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4 - 13편 (13/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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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4 - 13편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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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광경을 보고 정신을 못 차리던 소년이 그제야 다급히 소리쳤다.
청년은 교굉으로 바로 여인의 오빠였던 것이다.
그러나 교굉은 소년의 고함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제법 재간을 가지고 있는 자이다만 마음은 간악하기 짝이 없구나.
내 오늘 너와 생사결판을 내고 말겠다!" 한광이 다시 번쩍였다.
교굉의 도가 긴 꼬리를 그리며 청년을 덮쳐오고 있었다. "잠깐, 내 말을 좀 들으시오." 청년이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그의 동작은 조금 늦어서 그만 옷 한 자락이 잘려나가고 말았다.
청년의 얼굴이 와락 붉어진다. "경솔하기 짝이 없는 자로군." 청년이 더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다.
그것은 아까 라마승들을 때려눕혔던 그 기묘한 주먹질이었다. "엇!" 교굉은 단번에 그 주먹질의 오묘함을 눈치챈 모양이었다.
다급히 뒤로 물러나며 주먹을 피했다.
청년의 주먹은 간발의 차이로 교굉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후웅권을 피하다니!" 청년이 놀라움의 탄성을 질렀다.
교굉이 자신의 주먹을 피한 게 의외였던 모양이었다.
청년이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아까의 그 기묘한 주먹질이 아니었다.
청년의 손끝에서 흐릿한 권영이 생겨나며 교굉의 어깨를 때렸다. "흥!" 교굉이 나직한 콧소리를 내며 좌수를 들어 권영을 막으면서 도로 비스듬히 청년의 가슴을 베어갔다. "좋구나." 청년이 탄성을 터뜨렸다.
쨍 요란한 금속성 소리가 나며 교굉이 한 걸음을 물러섰다.
청년의 손에는 검은 창이 들려 있었는데 그 창의 길이가 아까와는 달리 넉 자 길이로 줄어들어 있었다.
일단 창을 손에 들자 호랑이에 날개가 돋친 것 같았다.
청년은 무수한 창영을 그려내며 교굉을 덮쳐갔다.
그 창법은 신속하기 그지없었으며 기세가 대단했다.
기선을 빼앗긴 교굉이 급급히 공세에서 수세로 전환하고 있었다.
그는 도로 엄밀한 수비막을 형성하며 묵창을 막아냈다.
순식간에 십여 초가 교환되었다.
소년으로서는 누가 우세하고 누가 불리한지 우열을 짐작하기 어려운 무서운 접전이었다.
이처럼 무서운 대결을 본 것은 처음이었기에 소년은 넋이 나가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바닥에 땀이 흥건했다.
그러나 아무래도 싸움은 청년이 우세했고 교굉이 조금씩 밀리는 것 같았다. "그만 하세요!" 날카로운 고함이 들려왔다.
그러자 교굉은 급히 삼 도를 쳐내 청년을 물러서게 한 뒤에 뒤를 돌아보았다. "교희야, 너 괜찮으냐?" "오빠, 제발 그만 하세요.
그분은 아무런 잘못도 없어요." 교희가 소리쳤다.
그녀는 몸을 바로 세우고 있었는데 알몸에 아까 청년이 덮어준 웃옷을 걸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다니…… 그럼?" 교굉이 얼떨떨한 표정을 짓는다. "노형, 이 모든 것은 오해요.
나는 저 소저에게 무례를 범하지 않았소." 그제야 숨을 돌린 청년이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청년의 설명은 간결했지만 그렇다고 요점을 빼놓지는 않았다. "그게…… 모두 사실이냐?" 교굉이 이번에는 소년을 돌아보았다.
소년의 대답을 구하는 것이다.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입니다." "감히…… 그 쥐새끼들이……." 교굉의 얼굴이 와락 붉어졌다.
그만 경솔하게 생각하여 엉뚱한 사람을 핍박한 게 무색해진 것이다. "용서하지 않겠다!" 도를 움켜쥔 채로 교굉이 훌쩍 몸을 날렸다.
그는 나타날 때처럼 빠르게 사라졌다. "형씨, 사과는 나중에 하겠소.
그럼……." 교굉이 떠나면서 던진 마지막 말이 메아리칠 뿐이었다. "상당히 급한 사람이로군." 청년이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오해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한바탕 악전을 치른 것이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다.
교희가 사뿐사뿐 걸어와 청년에게 예를 올렸다. "저희 오빠가 잘못 생각하여 무례를 범한 것을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청년이 묵창을 거두어 들이며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이 모두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인데 용서하고 말고가 있겠소이까?" 청년의 미소는 부드럽기 짝이 없었다.
마치 봄날의 훈풍이 불어오는 듯했다.
그러자 교희가 멍청하게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의 넓은 마음씨와 영준한 얼굴에 반한 모양이었다.
여인은 빤히 청년을 바라보아 오히려 청년의 얼굴이 붉어지게 만들었다. "누님." 그 모양을 보다못해 소년이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어머?" 그제야 교희는 자신의 모양이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모습으로 낯선 남자의 얼굴을 넋놓고 바라보고 있었으니 수치스럽기 그지없는 일이다.
와락 얼굴이 붉어진 교희는 그만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오두막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말았다. "아무래도 누님이 소협의 용모에 반한 모양입니다." 헛웃음을 실실 흘리며 소년이 말했다.
그는 길거리의 돌멩이처럼 험하게 살아온 터라 남녀간의 미묘한 감정 교류를 읽을 줄 알았던 것이다.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청년이 어색한지 얼굴을 붉혔다.
그런 청년의 모습은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순진하기 그지없었다.
청년과 소년은 양지녘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소년은 바닥에 손가락으로 무엇인가를 끄적거리며 청년의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그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끄적거림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교희는 어찌된 일인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네 이름이 뭐냐?" 문득 청년이 물었다. "단입니다." 소년이 대답했다. "단이라…… 성은 뭔데?" "성 같은 건 없습니다.
누가 나 같은 거한테 성을 지어 주겠어요?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소년이 쓸쓸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덮였다. "그렇구나……." 청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단아, 너한테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니?" "뭔데요?" "여기가 어디냐?" 이번에는 소년이 청년을 빤히 바라볼 차례였다. "세상에!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그래, 산세가 눈에 익기는 한데 여기가 어딘지 도무지 모르겠구나.
북경이냐? 백마사는 여기서 머니?" "북경이라니, 그런 터무니없는 말이 어디있어요? 여기는 태원입니다.
이 산 이름이 뭔지는 모르지만 말이에요.
백마사란 절 이름은 들어 본 적도 없고요." "태원이라고? 여기가 정말로 태원이란 말이냐?" 청년이 펄쩍 뛰었다.
청년의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단(段)은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랐지만 그 일이 청년에게 몹시 중요하다는 것은 알았다.
그리고 여기가 북경이 아니라는 사실이 괜히 미안해지는 것이었다. "으…… 낭패로구나.
도대체 뭐가 잘못 되었단 말이냐?" 청년이 망연하게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 청년의 모습은 마치 넋 나간 것 같아서 보고 있는 단으로 하여금 두려운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도대체 왜 그러시죠? 그럼 소협은 여기가 북경으로 알았다는 말인가요?" "그렇다.
북경이어야만 했다.
반드시 그래야만 했다." 청년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럼 지금이 무슨 해냐? 선덕(宣德) 구 년(九年)이냐?" "구 년이라뇨.
폐하께서 보위에 오르신 지 이제 겨우 사 년밖에 안 되었는데요." "사 년이라…… 그럼 시대마저 틀렸다는 말인가.
아! 모든 게 허사로구나.
목숨을 걸고 모험을 하였건만 일이 이렇게 틀어지다니…… 이것도 하늘의 뜻이란 말인가……." 청년이 입을 다물었다.
그는 마치 넋이 나간 사람 같았는데 그처럼 낙심한 모습은 단으로서는 생전 처음 보는 것이었다.
단은 입을 다물었다.
청년의 심각한 모습은 그가 감히 말을 걸기도 두려울 지경이어서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침묵을 지킨 채 묵묵히 앉아 있었다. * * * 술이 맑다.
교굉은 입으로 가져가던 술잔을 멈추었다.
복청양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청년이 방금 들려준 얘기가 너무나 황당했던 것이다. "자네 그게 정말인가?" "어김없는 사실입니다." 복청양이 술잔을 비웠다.
그는 오늘 만취하기로 작심을 한 모양이었다.
바닥에는 벌써 그가 비운 술병이 여러 병 뒹굴고 있었다. "사실이라…… 그 말을 날보고 믿으란 말인가? 자네가 먼 미래에서 왔으며 장차 단황이라는 괴물이 나타나 천하를 어지럽힐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지지 않아도 믿어야만 합니다.
이 모든 게 사실이니까요." "참, 이게 웬 헛소리인지……." 교굉은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져서 술잔을 비웠다.
뒤늦게 교굉은 세 명의 라마승을 뒤쫓아 가서 그들을 주살했다.
그리고 사과하는 의미로 지금 복청양과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정작 복청양의 입에서 나온 말은 너무도 터무니없지 않은가! 교굉은 광인과 마주앉아 있는 기분이었다. '헛소리를 할 사람 같지는 않은데.
그러나 믿지 못할 소리가 아닌가.
미래에서 왔다니, 사람이 어떻게 시간을 거슬러 올라올 수 있다는 말인가?' 교굉은 술잔을 든 채로 복청양을 빤히 보았다. "자네의 말이 어느 정도는 사실이네.
얼마 전에 천품신성 악자량 대협이 돌연 실종되셨지.
그 일로 지금 무림은 야단들이라네." "그렇습니까?" 복청양이 무심하게 대꾸했다.
그는 교굉이 무슨 말을 하건 별로 관심이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 일은 무림에 몸을 담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
그러나 악대협이 주화입마가 되어 스스로 행방을 감추셨다니 진정 믿기 어렵군." "믿건 믿지 않건간에 상관이 없는 일입니다." 복청양이 말했다. "다만 분명한 건 저는 지금 백마사 부근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엉뚱한 데 떨어졌을 뿐만 아니라 시대도 오 년이나 더 거슬러 올라오다니 지금까지의 노심초사가 다 허사로군요." 복청양이 갑자기 입가에 웃음을 흘리더니 술잔을 꽉 움켜쥐었다. "후훗,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사람이 하늘의 뜻을 거역하려고 하다니.
그런 시도를 한 것만으로도 이미 천벌을 받을 짓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건 아마도 하늘의 뜻인 모양입니다.
다만……." 복청양이 잠시 말을 끊었다. "단황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게 안타깝군요.
이번이야말로 단황을 막을 마지막 기회였는데 모든 게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그건……." 교굉은 입을 다물었다.
마침 문이 열리면서 교희가 볶은 토끼고기를 가지고 들어왔던 것이다. "단이는?" 교굉이 물었다. "좀 쉬라고 했어요.
아무래도 상처가 중한가 봐요." "하긴……." 교희가 다소곳이 앉더니 고개를 돌려 복청양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 붉어지고 있었다.
복청양도 이끌리듯 얼굴을 붉혔다.
낮의 일이 생각났던 것이다.
아무도 그 일을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어색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제가 복공자께 한 잔 올리지요." 교희가 술병을 들고 말했다.
대담하기 그지없는 행동이다. "아, 예……." 복청양은 엉겁결에 술잔을 들어 술을 받았다.
술병을 기울이는 그녀의 손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 바람에 술이 넘쳐 복청양의 손을 적셨다. "어머." 놀라며 교희가 얼른 치맛자락으로 복청양의 손을 닦아주려 했다. "아니, 괜찮습니다." 복청양은 다급히 손을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교희의 손에 잡힌 뒤였고 교희는 치마로 그의 손을 가만가만 닦아주고 있었다.
손에 묻은 물기를 닦아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리 없다.
그런데도 교희는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교소저……." 복청양이 슬그머니 손을 빼낸다.
그제야 교희의 얼굴이 와락 붉어졌다.
그녀는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 오빠를 한 번 보더니 그만 황급히 일어서 방을 나가버리고 말았다. "흥, 흥." 교굉이 기묘한 웃음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자네가 저 아이의 마음에 든 모양이군." "설마…… 그럴 리가요……." 복청양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아닐세." 교굉이 자작으로 술잔을 채웠다.
그의 얼굴이 다소 어두워지고 있었다. "저 아이는 남자라고는 나밖에 모르는 아이일세.
어려서 일찍 부모를 잃고 외롭게 살아왔지.
그런데 자네를 보는 눈빛이 달라.
저 아이가 저런 눈빛을 보이는 것은 처음일세." "지금은 그런 얘기를 할 때가 아닙니다." 복청양이 훌쩍 술을 마셨다.
안하던 술을 많이 마셔서인지 갑자기 취기가 오르는 것 같았다. "그럼 무슨 얘기를 할 때란 말인가.
설마 하니 나보고 자네의 그 허무맹랑한 얘기를 믿으란 말인가." "믿으라고는 하지 않겠습니다.
사실 저 자신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으니까요.
하지만 그 모든 건 엄연한 사실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까지.
이제는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후후,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애써 왔는지 모르겠군요."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간 것은 아닐세." 교굉이 번쩍 눈에 빛을 냈다.
그는 뭔가 좋은 생각이 떠오른 것 같았다. "자네 내가 그 말을 믿기를 원하나?"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고 했지 않습니까." "자네한테는 상관이 없는지 몰라도 나한테는 상관이 있네.
그리고 내가 그 말을 믿어준다면 방법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복청양이 술잔을 들어올리던 손을 멈추고 교굉을 보았다.
언중유골이랄까.
그의 말속에 뭔가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이건 아주 간단한 이론일세." 교굉이 무언가를 생각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의 말이 모두 사실이라면 그 단황이라는 자가 십마를 만나는 것은 앞으로 오 년 후일세.
즉 그 일은 아직 닥쳐오지 않았다는 뜻이지.
그러니까 누군가 있어서 오 년 후에 백마사로 가서 단황을 죽인다면 자네의 뜻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건……." 복청양은 갑자기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그렇지요." "그리고 그 일은 내가 할 수 있네.
자네 내 능력을 어떻게 생각하나?" "형님은…… 강하십니다." "자네에 비해서는 어떤가?" "그건……." 복청양은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교굉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에 비한다면 다소 뒤떨어지는 것만은 사실이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네." 복청양의 마음속을 읽은 교굉이 웃었다. "내가 알고 싶은 건 내 능력이 그 단황이라는 자를 이길 수 있느냐는 것이니까." "단황이 십마를 만나기 전이라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그럼 되었군." 교굉이 짧게 말했다. "원한다면 지금 자네가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해주겠네.
오 년 뒤에 백마사로 가서 단황을 죽여 주지." "형님!" "하지만 조건이 있네." 교굉의 눈빛이 강해졌다.
그가 이렇게 강한 눈빛을 보인 적은 이제껏 없었다. "내 동생을 자네의 여자로 맞이하게." 일순 침묵이 돌았다.
복청양은 멍한 눈으로 교굉을 보고 있었다.
더 이상 취했다고 할 수가 없다.
교굉의 말은 그만큼 충격적인 것이었던 것이다.
교희를 아내로 맞이하라니.
그것은 그가 꿈에서도 생각지 못했던 일이 아닌가! "그건…… 불가능합니다." 한참만에야 복청양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인가?" "우선 교소저와 저는 오늘 처음 만난 사이입니다.
사람의 인연은 하늘이 맺어주는 것이지, 그렇게 억지로 맺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은 내 동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인가?" 교굉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그가 그렇다고 하기만 하면 당장에 손질이라도 할 기세였다.
복청양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런 뜻이 아닙니다.
교소저에 대해서 엉뚱한 생각을 품어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마음에 들고 안 들고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제 말은 다만 이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란 뜻입니다.
그리고 제가 설사 그런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역시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잊으셨습니까.
저는 사흘 후면 돌아가야만 합니다.
이건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 미래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지." 교굉이 빙그레 웃었다.
그제야 복청양은 그가 그의 말을 전혀 믿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하기야 그것은 교굉을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정상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이라면 누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가야 한다면 가야지.
가는 사람을 누가 붙잡겠나? 하지만 설사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나는 지금의 제의를 거두어 들일 생각이 추호도 없네.
교희는 이미 자네에게 알몸을 보였네.
여인으로서 그게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지 구태여 설명을 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
그러니 저 아이는 자네가 거두어야만 하네.
장부가 일을 벌였으면 책임을 져야지." "형님." "그리고 자네는 선택의 여지가 없네.
자네는 단황을 죽여야 한다고 했고 그 일은 나 아니면 해줄 사람이 없지 않나.
내가 그 일을 하겠네.
약속하지.
이래봬도 난 사내일세.
사내라면 마땅히 자신이 한 말을 지켜야지.
자네의 말이 사실이건 거짓이건간에 나는 오 년 후에 백마사로 갈 걸세.
그리고 거기에 단황이라는 자가 나타난다면 반드시 그를 죽이겠네.
어떤가, 이래도 내 제의를 거절할 텐가?" "형님!" "이 일은 애당초 자네가 교희를 도와준 것이 실수였네.
인연은 하늘이 맺는 것이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냐.
만일 지금 자네가 저 아이를 거두지 않는다면 저 아이는 평생을 처녀로 지내거나 아니면 강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도리밖에는 없네.
오빠 된 입장으로 어찌 그런 꼴을 보겠나." 교굉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고뇌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곧 나는 먼 길을 떠나야 하네.
자네는 잘 모르는 일이지만 나는 서역의 라마승들과 약간의 원한이 있네.
오늘 낮에 일어났던 일도 그 원한 때문에 파생된 것이지.
그러니 나는 곧 서역으로 가서 그 일을 정리하고 와야 하네.
그런데 그 먼 길을 저 아이를 데리고 갈 수도 없지 않나.
저 아이는 누군가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네.
그리고 자네라면 충분히 그 일을 해줄 수 있으리라 믿네." "아직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셨군요.
저는……." "아니, 알아." 교굉이 손을 홰홰 저었다. "자네는 사흘 뒤에 떠나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겠지.
하지만 사람의 일을 누가 아나.
자네가 오늘 여기에 이를 줄 아무도 몰랐던 것처럼 사흘 후에 정말로 떠나게 되리라고 누가 장담을 하겠나.
그러니 나는 도박을 한 번 해볼 생각일세.
자네가 사흘 후에 떠나지 않는다는 것에 나는 내 동생을 걸겠네." "형님은 아마도 그 결정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후회해도 좋네.
그리고 이건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야." 교굉이 빙긋 웃었다.
진정 사나이다운 웃음이었다. "어쩌겠나? 자네가 내 제의를 받아들인다면 단황을 죽일 수 있는 한 가닥 희망이 생기네.
하지만 내 제의를 거절한다면 그 희망은 영영 없어지는 거야.
만일 자네가 끝내 고집을 부린다면 나는 절대로 백마사에 가지 않겠네.
그러면 희망은 없는 거야." 복청양은 고개를 숙였다.
교굉은 타고난 도박꾼이었다.
그는 복청양을 꼼짝도 못하게 하고 있었다.
복청양은 마치 질긴 거미줄에 얽힌 기분이었지만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죠." 마침내 복청양이 힘없이 말했다. "형님의 제의를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지만 형님도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만 합니다." "그건 걱정 말게, 하하!" 교굉이 유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자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십오 년 후, 섣달 그믐날에 사자림에서 자네를 기다리지.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걸세, 그리고 자네는 평생 오늘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아도 될 걸세." '후회하게 될 겁니다.
반드시.' 복청양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술잔을 기울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형님은 큰 실수를 하고 계신 겁니다.
형님은 제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어야만 합니다.
이 일은 그렇게 웃음으로 얼버무릴 일이 절대로 아닙니다.' * * * 단은 복청양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는 약간 어색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작정한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복청양이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복청양의 미소는 늘 보기 좋았다. "몸은 좀 어떠냐?" "다행히 뼈가 부러지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단이 두 팔을 활짝 벌려 보였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하룻밤 자고나자 몸이 거뜬해졌던 것이다. "다행이구나." "근골은 타고났으니까요.
저 같은 놈이 근골이라도 단단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단은 복청양의 곁에 쭈그리고 앉았다.
햇살이 따뜻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이렇게 맑은 날은 공연히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지금의 단이 그랬다.
오두막에는 복청양과 단, 단 둘뿐이었다.
교굉은 날이 밝자 교희를 데리고 산을 내려갔다.
듣기로는 오늘밤에 있을 혼례식 준비를 하러 간다 했다.
복청양과 교희가 혼인을 하게 된다는 소식을 듣고도 단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복청양은 교희의 신랑감으로는 아주 적격이었다.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복청양을 위해서나 교희를 위해서나 그것은 아주 잘된 일이었다. "나한테 무슨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느냐?" 복청양이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까부터 단이 입을 우물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 하는 눈치를 알아챈 것이다. "네." 단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나한테 그 재간을 가르쳐 주세요." "재간이라니 그게 뭔데?" "이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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