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2 - 2편 (2/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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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2 - 2편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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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금노야의 칭찬을 듣고 싶어 이러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사람을 함부로 죽여서는 안 된다는 평소의 소신을 굽히기 싫었을 뿐이었다. "그러나저러나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니오.
그토록 무서웠던 자들이 이제는 별것 아니라고 느껴지니……" 금노야는 무력하게 쓰러져 있는 장한을 보며 자신의 마음이 간사함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거야 이자의 무공이 대단치 않고, 또 워낙 겁에 질려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지요." "아니오, 아니야.
그보다는 은공의 무공이 이미 입신(入神)의 경지에 들어있기 때문이오.
이 늙은 것이 이제야 개안(開眼)을 한 기분이오." 금노야의 음성은 이제까지 볼 수 없었던 활기에 가득 차 있었다.
조금 전 장한이 가슴을 후려쳤을 때 금노야는 그대로 죽는 줄로만 알았다.
물론 복청양이 뒤에서 미리 겁내지 말라고 안심을 시켰지만 저절로 몸이 움츠러드는 것만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장한의 일장이 가슴을 때리는 순간 등 뒤에서 갑자기 뜨거운 기운이 흘러 들어오더니 마치 솜뭉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고, 도리어 때린 자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던 것이다.
자신이 직접 당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희한한 경험이 아닌가? 무공의 오묘한 이치를 모르는 금노야로서는 복청양에게 경외심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자들은 어디 있습……." 복청양이 갑자기 말끝을 흐리며 자세를 낮추었다. "엎드리십시오." 금노야는 영문도 모른 채 땅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에 흐린 달빛 아래 한 사나이가 어정어정 걸어나오는 것이 보인다. '저렇게 먼 거리에서 사람이 오는 기척을 느꼈단 말인가?' 금노야는 다시 한 번 복청양의 능력에 놀라움을 느꼈다.
급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듯 천천히 걸어나오던 사나이는 아까 그 장한이 섰던 자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 녀석이 어디 갔지?" 사나이는 다소 심술이 난 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녀석이 또 어디서 퍼질러 자고 있는 모양이군.
왕가야, 왕가야!" 대답이 있을 리 없다. "이 녀석이 정말……." 사나이는 화가 난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그의 눈에 무엇인가가 보였다.
바닥에 허옇게 엎드려 있는 물체. "엇?" 그걸 보던 사나이의 눈이 화등잔만해졌다. "왕가야!" 그러나 사나이는 의외로 세심한 면이 있었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동료에게로 달려가는 대신 재빨리 장검을 꺼내 쥐며 주위를 둘러본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짙은 어둠뿐이었다.
조금 두려운 기색을 보이던 사나이가 갑자기 돌아섰다. "여기 침입자가……." 사나이의 음성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가까운 곳에 엎드려 있던 복청양이 한 줄기 지풍을 쏘아보낸 것이다.
사나이는 영문도 모른 채 쓰러졌다. "둘." 복청양이 어둠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그 화상의 수하가 몇이나 된다고 하셨죠?" "모두 열하나요." 뒤따라 모습을 나타낸 금노야가 대답했다. "그럼 가시지요.
서둘러야 합니다." 스슷 복청양이 움직인다.
그는 어둠에 동화되어 아무런 기척도 내지 않고 스며들고 있었다. '하여튼…….' 금노야는 혀를 내두르며 바삐 그의 뒤를 따랐다.
다섯은 큰방에서 한데 모여 잠을 자다가 점혈당했다.
둘은 각기 다른 방에서 여자를 품고 있었다.
하나는 여자를 안은 채 잠을 자다가 점혈당했고, 하나는 여자와 한창 그 짓을 벌이다 당하고 말았다.
모두 완전히 방심하고 있던 터라 자신이 누구의 손에 당하는지도 깨닫지 못했다.
그 뒤를 따라다니며 금노야는 미리 준비해 둔 줄로 그들의 손발을 묶느라 바빴다.
나머지 둘은 후원 쪽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들은 처음으로 복청양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싱겁군.' 열하나나 된다는 동정화상의 수하를 모조리 점혈해 쓰러뜨린 복청양은 의외로 오늘 일이 잘 풀린다고 생각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
동정화상만 제거하면 된다.
드르렁 드르렁 코고는 소리가 요란했다.
동정화상은 커다란 침상 위에 큰 대자로 누운 채 깊은 잠이 들어 있었다.
그의 코고는 소리에 지붕이 다 들썩거릴 정도였다.
침상 아래에는 알몸의 여인이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동정화상의 몸뚱이에 금물을 바르는 그 역겨운 일이 끝난 후에도 여인은 옷을 입지 못했고 동정화상의 곁을 떠나지도 못했다.
그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동정화상은 여자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대신 여자의 알몸을 구경하는 일을 몹시도 즐기는 자였다.
일종의 관음증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여자를 품지 못하는 욕구를 그런 식으로 해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때문에 여인은 하루 종일 옷을 걸치지 못했다.
자식들을 만날 때도 옷을 걸치지 못했고 심지어는 방 밖으로 나갈 때도 알몸이어야만 했다.
밖으로 나가면 음탕하기 그지없는 동정화상의 수하들이 음침한 시선으로 그녀의 나신을 더듬느라 침을 질질 흘렸다.
사내들은 언제나 노골적으로 그녀의 젖가슴이나 다리 사이 은밀한 부분에 눈길을 고정시키고 괴상한 숨소리를 내었다.
한 번은 욕정을 이기지 못한 사내 하나가 그녀가 보는 앞에서 시비를 겁탈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참을 수 없는 모욕을 그녀는 살아남기 위하여 감내하여야만 했다.
지금 그녀에게 주어진 가장 큰 명제는 바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인간이란 그런 것인가? 수치심이라는 것도 어느 한계에 달하면 무뎌지기 마련이다.
옷을 벗고 알몸으로 지내는 일도 처음 한순간만 부끄럽지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르면 모든 게 무감각해지기 마련이다.
여인은 이제 어떤 모욕을 당해도 모욕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고 말았다.
다만 한 가지, 위안되는 점이 있다면 사내들이 그토록 침을 흘리면서도 그녀에게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집 안에 있는 여자 중 온전한 여자는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그녀만은 무사했다.
아직은 동정화상의 명이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일도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동정화상이 언제 마음이 변하여 그녀를 저 개 같은 것들의 제물로 던져 줄지……. '그때는 혀를 물고 자결할 것이다.' 이건 지옥이었다.
살아는 있으되 살아있지 않은 것 같은 생지옥! 그러고 보니 그녀는 극락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한 셈이었다.
금노야의 사랑을 받으며 그의 자식들을 낳아 기를 때는 얼마나 행복하였던가? 그런데 이제 그 행복의 기간을 몇 곱절로 쳐서 톡톡히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하늘의 뜻이라면 너무 가혹했다.
여인은 그런 생각을 하며 몸을 뒤척이다가 마침내 잠이 들고 말았다.
드르릉 드르릉 코를 골던 동정화상이 문득 눈을 떴다.
어둠 속에서 그의 눈이 파란 광망을 일으켰다.
그러나 여전히 코고는 소리는 요란했다.
그는 눈을 뜨고서도 코를 골고 있는 것이다. "흐흐……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코를 골면서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괴상하기 그지없는 광경이었으나, 한 가지 다행한 점이 있다면 그 괴상한 광경을 보는 이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조금만 더 견디면 된다, 조금만.
이제 겨우 십성에 이른 나의 금수기공(金水氣功)이 십이성의 경지까지 오르기만 하면 그때는……." 동정화상이 주먹을 불끈 움켜쥐었다. "건방지게도 나를 칠대공적의 하나라고 몰아세웠겠다?" 동정화상은 자신이 칠대공적의 하나로 분류되는 것이 못내 불만이었다.
그가 칠대공적으로 분류되어 단심백결회의 추적을 받게 된 게 벌써 얼마인가? 하지만 그는 그래도 살아남았다.
단심백결회의 끈질긴 추적을 뿌리치고 지금까지 목숨을 연명해 왔다.
돌이켜 보면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하루도 마음을 놓을 날이 없었다.
이제 그 지긋지긋한 도주의 세월도 곧 끝이 난다.
금수신공을 다 익히기만 하면……. '그때는 무림삼룡을 만나도 겁나지 않는다.
아니, 이 대화상께서 먼저 그들을 찾아갈 것이다.
감히 나를 그 버러지 같은 자들과 같이 취급하다니!' 사실 동정화상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진짜 이유는 자신이 단심백결회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른 여섯 명과 자신을 같은 반열에 올려놓은 단심백결회의 무지함 때문이었다.
어디로 보아 자신이 그들과 같단 말인가? 동정화상은 코를 골면서 칠대공적의 능력을 하나하나 저울질 해보고 있었다.
칠대공적(七大公敵).
만대모.
인육에 미친 여자.
만대모는 뚱뚱하고 미련하기 짝이 없는 여자였다.
그녀를 보면 밥맛부터 떨어진다.
무흔색투.
여자만 보면 미치는 희대의 색마.
무흔색투는 여자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지렁이 같은 자였다.
적발수룡(赤髮水龍).
물고기 같은 여자.
적발수룡은 물속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물 밖으로 나오면 맥을 추지 못하는 계집이다.
천수벽뢰(千手霹雷).
화기(火器)에 미친 자.
천수벽뢰는 화기가 없으면 아무 일도 못한다.
그것은 진신무공과는 다른 것이다.
암혼(暗魂).
밤의 사자(使者).
암혼은 치사하기 이를 데 없는 자였다.
그자는 남의 등 뒤에서 검을 꽂는 일도 서슴치 않는다.
그리고 섬전도(閃電刀).
사람을 파리처럼 죽이는 살광(殺狂). '그자는 좀 다르다.' 섬전도가 모습을 나타낸 것은 이십 년 전이었고, 그 후 오 년간 활동했다.
그 오 년 동안에 그자의 손에 목숨을 잃은 일류고수가 일백도 넘는다고 하던가? 한 가지 기이한 것은 그들 모두가 시체조차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모두들 섬전도와 실력을 겨룬 이후 실종되어 버렸으므로.
하지만 그자는 그 후 모습을 감추었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여전히 칠대공적으로 불리고 있는 것은 그 동안 저지른 살행이 워낙 엄청났고 신비했기 때문이다.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섬전도라면 이 대화상과 어깨를 견줄 만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자라고 해도 이 대화상께서는 코딱지만큼도 두려워하지 않는단 말이다.' 드르렁 드르렁 동정화상은 여전히 코를 골면서 머릿속으로 온갖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한순간, 그의 코고는 소리가 딱 멎더니 한 팔로 침상을 짚으며 상반신을 일으켰다.
언제 나타났는가? 한 사나이가 문 앞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의를 걸친 청년이었다.
제 11 장 천고비서(天古秘書) "당신이 동정화상이오?" 청의청년이 조용히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밤부엉이의 울음소리처럼 낮았으며 조금은 울적한 기운이 담겨 있었다. "웬 놈이냐?" 동정화상이 상체를 일으켜 침상에 걸터앉으며 되물었다.
그의 목소리 또한 청년의 것에 못지 않게 침착한 것이었다.
잠결에 뜻밖의 방문객을 맞이한 것치고는 신기할 정도로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난 복청양이라 하오." 청의청년이 말했다. "당신과 얘기를 하러 왔소." "얘기라고? 흥, 별소리를 다 듣겠구나." 동정화상이 코웃음을 쳤다.
그가 알기로는 이 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오는 자(者)치고 좋은 뜻을 가지고 있는 자는 없었다.
십이면 십, 그의 적이다.
그런데 얘기라니, 이게 웬 자다가 남의 다리 긁는 소리란 말인가? "네 녀석이 여기까지 들어온 것으로 보아 내 수하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겠구나." "그들은 모두 잠을 자고 있소." 복청양이 말했다. "그리고 당신도 머지않아 그렇게 될 것이오." "호? 그래? 버러지 같은 놈 몇을 처리했다고 제법 큰소리를 치는구나." 동정화상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눈앞에 복청양이 있는데도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듯 천천히 승복을 주워서 입기 시작했다.
지독한 여유였다.
그러나 애써 여유를 보이는 그의 반들반들한 대머리는 외양과 어울리지 않게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보통 놈이 아니다.' 범상한 자였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을 것이다.
밖에서 지키고 있는 자들이 아무리 무능하다고 하더라도 열이 넘는데 아무런 기척도 없이 당하다니! 더구나 그의 이목을 속이고 여기까지 온 것은 대단하다 아니 할 수 없었다.
동정화상은 전신의 근육이 팽팽하게 긴장되는 걸 느꼈다. '오랜만에 몸을 풀 상대를 만났는지도 모르겠군.' 그런데 한 가지 그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방금 청년이 말한 이름이었다. '복청양이라…… 어디서 들은 것 같기는 한데 얼른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침상 밑에서 허연 물체가 움직였다.
웅크리고 잠이 들었던 여인이 인기척에 놀라 깨어난 것이다.
여인은 벗은 몸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그냥 앉은 채 멍청한 눈으로 복청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복청양의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저 여인에게 옷을 입으라고 하시오." "옷을 입어라?" 동정화상은 묘어(苗語)를 처음 들은 사람처럼 묘한 표정을 지었다. "내 계집이 옷을 입건 말건 네가 무슨 상관이냐? 오라, 그러고 보니 너도 저 계집에게 관심이 있는 모양이로구나." "그렇지 않소." 뻔히 놀리는 말인 줄 알면서도 복청양의 얼굴이 붉어졌다.
비록 어둠 속이라고는 하지만 여인의 나신은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생전 처음 이런 광경을 접하는지라 자연 복청양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하하…… 괜찮다." 동정화상이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사내라면 누구나 계집을 좋아하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 암,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일어나라." 제법 위엄있는 음성이었다.
그러자 여인이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그 동안 동정화상에게 길들여진 여인은 그가 무슨 명을 해도 듣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바퀴 빙 돌거라.
후후…… 저 녀석에게 너의 몸매를 보여주란 말이다." 그러자 여인은 정말로 시키는 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몸을 돌려 뒷모습을 보이고, 다시 앞으로 돌아서 절대로 보여서는 안 되는 은밀한 부분까지 아무런 거리낌없이 보여주었다.
그런 광경을 보고 있던 복청양은 왈칵 분노가 끓어올랐다. "이게 무슨 짓이오!" 소리와 함께 복청양의 손가락이 곧게 뻗었다. "아!" 여인이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만다. "호! 그깟 재간으로 이 대화상을 놀라게 하겠다는 것이냐?" 동정화상의 얼굴에 비웃음이 가득 피어올랐다. "이 녀석아, 너는 이 대화상과 놀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다.
그러니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오너라." "당신한테 한 가지 제안을 하겠소." 동정화상의 놀림을 귓등으로 흘려 보내기로 작정한 복청양이 무겁게 말했다. "이 길로 여기를 떠나서 다시는 오지 마시오.
그러면 나도 당신을 해치지 않겠소." "나보고 떠나라고? 그러면 사정을 봐주겠다? 이제 보니 여기 또 하나의 부처가 있었네 그려." 동정화상의 눈에 새파란 광망이 일었다.
이제까지 그는 상대가 어느 정도의 능력이 있는지 몰라 한껏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런 광망한 소리를 듣자 그만 견딜 수 없게 분노가 끓어오른 것이었다.
자신을 해치지 않겠다니! 그것은 천하의 동정화상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기 전에야 감히 할 수 없는 말이 아닌가? "오냐, 네 녀석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가 보자!" 동정화상이 노성을 지르며 불쑥 주먹을 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무시무시한 권풍(拳風)이 일어났다.
꽈르릉 벽의 한쪽이 권풍에 맞아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복청양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그는 어느새 밖으로 나가 있었던 것이다. "달아날 참이냐!" 동정화상이 고함을 지르며 뒤따라 나갔다.
두 사람은 삼 장 정도의 거리를 두고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복청양은 두 손을 아래로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그의 외양은 너무도 평범해서 아무런 기도도 느껴지지 않았다.
무공을 전혀 모르는 백면서생처럼 보였다.
반면에 동정화상은 두 손에 각각 하나씩의 기문병기를 들고 있었다.
오른손에 들려있는 것은 절굿공이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시퍼런 빛이 이는 것으로 보아 동(銅)으로 만들어진 모양이었다.
동으로 만든 절굿공이라면 상당한 무게가 나갈 텐데도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들고 있었다.
괴력이라 아니 할 수 없다.
그의 왼손에는 작은 솥이 들려 있었다.
솥이라고는 하지만 그 크기가 지나치게 작아 한 손으로 들기에 알맞았다.
역시 동으로 만들어진 물건인 것 같다.
동정화상의 몸에서는 가공한 살기가 구름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흐흐…… 애송아, 감히 이 대화상과 겨뤄보겠다는 것이냐?" 동정화상이 음침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쥐를 앞에 둔 고양이의 미소였다. "당신과 싸우고 싶은 마음은 없소." 복청양이 여전히 조용하게 말했다. "당신과는 정말이지 싸우고 싶지 않소.
그러니 어서 이 집에서 물러가시오." "흥, 그런 고리타분한 소리를 들으면 내 귀에서 곰팡이가 슨단 말이다." 동정화상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큰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잽싸게 복청양의 앞으로 다가들더니 절굿공이를 들어 곧장 아래로 내리쳤다.
정말로 복청양의 머리를 콩처럼 부숴버릴 기세였다.
무거운 절굿공이에 동정화상의 힘까지 실렸으니 그 기세는 자연 범상치 않았다.
복청양은 감히 맞받아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옆으로 물러섰다.
그러자 절굿공이가 괴이한 호선을 그리며 그를 따라왔다. "핫!" 복청양이 도약했다. "흐흐…… 피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동정화상의 절굿공이가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연속으로 열세 번의 절구질을 하였는데, 무거운 절굿공이를 마치 봉처럼 휘두르고 있었다.
복청양은 허공에서 연속으로 신형을 세 번 뒤집었다.
그는 내내 허공에 떠 있었으므로 동정화상의 절구질에 걸려들지 않았다.
이렇게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몸을 움직이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재간이었다.
동정화상의 눈이 커진다. "차앗!" 복청양이 우렁찬 소리를 지르며 동정화상을 향해 덮쳐가고 있었다.
그의 열 손가락이 기묘한 각도로 굽어졌다.
바로 천산오조가 자랑하는 절기 중의 하나인 흑오조(黑烏爪)였다. "흥!" 동정화상이 솥을 들어 막았다.
원래 그의 솥은 방패 구실도 하는 모양이었다.
조(爪)와 정(鼎)이 마주치는 순간 복청양이 손을 거두었다.
그는 손끝으로 가볍게 솥을 짚으며 그 탄력을 이용해 반대로 내려앉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절굿공이가 허리를 쓸어왔다.
복청양은 이렇게 무거운 기문병기와 싸워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병기가 무거우면 상대적으로 속도는 느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동정화상은 마치 젓가락을 휘두르듯이 절굿공이를 사용하고 있으니 일시지간 파해할 방법이 없었다.
복청양은 별수없이 기이한 보법을 밟으며 다섯 번의 공격을 피해냈다.
그러자 동정화상의 공세가 약간 느려졌다.
그로서도 약간은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복청양의 손에서 검은빛이 번뜩였다.
그는 어느새 삼절묵창을 손에 들고 있었다.
그는 그것으로 연속 세 번을 찔러갔는데, 그 노리는 곳이 하나같이 솥으로 막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이번에는 동정화상이 물러날 차례였다.
다급히 다섯 걸음을 물러나서 겨우 복청양의 공세를 피한 동정화상의 눈이 갑자기 커지면서 삼절묵창에 고정되었다. "그, 그건 묵창……." 복청양이 멈칫했다.
설마 하니 이 중이 그의 삼절묵창을 알아본단 말인가? 동정화상은 흡사 무덤 속에서 살아난 조상을 만난 듯한 표정을 지으며 경악하여 복청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묵창을 병기로 쓰는 복가 놈이라면…… 네, 네가……." 동정화상은 비로소 처음 복청양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째서 찜찜한 기분이 들었는지를 알아냈다. "네, 네가 바로 천노살성이란 말이냐?" "천노살성?" 복청양은 멈칫했지만, 이내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오늘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르겠군.' "이제야 알아봤군." 그의 입에서 냉랭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몹시도 차가운 것이었다.
반면에 동정화상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다리를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으…… 네놈이 천노살성이라니…… 천노살성이 내 앞에 나타나다니……." 천노살성의 이름은 요즘 들어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천노살성은 삼백이나 되는 인명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살해한 극도로 잔인한 인물이라고 하던가? 또한 그의 무공은 기이하도록 높아서 무당파의 원로인 소허도장을 단 일초에 베었으며, 단심백결회 산서지부에 단신으로 들어가 쑥밭을 만들었다는 소문이었다.
워낙 과장이 심한 게 무림이고 보니 소문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찜찜한 것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동정화상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복청양을 바라보았다. "네가 조금이라도 머리가 있는 놈이라면 지금이라도 줄행랑을 놓는 게 현명한 일이라는 것쯤은 알 텐데?" 복청양이 가공할 살기를 흘리며 성큼 다가섰다.
그의 전신에 흘러넘치는 살기는 그야말로 파괴적인 것이어서 주위의 공기가 온통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것 같았다. '대단한 놈이다.
소문이 완전히 거짓은 아니었구나!' 동정화상은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저런 새파란 애송이한테 겁을 먹고 달아났다는 소리는 듣기 싫었다.
그는 자꾸만 떨려오는 마음을 다잡으며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네까짓 놈이 아직 임자를 만나지 못해 광망을 떠는 모양인데, 이 대화상 앞에서도 그런 헛소리가 통할 줄 알았다면 큰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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