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장풍파랑 - 47편 (47/61)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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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장풍파랑 - 47편 (4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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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곁에 있는 높은 바위에는 산고가 멍하니 위무일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천화인의 말에 위무일과 성진대사가 시선을 돌렸다.
산고는 황급히 고개를 떨구었다.
지난 행적이 무척이나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성진대사가 삼악오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원래는 삼악오라는 저 자들을 소림의 비처로 데려가리라 생각했지." "그럼 데려가지 않기로 하셨다는 말입니까?" 천화인이 놀라 물었다. "생각하니 저 자들을 소림에 앉혀 놓는다는 것은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누군가는 저 자들이 난동을 부리지 못하도록 뜬눈으로 지켜야 할 터...
제자들은 감히 저 자들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저 자들을 지키기 위해 수행에 바쁜 사형제와 사숙들을 부를 수는 없는 일이고... " 성진대사가 석장을 치며 난색을 표했다. "그래서 결국 저 자들을 맡을 자는 나밖에 없다는 말인데...
장문 사형께서는 저들을 내가 맡아야 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계셨겠지.
무공만 쫓던 지난날의 나의 업으로 돌릴 생각이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라고 어찌 수행에 매진 부처의 발뒤꿈치를 볼 욕심이 없을 소냐?" 그가 고소를 흘렸다. "혈도를 점하고 폐관을 시키면 되지 않습니까?" 천화인이 물었다. "저들의 행동은 백 번 죽어 마땅하다.
허나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저지를 일을 어찌 문제 삼을 수 있겠느냐? 그것도 자비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불문의 제자가...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자들이다.
새의 날개를 꺾듯 사지를 묶어 둘 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원래 저들은 흑살장을 익혔는지라 기혈의 흐름이 예측 불가해 혈도를 점하는데도 어려움이 있느니라." 성진대사가 노안을 찌푸리며 말했다. "결국 소림에서는 맡지 않겠다는 말이군요.
그럼 도대체 저들을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천화인은 갑갑한 모양이었다. "이놈이...
아무려면 내가 내 일이 바쁘다고 저들을 아무렇게 방치할 사람으로 보이더냐?" 성진대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천화인은 황망히 고개를 숙였다. "저 아이!" 성진대사가 손을 들었다. "저 아이가 나를 대신해서 삼악오라는 자들을 맡아 줄 것이다." "대사님! 저 여자가 어떻게 삼악오를 맡는단 말입니까?" 천화인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성진대사가 가리킨 자는 산고였다. "왜 맡지 못한다는 말이냐? 삼악오라는 자들은 나에게도 달려들었다.
하지만 저 여자의 말이라면 꼼짝을 못하더군." " .... " 성진대사의 말에 천화인은 일순, 말문을 잃었다.
그도 삼악오가 산고라는 여자에게는 기이할 정도로 쩔쩔 매던 모습은 보았던 터였다.
하지만 그 이유 하나로 산고라는 여자에게 삼악오를 맡긴다는 것은 너무 위험한 처사라 생각했다. "장강에 흐른 피! 대사님도 아실 것입니다.
저 여자가 삼악오를 맡고 있었던 기간의 결과입니다." 천화인은 우려를 풀지 않았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저 아이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천성이 인세(人世)에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맑은 아이인데.
천성이 지나치게 맑은 자는 선악을 구분할 수 없다고 들었다만...
너는 그 이유를 아느냐?" 성진대사가 느닷없이 위무일에게 물었다.
노승의 입가에 서린 미소...
말 한마디 한 적 없었으나 성진대사는 전후를 모두 아는 듯했다.
위무일은 얼굴을 붉히며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껄껄껄!" 성진대사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저 아이를 더 이상 강호의 풍진(風塵)에 끌어넣지 않겠다고 했었지?" "예." 위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성진대사가 그때 물었을 때는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자신도 강호의 풍파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성진대사는 삼악오를 산고에게 맡기기 위해 그 같이 물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됐다.
저 아이에게 삼악오라는 자들을 맡기도록 하자구나.
내가 너를 치료하는 며칠 동안 법화 사숙보다 더 무시무시한 말로 저 자들에게 으름장을 놓아두었으니 저 아이의 말이라면 더 더욱 꼼짝을 못할 것이다.
앞으로 강호인들의 이목만 조심하면 될 일...
아미타불!" 성진대사가 카랑한 목소리로 불호를 ㅇ다.
그가 석장을 앞세우고 등을 돌렸다. "대사님!" 이번에는 위무일이 성진대사의 발길을 잡았다.
위무일은 성진대사에게 부유하기만 하는 자신의 고충을 하소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성진대사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네놈이 잡지 못하는 마음을 누가 잡아 줄 수 있을라고...
그리고 나는 마음이 어떻게 생겼는지 본 적도 없다!" 성진대사가 묵묵히 발길을 옮기며 소리쳤다.
성진대사의 법력은 이미 타심통(他心通)에 이른 모양이었다.
역시 그는 위무일의 속마음을 꿰뚫고 있었다.
위무일은 더 이상 말을 걸지 못했다. "오죽하면 오탁악세(五濁惡世)일까! 참으로 갈 길이 멀구나!" 성진대사의 장중한 고함이 사자후로 죽림(竹林)을 울렸다.
순간, 대사의 신형이 한 점 그림자로 아련히 사라졌다.
위무일과 천화인은 합장을 했다.
그들은 성진대사가 사라진 자리에 머리를 숙인 채 한동안을 서 있었다.
북방인(北方人)들은 말이 살찌는 것을 보고 문득 가을을 느낀다고 한다.
수로연맹의 사람들에게 가을은 고기들이 살찌는 계절이었다.
삭! 삭! 이만은 날카로운 소도로 회를 뜨고 있었다.
두툼하게 살이 오른 잉어는 제 살이 깎이는 줄도 모르고 입만 벙긋거렸다.
잉어는 이만이 어부들에게 산 것이었다.
물길에 사는 자가 아니랄까 이만의 회 치는 솜씨는 숙수(熟手:요리사)가 저리 가라였다.
그는 제법 모양새까지 갖추어 가며 살점을 가지런히 나무판에 올렸다.
풍덩! 그가 머리와 뼈, 껍질만 남은 잉어를 물 속에 내던졌다. "자! 오늘은 잉어회입니다!" 탁! 이만이 소도를 갑판에 내리 꽂으며 소리쳤다. "가을 강에 회라...
이만, 저놈으로 인해 술을 마시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군." 천화인이 빙긋이 웃으며 선수에서 일어섰다.
위무일도 미소를 지으며 뒤따랐다.
상강에서 배를 띄운 그들은 이제 막 장강의 본류(本流)에 접어들고 있었다.
위무일과 천화인은 이만이 권하는 자리에 각각 엉덩이를 걸쳤다. "피는 제대로 뺐는지 어디... " 천화인이 잉어 살을 한 점 들고 씹었다. "호오! 나는 진작부터 네놈의 칼이 숙수의 칼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가 찬탄을 터뜨리며 술잔을 들었다. "해해해...
아무렴! 원래 나의 꿈은 큰 주루를 여는 것이었다구.
아버지가 반대를 해서 결국 수채에 남았지만...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하니 주루를 여는 것이 나에게 맞는 것 같아.
아이고! 피냄새는 정말 질색이다.
주루를 연다면 꽃 같은 여자에 향기로운 술과 음식... " 이만이 눈을 지긋이 감고 코를 킁킁댔다. "형님! 형님! 아버님께 좀 잘 말씀해 주시오.
이번 일로 아버님도 생각이 달라졌을 걸! 칼을 든 자는 결국 칼로 죽는다구.
다음에 또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 그가 호들갑을 떨었다. "아마 이번 일로 이 채주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천화인의 말에 이만이 박수를 쳤다. "이 채주께서는 네놈이 약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고 계실 게다.
돌아가면 방금 네놈이 포를 떴던 잉어와 같은 고통의 수련이 기다리고 있을 걸!" "아이고!" 이만이 갑판을 쳤다. "하하하!" "핫하하!" 위무일도 웃었고 천화인도 웃었다.
그들이 잉어회로 몇 순배 술을 들이킬 때였다.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선실에서 바깥까지 들려 왔다. "아하! 삼악오와 그 여자를 잊었군." 천화인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가 회를 따로 들어 송판(松板)에 올렸다. "가져다주고 오너라." 천화인이 이만에게 회가 담긴 송판을 건넸다. "내가 왜?" 이만은 화들짝 손을 뺐다.
전에 없이 삼악오는 고분고분 했지만 이만에게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직 악몽(惡夢)이었다. "내가 가져다주지." 위무일이 송판을 받아 선실로 걸어갔다.
삼악오는 죽립을 쓴 채 선실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있었다.
마치 말 잘 듣는 아이들 같은 거동이었다.
위무일이 나타나자 삼악오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칠거렸다.
황오는 손까지 떨었다.
상강에서 위무일의 비룡도에 호된 맛을 본데다 성진대사가 엄포까지 놓아 그들은 위무일을 염왕으로 생각했다.
위무일은 그들 앞에 회가 담긴 송판을 놓았다.
삼악오는 침을 꿀꺽꿀꺽 삼키면서도 위무일의 눈치를 본다고 쉽게 회에 손을 대지 못했다.
위무일은 고소를 흘리며 시선을 돌렸다.
선실의 한 귀퉁이에는 산고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위무일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갑갑하지 않느냐?" 위무일이 산고에게 다가갔다.
산고는 입을 굳게 다물고 꼼짝을 않았다. "나가자." 위무일이 산고의 손을 잡았다.
산고는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마지못한 듯 위무일의 손에 끌려 선실을 걸어나왔다. "먹어 볼까?" 위무일이 선실을 나서자 마자 황오가 조심스럽게 잉어회를 한 점 들었다. "독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지." 백오가 말했다.
백오의 말에 황오가 황급히 잉어회를 놓았다.
그들은 잉어회를 두고 잠깐 동안 입맛만 다셨다.
그러나 결국 그들의 의지는 예닐곱 아이들의 의지 이상은 못되었다. "먹자!" 삼악오들은 누구라 할 것 없이 잉어회에 손을 가져갔다.
우적! 우적! 그들은 마치 걸신들린 것처럼 잉어회를 입에 쑤셔 넣었다.
위무일이 그들을 바라보고 웃자 산고도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같이 술을 마신지 너무 오래 된 것 같지 않느냐?" 위무일이 담담하게 말했다.
산고의 눈초리가 치켜 올라갔다.
그녀는 위무일의 손을 휙 뿌리쳤다.
그녀가 위무일에 앞서 성큼성큼 조촐한 선상 주연이 벌어지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이만의 곁에 우뚝 섰다. "해해해...
여기에 앉으시오." 이만이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산고를 맞았다.
삼악오도 두려웠지만 산고도 그에게는 아직 두려운 존재였다.
산고는 이만을 본체 만체 하며 술판에 놓인 호로병을 들었다.
그녀가 술병을 뺏듯이 들고 선수로 향했다.
콸! 콸! 산고는 강바람에 옷깃을 날리며 술병을 통째로 들이켰다.
위무일은 피식 웃었다.
그가 다시 자리를 잡고 술잔을 들었다. "이제 군산이 다 와 가네.
어떻게 할 셈인가?" 천화인이 술잔을 부딪히며 물었다. "어떻게 하다니?" "쌍십절의 임시 만회가 코앞일세." "내가 가야 할 일이 있는가?" 위무일이 무심한 눈빛으로 물었다. "듣자 하니 총채주 자리는 이미 무일 형님과는 먼 듯 하고...
따라서 무일 형님이야 총채에 갈 일은 없지.
만로방의 총단에 갈 일은 있어도...
하지만 무일 형님이 오기를 바라는 사람은 많을 걸." 이만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끼여들었다.
총채 이야기가 나오자 술병을 기울이던 산고의 손이 멈칫했다. "관심 없네.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 위무일은 쓴웃음을 흘렸다. "자! 술이나 드세." 그가 술잔을 들었다.
천화인과 이만이 각자의 생각 속에 술잔을 들었다.
위무일, 천화인, 이만은 추풍 속을 소요(逍遙)하며 술잔을 나누었다.
산고도 그들을 따라 술병을 기울였다.
벌컥벌컥 들이키는 술이 아니었다.
그녀는 비로소 술맛을 느끼는 중이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네." "무슨 부탁?" "나는 삼악오라는 자들과 함께 당분간 영채에 기거할 생각이다." "호반영채? 호반영채면 왜 또 당분간이야.
호반영채가 무일 형님의 집이 아니었던가?" 이만이 촐싹대며 물었다.
위무일은 이만의 물음에 미소로 대답하며 말을 이었다. "성진대사의 당부를 혹시 잊었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꺼내는 말이네.
삼악오는 나와 같이 있지 않다." "당연한 말 아닌가? 삼악오는 상강에서 성진대사의 화열불면장에 이미 잿가루가 되었지.
내가 걱정하는 것은 철없는 애송이들이다.
그들은 가끔 꿈과 현실을 구별하지 못하고 떠벌린단 말이야.
삼악오가 아직 살아 있다고... " 천화인이 잉어회를 집어들며 말했다. "뭐야! 설마 그 철없는 애송이란 나를 두고 한 말이 아니겠지?" 이만이 씩씩거렸다. "핫하하! 바로 맞추었다." 천화인이 무릎을 치며 좋아라 했다. "이런 젠장! 내가 삼악오 이야기를 왜 꺼내! 그들이 혹시 강호인들의 눈에 띄어 기간의 일들을 제멋대로 떠벌렸을 경우 내가 놈들과 함께 비적질을 한 사실까지...
험! 험!" 이만이 헛기침으로 말을 끊었다. "어쨌든 한수의 대공자께서는 삼악오라는 하오문(下五門)의 무리와 잠시 같이 있었다는 사실에도 수치심을 느낀다.
그런데 내가 왜 스스로 그들의 이야기를 입에 올려." 그가 도끼눈으로 천화인을 쏘아보며 술잔에 코를 박았다. "그리고 내가 호반영채에 있다는 사실도 알리지 말게.
엽 선주에게만 전해 주게." 위무일이 말했다. "자네가 호반영채에 있다는 사실이 어디 감추어지겠나? 그러나 자네가 원한다니 그렇게 하지.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왜 자네가 갑자기 장강의 일에 손을 끊으려 하는지." 천화인은 위무일과 제법 동행을 한 터라 이제 총채주 자리를 놓고 다투고 있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려 들지 않았다. " .... " 위무일은 침묵을 지켰다.
서둘러 천화인의 물음을 털어 버리기 위해서였다.
장강을 떠난다는 말의 푯대 끝에는 언제나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담청! 그 여자는 그가 훌훌 장강을 떠나는 것을 아직도 쉽게 용납하지 않고 있었다. '참으로 질긴 인연... ' 위무일은 가을 바람에 끈끈한 심장을 말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 * * 동정호의 광활한 수면을 바라보며 활짝 열린 삼층 누각이었다.
처마는 반원을 그리며 날렵하게 하늘로 치솟았고 황금색 지붕 네 귀퉁이에는 막 날개를 펴고 호면을 향해 날아오르는 듯한 봉황이 틀어져 있었다.
오의 명장(名將), 노숙(魯肅)이 수군 조련을 위해 쌓은 열병대를 당(唐) 개원(開元) 연간에 악양 태수 장설(張說)이 개축하여 붙여진 이름, 악양루! 두보와 범중암(范仲菴), 숱한 문사들이 풍광을 노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악양루는 남창의 등왕각(藤王閣), 무창의 황학루(黃鶴樓)와 더불어 장강의 대표적인 누각이다.
악양루에 올라 시심(詩心)을 느끼지 못한다면 자신의 감정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맞다면 천태림은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아야 함이 분명했다.
그러나 생각하면 악양루의 풍광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나 지금 그가 처한 상황에서 시심을 느낀다는 것도 또한 우스운 일이었다.
삼악오라는 전대의 노물을 처치하기 위해 훌쩍 떠난 아들...
아직도 소식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종내 침통한 표정을 감추려 하지 않는 가릉강의 도 채주가 있었다.
말은 개의치 말라고 했으나 아들이 저지른 황사로의 완파가 내심 마음에 걸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또한 강릉에서 보기로 한 맞선도 찰박 깨진 상태였으니...
천태림으로서는 이런저런 말을 붙여 볼 염치도 없었다. "다른 분들이 너무 늦는구려."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고작이었다. "다른 분들이라고 해도...
진강의 오 채주가 전부 아니오." "진강의 오 채주 뿐이라니...
상강의 담 채주야 삼악오에게 불귀혼(不歸魂)이 되어서 당연히 못 오겠지만 다른 분들은 어째서... " 천태림은 미간을 좁혔다.
쌍십절의 임시 만회를 앞두고 육대강의 강주(江主)들은 악양루에서 미리 회합을 약조했었다.
가릉강의 도 채주가 앞장서서 주선한 이 회합은 총채의 반격에 대비 육대강의 입을 맞추기 위해서였다. "한수의 이 채주는 오지 못한다고 연락이 없소." "무슨 특별한 이유가... " "역시 이 채주의 관심은 자신의 아들밖에 없소.
곤룡, 마타룡이 삼악오라는 노물들에게 잡혀 있는 그의 아들을 구하러 갔소.
곤룡, 마타룡 중 누가 그의 아들을 구해낼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오.
만약 마타룡이 아들을 구할 경우를 생각한다면 필경 이 채주는 이번 회합이 부담스럽겠지." 도연오가 씁쓸하게 말했다.
천태림은 안색을 찌푸렸다.
한수의 이 채주를 끌어들이는 일이 이제는 자신의 능력밖으로 나가 떨어졌음을 실망해서가 아니었다.
도연오가 삼악오를 거론하자 그는 다시 아들이 염려되었다. "민강은?" 천태림이 자신의 염려를 숨기며 물었다. "마 채주는 동정호로 오지도 않았소.
자신의 아들을 대신 보냈다던군." "이런 중요한 일을 앞두고 아들을?" "무슨 사정이 있겠지요.
민강의 마 채주는 경박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아니니...
타강에는 물론 가 보셨겠지요?" "물론이오.
이것이 좋다 저것이 좋다 끊어서 말을 하지는 않더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우리에게 별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듯 하던데... " "바로 맞추었소.
타강은 민강의 뜻을 추종하다시피 따르는 수채! 민강이 화인, 그 아이를 지지하기로 했소." "정말이오?" 천태림이 기쁨을 감추지 않고 물었다.
그로서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로 반가운 소식이었다. "민강의 외당당주라는 자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했소.
나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는데 확인해 본 결과 분명하오." "확인을 어떻게?" "얼마 전, 빠른 배 한 척으로 아들놈을 마원이라는 아이가 탄 민강의 배에 보냈소.
술자리를 만들어 의중을 떠보라고 했는데 의중을 떠 볼 필요도 없이 그 아이 스스로 화인의 지지를 분명히 선언했다고 하오." "음... " 천태림은 수염을 쓸었다.
민강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대강의 지지가 하나 더 늘었다는 이상의 의미가 있다.
대체로 민강은 장강에 자신의 목소리를 높여 본 적이 없다.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할뿐...
그래서 민강은 다른 여러 수채들로부터 적잖은 존경의 눈길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민강의 합류는 바로 천화인이 총채주가 되어야 하는 정당성을 더욱 보장받는 것이기도 했다. "민강의 지지를 받아 냈다는 것은 정녕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소.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오.
삼악오라는 자들이 동정호계와 파양호계를 쑥밭으로 휘젓고 다녔으니...
쌍십절의 만회가 끝나면 세력 비교를 다시 해 보기로 합시다." 도연오의 말에 천태림은 머리를 끄덕였다.
천태림과 도연오는 말을 멈추고 진강의 채주, 오유(吳愈)를 기다렸다.
민강의 합류 소식에도 불구하고 천태림의 마음은 다시 불안했다.
아들이 걱정되었고 곁에 있는 도연오의 심중도 염려되었다.
도연오와는 강릉에서 만난 후, 줄곧 배를 나란히 하고 이곳까지 왔었다.
중도에서 몇 번 선상을 오가며 술잔도 기울였다.
그럼에도 그는 민강의 합류라는 중요한 소식을 이제야 입밖에 내고 있었다.
그만큼 도연오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증거...
도연오는 민강의 마 채주처럼 자신이 한 번 뱉은 말을 천금의 무게로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또한 천태림의 마음을 더욱 불안하게 하는 요소였다. '한 가지 호재(好材)가 있으면 반드시 또 한 가지 악재(惡材)가 따르는구나.
이렇게 피 말리는 날들이 언제 끝날지.' 천태림은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천태림과 도연오는 입을 굳게 다물고 동정호를 응시했다.
악양루를 오르던 문사들과 유객들은 그들을 피해 주위를 서성거렸다.
천태림도 도연오도 반백의 나이다.
그럼에도 악양루를 버티고 선 그들의 위맹한 기도는 주변을 위압하기에 충분했다.
천태림과 도연오가 진강의 채주, 오유를 물경 한 시진 이상 기다렸을 때였다.
ㅊ! ㅊ! 열을 지어 움직이는 무사들의 발걸음 소리와 함께 사인거(四人車)가 천천히 악양루를 오르고 있었다. "쯔쯔...
저 버릇은 여전하군." 사인거의 행렬을 지켜보던 도연오가 혀를 찼다.
사인거에는 사자코에 넓적한 얼굴의 노인이 타고 있었다.
이순을 족히 넘은 듯 한데 금의에 옥대를 두른 그의 행색은 치장을 좋아하는 젊은이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그가 바로 진강의 채주, 오유였다.
오유는 원래 유달리 위세를 부리기 좋아했다.
오늘도 그는 예외 없이 화려한 금의에 수하들을 대동하고 악양루를 오르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너무 분주할 것 같군." 천태림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갑시다.
마침 배도 널찍한 투함을 가져왔군." 휙! 말이 떨어지자 마자 도연오가 사인거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천태림이 그 뒤를 따랐다. "쯧! 모처럼 악양루에서 등악양루(登岳陽樓)를 불러 볼까 했더니... " 자신의 투함에 오르며 오유는 입맛을 다셨다. "오 채주의 풍취(風趣)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소." 도연오가 옅은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무협을 넘어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이 사는 방식이야 늘상 이렇지요.
강동(江東)은 위세를 부리지 않으면 사람 취급을 받기 힘든 곳입니다.
껄껄껄!" 오유가 거드름을 피우며 웃었다.
오유의 거드름이 이미 눈에 익을 대로 익은 천태림과 도연오인지라 그들은 오유의 언행(言行)을 별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오유가 평소처럼 거드름을 부리자 천태림은 안심조차 되었다.
오유의 심중에 별반 변화가 없다는 얘기... "여봐라!" 투함에 오르며 오유가 고함을 질렀다.
그가 고함을 지르자 투함에 있던 진강의 수하들이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정자세를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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