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설록]천객 - 2 - 4편 (4/17) | 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 웹스토리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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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설록]천객 - 2 - 4편 (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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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게 함정이라면 당신은 이 일을 맡지 않을 건가요?" 그러자 암혼이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게 설사 함정이라도 나는 일단 승낙한 일은 반드시 하오." "그렇다면 힘들게 머리 쓸 것 없잖아요.
함정이든 아니든 어차피 당신한테 달라질 건 없을 테니까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사흘 후 이 시간에 단황이 이 자리에 나올 거예요.
그때 그 사람을 죽이세요." "알겠소." "대금은 지금 이백 냥을 지불하고 일이 성사된 뒤에 나머지를 주겠어요.
괜찮겠죠?" "좋소." 백아아가 품속에서 한 장의 전표를 꺼내 내밀었다.
암혼은 전표의 내용을 꼼꼼하게 살펴보더니 네 번 접어 소매 속에 넣었다.
백아아가 몸을 일으켰다. "그만 가보겠어요." "배웅은 하지 않겠소." '이와 비슷한 경우는 전에도 있었다.' 암혼은 멀어져 가는 백아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백아아는 그의 평생 처음 보는 뛰어난 미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가 생각하는 건 그녀의 미모가 아니었다. '그자는 나와 실력을 겨뤄보려는 것이다.
어쩌면 나를 잡아 명성을 떨치고 싶은 자인지도 모르지.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목적을 밝히는 것은 처음이다.' 그게 암혼의 마음에 걸렸다.
노골적으로 목적을 드러낸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또한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자는 나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였음이 분명하다.
내가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까지 이미 내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 일은 그가 지금까지 맡은 청부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황금 오백 냥이라면 충분히 그런 위험을 감수할 대가가 되지 않는가? '단황이라는 이름은 가명이고 적룡이나 청룡이 함정을 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를 잡지 못해 혈안이 되어 있으니까.
하나 그게 누구이든간에 이건 실수다.
그자는 나를 잘못 평가했다.' 암혼은 주먹을 굳게 움켜쥐었다. '그게 누구든 그자는 사흘 후에 반드시 죽는다.
오백 냥의 황금 때문이 아니라 나 암혼을 잘못 평가한 대가로!' 암혼은 자신을 믿었다.
그리고 자신의 검을 믿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인을 실망시킨 적이 없는 검을.
단황이라는 자는 지극히 어리석거나 아니면 지극히 운이 나쁜 자였다.
제 12 장 선상(船上) 콸콸콸 아무래도 강의 상류에 폭우가 쏟아진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분수(汾水)의 물이 이렇게 짙은 황토빛이 되어 거센 기세로 쏟아져 내려올 리 없다.
복청양은 난감한 얼굴로 발 밑을 흐르는 급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시(午時)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태양은 중천에 떠 있었다.
그의 발 밑에 드리운 그림자는 아주 짧아서 겨우 형체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유난히 더운 날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이마에 땀이 줄줄 흘렀다.
하지만 지금 복청양이 난감해 하는 것은 그런 더위 때문이 아니었다.
태행산으로 가자면 어쩔 수 없이 분수를 건너야만 했다.
달리 또 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자면 먼 거리를 돌아야 하고 며칠이 더 걸린다.
금노야를 만나는 바람에 많은 시간을 허비한 복청양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막상 분수를 건너자니 급류가 너무 심한 데다 마땅한 도강 방법이 생각나질 않는 것이다. '어쩐다…….' 복청양은 난감하여 강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눈이 번쩍 빛을 내었다.
강 건너편에 한 척의 배가 떠서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아주 작은 조각배였는데 배 위에는 여자 하나가 타고서 천천히 노를 젓는 중이었다.
콸콸 쏟아지는 급류가 아닌가? 그런데 여자는 그 급류에 조각배를 띄우고 노를 저으면서도 여유 작작한 모습이었다.
놀라운 일이었지만 복청양은 그걸 보고 놀라워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는 강 하류로 걸음을 옮겼다.
조각배가 도착할 지점을 예상하여 미리 가 있자는 것이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에 마침내 조각배가 이편에 닿았다.
배에서 내린 여인이 조각배를 강변으로 끌어올리더니 긴 노를 거둬들였다.
여인은 헐렁한 청의를 걸치고 있었으며 사십대로 보였다.
유난히 긴 얼굴에 안색은 물빛처럼 시퍼렇다.
머리에는 검은 천을 둘둘 감고 있었으며 심한 비린내를 풍겼다.
여인은 가까이 오는 복청양을 보지 못했는지 노를 어깨에 둘러메고 가려 했다. "이 보십시오." 복청양이 소리치자 여인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았다.
물고기의 것처럼 빛이 번들번들 흐르는 눈이었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복청양은 조금 기이한 느낌이 들었다.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물고기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무슨 일인가요, 젊은이?" 여인의 입에서 노파처럼 늙수그레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죄송합니다만 급한 일로 이 강을 건너야 하는데 신세를 질 수 없을까요?" "나보고 저리로 건네 달라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하지만 난 방금 저기서 왔는데……." 여인이 머뭇거린다.
곤란하다는 표정이다.
복청양은 급히 두 손을 모으며 허리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물론 사례는 충분히 하겠습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여인은 정말로 다시 강을 건너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난처한 얼굴로 복청양의 아래위를 훑어보다 이윽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정 그렇다면 타세요." "감사합니다." 복청양은 서둘러 조각배를 강으로 밀어넣었다.
조각배는 급류에 뜨자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이 요동을 쳤다.
이런 배를 타고 어떻게 강을 건너왔는지 모를 일이다. "조심해요." 여인이 손을 뻗어 뱃전을 붙잡았다.
그러자 그토록 무섭게 흔들리던 배가 균형을 되찾았다.
복청양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방금 배를 붙들고 있었기에 이 배의 흔들리는 힘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었다.
그냥은 고정시킬 수가 없어 그도 공력을 운기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여인이 한 손으로 어렵지 않게 붙든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여인의 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단순한 뱃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구나!' 여인은 무공을 익힌 게 틀림없었다.
그것도 상당한 경지에 도달한 것 같았다.
이런 강변에 어째서 이런 고수가 숨어있다는 말인가? '혹시?' 복청양은 며칠 전에 만났던 이충개를 떠올렸다.
그들을 만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 여인을 만난 것도 우연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이 여인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여인을 보는 복청양의 표정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저 담담하게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을 뿐이다. "감사합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사의를 표하고는 조각배에 올랐다.
이어 여인도 배에 올랐다.
여인이 노를 강바닥에 밀어넣고 힘껏 찔렀다.
그러자 조각배가 강변을 떠나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조각배는 급류에 휘말리자 아래로 내려가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뱃전에 부딪치는 물소리가 요란하고, 하얀 포말이 일어났다.
급류의 기세는 밖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딴판이어서 보고 있으면 어지럼증이 일 지경이었다.
하지만 여인은 아무런 동요도 없이 노를 강바닥에 깊숙이 박고 섬세한 손놀림으로 다루고 있었다.
아마도 노를 강바닥에 박은 힘으로 배가 급류에 휘말리지 않게 하는 모양인데 그 재간이 여간 놀랍지 않았다.
조각배는 급류 속에서도 방향을 반대편 언덕으로 틀더니 천천히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 속도는 느리기 한량없는 것이었으나, 이곳에 무서운 급류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감탄할 만한 일이었다. "무섭지 않나요, 젊은이?" 잠시 노질에만 열중하던 여인이 말을 던졌다. "견딜 만합니다." 산에서만 살아온 복청양이었다.
비록 냇물에서 약간의 헤엄치는 법은 익혔다지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애써 여인에게 그런 내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젊은이에게 한 가지 미리 일러둘 게 있어요." 여인이 노를 저으며 말했다. "그게 뭡니까?" "뭐 대단한 건 아니고…… 내 배를 타는 사람은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도 아주 절절하게." "전 머리가 둔해서 도무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군요." 복청양이 여인을 보면서 빙긋 미소를 던졌다.
아무런 사심도 없는 환한 미소였다.
하지만 그 미소를 보는 순간 여인은 흠칫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고약한 웃음이다.' 남자의 미소는 여러 가지이며 여자의 것처럼 각각의 색깔을 지니고 있다.
그 중에는 여자의 마음을 홀리는 마력을 지닌 것도 있다.
하지만 복청양의 미소는 다르다.
그것은 그저 순수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런 사심도 없는 맑은 하늘 같다.
상대를 굳게 신뢰하고 털끝만치도 의심을 품고 있지 않은, 어린아이의 웃음처럼 천진스럽기까지 한 그 미소를 보면서 여인은 은은히 마음이 떨려왔지만 애써 그런 흔들림을 바로잡았다. "젊은이는 참 잘생겼군요." "그렇습니까?" 복청양이 다시 미소짓는다.
아까보다도 훨씬 환한 것이었다.
그러나 미소와는 다르게 복청양의 마음은 그다지 평화롭지 않았다. '이 여인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복청양은 되도록 여인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았다.
그러나 워낙 좁은 배라 그래 봐야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배가 강의 중심에 이르고 있었다.
여인이 문득 노질을 멈추고 묘한 표정으로 복청양을 바라보았다. "젊은이, 혹시 여자를 안아 본 적 있나요?" "예?" 난데없는 질문에 복청양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자 여인이 호들갑스럽게 웃음을 터뜨린다. "호호호…… 내가 멍청한 질문을 했군요.
그 나이에 그 얼굴을 가지고 설마 여태 여자를 안아 보지 못했을까.
그럼 여자가 옷을 벗는 모습은 많이 보았겠네?" "아니, 아주머니!" 싫은 소리를 한마디 하려던 복청양은, 그러나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그 순간 여인이 노를 버리면서 걸치고 있던 옷을 활활 벗기 시작한 것이다.
호들갑스럽던 웃음이 사라지고, 비릿한 미소가 여인의 입가를 스치고 지나간 것은 극히 잠깐이었다.
겉옷을 벗자 그 안에 수달피가죽으로 만든 듯한 반들반들한 검은옷이 드러났다.
가죽옷은 여인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마치 또 하나의 피부를 보는 것 같았다.
나이답지 않게 여인의 몸매는 균형이 잡혀 있었고 날씬했다. "어때요?" 여인이 자랑이라도 하려는지 몸을 한바퀴 빙그르르 돌리더니 그대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풍덩 "앗?" 복청양이 사태를 깨달았을 때는 이미 여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조각배는 급류에 휘말려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조각배가 돌연 한쪽으로 기울었다.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던 복청양은 뱃전을 박차며 신형을 날렸다.
단숨에 강 건너편으로 날아가려는 것이다.
그러나 미처 절반도 가기 전에 진기가 흐트러지고 말았다. '틀렸다!' 애당초 무리였다.
오십여 장이나 되는 거리를 단숨에 건너뛰겠다는 것은.
물론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면 절대로 이런 무모한 시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복청양은 진기가 급격하게 흐트러지면서 아래로 추락했다.
쐐액 그때 물속에서 화살 하나가 무서운 기세로 날아왔다. "엇?" 복청양은 급히 숨을 들이마시며 신형을 한바퀴 뒤집었다.
만약 보는 사람이 있었다면 누구나 입을 딱 벌리고 말았을, 믿기지 않을 만큼 신속한 대응이었다.
화살은 헛되이 복청양의 발 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서슬에 균형을 잃은 그가 더욱 빠른 기세로 물속으로 처박힘은 어쩔 수 없었다.
첨벙 비록 물이라지만 그 떨어지는 충격은 만만치 않았다.
복청양은 몇 모금의 물을 들이킨 뒤에야 겨우 수면으로 머리를 내밀 수 있었다.
급류가 무섭게 그의 몸을 덮쳤다.
복청양은 헤엄을 쳐서 급류의 기세에 저항하려고 했지만 그것은 생각처럼 만만치 않았다.
돌연 유연하게 움직이는 검은 물체가 눈에 들어왔다.
여인이었다.
여인이 물고기처럼 날렵하게 헤엄을 치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한 손에는 작은 활을 들고 한 손에는 긴 창을 들고 있었다.
방금 저 활로 화살을 날려보낸 모양이었다.
쏴아 여인의 창이 복청양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가까스로 첫공격을 피해내긴 했지만 다시 방향을 틀어 달려드는 여인을 보며 복청양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급류에 휘말려 허우적거리고 있는데 여인은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니 이건 처음부터 상대가 되지를 않는다.
복청양은 급히 천근추의 수법을 써서 아래로 가라앉았다.
다행히 바닥은 그다지 깊지 않아서 금방 발이 땅에 닿았다.
바닥에 발이 닿자 복청양은 비로소 급류에 영향을 받지 않고 신형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전면을 바라보았다.
여인이 돌고래처럼 매끄럽게 물속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여인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수건은 이미 풀어져서 보이지 않았다.
해초처럼 너울거리는 머리카락은 기이하도록 붉었으며 허리까지 닿았다.
복청양이 강호에 조금만 경험이 있었더라면 저 머리만 보아도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을 것이다.
적발수룡(赤髮水龍).
칠대공적 중의 하나로 물속에서만은 천하무적임을 자랑하는 여인이 아닌가?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여인의 움직임을 주시하던 복청양이 한 걸음 옆으로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은 단순한 것이었으나, 다행히 시기가 적절하여 여인의 공격을 피해낼 수 있었다.
여인이 빙글 몸을 돌렸다.
이번에는 두 개의 화살이 여인의 손에서 발출되었다.
화살은 이상하게도 곧장 복청양을 노리지 않고 양쪽으로 갈라져 날아오고 있었다.
그가 피할 길을 미리 봉쇄하자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날카로운 창끝이 가슴을 향해 육박해 들어왔다.
복청양은 급히 쌍장을 모아 막강한 장세를 발출했다.
그러나 여기는 물속이었다.
그의 장세는 급류에 휘말려 오 할이 감소되고 남은 오 할 정도의 경력만이 여인을 향해 덮쳐갔는데 그 기세도 느리기 한량없는 것이었다.
당연히 여인은 어렵지 않게 장세를 피해냈다.
하지만 덕분에 복청양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물속에 너무 오래 잠겨 있어서인지 머리가 멍해지면서 가슴이 터져나갈 것처럼 팽창한다.
복청양은 위험한 것을 뻔히 알면서도 수면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물 밖으로 머리를 내밀자 비로소 맑은 공기가 폐를 시원하게 해주었다.
그때 다시 두 개의 화살이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화살은 이번에는 곧장 가슴을 겨냥하고 있었다.
복청양은 급히 몸을 틀었다.
그 순간이었다.
가까스로 화살을 흘려 보내고 안도하기도 전에 물 밑에서 창끝이 불쑥 솟아올랐다. "앗?" 놀랄 여가도 없었다.
붉은 피가 물 위에 확 퍼졌다.
복청양은 팔에 극심한 통증을 느꼈지만 고통스러워할 여가도 없었다.
그는 재차 이어지는 적발수룡의 공격을 피해 물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급히 힘을 주어 위로 솟아올랐다.
촤아! 마침내 그의 전신이 물 밖으로 노출되었다. "호호…… 걸려 들었다." 적발수룡의 의기양양한 웃음소리가 귓가에 울려퍼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복청양은 눈앞에 검은 천 같은 것이 펼쳐지는 것을 보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만 그 물건에 휘감기고 말았다. "윽!" 복청양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물속으로 떨어졌다.
아래로 가라앉으며 몸을 움직이려고 버둥댔지만 그럴수록 몸에 감긴 것은 더욱 친친 조여든다.
그것은 검은 실로 촘촘하게 엮은 그물이었다.
적발수룡이 복청양이 물 위로 솟구치기를 기다려 그물을 펼친 것이다.
참으로 적절한 공격이어서 복청양은 그대로 그물에 걸린 고기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는 물속 깊숙이 떨어졌다가 위로 떠올랐다.
적발수룡이 그의 주위를 헤엄치며 손을 교묘하게 움직여 그물을 더욱 친친 동여매고 있었다. "이 간악한!" 분노에 찬 노성을 지르며 복청양은 공력을 운기하여 그물을 끊어 버리려고 했다.
그러나 가는 실로 엮어진 그물은 어떻게 된 것인지 힘을 주면 줄수록 더욱 심하게 감겨드는 것이었다. "흥! 이것은 천잠사(天蠶絲)로 엮은 것이다.
네가 아무리 발버둥쳐 봐야 소용없다." 적발수룡이 차갑게 웃으며 그물 끝을 손에 둘둘 감아쥐었다.
그러자 복청양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하고 그녀의 곁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난감하게 되었구나!' 복청양은 자신이 이처럼 어처구니없이 함정에 걸려들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러잖아도 여인의 행동이 수상쩍어 경계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적발수룡은 복청양을 거뜬히 사로잡자 한 팔로 물을 저어가며 가만히 수면에 떠 있었다.
강변으로 나갈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요?" 그물에 감긴 채로 복청양이 소리쳤다.
그의 얼굴은 분노로 붉어져 있었지만 검은 그물에 둘둘 감긴 꼴은 지극히 낭패한 모습이었다. "서두르지 마라.
조금만 있으면 곧 알게 된다." 적발수룡의 차가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강 상류 쪽에서 한 척의 배가 나타나더니 빠르게 다가왔다.
적발수룡이 손을 들었다.
그러자 배 위에서 한 가닥 밧줄이 내려왔다.
밧줄은 조금 먼 곳에 떨어졌지만 적발수룡은 능숙하게 헤엄쳐 어렵지 않게 그걸 손에 쥐었다.
복청양은 새삼 그녀의 능력에 감탄치 않을 수 없었다.
급류 속에서 떠내려가지 않고 몸을 고정시키는 것도 어려운 일인데 한 손에 남자가 담긴 그물을 잡고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여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천하에 적발수룡을 제외한다면 이런 능력을 지닌 자가 없을 것이다.
위에서 밧줄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배 위에 있는 것은 남자처럼 건장한 체격을 지닌 세 명의 여인이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 매달린 밧줄을 어렵지 않게 끌어올려 갑판에 부려 놓았다.
적발수룡이 복청양을 생선처럼 버려두고 젖은 머리를 쓸어 뒤로 넘긴다. "다행히 늦지 않았군." 그러나 여인들은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그들은 두 사람을 배 위로 끌어 올려준 것으로 할 일을 다하였다는 듯이 자리를 떠 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배 다루는 솜씨는 매우 능숙한 것이어서 급류 위에 떠 있으면서도 별다른 흔들림이 없었다.
배가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급류를 따라 밑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도 그 원인 중의 하나였다.
적발수룡 역시 입을 열지 않고 뱃전에 기대어 흘러가는 물결을 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은 조금 울적해 보였다.
강적을 맞이하여 멋지게 승리를 거두었건만 기뻐하는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길이 없다. '도대체 이들은…….' 복청양은 입을 열어 질문을 던지려다가 그만두었다.
적발수룡의 말처럼 곧 모든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기왕 이리 된 마당에 조급하게 서둘 이유는 없었다.
선실의 문이 열렸다.
나온 것은 두 명의 아리따운 소녀들이었다.
그들은 탁자와 의자를 가지고 나와 갑판에 놓고는 그것이 미끄러지지 않게끔 바닥에 단단히 고정시켰다.
이어 술과 안주거리를 가지고 나와 탁자에 벌여 놓는다. '이 배에 남자는 없단 말인가?' 복청양은 술상을 차리고 있는 소녀들을 바라보며 의문에 사로잡혔다.
지금까지 그가 본 것은 전부 여인들이었다.
설마 하니 이런 배를 움직이는 데 남자의 손이 필요하지 않단 말인가? 술상 차리기를 마친 두 소녀가 복청양에게 다가왔다. "뭘 하려는 거요?" 그러나 실상 복청양의 질문은 부질없는 것이었다.
두 소녀가 그를 양쪽에서 안아 든 것이다.
이런 고약한 처지에 있으면서도 소녀들의 청순한 향기가 느껴지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한 남자의 무게는 두 소녀에게 약간 버거운 것 같았다.
소녀들은 얼굴을 찡그리며 복청양을 안아 들더니 의자에 앉혔다.
다시 선실의 문이 열렸다.
안에서 나온 것은 붉은 옷을 걸친 여인이었다.
나이는 이제 겨우 이십여 세나 되었을까? 그러나 나이답지 않게 그녀의 얼굴에는 지극히 차가운, 얼음장 같은 기운이 덮여 있었다.
손에는 불꽃 모양의 문양이 새겨진 피리를 들고 있다.
날수염적 군성초.
그녀인 것이다.
군성초는 남자처럼 활달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더니 복청양의 맞은편에 앉았다. "너도 이리 오너라." 한 겹 서리가 내린 것 같은 음성이 흘러나온다. "흥!" 적발수룡이 나직하게 코웃음을 쳤다.
그러나 그녀는 감히 군성초의 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지 걸어와 빈 자리에 몸을 앉혔다.
이로써 세 개의 의자가 모두 찼다. "불만이 많은 얼굴이군." 군성초가 적발수룡의 얼굴을 보며 차가운 음성을 뱉어냈다. "내가 불만이 있든 없든, 네가 무슨 상관이냐?" "하긴……." 군성초가 손을 뻗어 술잔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지극히 섬세하고 아름다웠지만 하는 모양은 남자나 하등 다를 게 없었다. "따라라." 그러자 소녀 하나가 잽싸게 술병을 들어 군성초의 잔에 술을 채웠다. "다른 잔에도 따라라." "필요없다." 적발수룡이 험상궂게 말하더니 다른 술병을 들어 자작으로 따라 마셨다.
술은 황금빛이었고 좋은 향기를 풍겼다.
따라야 할 대상을 잃어버린 소녀가 조금 머뭇거리더니 복청양의 잔에 술을 채웠다. "이걸 날더러 마시란 말이오?" 복청양이 조금 어이없어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지금 그물에 감겨있는 처지가 아닌가? 마시고 싶어도 움직일 수 있는 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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