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806호 전편 (1), (2), (3), (4)
806호
전편
(1)
평일의 낮.
전차 안은 자리가 남아 혼잡하지 않았다.
봄의 따뜻한 햇볕아래 느긋한 분위기가 감도는 차내에서, 손에 들고 있는 팜플렛을 응시하는
아름다운 모녀가 있었다.
「역시 어디든 비싸네요. 토쿄의 방값은.」
모친 쪽이 한숨소리를 섞어 중얼거린다.
딸 쪽은 아무 말 없이 팔플렛의 리스트를 대충 훑어보고 있었다.
오늘 부동산에서 받아 온 것이다.
딸의 이름은 오오사와 치아키.
바로 요전날, 도내의 대학 합격 통지를 받은 바로 직후였다.
그 대학으로 진학한다면, 여자인 딸 혼자 상경시키는 일이 된다.
당연히 그녀의 부모도 반대하였다.
하지만 치아키의 열의에 져서 결국은 독신 생활을 허락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은 어머니와 둘이서 앞으로 살 방을 구할 겸 상경한 것이다.
그러나 두 모녀의 미려한 얼굴에는 희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역시, 처음 방문했던 아파트일까.」
「안되요, 그런 집. 왠지 불결한 것들이 있을 것 같아. 여자아이니까, 조금 비싸더라도 괜찮은
방이 아니면 걱정스러운걸.」
「……」
치아키에게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부친은 평번한 회사원이고 가정이 그만큼 유복한 집인 것도 아니다.
학비 외에 집세나 생활비까지 포함한다면 송금해야하는 금액은 상당한 액수가 되어버린다.
치아키는 그것이 미안했다.
동경하고 있었던 도시에서의 생활.
시작하기 전부터 좌절할 것만 같았다.
「어쨌든, 다음 집을 찾아가보자...」
치아키는 앙증맞은 주먹을 꼭 쥐며, 자기 자신을 격려하듯 그렇게 말했다.
(2)
치아키와 모친이 그 맨션에 겨우 도착했을 떄는 벌써 황혼이 질 무렵이었다.
「정말로.... 여기?」
「스타 코트 우에다... 틀림없는데...」
문에 붙어있는 명패를 보며 치아키는 말했다.
「그렇지만 여긴......」
두 명은 그 건물을 올려보았다.
지금까지 봐 온 싸구려 아파트와는 완전히 다른 호화로운 고급 맨션.
역에서도 가깝고 교통도 편리한 최상의 지역적 조건.
맨션의 앞은 푸른 정원이 꾸며져 있었다.
주위에 벚나무가 무성하게 심어져 있고, 현관까지 이어지는 길에는 잔디가 깨끗하게 깔려있다.
게다가 팜플렛에 따르면 이곳은 여성 전용 맨션이었다.
「뭔가 잘못된 거 아닐까? 이런 곳이 이렇게 싼 집세일 리가 없어요.」
써있는 대로라면 집세는 지금까지 봐 왔던 낡은 아파트와 다를바가 없었다.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어머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갑작스래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그곳에는 젊은 여성이 서 있었다.
「미, 미인이다...」
그 여성을 보고 치아키는 마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단정하고 세련된 슈트에 품위있는 엷은 화장.
반듯한 이목구비와 체형, 마치 모델같다.
그녀의 모습은 자신이 동경하는 도시의 여성 그 자체였다.
「방을 구하고 계신가요? 전, 여기 맨션의 관리인을 맡고 있는 하마다 카오리라고 합니다.」
청결해보이는 감색의 슈트에 몸을 감싸고 있는 카오리는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윤기있는 칠흑의 머리카락이 머리의 움직임에 맞추어 부드럽게 흘러내린다.
「저, 여기의 집세... 정말 이 팜플랫대로 인가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모친이 성급하게 질문을 던진다.
그 손에 들려있는 팜플랫을 들여다보고, 카오리는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상당히 싸네요.」
「오너의 의사에 따라 특별히 낮은 가격으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모친과 카오리.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치아키는 멍하니 카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도시에서는 이렇게도 젊고 아름다운 미녀가 맨션의 관리인을 하고 있는 것일까.
자신의 외모가 떨어지는 편이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지금 자신의 앞에 서있는 이 사람
과 비교한다면 자신은 촌스러운 시골 처녀나 다름 없을 것이다.
문득 카오리의 시선을 깨달았다.
조용히 자신 쪽을 바라보고 있다.
심장이 크게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자신을 쳐다보는 것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무심코 뺨을 붉히고 만다.
「......」
카오리의 눈동자에는 흥미로워하는, 무언가 재미있는 일을 찾아냈을 때의 그런 광채가 떠올라
있었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치아키는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만다.
「...정확히 지금 방 하나가 남아있습니다. 만약 괜찮으시겠다면 방을 둘러보시지 않으시겠습니
까?」
카오리는 모친 쪽을 다시 향하며 말했다.
「예? 예! 꼭.」
그 제안에 모친은 두말 할 것 없이 동의한다.
「저....」
대화를 듣고 있었는지, 치아키 모녀와 카오리 사이에 끼어들어 말을 건네오는 여성이 있었다.
꽤 뚱뚱한 체형이지만 나이는 치아키와 비슷할 또래일까.
같은 팜플랫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니, 역시 방을 구하고 있는 것 같다.
「방을 구하러 오신건가요? 죄송합니다. 지금 방이 모두 차버려서요.」
카오리는 냉정하게 거절한다.
결국 그 여성은 카오리의 무언의 재촉에 돌아가고 말았다.
「저기.. 저희들 아직 이쪽으로 결정한 것은 아닌데요.」
치아키는 당황하며 카오리에게 말했다.
카오리는 마치 자신들이 이미 계약을 맺은 거나 다름없다는 듯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아직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었다.
아마도 자신과 비슷한 이유로 찾아왔었을 그 여성에게 미안했다.
「괜찮아요.」
카오리는 그런 치아키를 상냥하게 다독였다.
「방을 구경하면 반드시 마음에 들거에요. 안내하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세요.」
카오리는 그렇게 단언하고 치아키들을 안내하며 앞장서 걸어간다.
모친이 그 뒤를 따른다.
두 명의 등을 보며 당분간 주저하고 있었지만, 결국은 치아키도 그 뒤를 따라간다.
맨션의 옥상에는 한 마리의 까마귀가 앉아 있었다.
까마귀는 그 검은 눈동자로 세 명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잔디 위에 가늘고 길게 늘어진 3개의 그림자는 천천히 맨션 안으로 사라져 갔다.
(3)
「사랑스러운 따님이네요.」
「이번에 진학 문제로 상경하게 되었습니다만, 아직도 알맹이는 아이나 다름없어서...」
자신보다 몇발자국 앞을 걸어가면서, 카오리와 모친은 자신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
었다.
조금 부끄러운 심정이었다.
「치아키는 사랑스러우니까 자신을 가져도 될거에요.」
자주 친구들 사이에서 그런 이야기는 들어왔었다.
실제로 고백받았던 일도 꽤 많았다.
치아키에게는 이미 예전부터 훨씬 좋아했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모두 거절해왔지만.
그는 치아키의 한학년 선배였다.
내성적인 자신은 고백조차 하지 못했고, 그가 졸업하면서 그냥 그렇게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
었다.
치아키가 도쿄에서 독신 생활을 하려고 마음먹은 것도, 그런 유약한 자신을 바꾸고 싶다고 생
각했기 때문이었다.
카오리는 치아키들에게 맨션 안을 안내해 주었다.
안은 상상 이상으로 호화롭게 장식되어있었다.
1층의 엔트런스 로비는 분위기있는 양옥식 벽돌로 타일이 깔려있고, 그 안쪽의 엘리베이터 홀
에는 밝게 꾸며진 안뜰까지 있다.
바닥에 설치되있는 따뜻해 보이는 조명이 희미하게 근처를 비추고 있었다.
안온한 분위기.
2층은 공동으로 사용하는 커뮤니티 스페이스가 있고, 대형TV나 키친이 있는 파티 룸이 준비되
어 있다.
카오리의 설명으로는 매 주 한번씩은 주민들이 모여 파티가 열리는 것 같다.
최상층인 9층에는 한쪽 면이 유리로 만들어진 대중목욕탕이 준비되어 있었다.
「대단하네.」
매우 호화로운 구조에 압도당해버린 모녀에게 카오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했다.
「그러면, 이제 기거하게 될 방을 안내할께요.」
서큐리티 락이 달려있는 현관을 들어서자 그 안쪽의 방은 널찍한 크기의 2LDK였다.
각각의 방에는 넓은 크로젯을 비치할 수 있고 천정도 높다.
완전 방음인 벽에 공기조절도 완비되어 있다.
창의 방향은 남향이라 채광도 문제가 없었다.
「혼자서 사는 것이 과분할 정도네......」
「치아키. 이것 봐!」
안 쪽의 침실에서부터 모친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침실 중앙에는 침대가 비치되어 있었다.
유럽풍의 호화로운 침대다.
어머니는 기쁜듯이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특대형의 침대는 양손을 벌려도 구석에서 구석까지 닿지 않았다.
여성이 혼자서 자기엔 너무나도 충분했다. 아니 마치 2명이 사용하기 적합하다고 생각될 정도
의 크기였다.
「마치 호텔같구나. 이런 침대에서 잘 수 있다니... 치아키 대신에 엄마가 여기에서 살까?」
감탄이 섞인 모친의 말에 치아키 역시 완전히 동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방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도 사치스러운 일일 것이다.
카오리는 커텐을 열고 베란다의 문도 열었다.
방과 마찬가지로 널찍한 베란다의 끝에서는 석양에 물드는 도시의 경치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사진과도 같은 풍경에 무심고 한숨이 새어나온다.
「어떻습니까? 마음에 드셨습니까.」
「예! 물론이에요. 그런데, 치아키?」
「으, 응?」
카오리가 보면 마음에 든다 라고 말했던 것도, 지금이라면 납득할 수 있다.
이보다 좋은 조건의 방 따위, 절대로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로 훌륭한 방을 본 이상 예전에 알아봤던 아파트 따위는 절대 고려할 수조차 없었다.
백명이명 백명 다, 이 맨션을 선택할 것이 분명하다.
카오리는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숙였다.
「마음에 들었다니 기쁘네요. 반드시 멋진 생활을 보낼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4)
「치아키. 이거 그쪽에 놓아줄래?」
모친이 골판지로부터 꺼낸 탁상시계를 받는다.
모친은 마치 자신이 이사하는 것 처럼 의욕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입학식으로부터 3일전.
치아키는 어수선하게 상경했다.
물론 그 장소는 「스타 코트 우에다」였다.
「역시, 방이 넓으니 좋구나. 조금 짐이 너무 많은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깜끔하게 들어가네.」
모친의 목소리는 활기를 띠고 있었다.
「응, 그러네.」
조금씩 사유물이 방을 채워간다.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다는 흥분에 치아키는 취해있었다.
「게다가 여성 전용 맨션이라는 점이 또 안심이야. 아버지는 올 수 없다고 애석해하고 있었지
만...... 치아키, 이제 밖에 짐은 없었어? 조금 보고 올께.」
「네.」
「806호실.」
그것이 치아키의 방의 번호였다.
치아키가 현관을 나왔을 때, 마침 옆 집의 거주자가 막 돌아오고 있었다.
「어, 이사?」
「아, 네. 처음 뵙겠습니다. 옆 집인 806호실에 새로 이사해온 오오사와 치아키입니다. 아직 인
사도 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다소곳하게 치아키는 고개를 숙였다.
「좋아, 좋아. 그렇게 고지식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그렇게 말하며 옆집의 거주자는 활기차게 웃었다. 하얀 이빨이 눈부셨다.
「나는 805호실의 무라타 타마키. 잘 부탁해.」
타마키도 카오리와는 타입이 다르지만, 틀림없이 미인이라고 말해도 좋을 기량의 소유자다. 무
언가 스포츠를 하고 있는지, 햇볕에 그을린 건강한 피부에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 커
다란 눈동자는 강한 빛을 품은채 똑바로 치아키를 응시하고 있었다.
「치아키는 대학생?」
「네. 이번 년도부터 S대에 다니게 되었어요.」
「에... 그래? 우연이네. 나도 S대. 2학년이야.」
「아-! 정말인가요?」
「음- 그럼 치아키는 내 후배가 되는 건가? 모르는 것이 있으면 뭐든지 물어봐. 치아키.」
시원시원한 외모만큼 성격도 시원시원한 매우 좋은 사람이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치아키는 밝은 미소를 띄우며 다시 한번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