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진정한 나 - (1)
진정한 나
(1)
「으음. 이 주변이 괜찮을까나.」
잔디 위로 걸음을 내딛으며, 남자는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린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주변의 경관을 살피고 있는 남자.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들새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널찍하게 열려있는 공간에 따스한 봄바람이 스쳐지나고 있었다.
「N시 종합 운동 공원」
현지 출신 국회의원이 만들었다고 하는 공원.
고액의 세금이 투자되어 시설은 충실하지만,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지역에 있었다.
공공 교통 시간이 1시간에 한대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 뿐이라서 시민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야구장이 몇개나 들어갈 정도의 넓이를 자랑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그나마 적은 방문자가 흩어져버린다.
휴일에는 자가용을 타고 가족끼리 놀러오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평일에는 사람 그림자조차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그런 인기척없는 시간대에 남자가 서있는 곳은, 그 공원에서도 가장 안쪽에 위치한 잔디 광장이었다.
그 광장은 축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넓다.
공원 관리 사무소로부터도 가장 떨어진 곳에 위치한 그 광장은, 외로운 공원에서도 가장 사람이 접근하지 않는 장소였다.
「에리도 그렇게 생각하지?」
라고 말하며, 남자는 뒤를 돌아보았다.
남자의 뒤에는 그림자처럼 여자가 가까이 다가붙어 있었다.
아름다운 미모도 돋보이지만 그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봄의 오후의 공원에 어울리지 않게 한겨울처럼 두꺼운 코트를 껴입고 있는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덥기 때문인지 그 얼굴은 조금 붉게 달아올라 있다.
에리라고 불린 미녀는,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 시선에는 침착함이 없다.
가끔씩 흠칫하고 단정한 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마코토, 씨. 정말로 이런 곳에서……그…… 하는 건가요?」
전신을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히며 에리는 말했다.
양손은 자신을 무언가로 부터 지키려는듯이 코트의 목 언저리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마코토, 라고 불린 남자는 싱긋 웃는다.
「후후, 당연하잖아. 그렇지 않았다면, 일부러 이런 먼 곳까지 오지 않아. 이런 장소에서 하는걸 에리는 좋아했었잖아.」
「그, 그런가요? 나,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내가 「그런 일」을 하고 있었다니, 도저히 믿을 수가 없어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막상 시작하면 굉장히 흐트러진다니까, 에리는.」
마코토는 흔들림이 없다. 불안하고 어딘가 자신감이 없는 태도의 에리와는 대조적으로 확신으로 가득찬 당당한 태도였다.
「그렇지만……」
에리는 망설이고 있었다.
더욱더 강하게 자신의 몸을 껴안는다.
그런 몸짓에 존재를 과시하듯 앞으로 한껏 내밀어져있던 풍만한 가슴부위가 팔에 눌리고, 차르릉-- 하고 금속끼리 부딪치는 맑은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그게 아니면, 혹시 관객이 없다면 의욕이 솟지 않는걸까? 그렇다면 누군가를 불러오--」
「기, 기다려요!」
걸어가려는 마코토를 당황하며 에리는 멈춰세웠다.
몇초 동안의 침묵.
「괜찮아. 이건, 예전부터 에리가 하고 있던 일이야. 그렇게 특별한 일이 아니야. 한번 더, 익숙한 「놀이」를 반복할 뿐---- 시작하자.」
상냥하면서도 단호한 마코토의 말이 에리가 도망칠 곳을 가로막고 실행을 재촉한다.
「아……」
에리는 들릴듯 말듯한 작은 한숨을 쉰다.
절망의 슬픔을 품은 그 한숨은, 한편으로는 놀라울 정도로 뜨거웠다.
마치 에리의 몸 속에서 솟아오른 마그마처럼 뜨거운 흥분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꽉 쥐영있던 에리의 손에 힘이 풀려간다.
가늘고 하얀 손가락이 스스로 껴입고 있는 코트를 향해 뻗고, 하나씩, 하나씩 단추를 풀러낸다.
자기자신을 해방하기 위한 의식처럼.
「……」
그러한 에리의 모습을 마코토는 아무런 말없이 바라볼 뿐이다.
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그 눈은 붉게 핏발이 올라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
모든 단추를 끌러내자, 에리는 코트를 벗어 잔디 위에 내려놓는다.
코트 아래의 에리는 전라인 상태였다.
검은 하이힐에 검은 목걸이.
그것이 에리가 몸에 걸치고 있는 모든 것이었다.
목걸이에 연결되어 흘러내려진 은빛 쇠사슬이 지면 근처까지 뻗어 바람에 흔들리며 찰랑-- 맑은 쇠사슬 소리를 냈다.
미풍이 에리의 나체를 어루만지고 에리의 하복부를 가리는 섬모를 수줍게 휘날리게 하고 있었다.
에리는 부끄러운듯 움츠리며 자신의 몸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감추려는 팔 사이로 그 풍만한 유방은 대부분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에리의 움직임조차도, 마코토는 상냥하게 제지했다.
「에리. "차렷"」
마코토의 그 한마디 말에 에리의 움직임이 팟--! 하고 멈추었다.
그대로 잠시동안 움직이지 않았지만, 이윽고 들어올렸던 양손은 단념한듯 몸 옆으로 얌전히 늘어졌다.
움츠러들었던 에리의 등골도 쭉 펴져간다.
봄의 오후의 공원, 전라의 젊은 미녀가 서있었다.
그 매력적인 육체를 아낌없이 내보이면서.
시선을 끌어당기는 무거워보이는 풍만한 가슴도, 검디검은 하복부의 수풀도, 살집좋은 허벅지도, 모두 햇빛 아래 드러내고 있다.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진 광경이었다.
모델같은 발군의 프로포션인데, 몸에 걸치고 있는 목걸이와 하이힐이 그 인상을 결정짓고 있었다.
의문의 여지가 없었다.
이 미녀는, 변태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또한 이 남자의 소유물이다, 라고.
예각으로 날카로워진 원추형의 풍만한 유방은 중력에 무너지지 않고 그 아름다운 형태를 유지한 채, 숨을 가볍게 내쉬는 리듬에 맞춰 출렁이고 있었다.
그 정점에 있는 분홍빛 유두는 바짝 긴장하여 햇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크읏……」
부끄러움을 참기 힘들어, 에리는 얼굴을 돌린다.
그럼에도 그녀는 차렷자세를 유지한 채로 자신의 몸을 숨기려고는 하지 않았다.
하얗고 부드러운 피부가, 희미하게 붉은물이 들어 있었다.
「예뻐, 에리의 알몸은. 역시 낮에 이렇게 밖에서 보는 쪽이 더 아름다워.반짝반짝, 마치 빛나고 있는 것 같아.」
마코토의 입에서 무심코 감탄의 말이 흘러나왔다.
「그렇게 보지마요……부탁이에요……」
바람소리에 지워질 듯한 작은 목소리로 에리는 마코토에게 애원했다.
잔디를 밟으며 마코토는 에리에게 다가갔다.
에리의 애처로운 애원을 무시하고, 마치 핥는듯한 집요한 시선으로 그 무르익은 매력적인 나신을 바라본다.
본래는 감춰져야만할 에리의 모든 것이 무방비로 드러나있었다.
젊음이 가득찬 매력적인 육체는 햇볓을 받아 빛나고, 바람이 그 육체를 한차례 휘돌고 지나갈때마다, 휘날리는 음모 사이로 그 안쪽의 갈라진 비처가 언뜻 드러나보였다.
에리는 부끄러움을 억누르며 그 모든 것을 드러낸 채로 서있었다.
--- 에리 자신의 의지로.
마코토는 사랑스러운듯, 에리의 가는 목덜미에 감겨진 목걸이를 어루만졌다. 마치 애무하듯이.
그대로 손가락으로 쇠사슬을 얽어 잡은 후, 에리에게 선고하였다.
「자, 에리.즐겁게 놀까.」
(2)
「응……」
눈을 뜨자, 천장이 보였다.
하얀색이여야 할 천장은, 희미한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커텐 너머로 햇빛이 비추고 있었다.
살풍경한 디자인의 방이었다.
자신이 자고있던 파이프 침대에 간소한 책상과 의자.
책상 위에는 작은 관상 식물 화분이 놓여있었다.
단지 그것뿐인 방.
생활감이 부족한 그곳은, 마치 병실같다-- 라고 생각했다.
어디일까, 여기는?
전혀 기억에 없는 방이었다.
타인의 방에 멋대로 들어간 것처럼, 왠지 말할 수 없는 꺼림직함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다.
상당히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던 듯 하다.
너무 오래자서, 되려 머리가 무거울 정도다.
멍해져있던 의식이 점차 각성해간다.
나는 수수한 체크무늬의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귀여운 디자인을 좋아하는 내 취미랑은 동떨어진 파자마다.
어쨰서 나는 이 방에서 자고 있었던 걸까.
아직 안개가 껴있는 머리를 굴려 생각하려고 하던 그 때, 어수선한 발걸음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문이 열렸다.
「에리!」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나를 보자마자 그렇게 외쳤다.
「깨어났구나 .에리!」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나는 망연한 상태였다.
그 남자는 침대의 옆으로 달려와 나의 손을 아플 정도로 강하게 움켜쥐었다.
그 눈에는 희미하게 눈물을 머금고 있었다.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남자는 몇번이나, 몇번이나 그렇게 말했다.
뜨거울 정도로 감격하고 있는 듯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나의 머리는 반대로 차갑게 가라앉고 있었다.
마치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과 상관없는 방관자인 것처럼.
어째서 이사람은 나에 대해 「에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걸까. 나는, 나는……?.
「……」
「에리?」
멍하니 있는 나의 모습을 눈치채고 남자의 표정에 변화가 생겼다.
「왜그래, 에리. 나를 모르겠어? 나야. 마코토야.」
나는 이 사람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분명 이름도, 그래, 마코토가 틀림없다, 그렇다.
삼키기 힘든 커다란 알약을 억지로 삼키는 듯,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걸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인식했다.
아직도 잠에 취해있기 때문일까.
나의 머리는 아직도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았다.
아니, 벌써 충분히 눈은 뜨였을 터인데, 그럼에도 머릿속 일부에는 아직도 안개가 껴있는 것 같았다.
마코토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터인데, 기억의 윤곽이 희미해져있다.
미묘하게 마코토가 말하는 말들이 내 머릿속에서는 정확하게 맞물리지 않는다.
자세하게 생각해내려고 하면 사고에 브레이크가 걸린다.
갑자기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져서 더이상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
아직도 꿈이라도 꾸고있는 것 같다.
무심코 의문스러운 점을 물어본다.
「마코토... 씨. 에리는 내 이름인가요?」
「에리. 무슨 말을 하는거야.」
내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한 듯, 마코토의 말에는 쓴웃음이 섞여있었다.
「……」
「에리?」
그것이 내가 농담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자, 순식간에 마코토의 얼굴은 새파래져갔다.
조용히 나의 눈을 보고 마코토는 말했다.
「에리.설마 기억을 잃어버린거 아냐?」
그럴리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렇게 말짱한 정신상태니까.
그렇지만…….
기억을 더듬어도 솟아오르는 것은 초조함 뿐이다.
지난 일들은 알고 있을터.
하지만 기억들이 너무 희미하다.
무엇하나 초점이 맞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떠올릴 수 없었다.
마코토의 말대로, 나는 기억을 잃은 채 눈을 뜬 것이었다.
(3)
눈 앞에 놓여진 커피로부터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마셔. 진정이 될꺼야.」
「고마워요」
커피를 끓여준 마코토에게 나는 인사를 건넨다.
그 향을 맡고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했던 기분이 가라앉는다.
우리들은 거실 테이블에 마주 본채로 앉아있었다.
「에리는 예전부터 커피를 좋아했으니까.」
자신이 누군지도 모른 다는 것은, 자신이 딛고있는 땅이 무너지는 것같은 불안함을 느끼게 했다.
그 중에서 스스로를 「마코토」라고 부른 나를 알고있는 남성은, "진정한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유일한 이정표나 다름없었다.
나는 마코토의 존재에 안심하고 있었다.
「당황해서 미안해. 지금으로서는 에리가 눈을 뜬 것만으로도 기뻐해야하는 일일 터인데……」
마코토의 그 말은 나에게 건네는 말이라기보다, 자기자신을 타이르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따뜻한 커피를 한입 마시고 입을 열었다.
「저, 마코트, 씨. 여러가지 가르쳐주세요. 나에 대해서.」
잠시 홀로 생각에 빠져있던 마코토는 깜짝 놀란듯한 표정을 띄우고 나를 바라보았다.
「아, 그랬지. 설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몰라. 괜찮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가르쳐 줄테니까. 그래……. 일단, 나와 에리의 관계에 대해 가르쳐줄께. 나와 에리는 매우 가까운 관계였어.」
「그건, 연인이었다는 이야기?」
마코토의 태도로, 살며시 그런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코토는 약간 뚱뚱하고, 나보다 나이도 꽤 위일 것이다.
상냥하긴 하지만, 솔직히 이성으로서의 매력은 부족한 풍채다.
예전 기억은 떠올리지 못하지만, 자신이 좋아할 만한 타입이 아니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응, 그래. 확실히 우리는 연인이었어. 매우 사이좋은……. 우리의 마음은 깊은 부분까지 연결되어 있었지.」
그리워하는듯 마코토는 말했다.
조금 믿기 힘든 이야기었다.
예전의 나는 마코토의 어디에 매료되어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함께 이 집에서 살고 있었지만, 정확히 반년전에 에리는 교통사고를 당했어. 다행히 외상은 대단하지 않았지. 그런데 머리에 강하게 충격을 받아서 그동안 쭉 눈을 뜨지 못했어. 그래서 내가 이 집에 데리고 돌아왔지. 언젠가는, 눈을 떠준다고 믿고 있었어…….반드시 오늘같은 날이 올꺼라고.」
「그랬군요……. 전혀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나는 마코토에게 사과했다.
그것을 보고, 당황한 듯 마코토가 말했다.
「괜찮아, 그런 일. 이렇게 또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걸. 그것만으로도 이제 충분해.」
마코토의 얼굴에는 상냥한 미소가 떠올라있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가 계속 이 집에 있다는 건 귀찮을테죠.」
「그, 그렇지 않아. 옛날부터 이 집은 우리 두사람의 집이었잖아. ……게다가, 에리의 부모님은 이미 돌아가셨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여기말고 에리가 갈 곳은……. 아니, 그런 이야기는 제쳐두고, 나는 에리가 이 곳에 있었으면 좋겠어. 부탁이니까 어디든 가지 않으면 좋겠다.」
「고마워요. 상냥하네요.」
지금은 솔직히 마코토의 상냥함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기억이 없어도 괜찮아. 천천히 시간을 들여 생각해내면 좋아.」
「그렇구나……. 그런데, 예전 나의 사진같은거 없을까요? 보면 무언가 기억이 떠오를지도 모르니까.」
「아, 그렇다면 좋은 것이 있어.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도, 그것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해.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마코토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 얼굴은 미소를 띄운 그대로였다.
「?」
문득 본, 마코토의 미소에는 그림자같은 어두운 구석이 섞여있었다.
장난을 즐기는 아이처럼.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나의 흥미는 마코토가 가져온 것으로 옮겨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