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1 - 11편 (11/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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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1 - 11편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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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르다.' 복청양은 이제까지 상대하던 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들을 만났음을 직감했다.
그는 정신을 바싹 차리고 삼절묵창을 평평하게 휘둘렀다.
창의 길이가 넉 자로 줄어들면서 마치 검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카가강! 몇 차례인가 금속성이 터지며 중년인들이 뒤로 물러섰다.
그러나 그들은 물러설 때보다 빠른 속도로 재차 달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검에는 반드시 그를 죽이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배어 있었다. '이들은 참으로 경우가 없구나.
사정을 물어 보지도 않고 살수부터 전개하다니.' 상대는 그를 아는데 그는 상대를 모른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려고 작심하고 달려들 때는 반드시 그만한 곡절이 있어야 한다는 게 복청양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이유없이 이들이 이렇게 한사코 덤벼드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모를 일이다.
강호에는 모를 일이 너무 많다.' 혼란에 휩싸인 채 복청양은 삼절묵창을 풍차처럼 휘둘러 상대의 검세를 봉쇄하며 우수를 들어 내리쳤다.
그러자 그의 주먹에서 흐릿한 권영(拳影)이 일어나며 곧장 상대의 머리를 강타하는 것이 아닌가! "엇?" 중년인은 이미 삼절묵창과 검이 부딪칠 때 팔이 크게 저리면서 전신이 떨려왔다.
그런데 권영이 위에서 내려오자 순간적으로 머리가 아찔하면서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를 몰랐다. "멈춰라!" 염소수염이 놀라 유성추를 휘두르며 복청양의 가슴을 노렸다.
어떻게든 손을 거두게 하여 동료를 구해 보려는 것이다.
바야흐로 상대의 머리에 권영이 작렬하려는 순간 복청양이 돌연 손을 틀었다.
그러자 흐릿한 권영이 방향을 바꾸어 중년인의 어깨를 부수었다. "크악!" 처절한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와 동시에 삼절묵창이 무수한 창영을 뿌리고 있었다.
복가장의 절기인 쇄금십팔창법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캉캉! 유성추와 검, 그리고 창이 동시에 맞부딪쳤다.
복청양은 손아귀가 크게 울려 하마터면 삼절묵창을 떨어뜨릴 뻔했다.
염소수염은 생김새와는 달리 공력이 매우 심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며 발을 들어 연속으로 일곱 번을 걷어찼다.
그의 발길질은 빠르고 시기적절하여 염소수염을 연거푸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 공백을 남은 중년인의 검이 메우고 들어왔다.
하지만 복청양은 이들과 오래 시간을 끌 마음이 없었다.
여기는 적지나 다름없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그에게 불리하다는 건 자명한 이치였다.
삼절묵창이 다시 여섯 자의 길이로 늘어나며 중년인의 가슴을 찔렀다. "엇!" 중년인은 이렇게 창의 길이가 갑자기 늘어날 줄은 몰랐으므로 다급히 검을 내려 창을 막았다.
그러나 그의 검은 그만 허공을 후리고 말았다.
어느새 창은 두 자 길이로 줄어들어 있었고, 줄어든 창끝이 반대로 돌아 염소수염의 안면을 노리고 들어갔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창법이었다.
이렇게 창의 길이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은 삼절묵창만이 가진 장점이었다.
염소수염이 급한 김에 등을 땅에 대며 피했다.
굴욕적인 철판교의 수법을 전개한 것이다.
거센 경기가 염소수염의 수염을 몇 가닥 떨구고 지나갔다.
그 기세를 이용하여 복청양은 이미 염소수염을 타넘으며 포위망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의 저지선을 벗어나자 곧장 중앙의 건물을 향해 달렸다.
어찌 되었건 안으로 들어가 백아아를 찾아보려는 것이다. "건방진!"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일곱 명의 노인이 일렬로 늘어서서 복청양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복청양은 달리는 기세를 늦추지 않고, 삼절묵창으로 땅을 짚으며 그들의 머리 위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대로 통과하려는 것이다. "어딜!" 두 개의 검이 그의 다리를 잘라왔다. "크윽!" "악!" 두 가닥의 답답한 비명소리가 들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매서운 기세로 복청양의 다리를 잘라오던 두 노인이 힘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가슴이 피로 벌겋게 젖어있는 것으로 보아 잔인한 살수에 당한 모양이었다. '아니?' 뜻밖의 사태에 놀라 복청양은 멈칫했지만 이미 그의 신형은 앞으로 나아가는 중이라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잔악한 놈!" 남은 다섯 노인이 노해 일제히 날아올랐다.
비록 가까운 거리에 있었지만 어둠이 짙고 폭우가 들이치고 있었다.
그들은 두 노인이 복청양을 공격하는 것만 보았지 그 후의 상황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래서 복청양의 살수에 동료들이 당한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검세를 펼치기도 전에 요란한 비명이 터지며 다시 둘이 쓰러졌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달려들던 상대가 제풀에 쓰러져 죽으니 참으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 아닌가! 그렇지만 오래 머뭇거릴 여유는 없었다.
그 사이에도 간신히 돌파한 포위망이 다시 구축되고 있었던 것이다.
적들의 공격은 쉴새없이 이어졌고 상황이 너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복청양은 삼절묵창으로 엄밀한 수비벽을 형성하면서 간간이 손을 뻗어 상대를 점혈하여 쓰러뜨렸다.
하지만 중앙의 건물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적의 수효가 점점 많아져 이런 방법으로는 도저히 뚫고 들어갈 수가 없다.
마침내 복청양은 이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백아아를 구해낸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이곳을 피하자.
내일 다시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은 몸을 피해야만 한다.' "비켜라!" 복청양의 입에서 우렁찬 고함이 터져나왔다.
그는 삼절묵창을 휘두르며 포위망이 가장 엷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뛰어들었다.
그러자 멋모르고 달려들던 검수들이 앞다투어 쓰러졌다.
거개가 그에게 점혈당한 것이지만 개중에는 앞의 노인들처럼 이유없이 죽어가는 자들도 있었다.
어느덧 복청양의 전면에 약간의 빈틈이 보였다.
복청양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신형을 날려 가까운 지붕으로 올라서려 했다.
일단 이곳을 벗어나려면 들어올 때처럼 지붕과 지붕을 이용해 건너뛰는 것이 가장 쉬운 길이다. "어림없다!" 그때 누군가가 소리치며 커다란 동발을 날렸다.
하나 복청양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자세를 낮추며 창끝으로 동발을 살짝 건드리자 그토록 무섭게 날아오던 동발의 방향이 직각으로 꺾이면서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바로 사량발천근(四兩發千斤)의 수법이다. "아!" 놀라움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제법이구나." 감정의 기복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음성이었다.
복청양은 자세를 바로 세우며 전면을 응시했다.
불과 일 장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검을 비껴든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백포를 걸치고 있었으며, 이마에 커다란 혹이 툭 튀어나온 것이 조금 괴이한 느낌을 주었다.
그러나 그런 느낌과는 달리 노인의 얼굴은 어딘지 슬픈 기색을 띠고 있었다.
무섭게 쏟아지는 폭우 속에서도 그의 백포는 조금밖에 젖지 않았는지 바람에 풀풀 자락이 날렸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그토록 소란스럽던 장원이 갑자기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노인이 나타나는 순간 모두들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꺾어 지붕 위를 주시했던 것이다. "네가 복청양이라는 애송이냐?" "그렇소." 복청양은 삼절묵창을 가슴 앞에 세우며 조금 잠긴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는 이 노인의 기세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진정한 고수를 만난 것인지도 모른다. "노부는 이두옹(二頭翁) 고염세(高厭世)라고 한다.
내 이름은 들어 보았겠지?" "들어보지 못했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복청양의 삼절묵창이 불쑥 고염세의 어깨를 찔렀다.
이날 밤의 격전은 천산오조의 밑에서 일 년을 배운 것보다도 더 많은 깨달음을 복청양에게 주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생사를 걸고 싸우는 것은 혼자서 무예를 수련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서로간에 짙은 땀냄새를 맡을 수 있고 번뜩이는 눈초리를 읽을 수 있으며 찰나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 들어가는 예리함을 필요로 한다.
또한 일단 선수를 빼앗기면 아무리 무예가 고강하더라도 자신의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궁지에 몰리게 된다.
한순간! 그렇다.
모든 게 한순간이었다.
손을 한 번 쓰고 무기를 한 번 휘두르는 그 한순간에 모든 게 결정이 나는 것이다.
그러기에 복청양은 상대가 강적임을 알자 우선 기선부터 제압하려 한 것이다. "건방진!" 복청양이 기습을 하자 고염세가 노성을 지르며 한 떨기 검화를 피워냈다.
그러나 검화는 미처 피기도 전에 산산이 부서졌고 창끝은 여전히 어깨를 찔러오고 있었다. "헉!" 고염세가 다급히 어깨를 내렸다.
그의 대응이 신속해서 삼절묵창은 옷을 찢고 지나갔을 뿐이다.
옆으로 껑충 뛰어 물러난 고염세는 한결 신중한 표정으로 연속으로 십삼 검을 쳐냈다.
그의 손속이 어찌나 신속하였던지 마치 열세 개의 검이 동시에 찔러오는 것 같았다.
복청양의 주위에 순간적으로 검기가 가득하며 한 방울의 빗물도 스며 들어오지 않는 촘촘한 검막이 그려졌다.
저 노도와 같은 검세를 피해내려면 천상 뒤로 물러나는 도리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복청양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는 이 미끄러운 지붕 위에서 잘못 물러나다가는 감당하지 못할 수세로 몰린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두 눈을 빛내며 곧장 검막 속으로 뛰어들었다.
삼절묵창의 길이가 두 자로 줄어들면서 가공할 기세를 뿜어냈다.
카가강! 저릿저릿한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지극히 짧은 시간에 두 사람은 각기 세 번을 공격했고, 세 번을 방어했다.
고염세의 검에 실린 진력은 무서운 것이었으며 매 검마다 상대의 목숨을 끊을 수 있는 변화가 숨어 있었다.
그러나 복청양은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그는 도리어 한 발짝씩 앞으로 전진하며 고염세를 압박해 들어가고 있었다.
고염세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검이 돌연 기이한 울음을 토해내더니 푸른 검기가 송곳 같은 기운과 함께 일어났다.
이른 바 파형절(破形絶)이다.
복청양은 당황하지 않고 삼절묵창을 두 손으로 움켜쥐며 검을 사용하듯이 위에서 아래로 내리그었다.
찌익 검기가 찢겨나가며 고염세의 놀란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
그는 경이에 찬 눈으로 자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창끝을 멍청하게 보고 있었다.
삼절묵창이 고염세의 목을 찌른 것과 그가 목을 틀어 피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그러나 그대로 지나가는 것 같던 삼절묵창이 어느새 방향을 틀어 횡으로 그의 목을 후려치고 있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신속한 변초였다. "억!" 고염세는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으며 검을 앞으로 뻗었다.
푸욱 손에 묵직한 감각이 느껴졌다.
고염세는 눈을 떴고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
삼절묵창은 그의 목과 백지 한 장 차이를 두고 멈춰져 있었으며 그의 검은 복청양의 옆구리에 깊이 박혀 검신을 타고 선혈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
고염세를 죽일 수 있었던 바로 그 순간에 복청양은 그의 슬픈 얼굴을 보았다.
그것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생명을 지닌 인간.
생명의 가치는 무한한 것이며 어떤 이유에서도 그 생명을 빼앗을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더구나 이 사람은 그와 아무런 원한도 없는 인물이 아닌가! '안 돼.' 그는 안간힘을 다해 삼절묵창의 기세를 멈추었다.
만일 복청양이 기세를 늦추지 않았다면 고염세의 목은 그대로 부러져 생(生)과 이별해야 했을 것이다.
무릇 기세란 앞으로 나가기가 쉽지 그걸 거둬들이기란 결코 쉬운 법이 아니다.
더구나 복청양은 미처 거둬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힘이 들었다.
그의 상반신이 환히 열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서로의 몸이 거의 닿을 정도로 근접해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결정적인 허점이 드러났고 그 자리를 거의 반사적으로 뻗어나온 고염세의 검이 찌른 것이다.
피하기란 불가능했다. "어억!" 복청양은 피를 뿌리며 휘청했다.
그의 신형이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고염세는 이 모든 것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운좋게 죽을 고비를 넘겼고 상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게 된 건 천행이었다.
검이 뽑혀져 나오면서 피분수가 솟았다.
하지만 고염세는 단순히 검을 뽑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다시 일검을 가해 복청양의 허리를 잘라버리려고 했다.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게 된 복청양은 다급히 수도로 고염세의 손목을 내리쳤다.
그러나 고염세는 상대의 수도가 자신의 손목을 잘라오는 것을 보면서도 이를 악물며 검세를 늦추지 않았다.
퍽 기묘한 소리가 났다.
고염세가 손목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손을 떠난 검은 복청양의 옆구리에 박힌 채로 덜렁거리고 있었다.
또다시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이다.
고염세는 손목이 부러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음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발을 들어 복청양의 다리를 걷어찼다.
복청양의 무릎이 꺾였다.
털썩 주저앉는 순간 복청양은 그 기세를 이용하여 옆으로 떼구루루 굴렀다.
빗물에 젖어있는 지붕이라 그의 몸은 마치 얼음을 탄 것처럼 미끄러져 아래로 떨어졌다. "와아!" 고염세가 득수한 것을 목격한 검수들이 함성을 지르며 떨어져 내리는 복청양에게 검을 휘둘렀다. "욱!" 간신히 삼절묵창으로 몇 개의 검을 막아내긴 했지만 다시 두 군데의 검상을 입은 복청양은 땅에 발이 닿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갑자기 시야가 어두워지면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삼절묵창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수도 헤아릴 수 없는 검이 복청양을 난자했다.
꽝! 버언쩍! 콰르릉! 뇌전이 숨죽여 엎드린 대지를 강타했다.
그러나 빗줄기는 점차 약해지고 있었다. * * * "클클클……." "큭큭, 이 녀석은 죽었을까?" "그렇지 않아, 숨이 붙어 있는데." "멀쩡하다, 멀쩡해.
겉보기만 험하지, 상처도 그다지 깊은 편이 아니다.
다만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정신을 잃었을 뿐이다." "약해 빠진 놈.
우리가 이 녀석을 이렇게 허약하게 키우지는 않았는데……." "그게 다 너 때문이다!" "어? 왜 내 탓이란 말이냐?" "네 녀석이 언제나 오냐오냐 하면서 이 녀석의 뜻을 받아준 때문이다.
그저 불알달린 놈은 무조건 험하게 키워야 하는데." "야, 이놈아.
오냐오냐는 네가 했지! 왜 그 책임을 내게 떠넘기느냐?" "어? 이제 와서 오리발이네." "오리발이라고? 오리발은 지금 네가 내밀고 있지 않느냐! 돼먹지 않은 놈 같으니라고." "그러나저러나 참 아깝다." "뭐가 말이냐?" "이 녀석이 죽었어야 하는데.
그래야 석 달 이내에 죽는다는 네 예언이 맞아 들어갈 거 아니야." "걱정 마라.
석 달이 지나려면 아직도 많이 남았다." "암, 이 녀석은 석 달 이내에 기필코 죽을 것이다." "클클클…… 아니다.
너희는 틀렸다.
이 녀석은 적어도 반 년은 살 것이다.
틀리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져도 좋다." "큭큭, 아무튼 서두르자.
송장을 업고 다니기 싫으면." "고 녀석 꽤 무겁네.
어릴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그럼 언제까지 어린아이로 있을 줄 알았느냐?" "그런데 모를 일이 하나 있다.
이 녀석은 고염세란 놈을 죽일 수 있었는데 왜 살려 주었을까?" "그걸 모른단 말이냐?" "모르겠다.
나는 이 세상에 모르는 일이 하나도 없지만 그것만은 모르겠다." "이 녀석은 마음이 약해서 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놈이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을 죽이겠느냐?" "못나 빠진 놈." "네 말이 맞다.
이놈은 못나고 괴상한 놈이다.
우리는 괴물을 키웠다." "클클클……." "큭큭!" * * * 똑! 또그르르 풀잎에 함초롬이 매달린 이슬이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밤새 폭우에 시달리던 초목이 기지개를 펴고 있었다.
대지는 비를 먹어 흠뻑 젖어 있었지만 공기는 청량했고 싱그러운 기운이 넘쳤다.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점점이 떠 있었다.
언제 그런 폭우를 내렸냐는 듯 맑고 깨끗한 하늘이었다.
솜씨가 뛰어나다고 소문난 조선의 도공(陶工)이 구워낸 청자(靑瓷)라고 하더라도 이보다 더 투명한 색채를 만들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고 따라갈 수조차 없는 완벽한 아름다움.
하늘은 파란 물감을 입힌 얇은 유리처럼 여리디여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쿵쿵쿵 땅이 진동을 일으켰다.
쿵쿵쿵! 쿠와콰 쿠르르르 쏴아 복청양이 가장 먼저 의식한 것은 그 진동음이었다.
그는 눈을 떴다.
그는 반듯한 바위 위에 눕혀져 있었다.
바위는 반들반들하고 매끄러웠으며 물기에 젖어 있었다.
어젯밤에 내린 비 때문이 아니었다.
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에 젖었던 것이다.
복청양이 들은 진동음은 바로 그 폭포가 떨어지는 소리였다. "으음……." 그는 신음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자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예리한 통증이 엄습하여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지독하다.
전신에 널려있는 이백여섯 개의 뼈마디가 일제히 반란을 일으키는 것 같았다.
손가락 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심지어는 머리카락까지 통증을 호소하고 있었다. "끙!" 그러지 않으려 해도 저절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이제 정신이 드셨어요?" 목마른 사람에게 주는 감로수(甘露水) 같은 음성이 옆에서 들려 왔다.
복청양은 힘들게 고개를 돌렸고 백아아가 쭈그리고 앉은 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마치 신생아를 처음 보는 여자처럼 신기하다는 표정이었다. "당신……." 복청양은 어젯밤의 일이 생각나 얼굴을 찡그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생각나지 않으세요?" 백아아가 여전히 생글거리며 묻는다. "어찌 생각나지 않겠소? 당신이 괴한한테 잡혀가고 나는 그 뒤를 추적했는데……." "그랬죠." "그리고는 어떤 집으로 들어갔소.
거기서 악전을 치른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후의 일은 모르겠소." "모르는 게 당연하니까 너무 생각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백아아가 손을 뻗어 그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씻어 주었다.
그녀의 손은 시원했고 부드러웠다.
그제야 복청양은 자신의 상반신이 벗겨져 있으며 하얀 천으로 복부를 둘둘 감은 것을 알았다.
하얀 천에는 얕은 핏자국이 배어나와 있었다.
아마도 백아아가 그의 상처를 싸매 준 모양이었다. "사실은 저도 자세한 건 몰라요." "그럼……." "아마 믿기지 않겠죠?" 백아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바위 아래로 내려가더니 수건에 물을 적셔 가지고 돌아왔다.
그들이 있는 곳은 폭포가 떨어지는 바로 밑이어서 물보라가 영롱하게 피어나며 무지개를 만들고 있었다.
폭포의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았으나 워낙 가까이에 있는 관계로 진동음이 그대로 전달되었다.
복청양은 안개처럼 몸을 감싸고 있는 물보라가 그다지 기분 나쁘지는 않았다.
백아아가 물수건을 그의 이마에 얹어 주었다. "어젯밤에 저는 괴한의 습격을 받았어요.
잠깐 잠이 들었었고 또 그자의 무공이 기이하게 높아 저항도 변변히 하지 못했죠." "그랬을 것이오." 그 흑의인이 보여준 경신술은 놀라운 것이었다.
아마 백아아가 잠이 들지 않았더라도 반항하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의식을 잃었는데 비를 맞는 바람에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그자는 나를 단심백결회의 산서지부로 데려가더군요." "산서지부라고? 그곳이 바로 산서지부였단 말이오?" 놀라 소리치며 복청양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통증이 기다렸다는 듯 전신을 매질했다.
복청양의 이마에 깊은 고랑이 파이고 땀이 방울방울 흘렀지만 그는 끝내 일어나 앉았다. "모르고 계셨나요?" 이번에는 백아아가 오히려 의아한 표정이었다. "몰랐소.
어쩐지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산서지부.
그렇다면 그 안에는 복금사가 잡혀 있었을 것이 아닌가! 그런 줄도 모르고 자신은 백아아만 찾고 있었으니…….
복금사를 생각하자 복청양의 가슴이 아릿해 왔다.
그 눈치를 챘는지 백아아도 입을 다물었다.
쿵! 쿵쿠르르 콰아 두 사람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떨어지는 폭포만 바라보고 있었다.
거세게 떨어지는 물줄기에 휘말려 둥근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파문은 끝없이 주위로 확대되다가 어느 순간 다시 안으로 축소되기 시작한다.
물은 짙은 녹청빛을 띠고 있었으며 하얀 포말을 한도 없이 일구고 있었다.
폭포 중간에는 일곱 색깔 무지개가 영롱하게 걸려 있었다.
무수한 물보라가 무지개까지 뛰어올랐다가 안개처럼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안면에 와닿는 미세한 수분의 입자가 그다지 싫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어찌 되었소?" 이윽고 복청양이 물었다. "저는 작은 방으로 끌려가 혈도를 짚인 채 혼자 누워 있었어요.
그런데 잠시 뒤에 주위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하더군요.
사람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싸우는 소리까지 들렸어요." "아마 나 때문이었을 거요." 백아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러리라 여겼어요.
소란은 한참을 계속되더니 어느 한순간 잠잠해졌어요.
그리고 갑자기 방에 불이 꺼졌죠.
안으로 한 사람이 들어오는 기척이 들렸는데 그자가 저의 수혈을 짚어서 다시 정신을 잃었어요.
그리고 정신이 들고 보니 바로 이곳에 복공자와 나란히 누워 있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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