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1 - 16편 (16/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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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1 - 16편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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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는 이내 백아아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밝은 음성으로 말했다. "달과 아름다운 여인이라…… 좋은 밤이구나.
술을 따라라.
오늘은 실컷 취하고 싶구나." "예, 마주." 술병을 들었지만 병은 이미 비어 있었다.
백아아는 상 밑에서 미리 준비해 둔 또 하나의 술병을 꺼냈다. "저자가 우릴 알아보았을까?" "모르겠습니다." "알아보았다면 저렇게 태연할 리가 없지.
하지만 난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다." "신경과민이겠지요." 육각정에서 이십여 장쯤 떨어진 숲속에 두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만리추종과 장경신이었다.
그들은 정자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두 사람을 보며 전음으로 말을 주고받는 중이었다. "아저씨는 저자가 누군지 아십니까?" "나는 평생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자부해 왔다." 만리추종이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모르겠구나.
기도가 보통은 아닌데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란 말이다.
그렇지만 저 요사한 계집이 마치 첩이라도 된 것처럼 술을 따르고 있는 걸 보면 평범한 자는 아니다." "저 여자를 아십니까?" "너는 모르느냐?" "알지 못합니다." "저 여자의 이름은 백아아라고 한다.
은하수정원이라는 기루를 운영하고 있지.
겉보기로는 그저 아름답기만 하지만 주의해야 할 계집이다.
사방에 널려있는 수만 기루의 삼분지 일이 저 계집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다고 한다면 알 만하지 않느냐?" "대단하군요." 기루(妓樓)라는 곳이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장경신도 안다.
기루는 단순히 할 일 없는 사내들이 모여 여자를 끼고 술이나 마시는 곳이 아니다.
온갖 정보가 교환되고 천하의 부의 대부분이 그곳에서 거래된다.
기루는 밤을 지배하는 어두운 왕국이었다.
술과 웃음, 여자와 황금, 그리고 정보가 흘러넘치는 곳이다. "내가 알기로는 저 계집은 청룡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청룡의 눈과 귀라고 할 수 있지.
그런데 어째서 저런 자에게 술을 따르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기녀가 누구에겐들 술을 따르지 못하겠습니까?" "여기가 은하수정원이라면 그런 말을 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저 계집은 도도하기로도 소문이 나 있다.
지금까지 자청하여 사내의 수발을 든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혹시 저 여자가 복청양과 함께 도주했다는 그 여자는 아닙니까?" "바로 그렇다." "그러면 벌써 사내를 셋이나 갈아대고 있는 셈이로군요." 장경신의 음성에는 약간의 경멸이 담겨 있었다.
아마도 백아아가 기루를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생긴 감정이리라! 만리추종이 그런 장경신을 힐끔 보았다. '이 아이는 결벽증이 너무 심한 게 흠이다.' 결벽증이 있다는 건 결점이 아니다.
하지만 그게 지나치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모이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결벽증이 지나치면 독불장군은 될 수 있을지언정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 영도자가 되기는 어려운 법이다.
만리추종은 그게 걱정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아저씨는 복청양의 뒤를 따라가지 않으셨습니까?" 복청양이 손노인의 집을 떠난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그리고 장경신이 도착한 것은 불과 반 시진 전이었다. "그자가 어디로 갔는지 이미 알고 있는데 힘들게 따라다닐 필요가 뭐가 있느냐?" "복청양이 어디로 갔는지 아신다고요?" "그자는 태행산에 있는 제마옥으로 향했다." "제마옥!" 장경신은 놀라움을 삼켰다. "그걸 아저씨가 어떻게 아십니까?" "그러니 이상한 일 아니냐? 말해도 너는 아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복청양이 태행산으로 떠난 건 오늘 아침이다.
그런데 천노살성이 제마옥을 치러 간다는 소문은 벌써 사흘 전부터 퍼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러니 괴이한 일이 아니냐." 만리추종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전음으로 대화를 나누는 일은 많은 공력의 소모를 가져오기 때문에 쉬지 않고 계속 이어가기가 힘이 드는 모양이었다. "장담할 수는 없지만 뭔가 냄새가 난다.
그것도 아주 구린내가 난단 말이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소문을 흘리는 것 같다.
이건 꼭 천노살성이 태행산으로 간다는 걸 모두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 같으니……." "설마, 그럴 리가……." "두고 보아라.
천노살성이 태행산으로 간다는 소문이 퍼졌으니 단심백결회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천노살성은 이미 칠대공적보다도 더한 비중으로 단심백결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칠십이순찰당의 하나인 모용세가가 그자의 손에 의해 무너졌고 소허도장이 살해되었으며 대담하게도 산서지부까지 쳐들어온 자가 아니냐.
게다가 이번에는 제마옥이라면…… 이건 드러내 놓고 단심백결회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어떻게 참을 수 있겠느냐?" "많은 고수들이 이미 태행산으로 떠났겠군요?" "그렇다.
지금까지 단심백결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없었다.
그래서 단심백결회가 자만심에 젖어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참을성이 적어졌단 말이다.
그러니 단심백결회가 이번 일에 전력을 투입하리라는 것은 불문가지, 불을 보듯 환한 일이다." "단심백결회는 지금까지 성역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덕분에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실상은 진정한 고수들은 다 떠나고 남은 건 빈 껍데기에 불과하지요.
그런데 이번 일로 단심백결회의 전력이 노출될지도 모르겠군요.
어쩌면 배후의 인물은 그걸 노리는지도……." "네 말대로 배후의 인물이 존재한다면 그럴는지도 모르지.
그리고 어쩌면 저자가 바로 그 배후 인물일 수도 있다." 만리추종은 육각정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어? 어디로 갔지?" 이번에는 전음이 아니었다.
너무 놀라 자기도 모르게 말이 밖으로 새어나온 것이다. "아니?" 장경신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없었다.
분명히 정자 위에 있어야 할 중년인과 백아아의 모습이 보이지를 않는 것이다.
정자 위에는 술상만이 덩그러니 남아 달빛에 젖고 있었다.
도대체 두 사람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들은 내내 육각정에 눈길을 주고 있었다.
대화에 취해서 잠깐 한눈을 팔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은 극히 순간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에 사람을 놓치고 말다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믿을 수가 없다.
나는 믿을 수가 없어……." 만리추종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자는 이미 우리가 숨어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감쪽같이 사라지다니.
설마 하니 그자가 나보다 능력이 뛰어나단 말인가? 아니다.
그럴 리는 없다.
절대로!' 다른 것은 다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만은 받아들일 수 없는 게 장경신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무얼 그렇게 놀라고 있느냐?" 뒤에서 칼칼한 음성이 들려왔다.
만리추종은 퍼뜩 몸을 돌렸고, 장경신은 천천히 돌아보았다.
왜소한 체구에 화려한 화복을 헐렁하게 걸치고, 손에는 곰방대를 들고 있는 노인이 멀지 않은 곳에 밤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한가롭게 서 있었다.
그는 곰방대를 뻑뻑 빨고 있었는데, 정작 곰방대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았다.
손노인이었다. "세상 어디를 가나 쥐새끼는 있는 법이지.
하지만 아무리 쥐새끼라도 함부로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그런데 두 마리씩이나 숨어 들어와 찍찍거리다니 그냥 보아 넘길 수 없구나." "쥐새끼라고 했소?" 장경신이 노여움에 얼굴을 붉히며 앞으로 나섰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만리추종의 놀란 외침에 의해 저지당하고 말았다. "헉! 당신은?" 만리추종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듯한 표정으로 손노인을 보고 있었다.
밤이라 덥지도 않은데도 그의 얼굴에서 땀이 삐질삐질 흘렀다. "오라, 이제 보니 자네였군 그래." 그제야 만리추종을 알아보았는지 손노인이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군.
그 동안 잘 있었나?" "설마, 당신이…… 당신은 이미 죽은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만리추종은 학질에 걸린 사람처럼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언제나 여유만만하던 그의 얼굴은 이미 사색이다.
설사 정말로 죽은 사람이 무덤에서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이렇게 놀랄 만리추종이 아니건만 그는 손노인을 보는 순간 체면이고 뭐고 다 잊은 것 같았다. "아저씨……." 장경신은 입 밖까지 나온 말을 꿀꺽 삼키며 손노인을 보았다.
만리추종의 태도로 보아 범상한 인물이 아닌 것은 분명한데 누구인지 전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흐흐…… 오랜만에 만난 자네한테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이미 노부를 알아보았으니 얌전히 입을 다물어야겠다." 손노인이 음흉하게 웃으며 몸을 움직였다.
그는 미끄러지듯 다가오며 가볍게 곰방대를 흔들었다.
그러자 가공할 압력이 일어나며 파도처럼 덮쳐왔다. '대단하구나.' 장경신은 감탄하며 두 손을 모아 압력에 대항하려 했다. "안 돼! 그자는 쇠마다.
절대로 싸워서는 안 된다!" 만리추종의 비명 같은 소리가 귀청을 두드렸다. "쇠마?" 그러나 그때 벌써 두 줄기의 압력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었다.
펑 요란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누런 흙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나면서 잠시 시야를 가렸다.
그리고 이윽고 그 흙먼지가 가라앉았을 때 장경신의 앞에는 세 개의 발자국이 깊이 파여 있었다. "우욱!" 장경신은 내심 기혈이 끓어오르는 걸 느끼며 신형을 휘청거렸다.
하지만 놀라기는 쇠마도 마찬가지였다. "굉장하구나.
과연 금룡의 명성이 허명은 아니다." 쇠마가 선뜻 신형을 날리더니 곰방대를 찔러왔다.
쐐애액 무서운 경기가 송곳처럼 파고 들어왔다.
쇠마가 자랑하는 천강지(天剛指)였다.
두꺼운 철판에도 구멍을 뚫는다는 무서운 위력의 지법이 곰방대를 통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쇠마의 공세는 날카롭기 그지없어서 단 일수에 장견신의 전신이 그대로 곰방대 아래 노출되었다.
장경신은 이를 악물었다.
캥! 기이한 금속성이 울려 퍼졌다.
어느새 그의 손에는 보검이 들려 있었고 그걸로 쇠마의 곰방대를 막아낸 것이다. "차앗!" 뒤이어 용음이 하늘을 찔렀다.
검기가 부채살처럼 확 퍼지고 있었다.
장경신은 무당파의 절기인 태청검법을 전개하여 연속으로 일곱 번을 공격했다.
그러나 쇠마는 기이한 보법으로 그걸 다 피해내더니 좌수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의 장심(掌心)에서 회색빛 기류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회회마라강이다!" 만리추종이 소리쳤다.
창졸간에 주위가 모두 회색빛 장영으로 뒤덮였다.
우우우웅 거대한 진동이 느껴졌다.
그것은 인간이 발산할 수 있는 장세가 아니었다.
산 같고 바다 같은 기운이 밀물처럼 덮쳐오고 있었다. "오옷!" 질세라 장경신의 검이 푸른 섬광을 일으켰다.
그의 검은 살아있는 것처럼 퍼득퍼득 널을 뛰고 있었다.
그의 옷은 경기에 못 이겨 갈기갈기 찢겨져 나갔고 머리는 산발이었다.
하지만 장경신은 그 경기의 중앙에서 오연하게 버티며 푸른 번개를 쏘아내고 있었다.
파파팟! 거대한 검막이 마침내 회색빛 장영을 압도한다. "엇?" 쇠마의 입에서도 경악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는 장경신이 전개하고 있는 것이 무당파의 비전 절기인 태극혜검(太極慧劍)이라는 것을 알아본 것이다.
그의 옷이 둥글게 부풀어 오르더니 마침내는 터져나갔다.
손노인의 온화한 얼굴은 이미 간곳이 없었다.
엉성한 백발은 하늘로 쭈뼛 솟구쳤고 안색은 대추빛보다도 붉었다.
전신의 혈관이 툭툭 불거지면서 왜소한 몸이 갑자기 두 배로 늘어나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의 좌수가 회색빛 기류를 일으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팔뚝까지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회회마라강(灰灰魔羅 )을 극성으로 끌어올리고 있는 것이다.
꽈광! 장력과 검기가 부딪쳤는데 어이없게도 폭음이 일었다.
장경신은 손아귀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과 함께 그토록 가공할 기세로 일어나던 검기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태극혜검까지 파해되다니!' 놀라움은 잠깐이고 장경신의 몸이 그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다시 그의 몸에서 빛기둥이 일어났다. "벽라검결!" 우렁찬 음성이 터져나왔다.
장경신의 모습은 이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연기가 사라지듯이 신형이 꺼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검기는 여전히 충만했다. '땅속이다.' 순간적으로 판단한 쇠마가 허공으로 날아오른 것과 땅속에서 하얀 검이 불쑥 솟아오른 것은 거의 동시였다. "핫!" 쇠마가 아래를 향해 일장을 갈기고 있었다.
구르릉 땅이 한 자나 되게 깊이 파였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의 인영이 솟구쳐 올랐다.
머리를 산발하고 핏발선 눈을 부릅뜬 장경신이었다. "잠결까지 피해내다니 과연 쇠마로구나!" 그의 검이 믿어지지 않을 속도로 움직였다.
벽라검결(碧羅劍訣) 중 잠결(潛訣)에 이어 쾌결(快訣)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쩡! 귀청을 찢는 금속성이 터져나왔다.
두 사람은 허공에서 격돌했고 순식간에 십이초를 교환했다.
장경신의 쾌결은 쇠마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했지만 쇠마의 곰방대 역시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윽!" 바닥에 내려선 장경신이 다시 비틀거렸다.
이 몇 차례의 격돌로 장경신은 자신이 쇠마의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하기야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쇠마가 누구인가? 바로 삼십 년 전에 천하를 공포로 몰아넣은 통천삼십삼마 중에서도 첫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물이 아닌가! 사실 장경신이 이 정도로 맞상대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경신은 결코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상대가 쇠마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기왕 이렇게 된 것, 남은 방법은 한 가지뿐이다.
아직 극성까지 연성하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파천황결(破天荒訣)을 사용하는 수밖에!' 그의 눈에 핏발이 사라지고 대신 차분한 빛이 자리를 잡았다.
구우우웅 보검이 다시 용음을 흘렸다.
이어 하얀 검광이 허공으로 일 장이나 치솟더니 곧장 쇠마를 향해 뻗어갔다. "파천황결!" "와라!" 쇠마가 가슴을 불쑥 내밀며 곰방대를 내던졌다.
그의 양수(兩手)가 두서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바다를 처음 보는 어린아이가 밀려오는 파도를 맨손으로 막으려는 것과 같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 보잘것없는 손동작이 주는 의미는 엄청났다.
꽈광! 꽈과광! 수천 근의 화약이 일시에 터지는 것 같은 폭음이 연달아 울려 퍼졌다.
뇌전이 되어 내리꽂히던 검광이 쇠마의 장력에 의해 산산이 부서지고 있었다.
보검이 수수깡처럼 토막이 나 사방으로 흩어졌고 폭음의 여파에 휘말린 하나의 인영이 훌훌 날았다. "경신아!" 만리추종이 급히 신형을 날린 것은 그 순간이었다.
그는 날아오는 인영을 덥석 부둥켜안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우욱!" 두 사람이 사라짐과 동시에 쇠마가 한 모금의 선혈을 울컥 토해 냈다.
그러나 쇠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손등으로 입가를 쓱 닦아 내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어째서 저자들을 살려 보내느냐?" "아직은 죽일 때가 아닙니다." 조용한 음성과 함께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걸어 나왔다.
손에 붓을 들고 있는 지마와 머리에 죽립을 눌러쓴 쾌마였다. "그를 가게 두어야 합니다." "음……." 쇠마가 침음성을 토해내며 허공을 보았다. "금룡, 허명인 줄 알았더니 정말 대단하구나.
저런 새파란 후배가 어느새 우리 십마의 경지에 도달했다니……." 조금 전, 그는 단 반 수의 차이로 장경신을 꺾을 수 있었다.
만일 장경신이 마지막으로 발휘한 절초가 조금만 더 강맹했더라도 그는 결코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하면 두려운 일이다. "강해야 금룡이지요." 지마가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빙긋 웃었다. "저자는 아직 이용가치가 많습니다.
두고두고 울거먹어야 하니까 강할수록 좋습니다." * * * 어둠이 내린 지 오래다.
두 사람이 산길에 자리잡고 있었다.
둘 다 누덕누덕 기운 옷에 머리에 때가 반질반질 흐르는 걸인이었다.
하나는 돌베개를 하고 바닥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고, 하나는 옷자락을 들추며 이를 잡고 있는 중이었다.
조금 기이한 광경이었다.
걸인이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것이야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지만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밤중에 이를 잡겠다고 옷자락을 들추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이해할 수 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저런 짓을 하겠는가? 복청양은 걸음을 멈췄다.
그는 조금 우울한 눈으로 두 걸인을 보고 있었다.
그의 눈가에는 짙은 그늘이 져 있었고 양쪽 뺨은 움푹 들어가 있었다.
걸치고 있는 옷도 먼지가 뽀얗게 앉아 있었다.
누가 보아도 먼길을 여행중이고 피로에 지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손노인의 집을 떠난 지 열흘.
그 동안 그는 여섯 차례에 걸쳐 치열한 격전을 치러야만 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그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검수들이 매복을 하고 있다가 덤벼드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단심백결회 소속이었는데, 다행히 무공이 대단치 않았기에 몸을 빼낼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다면 벌써 노중고혼(路中孤魂)이 되었거나 아니면 손에 피를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여섯 차례의 격전은 복청양을 극도로 지치게 만들었다.
그는 기습을 받을까 염려되어 객점에도 들 수가 없었고 밤에도 깊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당연히 휴식이 모자랐고 신경은 극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이레째 되는 날부터 그는 낮을 버리고 밤길을 가기 시작했다.
그 뒤로는 다행히 매복은 피할 수 있었지만 가뜩이나 설은 길에 밤길을 가자니 자연 행보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깊은 산속에서 다시 두 명의 괴이한 걸인을 만난 것이다. '우연은 아니다.' 복청양은 왠지 저 걸인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걸인들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크크…… 이것아, 드디어 손님이 왔나 보다." "조용히 해라.
어르신 주무시는데 방해하면 좋은 소리 들을 것 같으냐?" 돌베개를 하고 자고 있는 걸인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잠은 나중에 천천히 자도 된다.
하지만 지금은 일을 할 때가 아니냐? 제법 통통한 이가 걸려 들었으니……." '이라고?' 복청양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어쩐지 저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든다.
바로 그의 사부인 천산오조가 늘 저런 식으로 싸우곤 했지 않은가.
바닥에 누운 걸인이 부스스 일어나는 게 보였다. "아아흠……." 걸인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더니 몸을 일으켰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무서운 광망을 발하고 있었다. "왔으면 이리로 가까이 와야지, 왜 오다 말고 그러고 있느냐?" "방금 그 말, 나 들으라고 한 것이오?" 복청양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어쭈, 곱상하게 생긴 놈이 웃기까지 하네." 이를 잡던 걸인이 역겹다는 듯 부르르 진저리를 친다. "그놈 관상을 보아하니 여자 여럿 울릴 놈이다.
그러니 죄없는 여자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조금 손을 봐주는 게 좋겠지." "암, 그게 다 좋은 일 하는 거다.
우리는 이담에 죽어서 극락 갈 것이다." 두 걸인은 이제 나란히 서서 본격적으로 길을 막아서고 있었다.
길바닥에 누워있던 걸인은 우습도록 키가 작았다.
그런데 몸뚱이는 무척이나 뚱뚱해서 동그란 공을 연상시켰다.
기이한 것은 그의 팔이 지나치게 길어 거진 무릎 아래로 내려와 있다는 것이다.
손에는 새끼줄 같은 것을 둘둘 감아쥐고 있었다.
반면에 이를 잡던 걸인은 훌쩍 큰 키에 바싹 말라 있었다.
얼굴은 세모꼴이었으며 새파란 섬광이 이는 동공은 고양이처럼 길쭉했다.
지주개(蜘蛛 )와 당랑개(螳螂 ).
이들은 십방좌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개방에서도 원로급에 속하는 고수들이었다.
둘 다 팔결제자로 구결제자인 용두방주(龍頭 主)를 제외한다면 신분이 가장 높았다.
또한 개방의 장로직을 맡고 있는 인물들이기도 했다.
이충개(二蟲 )라고도 불리는 이들 두 사람은 언제나 같이 다녔다.
그래서 그들을 대하는 사람은 한 사람만 나타나더라도 언제나 다른 하나를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하지만 복청양이 그런 것을 알 까닭이 없었다. '보아하니 오늘밤 또 한 번 곤욕을 치르겠구나.' 복청양은 내심 찜찜해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런 괴상한 걸인들과 싸우느니 도망칠 수만 있으면 달아나는 게 상수다.
하지만 두 걸인은 벌써 그 눈치를 알아챈 모양이었다. "저거 봐라.
저놈 눈알이 뒤룩뒤룩하는 게 아무래도 수상쩍다." "흐흐…… 감히 우리 앞에서 달아날 궁리를 하는 모양이지?" 휙 당랑개가 껑충 뛰었다.
그의 도약술은 매우 특이해서 무릎도 굽히지 않고 뻣뻣하게 뛰는데도 단 두 번의 몸놀림으로 어느새 복청양의 뒤에 와 있었다.
이렇게 되니 복청양은 앞뒤로 적을 맞이한 셈이었다.
복청양의 얼굴이 굳어졌다. "두 분, 무슨 용건인지는 짐작하지만 나는 두 분과 손질을 하고 싶지 않소." "호, 손질을 하고 싶지 않다? 이제 보니 인정도 많은 놈일세 그려." "흐흐…… 천하의 천노살성이 자비심이 있다고 한다면 인정이 씨가 말랐겠다." "야, 이놈아! 잠자코 목이나 두고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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