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1 - 17편 (17/20)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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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1 - 17편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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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섬에 들어가 오이를 길러 그것으로 곡식을 샀으며, 또 여러 척의 배로 경강(한강)에 이르러서는 낮고 습기가 있는 곳에다 흙으로 축대를 쌓았는데 높이가 수십 자나 되었다.
거기에다 흙집을 지어 밤에는 흙집에서 자고 낮에는 흙집 위에 올라가 지냈는데, 그 흙집을 토정이라 하였다.
그곳에서 얼마 동안 살다가 버렸다.
그는 또 쇠로 갓을 만들어 쓰다가 벗어서는 거기에다 밥을 지어 먹기도 하였으며, 끝나면 씻어서 다시 쓰곤 하였다(지금의 벙거지가 이것이다).
더러는 패랭이를 쓰고 거친 칡옷에다 나막신을 신고 팔도를 두루 돌아다니며 스스로 천한 사람의 일을 하여 밑바닥 생활까지 모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일생 동안 남에게 맞아본 적이 없었다.
그가 하루는 느닷없이 민가에 침입하여 어느 부부 곁에 앉아 있었다.
주인이 크게 화를 내어 그를 때리려고 하다가 그가 늙은 사람이라 온화한 말로 내쫓기만 하였다.
또 볼기 맞는 형벌을 받아 보려고 일부러 높은 관원이 지나가는 앞길을 범하였더니 그 관원이 화를 내어 볼기를 치려고 하다가 자세히 살펴보고는 그 모습이 이상하므로 볼기치려던 것을 그만두었다.
그의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는데 장사지낼 묘터를 보니 자손 중에 반드시 두 사람의 정승이 나올 터이기는 하지만 막내아들에게는 불길하다는 터였는데, 막내아들이란 바로 이지함 그였다.
그러나 이지함은 스스로 그 불길한 것을 떠맡겠다고 하였는데, 뒤에 그의 조카 이산해는 정승이 되었고, 이산보는 벼슬이 1품이었지만 그의 아들은 현달하지 못하였다.
포천현감이 되어 다갈색 무명 베옷에다 짚신을 신고 부임 하니 딸린 관속들이 음식을 차려 올렸는데, 이지함이 눈여겨 자세히 보고는 수저를 들어보지도 않고 말하였다. "먹을 것이 없다" 아전들이 뜰에 꿇어앉아 아뢰었다. "고을에 토산물이 없어 차린 음식에 특별한 것이 없었으니 다시 차려 올리겠습니다" 조금 있다가 진수성찬을 차렸지만 이지함은 또 앞서와 같이 말할 뿐이었다. "먹을 것이 없다" 아전들이 겁을 내어 벌벌 떨면서 죄주기를 바라므로 이지함이 말했다. "우리 나라 백성들의 생활이 어렵고 고달픈 것은 모두 먹고 마시는데 절제함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음식을 차릴 때에 소반 사용하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오곡을 섞어서 지은 밥 한 그릇과 나물을 넣어 끓인 국 한 그릇을 갈모나 갑에 담아서 올리라" 이튿날 포천 고을 안의 품관이 인사하러 찾아오자 말린 나물로 죽을 쑤게 하여 그 죽을 들도록 권하였다.
품관들은 갓을 나직이 내려 숟가락을 들고서 조금 먹다가 조금 토하곤 하였는데 이지함은 한 그릇을 다 먹었다.
그러다 얼마 있지 않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니 고을 사람들이 길을 막으며 만류하였지만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집안 살림이 너무 가난하여 끼니를 잇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내당에 앉았노라니 부인이 말하였다. "남들은 모두 당신을 비범한 사람이라고 여기는데 어찌 저를 위해서는 조금도 시험을 하지 않으십니까" "내가 곧 나비를 만들어 낼 터이니 구경하겠소?" "지금은 깊은 겨울인데 어찌 나비가 있단 말입니까.
당신 말씀이 너무나 허망할 뿐입니다" "구경만 하시오" 이지함이 곧장 옷을 꿰매는 재료며 용기를 담아 둔 데로 가서 여러 가지 색깔의 재단하고 남은 비단과 명주 조각을 가져다 손에 쥐고 무어라고 중얼중얼 주문은 외우고는 조금 있다가 공중으로 던져서 흩으니 나비가 분분하게 방 안에 가득하고 오색이 찬란한데, 각기 재단하고 남은 본바탕의 색깔을 따라 나비가 되어 오락가락 날며 춤을 추는데 현란스러움이 헤아리기 어려웠다.
부인이 그 광경을 보고 놀라자, 이지함이 다시 공중을 향하여 손바닥을 펴고 주문을 외웠다.
나비가 모두 즉각 손바닥으로 도로 모였는데 조금 있다가 쥐었던 손바닥을 펴니 비단과 명주 조각이 그전처럼 있었다. "지금 식량이 떨어져 밥을 지을 수 없는데 어찌 신기한 술수를 부려 이렇게 급박한 형편을 구제하지 않으십니까?" "그쯤이야 어려울 것이 없지요" 이지함이 즉시 계집종에게 놋그릇 한 개를 주면서 말했다. "이 그릇을 가지고 경기 감영의 다리 앞에 가면 한 노파가 백전을 주며 사려고 할 것이니 팔아 오너라" 계집종이 명을 받고 갔더니 과연 그릇을 사려는 사람이 있었고 모두 가르쳐준 그대로였다.
그래서 그릇을 팔고 값을 받아 오니 또 명하였다. "네가 이 돈을 가지고 서소문 밖의 저자 가에 가면 대나무를 결어 만든 삿갓을 쓴 사람이 급히 수저를 팔려고 할 터이니 사가지고 오너라" 계집종이 또 가서 보니 과연 말한 그대로였으므로 수저를 사다가 바쳤는데 은으로 만든 수저였다. "네가 이 수저를 가지고 경기 감영 앞으로 가면 어느 하인이 금방 은수저를 잃어버리고 같은 색깔의 은수저를 구하려고 할 터이니 이것을 보이면 열 다섯 냥의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팔아 오너라" 계집종이 가보니 모두가 가르쳐준 그대로이므로 열다섯 냥을 받아다 바쳤다.
이지함이 다시 한 냥의 돈을 주면서 말했다. "그릇을 샀던 노파가 처음에는 그릇을 잃어버려 그것을 대신하려고 샀다가 이제는 그 그릇을 찾게 되어 샀던 자에게 도로 물리려고 할 것이니 도로 물려주고 오너라" 계집종이 또 가서 보니 과연 그 말과 같으므로 그릇을 도로 가지고 와서 바쳤다.
이지함이 그 남은 돈과 그릇을 부인에게 주어 아침, 저녁의 끼니를 잇게 하였다.
부인이 더 많은 양을 청하였더니 이지함이 웃으며 말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오.
재물이 많은 자에게는 반드시 재앙이 따르게 마련이니 더 보탤 필요가 없소" 그 뒤에 그가 아산현감이 되었는데, 어느 늙은 아전이 죄를 범하였다. "네가 비록 늙기는 하였으나 마음은 어린아이와 같다" 이지함이 나무라며 그의 갓을 벗기고 센 머리를 땋아 애들 머리처럼 만들게 하고 벼루를 들고 책상 앞에서 시중들게 하였다.
그 늙은 아전이 원한을 품고 있다가 몰래 지네 즙을 가져다 술에 타서 올린 것을 이지함이 마시고 죽었는데, 나이 60세였다.
이조 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는 문강이다.
천기를 누설한 정렴 정렴(1506-1549)의 본관은 온양이고, 자는 사결, 호는 북창이며 정순붕의 아들이다.
그는 남달리 총명하여 어릴 적에 벌써 흩어진 마음을 가다듬고 신명과 통할 수 있어 가까이는 여염집 거실의 은미한 것과 멀리는 네 종류의 이족과 여덟 종류의 만족들의 각기 다른 풍속과 기질 그리고 개를 부르는 소리며 백로의 울음소리를 귀신처럼 알았다.
14세에 중국에 들어가니 유구국 사람이 특이한 기상의 정렴이 도착하는 것을 바라보다가 와서 두 번 절하고 배우기를 청하였다. "제가 점을 쳐보았더니 그 점괘에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중국으로 들어가 틀림없이 진인을 만날 것이라고 하였는데, 당신이 바로 진인이 아닙니까?" 이에 외국 사람들이 모두 다투어 찾아와서 배우려고 하므로, 정렴이 사방 이족의 말로 유창하게 응답해 주었다.
모인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고 이상스럽게 여겼으며, 그를 하늘에서 내려온 사람이라고 불렀다.
정렴은 19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서는 다시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양주의 괘라리에다 살 곳을 정하였다.
어느 해 9월 하순에 늦게 핀 국화를 두고 시를 읊었다.
십구 이십구 모두 구로 된 숫자여서 구월이라 구일이 일정한 때가 없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모르지만 뜰에 가득한 국화만은 알도다 그의 동생 고옥이 화답하였다.
세상 사람들 중양절을 가장 소중히 여기지만 중양절에만 흥취를 길게 할 필요는 없어 언제나 국화를 마주보며 막걸리 마시면 구십 일 간의 가을 어느 날인들 중양이 아니랴 정렴이 본래 휘파람을 잘 불었다.
그의 아버지 정순붕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하루는 금강산에 놀러 갔다.
북창이 따라갔더니 정순붕이 말하였다. "사람들이 네가 휘파람을 잘 분다고 하였으나 내가 한번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이런 경치 좋은 곳에 와서 한 곡조 불어 보는 것이 좋겠다" 이튿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데 일찍 떠나려고 하니 중이 만류하였다. "오늘은 비가 내려 높이 올라갈 수 없습니다" "오후 늦게는 틀림없이 날씨가 갤 것이다" 정순붕이 이렇게 말하고 마침내 청려장(명아주 대로 만든 지팡이)을 짚고 갔는데, 한낮이 되자 정말 날씨가 개었다.
정순붕이 중을 따라 올라가는데 산꼭대기에서 피리 소리가 울려 바위 골짜기가 모두 진동하는 듯하였다.
중이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깊은 산속 더할 나위 없는 뛰어난 지경에 누구의 피리 소리가 이렇게도 맑고 웅장한가.
틀림없이 신선이 부는 것이리라" 정순붕은 속으로 누 분다는 것을 알고 올라가서 보았더니 피리 소리가 아니고 정렴이 부는 휘파람 소리였다.
정렴이 불교에 마음으로 통하는 술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 요점이 되는 관건을 얻지 못하여 한탄하더니 어느 날 절에 들어가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히고 사물을 관찰한 지 3, 4일 만에 문득 환하게 깨우치고 백리 밖의 일을 곧장 알아맞추기가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맞아떨어져 백 가지에 한 가지도 어긋나지 않았다.
어느 날 그곳에 살고 있는 중이 찾아왔다.
정렴이 그를 보며 말했다. "오늘 집에 있는 종이 술을 가지고 올 것이오" 잠시 후 그가 다시 놀란 얼굴로 다시 중에게 말했다. "이상하기도 하군.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었소" 얼마 있다가 종이 와서 말했다. "술을 지고 오다가 고갯마루에서 바위에 걸려 넘어지는 바람에 술병이 모두 깨졌습니다" 정렴이 항상 조용한 방에 거처하면서 장생불사하는 선약을 불을 때 만드는 법을 익히기도 하였다.
그 무렵 손님 한 분이 왔는데 가난한 선비였다.
한창 얼어붙는 겨울이어서 그 선비가 몹시 추워했다.
북창이 창고 곁에 있는 차가운 쇳조각을 가져다 겨드랑이 밑에 끼고서 다리미질하듯 왔다갔다 하다가 꺼내어 그 손님에게 주었더니 마치 활활 타오르는 화로같이 더워서 땀이 흘러 그 손님의 온 몸을 젖게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이 고질병을 앓은 지 몇 달이 되어 침과 약을 두루 써 보았지만 낫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북창이 앉아 있던 자리의 잔디 한 움큼을 뜯어다 손으로 문지르고 입으로 불어 따뜻하게 한 뒤 그것을 복용하게 하였더니 병이 금방 나았다.
또 절친한 친구 한 사람이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는데 의원이 지어준 약이 효험이 없으므로 그 사람의 아버지가 북창에게 신기하고 특이한 술수가 있음을 익히 알고 북창에게 아들의 명수를 캐어 물었다. "정해진 햇수는 이미 다 끝이 나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자 친구의 아버지가 울면서 구원의 손길을 뻗어 주기를 바라므로 북창이 그 정의를 가련하게 여겨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정 그러시면 저의 10년의 수명을 줄여서 어르신 아들의 나이에다 보태 드리겠습니다.
이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어르신께서 내일밤 삼경에 혼자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틀림없이 붉은 옷을 입은 중과 검은 옷을 입은 중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 있을 것입니다.
그 앞에 가서 애절하게 간청을 하면서 어르신 아들의 목숨을 연장시켜 달라고 애원하되 중이 아무리 욕을 하며 내쫓더라도 물러나지 말고 아무리 지팡이로 때리더라도 싫어하거나 피하지 말고 정성을 들여 천번 만번 간곡히 빌면 소원을 풀 수 있을 것입니다" 친구의 아버지가 북창의 말대로 밤이 되어 달빛을 의지하여 혼자 남산의 누에머리 봉우리에 올라가니 과연 두 명의 중이 있었다.
그들 앞에 나아가 공손히 절을 하고 울면서 사정을 고해 바치니 두 중이 깜짝 놀라며 말하였다. "지나가던 중이 이곳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허망한 짓을 하시오.
당신 아들의 수명이 길고 짧은 것을 내가 어찌 알겠소.
빨리 물러가시오" 그 친구의 아버지는 못 들은 체하며 두 손을 모으고 이마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하며 간절히 빌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 사람은 미친 사람이니 때려서 쫓아 버리자" 중이 화를 내며, 마침내 지팡이를 들어 마구 두들겨 패므로 그 아픔을 참을 수가 없었지만 죽기로 버티면서 물러서지 않고 땅에 엎드려 울면서 애걸하였다.
그러기를 한참하고 있으니 검은 옷을 입은 중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는 틀림없이 정렴이 가르쳐 주고 인도한 것이다.
그 아이가 한 짓이 한심스럽기는 하지만 저의 수명 10년을 줄여서 이 사람의 아들 수명에다 보태는 것은 해로울 것이 없다" 붉은 옷을 입은 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하였다.
두 명의 중이 그제야 그 사람을 부축하여 일어나게 하고 위로하였다. "잠깐 당신을 시험했을 뿐이오" 검은 옷을 입은 중이 소매 속에서 책 한 권을 꺼내어 붉은 옷을 입은 중에게 전해 주니 그 중이 받아서 달빛에다 대고 붓을 들어 글자를 쓰는 듯하더니 곧이어 말했다. "당신의 아들은 지금부터 수명이 연장되었으니 돌아가거든 정렴에게 다시는 천기를 누설하지 말라고 전하여 주시오" 그리고는 갑자기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붉은 옷을 입은 중은 남두였고, 검은 옷을 입은 중은 북두였다.
그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니 아들의 병이 점점 나아 정말 10년을 더 살았고, 북창은 세상에서 44년 동안 살았다.
아내가 죽자 다시 장가들지 않고 천수를 다한 정작 정작(1533-1603)의 자는 사경, 호는 고옥이고, 정렴의 동생이다.
어렸을 적에 강가의 정자에서 놀다가 멀리 보이는 백사장 위에서 어떤 사람이 가로로 부는 피리를 불고 있는 것을 보고 즉시 시를 읊었다.
멀고 먼 모래 위에 있는 사람 처음엔 한 쌍의 백로로 의심했지 불어오는 바람결에 갑자기 가로 부는 피리 소리 들리니 해맑은 가락에 강과 하늘이 저무네 정작은 깨끗한 것을 좋아하여 금강산에 들어가 수련하는 방법을 터득하였으며, 중년에 아내가 죽자 다시 장가들지 않고 정욕을 끊은 지 36년 만에 타고난 수명을 다하고 죽었다.
정작은 사람의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의 성격을 감별하는 기술을 통달하여 기이한 경험이 많았고, 초서와 예서를 잘 쓰고 시 읊기를 좋아하였다.
세상에 전해지기로는 정작은 백일하에서도 그림자가 없다고 하였다.
벼슬은 사평에 이르렀으며, 술을 즐기며 시를 잘하였고 또 의술에도 조예가 깊어 신기한 효험이 나타난 적이 많았다.
어떤 사람이 우연하게 사기의 빌미로 고통스러운 병에 걸려 며칠 만에 고질이 되었는데 고옥이 약으로 치료를 하였더니 그 증세가 다섯 번 변하므로 그에 대응하는 약 또한 다섯 번을 변경하여 모두 효험을 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고옥에게 청원하였다. "내가 당신이 병을 고쳐준 그 사람과는 대대로 쌓인 깊은 원수 관계여서 이미 옥황상제에게 고하여 반드시 죽이고야 말겠다고 작정하고서 내가 다섯 번이나 그의 증세를 변경시켜 가며 당신의 약을 회피하였소.
그런데 당신은 줄곧 다섯 번이나 그 약을 변경시키면서 그를 낫게 하였으니 내가 앞으로는 당신을 이기지 못할 듯하오.
그렇지만 반드시 여섯 번 그의 증세를 변경시킬 터인데 당신이 만약 다시 새로운 약으로 그를 치료한다면 나는 당장 그 원수를 당신에게로 옮겨 당신을 따라다니며 빌미가 되겠소" 고옥이 깨어나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데 조금 있으니까 환자의 집안 사람이 급히 왔으므로 그 까닭을 물어 보았더니 그의 병 증세가 정말 변경되었다는 것이었다.
고옥은 꿈에 나타났던 징조를 염려하지 않고 또 증세에 따라 투약하도록 명하여 마침내 그 사람의 병이 낫게 되었다.
대체로 사기가 사람에게 빌미가 된다고는 하지만 반드시 몸을 보양하는 혈기가 허약함을 틈타서 그 사기를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이며, 사람이 좋은 약으로 잘 막아내기만 하면 사기가 그 틈새로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다 고옥은 보통 사람과 다르기 때문에 사기가 감히 원수의 대상을 옮겨 정기를 침범하지는 못하였다.
고옥이 일전에 친구 서너 명과 여름에 모여서 대화를 하였는데, 짧은 처마로 내리쬐는 햇볕에 더운 기운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만약 호수 위에 있는 높은 다락에 앉아서 옷을 벗어 흔들며 발을 씻는다면 더위를 잊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별로 어렵지 않으니 당장 자네들을 위하여 그렇게 해보겠네" 고옥이 곧장 문 밖으로 나가 세숫대야에다 물을 붓고 부적을 넣은 다음 무어라고 중얼중얼 주문을 외더니, 조금 있다가 뒤편의 창문을 열어 젖히고 친구들에게 그쪽을 보라고 하였다.
친구들이 그쪽을 보니 집 아래에 갑자기 호수가 생겼는데 너비는 1천 이랑쯤 될 정도로 넓고 아득하여 끝이 없었으며,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가운데 섬이 솟아 있는데, 채색을 한 다락집이 아스라하게 보이고 무지개 다리로 육지와 통하게 하여 완연히 그림 속의 거울 같았다.
고옥이 친구들을 데리고 무지개 다리를 거쳐 다락집으로 올라가니 연꽃 향기가 풍겨 오고 느릅나무와 버드나무 사이로 바람이 솔솔 불어와 황홀하기가 신선이 살고 있다는 낭원에 올라 시원한 바람을 타고 공중에 날아오르는 듯하여 청량관에서 한번 씻고 그치는데 비교할 것이 아니었다.
조금 있으려니까 선경에 있는 아이가 술잔과 소반을 받들어 올리는데, 좋은 안주와 맛있는 술이었다.
모두 실컷 마시고 취하여 조용히 할 이야기도 결렬하게 하며 술이 몇 순배 돌자 그대로 물 밑에서 잠이 들었는데, 서로 다락 속에서 상대방을 베고 날이 저무는 줄 몰랐다.
그러다가 깨어 보니 바로 낮에 앉아 있었던 조그마한 집이었으므로 친구들이 일제히 떠들면서 흩어졌다.
또 한번은 고옥이 그의 형 북창을 따라서 고향으로 가는데, 어느 산골 마을에 이르러 어떤 집 앞을 지나다가 나쁜 기운이 서려 있는 것을 보았다. "애석하기도 하다.
저 집안이여" 북창이 타일렀다. "어찌 그리 경솔하게 말을 하는가.
잠자코 지나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지금 이미 말을 내뱉었으니 그 집안에 재앙이 그치도록 해주지 않는다면 그것 역시 군자가 인을 베풀고 널리 구제하는 의미가 아닙니다" "자네 말이 옳으네.
나는 먼저 떠날 터이니 자네 혼자 가 보게" 고옥이 마침내 그 집에 들어가서 지나가는 나그네로 길을 잃고 날이 저물었음을 핑계 대며 하룻밤 묵어 가기를 요청하였다.
주인이 고옥의 외모가 헌걸차고 장자의 기풍이 있어 보이므로 즉시 허락하였다.
밤이 이슥하자 고옥이 주인에게 넌지시 말했다. "아까 주인집 문 앞을 지나다가 마침 상상하기 어려운 큰 재화가 닥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을 위하여 그 재해를 없애 주고자 합니다.
만약 내 말을 허탄하고 망령되다고 하지 않는다면 재화가 바뀌어 복이 될 것이니 주인께서 기꺼이 따라 줄 수 있겠습니까" 주인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렇게 보셨다니 감히 명을 따르지 않겠습니까" "빨리 백탄 수십 석과 큰 나무궤 하나를 장만하십시오" 주인이 즉각 그대로 따랐다.
그러자 백탄을 뜰 가운데다 쌓고 궤는 그 곁에다 두고서 관솔불로 백탄에다 불을 붙이니 타는 불꽃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이때에 그 집안 사람과 이웃 사람들이 모두 모여 구경을 하는데 나이 가 6, 7세 쯤 되어 보이는 주인의 아들도 그 틈에 끼여 불꽃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옥이 재빠르게 그 주인의 아들을 잡아 궤 속에 집어 넣고 궤 뚜껑을 닫아 버렸다.
그러자 주인과 구경하던 사람들이 놀라 허둥대며 어쩔 줄 몰라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러나 고옥은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빨리 궤를 끌어다 이글거리는 백탄 위에 처넣게 하였다.
주인의 온 가족들은 가슴을 치고 발을 동동 구르며 모두 고옥을 향하여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미 어쩔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러 단지 울부짖으며 통곡할 뿐이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불길이 그 궤를 태워 터지게 하였는데 비린내가 사람들의 코를 찌르므로 타는 궤 쪽을 보니 큰 구렁이 한 마리가 불에 타 꿈틀거리더니 조금 있다가 몸을 휘감은 채로 죽고 말았다.
고옥이 종에게 명하여 타다 남은 불은 치우고 타고 남은 백탄의 재를 쓸어 모으게 하고는 몇 치쯤 되는 낫의 끝부분을 찾아내어 주인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이 물건을 기억하겠소?" "기억하고 말고요.
제가 10년 전에 연못을 파서 물고기를 길렀는데 날이 가고 달이 가도 물고기의 숫자가 불어나지 않고 점점 줄어들어 이상히 여겨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큰 구렁이란 놈이 물고기를 잡아먹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화가 치밀어 그 요물을 없애 버리려고 큰 낫을 휘두르자 구렁이도 성이 나서 대가리를 쳐들고 요동하다가 낫의 끝부분이 구렁이의 몸통을 찔렀는데 구렁이가 버둥대는 바람에 낫 끝이 부러지고 구렁이도 죽었습니다.
이 쇠숱이가 그때 부러졌던 낫의 끝부분이 아닙니까?" 주인이 종을 불러 창고 속에 꽂아둔 끝이 부러진 낫을 가져오게 하여 맞추어 보니 바로 그 낫의 끝부분이었다.
그제야 주인은 자신의 어리석음에 놀라고 정작의 기이함에 감탄하였다. "주인의 아들은 바로 구렁이의 독과 정기로서 원수를 갚으려고 했던 것이니, 만약 며칠 더 지났으면 주인의 집안에는 엄청난 재화를 미쳤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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