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德厚の野望 43

43 화


이른 아침의 후원에는 초목에 서린 이슬이 눈물을 머금은 것처럼 보였다. 곱게 깐 사방 10장의 단의 중심에는 연차가 별로 나 보이지 않는 소녀와 갓 2차 성징이 시작되려는 듯한 여아가 반 장 간격을 두고 서로 마주 본 채 앉아있었다.


언니 쪽으로 보이는 소녀는 어깨 아래에 오는 짧은 머리와 함께 분홍빛 입술을 굳게 다물고 있어 중성적인 느낌을 풍기고 있었고, 여아는 수더분한 인상에 앞머리를 길게 길러 눈빛을 차단하고 있었다. 바로 무술 사범인 형욱과 덕왕의 앙녀인 주부용이었다.


“오법五法이란 무엇이냐?”
“마음을 모으고, 상대를 쳐다보고, 손을 움직이고, 몸을 다스리며, 걸음을 옮기는 법입니다.”


한 달 동안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듣는 것이라 주부용은 바로 대답했다. 겉으로는 공손히 대꾸해도 속으로는 불퉁거린다.


-사부는 너무 형식을 중시한다니까.
“아얏!”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주부용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제자의 기색을 눈치 챈 형욱이 죽비로 훈계를 내린 것이다.


“무인이라면 언제 어디에서이든 잔심殘心을 지녀야한다.”
“하지만 사부. 저 같은 천재미소녀 제자는 흔치 않잖아요. 한 달 만에 고작 한 시진 만으로 저처럼 십팔반무예의 요체를 체득한 이가 어디 있나요. 365개의 점혈 위치도 바로바로 할 수 짚을 수 있고요.”


주부용은 손가락을 꼽아가며 항의했다. 환골탈태에다가 완전기억에 가까운 능력을 지닌 주부용으로서는 암기나 기초를 다지는 데는 놀라울 성취를 보였다. 비록 형욱은 교만해진다고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잔심은 재능과 상관없다. 왜 강호에서 수 십 년을 고련한 일류 고수가 칼 휘두르는 법도 제대로 터득하지 못한 하수에게 죽임을 당하는 줄 아느냐?”
“그 하수가 운이 좋았나보죠.”


입을 삐죽 내미는 것을 보니 정답을 말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방심이라는 원했던 대답이 아니라 형욱은 잠깐 침묵했다.  딱! 하는 경쾌한 소리가 울렸다. 바닥에 머리를 대며 엄살을 피우는 제자를 향해 형욱은 재차 질문을 던졌다.


“강호에서는 노인과 아이를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왜 그런 줄 아느냐?”
“소송 거니까요.”
“....?”


이번에도 엉뚱한 소리를 하면 강도를 높이려했던 형욱은 죽비를 날리지 못했다. 왠 소송?


“이야기 못 들으셨어요? 어떤 무사가 번화가를 지나가다가 아이를 데리고 가던 노파가 넘어졌기에 일으켜주려고 손을 뻗었는데, 그 노파가 찰거머리처럼 붙어서는 이 자가 자기를 밀어뜨렸다고 사방에다 고함쳤대요. 결국 관아에 끌려가서는 심문을 받았는데, 아이는 거짓말을 못하는 법이라고 판정을 내려서 막대한 벌금을 낼 수밖에 없었대요. 게다가 그 무사는 칼을 차고 있어서 판결에 불리하게 적용했고요.”


조잘거리며 대답하는 주부용의 말에 형욱은 미간을 좁혔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의미로는 그것도 무서웠다. 험, 하고 헛기침을 하고는 그게 아니라는 듯 화제를 바꾼다.


“그런 경우도 있지만, 여자와 아이, 그리고 노인이 험난한 무림에 활약을 한다면 남들은 모르는 비장의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군요. 하기는 승소를 아무나 하는 게 아니죠.”


음음, 하고 납득하는 제자. 끝까지 미묘하게 방향을 트는 주부용에게 형욱은 조용히 죽비를 들었다. 주부용이 얼른 머리 위를 가드하며 봐달라는 듯이 웃었다.


-부전여전이라더니.


피가 이어지지 않는 양녀라더니 실은 오래전에 숨겨둔 자식인가? 라는 상념이 들 정도로 덕후를 닮았다. 불경한 사고를 떨치듯이 형욱은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말만으로 자신의 부아를 치미 게 하는 것은 세휘와 덕후로 충분했다. 처음에는 말 없이 조용했던 아이로 기억했다. 백지는 가장 물들기 쉽다더니 둘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게 아닌가 싶었다.


“뜻을 밝히기 위해 글을 쓰는 것처럼, 몸에 의지를 새기는 법은 습관이다. 그래서 매 수련이 끝날 때마다 하라는 것이고.”
“언제 그만 두면 되나요?”
“기한이 정해져 있겠느냐? 굳이 정해야한다면 죽을 때까지 하려무나.”
“켁.”


혀를 내밀며 목 졸리는 시늉을 하는 주부용을 무시하고 형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법의 기초는 알은 것 같으니 진도를 나가마. 오늘부터 배울 것은 경勁이다.”


주부용의 자세가 진지해진다.


“몸은 소우주라고 한다. 구성분을 따지고 보면 피와 뼈 그리고 고깃덩어리의 집합체에 불과한데 왜 그렇게 부를까?”


북경에서는 번역으로 수많은 살인행사를 맡고, 변경에서 난전을 해쳐 온 형욱은 사람의 목숨이 얼마나 허망한지 체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나 오묘한지도.


“그건 시공간 속에 어떻게 인식하고 반응하느냐에 따라 보통 인간의 한계를 넘는, 무궁한 가능성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내 체중은 20관에 한참 못 미친다. 맨 몸으로 호랑이를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가부를 떠나 검강을 뽑아내는 실력자임을 아는 주부용은 형욱의 마음에 들 답안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다행히 설명에 심취한 형욱이 앞질렀다.


“불가하다. 호랑이는 내 체중의 열 배는 넘고, 그 무게에서 나오는 힘은 나 정도는 간단히 잘 다진 고기로 만들 것이다. 내가 호랑이를 때린다 해도, 호랑이 입장에서는 토닥임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엄마라면 되지 않을까요?”


천하제일권사로부터 사사 받은 금보옥이라면 가능할지 모른다.


“작은 마님은 특별한 경우다. 너보다 어릴 때부터 비전의 영약으로 처방을 받지 않았더냐? 듣자하니 뼈를 부수고 근육을 찢으며 체질 자체를 말초신경부터 지속적으로 강화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평소 손짓 발짓 하나가 무의식중에 경력을 내재할 정도로 적용시켰으니, 큰 마님이라 해도 백타를 벌이면 승패를 장담할 수 없다고 하셨다.”
“듣기로는 그 당시에는 밥을 어른 세 끼 분량을 해치우셨다고 하는데...”
“....보통 여자보단 체중....도 많이 나가겠지. 그런데도 그 체형을 유지한다는 것은 특별한 공부工夫를 거쳤다는 것이다.”


이야기가 옆으로 새자 형욱은 주부용에게 지그시 눈길을 주었다. 압박을 느낀 주부용은 계속하라는 듯 손가락으로 무릎 부위의 바지 주름을 피는 시늉을 했다.


“어쨌든, 나처럼 연약한 소녀가 호랑이 같은 거수巨獸를 무너뜨리는 것에 아주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주부용의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사부도 안 그런 줄 아는데 은근히 신경 쓰는군. 형욱도 말하고 나서 스스로 뭔가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했다. 주부용의 얼굴을 보았더라면 의미를 깨달았겠지만 경청하는 척 고개를 숙이고 있던 터라 깨닫지 못했다. 찜찜함을 간직한 채 형욱은 손발 짓을 곁들어가며 설명했다.


“그냥 휘두르면 고작 손 내지는 팔의 힘만 전달된다. 체중이 20관이면 고작 2관의 힘 밖에 전달이 되지 않는 것이지. 그러나”
-쿵!


형욱의 발이 진각을 밟는다. 세게 밟아 그 진동이 주부용에게도 미미하게나마 느껴질 정도였다. 


“이렇게 진각을 밟으면 충격파가 생긴다. 이 때 발생한 반탄력은 가만히 있으면 다리에 그치지만, 이걸 각 관절 부위의 회전에 맞물려 전이가 된다. 회전력까지 더해지니 그 힘은 배가 된다. 이걸 온전히 팔을 타고 타격점으로 집중할 수 있다면 20관에 가까운 충격을 줄 수 있다.”


형욱은 다시 진각을 밟으며 교본처럼 깔끔한 동작으로 정권을 내질렀다. 허공을 가르는 주먹으로부터 보이지 않는 기파가 힘차게 퍼지는 듯 했다. 형욱은 검을 거둬들였다.


“여기에 내공을 실으면 위력은 천문학적으로 배가된다. 도검의 예기를 더하면 말 할 것도 없지. 작은 마님의 권경 수준이라면 모르긴 해도 집채 만한 암석은 간단히 부술 수 있을 것이다.”
“사부님의 검강도 마찬가지인가요?”
“물론. 하지만 내 것은 완성된 것은 아니란다. 완전한 검강을 구현하려면 큰 마님 정도는 되어야하지. 그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의념을 발현할 수 있는가, 운용에 대한 깨달음의 문제다. 말로 표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니 지속적인 수련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군요.”
“앞으로 네가 배울 것은 각종 경력을 다루는 법이다. 힘을 쌓는 축경, 방출하는 발경, 운용법에 따라 정공을 따르는 명경, 기습을 위한 암경, 현혹을 위한 화경. 세기에 따른 강경과 유경, 목표에 따른 직경, 횡경, 수경, 사경, 원경 등등 16경절요에 익숙해지면 본격적으로 내공을 연마하기로 하자.”
“네!”
“그러면 진각을 1만 번 하렴.”
“엑?”


주부용의 입에서 비명이 터졌다.


“하지만 사부, 제자는 십팔반무예는 이미 깨우쳤다고요. 이제 와서 맨손으로 정권 지르기라니.”
“푸닥거리 말이니? 실전에서 그렇게 촐싹대다가는 죽기 딱 알맞다. 그건 주군이 네게 무예에 흥미를 붙이기 위해서란 언질에 묵인 한 것이었지. 잘 됐구나. 이 기회에 네 나쁜 동작을 모두 교정해야하니 않겠니. 시간은 많지 않지만 성심성의껏 지도해주마.”
-악마....!


주부용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결국은 입에서 신물이 나오고 발이 부르트도록 땅을 구르고 나서야 형욱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다. 밝은 달과 그를 호위하듯 총총히 떠오르는 별빛 아래 임시로 만든 지팡이로 한쪽 발을 들며 주부용은 비틀비틀 걸었다.


-마검령일 때는 아픔도 느끼지 못했는데.


이 가녀린(?) 육신에 엄습하는 피로와 아픔에 치를 떨며 주부용은 덕후의 처소로 갔다. 가서 사부를 바꿔달라고 청할 셈이었다. 어느 덧 고통은 피하고 편한 것을 찾고자하는 인간의 심리에 물들어 버린 것이다.


“아앙....아읏....”


열 걸음 앞 두고 처소에 당도했을 때 담 하나를 타고 야릇한 교성이 울렸다. 발정난 암코양이가 갸르릉 거리는 듯한 색정어린 비음이었다. 음색이 상이하긴 해도 임자는 염미홍이다.


“아빠....”


주부용은 안구에서 습기가 찼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은 밖에서 혹사를 당하고 있는데, 부모는 계집질을 하고 있다니....소매로 쓱 닦으며 주부용은 허공을 보며 큰 목소리로 다짐을 한다.


“슬퍼도 안 울어. 엄마, 나 아무리 구박을 받아도 꿋꿋이 살게!”


그에 화답하듯 교성이 잠시 줄어들었다가 더욱 커진다. 주부용은 처소 입구를 못마땅하다는 듯 흘겨봤다. 그렇게 나온다 이거지? 쳐들어가서 동생은 언제 볼 수 있냐고 시침 뚝 떼고 묻고 싶지만, 엄마들한테 점수 깎을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서로 상극인 덕후와 주부용의 사이에서 주도권을 차지할 방법은 여인들이었고, 안타깝게도 둘은 레이스로 치면 덕후가 거의 결승점을 두고 있다면 주부용은 막 출발한 셈이다.


-유혹해 볼까?


마라천인혈정을 지닌 자신이 심법을 풀고 염기를 노출한다면 닿은 상대는 발정할 것이다. 염기를 살짝살짝 흘려 장원의 남녀들의 마음을 캐내거나 유도심문 하는데 재미를 들린 주부용은 이내 도리질 했다. 덕후를 상대로 그 짓했다가 궁둥이에 불이나 나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에휴, 답답한데. 가출이나 해볼까.”


주부용은 머리를 긁적이며 푸념했다. 머리를 헤집던 손길이 우뚝 멈춘다. 입가에 사이한 미소가 머금은 것도 동시였다.


“히히, 그 방법이 있었네. 달밤에 체조하러 갔다고 해볼까.”


언제 아팠냐는 듯 지팡이를 던진 주부용은 입맛을 다셨다. 무릎을 굽혀 자세를 낮춘다.


-경공술을 하려면 어떻게 하는 거였더라? 음, 족소음신경, 음곡혈부터 시작해서 용천혈까지 순환하라고 했지.


주부용의 눈이 야밤에 한층 붉어진다싶더니 머리카락이 살아있는 것처럼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진기 대신 마기를 운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덕후가 남들 앞에서는 절대 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고, 다른 이들도 주부용이 내공이 없거나 미약한 수준으로 알고 있다. 이 어두운 밤, 보는 이도 없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흔적을 보고 온다 해도 덕후가 어떻게든 무마해줄 것이다. 그렇게 후환거리를 멋대로 안겨준 주부용이 가볍게 발을 굴렀다.


-후아아아아앙!
-콰당!


1장 반 높이의 담만 가볍게 넘을 셈이었는데 그 배는 되는 높이를 오른 주부용은 허공에서 팔다리를 버둥거다 착지에 실패하여 흙바닥에 한바탕 구르고 말았다.


“에퉤퉤!”


입에 들어간 흙을 뱉으며 주부용은 얼른 몸을 일으켜다. 진기를 움직이는 방법이 미숙해서 저지른 실수다. 어째서 형욱이 경을 다루는 법을 체득한 다음에 내공을 싣는 법을 가르친다는 건지 퍼뜩 이해가 갔다.


“누구냐?”
“들켰다!”


주부용은 다시금 내력을 운용했다. 이번에는 위가 아니라 전면을 향해. 본능적으로 두 팔을 올려 머리를 보호했다. 풍압을 느끼며 몸이 섬전처럼 쏘아져나갔다. 쿵! 쿵! 쿵! 포탄처럼, 마검의 기운을 두른 주부용의 몸은 탄환이 되어 벽을 뚫으며 장원에 일직선으로 길을 내벼렸다. 열 뻔 째 담장을 허물고 나서야 주부용은 심가장을 나올 수 있었다. 바로 밑에 3장 너비의 수로가 있었으나 막강한 마기를 뒷받침한 달리기 관성 덕분에 단숨에 뛰어넘은 것이다.


"콜록! 콜록!“


머리 끝까지 회색 재를 뒤집어쓰고 옷은 너덜해진 주부용은 재치기를 했다. 고개를 들자 자신의 성과물이 보였다. 일직선으로 화려하게 길이 나 있고 안쪽에는 웅성거리는 소리와 함께 등이 어지러이 오간다.


“이런, 일 났네.”
 
주부용은 총총걸음으로 있던 장소를 벗어났다. 현장에서 잡히면 빼도 박도 못한다. 나중에 호된 꾸지람은 들어도, 여기서 없는 편이 덕후가 사태를 수습할 변명을 하는데 손톱만큼 도움이 될 것이다. 진땀을 빼며 변명을 할 덕후의 모습을 떠오르자 주부용은 베에~ 하고 한쪽 눈을 당기며 혀를 내밀었다.


“사랑을 주지 않는 자식, 특히 딸이라면 삐뚤어지는 법이죠.”


흥이다, 라는 심정으로 외친 주부용은 어둠의 밤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시각과 기억에 의지했던 풍경과 달리 생생한 풍경으로 와닿니 호기심에 걷히는 대로 쭉쭉 나아간다. 야트막한 높이의 민가를 거닐다가 어느덧 홍등紅燈의 거리에 당도했다. 겹겹이 늘어선 기루의 붉은 등 아래 거리에는 간드러진 여인의 호객 소리가 울려 퍼진다. 주부용은 혀를 찼다. 엄마가 멋모르고 무작정 피해다니 다가 파락호에게 강간당한 곳이 이 근방인 것을 떠올렸다. 엄마와 아빠가 처음 만난 곳.


주부용은 기분이 땅으로 떨어졌다. 엄마는 자신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사라졌다. 정확히는 동화를 선택했지만 자신의 삶과 엄마의 삶은 다르리라는 것을 상기한 탓이다. 주부용이 아니라 상관부용이라면 계속 천덕꾸러기 신세였을까, 아니면 아빠가 책임지기 위해 머리를 올려주었을까.


“그렇게 상냥한 성격이면 내가 가출을 안 하게.”


심주혜가 금보옥의 입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을 선고한 덕후다. 상관 부용이라해도 식객 이상의 대접과 관심을 받기는 어려우리라. 심하면 상관세가를 조종하는데 가차 없이 써먹을 지도 모른다.


“나도 다를 바 없나....”


귓가에 들리는 억눌린 비명을 아무런 감흥 없이 듣는다. 진원지는 기루의 뒷문 쪽, 쓰레기가 깔려있고 악취가 감도는 골목이다. 엄마가 그랬듯 누가 윤간당하는 중인가 보다 싶었다.


-잠깐이면 끝나는데 왜 그렇게 떽떽 거릴까.
“도....와...줘....”


미약한 신음은 욕정에 미친 거친 호흡 속에 파묻힌다. 부용은 짜증을 느끼면서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한 소녀가 바닥에 내동댕이 채저 있었고, 버둥거리는 사지를 두 사내가 꽉 누르고 있었다.


“흐흐흐, 가만히 있어. 이 년아, 어른의 세계를 가르쳐주겠다는 거야.”
“앞으로 무수하게 겪을 테니 미리 익숙해지라는 배려다.”


입에 역겨운 자지가 덜렁 거리고 벗겨진 아랫도리에는 거웃을 핥는 자지의 감촉에 소름이 끼친다. 목을 죄어오는 거친 손길에 진저리를 하던 소녀의 절박한 시선이 낯선 인물에 닿는다. 잠깐의 희망은 금방 절망으로 바뀌었다. 자신보다 두어 살 어려보이는 소녀였기 때문이었다. 부용은 어둠 속에서 짓눌린 소녀의 입 모양을 읽을 수 있었다.


-도.망.쳐.


반항하다가 움찔 멈춘 소녀의 반응에 파락호들도 뭔가 느낀 듯 입구 쪽을 본다.


“뭘 봐? 얼른 꺼져!”
“응? 저건 계집이잖아?”
“잡아!”


하체를 잡고 있던 파락호가 일어나 부용의 팔을 잡고는 억지로 끌어들였다.


“이거 횡재했는데! 번갈아가면서 하자고!”


깔려있던 소녀가 하체가 자유로워진 틈을 타 일으키려고 했지만, 복부에 거칠게 한 방 먹고 목을 눌리자 축 늘어졌다. 기절한 것은 아닌 듯 말간 눈물을 흘렸다.


“언제까지 할 거야?”


소녀의 죄책감 어린 눈물을 힐끗 보며 부용은 태연히 물었다. 남자들은 멈칫했으나 음소를 흘렸다.


“흐흐흐, 날이 밝을 때까지!”
“날이 밝으면 돌려보내 줘.”
“그러엄~”


순진하게 묻는 질문에 사내는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순순히 몸을 맡긴 데에 대한 약속을 지키리라 다짐했다. 단 집이 아니라 저 소녀와 함께 기루로. 아랫도리를 벗기고 얇은 방초 아래 동굴로 하물을 들이대는 순간,


“거짓말.”


요염한 음성과 함께 부용의 긴 팔이 목을 감았다. 그리고,


-우두두둑!


있을 수 없는 파열음과 함께 남자의 목이 360도 돌아갔다. 부르르 떨리는 사지 아래 부용의 하얀 팔은 쓰러지는 남자의 체중을 지탱하면서 열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구부려지더니 허리 가죽에 파고들더니 근육 째 뜯어냈다.


-으드드드득! 뜨득! 부우우욱!


가죽을 손톱으로 찢고 손가락을 후벼 긁어낸다. 엄청난 양의 피와 함께 척수와 갈비뼈 아래 꼬리 벼 중심으로 내장이 뭉클뭉클 쏟아져 나왔다. 그 광경을 지척거리의 가해자와 피해자는 덜덜 떨며 지켜보았다. 인간이 말 그대로 산 채로 “해체”되는 것을 보면서 혼백이 나가버리는 듯 했다.


한반신이 완전히 뜯겨지고 장기를 쏟아낸 남자는 볼품없이 쪼그라든 상태였다. 귀찮다는 듯 휙 던지자 시체는 벽에 철퍼덕 부딪치더니 주르륵 미끄러졌다. 전신을 피로 물들인 부용은 둘을 향해 히죽 웃었다. 어둠 속에서 인화燐火가 비치는 것처럼 섬뜩했다.


“이리 와.”


마녀의 음성에 남자는 공포와 혐오에 사로 잡혀 몸을 떨었다.


“이리 와.”


부용의 속삭임이 강제력이 적용하는 듯 남자의 몸은 주춤 거리면서 부용에게 다가갔다. 이상하게도 혈육으로 범벅이 된 소녀의 눈빛을 대하자 아랫도리가 주체 없이 팽팽해졌다. 염기에 심령이 마취되었음을 모르는 사내는 죽음의 헐떡임과 함께 파리만큼의 기대감을 가지며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다.


사내가 부용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소녀의 미성숙한 하얀 허벅지가 눈을 마비시켰다. 남자는 헉헉 거리며 부여잡았다. 생명줄을 붙잡은 것처럼 올려보자 부용은 잔혹한 미소를 지었다. 부용의 피에 젖은 손이 남자의 뒷머리를 쓰다듬더니 잡아당겼다. 그리고 반대편 손은 입을 벌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혀에 역한 맛이 느껴지더니 뱀이 들어가는 것처럼 목젖 아래를 통과하기 시작했다. 남자는 구역질과 함께 컥컥거리며 격렬한 신음을 토했지만 팔은 완고했다. 그르렁거리는 입 거품에 선홍빛 피가 배어 나왔다. 식도가 찢어진 것이다.


“보내줘?”


나른한 어조에 사내는 흐느꼈다. 뒷머리를 고정시키던 손이 목 아래 척수를 파고들자 남자의 사지가 축 늘어졌다. 부용은 위장까지 밀어 버린 손을 천천히 꺼냈다. 내출혈을 일으켰는지 시큼한 냄새 속에 악취가 감돌았다.


“하아....”


환희에 찬 음색을 토하고 부용은 이제야 소녀의 존재를 인식한듯 고개를 돌렸다. 핏빛 머리카락과 마찬가지로 혈안을 대하자 소녀는 후다닥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등에 닿는 것은 차가운 벽의 감촉이었다.


“아으....”


물끄러미 소녀를 응시하던 부용은 몸을 돌렸다. 왔던 길로 돌아가려고 하자, 이번에는 소녀 쪽에서 움직였다.


“잠깐만요!”


부용의 몸이 돌려지자 소녀는 멈칫했다.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반사적으로 부른 것이었다. 턱 밑이 덜덜 떨리고 오금이 떨리는데 소녀는 필사적으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어떻게든 말을 하려고 했다.


“으, 은공께서 소, 소녀를 구해주시어 가,가, 감사합니다.”


선혈과 악취로 엉망이 된 바닥 위에 소녀는 무릎을 꿇고 오체투지를 했다. 저벅, 부용의 발걸음이 이쪽으로 가까워지자 소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벌벌 떨었다. 무언가 목 아래를 쓰다듬자 소녀는 비명을 지르며 튕기듯이 상체를 일으켰다.


“히약!”


쉬이이이....하고 뜨끈한 것이 하체를 적셨다. 오줌보가 극한의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터진 것이다. 상체를 일으킨 소녀의 얼굴은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었다. 가만히 뜯어보면 이지적인 용모에 약간은 도도한 티가 나는 소녀였으나 지금은 그럴 경황이 아닌듯 무방비로 무너진 상태였다.


부용은 싱긋 웃었다. 심법을 복원시켜 마성을 제어했기 때문에 염기로 소녀를 홀리지는 않았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 오늘 일은 뭐....지나가는 개한테 물렸다 치고.”
“으, 은공...”
“왜?”
“여, 염치없지만 부탁하나만 들어주세요.”


부용은 이런 하고 한숨을 터뜨렸다. 책임을 지라 이것인가. 자신이 덕후더러 아빠라고 불렀을 때 이와 비슷한 심정이었을까. 그러나 소녀의 입에 나온 것을 뜻밖의 소리였다.


“푸, 품에 지닌 무기가 있으면 천녀에게 주십시요.”
“하아? 왜?”
“은공께서 혐의를 쓰실 수 있습니다.”
“혐의랄 것 까지야....나 살인자 맞는데?”


쭈그려 앉으며 양 손으로 턱을 괸 채 해맑게 웃으니 소녀도 입이 막혔다.


“저, 저로 인해서 자초한 것이니 제, 제가 감당 하겠습니다. 천녀가 관아에 가서 이들을 죽였다고 하, 하겠습니다.”
“음....”


부용은 미심쩍다는 듯이 소녀를 위아래 훑어본다. 곱상하고 처녀 특유의 활력이 있지만 무武와 인연이 멀어 보이는 체형이다.


“아서. 네 힘으로는 아무리 용을 써도 이런 결과를 만들기 힘들어. 눈썰미 있는 검시관이라면 천생신력을 지닌 자나 야수가 했다고 결론을 지을 수밖에 없을 걸.”


부용이 괜히 무식하게 생가죽을 찢고 내장을 끄집어낸 게 아니다. 어설프게 무공 흔적을 남기느니 인간을 초월한 괴력으로 산산조각내버린 것이다. 그리고.....그 편이 느낌이 환희를 느끼게 했고.


“걱정 해준 건 고마워. 그쪽에겐 악몽이겠지만, 괜한 짓은 안한 것 같아. 신고하려면 신고해도 상관없어.”


아빠한테 엄청 깨지겠지만 어떻게든 무마해줄 것이다. 이왕 폐를 끼친다면 확실히 해버리자는 치기가 생겼다. 어깨를 펴고 장담하는 모습에 소녀는 어색하게 웃었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 소녀를 두고 부용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깨달은 것이 있는지 손가락을 튕겼다.


“혼자 돌아가는 게 무서워? 집까지 바래다 줄게.”
“집은...돌아갈 곳이 없어요. 팔려나온 거라서요.”


소녀의 얼굴이 잔뜩 흐려진다. 그러자 부용은 신기한 것을 보듯이 소녀 주위를 빙빙 돌았다.


“헤에....네가 말로만 듣던 기녀구나.”
“기, 기녀는 아니에요! 억지로 납치된 거예요!”


구경거리가 된 소녀는 발끈해서 외쳤다. 그러다 합 하고 입을 다물었다. 지금 괴물 앞에서 죽지 못해서 안달이 났나. 나 미쳤나 봐. 애당초 제 발로 물러나려는 것을 보은하겠다고 붙잡은 것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흐음....딱히 갈 곳이 없다면...아 이거.”


부용은 품에서 무언가를 잡은 듯이 꺼내 던졌다. 엉겁결에 받은 소녀는 손길로 음각된 부분을 감지하고는 패찰임을 깨달았다.


“덕왕부의....?”
“글자는 알아볼 수 있네? 하오문에 그걸 보여주고 궁녀 모집에 응시하고자 한다고 그래.”


소월하가 양수마를 모으는 것은 궁녀 후보를 위해서이니, 내궁의 업무를 맡아보는 세휘와 합작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관계자와 여인들만 아는 극비 사항이지만, 부용은 앙녀라는 특수성 때문에 엿들 수 있었다. 패찰과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번갈아보는 소녀를 두고 부용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정말 안녕이다. 다시는 잡아먹히지는 말라고.”
“으, 은공 성함이라도!”
“알 거 없어. 나와는 만날 일도 없을 테니까.”


무정하게 멀어지는 부용의 등을 보며 소녀는 벽에 기대어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부용의 신형이 사라지자 도로 주저앉고 말았다. 며칠 동안 식사도 못한 대다가 오늘 죽음의 경계까지 갔다왔으니 긴장이 극적으로 풀어진 것이다.


“소녀는 석향이라고 해요....”


쓰레기와 오물, 피와 죽음으로 범벅이 된 누추한 골목의 풍경이었으나 소녀는 그 어느 때보다 편한 안락감으로 잠들 수 있었다. 다음 날, 참상을 보고 토악질을 하겠지만, 당장은 어둠이 추한 풍경으로부터 소녀의 심신을 유리시켜주리라.


 


 


 


부전여전(....) 아무래도 이쪽은 하렘은 힘드니 백합이라도(야)...는 아니고 프랜드 만들기.  어쨌든, 이걸로 5월 분 입니다.(도주)


우희선 편


아케치 미쓰히데 :  일찍이 유랑을 거치며 사무라이의 교양과 함께 당시로는 첨단 병기이었던 철포술을 익혔습니다. 오다 노부나가의 교토 상경을 인연으로 재능을 인정받아 오다 군의 핵심(히데요시, 가쓰이에, 가즈마스, 나가히데) 에 들 정도로 무훈을 세웠습니다. 단바 평정의 공적으로 다이묘로 출세합니다. 소심할 정도로 침착하고 지적인 성격이라 항상 불같은 성정의 노부나가와 함께 잘 맞지 않았던 듯, 여러 번 충돌합니다. 맹방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접대역에서 갑자기 해체되고, 영토 몰수 처분에 가까운 이전을 명령 받으며 모리와 싸움 중인 라이벌 히데요시 휘하로 배속되자 결국은 모반을 결행, 교토의 혼노지(절 이름)에 머물고 있던 노부나가를 급습하여 죽입니다. 이게 “혼노지의 변”입니다.(후일 일본에서 혼노지는 내부의 적이란 의미로 쓰입니다.) 모반에는 성공했지만 지지를 얻는데는 실패했고, 곧이어 주코쿠에 철수한 원숭이의 공격으로 한 바탕의 꿈으로 돌아갑니다.


모리 모토나리 : 주코쿠의 아키 태생. 5세 때에 어머니를, 11세 때에 아버지를 잃고 이후 가신의 비호 아래에서 성장했습니다. 가독쟁탈전을 통해 당주가 되고 성년이 된 후 주코쿠의 패권을 두고 싸우던 두 강국, 아마고 vs 오우치-스에 항쟁을 틈타 전쟁과 외교, 모략을 적극 활용, 영국을 야금야금 확대하여 끝내는 두 가문을 몰락시킵니다. 고희에 주코쿠의 패자로 등극합니다. 모토나리는 선배 격인 아마고 츠네히사의 전례를 밟지 않기 위해, 적손을 제외한 아들 둘을 분가시켜 모리 가문의 두 기둥으로 삼습니다.(毛利の兩川) 환갑이 넘어서 아이를 볼 만큼 자손을 번성시키는데 힘을 썼고 이러한 안배 덕분에, 모리 일족은 모토나리 사후 많은 파란을 겪지만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살아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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