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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신대물(新大物) - 08

제목: 新大物
원작: 梶山李之
옮김: 다크린([email protected])


- 8 - 적금법(積金法)


미인이라는 말이 흔히 쓰여지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주관적인 것이며, 또한 상당히 민족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프랑스 남자가 생각하는 미인과 일본 남자가 생각하는 미인은 어느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이
다. 그러나 민족성이 다른 어느 인종이 보더라도, 남자가 여자를 불문하고, 미인으로 보이는 여성이 있다.
쓰지 도모꼬가 그러했다. 누가 보아도 미인이라는 범주에 그녀를 넣을 거라고 생각되는 미인이다.
그것이 우선 주근깨 투성이인 벨테 하이만에게는 날카롭게 반향된 것이다. 더욱이 아라가끼 마사또의 걸
프렌드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른파 경쟁 상대인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벨테는 일시에 머리끝까지 피가 곤두서는데, 아라가끼 마사또는 자리를 <싫은 손님>이라고
한 것이다. 그녀가 격노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나, 싫은 손님?]

벨테는 마소또에게 대들었다.
소비자가 왕이라는 말은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통하는 것이다.
일본만이 특수할 리가 없다.
그녀는 아라가끼 마사또에게 다가섰다.
흥분했기 때문에, 프랑으어 뿐만아니라 영어, 독일어가 뒤섞여 튀어 나왔다. 사람이란 재미있는 것이어서
흥분하면 아무리 외국어가 유창한 사람이라도 어느틈에 모국어로 지껄이고 만다.
아라가끼 마사또는 갑자기 마구 퍼붓기 시작하는 벨테의 태도에 난처해졌다.

(아아! 귀여워!)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눈앞에 있는 쓰지 도모꼬를 의식하고 있었다.
붉은 머리이며, 주근깨 투성이인 그녀는 자신이 결코 미인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런만큼 그녀는 자신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분해 버린 것이다.
누군가가 다급함을 알렸던 모양으로 몇사람의 점원이 달려왔다.
그리고 그 중의 한사람이 영어로 물었다.

[무슨 실례되는 일이라도 저질렀나요?]

일본 여성의 나이는 외국인으로서는 잘 알수 없는 모양이다. 그러나 벨테는 자기 나름으로, 자기와는 그
다지 격차가 없는 나이의 여성으로 보았다.
분명히 플라워 디자인 교실에서 조수로 일하고 있는 여성이었다.

[이 사람, 글쎄, 실례에요. 나더러 <싫은 손님>이라고 했어요.]

벨테의 말에 그 일본여성이 대답했다.

[나는 미즈끼 요오꼬라고 해요. 어떤 오해라고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용서하세요. 나를 봐서요.]

참으로 능한 영어였다.
프랑스인인 벨테에게는 이것 역시 감정을 자극하는 일이었다.
프랑스 사람은 영국에 대하여 영불 전쟁이후 강한 반감을 품고 있다. 다시 말해서 영어를 쓰는 민족이
싫었다.

[당신을 보아서라고 했지요?]

벨테는 이렇게 말했다.

[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미즈끼 요오꼬는 미소를 띠였다.

[나는 아라가끼에게 따지고 있어요. 당신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나도 하나겐의 종업원이거든요.]
[그래요? 그렇다면 하나겐의 종업원은 손님 앞에서 <싫은 손님>이라는 나쁜 말을 하라고 지시되어 있나
요?]
[그건…… 잘못 들은 게 아닌가요?]
[아뇨, 들었어요.]
[정말로?]
[왜 내가 거짓말을 하겠어요?]

벨테는 다시 화가 치밀어 미즈끼 요오꼬의 가슴을 쥐어박았다.
요오꼬는 불의의 충격으로 크게 비틀거렸으나 화가 난 표정이 되더니 벨테에게 덤벼들었다.
그녀는 당황하고 있었다.
벨테는 일본인하고 대체적으로 피학대증(被虐待症)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 백인여성에게는 관대
한 민족이었기 때문이다.
간단한 이야기로 클럽 하나이에서 일하다가 술취한 손님이 괴상한 짓이라도 하려고 하면 켈테는 따귀를
올려 붙인다. 그러나 따지고 드는 손님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미즈끼 요오꼬의 반격이 의외
였던 것이다.
벨테는 요오꼬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이렇게 되면 이미, 외국어로 회화를 하는 세계는 아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두 사람은 물을 뿌린 하나겐의 바닥에서 서로 맞붙어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맞붙어 싸우는 그들을 떼어 놓은 것은 짓궂게도 아라가끼 마사또나 쓰지도모꼬가 아니었다.
그 사이 마사또는 쓰지 도모꼬를 위해 꽃을 골라 주고, 문 앞에 서 있는 차에 배웅하러 나가 있었던 것
이다. 벨테도, 미즈끼 요오꼬도 거친 숨을 토하면서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자 시라이 가즈꼬는 낮은 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죄송합니다.]

쓰지 도모꼬는 이렇게 사과하고 나서 말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

가즈꼬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물었다.

[그 남자는 누구지?]
[네?]

쓰지 도모꼬는 당황해하며 대답했다.

[저어…… 동급생이었어요.]
[그래? 동급생…….]

가즈꼬는 또다시 흘끔 도모꼬를 보고 중얼거린다.

[하지만 그 눈초리는 심상치 않아.]
[네에? 심상치 않다면……?]

도모꼬는 놀란 듯이 시라이 가즈꼬를 마주보았다.

[난 말에요…….]

가즈꼬는 화난 표정이 되더니 도모꼬를 유심히 보며 대답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초리쯤은 알 수 있어요.]
[사랑하는?]
[그래요!]
[저어…… 제가 말인가요?]

쓰지 도모꼬는 물었다.

[그렇지 않아.]

가즈꼬는 고소를 머금고, 그러나 상냥한 어조로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 남자가…….]
[네? 아라가끼 군이요?]
[그렇지.]
[선생님, 그건 아니에요.]
[어머, 어떻게 그렇지 않다는 걸 알지?]

시라이 가즈꼬는 도모꼬의 말에 냉랭하게 반문한다.

[저분은…… 그런 분이 아니에요. 절대로!]
[그럴까?]
[그래요.]
[그럴 리가 없어.]

시라이 가즈꼬는 단정하듯이 말했다.

[그 눈은 도모꼬를 사랑하는 남자의 눈초리였어.]
[…….]
[하지만 난 결코 그렇게는 못하게 할거야.]
[…….]
[도모꼬가 내 제자인 동안은.]
[…….]
[도모꼬가 나를 배신하면 나는 도모꼬의 인생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줄테야.]
[네에?]

쓰지 도모꼬는 비로소 겁먹은 듯이 자기의 스승을 보고 있다.

[난…… 용서할 수 없어요.]
[…….]
[도모꼬의 연인은 음악이야. 그렇지?]
[네, 그래요.]
[도모꼬의 남편은 바이올린이에요. 그렇지 않아?]
[…… 네.]
[예술가는 고독해야 하는 거에요.]
[네.]
[연애는 방해가 돼요.]
[네.]
[나보다 뛰어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사랑 때문에 음악계에서 추방되어 갔지. 나는 내 자신이 가망이 있
다고 인정한 제자에게 그런 가련한 길을 걷게 하고 싶지 않아요.]
[네.]
[저 남자는 아르바이튼가?]

사라이 가즈꼬는 계속 묻는다.

[아뇨. 그곳의 점원이라고 생각해요.]

쓰지 도모꼬는 정직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가즈꼬는 몸서리를 치는 듯한 흉내를 내고는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알겠지? 절대로 저 가게에 가까이 가지 말아요!]
[네.]
[저 남자는 도모꼬를 사랑하고 있어요.]
[그, 그럴 리가!]
[아뇨, 난 알아요.]
[그럴까요?]
[그러니까 도모꼬는 바이올린만을 연연으로 알고 살아가도록 해요.]
[네.]
[사랑 따위는 하찮은거에요.]
[잘 모르지만, 그럴까요?]
[그래요. 하찮다니까요.]

시라이 가즈꼬는 딱 잘라 말하는 듯한 분명한 말투로 말했다.

[도모꼬도 과년했으니까 성적인 면에서의 고민은 있다고 생각해요.]
[어머나!]

쓰지 도모꼬는 운전사에게 마음을 쓰면서 얼굴을 붉힌다.

[나는 모든 것을 거는 성격이에요.]

시라이 가즈꼬는 중얼거린다.

[모든 것을…… 걸어요?]

도모꼬는 자기의 스승을 보았다.

[그래요. 도모꼬를 위해, 내가 희생하겠어. 도모꼬의 방파제가…….]

가즈꼬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가만히 도모꼬의 손을 꼬옥 잡았다.
섬찍하면서도 어쩐지 파충류(爬蟲類)를 연상하게 하는 축축한 손바닥이었다.

**

신궁 외원의 은행나무 가로수는 밤의 정적에 싸여 잠들어 있었다.
이따금 어둠 저쪽에서 점멸(點滅)하는 불빛은 네온사인이 고장이라도 난 것일까?
또한 주차한 자동차의 차창이 열기 때문에 하얗게 김이 서려 있는 것은 아마도 히터를 켜놓고 있기 때문
인 것 같았다.

[나…… 이 은행나무 가로수가 참 좋아요.]

미즈끼 요오꼬가 말했다.

[그래요?]

도쿄에 올라온지 얼마 되지 않은 아라가끼 마사또에게는 그 신궁 외원의 은행나무 가로수 따위는 느껴지
지 않았다.

[사포르(札幌) 대학에 가 본일이 있어요?]

미즈끼 요오꼬가 물었다.

[아뇨.]

마사또는 고개를 저었다.

[명물인 포플러 가로수가 있어요. 그라비아 그림 엽서에 곧잘 나오는 것 말에요.]

미즈끼 요오꼬는 말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마사또는 듣기만 햇다.

[가 보게 되면 알겠지만, 그림 엽서로 보면 어쩌면 이렇게 로멘틱할까…… 하고 생각되지만 아주 따문한
곳이에요.]
[네에…….]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정말이더군요.]
[네에 그렇던가요?]

아라가끼 마사또는 오늘 낮에 자기를 위해 벨테 하이만과 맞붙어 싸움을 한 미즈끼 요오꼬를 절대로 훌
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가게 책임자로부터도 야단을 맞았지만 손님을 소중하게 하지 않으면 역시 실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
러나 그녀는 마사또를 위해서 싸움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산책하자는 청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모르지만 하와이의 와이키키 해변도 겉으로만 번지르르하지 실지로 가보면 형편없다지 뭐에요.]

미즈끼 요오꼬는 말했다.

[네에, 소위 양두구육(羊頭狗肉)이란 바로 그런 것이군요.]
[그래요. 사포르의 시계탑 같은 것은 모두 하찮은 거래요. 거기에 비하면 이 은행나무 가로수와 도쿄 대
학 구내의 은행나무는 천하일품이라고 생각해요.]

미즈끼 요오꼬가 말했다.

[그러면 천하이품이 아닙니까?]

마사또는 농담으로 받아넘겼다.

[아 참, 그렇던가요? 천하이품이라도 좋아요. 아무튼 기막힌걸요.]

요오꼬는 배시시 웃고는 마사또를 보며 말했다.

[벚꽃은 아오야마(靑山) 묘지의 밤벚꽃, 에꼬다(江古田) 철학관 근처, 그리고 역시 우에노(上野) 공원이
아닐까요?]
[그러면 매화는요?]

마사또가 물었다.

[글쎄요.]

미즈끼 요오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요시노(古野)까지 가지 않고서는 매화 구경했다는 마음이 생기지 않을 거에요.]

이렇게 말한 그녀는 문득 걸음을 멈춘다.

[이봐요, 아라가끼 씨.]
[네에, 뭐에요?]

마사또는 정중하게 물었다.

[마사또 씨…… 요즘 좀 이상해요.]
[이상하다니요…… 뭐가 말입니까?]
[마사또 씨…… 아오야마 여자 대학생과 수상하다는 이야기던데요?]

미즈끼 요오꼬는 단도직입적으로 공격해 들어왔다.

[네에? 무슨 말씀인가요?]

아라가끼 마사또는 놀란 듯한 소리로 물었다.

[시치미 떼지 말아요!]

미즈끼 요오꼬의 목소리는 엄격했다.

[별로 딴청하지 않습니다.]
[그럴까요?]

요오꼰는 조급한 듯이 물었다.

[당신…… 어떤 여자의 처녀성을 빼앗았다면서요?]
[네엣?!]

마사또는 뒷걸음질을 쳤다.
은행나무의 굵은 나무 줄기에 등을 쿵하고 닿았다.

[아닌가요?]
[그, 그, 그럴 리가!]
[그렇지요?]
[천만에요, 절대로!]

아라가끼 마사또는 어째서 미즈끼 요오꼬로부터 그런 말을 들어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요……?]

미즈끼 요오꼬는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가만히 움직이지 말아요!]
[네.]

마사또는 거역하지 않았다.

[눈을 감아요!]

요오꼬는 명령했다.

[이렇게…… 말입니까?]

아라가끼 마사또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갑자기 여자의 거치른 숨결이 가슴께에 느껴지고, 거머리 같은 것이 마사또의 입술에 달라붙었다.

[아앗!]

그는 눈을 떴다.

[피하지 말아줘요!]

미즈끼 요오꼬는 미친 듯 외치고 마사또를 꽉 끌어 안았다.

**

아라가끼 마사또는 그때 감동하고 있었다.
스구로 도모꼬가 흰 피를 빨았을 때에는 흥분과 황홀한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 신궁 외원의 은행나무 가로수 밑에서 미즈끼 요오꼬의 키스를 받았을 때에는 흥분인지
황홀한 기분인지 알 수도 없는 기묘한 감동을 느꼈던 것이었다.
어째서일까?
난생 처음 맛보는 키스라는데에 그 원인이 있을지도 모른다.
좀 묘한 이야기지만 마사또는 요오꼬에게 꽉 끌어 안겼을 때, 겨우 <어른이 되었다>는 듯한 자존심이 자
극을 받은 것이다.
부드러운 촉감이 마사또의 가슴을 압박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요오꼬의 가슴일 것이다. 화장품 향료가
아닌 물씬 풍기는 건강한 처녀의 체취.
그리고 거친 키스.

(아아……)

마사또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주고 있었다.
두 사람 다 난생 처음하는 키스였으므로 요령을 알지 못해 서툴렀다.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마사또도, 요오꼬도 몹시 떨고 있었다.
미즈끼 요오꼬는 입술을 떼면 모든 것을 잃게 될까봐 두려운 듯이 집요하게 그에게 덤벼드는 것이었다.
어쩐지 입술이 남의 것인양, 부어서 화끈거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아, 숨막혀…….]

마사또는 간신히 입술을 떼어 놓으며 요오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미즈끼 요오꼬는 다시 몸을 바르르 떨었다. 이것 또한 흥분 때문이다.

[조금 걷기로 해요.]

미즈끼 요오꼬는 마사또의 손을 세게 울켜잡고 어깨를 서로 맞닿을 것처럼 한 채 걷기 시작했다.
한 대의 스포츠카가 풀스피드로 그들 두 사람 곁을 스치고 달려간 후 두 대의 오토바이가 그것을 쫓아가
듯이 달려갔다.
밤의 신궁 외원은 젊은이들의 휴식처이다.
또한 사랑의 꽃을 피우는 화원이기도 하고, 그러한 아베크의 다정한 모습을 엿보는 불량배들이 출몰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요오꼬는 걸음을 멈추고 또다시 마사또를 굵은 은행나무 줄기에 밀어붙이듯 하며 입술을 마주댔다.
밤에 보아도 분명하게 그녀의 얼굴이 홍조(紅潮)를 띠어 땀이 배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기 의지
로 서 있는 것이 고작인 것첢 느껴져서 다리가 떨렸다. 아니, 흥분 때문에 무릎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이었
다.

[아아…… 난 몰라.]

미즈끼 요오꼬는 마사또에게 매어달렸다.
마사또는 당황해서 끌어안으면서 이렇게 소근댔다.

[왜 그래요?]
[모르겠어요.]

미즈끼 요오꼬는 몹시 헐떡이면서,

[난…… 부끄러워요. 아라가끼 씨에에 이런 짓을 해서!]

숨가쁜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마사또는 대답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요오꼬의 하반신이 자기의 넓적다리에 닿았을 때, 그는 흰 피를 빨
릴 때처럼, 무언가가 단단히 화를 내고 숨가쁠 정도로 뜨거워지면서 불기둥이 되는 것을 알았다.
마사또는 얼굴을 붉혔다.

[나…… 좋아요. 어떻게 되더라도. 아아! 키스해줘요!]

미즈끼 요오꼬는 그렇게 외치자 미친 듯 입술을 갖다 댄다.
마사또는 어두운 풀숲을 보았다.
그리고 그리로 미즈끼 요오꼬를 데리고 갔다.
손수건을 깔 사이도 없었다.

[안아 줘요! 안아 줘!]

요오꼬는 거기에 앉아서 헐떡일 뿐이다.
마사또는 아래에 뻐근한 감을 느끼면서 미즈끼 요오꼬와 나란히 앉았다.
미즈끼 요오꼬는 자기가 연상이니만큼, 스스로 리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으로 마사또의 상반신을
자기 쪽에서 끌어안았다.

[키스해줘요!]

재빠른 말투로 이렇게 말하고 또다시 스스로 뜨거운 입술로 접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간에 어
색한 동작인 것만은 변함이 없다.
마사또나 미즈끼 요오꼬는 어느틈에 자신드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야말로 무아경(無我境)에 빠진 상
태였던 것이다.
젊다는 것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러나 그 젊음이란 세상을 모르는 철부지란 말도 된다.
그들은 그러한 신궁 외원 어둠 속에 치한이 출몰하는 것을 알지 못했다. 또한 좀도둑도…….
키스만을 싫증나는줄 모르게 거듭하여, 두 사람이 불처럼 활활 타올라, 이 뒤에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게
되었을 때 요오꼬는 문득 냉정함을 되찾았던 것이다. 정직하게 말하면 그녀는 창피한 생각이 들었던 것이
다. 그녀는 곁에 놓여 있을 핸드백을 찾으려다가 없어진 것을 깨닫고 깜짝 놀라 냉정해졌다고 하는 편이
옳겠다.

[어멋! 없어요!]

미즈끼 요오꼬는 외쳤다.

[왜 그래요?]

마사또가 재빨리 물었다.

[핸드백이…… 여기에 놓았던 핸드백이 없어졌어요!]

미즈끼 요오꼬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넷? 백이?]

마사또는 주위를 둘러 보았다.
그러자 3백미터쯤 앞을 검은 사람의 그림자가 어둠을 누비면서 달려가는 것이 보였다.

[앗, 저놈이다!]

마사또는 용수철이 튕기듯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그림자를 뒤쫓았다.
그러나 눈깜짝할 사이에 그 모습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이러한 아베크를 상대하는 좀도둑은 핸드백을 슬쩍하면, 공중변소 같은데에 뛰어들어 현금만을 꺼내고
백은 어떤 풀숲 같은 곳에 집어 던지는 것이 보통이다.
마사또는 그런 수법을 알지 못했으나 백을 도둑맞은 미즈끼 요오꼬는 울상이 되어 말했다.

[어떻게 하죠? 나, 집에 갈 수도 없어요!]

백 속에 돈지갑이며 승차권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시골 사람인 마사또는 택시를 집어타고 집에 돌아가, 가족에게 대금을 지불해 달라는…… 그런 방법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는 현금을 가지고 있으면 써 버릴까봐 언제나 2백엔 정도밖에 넣고 다니지 않는 주의를 취하고 있다.
마사또는 호주머니를 뒤졌다.
어찌된 셈인지 50엔짜리 동전밖에 없었다.
밖에 나가 점심 식사를 했기 때문이다.

[50엔으론 못 돌아가요.]

미즈끼 요오꼬는 풀이 포옥 죽어 있었다.
여성은 한창 사랑하는 도중에도 가끔 현실적인 심정으로 돌아가는 모양이다.

[어떻게 하지?]

마사또는 말했다.

[생각해 봐요.]

미즈끼 요오꼬는 울상이었다.
이제는 키스 같은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가게의 여자 숙소에서 자면?]

마사또는 이렇게 제안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면 오늘 마사또 씨와 내가 데이트했다는 것이 모두에게 알려져서 창피하거든요.]
[우선 파출소에 신고하기로 해요.]

마사또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군요.]

두 사람은 외원을 나와 파출소를 찾았다. 도난 신고를 하려는 것이었다.
파출소의 순경은 순찰차에 연락하여 두 사람을 본서로 보냈다.
접수계의 경관은 웬지 히죽히죽 웃으면서 형사 책상으로 안내했다.
두 사람은 파출소에서 말한 것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해야만 했다.

[두 사람이 그냥 나란히 앉아서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좀도둑이 살금살금 기어온 것을 몰랐단
말인가?]

형사는 기록을 끝내자 의심스러운 듯 이렇게 물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만한 좋은 일을 했나 보군?]

그들은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 피해 조소를 만드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두 사람이 밖으로 나왔을 때는 밤 11시가 훨씬 지나 있었다.
미즈끼 요오꼬는 몹시 풀이 죽어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경찰에 가지 않을 걸 그랬어요.]

마사또도 정직하게 말하면 오늘 밤, 미즈끼 요오꼬와 데이트 한 것이 자신의 기분에 있어 크나큰 마이너
스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약간 바보스러웠던 것이다.

[나…… 가겠어요.]

마사또가 침울하게 말했다.

[난 어떻게 하죠?]

미즈끼 요오꼬가 소리쳤다.

[가까운 곳에 친구나 친척이 없나요?]

마사또는 걱정스러운 듯이 물었다.

[없는 건 아니지만…….]

요오꼬는 생각에 잠겨 있다.

[그럼 바래다 줄께요.]

마사또는 마음을 놓았다.

[그렇지만, 저어…….]

미즈끼 요오꼬는 분한 듯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주소록 수첩도 도둑맞았어요.]

그런 말을 듣고 보니 꼼짝도 할 수 없는 느낌이어서 마사또는 우울해졌다.
그는 정기권이 있으니까 막차에만 늦지 않게 가면, 어떻게는 집에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미즈끼 요오꼬
는 그렇지가 못했다.

[난처한데.]

마사또가 그렇게 중얼거렸을 때, 미즈끼 요오꼬가 빛나는 표정이 되면서 외쳣다.

[아 참, 그렇구나!]
[왜 그래요?]
[택시를 타고 집에 가서 요금을 주면 되지 않아요?]

미즈끼 요오꼬는그렇게 말하고 나서 미소 짓는 것이다.

[역까지 배웅해 줄께요.]

금방 울던 새가 갑자기 웃는 것 같다.
택시 안에서 미즈끼 요오꼬는 마사또의 손을 세게 꼭 잡고 이렇게 말했다.

[다음 휴일에…… 우리 집에 놀러 와요.]

요오꼬는 열띤 표정으로 소곤거리며, 마사또의 곁을 물러나지 않았다.

**

[아라가끼 놈, 몹시 늦는데?]

같은 방에 있는 히로세(廣瀨)가 좋아하는 땅콩을 씹으면서 의심스러운 듯이 말했다.

[정말이야.]

가장 선배격인 노기(乃木)가 히로세의 땅콩을 슬쩍해 먹으면서 중얼댔다.

[그러고보면, 저녁식사때에도 보지 못한 것 같아.]
[아무리 귀엽게 생긴 아이지만, 아직 데이트는 하지 않겠지.]

다찌바나(立花)라는 여드름투성이가 화장수를 문질러대면서 씁쓰레하게 웃었다.

[아니 알 수 없어.]

히로세는 침대에서 성큼 뛰어 내리며 말한다.

[오늘 아라가끼 군 일로 뭔지 복잡한 일이 있었다지 않아!]
[정말이야?]

다찌바나는 화장수병 뚜껑을 막는 것도 잊고 그렇게 물었다.

[응, 여자가 둘이 서로 맞붙잡고 싸움질을 했다나봐.]

히로세는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놈…… 약간 이상하지 않아?]
[응…… 도무지 귀염성이 없는 놈이야. 제일 작은 주제에!]

노기는 크게 고개를 끄덕인다.
귀염성이 없다는 것은 이러했다. 이를테면 같은 방을 쓰는 네 사람은 함께 행동을 하는게 당연한 것이다.
저녁식사를 했더라도 젊은 사람들이고 보면 잠들기 전에 시장기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래서 모두 추렴을
해서 군고구마나 과일 같은 것을 사다 먹자는 의논이 생긴다. 또 어떤 때는 아이스크림이나 빵을 사다 먹
자는 말도 나온다.
그러나 그럴 때 마사또는,

[전 먹고 싶지 않으니까 빠지겠습니다.]

이렇게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이었다.

[심부름 좀 해 주게.]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불평도 없이 심부름을 해 준다. 그래서 안됐다고 생각되어
하나 먹으라고 권해도,

[괜찮습니다. 정말 먹고 싶지 않습니다.]

하면서 받지 않는다.
한 달에 한 번, 하나겐 기숙사에서는 생일 잔치가 있다.
그 파티에는 맥주 한병과 정종 한 홉이 각각 나온다.
그런때에는 마사또는 혼자 자기몫의 배를 먹어 치우면서도 일요일 저녁에,

[여보게, 술을 사다가 친목회(親睦會)라도 하세나.]

이렇게 제안하면,

[전 마시고 싶지 않습니다.]

하면서 물건 사는 심부름만은 해 주는 것이다.
한 방에 있는 세 사람으로서는 재미가 없지 않겠는가.

[그 놈…… 가끔 밤중에 울고 있던 걸 보면 엄마 젖이 먹고 싶어 도망간게 아닐까?]

히로세는 그런 말을 꺼냈다.

[설마?]

다찌바나는 씁쓰레하게 웃고 있다.
그러나 노기는 고개를 갸우동하며 중얼거렸다.

[아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벽장을 열어 보았다.
그러나 아라가끼 마사또의 물건이 별로 없어진 것 같지도 않은 것이다.

[잠바만 입은채 도망갔을까?]

노기는 마사또의 침대를 들여다보며 말한다.

[편지라도 써 놓지 않았을까?]

베개 밑에 손을 집어 넣으면서 노기가 말했다.

[이크, 있어. 있어!]
[엉? 있어?]

히로세와 다찌바나가 달려왔다.
노기는 침대에서 내려와, 자신의 손에 든 것을 보았다.
사각 봉투였다.
봉해지지는 않았다.
열어본 즉, 속에서 나온 것은 편지지가 아니라 은행 통장이었다.

[허허, 저금을 했구나.]

통장을 펴보고 노기는 눈을 둥그렇게 떴다.
처음에 24,100이란느 숫자가 씌어 있고 다음에는 16,000이라는 숫자가 이어져 있었다.
초임급(初任給)은 24,000엔이고, 식비 기타를 빼고 나면 16,000엔 정도가 도니까, 그것은 급료의 남은
금액을 고스란히 저금한 것이리라.
그러나 노기가 눈을 크게 뜬 것은 5월부터 매주 2천엔씩 두 번, 도장을 찍은 듯이 예금되어 있는 사실이
었다.
급료 이외의 돈이었다.
근무하기 시작하여 석달동안에 아라가끼 마사또의 예금액은 무려 8만엔이 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 참 이상한데…….]

히로세가 신음하듯 외쳣다.

[매주야. 매주 4천엔씩 저금했어!]

흡사 이를 가는 것처럼 다찌바나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일이군!]

노기는 통장을 전대로 봉투에 넣어 마사또의 베게 밑에 잘 넣어 두고, 두 사람의 얼굴을 응시했다.


- 계속


≪..한마디...≫
연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파본도 파본이지만 일 때문에 시간이 잘 안나는군요.
오타가 있어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루에 한편 이상 올리려는 애초 계획은 정말 지키기 힘들 것 같습니다.
(이틀에 한편 올리기도 힘드는군요.)
정말 하루에 한편씩 올리는 분들은 정말 대단한 분이라고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늦더라도 마무리를 짓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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