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2 - 1편 (1/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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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2 - 1편 (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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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장 금인(金人) 제 11 장 천고비서(天古秘書) 제 12 장 선상(船上) 제 13 장 칠대공적(七大公敵) 제 14 장 제마옥(制魔獄) 제 15 장 후웅권( 雄拳) 제 16 장 야(夜) 제 17 장 허실(虛實) 제 18 장 음모일단(陰謀一端) 제 10 장 금인(金人) 일단 관이 입을 연 이상 관 속에서 살아있는 사람이 나왔다고 해서 놀랄 일은 아니다.
금실로 화려하게 꽃을 수놓은 화복을 걸치고 있는 노인이었다.
원래는 살집이 좋았을 얼굴은 움푹 들어가 주름이 가득하고 자주색 그늘이 가득 덮여 있었다.
탐스럽던 수염은 관 속에서 쥐어뜯었는지 쥐가 파먹은 것 같았으며 두 손은 온통 상처투성이였다.
안에서 관을 두드리느라고 그리 된 모양이었다.
복청양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관 속에 살아있는 사람이 들어있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관 속에서 나왔다면 의당 수의를 걸치고 있어야 옳은 일이 아닌가? 그런데 화복이라니……. "후우!" 노인이 청량한 밤공기를 목마른 사람처럼 들이마시더니 이윽고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살아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소.
전에는 살아서 숨을 쉰다는 게 그냥 거저 주어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처럼 소중한 것도 없나 보오."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복청양이 물었다. "얘기를 하자면 기오.
후후…… 이 늙은 몸이 말년에 이런 고생을 할지 누가 알았겠소." 노인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노인의 성은 금이었다.
그래서 주위에서는 그를 금노야(金老爺)라고 불렀다.
금노야는 젊어서부터 이재(理財)에 밝은 사람이었다.
일찍 장사에 눈을 떠 여러 가지 상업을 하였는데 운이 좋았던지, 아니면 특출한 비결이 있었는지는 모르나 하는 것마다 성공을 거두었다.
그래서 말년에는 제법 재산을 모으고 갑부 소리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느라 장가를 들지 못했던 금노야는 늦게야 젊은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늦게 한 혼인이니 만큼 자연 아내에게 쏟는 그의 정성은 각별한 것이었고, 부부간의 금실 좋기로 인근에 소문이 나 있었다.
젊은 아내는 혼인한 지 칠 년 만에 그에게 세 명의 아들을 선물해 주었다.
그래서 금노야의 말년은 행복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런 세 아들.
그리고 쓰고 써도 남을 만큼 풍족한 재물이 있으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었다.
산다는 게 이런 것인가.
금노야는 그저 자신이 너무 빨리 늙어가는 게 한스러울 뿐이었다.
그런데 열흘 전이었다.
금노야의 집 앞에 한 중이 나타나 시주를 청했다.
원래 불도에 깊이 심취해 있던 금노야였다.
지금까지 시주를 청하는 중에게 한 번도 소홀히 대한 적이 없었다.
이번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금노야는 그 중을 집 안으로 불러들여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중은 의외로 불심이 깊고 득도한 승려 같았다.
금노야의 평생에 처음 보는 고승이었다.
자연 금노야의 대접이 각별해졌다.
그는 그 중을 집 안에 머물게 하면서 온갖 환대를 다하였다. "그런데 그게 화근이었지 뭐요." 금노야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닷새째 되던 날, 동정화상(銅鼎和尙)이라고 자칭한 그 중이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감언이설로 꾀어 별장으로 금노야의 거처를 옮기게 한 동정화상은 돌연 가공할 무공을 선보이며 금노야의 가족들을 인질로 삼아 재물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동정화상이 원하는 건 황금이었소.
다른 건 아무 것도 필요없고 오직 황금만을 내놓으라는 것이오.
본래 나처럼 재물이 있는 사람은 만약을 대비하여 재간이 있는 사람들을 고용하는 법이오.
어찌 나라고 예외가 될 수 있겠소? 나 역시 거금을 들여 제법 고수라는 사람들을 호가무사로 들여앉혀 두었소.
그런데 그 많은 돈을 들인 호가무사가 그 중놈한테는 전혀 맥을 쓰지 못했소.
호가무사 중 셋이 동정화상의 주먹에 맞아죽었고 나머지는 달아나 버렸소.
나는 관가에 알리고 싶었지만 아내와 세 자식놈이 인질로 붙들려서 그럴 수도 없는 형편이었소.
그래서 별수없이 그자가 원하는 대로 황금을 갖다 바치기 시작했소." 동정화상의 욕심은 끝이 없었다.
어지간하면 만족할 만도 한데 계속 황금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틀 전에는 금노야가 갖다 바치는 황금이 적다고 큰아들을 단매에 쳐서 죽이기까지 했다. "그럴 수가……." "그것뿐이 아니오.
그 중놈은 어디서 데려왔는지 십여 명의 수하들을 이끌고 와서 아주 내 집을 장악하고 말았소.
그자들의 행패는 입에도 담기 어려울 지경이어서 내 집의 시비들이 모두 그자의 부하들에게 겁탈을 당하였고 죽은 사람도 넷이나 되오.
우리집은 살아있는 생지옥이 되고 만 것이오." 한 가지 다행한 점이 있다면 금노야의 젊은 아내만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내는 동정화상에게 인질로 잡혀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그 중은 재물만 밝혔지 여색에는 관심이 없었던 덕이었다. "나는 최선을 다하여 황금을 끌어모아 그자에게 갖다 바쳤소.
재물이야 이 다음에라도 다시 모으면 되는 것이지만 사람은 일단 죽으면 다시는 살릴 수 없는 것이 아니겠소.
나는 그저 이 재앙이 어서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을 뿐이오." 하지만 사랑하던 큰아들이 죽임을 당하자 금노야의 인내심도 바닥이 나버렸다.
그는 생전 처음으로 주먹을 쥐고 그 중에게 달려들었다. "그 결과가 어찌 되었겠소? 그자는 나를 일격에 정신을 잃게 만들었소.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바로 관 속이었소.
그자는 잔인하게도 나를 산 채로 관 속에 집어넣어 생매장을 시킨 것이오." 다시 한 번 금노야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으로 닥쳐든 재앙에 대한 원망이리라. "노인장……." 복청양은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했다.
무어라 위로를 해주어야 할 것 같은데 적절한 말이 잘 찾아지지 않았다. "후우!" 금노야가 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모든 게 내가 사람을 잘못 본 때문이니 누구를 원망하겠소.
나야 죽으면 그만이지만 아내와 자식놈들이 그자한테 곤욕을 치를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소 그려.
저 안에 갇혀있을 때는 그저 살고 싶은 마음 하나였는데 막상 나오고 보니 산다는 것이 다 부질없구려.
이 나이에 자식과 아내를 잃고 살아봐야 뭐 하겠소.
그저 죽는 게 제일이지." 금노야가 몸을 일으켰다.
그의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은공한테는 미안하지만 나는 다시 관 속으로 들어가야겠소.
이번에는 정말로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소.
다시 생각해 보니 죽는 것만큼 큰 축복이 없나 보오.
염치 없지만 은공에게 부탁을 하나 드려도 되겠소?" "무슨 부탁이신지?" "내가 들어가거든 저 관을 다시 묻어주시오.
이 나이에 무덤도 없이 죽을 수는 없지 않소." 금노야가 발길을 돌리더니 다시 관 속으로 들어가려 했다.
죽고 싶다는 그의 말이 그저 해보는 허언은 아닌 모양이었다.
복청양은 급히 그의 소매를 붙들었다. "노인장, 이러지 마십시오." "이거 놓으시오!" 뿌리치는 금노야의 힘이 의외로 완강했다.
그러나 복청양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노인장의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이런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고정하십시오." "그럼 날 보고 어쩌란 말이오? 이제 다시 살아났다고 어정어정 그 집으로 걸어 들어가란 말이오? 그런 일은 죽었으면 죽었지 다시는 못하오.
내 눈으로 자식들이 그 간악한 자의 손에 죽어가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는 것이 백 번 낫소." "노인장, 그럼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금노야가 복청양을 돌아보았다. "무슨 방법이라도 있소?" 복청양은 조금 망설였다.
갈 길이 급한 몸이 아닌가? 이런 데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것을 손노인이 안다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절망에 찌든 금노야의 얼굴을 보자, 그는 의외로 쉽게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제가 비록 재간은 없으나 한 번 그 동정화상이라는 자를 만나보기로 하지요.
일단 잘 말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힘으로라도 그자를 쫓아 드리겠습니다." "정말 그래 주시겠소?" 금노야가 복청양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는 마치 어둠 속에서 광명을 찾은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쁨은 잠깐이고 이내 다시 어두운 그늘이 덮였다. "은공의 말씀은 고맙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소." "어째서입니까?" "그자의 무공은 정말로 고강하오.
내가 비록 무공을 익히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보는 눈은 있는데 그자의 재간은 내 평생 처음 보는 것이었소.
은공이 나서 주겠다면 나로서야 더할 수 없이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그랬다가 자칫 잘못하여 은공이 해라도 입는다면 나는 그 죄를 평생 씻을 수 없을 것이오."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됩니다." 복청양의 입가에 웃음이 감돌았다.
지금의 금노야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처지가 아닌가? 도와주겠다면 목을 매달고라도 덤벼들 판인데 그런 와중에서도 남의 사정을 헤아리는 인품에 감동된 것이다. '이런 선량한 사람을 괴롭히다니…….' 무(武)란 무엇인가? 자고로 힘써 무공을 익히는 것은 약한 심신을 단련시키고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며 거기에 더하여 이 세상에 가득한 불의를 없애기 위함이지 않은가?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얼마간의 재간을 익히면 그 힘을 믿고 남을 먼저 괴롭히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무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무의 참뜻을 세워야만 한다.' 그렇게 생각하자 복청양은 기운이 부쩍 솟는 것 같았다. "사람의 운명은 사람이 저울질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설사 제게 무슨 변이 생기더라도 그것은 제 운명이니 노인장께서 괘념할 일이 아닙니다.
어서 저를 댁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이 밤이 가기 전에 일을 끝마쳐야만 하지 않겠습니까?" "은공……." 복청양을 잡은 금노야의 손이 떨렸다.
그의 눈가에 맺혀있는 것은 아마도 눈물이리라. * * * 바람도 없는데 굵은 촛불이 일렁였다.
넓은 방안에 두 남녀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그것은 괴상하다고는 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면 밤중에 두 남녀가 옷을 벗고 있는 것이야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그렇게 다반사로 여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남자는 반들반들하게 백호를 친 대머리였다.
이마에 계인이 선명한 것으로 보아 화상이 분명했다.
그는 상당히 비대한 몸집을 지니고 있었다.
사람의 체구라는 것이 원래 옷을 입고 있을 때는 모르나, 옷을 벗으면 그 장단점이 그대로 내보이는 법이 아닌가! 그는 다리를 벌리고 우뚝 서 있었는데 다리 사이에서 덜렁거리는 흉물스러운 물건을 축 늘어진 배가 가리고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는 알몸의 여인은 이십대 후반으로 보였는데 매우 뛰어난 미색이었다.
그러나 여인의 얼굴은 깊은 슬픔에 잠겨 있었다. '이런 짓을 하면서까지 목숨을 부지해야 하다니, 산다는 게 참으로 치욕스럽구나.' 여인은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다만 마음속의 상념이고 겉으로는 그저 처연한 기색뿐이었다.
여인의 손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방안에는 작은 솥이 하나 있었고 거기엔 누런 액체가 담겨 있었다.
여인은 그것을 솔에 묻혀 괴화상의 몸에 바르는 중이었다. "으…… 시원하다." 화상의 입가에 만족한 기색이 떠올랐다.
솥에는 방울방울 기포가 맺혀 있었다.
일견으로도 매우 뜨거운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런데 그걸 몸에 바르는 데도 시원하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화상의 몸뚱이는 벌써 절반 가까이 누런 액체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그 누런 액체가 불빛을 받아 번쩍번쩍 빛을 낸다.
오오…… 이제 보니 그것은 황금이었다.
황금이 녹아 물이 되어 솥 속에서 끓고 있었다.
금물.
그 귀중한 것을 화상은 몸에 바르고 있는 것이다. "흐흐…… 더 발라라.
어서 어서 내 몸에 흠뻑 바르거라." 괴화상이 흡족한 기색으로 재촉하자 여인의 손이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는 힘을 다하여 솔질을 하고 있었다.
마치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이라는 듯이.
여인의 움직임에 따라 풍만한 젖가슴이 화상의 눈앞에서 덜렁거렸다.
참으로 탐스러운 젖가슴이었다.
이미 애를 셋이나 기른 젖가슴이건만 그것은 처녀의 것처럼 탄력이 있었고 당당하게 위로 솟아올라 있었다.
눈앞에서 그 젖가슴이 움직이는 것을 보는 화상의 눈이 탐욕으로 번들거렸다. "흐흐…… 참으로 귀여운 것이로다." 화상이 손을 들더니 젖가슴을 사정없이 움켜쥐었다. "아!" 여인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여인은 몸을 부르르 떨었는데 그 바람에 하마터면 손에 든 솔을 놓칠 뻔했다. "조심하거라!" 화상의 입에서 벼락 같은 고함이 터져나왔다. "모든 게 정성이 제일이다! 만일 그걸 떨어뜨린다면 네 목숨은 없을 줄 알아라!" 여인이 다시 진저리를 쳤다.
그녀의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다.
이 화상의 잔인함이야 익히 보아온 바가 아닌가? 이자는 한다고 하면 정말로 한다.
이미 그녀의 눈앞에서 자식이 죽는 것도 보았고 남편이 산 채로 매장당하는 것도 보지 않았던가? "요, 용서하십시오." 여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살아야 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살아야 한다.
생각 같아서는 혀를 물고 죽고 싶다만 남은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살아야 한다.
그 아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해야 한다.' 여인은 다시 솔을 잡고 신중하게 솔질을 이어 나갔다.
그러자 화상의 얼굴이 훈풍처럼 부드러워졌다.
그는 만족한 얼굴로 눈을 지그시 감고 한 손으로는 여인의 젖가슴을 어루만지고 있었다. "정말 귀여운 계집이다.
너를 보고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안고 싶어진단 말이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일이다.
나는 평생 계집을 품지 않기로 맹세한 몸이니 그 맹세를 깨뜨릴 수는 없다." 화상의 입이 벌어지며 턱밑으로 주르르 침이 흘렀다.
그러나 화상은 자신이 침을 흘린다는 사실조차도 의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런 계집을 품지 못하다니 정말 한스러운 일이다.' 먹고 싶어도 먹지 못하는 떡이 있다면 더욱 맛있게 보이는 법이다.
지금의 화상이 바로 그런 심정이었다.
하지만 화상이 여자를 건드리지 않는 것은 그의 불심이 깊어서도 아니고 맹세 때문도 아니었다.
다만 어쩔 수 없어서 그리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익힌 무공은 일종의 동자공(童子功)이었다.
그것은 동정을 무엇보다도 중히 여기기에 함부로 여인을 가까이 할 수가 없었다.
알고 보면 간단한 이치였지만 그 간단한 이치가 바로 여인을 구원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화상의 몸에 금칠이 끝났다.
화상은 마치 살아있는 금불상 같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금빛으로 번쩍거렸다.
일렁이는 촛불 밑이라 그런지 그것은 더욱 괴이하게 보였다. "이제 되었다." 화상은 가벼운 손짓으로 여인을 내치더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아아……." 벽으로 물러난 여인이 기진하여 스르르 주저앉았다.
매일 밤 겪는 일이지만 겪을 때마다 죽기보다 싫은 치욕감이 느껴졌다.
또르르 그녀의 볼에 한 방울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자신의 알몸을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 쭈그리고 앉은 채로 화상이 하는 양을 지켜보았다.
화상은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선정에 든 듯한 모습이었다.
굵은 눈썹이 간혹 꿈틀거릴 뿐 정말로 금불상이 된 것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시간이 흐르면서 화상의 몸에서 김 같은 것이 무럭무럭 피어오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화상의 몸은 그 김에 가려 흐릿한 형체를 보일 뿐이었다.
몸에 바른 금물이 점차 엷어지더니 서서히 화상의 몸 속으로 흡수되기 시작했다.
그토록 번쩍거리던 빛이 흐려지면서 몸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볼수록 기이한 광경이다.
그러나 여인은 매일 밤 보는 것이므로 그다지 신기하지도 않았다. '오늘도 살았구나.' 여인은 그저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만족했다.
하지만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저 괴상한 화상이 무슨 변덕을 부릴지…….
아니, 그보다 몸에 바를 금이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생각하기도 두려웠다.
최소한 금이 있는 동안에는 여인은 살 수 있었다.
여인의 아이들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금이라도 언젠가는 동이 나기 마련이다.
그 뒤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좌아 구레나룻을 시커멓게 기른 장한이 담 밑에다 소변을 갈기고 있었다.
소의 것 같은 굵은 줄기가 신명나게 뻗어나가 담 아래를 적셨다.
장한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흐흐……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장한은 괴춤을 여미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축시(丑時)다.
그러면 교대할 사람이 온다.
아무 일도 없을 줄 알면서도 이렇게 매일 밤 경계를 서야 한다는 것은 지겨운 일이다. "오늘은 어떤 계집을 죽여 줄까?" 장한은 생각나는 여인의 얼굴들을 닥치는 대로 떠올렸다.
이 집 안에서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계집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계집이란 품으면 품을수록 맛이 나는 물건이 아닌가. "생각 같아서는 그 야들야들한 것을 품고 싶다만 대화상께서 한사코 싸고도시니 그럴 수도 없고……." 장한은 금노야가 데리고 살던 여자의 아름다운 미색을 생각하며 입맛을 다셨다.
그 여자 생각만 하면 아랫도리가 차 오른다.
하지만 장한은 분수를 아는 인물이었다.
공연히 넘볼 수 없는 과일을 노렸다가 명 재촉할 짓은 하기 싫었다. "흐흐…… 누군들 어떠냐? 계집은 다 같은 거지." 장한이 만족한 웃음을 흘리며 막 돌아설 때였다.
불쑥! 실제로 그런 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그만큼 눈앞에 나타난 물체가 너무 갑작스러웠다. "헉?" 장한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이 새어나왔다.
그의 눈앞에 화복을 걸친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아무 말도 없이 두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말할 수 없이 괴기스러웠다.
장한은 자신도 모르게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너, 너는……." 그가 어찌 저 얼굴을 모르랴.
바로 낮에 자신의 손으로 땅속에 생매장을 시킨 인물이 아닌가? 지금쯤 틀림없이 죽어서 영혼이 하늘로 올라갔어야 할 인물이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났으니 그걸 보고도 심장이 제자리에 붙어있는 게 다행이었다. "너…… 귀신이냐, 사람이냐?"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튀어나온다.
그러나 노인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저 공허한 눈으로 말없이 장한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장한의 심장이 덜컥 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정말로 귀신이란 말인가?' 그러나 장한은 거세게 도리질을 쳤다.
그도 사리를 아는 인간인데 귀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는 없다. "이놈, 죽어라!" 장한이 돌연 소리를 지르며 손을 뒤집어 노인의 가슴에 일장을 갈겼다.
펑 북 치는 소리가 났다. "아니?" 장한은 팔목이 끊어질 듯한 통증에 아연하여 다시 앞을 보았다.
노인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그대로 서 있었다.
옷자락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이, 이럴 수가…… 정말로 귀신이란 말인가?' 그가 알기로는 이 노인은 무공을 조금도 할 줄 몰랐다.
그런데 자신의 일장을 맞고도 끄떡없다니, 귀신이 분명하다.
귀신이 아니라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때 노인이 움직였다.
노인은 팔을 축 늘어뜨린 채로 장한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가, 가까이 오지 마라……." 장한은 거의 본능적으로 팔을 휘두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달아나려는 것이다.
귀신과 상대하여 좋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주춤주춤 물러나던 장한은 급기야 몸을 돌리며 줄행랑을 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채 다섯 걸음도 걷기 전에 갑자기 뒷목이 뜨끔했다.
장한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으음!" 노인의 입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넋나간 얼굴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장한을 보더니 문득 소리쳤다. "죽었소?" "죽지는 않았습니다." 스읏 노인의 뒤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나타냈다.
복청양이었다.
그는 조금 울적한 얼굴로 장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저 점혈당해 의식을 잃었을 뿐입니다." "왜 이자를 죽이지 않았소?" 금노야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나왔다.
지금까지 이자들의 행패에 당한 것이 얼마인가? 그런데 이제야 복수를 하는가 싶었는데 죽이지 않았다고 하자 노여움이 와락 치민 것이다. "노인장, 인명을 함부로 해칠 수는 없습니다." 복청양이 조용히 말했다. "인명이라고? 이런 자들도 사람 축에 낀단 말이오?" "행실이야 어찌 되었건 생명을 가진 것은 다같이 소중합니다.
이자에게 잘못이 있다면 이후 관가에 끌고 가서 죄값을 받게 하면 되는 것이지 무턱대고 죽일 수는 없습니다." "아! 은공이야말로 진짜 살아있는 부처이시오.
무를 익힌 사람이 다 은공만 같다면 이 세상에 아무런 근심도 없을 것이오." "과찬이십니다." 복청양이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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