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들 모두가 그를 처벌한 것이지 내가 처벌한 것이 아니다" 선조 25년에 왜적이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바다를 건너 침입하였다. 선조가 신립을 보내어 막게 하였다. 떠나는 날 선조가 신립을 불러 보고 적이 어떠냐고 물으니 신립이 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었다. 그러자 선조가 이르렀다. "변협은 항상 왜적을 대적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말하였는데 경은 어찌 쉽게 말하는가" 신립이 나간 뒤에 선조는 변협을 그리며 말하였다. "변협은 참으로 훌륭한 장수였기에 내가 항상 잊지를 못한다. 그 사람이 있으면 내가 무엇 때문에 왜적을 걱정하겠는가" 선조는 한탄하고 애석해 하기를 마지않았다. 열흘이 채 못 되어 신립이 패배하여 죽었는데 변협이 죽은 지 겨우 3년 만이었다. 이보다 앞서 을묘왜변 때에 변협이 해남군수로 있었는데 왜구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여러 진과 각 고을이 잇달아 함락되어 호남이 크게 놀랐다. 변협은 혼자서 고을을 여유 있게 보전하면서 수비를 하는데 조금도 동요되는 기색이 없었고 여러 번 기묘한 전략을 세워 적을 막았다. 마침내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요격하여 한 번의 교전에서 죽이고 사로잡은 왜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 조선 개국 이래로 없었던 쾌거였다. 그리고 왜적에게 사로잡혔던 명나라 사람들을 귀국시키니 천자가 가상히 여겨 은과 비단을 상으로 주면서 칭찬하였다. "현감 변협이 외로운 성을 지켜 홀로 보전하였다" 이때 변협의 나이 28세였다. 그가 여섯 살 때에 달려가다가 깊은 우물 속에 떨어졌는데 우물 안의 돌을 부여잡고 물에 빠지지 않고 있다가 새벽에 이르러 이웃 사람이 물을 길러 온 것을 보고 천천히 말하였다. "나는 아무 집의 아이인데 큰 새끼줄을 가지고 오시오" 온 집안이 깜짝 놀라 달려가 보니 변협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태연하게 있었다. 벼슬이 공조 판서에 이르렀고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세도가의 상납 요구를 떳떳하게 물리친 김렴 김렴의 본관은 상산이고, 자는 달원, 호는 삼휴당이다. 명종조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서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로 발탁되었다가 권세 잡은 신하들에게 미움을 받아 외직으로 쫓겨나 한산 군수가 되었다. 그때에 한산 고을에 괴상한 병이 있어 수령이 부임하면 번번이 죽어 나가므로 사람들이 간혹 미리 조문을 하니, 김렴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는데 한산 고을의 괴상한 병이 하늘을 어떻게 하겠는가"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수레를 타고 한산 고을에 이르렀다. 그 이튿날 제단을 설치하고 귀신을 불러 글로써 타일렀더니 그 뒤로부터 근심이 끊겼고, 처음에 비웃던 자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김렴은 언제나 청렴결백한 뜻을 잃지 않았다. 어느 귀족이 물고기와 산나물의 상납을 요구하자, 김렴이 편지로 답하였다. "물고기는 1천 이랑의 물 밑에 놀고 산나물은 1만 겹의 산 속에 있는데 지방 장관이 된 자가 고기 잡는 어부도 아니고 나물 뜯는 아낙네도 아닌데 어떻게 구하겠소" 그리고는 벼슬을 사임하고 한 필의 말과 아이 종 하나를 데리고 떠나 천령에 이르러 시를 읊었다. 말은 시끄러운 속세의 길에서 미끄러지고 비는 푸른 산 구름 떠 있는 곳으로 돌아오네 이에 호미를 메고 가던 농부가 문득 화답하였다. 초야에 묻혀 있음이 조정에 있는 것보다 나으니 흰 구름과 벗하기를 그대에게 바라오 그는 드디어 벼슬할 생각을 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