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검은 두 자루의 검끝을 바라보며 앞으로 반 걸음쯤 나섰다. 석청이 사용하는 것은 본래 한 자루 흑색 장검이었다. 그러나 지금 사용하는 것은 단순한 청강검(靑鋼劍)에 지나지 않으나 파란 광채를 내쏟고 있었다. 세 자루의 장검이 서로 교차하자 삽시간에 대전 안은 싸늘한 한기로 가득 채워지는 듯했다. 설산파의 제자들은 백만검의 검법을 믿고 있었다. 석청 부부가 한꺼번에 덤벼든다 하더라도 백만검이 이길 것이라 생각 하고 무기를 뽑아든 채 한켠에 서서 싸움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어느덧 석청과 민유 부부는 좌우 양쪽에서 백만검을 공격하게 되었는 데 그들 부부의 일 초 일 식은 절묘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리하여 육칠십 초를 싸우게 되었을 때 그들 부부의 검초는 더욱 더 빨라지며 이제는 그 검초가 어떻게 펼쳐지는지 알아볼 수도 없게 되었 다. 백만검이 펼치는 것은 칠십이 초의 설산검법이었다. 뭇제자들은 평소 그 검법을 연마해 오던 터라 별로 대단한 것 같지 않았으나 석청부부의 절묘한 검초를 상대로 해서 때로는 수세를 취하 고 때로는 공세를 취하는데 전혀 기이할 것 없는 일 초의 검법이 그의 손에서는 지극히 큰 위력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이때 대전 안에는 한 자루의 촛불만이 켜져 있었다. 불빛이 암담해서 세 사람의 그림자가 세 송이의 검광에 휩싸여 있었 다. 눈부신 광채가 번쩍이고 있는 가운데 맹렬하면서도 사람의 심금을 떨 리게 하는 아슬아슬한 장면이 거듭되고 있었다. 종종 일 검이 펼쳐지게 되었을 때 실날같은 차이로 피를 뿌리고 끝날 것 같았다. 검의 광채는 촛불을 받아 번쩍이게 되었고 세 사람의 얼굴은 수시로 밝아졌다가 어두워지곤 했다. 백만검은 얼굴에 싸늘하고도 오만한 빛을 띄우고 있었고, 석청은 차 분한 빛이었으며 민유는 단정한 모습 그대로였다. 세 사람의 얼굴빛과 태도는 조금전 서로 인사를 하며 이야기할때와 다를 바 없었으나 검초만은 매섭기 이를 데 없었다. 쌍방이 모두 전력 을 다해 싸우는 것이 역력하였다. 석청 부부가 대전 안에 들어서게 되었을 때 석파천은 민유가 바로 후 감집에서 자기에게 은자를 던져준 인자한 부인인 것을 알아 보았다. 그들이 백만검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곧이어 검을 뽑아 싸우게 되었는데 시종 석파천에게 말을 걸거나 자기의 아들임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석파천은 세 사람이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전혀 알아듣지를 못했다. 그는 다만 석청이 백만검에게 두 자루의 쌍검을 요구하고 있는 내면 에 바로 자기 자신이 얽혀 있는 사실을 전혀 상상치도 못하고 있었다. 석파천은 조금전 설산파의 열여덟 명 제자들이 검법을 연마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다시 지금 이 세 사람이 검을 뽑아들고 손을 쓰는데 전 혀 꾸짖거나 호통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세 사람이 하 나같이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 이들 세 사람도 설산 파 제자들처럼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설산파 칠십이 초의 검법을 어느 정도 간파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백만검이 펼치는 날렵하고도 자연스러운 검초에 흐뭇한 기분을 느끼고 서 눈여겨 보고 있었다. 잠시 백만검이 펼치는 검법을 주시하던 그는 눈을 돌려서 석청부부의 검법을 자세히 살피게 되었다. 그순간, 그는 세 사람의 검법이 크게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석청은 그야말로 크게 직선적으로 나오는 수법을 쓰고 있었는데 근엄 하면서도 무거운 데가 있었다. 민유는 초식에 따라 검법을 이리저리 빙글빙글 돌리면서 부드럽게 펼 쳐냈는데 마치 검을 띠처럼 사용하는 것 같았다. 두 부부가 펼치는 검법 초식은 전혀 달라서 한쪽은 굳건하고 한쪽은 부드러움을 특징으로 하고 있었지만 일단 백만검의 장검과 맞닥뜨리게 되면 두 부부의 검초가 상부상조하여 하나로 합하는 것 같았다. 본래 그들 부부는 상청관(上淸觀)에서 무예를 익힌 동문의 사남매였 다. 무예를 익히게 되었을 때 서로 정이 통하게 되고 당시 검법을 함께 펼치게 되었을 때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바가 그대로 검법에 나타났 다. 그 후에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이십여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 안 하루도 헤어진 적이 없었고 한시도 검법을 연마하는 것을 멈춘 적 이 없어 마음과 뜻이 하나로 통하게 되어 마치 한 사람이 펼치는 검법 과 다를 바가 없었다. 따라서 검법의 음양이합(陰陽離合)에 대한 묘리를 터득한 사람으로 무림에서 이들 두 부부에게 견줄 만한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그와 같은 검법의 고심(高深)한 묘리를 석파천은 전혀 알아차리지 못 했다. 석청 부부의 검법과 내력은 똑같이 백만검과 백중지간에 놓여 있었 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을 공격하는 만큼 백만검은 이미 적수가 될 수 없 었다. 다만 백만검은 검법 가운데에 도사리고 있는 날카로움과 독기로 그들 부부의 공세에 맞서고 있을 뿐이었다. 더군다나 민유는 성격이 온화해 서 초식을 펼칠 때 종종 삼 푼쯤 상대방에게 여유를 남겨주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세 사람은 한참 동안을 싸워도 승부가 판가름나지 않 았다. 허나 민유는 매우 나긋나긋한 모습이었고 부드러운 인품이었으나 검 법에 대한 절묘함은 그녀의 남편 못지 않았다. 백만검은 칠십 초를 싸우게 되었을 때 잇따라 두 번씩이나 민유의 검 날에 위험을 당할 뻔하였고 마음속은 조급함과 두려움으로 엇갈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남에게 머리를 굽힐 줄 모르는 사람이라 그들 부부에게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무릎을 끓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는 공격과 수비를 하는 동안 차츰 열세에 몰리는 것을 면할 수 없 었다. 설산파 제자들 가운데 몇 명의 제자들은 정세가 불리하다는 것을 직 감하게 되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두 사람이 한 사람을 공격한다는 것은 너무나 비겁하지 않소? 석 장 주, 당신이 사내라면 백 사형과 일대 일로 싸우시오. 그래도 두 사람 이 함께 덤벼든다면 우리들도 함께 덤벼들겠소!" 석청은 웃으면서 그 말을 받았다. "풍화신룡 봉 사형이 이곳에 있소? 그가 백 사형과 손을 함께 쓴다면 우리들 네 사람은 막상막하의 기세를 보이고 검법을 겨룸에 있어서 재 미가 있었을 것이지만 봉 사형이 없는 이때 다른 사람이 달려든다 하 더랄도 아무런 이로움도 없을 것이오." 이 말은 석청 부부과 적수가 될 만한 사람은 백만검 한 사람뿐이라는 것이다. 지금 상황으로는 그들 부부가 득을 보게 된 셈이었다. 외동아들이 그 들에게 잡혀 능소성으로 가게 된다면 목숨을 잃고 말 판국인지라 좀처 럼 물러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이 토지묘에는 설산파의 제자들이 근 스무 명이나 있는 만 큼 그들 부부가 설산파의 제자 스무 명을 함께 상대한다고 해도 무리 는 아니었다. 하지만 백만검 한 사람 외에는 모두가 하수들이라 함께 덤벼든다 하 더라도 석청 부부를 막아낼 도리는 없다는 뜻을 내비춘 것이었다. 그런데 백만검은 그가 봉만리를 들먹이는 것을 보고 속으로 울화가 치밀었다. '봉 사형은 바로 당신의 자식을 제자로 맞아들인 덕택으로 아버님에 게 한 팔을 잘리게 되었는데 당신은 무슨 염치로 봉 사형을 들먹인단 말인가?' 고수가 무공을 겨룸에 있어서 조금도 정신을 다른 곳에 팔아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아도 백만검은 이미 곤란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런 상태하에서 격노하게 되고, 명타준족(明駝駿足)이라는 일초를 펼치게 되었을 때 앞서보다 초식의 변화를 좀더 꾀하지 못하고 끝까지 펼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석청은 대뜸 빈틈을 간파하게 되었고 검을 들어 막으면 서 검날에 공력을 돋우어 백만검의 검을 살짝 끌어당겼다. 백만검은 급히 힘을 주어 자기의 검을 상대방의 검에서 미끄러뜨리며 뽑아냈으나 전광석화 같은 순간에 빈틈을 드러내게 되었다. 그 순간 민유의 장검은 그 빈틈을 뚫고 들어와 백만검의 가슴팍을 겨 누게 되었다. 백만검은 그만 두 눈을 감고 말았다. 그 검이 그대로 찔러 들어오게 된다면 피하려 한다 하더라도 때는 늦 었으니 자기의 가슴팍이 뻥 꿰뚫리고 말리라는 것을 짐작했기 때문이 었다. 그리하여 도저히 받아낼 수 없다고 단정하며 눈을 감은 것이었 다. 민유는 장검을 그의 가슴팍 앞 반 치쯤 되는 곳에 이르는 순간에 그 녀는 즉시 장검을 움추렸다. 석청 부부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뒤로 물러서더니 쌍검을 검 집에 꽂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백만검은 눈을 떠 보았다. 그의 안색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상대방의 목숨을 끊지 않는 것은 자기의 아들을 데리고 가겠다는 것 이겠지? 내가 패배한 이상 다시 그들을 막을 수 없지 않은가? 설사 다 시 겨룬다 하더라도 두 주먹이 네 주먹을 당할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들 부부의 적수가 되지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겠느가?' 그는 자기의 사랑하는 딸이 그들 부부의 아들에게 해침을 받아 죽었 다는 사실과 자기네들이 무리를 지어 중원으로 달려왔으나 일곱 명의 사매와 사제가 장락방의 수중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은 물론이고 석중 옥을 잡았다가 놓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평생 자부했던 설산검법이 현소쌍검을 이기지 못하여 여지껏 쌓은 명성이 물거품이 된 점들을 고 려해 보자 그만 절망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백만검은 그만 멍하니 서서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이때 호연만선과 문만부는 밖에서 지키고 있다가 절간 안으로 들어오 게 되었는데 마침 백 사형이 지게 되는 것을 목격하고 일제히 부르짖 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 백 사형 한 사람을 상대로 싸우는 것이 아니오? 그런데 우리들이 나서지 못하라는 법이 어디에 있소?" 그들은 일제히 장검을 뽑아들고 사면팔방에서 석청과 민유 부부를 공 격했다. 석청은 다시 민유와 더불어 검집에 꽂았던 장검을 뽑아들고 외쳤다. "백 사형, 우리 부부가 합세하여 싸운 결과 약간 득을 보기는 했으나 승패를 가리지는 못했소. 자, 다시 초식을 펼쳐보시오." 그는 백만검을 찔러갔다. 백만검의 신분으로 조금전 상대방이 자기의 목숨을 용서한 이상 다시 싸움을 하자고 덤벼들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석청이 먼저 공격을 해오자 맞서지 않을 수 없었다. '좋다! 나와 네가 일대 일로 한번 생사결전을 치루어 보자.' 그는 검을 들어 상대방의 검초를 밀쳐버리며 비스듬히 반격을 했다. 백만검과 석청이 손을 써서 어울리게 되자 정세는 전과 또 달라졌다. 방금 그는 일대 이의 싸움을 벌였기 때문에 여러모로 제압을 당해 엄 밀한 수세만 취하게 되었고 반격을 하게 되었을 때 제대로 반격의 수 를 발휘하지 못했다. 그가 석청을 공격하게 되었을 때 민유가 공격해 오는 것을 방어해야 했기 때문이었고, 민유를 찌르려고 했을 때 석청이 옆에서 찔어 들어 오는 검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때 일대 일의 싸움을 벌이게 되자 조금전 패배를 당한 치욕도 있 고 해서 칠십이 초의 설산파 검법의 오묘한 점을 여지없이 펼쳐 내어 전력을 다해 상대방을 공격했다. 석청은 암암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기한서북의 명성은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정말 당금 무림에서 절정 에 손꼽히는 검사라 할 수 있겠다.' 그도 새삼 정신을 차리고 한평생 쌓은 검초를 모조리 펼쳐내게 되었 다. '우리 상청관의 검법이 결코 설산파의 검법에 못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리라. 나의 아들을 너희 설산파 문하로 들여보내게 된 것은 깊은 뜻 이 있는 것으로 결코 설산파의 무공이 상청관의 무공보다 뛰어나서 맡 긴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고 백만검의 검을 맞받아 싸우게 되었다. 두 사람이 이와 같은 싸움을 벌이게 되자 그야말로 호적수를 만난 셈 이 되었다. 백만검의 초식은 신속하고도 맹렬했으며 검초는 종횡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석청의 검초는 태산과 같이 무거웠으며 자세 또한 근엄하기 짝이 없 었다. 백만검은 잇달아 십여 차례 검초를 변화시켜 보았으나 시종 상대방을 제압할 수가 없자 속으로 여간 놀라지 않았다. '이 사람의 검법의 고강함은 그가 누리고 있는 명성보다 더 뛰어나구 나. 그런데 어째서 그는 그의 아들을 본파의 문하로 들어오게 만들었 을까?'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조금전 나는 분명히 패한 거나 다름없었다. 그것은 두 주먹이 네 주 먹을 이길 수 없다는 변명이 될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일대 일로 싸움 을 하고 있는데 다시 일 초 반식을 지게 된다면 설산파는 정말 명성이 땅에 떨어지고 말 것이니 반드시 그를 제압하여 한번 목숨을 살려주어 야지, 그렇지 않을 때는 치욕을 씻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는 급히 이겨야겠다는 집념에 사로잡히게 되자 자연히 위험을 무릎 쓰고 초식을 펼치게 되었다. 석청은 이를 보고 내심 기뻐했다. '서두르면 서두를수록 나의 손아래 지게 될 것이다.' 십여 초가 지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백만검은 잇달아 위험한 고비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 렇게 되자 그는 흠칫하며 급히 심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기이하기 이를 데 없는 수법을 거두고 정정당당한 검법으로 변화시켜 급격한 공 세로 선기를 제압하고자 공세를 가했다. 이렇게 되자 두 사람은 정말 막상막하의 형세를 이루게 되었다. 석파천은 한옆에서 두 사람이 손을 쓰는 것을 제대로 이해를 못했으 나 넋을 잃고서 구경하고 있었다. 석청과 백만검 역시 자기 주위의 사정을 모조리 잊을 정도로 싸움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백 초를 겨루게 되었을 때 백만검은 속이 다 시원할 정도로 오늘의 싸움이 한평생 있을 수 없는 일대 쾌사로만 느껴졌다. 그는 민유의 일 검에 제압을 당해 마음이 꺼림칙했던 것도 지금은 깡그리 잊어버린 상 태였다. 석청 역시 이와 같은 적수를 만나게 된 것을 기뻐했다. 두 사람은 자연적으로 서로를 아끼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고 적대감이 봄눈 녹듯 사그러들었다. 따라서 서로 연구해 보겠다는 생각이 일어나게 되었고 각기 절기를 펼쳐서는 상대방이 어떻게 자기의 초식을 해소시키는지 보려 하였다. 두 사람이 처음 싸우게 되었을 때 대전 안은 쨍그랑, 쩡쩡, 하는 소 리가 가득 대전을 메우듯 하였으나 이 무렵은 두 자루의 검이 부딪치 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한창 싸우고 있을 때 백만검은 암향소영(暗香疏影)이라는 일 초를 펼 쳐 검날을 세울 듯 말 듯 하면서 비스듬히 상대방을 베어갔다. 석청이 나직이 찬사를 던졌다. "훌륭한 검법이군!" 그는 검을 세워서 상대방의 검을 맞받았다. 두 사람은 이 일 초에 모든 내력을 돋우었다. 팍, 하는 음향과 함께 석청의 손에 들린 장검이 동강이 나고 말았다. 그의 수중의 장검이 막 부러지자마자 왼쪽에서 한 자루의 검이 디밀 어졌다. 석청은 왼손으로 급히 그 장검을 받아 좌우봉원(左右逢源)이라는 일 초를 펼쳐 왼쪽으로부터 오른쪽으로 호선을 그리는 듯한 일검을 펼침 으로써 상대방이 계속 공격해 오는 것을 막았다. 백만검은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이것은 석 장주의 장검이 좋지 못한 것이지 결코 검초에서 승부를 드러내게 된 것은 아니외다. 석 장주의 흑검이 있었다면 어찌 두 동강 이 났겠소이까? 따지고 보면 이 형제가 잘못한 것이 되는구료!" 그는 몇마디 말을 끝맺게 되었을 때 갑자기 그의 안색은 크게 변하고 말았다. 그제서야 그는 석청의 외쪽에서 검을 디밀었던 사람이 민유인 것을 발견하게 되었던 거이다. 설산파의 십팔 명이나 되는 그의 사제들은 어지럽게 땅바닥에 나뒹굴 고 있었다. 원래 백만검이 석청과 한참 열을 내어 싸우고 있을 때 민유는 설산파 십팔 명 제자들에게 일일이 상처를 입혀 쓰러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검상을 입기는 했으나 그 상처는 가벼웠다. 다만 민유의 내력이 검의 끝으로 전해졌고, 곧장 혈도를 찍히는 꼴이 되어서 움직이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이는 민유의 독특한 검법이었 다. 본래 민유는 본심이 착해서 사람의 피를 못 보는 여인이었다. 그리하 여 그녀는 독특한 수법을 익히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타혈법(打穴 法)을 검술에 융화시킨 것이었다. 그렇게 된 결과 설산파의 십팔 명 제자들은 검에 맞았다고는 하나 실 제에 있어서는 그녀의 내력에 의한 점혈법에 혈도를 짚히게 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녀의 내력이 상승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가벼운 상처라도 입힌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상대방의 몸에 상처를 내지 않고도 검의 끝으로 혈도를 제압할 수 있는 것이었다. 민유는 장검을 남편에게 건네준 후 발끝으로 가볍게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한 자루 설산파 제자의 장검을 튀어 오르게 해서는 손에 잡았다. 그녀는 남편의 왼쪽 뒷편으로 세 걸음 쯤 되는 곳에 물러서서 언제든 지 협공할 수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백만검은 이와 같은 상태에 이르게 되자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 앉게 되었다. '나와 석청은 겨우 막상막하의 싸움을 벌였을 뿐인데 석 부인이 다시 개입하게 된다면 내가 다시 지게 될 것이 틀림없으니 더 싸워서 무엇 하겠는가?' 그는 침중히 입을 열었다. "애석하게도 봉 사형이 이곳에 없구료. 그렇지 않다면 우리 두 사형 제가 두 부과 한바탕 겨룰 수 있었을 것이오. 오늘은 솔직히 패했음을 인정하오. 더 할 말이 없소이다." 석청은 말했다. "오늘 쌍방은 모두 제 실력을 펼칠 수 없었지만 이후에 풍화신룡과 함께......" 여기까지 말한 그는 봉만리가 자기 아들 석중옥 때문에 한 팔이 잘려 져 나간 사실을 상기하고 그만 하던 말을 멈추고 말았다. 이제 훗날 만나게 된다 하더라도 검을 겨룰 수가 없는 것이다. 본래 그는 봉만리와 백만검이 자신 있으면 자기네들 부부와 한번 겨 루어 보자는 말을 하려고 했으나 그와 같은 사실을 상기하고 입을 다 물어 버린 것이었다. 석파천은 백만검의 안색이 새파래진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설산파의 열여덟 명의 사제들은 바보 멍청이군. 백만검 대협을 도와 석 장주 부부와 제대로 싸움을 벌이지 못하다니, 정말 흥이 깨지는 노 릇인데.' 그는 백만검이 조금전 자기를 바라볼 때 애석해 하는 빛을 보인 사실 을 상기하고 다시 생각해 보았다. '백 대협은 나에게 잘 대해주고 있고 또 석 부인도 나에게 은자까지 주었으니 나에게 잘 대해줬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이 검을 겨룸에 있어 서 한 사람의 적수가 모자라서 봉 사형인가 하는 사람이 오기를 바라 는 모양인데 나는 검법을 익히지 못했지만 여지껏 상세히 구경을 했으 니 그를 도와 한번 겨루어 봐도 될 것이 아니겠는가?'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백만검이 하던대 로 자기도 해볼 양으로 발끝으로 땅바닥의 한 자루 장검을 살짝 건드 려 퉁겨오르게 한 후 허겁지겁 검자루를 받아 쥐고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은 한 분이 모자라서 검법을 겨루지 못하는가 본데 제가 백 대협과 짝이 되어 흥을 돋우어 볼까 합니다. 하지만 저는 검법을 모르 니 아무쪼록 잘 봐주십시오." 백만검과 석청 부부는 그가 갑자기 몸을 일으킨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백만검은 자기가 분명히 그의 전신에 있는 수십 곳의 혈도를 짚어 두 었는데 어째서 갑자기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 다. 그는 곧 민유가 자기의 사제 십팔 명을 쓰러뜨린 후 석파천의 혈도를 풀어준 것이라고 생각했다. 석청과 민유는 백만검이 그를 사로잡게 되었을 때 반드시 혈도를 짚 었을텐데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민유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불렀다. "옥아......" 그 순간, 그녀는 남편이 어떻게 생각할지를 몰라 그만 입을 다물고 남편쪽을 바라보았다. 석파천은 백만검에게 혈도를 짚혀 두 시진 동안 땅바닥에 누워있었으 나 내공이 심후하여 스스로 혈도를 푸는 것을 연구를 하지 않았지만 한 시진도 되기 전에 다른 사람이면 여섯 시진이 걸려야 풀수 있는 혈 도를 부지불식간에 풀고 만 것이었다. 그는 그와 같은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다만 수족이 마비되 어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 이제는 움직일 수 있게 되었구나 하고 생각 할 뿐이었다. 이때 백만검은 큰소리로 물었다. "네 녀석은 어째서 나와 짝이 되어 검술을 겨루려 하느냐? 설산파에 서 배운 검법을 시험해 보겠다는 것이냐?" 석파천은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그들이 검술을 연마하는 것을 보고 약간 배웠긴 하나 잘못 배 웠는지도 모르지......' 이와 같은 생각과 더불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내가 배운 것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모르겠구료. 백 대협과 석 장주 부부께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십시오." 그는 장검을 비스듬히 쳐들고 백만검의 곁에 가 섰다. 이때 그가 펼 치는 초식은 바로 설산검법 가운데 쌍타서래(雙駝西來)라는 일 초였 다. 석청, 민유 부부는 석파천을 응시했다. 그들은 석중옥을 능소성으로 올려보내 검술을 배우게 한 이후 다시는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어언 수 년이란 세월이 흘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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