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세상-2
그들의 세상-2
2부- 세상은 넓고 유흥가는 많다.
하루종일 멍해 있는 상태가 계속되었다.
정말 우스운 것은, 첫경험때도 이렇게 멍때리진 않았다는 점이었다. 조금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신세계를 접견한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그렇게 누가봐도 예쁜 아가씨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사내들이란 무릇 여자 이야기를 하는 것을 즐긴다. 연령, 외모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것은 남자들의 일관적인 이야기 거리이자 안주 거리였다.
그리고 그곳에 나오는 대부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 여자와 잠 한 번 자기 위해서 필사의 노력을 기울인 눈물겨운 "욕정 스토리"가 존재한다.
하지만 어제 겪고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단돈 6만원이면, 유미처럼 예쁜 여자와 잠을 잘 수 있었다. 게다가 여자를 유혹하고 구슬리는, 소위 말해 "이빨 까는" 귀찮은 작업도 필요 없다. 나는 마치 여러명의 후궁을 거느린 왕처럼 천천히 그들을 바라보며 고를 수 있는 선택권 조차 부여된다. 그 6만원이란 돈이 그녀에게 넘어가고 내가 욕정을 풀 때까지 나는 왕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다. 짜릿한 세계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연유로 해서, 나는 회사에 출근하고도 유미와 있었던 일을 연신 떠올리며 신기해 하고 있었다.
여자를 안는 다는게 그렇게 좋은 것이었구나. 오래동안 잊고 살아와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너무나 짜릿했다.
다 죽어 버린 줄만 알았던 연애세포, 혹은 여자를 감지하는 남자의 본능이 다시 살아나 활활 불을 지피는 그런 기분이었다. 결단코, 그 6만원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나는 매일 같이 계속 되는 틀에 박힌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아마도 그 비일상적 생활에 엄청난 매력을 느껴 버린 것 같다.
다시금 옷을 입고 유미와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의 말로는 그 곳은 25분의 시간이 주어진다고 했다.
우습게도 나는 10분만에 모든 행위를 마쳤고, 장장 15분 동안 그녀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다. 나름 오래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었다.
그녀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내가 굳이 대화의 주제를 이끌어 나가지 않아도, 그녀는 연신 옆에서 재잘대며 말을 걸어 주었다.
남자가 과묵하면 재미없다는 소리를 듣는 바깥세상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유미는 내 나이나 직업등 여러가지를 물어보았고, 곧이어 내가 질문하지도 않았던 "진상 손님"들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하며 푸념을 늘어 놓았다.
하하. 우습지만 나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그녀의 말을 경청했고, 15분이라는 시간은 빨리 지나가 가게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었다. 내가 여성과 사적인 대화를 5분이상 나눠본 적이나 있던가? 그런 적도 없고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었다.
"박주임님?"
나는 그제서야, 내 앞에 누군가가 서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고개를 들었다.
디자인부에 있는 주연씨가 나를 바라보며 무언가를 내밀고 있었다. 내가 부탁한 제품 박스의 도안을 완성해 가져다 준 모양이었다.
"아, 고맙습니다."
나는 그것을 받아 들였고,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등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걸어갔다.
160이 조금 안되어 보이는 작은 키지만, 눈이 동글동글 하고 피부가 하얀 귀여운 얼굴이었다.
늘씬하고 키가 큰 서구적 미인인 경리부의 미스 최와는 반대의 매력을 가지고 있는 여사원이었지만, 당연하게도 나와 말을 나눠본 적은 거의 없었
다.
혹자들은 무슨 영업부 주임이 그렇게 숫기가 없냐고 말을 하겠지만, 사실상 내 업무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쪽이 아니었다. 나는 주로 제품의 제고, 혹은 수입해야 할 물건들을 관리하는 쪽에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당연하게도 유들유들한 성격을 가진 영업 사원들과 달리 나는 말수가 적었고, 여직원과도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손에 꼽을 만한 일이었다.
사실 회사내에서 나에 대한 평판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나쁜 편도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편이었다.
직원들의 뒷담화에 오르내리진 않지만, 칭찬을 하거나 부러워하는 대화에도 절대 회자되지 않는 그런 평범한 존재였다.
대부분 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였지만, 이상하게도 난 그게 편했다. 어디가나 주목받는 것은 별로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수원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면 얼마나 걸릴까?"
자연스럽게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매일 택시를 타고 갈 수는 없을 테니까, 지하철 노선도를 뒤적거리게 되었다. 한 번 더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본 후, 내자리 컴퓨터에 인터넷 창을 띄웠다.
시작 페이지로 설정 되어 있는 검색 엔진의 검색창 위에 커서를 올려둔 나는, 한참이나 고민하고는 검색어를 입력했다.
[홍등가]
검색 결과는 많이 나왔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자세하게 나오지 않았다. 주로 홍등가 여성과 관계를 맺고 나서 성병이 걸릴 것을 걱정하는 글 들이나, 홍등가가 무슨 뜻이냐고 묻는 사람들의 질문글들 뿐이었다.
그래도 꾹 참고 하나씩 검색을 해본 나는, 서울에 있던 대다수의 빨간집들이 단속으로 인해 문을 닫고 철거 혹은 재개발의 절차를 밟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왠지 모르게 맥이 탁 하고 풀렸다.
제길! 어째서 그런걸 단속한단 말인가? 간만에 생긴 내 취미생활을 파괴라도 하겠다는 건가? 유흥업소를 단속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단속해야 할 것들 천지였다.
높은 사람들이 떼어 먹는 세금은 안 건드리고, 어째서 나같은 서민들이 애용해야 마땅할 것들에만 집중테클을 거는 거지? 왠지 모르게 분한 생각이 들었다.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내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황급히 인터넷 창을 밑으로 내렸다. 화면에 야한 그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검색어 창에다가 "빡촌 있는 곳"이라고 쳐놓기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뭐, 다행히 아무도 내 컴퓨터 화면 따위엔 관심을 두지 않았고, 나는 벌써 퇴근시간임을 알게 되었다.
"아. 들어가세요."
꽤나 오래동안 붙어 있던 회사였으니 분명 나도 부하직원들이 있지만, 그들은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는 것에 조금의 꺼리낌도 없었다. 하기야 내가 얼굴을 붉힐 만한 소리를 하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니 어느새 대충 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 역시 그렇게 기분이 나쁘거나 하지도 않았다.
하루종일 멍만 때려대던 나는, 결국 퇴근을 하는 인파들이 다 나가고 나서야 컴퓨터를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갈 채비를 했다.
나는 간만에 바빠졌다.
집으로 오자마자 컴퓨터를 킨게 얼마만일까? 이 녀석도 반가운지 우우웅 하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팅을 하기 시작했다.
게임에도 취미가 없고, 딱히 인터넷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도 없으니 내게는 집에와서 컴퓨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업무의 연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뭐라도 정보를 얻고 싶었다.
하기사, 내 파트너였던 유미도 다시 찾아가고 싶을 정도로 예쁜 여성이었지만 뭔가 아쉬웠다. 게다가 수원은 내가 사는 곳과 너무나 멀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한몫했다.
타닥..타닥...
회사에서도 잘 피우지 않는 담배까지 꺼내물며 열심히 써핑을 하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으면 씻자마자 티비에 누워 이러저리 채널을 돌리거나, 혹은 배달 음식을 시켜 먹고는 바로 쇼파에 뻗어서 자버렸을텐데, 오늘만큼은 그런것들에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배도 고프지 않았다. 그럴싸한 정보가 없나 뒤적거렸지만, 역시나 공개된 포털 사이트에서는 내가 원하는 상세한 정보가 잡히지 않았다.
"하긴..."
나도 모르게 맥이 탁 풀려서 중얼대고야 말았다. 이렇게 개나 소나 검색해서 나올정도로 우리나라가 녹록한 곳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와서 였다.
하기사, 단속이 심해졌다는 소리를 나도 들었을 정도인데 버젓이 인터넷에 상세 정보가 돌아다닐리 없었다. 뭔가 아쉬운 마음이 들어왔다.
"역시 수원에 가야하나...?"
처음에는 가까운 곳을 찾겠다는 의지로 다른 사창가를 검색해 본 것이지만, 사실 수원이라고 해도 충분히 갈 수 있을거라는 합리화를 하고 있었다.
이러다가 나도 성매매를 한 놈으로 단속에 걸리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가슴 한 켠에서 고개를 들었지만, 역시나 쉬이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치익!
맥주 한 캔을 따와서 들이켰다.
검색앤진만 해도 몇 개를 돌려가며 검색해 봤지만 결과는 지지부진했다. 음지의 것들을 양지에서 찾으려 하다니, 나도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어올 때쯤, 무언가 내 머리속을 퍼특 하고 스쳐 지나갔다.
"그렇지!"
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생각해 보니 나는 영업부에 속해 있는 주임 아니던가? 다른 영업직 사원 중에는 접대를 하는 인물들이 꽤 있었다.
물론 그들은 고급 술집에 주로 가겠지만, 뭔가 정보를 알 법도 하다는 느낌이 들어왔다. 하다못해 그런 곳을 다니면 주워 듣는 거라도 있지 않을까?
-네, 양수철 입니다.-
수화기 너머로 영업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또 덜컥 하고 말이 막혔다. 도대체 뭐라고 하면서 물어봐야 할까? 대뜸 사창가 어딨어? 라고 물어 볼 수 있을리가 없다.
"아...음..수철씨? 나야. 박강우."
-아 네. 주임님.-
그다지 달가워 하는 목소리는 아니었다. 하기사 직장인들이 퇴근을 하고 나서 회사 동료의 전화를 받는 것이 기분 좋을리 없었다. 대부분 "무슨일이 있나?"하는 의구심과 함께 전화를 받을 테니까.
"아 별건 아니고..좀 물어볼게 있는데.."
-예.-
딱딱한 그의 대답소리를 들으며 나는 침을 꿀꺽 하고 삼켰다. 머리가 그렇게 좋지 않아서 인지, 변명거리는 하나 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내가 이번에 중요한 손님이 외국에서 와서 접대를 해야 할 거 같은데 말이야. 혹시 좋은 곳 알아?"
-손님이요? 접대 하시게요?-
"응."
-잠시만요.-
아차. 수철씨가 신혼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야 말았다.
아내 앞에서 버젓이 유흥가 이야기를 내게 해 줄 수 없으니, 그는 잠시 자리를 옮기는 중인 듯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왔다.
-중요한 손님이시면 룸살롱 같은데 가셔야죠 뭐.-
룸싸롱이라...좋기야 하겠지만 워낙 거금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망설여졌다. 뭐라고 둘러대야 하지?
"아아. 사실 회사돈으로 하는 접대가 아니라서 말이야. 조금 저렴한 곳 없을까? 그...뭐야..아가씨랑 놀 수 있는 곳으로..."
수화기 너머로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집에서 저런 전화를 받기가 아마도 짜증이 날 것이다. 게다가 전화를 한 사람이 평소에 친하지도 않은 같은 부서 주임이니 반갑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러면요. 그런 유흥가 정보들을 모아놓은 사이트를 알려 드려요?-
행여나 아내가 들을까, 작은 목소리로 묻는 그의 말에 하마터면 큰 소리로 응!이라고 대답할 뻔했다. 운 좋게도 그는 내가 원하는 것을 알려주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짐짓 헛기침을 하면서 대답했다.
"그럼 그래 주겠어? 와이프도 있을텐데 곤란한거 질문해서 정말 미안해."
-아뇨. 뭐 괜찮습니다. 메모 괜찮으세요?-
"아..응."
나는 열심히 그가 불러주는 도메인 주소를 받아적기 시작했다.
조용히 속삭이듯 말하는 폼새가, 행여 아내가 듣고는 그 주소로 접속해 볼까봐 조마조마 하는 듯한 눈치였다.
이럴때는 총각이라는 존재가 참 편하다. 물론 가정을 꾸리는 것이 더 장점이 많겠지만 말이다.
"고마워 수철씨. 중요한 손님이라서..."
-아닙니다. 쉬세요.-
끝까지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손님"의 핑계를 대고서야 전화를 끊은 나는, 부리나케 컴퓨터 앞으로 달려가 검색을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오픈 포털에서는 절대 검색되지 않을 법한 성인 사이트의 낯뜨거운 배너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사내들의 이야기 공간-
음...뭐랄까. 다소 허접한 작명센스는 둘째치고, 생각했던 것 보다 사이트 자체는 깔끔해 보였다.
나 역시 웹디자인에는 문외한 인지라 잘은 몰랐지만, 적어도 허접해 보이지는 않는 사이트였다.
무료 회원 가입을 하자마자 다양한 컨텐츠 들이 눈에 띄였다.
성인 동영상이나 섹시 사진, 그리고 요새 한창 인기있는 여자 연예인들의 사진방들이 대부분이었다.
한참이나 내가 원하던 메뉴를 찾던 나는 한쪽 구석에 "밤문화 이야기" 라는 메뉴를 클릭하고 나서야, 유흥가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맥주를 한참이나 벌컥벌컥 들이키고 담배를 빼어 물었다.
밤문화 이야기에도 다양한 서브 메뉴가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내게는 모두 생소한 단어들 뿐이었지만 상관 없었다. 적어도 티비를 보는 것보다 여기 글을 하나씩 읽어보는게 훨씬 즐거울 것 같았다.
다행히도, 이 사이트의 운영자는 까다로운 회원 관리를 하지 않는 듯해 보였다. 대다수의 메뉴들이 가입과 동시에 읽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성인 동영상 같은 메뉴만 유료화 시켜 놓은 듯했다. 어차피 그 동네에는 관심이 없었으니 나에겐 좋은 일이다.
딸칵..딸칵..
한동안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만이 방안에 울려퍼졌다.
정말이지 놀랍게도, 나는 무려 두시간 동안이나 집중해서 게시글 하나하나를 읽을 수 있었다.
"우와..."
놀라움에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맙소사. 정말이지 내가 아는 것보다 실제 존재하는 "밤문화"의 세계는 광대하기 그지 없는 것이었다.
도대체, 나는 이렇게 버젓이 내 주변에 존재하는 재미있는 세계를 냅두고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걸까?
확실히 정보라는 녀석은 소중하고 위대한 것이었다. 그 사이트를 통해 상당히 많은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첫번째는, 내가 줄곧 찾았던 홍등가는 수원 외에도 많이 있다는 점이었고, 아쉽게도 대부분 사라져 가는 추세라는 점이었다.
내가 갔었던 수원의 그 골목에 관한 이야기도 자주 등장했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 비추천한다는 말이 대부분이었고, 대다수의 여자들이 서비스 마인드 없이 장사를 하고 있다는 혹평들 뿐이었다.
내가 유미를 만난것은 첫 유흥가 경험 치고는 꽤 운이 좋은 편인 모양이었다. 대부분은 평택에 있는 쌈리라는 곳을 추천하는 추세였다.
두 번째로는, 집창촌 말고도 다른 유흥가는 널리고 널렸다는 점이었다.
단순히 여자가 몸을 파는 곳은 그곳 뿐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고정관념을 수정해야만 했다.
탐방 후기라는 곳에는 많은 사내들이 그 업소를 다녀 오고 나서 평가한 별점들로 가득했고, 추천하는 아가씨의 예명까지 상세히 적혀져 있어, 그것을 보는 것만 해도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가슴이 떨렸다.
"난 정말 재미없이 살았구나"
이런곳에 가지 않는 다면 친구가 많거나, 혹은 가정을 꾸미며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거나, 혹은 찐하게 연애라도 하면서 살았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혼자서 있으면서 밤문화에 대해 전혀 모르고 살았다니....그간의 내 인생을 돌아보는 것도 지겹고 무료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눈을 늦게 뜬 것이 후회스럽다.
홍등가 말고도, 그 사이트에 명시된 유흥가, 즉 아가씨들과 놀 수 있는 업소들의 종류는 대충 봐도 10여개는 넘어 보였다.
그것도 모르고 사라져 가는 집창촌에 대해 아쉽게 생각하다니...나는 정말 바보였다.
생각해보면 남자들의 욕망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그들도 어떻게든 장사를 할 터였다.
그들은 돈을 원하고, 남성들은 돈을 건내며 욕망의 불을 끈다라...너무나 합리적인 경제 활동이자 거래가 아닐 수 없었다.
다 마셔버린 맥주캔이 내 손안에서 파직!하는 소리를 내며 찌그러 졌다. 이제라도, 눈을 뜬 것이라면 차라리 다행인 것이다.
삶의 목표? 내지는 재미가 생기고 나니 일이 재미없어 졌다.
통장안에서, 혹은 내 책상 서랍 안에서 썩어가고 있던 현금으로 지갑을 두둑하게 채우고 난 후, 나는 업무 시간 내내 퇴근시간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기 시작했다.
어제 전화해서 자문을 물었던 수철씨도, 디자인 부의 주연씨도,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를 기분나쁘다고 말한 미스 최도 내게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회사란 늘 이렇다. 업무에 관한 것을 제외하면 아무런 의사소통을 하지 않아도 돌아가는 집단.
나는 이미 그 집단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한마리 개였고, 이제 내 목줄을 끊고하고 싶은 것을 찾아서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들어갑니다. 수고들 하세요."
늘 꿈지럭 대다가 늦게 가던 내가 먼저 일어나니, 다들 의외라는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
직장 상사들에게 있어서 나는 군소리 없이 일하는 사람이었고, 부하 직원이나 혹은 동료들에게 있어서는 그저 말없고 조용한 사람일 뿐일테니 신경을 안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회사를 나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내가 향한 곳은 회사와 그리 멀지 않은 영등포 쪽이었다.
어제 밤새도록 그 사이트를 뒤적거려서 인지 눈이 뻑뻑한 느낌이 들었지만 정신만은 말짱했다.
그 사이트에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핸플 업소를 향하는 것이었고, 그 업소가 위치한 곳이 영등포였다.
핸플.
나도 처음엔 용어만 듣고는 그게 무언지 감을 잡지 못했지만, 몇개의 게시글들을 본 후 그것이 "핸드 플레이" 즉, 대신 자위를 해주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속칭 "대딸방"으로 불리는 곳인데, 다른 곳보다 훨씬 가격이 저렴하고 물이 좋다고 했다.
처음에는 나도 반신반의했다. 세상에, 뭐하러 돈을 내고 딸을 치러 간단 말인가? 물론 여자가 해주는 거니까 느낌이야 다르겠지만 이상하다 싶었다.
하지만 그 사이트에는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전문가(?)들이 대거 활동하고 있었고, 그들이 엄지를 추켜세울 정도라면 한번쯤은 가봐도 좋을듯 싶었다.
실제 섹스를 하는 업소 보다 가격이 싸다는 점도 내 마음을 동하게 하는데 한몫했다.
-영등포 헤이즐럿- 총 평가 10점만점에 9점. 에이스는 미소양이니 꼭 만나보세요.-
어떤이의 후기에서 들었던 내용을 곱씹으며, 나는 어제 확인한 업소의 위치를 되새기며 영등포에 있는 헤이즐럿이라는 업소를 향했다.
미소라는 예명을 쓰는 아가씨는 어떨까 하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유미보다는 예쁠까? 몸매는 더 좋을까? 온갖 상상이 나를 즐겁게 했다.
내가 도착한 "헤이즐럿"의 외관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하기야 요즘 세상에 한국에서 떡하니 대딸방이라고 간판 달아 대서특필로 광고를 할 필요야 없을 터였다. 허름한 건물이면 어떠랴. 맨 처음 간 수원은 이것보다 훨씬 허름했었다.
"어서오세요! 예약 하셨어요?"
퉁퉁하게 살이찐 남자가 웃으며 내게 인사를 건냈다. 영업부 부장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내였고, 그는 조금은 얼어 있는 나를 바라보았다.
"아뇨. 예약은 안했는데....그...인터넷 사이트 보고 왔습니다."
내가 가입한 사이트의 "밤문화 이야기"란에는 그곳을 즐겨 찾는 남성들 뿐만이 아니라, 업소를 운영하는 오너들도 꽤나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었다.
하기사 그곳처럼 대놓고 홍보를 할 수 있는 곳도 드물테니 그럴법도했다.
"아아. 사공 회원님이시군요. 아는 언니 있으세요?"
사공이라는 것이 곧 사내들의 이야기 공간을 줄여서 칭하는 것임을 눈팅을 통해 알고 있던 나는, 어제의 게시글을 곱씹으며 그에게 말했다.
"미소씨 있나요?"
"아아. 미소씨요. 안그래도 지금 막 출근했습니다. 야간조거든요."
후에 생긴 노하우지만, 지명하는 아가씨가 있거나 혹은 희망하는 아가씨가 있다면 업소에 전화를 하거나, 혹은 사이트에 있는 "업소별 아가씨 출근현황"을 숙지하는 편이 좋다. 그녀들은 대부분 주 야간 조를 짜서 로테이 션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내 유흥가 탐방은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그의 안내로 옆에 딸린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와...괜찮네..."
외관과는 달리 방 안은 깔끔했으며, 무엇보다 잘 꾸며져 있었다.
작은 샤워부스와 침대, 그리고 미니 냉장고와 담배를 태울수 있는 작은 테이블도 있었다. 나를 따라온 사내가 입을 열었다.
"아차차. 사장님. 계산은 미리 해주셔야 겠네요."
최대한 어리버리하지 않기 위해서 가격은 숙지하고 갔기 때문에, 나는 정확히 사이트에서 봤던 금액을 현금으로 그에게 내밀었고, 그는 그것을 확인하고는 살짝 웃었다.
"미리 샤워하고 기다리세요. 10분후에 이슬씨 들여 보내겠습니다."
그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리저리 구김이 간 양복을 벗어 한쪽에 있는 옷걸이에 걸어두기 시작했다.
그래도 꼴에 한 번 업소 가봤다고, 옷을 벗는게 그렇게 뻘쭘하진 않았다. 양말이며 속옷까지 모두 탈의를 하고 샤워부스에 들어가자, 거울밑에 붙어있는 작은 문구가 나를 웃게 만들었다.
-샤워를 얼마나 꼼꼼하게 하느냐에 따라 언냐들의 서비스가 달라집니다^^-
어떤 서비스를 해주는 지는 대충 눈팅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그것을 실제로 받는다고 생각하니 떨렸다. 정말이지 거울에 써있는 그 문구처럼, 나는 안닦아도 될 부분까지 필요 이상으로 빡빡 닦으며 샤워를 했다.
설레이는 마음 하나만으로, 하루의 필요가 싹 날아가는 듯했다.
꼼꼼하게 샤워를 끝내고 수건으로 몸을 닦고 있을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들어 갈게요."
사실 대답은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도 모르게 문쪽을 향해 네!라고 외치고 있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핸플업소의 문이, 그것도 에이스라 일컬어 지는 미소씨가 돌린 문고리가 서서히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