는 것도 그 전략의 일부였다.



은서를 만나면 정훈은 즐거웠다. 연습이 힘들어 지쳐 있으면서도, 정훈을 만날 때는 그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늘 명랑했고 깔깔거리고 웃었다. 은서의 웃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정훈은 즐거웠다.

정훈을 만나면 은서도 또한 즐겁고 행복했다. 힘들고 지친 상태에서도 정훈을 만나면 없던 기운도 되 살아나는 것 같았다.
웃을 줄도 모르고 좋은 말도 해줄 줄 모르는 벽창호 같은 이 남자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면서도,
그냥 얼굴만 보고 있어도 좋았다. 냉정하고 얼음같이 굳은 얼굴에서 조그만 미소가 피어오를 때,
은서는 작은 기쁨을 느꼈고 또 즐거웠다.

"모처럼 쉬는 일요일인데 내일 놀러 갈래?"

정훈을 만나려면 자기의 연습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야만 했다.
정훈도 연습생이라고 들었는데, 그것도 규제가 엄청나게 세다는 ST라고 들었는데도 정훈은 시간을 늘 은서에게 맞춰줬다.
그런 정훈이 놀러 가자는데 OK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만일 내일 연습하러 나오라고 하더라도 빠질 각오로 대답했다.

"응, 좋아. 오빠랑 만난 지도 1년 가까이 됐는데 맨 날 카페와 영화관만 왔다갔다해서 지겨웠어."

"음!! 내가 지겨운 건 아니고?"

오랜만에 던지는 정훈의 썰렁한 농담에, 이제는 면역이 된 은서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되면 잘하든지."

정훈과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가는 은서는 매우 즐거워했다. 그런 은서를 보는 정훈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버스를 타고 시외에 있는 놀이공원에 도착할 때까지 은서의 예쁜 입술은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댔다.
그전 같으면 여자애들의 수다가 싫어서 자는 척을 하든지, 신경질을 낸다든지 해서라도 입을 막았을 텐데, 은서의 재잘대는 소리가 정훈은 싫지가 않았다.

놀이공원에 입장해서도 정훈을 이리 끌고 다니고, 저리 끌고 다니며 모든 놀이기구를 다 타볼 것처럼 서둘렀다. 그런 은서에게 정훈이 말했다.

"목 안 말라? 배는 안 고파?"

"응? 아직 시간이 이르잖아."

"지금 3시다."

"벌써?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네. 헤~"

혀를 쏙 내밀었다가 집어넣으며 겸연쩍게 웃는 은서의 땀을 닦아주고 식당으로 데리고 갔다.
식당으로 들어오니 떠들썩한 바깥보다는 훨씬 조용했다.

"어! 이 노래 사계절이네?"

식당에서 흐르는 노래는 정훈이 부른 사계절이었고, 은서가 노래에 대해 아는 척을 했다.

"그래?"

"아! 그러고 보니 HOON이 오빠네 회사소속이잖아?"

"응"

"나 이 노래 무척 좋아하는데, 아니다!! 이 노래만이 아니라 HOON의 노래는 다 좋아."

정훈을 앞에 두고 노래를 좋다고 하는데, 뭐라고 말하기가 어색한 기분이었다.
자기가 HOON의 노래를 좋다고 하자 어색해지는 정훈을 보고 은서가 살짝 미소를 지었다.

"오빠, 질투하는구나? 노래만 좋아하는 거니까 걱정하지 마."

"뭔 걱정을 해~ 밥이나 시키자."

정훈이 정색을 하며 밥이나 먹자고 하자, 은서는 아차 싶었다.
정훈도 가수 지망생이고 언제 데뷰 할는지도 모르는 상태인데, 그런 그의 앞에서 다른 사람의 노래를 좋아한다고 말하다니.
은서는 아무 생각 없이 말을 뱉은 자기를 원망하며 정훈의 눈치를 봤다.

"뭐 먹을래?"

"미안해."

"뭐가? 난 괜찮아."

정훈이 웃으며 괜찮다고 말을 해도 은서의 얼굴은 풀리지 않았다.

"에휴! 밥이나 먹자. 다음에 만날 때 HOON의 사인앨범 가져다줄 게."

"아니야, 사인 필요 없어. 난... 누구 보다 오빠를 좋아해~~"

"나도 너를 좋아하니까, 기분 풀고 밥이나 먹자고."

"휴! 둔탱이."

만난 지 1년 가까이 되어가는데도 자기의 마음을 모르는 정훈을 보며 은서는 답답해서 속을 끓였다.
식사를 주문하고 정훈이 은서에게 말했다.

"사인앨범은 꼭 갖다 줄 테니 기분 풀고 재미있게 놀자."

정훈이 앨범을 꼭 갖다 준다고 해도 은서의 기분은 별로 안 좋아 보였다. 정훈은 처음으로 겪어보는 은서의 이런 행동에 큰 당혹감을 느꼈다.

"이게 여자들의 변덕인가? 답답하고 짜증 나네."

식사가 나오자 둘은 말도 안 하고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놀이공원은 여전히 떠들썩한데 정훈의 기분은 푹 가라앉아 있었다.
말도 안 하고 걷기만 하는 정훈의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은서도 나름대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가 한 말이 그렇게 기분이 나빴으면 나빴다고 말을 하고 풀어야지, 이게 뭐야 쫌생이!"

두 사람이 말도 없이 걷는 사이 해가 지고 가로등이 하나 둘 들어오고 있었다.
정훈이 조금 뒤 쳐져 고개를 숙인 채 걷는 은서의 손을 잡아 자기에게로 끌어당겼다.
은서의 가냘픈 몸이 정훈이 이끄는 대로 끌려와 정훈의 품에 안겼다.
얌전히 품에 안겨 있는 은서의 얼굴을 손으로 잡아 고개를 들어 자기를 보게 하고는, 은서의 촉촉하게 젖은 입술에 정훈이 입을 맞췄다.

떠들썩했던 공원이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한 사람, 두 사람씩 빠져나갔고 공원도 조용해져 갔다.
영원할 것 같은 입맞춤이 끝나고 정훈이 은서의 눈을 보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아직은 이 감정이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하라고 가슴이 시키네. 사랑해~"

정훈의 사랑한다는 말에 은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정훈의 사랑한다는 말에 은서의 가슴은 심하게 두근대고 있었다.
눈치도 없고 자기를 좋아한다는 표현도 없어서 정훈이 자기를 좋아하기는 할까라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기습을 하다니, 미처 준비할 여유도 주지 않고 사랑한다고 하다니...

"나도 사랑해, 오빠처럼 가슴이 시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

정훈은 자기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이는 은서를 꼭 끌어안았다.



정훈의 감정이 점점 더 살아나자 회사에서는 여태까지의 방침을 전면 수정하고 미국시장을 공략하기로 급선회했다.
따라서 4월에 정규앨범을 발표하기로 한 것을 미니앨범으로 발매를 하고, 10월에 미국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로 했다.

미리 정훈의 노래를 들어본 미국의 기획사에서는 빨리 오라고 성화를 부렸지만,
정훈이 학교 출석 일수를 채우는 10월 이전에는 미국으로 가기가 어려웠다.

정훈이 3학년에 올라가자 학교는 아침에만 잠깐 들르고 회사로 바로 가는 생활이 계속됐다.
회사에 나가서 영어 회화와 헬스, 앨범제작을 위한 곡 연습 등 하루하루를 바쁘게 보내야만 했다.

정훈은 오늘도 음료수를 잔뜩 사서 애들이 안무를 맞춰 보는 연습실로 들어갔다.
정훈이 들어오자 희연과 주리가 제일 먼저 달려들었다.

"목말랐는데 잘됐다. 잘 먹을 게~"

"잘 먹을게요."

"첫 방 날짜 잡혔다며?"

"다음 주 M방송 뮤직온에서 데뷰 하기로 했어."

"흠! 그거 생방송 아니야?"

"우리는 신인이라 시간차 녹방 인가봐."

"그렇겠구나, 아무래도... 잘됐다. 축하해~"

정훈이 주위에 둘러서 있는 5명 모두에게 축하 인사를 했다. 희연이 대표로 인사를 받으며 정훈에게 물었다.

"고마워! 근데 선물은 없어?"

"데뷔할 때 따라가 줄까?"

정훈이 따라가 준다고 하자, 갑자기 연습실이 시끄러워졌다. 아이들이 전부 한마디씩 하는데 정훈은 정신이 없었다.

"그만!! 희연이가 리더니까 정리해서 대표로 얘기해봐."

정훈이 그만 하라고 하자 연습실이 조용해지며 희연과 애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기 시작했다.
한참을 수군거리던 애들이 얘기가 끝났는지 정훈의 앞으로 왔고, 대표로 희연이 애들이 바라는 걸 얘기했다.

"미리, 정희, 수진이는 오빠 앨범 달라고 하네, 사인은 당연히 해서. 주리는 나랑 같아! 오빠가 우리 첫 방 때 따라와 준다면 그걸로 만족한대."

"그래? 기다려봐."

정훈이 애들의 요구조건을 듣고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형, 사무실에 앨범 남은 거 있어요?"

-좀 있을 거야. 왜 누구 주게?

"요번에 데뷔하는 애들에게 앨범을 안 준 것 같아 주려고요."

-내가 갖고 내려갈게, 5장이면 되지?

"여유 있으면 한 10장 갖고 오세요. 다른 사람 줄 데가 있어서 그래요."

조금 기다리니 기영이 연습실 앞에서 정훈을 불렀다.

"들어오지 그래요?"

"쟤네 마음이 복잡할 텐데 나까지 들어가면 연습도 안 될 것 같아서."

"아무튼 꼼꼼해."

기영이 앨범을 정훈에게 건네주고 가려고 하자 정훈이 기영에게 물었다.

"다음 주 데뷔한다는데 나도 따라가서 구경해도 되요?"

"안 될 거야 없지만, 너 방송국 가는 거 싫어하잖아?"

"내가 방송하는 거도 아니고 애들이 하는 건데 뭐 상관없잖아요."

"음! 그러면 로드라고 하고 따라가라. 네가 따라가면 애들도 마음이 좀 놓일 거 같은데.”

"글쎄요?"

기영이 사무실로 올라가고 정훈은 연습실로 들어갔다.

"정희, 앨범에 뭐라고 쓸까?"

"사랑하는 정희에게... 아야!!"

정희가 장난을 치자 옆에 있던 희연이 정희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오빠가 편한 글로 써서 주세요."

희연이 편하게 써달라고 하자, 정훈은 5장에 같은 글을 썼다.

-사랑하는 동생 oo의 데뷔를 축하하며~ HOON

앨범을 받아든 아이들은 무척 기뻐하며 정훈에게 먼저 안기려고 달려들었다.
연습생의 이성 간의 만남을 철저히 규제하는 회사에서도 정훈에게는 별다른 제재를 하지 않았고,
정훈의 뮤직비디오를 주리가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주리가 F.G의 멤버로 확정되자,
전에는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던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럼없이 친오빠처럼 정훈을 대했다.


아이들을 따라 M방송에 온 정훈은 정신이 없는 아이들을 잘 다독거렸다.
리허설을 할 때 옆에서 지켜봐 주고 격려해주며 아이들의 힘을 돋워주었다.
드디어 본방 녹화가 시작됐고, 강한 조명과 돌아가는 카메라를 보며 아이들은 기절할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정신 차려, 몇 년간 노력했잖아. 여태까지 해온 대로만 하면 문제없어."

무대에 올라가는 아이들을 한 명씩 안아주고 등을 토닥거리자 아이들이 정신을 차린 듯, 힘차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
옆에서 지켜보는 정훈도 번쩍거리는 조명과 무대 효과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직접 무대에 올라가 춤추며 립싱크를 해야 하는 아이들은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
정훈은 아이들이 실수하지 않기를 바라며 자기도 모르게 꽉 쥔 주먹에 땀이 흠뻑 고였다.

아이들이 실수없이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자 정훈이 한 명씩 꼭 안아줬다.

"수고했어, 이제부터 시작이야. 너희는 꼭 날아오를 거야!"

다섯 명의 아이들이 정훈을 둘러쌓고 눈물을 펑펑 흘렸다.

"자! 분장 다 지워진다. 일단 대기실로 가야지."

정훈이 아이들을 다독거리며 대기실로 오자, 아이들은 언제 울었냐는 듯 깔깔거리며 장난을 쳤다.
매니저가 들어오자 아이들은 장난을 멈추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하나, 둘, 셋"

"고마워요, 매니저 오빠!"

"그래!! 전부 수고했다."

고맙다는 아이들이나 수고했다는 매니저나 눈가가 붉어지며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정훈씨 오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가 한 게 뭐 있다고요, 형님이 고생하셨죠."

정훈과 매니저가 덕담을 나누는 동안 아이들은 분장을 고치고 얌전하게 앉아있었다.


*흐름을 길게 가려고 했지만, 쓰는 제가 답답해서 좀 빨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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