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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 수라기(獸羅記) 51번째 올림

(2)
스읏..
“커억!”
무엇인가가 예리한 물체가 어딘가를 파고 드는 듯한 기성이 들리더니 이어지는 사람의 비명소리가 형산의 한 봉우리 선라봉을 잔잔히 흔들었다.

석자가 채 되지 않는 푸른 검신이 영롱한 빛을 희미한 새벽의 미광(微光)에 반사시켰다. 틀림없이 병기, 그것도 검은 인명을 살상하기 위하여 개발되고 발전된 터, 지금 희디흰 아름다운 손에 들린 검, 청하(靑霞)라 명명된 검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간밤에 황보세가와의 접전에서 악서령이 휘두른 첫 검초에 두 명의 중상자가 생겼다. 그 둘의 중상을 입은 자는 재빠른 황보세가의 다른 이들에게 응급처치를 받고 한쪽 구석에서 의식을 잃은 상태로 있었다. 그리곤 밤이 지나고 황보세가의 정예들은 황보두균을 비롯, 중상을 입은 둘을 제외하고는 전원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창백히 질린 안색을 한 무사 한명이 누워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든 뒤로 물러나려고 하였다. 저 앞에 무심히 자신을 향해 검을 늘어 뜨리고 다가오는 아름다운 여자. 그러나 그의 눈가에 들어오는 모습은 나찰이요, 사신의 모습이었다.
“악…악소저. 제발..제발 살려주십시오.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제발..제발..커어..”
크게 부릅뜨여진 두 눈, 부들 부들 떨면서 검을 쥔 여인 악서령을 움켜잡으며 손을 뻗던 사내가 급기야 눈을 뜬채 고개를 아래로 떨구었다.
츠으읏..
사내의 목에서 검을 빼낸 악서령은 주변의 천 조가리를 들더니 검신을 가볍게 한번 닦은 후 어느새 단정히 갖추어 입은 하얀 백라의를 날리면서 아환에게 다시 돌아왔다.
“마지막 남은 입을 없앴어요.”
“..”
고개를 끄덕이던 아환, 장내를 둘러보았다. 그런 그의 눈이 일순 반짝였다. 황보두균이 쓰러져 있던 자리에 황보두균의 시체가 보이질 않았다. 그 자리에 남아 있는 것은 황보두균의 것이라 짐작되는 옷가지와 몇가지 소지품들..그리고 새빨간 핏물이 황보두균을 대신해 고여있었다. 그와 함께 사혈장을 익혔던 황보세가의 정예중의 대장 격인 사내역시 두 손이 사라지고 점차 그 부위부터 녹아내리는 처참한 모습이 아환의 눈에 들어왔다.
“사혈독기 때문입니다. 사혈공을 익힌 자들은 죽은 후 저런 꼴이 된다고 하더군요.”
“사혈공? 사혈장 말고 또 다른 계열의 무공이 있나? 설명 좀 해봐.”
“예. 사혈공은…”
악서령은 자신이 아는 바를 아환에게 충실하게 설명을 하였으며 아환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세밀한 부분까지 악서령은 최대한 자신의 지식을 짜내어서 아환의 의문을 충족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고 그 사혈공은 크게 장법과 검공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허나 무엇보다도 사혈공이 무림의 사람들에게 금기시된 이유가 몽고의 무예라는 것에 있습니다.”
“몽고의 무예?”
“예. 현 원나라에 의하여 송이 멸망하기전이지요. 백이십여년전 세외에서 무서운 무공을 사용하는 이들이 강호에 나타났습니다. 흑천사(黑天師)와 그의 좌우 쌍위인 사혈마군(死血魔君), 음양귀(陰陽鬼)라 하던 자들이지요. 스스로를 몽고 출신이라 말하던 이 세 괴인들은 각파를 돌아다니면서 비무를 청했지요. 그리고 그 결과는 암담했습니다. 오파를 비롯하여 내노라하는 세가들과 기타 여러 강대한 문파들이 이들의 손에 부지기수로 봉문을 당했으니까요. 이들은 중원을 평한다면서 은거한 기인들까지 찾아다니면서 거의 삼년에 걸친 비무행을 했지요. 그동안 패배를 몰랐고 마침내 전 중원이 이들의 손에 굴복을 할 지경이었지요. 그러다 아직까지 무림의 불가사의로 꼽히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바로 흑천사와 사혈마군이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지요. 그 이유는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장소가 온통 파헤쳐지고 난장판이 된것으로 보아 초절한 무위를 지닌 이들이 격투를 벌인 것으로 짐작되기만 할뿐..여하튼 그들의 무림행은 멈추었고 한동안이나마 무림은 평안을 되찾았지요.”
“그럼 음양귀는?”
“그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 후 오랫동안 그의 자취가 발견되지 않아 사람들은 그 역시 죽지 않았나 여기었지만 그의 기공이 워낙 특이하고 무서워서..”
“기공(寄功)?”
“예. 앞서 말씀드린 사혈공은 사혈마군의 독문 무공이었습니다. 그리고 흑천사는 기검(氣劍)이라는 놀라운 무예를 선보였지요. 일종의 강기로 펼쳐내는 심검(心劍)입니다. 누구도 이 흑천사를 못막았다 합니다. 그리고 음양귀는 그의 괴 신체에 걸맞는 무공을 익혀 오히려 앞선 둘보다 무예 수준을 떨어지지만 그 공포스러운 악명이 더 높은 인물입니다.
음양귀는 음양혼원신(陰陽混原身)이라는 어찌 보면 천형이라 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한 몸에 남녀의 성기가 혼재되어 있었던 거지요. 그리하여 태어나면서 기형으로 인한 괴물로 취급받던 그가 어떤 기연으로 인하여 성(性)을 마음대로 조정을 할 수가 있게 되고 그로 인하여 음양계열의 무예를 대성하여 일가를 이루었다고 전해집니다. 또한 각종 사술과 이술에 능하여 그를 보았던 자들은 모두 그가 어떤 모습인지 형용하는 것에 각각 틀리게 묘사를 합니다. 이런 연유로 그에 대한 공포심은 오히려 다른 두 인물보다 더 심한 편이지요. 아직까지 그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태니까요. 물론 백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인세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짐작정도만..”
“그래? 흐음..음양귀라..”
“이상입니다.”
“그럼 흑천사와 사혈마군은?”
“예?”
“흑천사와 사혈마군의 출신과정은?”
“아! 그들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왜?”
“그것은 저도 잘..”
“기이한 일이군. 오히려 가장 비밀스러워야 할 인물의 출신은 그토록 자세히 알려져 있고, 오히려 그보다 훨씬 이름을 날릴만한 인물들의 과거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니..흐음..”
“그것은 아마 살아남은 음양귀의 공포가 커서 중원의 각 문파에서 그를 알아 보려고 한 것이 아닐까요?”
“과연 그럴까?….”
아환은 말을 흐릿하게 맺더니 잠시 생각에 잠겨들었다. 거의 차한잔 마실시간이 흘러서야 아환은 생각을 정리하고 시체들과 잔해들을 한곳에 모은 후 뒷처리를 마치고 대략 반시진이 흐른 후 악서령과 함께 산을 내려갔다.

객잔은 아침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부산하였다. 남궁비를 비롯하여 사화, 그리고 어제 사화지연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여러 탁자에 삼삼오오 무리를 이루어 조반을 들고 있었다. 개중에는 남궁비와 악서령을 제외한 나머지 삼화가 함께 한 탁자에 연신 눈길을 보내면서 그들의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자들도 꽤 있었다.
차르르르..
객점의 주렴이 걷히고 악서령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문을 들어섰다. 어느새 옷을 갈아 입었는지 연한 주황색 비단 궁장을 갖추어 입고 주렴을 걷었다. 뒤이어 따라 들어오는 아환, 중인들은 주렴 소리에 눈을 돌리다 악서령을 발견하고 수군거리며 악서령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러면서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온 아환에게도 시선을 주면서 악서령과 아환의 관계를 호기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어서오시오. 주형. 악소저. 아침 산책을 다녀 오시는 중이시오? 조반을 같이 하자고 연락을 드렸는데 객실에 계시지 않는다 하기에..”
“예. 잠시 산책을 다녀왔어요.”
악서령이 짧게 남궁비의 말을 받고는 한쪽의 탁자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궁비와 유가형등의 자리가 충분한데도 다른 자리로 몸을 돌리자 제갈수란이 합석을 청하였다.
“악언니, 이리로 오셔서 같이 앉으시지요? 주소협도 이쪽으로 오세요.”
“그러지요.”
아환이 대답을 하고는 그쪽으로 다가가서 빈자리에 앉자 뒤를 이어 악서령도 당연한 듯 따라와서 아환의 옆자리에 사뿐히 둔부를 붙였다. 그 모습을 남궁비등을 포함, 객잔안의 여러 인물들이 눈을 반짝이며 쳐다보았다.
간단히 몇가지 음식을 주문한 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던 중 대화가 이어졌다.
“편히 쉬셨습니까? 악소저. 그런데 어제 오늘 사이에 기도가 많이 변한듯 싶습니다. 어떤 기연이라도 얻으셨는지요.”
“그래요, 언니. 정말 어제와는 확연히 달라보여요. 좋은 일이 있었어요?”
아닌게 아니라 악서령에게서 풍겨나오는 기도가 어제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다소 불안정한 모습에 지쳐보이는 악서령의 신태가 아침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눈이 고정되고 잘 가라앉아 있었으며 전신에서 풍기던 화사한 밝은 기도가 은연한 기세로 변화되었고 동작하나하나가 잘 절제되어 있음이 역력히 드러났다. 게다가 그 아름다운 교구에서는 미약하나마 무형지기마저 감지되는 실정이니 어찌 후지기수 중 제일이라 칭함받는 이들이 모를 수 있으랴?
기실 악서령은 어젯밤의 일을 겪은 후 심신상에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 아환의 진기와 음양신단의 호력으로 인하여 내기의 증진도 이루어 졌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인 심마로 인하여 . 끊임없이 흔들리고 안정되어 있지 않던 마음이 하나로 결정이 되었다. 그로 인하여 악서령은 한단계 무위를 진일보시킬 수 있어 이제는 화경의 단계라 해도 무방할 정도의 경지에 올라설 수 있었다. 이는 당장 이 자리에 있는 남궁비와 검을 나누더라도 능히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별다른 것은 없었어요. 단지 내 자신의 위치를 확실하게 했을뿐..”
“위치? 그게 무슨 말이예요, 언니?”
“말그대로야.”
제갈수란이 악서령의 말에 그 총명한 머리로도 이해가 잘되지 않는 듯이 재차 질문을 해대었지만 악서령은 더 이상의 말을 하고 싶지 않은지 짧게 말을 맺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모습에 제갈수란을 비롯 세인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악서령의 태도에 강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평소 여인들이 모이면 세세한 일상사까지 수다로 풀어 놓던 사이들이었다. 악서령 역시 사화들이 모이면 재잘거리며 시시콜콜한 것가지 다 털어놓고 웃음꽃을 피우곤 하였었는데 갑자기 변한 악서령의 모습이 제갈수란과 유가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궁형, 그런데 수형이 보이지 않는 군요.”
“아! 수형은 급한 일이 있다고 해서 어제 저녁에 천궁의 귀인과 함께 형산파로 들어갔지요. 듣자하니 근래에 이 곳에 유명사신이 나타나서 그것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형산파에서 오파에 서신을 보내어 협조를 요청하였고 무당과 곤륜에서 나섰다고 들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황보형도 보이지 않는 군요. 세가로 돌아갔나…”
“…”
어제 유명사신을 만난 적이 있는 아환은 입을 다물고 묵묵히 남궁비의 말을 들었다. 시선도 돌리지 않고 전혀 얼굴에 표정이 나타나 있지 않는 모습을 보고는 옆에 앉아 있던 제갈수란의 눈가에 이채가 맴돌았다.
아환의 아무런 대답의 없음에 장내에 일순 어색한 침묵이 돌았다. 그때 음식이 나왔고 이미 식사를 마친 다른 이들과는 달리 아환과 악서령은 젓가락을 들고 음식에 가져갔다. 그런 아환과 악서령을 중인들은 아무런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하였다.
얼마간의 식사시간이 흐른뒤 사람들은 찻잔을 들어 입에 가져가면서 환담을 다시 시작하였다.
“주형, 그런데 주형은 어디 출신이시오?”
“그냥 여기저기 떠돌아다녀서 특별히 어디라 말씀드릴 것은 없소.”
“유년기에 고생을 많이 하시었군요.”
“고생이라..”
말끝을 흐리는 아환, 남궁비는 급히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주형은 형산에 와 보신적이 있소?”
“이번이 처음이오.”
“그럼 오신 김에 형산을 한번 둘러 보지 않겠소? 여러 청년 영웅들과의 친교도 나눌 겸 형산에 한번 오릅시다.”
아환이 남궁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말고 깊어보이는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열망이랄까? 여하튼 아환에게 이상할 정도의 간절한 감정이 전달되었다. 내심 기이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환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미세하게 남궁비의 안색이 희색을 띄었다. 내놓고 반가운 표정을 짓지는 않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상당히 반색한다는 느낌이었다. 남궁비외에 아환의 말을 듣고 얼굴색과 눈빛을 변화시킨 것은 유가형과 제갈수란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기대감이랄까? 아니면..

식사를 마친후 중인들은 각자의 객실에 들어가서 가볍게 짐을 정리한 후 모여서 산을 향했다. 일행은 아환을 비롯하여 남궁비와 사화, 그리고 뒤따라 몇몇의 군웅들이 딴청을 피우며 아환등을 좇았다.
중인들은 어제 올랐던 선라봉쪽으로 일단 행보를 정했다. 어차피 가벼운 산행을 하기로 마음을 먹은 만큼 굳이 험한 산세를 고를 필요는 없었고 또 대부분의 산들이 그렇듯이 봉우리들이 서로 이어지듯 되어 있어 누가 정한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선라봉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두 한가닥은 한다하는 무림인들인지라 산을 오르는 것은 그리 큰 불편이 없었다. 약간의 진기를 운용하는 경신술만으로도 산길을 걷는 것은 무난했기에 그리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등산을 군중들은 즐겼다.
산을 오르면서 사화를 비롯한 여인들, 사화와 또 군웅중의 여인 셋이 더 합류하여 재잘거리면서 밝은 교성을 발했다. 주로 말을 하는 것은 새로 합류한 여인, 명문가의 후예들이었으며 유가형과 악서령, 석영은 가볍게 대답을 할뿐 그들과 적극적으로 말을 나누는 것은 제갈수란밖에 없었다.
사내들 역시 여인들과 다를 바 없었다. 아환과 남궁비 둘이 나란히 걷고 있다가 어느새 그들의 뒤를 좇은 사내들이 합류하여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었다. 그들은 평소 흠모하던 남궁비와 동행한다는 것에 흥분이 되는지 상기된 얼굴로 열띤 음성을 토해내었다. 그때마다 남궁비는 가볍게 대꾸를 하거나 고개를 끄덕여 응대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아환에게도 몇 차례 질문과 대화가 들어왔으나 아환이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그에게 신경을 끄고서 남궁비에게 집중적으로 말을 붙이는 형편이었다.
대화라봐야 별 것 없었다. 여자들은 산세의 기경에 탄성을 터뜨리면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고 소소한 일상사에 대하여 교소를 터뜨리면서 수다를 해대었다. 그러면서 은근한 자기의 학식과 무공등에 대한 자랑이나 자기 배경에 대한 우월감등이 대화속에 배어나왔다. 이는 사내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들 자기 자랑이나 무용담, 그리고 무림의 정세에 대하여 의견을 피력하는 등 소위 말하는 잘난체하기에 바쁜 사람들이었다.
그 중 지금은 몰락하여 간간히 명맥만 이어가는 백리세가의 백홍검 백리석이라는 자는 거의 노골적으로 자신의 세가와 과거 백리세가가 무림의 일파로서 융성할 때를 지속적으로 설파해대는데 아환은 질릴 정도였다. 그럼에도 남궁비는 환하게 웃음을 지으며 일일히 그의 말을 다 받아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걸음을 걷다가 불쑥 아환이 남궁비에게 말을 건네었다.
“남궁형. 축융봉은 어디요?”
“아, 축융봉은 저쪽 길로 가면 되지요, 지금 오르고 있는 선라봉과 이웃해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왜 그쪽으로 가시겠습니까?”
“형산제일봉이라 들어서 한번 갔으면 좋겠소만..”
“그럼 그러지요. 축융봉으로 가십시다.”
다른 이들에게는 짧게 대답하던 남궁비가 안면에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아환의 제의에 곧바로 응하였다. 무림제일의 기남아, 웃음하나만으로도 수많은 여인들의 가슴을 저리게 할만큼 빼어난 용모를 가진 남궁비답게 그를 힐끔거리면서 보던 사화를 제외한 다른 여인들이 일순 멍하니 남궁비를 쳐다보고 말을 잃을 정도였다. 그런 그녀들과 같이 있던 사화 등은 실소를 금치 못하면서도 그들 역시 남궁비의 군계일학적인 용모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단, 기묘한 웃음을 짓고 있는 제갈수란을 빼놓고는..
사내들은 지금껏 자신들과의 대화에는 건성에 가까운 대답만 하던 남궁비가 아환의 말에 반색을 하는 것을 보고는 눈에 불이 났다. 질투, 사내들의 이기적인 질시가 눈에 역력히 보였다. 그러나 남궁비는 그런 사내들의 반응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아환과 발을 나란히 하여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선라봉의 중턱 즈음에 일행들이 도달하자 어느덧 시간은 점심때, 사람들은 주섬주섬 짐을 끌러 가져온 육포와 기타 몇가지 음식을 꺼내었고 여인들은 한쪽에 모여 사내들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환이나 남궁비가 솔선해서 자리를 마련하자 다른 이들도 마지 못해 일을 도왔다. 그들 생각에는 아환이 어제 강한 무위를 보여주었다고는 하나 배경을 밝히지 못할 정도로 비천한 출신이라 생각했기에 아환이 당연히 자리를 마련하겠거니 생각하는 이들도 상당수 였다.
빙둘러 앉아 음식을 먹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남궁비를 중심으로 그의 왼쪽에 아환이 오른쪽에 유가형이 앉았다. 악서령은 다른 사람의 시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환의 왼쪽에 앉아 조용히 음식을 들었다. 또 그옆에는 석영이 유가형 옆에는 제갈수란이 앉는 형태였다. 아환은 육포를 뜯어 입에 가져가고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채 묵묵히 씹어 삼켰다.
악서령과 석영은 그냥 무표정하게 젓가락을 깨작거리며 음식을 들었고 유가형은 얼굴에 약간의 수심이 담긴채 그냥 물잔만 홀짝였다. 그런 분위기가 무거웠을까? 아환과 남궁비를 따라온 사내들 중 하나가 낭랑히 소리를 높여 시 한수를 읊는다.

山中問答 왜 산에 사느냐 묻길래

問余何事棲碧山 왜 산에 사느냐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閒 웃기만 하고 아무 대답 아니했지.
桃花流水杳然去 복사꽃잎 아득히 물에 떠 가는 곳
別有天地非人間 여기는 별천지라 인간 세상 아니라네.

이백의 시 한수. 당송시대의 풍류 대문호인 이태백의 시를 멋들어지게 흩뿌렸다. 군웅들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 몰려 그의 우쭐거림을 부추겼다.
“허어..자연의 아름다움에 저도 모르게 미천한 학식을 보였군요.”
말은 그렇게 해도 사람들의 자신에게 향하는 관심이 뿌듯한지 얼굴에 자부심이 그득했다. 아닌게 아니라 사화를 제외한 나머지 세 여인들이 몽롱한 눈을 해 가지고 이들을 바라보았다.
“너무 멋져요. 장공자님.”
“강소성의 운학일룡이 풍류가 으뜸이라던데 그 말이 맞군요.”
“장공자님은 무공만큼이나 그 학식이 깊으신 것 같아요.”
강소성에서 제법 이름난 문파인 상운보라는 곳의 소보주인 운학일룡 장궁이라는 사내가 그렇게 여인들과 말로서 유희를 즐기며 히히덕거리자 백리세가의 사내와 다른 남자들이 합세를 하여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싯구를 인용하는 등 여인들의 눈에 잘 보이려 노력을 하였다.
그때였다.
퍼엉..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닌지라 그렇게 큰 소음으로 들리지 않았지만 무언가가 검고 하얀 연기를 뿌려대며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일제히 중인들이 그쪽으로 눈을 돌렸다.
“저긴 축융봉 쪽인데..”
“무슨 일이지? 저건 무림에서도 찾아 보기 힘든 신호탄같아 보이는 군.”
“형산파에 무슨 일이 벌어졌나? 형산파의 세력권 안인데?”
의아한 사람들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할때에 갑자기 긴박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병장기 소리 일단의 무리들이 몰려오는 소리가 얼마되지 않아 가까워졌다.
중인들은 서둘러 자리를 정비하고 저마다의 병장기쪽에 손을 갖다대고는 소리가 들려온쪽을 지긋이 지켜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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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짧고 시간도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생각만큼 시간이 나질 않아요.
그리고 구성을 좀 신경쓰다보니..

가능한한 많은 양 빨리 올리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운 여름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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