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1 - 16편 (16/20)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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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1 - 16편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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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름은 이적이었는데, 중종이 언자를 더하도록 명하였다.
중종 8년(1513)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이듬해에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당시 나이 24세였다.
사간이 되었을 때에 김안로는 유배된 상태에 있은 지 오래였다.
어느 날 심언광이 이언적에게 물었다. "김안로가 소인임을 어떻게 알았소?" "김안로가 경주부윤으로 있을 적에 본인이 마침 경주 훈도가 되었소.
그의 마음가짐과 하는 일을 꼼꼼히 관찰하니 정말 소인의 마음과 모습이었소.
그 사람이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면 반드시 나라를 그르칠 것이오" 심언광이 화를 내며 조정에서 정식으로 표명하였다. "이 아무개가 조정에 있으면 김안로가 조정에 들어올 수 없다" 얼마 뒤 이언적이 마침내 탄핵을 받고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김안로는 조정으로 다시 돌아와 이언적이 자신을 공격하였다는 사실을 듣고도 심하게 화를 내지 않았다.
또 경주 사람으로서 김안로에게 뇌물을 주면서 벼슬을 구한 자가 있었는데, 김안로가 그 사람에게 말했다. "이언적이 이 사실을 알지 못하게 조심하라" 이언적의 친구로 경주에 살았던 진해현감 김세량이 꿈에 이언적을 보았는데, 그가 시를 지어 주었다.
신발을 평상 아래에다 던지고 떠나니 정기는 하늘과 통하네 그려 담담히 한 초가 속에 있다가 혼자 신선봉에서 노니도다 놀라 깨어 그의 아들에게 선생이 돌아가셨다고 말하였는데, 뒤에 들으니 정말로 선생이 죽은 날이었다.
그의 아들 이전인이 귀양지에서 관을 가마에다 얹어 고향으로 모시고 오는데, 관 앞의 길가에 엎드려 있으므로 보는 이들마다 눈물을 흘렸다.
마침 한겨울이라 얼음과 눈이 산에 가득하여 길이 막혔는데 나무꾼들이 흙을 져다가 길에 뿌려 주어 편안히 떠나게 하였다 한다.
시호는 문원이며, 문묘에 종사되었다.
정미사화를 빚어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간 정언각 정언각(1498-1556)의 본관은 해주이고, 자는 근부이다.
진사 정희검의 아들이고 허암 정희량의 조카이다.
중종 11년(1516)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17년 뒤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명종 2년(1547)에 정언각이 부제학으로 있으면서 그의 딸이 제 남편을 따라 시댁으로 돌아가는데 전송하러 양재역을 지나다가 벽에 붙어 있는 불온물을 보니 이름은 숨긴 채 붉은 글씨로 씌어 있었다.
여자 임금(문정왕후를 가리킴)은 위에서 정권을 잡고 간신 이기 등은 밑에서 권력을 농락하니 국가가 망할 것은 서서 기다리는 격이니 어찌 한심스럽지 않겠는가? 정언각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매우 즐거워하며 벽에 붙어 있은 글을 그대로 오려 가지고 대궐로 들어가 임금에게 아뢰며 그것을 봉하여 올렸다. "이것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여 임금을 원망하는 자들이 한 짓이다" 명종이 명을 내려 세 정승을 불러들이도록 하였다.
삼정승인 윤인경, 이기, 정순봉이 아뢰었다. "이 글을 보니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한 짓이 아닙니다.
지금 이 벽에 붙었던 글을 가지고 증거를 삼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보면 올바르지 못한 논의가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만은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서 을사사화 때에 당연히 처벌받았어야 할 대상 인물들의 죄의 경중을 순서대로 적어 올렸다. "지금 적어서 올리는 것은 이번 양재역의 벽에 붙어 있던 글을 보고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애당초 죄를 결정할 때에 가볍게 처벌하여 형률대로 적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바르지 못한 논의가 이렇게 일어나는 것이니 이는 화근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입니다.
그러니 다시 죄를 정한다는 뜻을 교서로 만들어 중앙과 지방에 유시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임금이 답을 내렸다. "봉성군 원, 송인수, 이약빙은 사형에 처하고, 이언적, 정자, 이염은 먼 변방에 가두어 두며, 임형수, 노수신, 정황, 유희춘, 김난상은 먼 섬에다 가두어 두고, 권응정, 권응창, 정유침, 이천계, 권물, 이담, 한수, 안경우는 먼 지방에 부처하며, 권벌, 송희규, 백인걸, 이언침, 민기문, 황박, 이홍남, 김진종, 윤강원, 조박, 안세형, 안함, 윤충원은 중도부 처하라" 그러자 정언각이 또 혼자서 아뢰었다. "임형수는 윤임과 같은 마을에 살면서 그의 심복으로 수족처럼 움직였습니다.
그래서 매번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큰 소리로 윤원형을 죽여야 된다고 떠들어댔으니, 그가 윤임과 마음을 같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단지 귀양만 보내는 것은 너무 가벼운 듯합니다" "양재역의 벽에 붙어 있는 글을 본 사람이 한 사람뿐만이 아닐 터인데 그대가 혼자 와서 아뢰었으니 신하로서의 도리에 당연하도다.
임형수는 죄는 같이 짓고 벌을 달리 가볍게 받았으므로 내가 매우 이상스럽게 생각하였다" 문정대비가 그를 칭찬하고 임형수에게 사약을 내려 자진하게 하였다.
향윤온이 윤임에 연좌되어 해남으로 유배되었는데, 그 무렵 정언각이 전라 감사가 되어 양윤온이 죄인의 신분으로 관사에 드나든다는 보고를 받고 그를 잡아다 곤장을 치게 하였는데 양윤온이 매를 못 이겨 죽었다.
뒤에 정언각이 경기 감사가 되어 말에서 떨어졌는데, 한쪽 발이 등자에 걸려 벗겨지지 않은 채 말이 마구 달렸으므로 머리통이 박살이 난데다 뼈가 부서지고 짓이겨져 죽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들 통쾌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하늘이 무심하지 않았다" 그의 아들 정척이 문과에 급제하여 승지가 되었으나 소인의 자식이라 하여 버림을 받았다.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은 상진 상진(1493-1565)의 본관은 목천이고, 자는 기부, 호는 범허정이다.
중종 11년(1516)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3년 뒤 문과에 급제하였다.
검열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어떤 농부가 두 마리의 소를 데리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두 마리 중 어느 놈이 일을 더 잘 합니까?" 그 농부가 선뜻 대답을 하지 않고 상진의 귀에다 입을 바짝 대고 나직하게 말하였다. "저 짐승의 마음도 사람과 마찬가지여서 평가하는 말을 듣게 될 경우 잘한다고 하면 좋아하고 못한다고 하면 화를 내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작은 놈이 낫습니다" "귀하는 숨은 군자입니다.
삼가 가르침을 받들겠습니다" 상진은 농부에게 사죄하고 이때부터 남의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한쪽 다리가 짧아 절뚝거리자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며 절뚝발이라고 하였지만 상진은 다르게 말했다. "그 사람의 짧은 다리는 보통 사람들과 똑같지만 한쪽 다리가 길어서 그렇다" 이와 같이 그는 평생토록 남의 단점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젊었을 적에 점을 잘 치는 홍계관에게 점을 친 일이 있었다.
홍계관이 그때 그의 일생 동안의 길흉화복과 죽는 연월까지 알려 주었는데, 상진이 지나간 세월 속에 벌어졌던 일들이 홍계관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않았으므로 홍계관이 죽는다고 말한 그 해에 이르러 미리 수의를 준비하고 죽기를 기다렸지만 한 해가 지나도 죽지 않고 아무런 탈이 없었다.
그 소식을 들은 홍계관이 매우 이상히 여겨 상진을 찾아 뵙고 인사를 하니, 상진이 물었다. "내가 자네의 점을 믿고 스스로 금년에 명이 다할 줄 알았는데 맞지 않는 것은 무슨 조화요?" "예전 사람이 남모르게 적선한 탓으로 수명을 연장한 이가 더러 있었는데 대감께서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어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하겠는가마는 내가 수찬으로 있을 적에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는데 길바닥에 붉은 보자기가 하나 있기에 주워 보니 순금으로 된 술잔 한 쌍이었네.
그래서 그 보자기를 가만히 보관해 두고 방을 붙여 주인이 찾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주인에게 돌려준 일이 있었는데, 알고 보니 대전의 수랏간 별감이 마침 자질의 혼인이 있어 몰래 대궐 주방에 있는 금잔을 빌려 내왔다가 공교롭게도 길에서 잃어버린 것으로 죽을죄를 지었다고 하면서 수없이 사죄하고 간 일이 있었네" "대감의 수면이 연장된 것은 바로 그런 일들 때문입니다" 상진은 15년 뒤에 죽었는데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렀고, 시호는 성안이다.
그는 타고난 기품이 넓고 커서 남의 장점과 단점을 말하지 않았다.
판서 오상이 시를 지었다.
복희와 황제의 음악과 풍속 이제 쓴 듯이 없어지고 단지 봄바람만 술잔 사이에 있도다 상진이 그 글을 보고서 어찌 말을 이렇게 각박하게 할까 하며 다시 고쳐 지었다.
복희와 황제의 음악과 풍속 아직도 남아 있으니 봄바람을 술잔 사이에서 얻어 볼 수 있도다 제멋대로 권세를 휘둘렀던 명존의 외삼촌 윤원형 윤원형(?-1565)의 본관은 파평이고, 자는 언평인데 문정왕후의 오라버니이다.
중종 23년(1528) 생원시에 합격하고 5년 뒤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명종 6년에 정승이 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윤임은 인종의 모후인 장경왕 후의 동생이었으니, 여기서 대윤(윤임), 소윤(윤원형)이란 칭호가 있었다.
윤원형이 병조 판서로 있을 때에 어느 무인을 함경도의 권관으로 임명되도록 해주었는데, 그 무인이 부임하여 화살통을 선물로 보냈다. "나는 활쏘는 것을 배우지 않았는데 화살통을 어디다 쓸 것인가?" 윤원형이 화를 내며 그 화살통을 다락 안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그 무인을 파직시켰는데, 그 무인이 파직되어 돌아와 윤원형을 찾아보고 물었다. "앞서 보내드린 화살통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윤원형이 불현듯 의심이 생겨 다락에 던져둔 화살통을 가져다 잠가 놓은 화살촉을 뽑자 담비 가죽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것을 본 윤원형이 좋아하면서 그 무인을 다시 살기 좋은 고을의 수령으로 임명하였다.
또 이조 판서로 있을 적에 어떤 사람이 고치 수백 근을 바치고 참봉에 임명되기를 소원하였는데, 마침 윤원형이 피곤해서 졸고 있느라 장시간 임명 대상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므로 교지를 쓰던 이조 낭관이 붓을 쥐고 재촉하였더니 윤원형이 낭관의 재촉하는 소리에 맞추어 졸면서 "고치"라고 대답하였다.
고치란 견을 세속에서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리하여 임금의 최종 임명 결재를 받음에 이르러 이조의 서리가 고치 바친 사람을 아무리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먼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선비의 이름이 고치였으므로 그 사람을 임명하기는 하였지만 윤원형은 감히 분변하지 못하였다.
명종이 당시 권세를 믿고 횡포가 심했던 윤원형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어느 날 경연에 나아가 중신들에게 한나라 문제가 그의 외삼촌인 박소를 죽인 일에 대하여 물었다.
여러 신하들이 그제야 임금의 뜻을 알고 마침내 윤원형을 탄핵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도성의 사대문 밖으로 내쫓기를 주청하니, 명종이 그대로 시행하게 하였다.
윤원형이 쫓겨나자 백성들이 기왓장과 돌을 던지며 심지어 활로 쏘아 죽이려는 자도 있었다.
윤원형이 몰래 강음으로 가서 그의 첩 난정과 날마다 마주 앉아 울었다.
이때에 윤원형의 전처 김씨의 계모 강씨가 난정이 김씨를 독살한 사실을 고발하였다.
조정에서 관련자를 잡아다 처결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자 난정과 윤원형이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지은 죄가 하늘에 사무치면 저절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누이동생 난정을 미리부터 멀리했던 정담 정담의 호는 구재이고, 청계군 정윤겸의 서자이며 찬성 정종영의 서숙이다.
그의 동복 누이 난정이 윤원형의 첩으로 계교를 부려 문정왕후의 명으로 부인에 봉해졌다.
난정이 정실로 자처하고 나서자 다른 사람들 또한 화를 당할까 두려워서 감히 말을 하지 못하였다.
정담은 누이인 난정의 그러한 짓들이 기필코 화의 빌미가 될 것임을 미리 짐작하고 스스로 소원하게 지내면서 청탁하러 왕래하는 일이 없었다.
또 살고 있는 집의 대문 안에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한 담장을 쌓아 뚜껑이 달린 가마가 드나들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난정이 또한 가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드러나게 거절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이와의 인연을 끊겠다는 마음만은 깊이 자리잡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윤원형이 패망하고 난정이 죽는데 이르렀지만 정담은 연루된 바가 없었다.
정담은 문장에 능숙하고 고금의 이치에 통달하였으며 '주역'의 이치를 깊이 알아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마음을 지녔으므로 사람들이 이 때문에 그를 더욱 현명하게 여겼다.
귀신 같은 점을 치고도 오해받아 사형 당한 점쟁이 홍계관 장님 홍계관은 귀신처럼 점을 잘 친다고 이름이 알려졌다.
하루는 자신의 수명을 계산해 보니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날에 반드시 비명으로 죽을 운명에 놓여 있었다.
곧 죽게 된 가운데서 살아남기를 구하는 점괘를 뽑아 풀어 보니, 임금이 앉아 있는 용상 아래 숨어 있으면 모면할 수 있다고 되어 있으므로, 그 사실을 임금에게 아뢰었더니 임금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다.
그날을 당하여 용상 아래 숨어서 엎드려 있었는데, 그때 마침 쥐 한 마리가 난간 앞으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임금이 홍계관에게 말했다. "쥐가 이곳을 지나갔는데 몇 마리인지 네가 시험삼아 맞추어 보아라" "세 마리입니다" 임금이 그의 터무니없는 말에 노여워하여 즉시 형관에게 압송하여 참형에 처하도록 명하였다.
그 당시 죄인을 사형시키는 장소가 당고개 남쪽 강변의 백사장에 있었다.
홍계관이 사형장에 이르러 다시 한 괘를 뽑아 보고 사형 집행관에게 간곡히 사정하였다. "한 끼의 음식을 먹을 만한 시간만 집행을 지연시켜 주면 살아날 길이 있습니다" 형관이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였다.
한편 임금은 홍계관을 압송하게 한 뒤에 그 쥐를 잡게 하여 배를 가르게 하고 보았더니 새끼 두 마리가 뱃속에 있으므로 크게 놀라며 이상스럽게 여겨 중사(왕명을 전달하는 내시)에게 급히 따라가서 사형 집행을 정지시키도록 명하였다.
종사가 빠르게 말을 달려 당고개 위에 이르러 바라보니 한창 사형을 집행하려는 참이었다.
그가 집행을 중지하라고 큰 소리로 외쳤지만 그 소리가 미처 형관에게 들리지 않는 것 같아 급히 손을 저으며 중지시키려고 하였다.
형관이 멀리서 그 광경을 보고 빨리 집행하라고 재촉하는 신호인 줄 잘못 알고 그만 목을 베고 말았다.
중사가 돌아와서 그런 사유를 아뢰었더니, 임금이 "아차 아차" 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당고개의 형장을 아차 고개라고 고쳐 불렀다.
임진왜란을 예고한 남사고 남사고(1508-1571)의 본관은 영양이며, 호는 격암이다.
그는 풍수, 천문, 복서, 상법에 있어서 유전되지 않은 비결까지 모두 터득하였다.
그가 젊었을 때에 울진에 있는 불영사로 가다가 길에서 전대를 짊어지고 서 있는 어떤 중을 만났다.
그 중이 지고 있는 짐을 남사고가 타고 있는 말에다 얹어 달라고 애원하므로 남사고가 허락하여 얹어 주었다.
함께 불영사에 이르러 부용봉에서 놀다가 소나무 아래에서 장기와 바둑을 두는데 중이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크게 지르고는 모습을 감추었다.
한참 지나자 그의 코 끝부분이 처음으로 드러나더니 점차로 온 몸이 드러나면서 말하였다. "두렵지 않은가?" "무슨 두려움이 있겠소" "그대가 겁을 내지 않으니 가르칠 만하다" 중이 그에게 비결을 주며 말하였다. "그대는 비범한 골격을 지녔으니 힘쓸지어다" 중은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어디론지 떠나 버렸다.
남사고가 이때부터 천지 조화의 심오한 비밀을 환히 보게 되었다.
만년에는 천문학 교수로 서울에 있었다.
그런데 마침 태사성 주위에 테를 두른 모양의 빛이 보여 불길한 징조를 예고하였다.
관상감 정 이번신이 모든 일을 자신이 떠맡겠다고 하였다.
남사고가 웃으면서, "떠맡을 사람이 따로 있습니다" 하고는,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다가 도중에서 죽었다.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손곡 이달이 통곡하며 시를 썼다.
난새와 봉새 같은 인물이 저승으로 훌쩍 떠났는데 그대가 다듬어 놓은 장막 아래 다시 누가 있는가 사위와 제자들 유고를 수습하니 옥골의 복숭아꽃은 만세토록 봄이구려 격암이 일찍이 새벽에 동쪽을 향하여 주문을 외며 사람들에게 말했다. "살기가 등등하다.
임진년에 왜적이 반드시 크게 이를 터인데 나는 미처 보지 못하겠지만 그대들은 조심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서울의 지형을 이렇게 논하였다. "동쪽에는 낙봉이 있고 서쪽에는 안현이 있어 서로 다투는 형상이니 틀림없이 동쪽, 서쪽의 다툼이 있을 것이다. '낙'자를 풀어 보면 '각마'가 되니 반드시 분열되어 제각기 설 것이고, '안'자를 풀어 보면 '혁안'이 되어 위태로웠다가 편안해지니 서인은 처음에는 위태롭다가 나중에는 편안해질 것이다" 뒤에 그 말이 과연 들어맞았다.
격암이 또 예언했다. "사직동에 왕기가 있어 종묘사직을 중흥시킬 임금이 반드시 그 구역에서 나올 것이다" 그 말대로 선조가 그곳에서 살다가 명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임진왜란을 평정하여 종묘사직을 중흥시킨 임금이 되었다.
남사고가 자기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기 위하여 명당을 구해서 장사를 지낸 뒤에 그 묘터를 보니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묘자리를 여러 번 옮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맨 마지막으로 한 묘터를 얻게 되었는데 명당 중의 명당이라 할 수 있는 용이 날아서 하늘로 올라간다는 비룡상천의 형국이었다.
남사고는 너무 좋아 그의 아버지 유해를 그곳으로 옮겨다 장사를 지내며 흙을 퍼다가 봉분을 쌓았다.
이때 일을 거들던 한 일꾼이 노래를 불렀다. "아홉 번을 옮기고 열 번 장사지내는 남사고야 용이 날아 하늘로 올라가는 형국만 생각하지 마라.
말라 죽은 뱀이 나뭇가지에 걸린 형국이 여기가 아닌가" 남사고가 듣고서 놀랍고 이상하여 산 형세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과연 죽은 내룡이었다.
급히 그 일꾼을 따라나섰지만 갑자기 보이지 않고 어디로 떠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명당이란 제각기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어서 억지로 차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제야 남사고가 탄식하고, 겨우 피해가 없는 정도의 묘터를 가려 다시 옮겨 장사지냈다.
남사고가 젊었을 적에 여러 번 향시에는 합격하고서도 회시에는 낙방을 하므로 어떤 사람이 물었다. "자네는 왜 남의 운명은 잘 맞히면서 자신의 운명을 잘 맞히지 못하여 부질없이 해마다 헛걸음을 하는가?" "개인적인 욕심이 발동하면 술수가 도리어 어두워지는 법일세" 밥알을 내뿜어 나비가 되게 한 전우치 전우치는 본관이 담양인데 대대로 송도(개성)에서 살았다.
전우치가 언젠가 기재 신광한의 집에 갔더니 규암 송인수가 미리 와 있었다.
기재가 전우치에게 말했다. "어찌 장난을 하지 않는가?" 조금 있다가 그 집에서 볶음밥을 대접하였는데 전우치가 한창 그 밥을 먹고 있다가 입 안에 든 밥을 뜰 쪽으로 내뿜으니 밥알이 모두 흰 나비가 되어 이리저리 날아가 버렸다.
차식이 아들 차천로에게 말하였다. "하루는 전우치가 와서 두시 한 질을 빌려 갔는데 나는 그가 죽은 줄 모르고 빌려주었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죽은 지가 이미 오래이더라" 그 뒤 전우치는 옳지 못한 도술을 부려 사람들을 현혹시킨다는 구실로 신천 감옥에 갇혀 있다가 마침내 옥중에서 죽었다.
신천 태수가 사람을 시켜 그의 시체를 꺼내다가 임시로 매장하게 하였는데, 얼마 뒤에 친척들이 이장하려고 널 뚜껑을 열어 보니 널 속이 텅 비어 있었다.
고을의 품관들에게 나물죽을 대접했던 이지함 이지함(1517-1578)의 본관은 한산이고, 자는 형중, 호는 토정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그의 형 이지번에게 글을 배웠다.
장성하여 모산수 이성랑의 사위가 되었다.
결혼식을 올린 이튿날 외출하였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돌아왔는데 그가 입고 갔던 명주 도포가 없어진 것을 알고 집안 사람이 물으니 대답하였다. "홍제원 다리를 지나다가 거지 아이가 추위에 얼어 신음하는 것을 보고 찢어서 세 아이에게 나누어 주었다" 어느 날 자기 형에게 말하였다. "제가 저의 처가를 관찰하였더니 길한 기운이 없습니다.
그곳을 떠나지 않으면 장차 재화가 미칠 것입니다" 그가 처자를 데리고 서쪽으로 갔는데, 이듬해에 정말 재화가 일어났지만 모면하게 되었다.
이지함은 또 배를 잘 부려 넓은 바다를 평지처럼 다녔으며, 국내의 산천은 거리가 멀다고 하여 안 간 곳이 없었다.
그리고 여러 해 동안 떠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는 또 평상시 자제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여색을 경계하라.
여색에 대한 경계를 엄격히 하지 않으면 그 나머지는 볼 것이 없다" 이지함은 배고픈 것을 참아 보려고 열흘 동안 불에 익힌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목마른 것을 참아 보려고 한더위에 물을 끊기도 하였고, 고달픈 것을 참아 보려고 발이 부르트도록 걷기도 하였다.
그는 화담 서경덕에게 글을 배우기도 하였다.
그는 늘 무명옷에다 짚신 차림으로 솜옷을 짊어지고 다니며 사대부의 집에 가서 어울려 놀면서 곁에 사람이 없는 것처럼 기탄 없는 언행을 하였고 여러 방면의 잡술에 환하게 통달하였다.
큰 박을 네 모서리에 매단 거룻배를 타고 노도 사용하지 않은 채 세 번이나 제주에 들어갔지만, 풍파의 위험을 겪지 않았다.
그때마다 장사를 하여 맨손으로 경영한 사업이 몇 년 사이에 수천 석의 곡식을 축적하여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에게 모두 나누어주고는 소매를 털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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